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1456

통영 '비진도' 두 마을 한바퀴

비진도 바깥섬의 선유봉 아래 미인전망대. 해발 300m 남짓인 전망대에 오르면 비진도 안섬으로 이어지는 백사장과 그 주변의 물색이 다 내려다보인다. 남국의 휴양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바다색이 이국적이다. # 그 섬에서 보석을 떠올리는 이유 섬 이름 ‘비진도’를 두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히 ‘보배(珍·진)에 비(比)할 만한 섬’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는 얘기도 있고, 이순신 장군이 이 섬 앞바다에서 왜적과 견줘 승리한 보배스러운 곳이라 해서 이름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다. 비진도를 소개하는 글에는 이런 얘기들이 빠지지 않는다. 예로부터 섬에 미인이 많이 살았는데, 미인(美人)이 일본어로 ‘비진(びじん)’이라, 거기서 지명 유래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다 근거 없는 ..

풍류, 술, 멋 2022.05.27

'다스리던 자리' 청와대를 들여다 보다

청와대는 백악산(북악산)에 등을 딱 대고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진 서울 도심을 한눈에 바라보는 자리에 있다. 늘 ‘남에서 북으로’ 보는 시선 방향이 익숙했는데, 청와대에 들어가면 서울을 거꾸로 ‘북에서 남으로’ 보게 된다. 시선의 방향이 바뀌니 늘 보던 것들이 반대쪽에 있다. 오른쪽에 있던 것이 왼쪽에, 왼쪽에 있던 것이 오른쪽에 있다. 이게 다스리는 자리에서 보는 서울의 풍경이었을까. 청와대 본관 너머로 경복궁과 광화문 네거리가 보인다. ‘남에서 북으로’ 보던 서울, 靑 안에선 ‘북에서 남으로’ 보게 돼 달라진 시선 방향에 좌우 반전된 ‘낯선 서울 풍경’ 들어와 이번 완전개방으로 열린 백악산 구간 … 산행로 따라 펼쳐진 경관 장쾌 대통령 기념식수 침엽수 많아 … ‘낙엽 우수수’ 활엽수는 꺼린 탓일 터 경..

풍류, 술, 멋 2022.05.21

'건축'이 예술이 된 섬 제주

제주 한라산 중산간의 롯데아트빌라스 전경. 세계적인 명성의 건축가들이 마치 경연을 하듯 지어낸 빌라가 가득한 타운하우스다. 굴뚝처럼 생긴 구조물을 얹은 직육면체 빌라는 승효상 건축가가, 그 너머 흰색 곡선 모양으로 보이는 건물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것이다. 코로나19 와중에 두드러졌던 건 이른바 ‘가치소비’의 확산입니다. 가치소비란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는 제품에 대해 과감하게 소비하는 패턴을 말합니다. 이게 과소비나 사치와 다른 건, 무차별하게 고가의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제품에 대해선 저렴하고 실속있는 것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에만 골라 돈을 쓰는 일. 이게 가치소비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일상생활에서도 그랬지만, 여행에서의 가치소비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소..

풍류, 술, 멋 2022.05.13

가야산품은 '성주'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능선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가야산 만물상의 모습. 만물상 코스는 난도 최상의 가파르고 험준한 길이지만, 바위 군(群)이 빚어내는 빼어난 풍광이 몰아쉬는 가쁜 숨쯤은 잊게 만든다. # 성난 짐승의 갈기…가야산 암릉 경북 성주를 대표하는 건 단연 ‘가야산’이다. 가야산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산이 또 있을까. 성난 짐승의 갈기처럼 기암이 길게 이어지는 가야산 만물상 능선에 한 번이라도 올라 본 사람들은 가야산을 쉽게 잊을 수 없다. 가야산을 오를 때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언제고 다시 한 번 와야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거기 있으면서도, 그곳에 다시 와보기를 꿈꾸는’ 정도라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조선 시대 인문지리서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가야산의 만물상을 ‘석화(石火)’..

