풍류, 술, 멋 1479

[ 조용헌의 영지 순례 ]용화세계의 지도자 기다린 '북미륵암의 마애불'

바위 속에 신(神)이 있다. 이것이 고대 신화와 종교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다. 가장 단적인 예를 든다면 마애불(磨崖佛)이다. 커다란 바위 평면에 새겨놓은 부처 또는 신상(神像)을 마애불이라고 하자.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마애불이 있다. 거의 다 바위에 새겨져 있다. 그 이유는 바위 속에 부처가 살고 있다고, 또는 산신령이 살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살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왜 믿냐? 왜 바위 속에 신령(神靈)이 거주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냐? 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 밑에서 기도를 하거나 잠을 자보면 꿈에 부처나 산신령이 나타난다. 자기 꿈에 나타나는 부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개인에게 이러한 현몽이 있으면 그 꿈을 꾼 당사자는 이걸 중요하게 여긴다. 상당..

풍류, 술, 멋 2023.02.28

드세지만 애처로운 울산바위의 바람… 겨울은 또 올텐데 왜 그리 슬피 우는가

눈밭의 숲길을 걸어서 신선봉 성인대에 오른 등산객이 장엄한 설악의 풍경 앞에 서 있다. 성인대는 울산바위와 외설악을 조망하는 그야말로 ‘최고의 자리’다. 두 명의 등산객 뒤쪽으로 보이는 등지느러미 같은 암봉이 울산바위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겨울-봄 길목의 설악산 왕관 같이 솟아오른 울산바위 드문드문 ‘잔설’에 입체감 더해 바람 거셀때 나는 ‘우우’ 소리 요즘따라 더욱 구슬프게 들려 대청봉 오르기 힘들었던 시절엔 흔들바위가 설악 대표 아이콘 등산 코스로는 시시해졌지만 겨울 정취·위용은 여전히 간직 적요한 분위기 눈밭 속 신흥사 불밝힌 법당 목조삼존불 ‘온화’ 마당 끝에서 보는 권금성 일대 먹 찍어 금방 그린 수묵화 같아 울산바위 맞은편 신선봉 성인대 북설악 일대 전경·동해 한눈에 미시령 터널 지나면..

풍류, 술, 멋 2023.02.17

[ 조용헌의 영지 순례 ]한국 풍수 비조는 왜 이곳을 사랑했을까, 백계산 옥룡사지

전남 광양의 백운산. 섬진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와 남해 바다 쪽에서 올라오는 해무가 둘러싸는 산. 그래서 백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싶었다. 도선국사는 이 안개와 해무를 사랑하였나! 인생 후반부 전부를 백운산에서 머물렀으니까 말이다. 어떤 점이 명당이기에 한국 풍수의 비조는 이 산을 사랑했는가! 자료를 조사해 보니 백운산의 과거 이름은 닭 계(鷄) 자를 써서 백계산(白鷄山)이라고 불렀음을 알게 되었다. ‘흰 닭산’이라는 뜻이 된다. 흰 닭이라! 요즘 감각으로는 특이한 산 이름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마도 ‘백계산’이라는 이름은 도선국사가 직접 붙인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 풍수지리의 원조가 직접 머물렀던 산이니까 도선국사가 작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조선 팔도의 명당 자리에다가 직접 이름을 붙여서 비..

풍류, 술, 멋 2023.02.17

‘名梅 분재’ 에 담아낸 선비의 기품… ‘이른 봄’ 아닌 ‘다른 봄’을 만나다

경북 영주의 선비매화공원에 전시된 매화 분재. 경남 하동에서 찾아낸 300년 된 야생 매화나무로 만든 것이다. 키가 2m가 넘는다. 크게 만든 분매(盆梅)가 많은 건 중국, 일본과는 다른 우리 매화 분재의 특징이다. 늙은 나무의 뒤틀린 가지 끝에서 이제 막 성글게 꽃이 피기 시작했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매화 가장 먼저 피는 영주 국내 최대 규모 매화정원인 ‘영주 선비 매화공원’ 봄맞이 163종 361개의 매화 분재 뒤틀리고 파인 매화나무 둥치 늙었으되 기품있는 모습 표현 450년 된 초대형 盆梅에 눈길 가지수가 적고 꽃을 오므리고 오래되고 마른 것이 귀한 매화 인내·절제·품격… 선비의 이상 영조의 聖 恩을 입었던 ‘정릉매’ 임란 때 日에 빼앗겼던 ‘와룡매’ 안형재 매화연구원장 평생 바쳐 영주=글·..