풍류, 술, 멋 2022.04.29

다시 시작된 여행 ...그리웠던 그 섬 흑산도

바다를 끼고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서 당도하는 흑산도 남쪽의 사리마을. 200여 년 전쯤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손암 정약전이 유배 와서 머물렀던 마을이다. 정약전은 여기서 제자를 가르치고 ‘자산어보’를 썼다. 대중가요의 힘은 ‘공감’에서 나온다. 공감의 요체는 실재성(實在性)이다. 실재성이란 ‘진짜 있는 일처럼’ 꾸미는 것. 누구나 겪었음 직한 사랑과 이별, 아픔을 주로 다루고 제목이나 가사에 진짜 지명을 쓰는 이유도 그래서다. 목포의 눈물, 대전 블루스, 안동역에서, 영일만 친구…. 그런데 이렇게 가져다 쓴 지명은 때로 거꾸로 지역을 이미지화한다. 흑산도에 막 도착해서 배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건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다. 쾌속선이 들고날 때면 예리항 선착장에는 어김없이 이 노래가 ..

풍류, 술, 멋 2022.04.22

다시 시작된 여행...그리웠던 그 섬 홍도

홍도 남쪽의 양산봉 방향에서 바라본 홍도 전경. 가운데 잘록한 부분에 들어선 마을이 여객선이 닿는 홍도 1구 마을이다. 마을 너머로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가 깃대봉이다. 코로나 탓 관광객 발걸음 끊겨 2년간 ‘텅빈 섬’ 으로 다시 홍도 유람선 뜨고 찾아오는 손님에 활기 돌아 침대있는 숙소 전무… 30년전 유행했던 ‘나이트’도 영업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투자 쉽지 않아 변화 더뎌 유람선 타고 한바퀴 돌고 트레킹하며 ‘속살’ 만끽 韓 100대 명산 깃대봉·90년 넘은 등대도 들러야 여행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져 되도록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전남 신안의 홍도와 흑산도입니다. 더 먼 섬도 있긴 하지만 대중적 여행지로는 가장 먼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리가 멀고 바닷길이 거칠어 홍도와 흑..

풍류, 술, 멋 2022.04.15

원불교 성지 '전남 영광'

바다를 끼고 달리는 전남 영광의 백수해안도로는 길 전체가 해넘이 조망대나 다름없다. 백수해안도로 노을 광장에 설치한 스카이워크 끝에 괭이갈매기를 형상화했다는 날개 모양의 조형물 뒤로 해가 붉게 지고 있다. 종교를 주제로 삼은 여행 이야기이지만, 믿음이 없이 따라와도 무관합니다. 유럽의 고색창연한 성당이나 내로라하는 이름난 절집을 신도들만 찾아가는 건 아니니까요. 믿음과 신앙으로 세운 종교 성지에서는, 성스러운 세상과 내가 사는 일상의 세상이 교유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종교인들에게 순례는 신앙 대상과의 합일을 기원하는 일이라면, 믿지 않는 이들에게 순례는 삶의 가치를 묻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4대 종교 유적지가 있는 전남 영광에서 여행 목적지로 익숙한 절집과 성당, 교회 말고, 다소 낯선 원불교의 성..

풍류, 술, 멋 2022.04.09

'부산 기장' 다양한 매력

빼어난 경관의 해안에 자리 잡은 해동용궁사는 부산 기장을 대표하는 사찰이자 관광 명소다. 해동용궁사는 개인 사찰이었는데 주지 정암 스님이 지난해 9월 절집 전체를 화엄사에 기부해 전남 구례의 화엄사 말사가 됐다. 경상도의 사찰이 전라도 사찰의 말사가 된 드문 경우다. # 상전벽해에 들어선 테마파크 부산 기장에는 ‘오시리아 관광단지’가 있다. 관광과 숙박, 레저 등을 한곳에서 모아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개발하고 있는 부산 외곽의 복합관광단지다. 본래 ‘동부산관광단지’라는 이름이었다가, 관광단지 통합브랜드 ‘오시리아’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오시리아란 이름에 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 듯하지만, 인근의 바닷가 명승인 ‘오랑대’와 ‘시랑대’에서 앞글자를 따고, 부산으로 ‘오시라’는 중의적 의미를 더해서 ..

풍류, 술, 멋 2022.04.01

대형산불 이후... 상처 보듬는 삼척 여행

준경묘의 금강송이 붉은 수피를 드러내고 있다. 준경묘 뒤쪽에는 황장산 능선의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이 길에 ‘대왕소나무’가 있다고 해서 찾아들어 갔는데, 발견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대왕소나무란 한 그루 나무가 아닌 일대의 금강송 거목 군락을 통칭해 부르는 이름이었다. 강원과 경북 동해안 일대를 덮친 대형산불이 꺼진 지 보름 남짓.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거대한 흉터로 남았습니다. 며칠을 불탔던 숲은 잿더미가 됐고, 불이 스쳐 지나간 산지의 소나무들도 푸르던 이파리가 하나둘 벌겋게 변색돼 가고 있었습니다. 숯덩이로 변한 건 산뿐만이 아닙니다. 산불 이후 관광객 발길이 뚝 끊기면서 주민들의 마음도 타들어 갑니다. 코로나19로 최근 몇 년 사이 관광객이 확 줄어들었는데, 산불 이후로 거기..