풍류, 술, 멋 2023.02.11

[ 조용헌의 영지 순례 ]줄타기꾼 부부의 비극이... 경기도 연천 재인폭포의 기운

무협지나 도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폭포가 나온다. 물이 떨어지는 폭포는 영험한 장소로 여겨진다. 특히 정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폭포는 적당한 장소였다. 떨어지는 폭포 밑에 앉아 머리 위로 물을 맞는 자세,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는 자세는 정신통일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여겨져 왔다. 왜 폭포 밑이 영험한가? 우선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 머리 위로 상기되었던 열기가 아래로 내려간다. 수기가 화기를 제압하는 구조이다. 신경을 많이 쓰고 걱정 근심으로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폭포 밑에서 머리 위로 물을 맞으면 효과가 있다. 머리가 시원해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물소리이다. ‘콰-아’ 하고 떨어지는 물소리는 잡념을 씻어 주는 효과가 있다. 세상의 소리 가운데 물소리는 인간의 ..

풍류, 술, 멋 2023.02.07

대게축제·해안트레킹… ‘막바지 겨울’ 추억 만들어요

눈 내린 날 저녁 강원 고성 대진항의 낭만적인 풍경. 포구를 끼고 뜨끈한 곰치국과 도치 알탕 등을 내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아직 겨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겨울의 초입은 따스했는데, 겨울이 깊어지면서 한파의 내습이 잦았다. 2월로 접어들었는데도 혹한의 기세가 도무지 꺾일 줄 모른다. 봄기운은 언제쯤 느낄 수 있을까. 봄소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막상 봄이 다가오면 가는 겨울이 아쉬워지는 법. 다 가기 전에 겨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여행지를 골라봤다. 무심하게 가는 겨울을 ‘즐거운 추억의 시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곳들이다. 물 좋고 맛 좋은 경북 울진 쾌적한 가족온천… 제철 대게도 ◇대게 맛보고 온천욕…경북 울진 겨울 대게 철을 맞아 경북 울진 후포항은 종일 분주하다..

풍류, 술, 멋 2023.02.03

[조용헌의 영지순례] 철의 손가락이 지키는 요새 ,지리산 검각(劍閣)

당취(黨聚)가 있었다. ‘땡추’의 어원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승려들의 지하비밀 조직을 가리킨다. 왜 머리 깎은 불교의 승려가 비밀조직을 만들었나? 조선조의 유교체제에 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는 승려가 브라만 계급, 즉 성직자 계급으로 대접받다가 조선에 들어와서 하층민 신분으로 전락하였다. 푸대접을 견디지 못한 승려들은 조선왕조가 들어서자마자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가장 강성 승려들이 결성한 단체가 금강산 당취이다. 100년 정도 더 조선 유교체제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결성한 당취가 지리산 당취이다. 그리고 묘향산 당취가 있다. 이북 지역의 승려그룹들이 결성한 것이 묘향산 당취다. 당취는 육식도 하고 때로는 머리도 기르고 다녔다. 악질로 소문난 양반이나 부자는 산..