풍류, 술, 멋 2022.03.25

[조용헌의 영지 순례]도인도 혁명거사도 이곳으로… 지리산 연곡사

[조용헌의 영지 순례]도인도 혁명거사도 이곳으로… 지리산 연곡사 ▲ 연곡사 법당. 뒷산이 제비가 날개를 편 형상이다. 조선시대 승려들은 묘한 위치였다. 삼국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승려는 학자 계급이자 브라만 계급이었다. 성직자로 대접받던 계급 아닌가. 그런데 조선시대로 들어와서 갑자기 천민으로 강등되었다. 팔천(八賤) 중의 하나였다. 기생, 상여꾼, 백정, 노비와 같은 8가지 천민 중 하나에 속했다. 이런 대접이 있나! 그런데 임진왜란과 같은 커다란 전쟁이 일어나자 최일선에서 나라를 지키는 정규군으로 활약하였다. 핍박받던 천민이 무슨 지킬 나라가 있다고 전쟁터에 나가서 자기 목숨을 바치나. 국방의 의무는 그 체제에서 가장 혜택받던 계급이 앞장서는 게 세계사적인 상식이다. 더군다나 불교는 불살생..

풍류, 술, 멋 2022.03.24

대구로 떠나는 '탐매(耽梅)기행'

남평문씨 집성촌이자 전통마을인 대구 달성의 인흥마을 앞마당에 가득 피어난 홍매화. 폭죽 터지듯 한꺼번에 핀 매화의 분홍빛이 더없이 화사하다. 숨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하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위태롭게 건너온 시간이 3년. 그런데 그 보람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와르르 쏟아지는 코로나19 확진자 사태 속에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3년째 봄을 맞는 처지라니요…. 이런 상황이니 봄이 잘 보일 리 없습니다. 봄꽃 개화소식에 두근거리지도 않고 흥이 안 났던 건 그래서 당연한 일이었나 봅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맞서 싸울 수단 하나 없이 그냥 벌판에 버려진 듯한 무력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무력감 때문에 가능해진 것도 있긴 합니다. 다름 아닌 ‘들뜨지 않고 봄꽃과 마주하기’입니다. 인적..

풍류, 술, 멋 2022.03.17

제주 예술여행...톨까니 해변에 들어선 '훈데르트 파크'

뒤로 우도봉이 보이는 해안가에 자리 잡은 제주 우도의 훈데르트바서 파크 전경. 오른쪽 양파 모양의 돔이 있는 곳이 파크의 중심인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이고, 길게 늘어선 붉은 지붕의 건물이 콘도미니엄인 훈데르트바서 힐즈다. 성산포에서 뜨는 우도행 배가 닿는 천진항에서 가깝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오스트리아의 화가라면 보통 여기까지만 안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그렇다. 여기다가 한 명의 이름을 더 보탠다.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자화상·오른쪽 작은 사진). 그 이름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20세기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가 세 명’의 명단이 완성된다. 훈데르트바서는 화가 겸 건축가다. 강렬한 색상과 독특한 미감, 그리고 번득이는 창의로 캔버스와 시멘트의 영역을 넘나들었다. 이뿐만 아니다. 미..

풍류, 술, 멋 2022.03.12

'평화*생태의 땅'으로 거듭나는 강원 화천

저수량이 10억t에 달해 ‘내륙의 바다’라 불리는 강원 화천의 파로호 하류 쪽 전경. 호수의 물길 아래에 화천댐이 보인다. 오른쪽 뒤쪽으로 부채처럼 산자락 너머 민통선 지역에 중동부 전선의 요충지인 백암산이 있다. 강원 화천의 민간인 통제선 너머의 백암산에다 케이블카를 놓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게 벌써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중동부 최전방 전선의 요충지. 험준하기로 이름난 산에다가 관광객을 위한 케이블카를 놓는다니…. 뜬소문이란 얘기까지 나돌았고, 공사를 시작했다가 곧 중단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완공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백암산 케이블카가 자그마치 16년 만에 마침내 완성됐습니다. 이르면 내달 중 본격 운행을 시작할 예정인 케이블카를 타고 백암산 정상 전망대에 다녀왔습니다. # 초연이 쓸고 ..

풍류, 술, 멋 2022.03.04

[조용헌의 영지 순례]지중해 풍광 부럽지 않은 전남 신안군 암태도의 노만사

[조용헌의 영지 순례]지중해 풍광 부럽지 않은 전남 신안군 암태도의 노만사 ▲ 신안군 암태도 노만사에서 자라고 있는 희귀한 나무 ‘송악’. 그리스에 가 보니까 섬나라였다. 볼 만한 것은 섬에 있었다. 산토리니, 여기는 푸른색과 흰색의 페인트로 지붕들을 발라 놓아서 볼 만하였지만 사실은 아주 황량한 섬이었다. 크레타는 이집트의 고대 문화가 그리스로 건너가는 중간기착지로서의 의미가 있는 섬이었다. 미코노스는 가게의 기념품이 다 고급스럽고 쓸 만한 물건들이어서 약간 의외였는데 알고 보니 게이(gay)들이 선호하는 섬이었다. 동성애자들이 자식도 없고 딱히 돈 쓸 데가 없으니 비싼 물건을 많이 사기 때문이란다. 그리스는 육지보다 바다에서 돈이 나왔고 정보가 나왔다. 그러니 뱃사람이 잘사는 나라였다. 리더십도 ‘십..

풍류, 술, 멋 2022.02.28

바다사진 찍기 좋은 '포항'

포항 북구 환호공원에 들어선 ‘스페이스 워크’. 포스코가 공공미술사업의 일환으로 세계적인 명성의 독일 부부 작가에게 설계를 의뢰해 제작한 조형물이다. # 거친 바다가 있는 드라이브 코스 포항 바다는, 다른 동해안의 바다와 풍경이 사뭇 다르다.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칠 때가 많다. 그런 날이면, 바다는 온통 뜨겁게 끓어 넘치고 해안은 힘찬 파도의 거친 갈기가 남긴 포말로 가득하다. 속초며 강릉 일대의 바다가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라면, 포항의 바다는 근육질의 서사적 분위기에 가깝다. 포항 바다를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포항 북쪽에, 또 하나는 포항 남쪽에. 북쪽의 드라이브 코스는 월포해수욕장에서 칠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이고, 남쪽의 드라이브 코스는 임곡항에서 호미곶..

풍류, 술, 멋 2022.02.25

전남 순천 '매화 기행'

전남 순천 매곡동 김준선 전 순천대 교수 집 개방정원에 피어난 홍매화. 일찌감치 피어난 꽃이 만개로 치달으며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대를 이은 ‘홍매가헌’ 마당 두 그루에 紅梅가 가득 원도심 매곡동에 매화 구경용으로 ‘탐매마을’ 만들어 왕지동 순천복음교회 정원엔 100년 넘은 古梅 38그루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하지만 선암사 ‘선암매’가 첫손 ‘미술 마을 프로젝트’ 금곡동선 흥미진진 골목투어 축구·야구 하던 ‘공마당’의 청수골 둘레길서 옛 정취 300여 동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낙안읍성 밭둑·마당·장독대 곳곳에 매화 피어난 풍경도 일품 매화꽃이 활짝 피었으니 이제 봄입니다. 다시 새순이 돋는 계절의 첫머리에 섰습니다. 전남 순천 원도심의 고즈넉한 주택가 언덕 위에 만개한 두 그루 홍매화 나무로..

풍류, 술, 멋 2022.02.18

전북 군산의 숨은 매력

새만금방조제에서 연륙교를 넘어 고군산군도로 건너가서 섬과 섬을 징검다리처럼 딛고 가는 작은 섬 대장도의 최고봉인 대장봉 정상 전망대 쪽에서 내려다본 모습. 오른쪽으로 보이는 섬이 장자도이고 왼쪽의 큰 섬이 선유도다. 전북 군산은 이제 명실상부한 ‘스테디셀러’ 여행지가 됐습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건축물의 이국적 풍경에 힘입어 매력적인 여행지가 됐습니다. 식민지배의 수탈 공간이, 식민지 시대의 이국적 건물로 여행명소가 된 역설입니다. 군산은 거의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식민지 근대도시의 공간을 복원했습니다만, 한 도시가 특정 시대의 풍경만을 대표 이미지로 갖는다는 건 때로 왜곡과 편견을 만들기도 합니다. 좀 더 다양한 시간의 다채로운 이야기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군산에서 늘 들었던 식민지 시대가..