풍류, 술, 멋 2023.01.30

[조용헌의 영지순례] 일본 침몰 예언한 탄허 스님 생가에 가보니

기후변화의 원인을 과도한 탄소배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탄소배출과는 다른 맥락에서 원인을 생각하는 노선도 있다. 19세기 말엽부터 한국에서 시작된 거대담론인 후천개벽설이 그것이다. 후천개벽이 되니까 기후변화도 동반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관점은 20세기에 들어와 불교계의 탄허 스님(呑虛·1913~1983)이 주장하였다. 스님이 1983년에 돌아가셨으니까 벌써 40년이나 되었다. 탄허는 1970년대 후반쯤에도 일본 열도가 물에 잠겨 침몰한다는 예언을 하였다. 당시에는 너무도 황당한 예언으로 느껴져서 ‘선데이서울’ 같은 잡지에서 대중적 흥밋거리 수준에서 다루었다. 어떻게 일본이 침몰한단 말인가? 그게 가능한 말인가? 탄허가 일본 침몰을 예언한 이론적 근거는 바로 ‘정역(正易..

풍류, 술, 멋 2023.01.19

[조용헌의 영지순례] 지리산의 3대 전설 우천 허만수가 멈춘 곳

지리산의 전설이 3명 있다. 고운 최치원, 남명 조식, 그리고 우천(宇天) 허만수(許萬壽·1916~1976)다. 신라 말기의 인물인 최치원은 지리산의 신선이 된 인물이다. 조식은 조선 4대 학파 가운데 하나인 남명학파의 수장이다. 현대의 인물인 우천 허만수는 이들에 필적할 만한 업적이나 내공을 갖고 있을까? 최치원과 남명에게 비유하는 것은 좀 과대포장 아닌가? 하지만 21세기 지리산을 좋아하고 주말에 시간을 내서 지리산을 등산하는 등산 매니아들에게는 아득한 시대의 전설인 고운이나 남명보다는 우천 허만수가 훨씬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인데 처자식을 버리고 지리산에 들어왔다는 사실도 남다르다. 그는 지리산에서 춥고, 배고프고, 고독을 겪으면서도 입산(入山) 생활을 더 높은 가치로 여겼다..

풍류, 술, 멋 2023.01.13

100년 성당·금강 가르는 철교… 밤이면 더 그림같은 도시

충남 공주의 근대건축 중에서 미감이 단연 돋보이는 공주 중동성당.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붉은 벽돌로 쌓은 외벽이 인상적이다. 서울 약현성당을 모델로 지어졌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백제를 지우고 본 공주 공주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공주는 ‘좋은 여행지’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이즈’ 때문입니다. 공주야말로 ‘여행하기 딱 알맞은’ 크기의 도시입니다. 금강의 물길이 도시를 관통해 확장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근대 이후 공주 발전을 가로막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결함이 곧 아름다운 강을 끼고 있는 작고 단단하면서 품격이 있는 문화 도시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공주라면 백제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이번에는 백제를 지워버..

풍류, 술, 멋 2023.01.13

천년의 고도에서… 신년의 복을 빌다

경주 봉길리 앞바다의 대왕암은 죽어서 용이 되고자 했던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 다른 일출명소에서는 느낄 수 없는 비장미 넘치는 기운이 느껴지는 이유다. 대왕암 뒤의 구름띠 위로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모습. 겨울 일출 무렵의 대왕암의 바다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갈매기떼가 몰려든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간절한 희망의 여정… 경주 ‘소원 명소’ 통일신라 꿈 스민 불국사 나한전 주변에는 수많은 돌탑 추녀 위까지 정성껏 쌓아올려 극락전 황금돼지상 ‘반들반들’ ‘쓰다듬은 뒤 로또 1등’ 일화도 선덕여왕이 만든 분황사 ‘향기로운 임금의 절’ 이란 뜻 눈 먼 아이 안고 와 빌었더니 시력찾게 됐다는 전설깃들어 장엄한 일출 만나는 대왕암 삼국통일 이룬 문무왕 수중릉 영험한 기운에 한달 내내 붐벼 고즈넉함 원할땐 ‘..

풍류, 술, 멋 2023.01.06

[조용헌의 영지순례]도선국사의 공부터, 또아리 튼 구렁이가 머리 맡에

전남 광양의 백운산. 해발 1200m급이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이 바다를 마주보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뭉친 지점이다. 필자가 백운산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도선국사가 죽을 때까지 머물렀던 산이라는 점 때문이다. 한국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도선국사는 왜 백운산에서 인생 후반부를 거의 보냈던 것일까. 도선은 35년간 백운산 옥룡사에서 보냈다. 70대 초반에 죽었다고 보면 35세 이후로 백운산에서 살았던 것이다. 풍수적인 이유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풍수의 대가가 임종을 맞이했던 산. 삼복더위가 확실하게 물러나간 10월 초, 백운산을 수백 번 넘게 오르내렸던 전문가 정다임 작가의 안내를 받아 백운산 900m 해발에 위치한 백운사(白雲寺)로 갔다. 산 밑에서 올라가는데 산 전체에 운무가 가득하다. “운무가 이..

풍류, 술, 멋 2023.01.06

[조용헌의 영지순례] 뱃길 밝혀 준 ‘神의 산’ 월출산의 바위 기운이 뭉친 곳

전라도는 무엇인가? 전라도의 기질은 무엇인가? 이는 나의 오래된 화두였다. 선가(禪家)의 화두라는 게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듯이, 이 화두도 쉽게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점수돈오(漸修頓悟)의 길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공부해 나가다가 자료와 지식이 쌓이면 어느 순간에 깨달음이 폭발하리라고 짐작해 본다. 전라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료가 음식 맛이 아닌가 싶다. 돌비석에 새긴 글씨는 세월이 지나면 인멸되고 마모되어 알아볼 수 없지만 인간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음식 맛은 인멸되지 않는다. 아직도 이어지는 게 전라도의 맛이다. 돌아다녀 보니 전라도의 개성 있는 음식은 목포, 영암, 영산강 하구, 신안군 일대의 섬에 계승되고 있었다. 서해안에서 남해안으로 꺾어지는 해안가에 전라도의 ..

풍류, 술, 멋 2023.01.02

[조용헌의 영지 순례] 호리병 구멍을 통해 들어가면…방호산 법계사

“왜 지리산을 방호산(方壺山)이라고 하느냐? ‘壺(호)’는 호리병이라는 뜻이다. 방호산은 ‘사방이 호리병이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왜 지리산을 호리병에다가 빗대었을까. 물론 도가에서 은둔하는 별천지를 호리병에 비유하는 전통이 있다. 호리병은 세속과 격리된 또 다른 세계를 상징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리산의 산세를 호리병으로 볼 수 있는 것인가?” 지리산 치밭목 산장에 30년간 상주하면서 지리산의 역사와 유적, 골짜기와 봉우리, 샘물 등을 환히 꿰고 있는 민병태(68) 선생은 필자의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었다. “호리병이라고 충분히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지리산은 외부에서 접근할 때 골짜기를 통해서 접근하도록 되어 있는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하동 쪽의 화개 골짜기, 남원 쪽의 뱀사골, 함양의..

풍류, 술, 멋 2022.12.29

[조용헌의 영지 순례] 21세기에도 살아남은 ‘평창동 보현 산신각’의 영험

서울은 글로벌 도시이다. 첨단문명이 작동하는 대도시인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는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이 유지되고 있다. 평창동의 보현산신각이 그것이다. 이 산신각은 불교사찰의 부속 건물이 아니다. 산신 그 자체만 독존으로 모셔져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보현(普賢)이라는 이름은 북한산의 보현봉(普賢峰) 자락이 내려온 곳에 자리 잡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21세기에도 이 산신각은 기능이 작동되고 있다. 박물관 유물이 아니고 주변의 동네 사람들과 타지의 신봉자들에 의하여 아직도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 아직도 유지 보수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영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영험이 없으면 바로 퇴출되기 마련이다. 빌어서 민원사항이 성취되는 영험이야말로 21세기까지 서울이라는 대도..