풍류, 술, 멋 2022.02.11

체험이 여행이 된다... 대전 신성동 마을대학 관광 두레

대전 골목 여행의 명소 중 한 곳인 대동 하늘공원에 올라 내려다본 대전 시내 야경. 하늘공원이 있는 대동은 대전의 오래된 달동네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 골목에는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대전에는 유명한 관광명소가 없어서 오히려 골목과 동네의 작고 소박한 명소가 더 잘 보인다. 앞으로 여행은 어떻게 변할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관람에서 경험으로…’다. 과거에는 유명관광지나 명소가 여행의 중심에 있고, 그 주위에 관광객들이 빙 둘러서는 여행을 했다. 관광지가 구심점이 되는,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는 이른바 ‘구경하는 여행’이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중심이다. 내가 중심이고 여행지의 공간과 사물이 그 주변에 있다. 여행의 중심에 ‘내 시간’과 ‘나의 기분’이 있다. 이제 이름난 관광지에서 똑같은 느낌을 공..

풍류, 술, 멋 2022.02.04

[조용헌의 영지 순례]지리산 최고의 뷰 포인트 ‘금대암’에 몰린 기운

[조용헌의 영지 순례]지리산 최고의 뷰 포인트 ‘금대암’에 몰린 기운 ▲ 금대 나한전 뒤의 바위. 금대 앞으로 지리산 영봉들이 펼쳐져 있다. 지리산에는 여러 개의 대(臺)가 있다. 대는 어떤 곳인가? 땅의 정기가 뭉친 곳이다. 정기가 뭉친 곳에서 도를 닦아야 효과가 있다. 쓰레기나 매립해서 다져진 곳에서는 도통하기 어렵다. 대는 보통 바닥이 바위 암반으로 되어 있고 뒤쪽에도 커다란 바위나 절벽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앞에는 전망이 좋다. 뷰가 탁 트인 곳이 많다. 지리산에는 보는 관점에 따라 8대(臺)를 꼽기도 하고 10대를 꼽기도 한다. “금대, 무주대, 도솔대가 함양군 마천 일대에서 꼽는 3대다”라는 말이 있다. 금대에는 금대암(金臺庵)이 있고, 무주대에는 상무주암이 있고, 도솔대에는 청매 인오선사..

풍류, 술, 멋 2022.01.29

강원도를 8자모양으로 누비는 7개 드라이버길 '네이처로드'

강원네이처로드 5코스 ‘깊은 산 드라이브길’이 끝나는 강원 삼척의 새천년해안도로. 이 길에서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 닿을 듯한 거리에 진청색 바다가 있다. 바다를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야 언제 가도 좋지만, 이쪽 길은 알싸한 박하 향이 느껴지는 겨울의 정취가 으뜸이다. 줄곧 ‘걷기 길’만 만들어졌습니다. 걷는 길이 앞다퉈 놓이면서 여덟 개의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걷기 길이 뒤엉키는 걸 본 적도 있습니다. 아무리 걷기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어디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걷기’로만 할 수 있겠습니까. 걷기가 여행하는 좋은 방법인 건 맞습니다만, 걷기의 출발점에 서려면 승용차를 이용하든, 대중교통을 타든 우선 거기까지 가야 합니다. 여행을 하면 차를 탈 때도 있고, 걸을 때도 있습니다. 한동안 여행의 중..

풍류, 술, 멋 2022.01.28

[조용헌의 영지 순례]원효대사는 왜 동굴에서 도를 닦았을까

[조용헌의 영지 순례]원효대사는 왜 동굴에서 도를 닦았을까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제도화된 종교가 있기 전에는 동굴이 신전(神殿) 역할을 하였다. 원시종교의 신전은 대부분 동굴이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굴을 볼 때 예사로 보면 안 된다. 원시인들이 도를 닦았던 수도처로 보는 게 합당하다. 예를 들면 3만~4만년 전 원시인들의 벽화가 남겨진 유럽의 동굴이 이런 장소들이다. 알타미라동굴, 라스코동굴, 쇼베동굴에는 당시 사람들이 남겼던 동물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대표적으로는 야생 소의 그림이다. 인도네시아 슬라웨시동굴에도 4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동굴벽화가 발견되었다. 동굴벽화는 왜 그려졌던 것일까. 이런 동굴들은 죽음을 초월하는 능력을 얻는 훈련 장소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동굴 내부는 ..