풍류, 술, 멋 2022.12.23

겨울 복판 남도의 섬… 가는 해를 재촉하는 ‘애기동백 붉은 절정’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전남 신안의 섬… 압해도·암태도·자은도·팔금도·안좌도 압해도 ‘천사섬 분재정원’ 산다화 2만여 그루 군락지 겨울 추위 시작되며 ‘만개’ 실내온실엔 ‘2000살 주목’ 힘찬 기운에 영험함이 물씬 ‘저녁노을미술관’엔 낭만이 천사대교 건너 네개의 섬 섬 전체가 백사장인 자은도 아늑한 해변서 ‘조용한 휴식’ 암태도 승봉산 바다조망 일품 ‘추상미술’ 김환기 고향 안좌도 내년 하반기엔 ‘플로팅 뮤지엄’ 신안=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기습적인 한파와 폭설로 온통 세상이 짱짱하게 얼어붙었습니다. 한겨울에도 초록 덩굴을 휘감은 늘 푸른 상록림이 자라는 남도의 섬도 이번 추위를 비껴가진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어디 차가운 직선의 도시만 하겠습니까. 남도의 섬사람들은..

풍류, 술, 멋 2022.12.23

대게 살이 차오른다, 가자!… 박하 향 가득한 바다를 맛보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없는 게 없는 겨울 명소 경북 울진 먹는 맛 제철 대게, 설날 무렵 가장 좋아 후포항 홍게, 대게 못지 않은 맛 보는 맛 망양정·월송정 ‘관동팔경’ 두곳 언덕·해변 옮겨 지어 정취 물씬 달리는 맛 바다·갯바위 사이 ‘스카이레일’ 한번은 꼭 타봐야 하는 새 명소 걷는 맛 매화면 ‘이현세 만화거리’ 1㎞ 공포의 외인구단 245컷 그려져 드물지만 ‘장소’가 저절로 여행을 이끄는 곳이 있습니다. 고르게 다양한 명소를 갖고 있는 건 물론이고, 즐거움의 종류까지도 균형이 잡혀 있는 곳들입니다. 기왕에 알려진 명소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그렇게 다니는 게 뭐 하나 부족하다 느껴지지 않는 곳. 경북 울진이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입니다. 이만큼 다양한 매력의 여행지가 또 있을까요. 바다와..

풍류, 술, 멋 2022.12.17

[ 조용헌의 영지 순례 ]30개의 굴을 거느린 ‘늙은 노장’ 지리산 노장대

결국(結局)이란 단어가 있다. ‘마지막에 이르러’라는 뜻이다. 이건 원래 풍수 용어이다. 산줄기의 마지막 부분에 정기가 뭉쳐서 국(터)을 만든다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에너지가 집결되어서 자리 또는 명당을 만든다. 그러니까 산꼭대기에는 명당이 드물다는 이야기이다. 호박이 가지 끝에 열매를 맺듯이 풍수에서는 산줄기의 아래쪽 끝자락에 제대로 된 터가 형성된다고 본다. 이런 ‘결국’의 관점에서 산을 바라다보면 산의 정상보다는 낮은 쪽의 끝자락을 유심히 보게 된다. 일반 등산객과 풍수가의 산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결국의 관점에서 지리산 끝자락을 보면 눈에 들어오는 암봉이 있다. 바로 노장대(老將臺)이다. 커다란 바위군이 마치 늙은 장수처럼 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같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서 지리..

풍류, 술, 멋 2022.12.08

[ 조용헌의 영지 순례 ]여수 향일암,이곳에 가면 고민이 사라진다

무속은 모든 종교의 원형이다. 2만~3만년 전의 원시상태에서는 초자연적인 힘을 숭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속이 체계를 갖추고 이론을 정비하면 종교가 된다. 종교의 원료는 무속이다. 무속은 못 배우고 투박하지만 파워가 있다. 제도화된 종교는 영적 파워가 약해진다. 종교가 제도화되고 체계화될수록 영발은 사라진다. 영발이 없는 종교는 식은 감자와 같다. 제도화는 껍데기만 남게 만들 수 있다. 무속은 거친 영발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에게 물질세계 너머의 그 어떤 힘을 느끼게 해준다. 무속을 인수분해하면 세 가지 갈래가 있다. 한민족이 1만년 전부터 신봉해왔던 무속의 삼지창이 칠성, 용왕, 산신이다. 칠성은 하늘의 별을 숭배하는 전통이다. 용왕은 바다와 강, 호수의 신을 가리킨다. 시베리아 바이칼호수의 ..

풍류, 술, 멋 2022.12.08

[조용헌의 영지 순례] 천왕봉 때리는 벼락을 기다린 곳, 지리산 산천재

힘이 있을 때 산에 들어가서 사는 게 좋다. 되도록 젊었을 때 입산해서 사는 게 어떨까 싶다. 힘이 쇠약해지면 산에서 사는 게 힘들다. 우선 일상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는 산중턱에 위치한 거처에까지 올라 다니는 게 힘이 들었다. 물건을 하나 사는 것도 그렇고, 일상생활이 산속에 살면 불편하다. 힘 떨어지면 도시에 사는 게 좋다고 본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도시에서 약간 부대끼면서 사는 것도 괜찮다. 도시의 대학 근처에서 사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식사하고 대학 캠퍼스 산책하는 것도 좋고, 각종 문화 행사도 구경하고, 젊은 애들 대학촌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면 기를 받는다. 젊어서는 산이 좋고 나이 들면 도시가 좋다. 이게 일반적인 공식이지만 조선 중기의 남명(南冥) 조..

풍류, 술, 멋 2022.12.08

[조용헌의 영지순례] 2000년 족보 여산신이 지리산 법계사에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의 7부 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법계사. 이 법계사의 산신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다. 여산신이다. 그 표시가 절에 들어가는 입구의 기둥에 그려져 있다. ‘법계사’라고 쓴 현판을 걸어놓은 입구의 양쪽 기둥에 하얀 옷을 입은 여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왼쪽 기둥에 흰옷 입은 중년 여자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 기둥에는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법계사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 두 기둥에 그려져 있는 여산신과 호랑이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보통 산신은 흰 수염이 난 할아버지의 모습인데 여기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중년 여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 중년 여인이 산신이라는 표시를 하기 위해서 오른쪽에 호랑이를 그려 놓았다고 본다. 필자 눈에는 이 여산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원..

풍류, 술, 멋 2022.12.08

[조용헌의 영지순례] 공황장애? 번아웃 직장인? 용이 노는 물을 찾아라

영지순례를 연재하면서 지리산의 이곳저곳을 많이 소개하는 이유는 ‘산중(山中)의 산(山)’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 가운데 지리산만큼 깊고 그윽한 맛을 주는 산은 없다. 도시의 시멘트 건물에서 월급 몇푼 받는다고 붙잡혀 노비처럼 살고 있는 장삼이사들에게 무위(無爲)의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는 산이다. 출퇴근이 없고 노비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 필자 같은 문필가는 지리산을 어떻게 보는가? 박물관이요 이야기책으로 본다. 가로 40㎞, 세로 30㎞의 뚜껑 없는 박물관이다. 골짜기마다 주저리주저리 신화, 전설, 구전이 박혀 있고 매달려 있다. 그런가 하면 바위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영발이 뿜어져 나온다. 세상에 이만한 놀이터가 없다. 이야기와 영발. 나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이야기와 영발이다. 이야기에서 깨달음을 얻..

풍류, 술, 멋 2022.12.08

[ 조용헌의 영지 순례 ]판자 한 장의 기적이... 원효대사의 척판암

척판암(擲板庵)이라는 뜻은? ‘擲(척)’은 던지다라는 뜻이다. 판자를 던졌다라는 의미이다. 참 희한한 이름의 암자이다. 무슨 판자를 던졌길래 이런 명칭을 가진 암자가 되었을까? 그 주인공은 바로 원효대사이다. 원효대사가 이 암자에서 중국 쪽으로 판때기를 던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효대사. 한국에서 지난 2000년 동안 배출된 인물 중에서 손꼽을 만한 인물이 바로 원효이다. 어떤 점 때문에? 바로 ‘영발’과 ‘학문’이라는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갖추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도력을 지녔던 대도인이면서도 불교의 깊이 있는 저술들을 남겼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겸비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보통 영발이 있으면 책을 쓰지 못한다. 영발이 있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세밀하게 추론하는 사유구조를 가지..

풍류, 술, 멋 2022.12.08

낭만 가득 겨울바다와 향긋한 커피… 이 조합은 못 참지!

■ 박경일기자의 여행 -‘소박한 감성’ 카페 in 동해 촛대바위 · 무릉계곡 명소 찍고 바닷바람 쐰 뒤 카페서 ‘쉼표’ 강릉 · 속초 · 양양과 달리 ‘차분’ 초대형 베이커리 카페 없고 작은 공간 + 레트로 감성 ‘평온’ 묵호항 조망 10점 만점 ‘논골’ 평균 69세 바리스타 ‘묵꼬양’ 바다에 닿을듯한 루프톱 ‘세븐’ 묵호역 ‘연필 뮤지엄’ 도 가볼만 전세계 3000여 자루 수집 · 전시 강원도 동해는 작습니다. 한자로 똑같이 ‘東海’라고 쓰지만, 여기서 말하는 동해는 ‘동쪽 바다’가 아니라 ‘동해시’를 말합니다. 면적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보면, 강원도 18개 지자체 중 17등이지요. 면적이 가장 넓은 홍천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그런데 동해는 강원지역 기초지자체 중 인구순위 4위입니다. 원..

풍류, 술, 멋 2022.12.08

30m 높이 ‘수직 단풍’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초겨울, 대전의 숨은 매력 장태산 휴양림 고깔처럼 솟은 메타세쿼이아 15m 허공에 길이 200m 덱 …새처럼 나는 느낌 상소동 산림욕장 곳곳의 400여개 돌탑 ‘이국적’ ‘대전의 앙코르와트’ 별명… 유아숲 체험장으로도 유명 가로수 골목길 옛 충남지사 관사촌 ‘테미오래’ 다다미방부터 붙박이장까지 ‘일본풍’ 느낌 그대로 1932년 지은 충남도청, 근현대사전시관 변신 우체국은 공유책방…으능정이 사거리엔 미술창작센터 대전을 두고 흔히 ‘노잼 도시’라 부릅니다. 재미는 대개 ‘비(非) 일상성’에서 나오는 법. 일상에 속한 익숙한 공간은 대개 지루합니다. 하지만 같은 공간도, 보는 시선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람들의 생활이 다 그렇듯 도시도 다들 비슷비슷해 보입니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

풍류, 술, 멋 2022.12.04

땡볕 막은 운동장 · 해 품은 요양원 ‘공간 쓰임’ 만큼 돋보인 ‘마음 씀’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스산한 초겨울, 무주로 떠나는 건축기행 봉하마을 사저 지은 고 정기용 군민 복지 애쓴 전 군수와 투합 서른 개 넘는 공공건축물 건립 늘 그늘 그득한 등나무 운동장 흙으로 빚어낸 진도리 마을회관 사는 사람들 편의에 맞춰 설계 문화관 지하주차장 대신 수영장 촌구석에 예산낭비 비아냥에도 완공 후 가장 인기 있는 시설로 면사무소 한쪽 잘라내 목욕탕 버스 정류소엔 풍경 담은 액자 곳곳에 마음 움직일 공간 가득 겨울에 여행지를 고르는 건 쉽잖은 일입니다. 자연경관이 어디든 다 황량해지는 때라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즈음은 여행에 대한 욕망이 줄어드는 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때보다 지금처럼 스산한 초겨울이 훨씬 더 좋은 여행지도 있습니다. 다른 계절의 화려한 ..

풍류, 술, 멋 2022.11.28

금강산 가는 길에 만난 절경… 정선 붓을 들고, 석봉 시를 읊다

■ 박경일 기자의 여행 - 명당 · 명승의 땅 포천 영평 8경 한탄강변 볏짚처럼 누운 ‘화적연’… 조선시대 기우제 지냈던 풍년 · 안녕의 상징 벼랑위 정자 ‘금수정’· 병풍 바위 ‘창옥병’… 박제가 등 유명 문인들 곳곳에 글 남겨 경기 포천에는 ‘경흥대로’가 지난다. 경흥대로는 한양에서 출발해 함경북도 경흥(慶興)까지 이어주는 길이다. ‘동국여지도’를 완성한 300년 전의 지리학자 여암 신경준. 그는 경흥대로를 ‘조선의 6대 대로(大路)’ 중 두 번째로 분류했다. 그만큼 큰길이었다. 서울에서 수유리, 양주, 포천을 지나 김화까지, 거기서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 땅인 강원도 회양, 함경남도 안변, 함흥, 함경북도 명천을 거쳐 경흥과 서수라까지 경흥대로가 이어졌다. 포천시청 앞을 지나 도시 중심부를 관통하..

풍류, 술, 멋 2022.11.18

‘심심했던 호찌민’ 옆 바닷가… ‘숨어있던 보석 호짬’ 열렸다

■ 박경일 기자의 여행 - 한국인이 사랑하는 여행지 베트남 (1) 휴양도시 호짬·붕따우 - 동남부 휴양지 호짬 호찌민에서 125㎞ 한적한 마을 몇 년 전부터 대형리조트 들어서 태국으로 치면 방콕·파타야 관계 리조트 밖은 ‘절간’처럼 고요해 오롯이 ‘리조트 라이프’에 집중 호짬·붕따우(베트남)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베트남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여행지입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한 해 동안 베트남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는 400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 무렵 인천공항에서는 하루 90여 편 비행기가 베트남으로 향했습니다. 베트남의 인기를 견인한 건 다낭이었습니다. 낮은 항공요금에다 저렴한 물가, 다양한 볼거리를 찾아 관광객이 몰려들자 ‘경기도 다낭시’란 우스갯소..

풍류, 술, 멋 2022.10.27

붉게 타는 메밀꽃·솜털 반짝이는 억새… 가을, 보석같은 ‘꽃’의 바다에 빠지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만추’ 절정 맞은 꽃밭 영월·정선 - 영월 동강 변 메밀꽃밭 청보리·코스모스 나던 자리에 ‘붉은메밀’ 일본 종자 심어 대박 코로나에도 축제 인산인해… ‘인생사진’ 건지려는 연인들 가득 영월·정선=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어느 계절의 것이든 꽃은 다 아름답지요. 반갑기로는 봄입니다만, 못지않게 다채로운 꽃을 볼 수 있을 때가 가을입니다. 봄날에 매화와 산수유, 벚꽃과 유채꽃이 있다면, 가을에는 국화와 코스모스, 쑥부쟁이와 벌개미취가 있습니다. 메밀도 억새도 가을에 꽃이 핍니다. 가을이라면 붉고 노랗게 물드는 단풍부터 떠올리지만, 차고 맑은 대기 속에서 이슬과 함께 피어나는 가을꽃의 정취도 근사합니다. 단풍의 화려함 뒤에는 스러져가는 것에 대한 아..

풍류, 술, 멋 2022.10.20

율곡이 반했던 ‘작은 금강산’…자연에서 세상 이치를 보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오대산 소금강 1569 율곡 遊山길 단풍이 미처 내려오지 않은 오대산 소금강에 다녀왔습니다. 소금강 계곡의 차고 맑은 물길을 따라가는 숲길을 걸었습니다. 이 길을 450여 년 전에 율곡이 걸었습니다. 그때 소금강은 푸른 학이 산다고 해서 ‘청학산’이라 불렀다지요. 율곡이 탄성과 감회로 적은 청학산 산행기가 지금까지 전합니다. 옛 유학자들은 자연에서 삶의 도리나 세상의 이치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율곡의 문장을 따라 걷는 길은, 자연을 걷는 길이되 사유의 길이기도 합니다. 율곡의 뒤를 따라 수많은 선비가 소금강을 드나들었던 이유입니다. 소금강 탐방로 구간 중 구룡폭포까지 왕복 6.2㎞의 ‘1569 율곡 유산길’은 ‘길이 역사가 되고, 자연이 인문이 되는 길’입니다. 강릉 = 글·사..

풍류, 술, 멋 202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