풍류, 술, 멋 2022.01.23

[조용헌의 영지 순례]3명의 재벌을 낳은 바위, 경남 남강 솥바위

[조용헌의 영지 순례]3명의 재벌을 낳은 바위, 경남 남강 솥바위 이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돈을 벌려고 노력하지만 노력에 비례해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돈은 눈이 9개 달렸다. 노력도 필요하지만 아이디어, 세상의 흐름을 읽는 눈, 천재지변, 귀인의 도움 등등 여러 가지 변수가 총합적으로 작동한다. 거기에 덧붙여 운도 작용한다. 미국의 록펠러에게 사업성공의 비결을 물었을 때 록펠러의 대답이 걸작이다. “첫째도 운, 둘째도 운, 셋째도 운이다.” 운은 논리적 분석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어떤 지점에 있는 힘이다. 개인의 사주팔자에 재복이 있는 것도 필요하다. 팔자에 재복 없는 사람이 돈 버는 것 못 봤다. 개인의 사주팔자도 있지만, 땅이 가지고 있는 기운을 받는 일도 필요하다. 이른바 명..

풍류, 술, 멋 2022.01.09

[조용헌의 영지 순례]열 받았을 땐 이 곳으로… 경남 거창 수승대 거북바위

[조용헌의 영지 순례]열 받았을 땐 이 곳으로… 경남 거창 수승대 거북바위 ▲ 거창 수승대 거북바위에는 조선시대 수많은 문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photo 조용헌 산과 물이 인간을 달래준다. 그래서 동양의 그림은 산수화가 주종을 이룬다. 동양의 산수화는 종교적인 그림이다. 동양적인 해탈, 도통, 구원의 경지를 그린 그림이 산수화이다. 요산요수(樂山樂水)이다. 산과 수를 나눠 보자. 산은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한다. 왜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을까? 산에 가면 바위에서 올라오는 정기를 받는다. 이 정기가 사람을 관대하고 인자하게 만든다. 등산을 하고 난 다음에 오는 특유의 충만함이 있다. 뭔지 모르게 꽉 차는 느낌이랄까. 이 꽉 차는 듯한 에너지가 산에서 받은 정기이자 지기이다. 에너지가 ..

풍류, 술, 멋 2021.12.31

올해의 여정 5選

지난 신년 초에 찾았던 강원 정선 두위봉 능선에서 만난 주목. 1400년의 시간을 견뎌온 거대한 위용의 노거수 앞에서 인간사의 하찮음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았다. 1년여가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팬데믹의 긴 터널에 있으니 그때의 위로는 지금도 유효하다. 틀림없는 건 다가올 새해는, 희망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힘겨웠던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여행이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팬데믹의 시대. 새로운 여행의 방법을 모색하고, 여행의 가치를 물으며,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녔던 한 해였습니다. 여행 결핍의 시대. 되돌아보니 지난 한 해 동안 여행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여행의 의미와 여행이 주는 위안을 더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의 여행을 되돌아보면서 그중 다섯 곳을 골라봤습니다. 새..

풍류, 술, 멋 2021.12.31

'시곗바늘 멈춘' 충남 서천군 판교면 현암리

일본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2층 목조주택 장미사진관. 처음에는 싸전이었다가 모시전, 어물전, 여관, 대폿집, 사진관으로 쓰였다. 1930년 장항선 놓이며 들어선 오일장·우편소·정미소·양조장 1980년대 국토 개발로 쇠락길…건물만 남긴 채 사람들 떠나가 일제강점기 건물 ‘장미사진관’…독특한 외관에 랜드마크 역할 1967년에 문 연 ‘판교극장’엔 ‘맨발의 청춘’ 등 그시절 포스터 일대 건물 7채 등록 문화재로…특정 공간 전체지정은 이례적 뒤돌아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되는 한 해의 끝. 오래전에 쇠락한 낡은 마을을 찾아갑니다. 충남 서천의 판교마을. 추억의 공간과 시간이 박제처럼 남아 있는 곳입니다. 올 한 해도 참으로 힘겹게 건너갑니다. 한 해를 보내는 상념을 떠올리기조차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내년도 쉽..

풍류, 술, 멋 2021.12.26

알싸한 절경 '경북 청송'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으로 꼽히는 주왕산. 주왕산을 상징하는 바위가 ‘기암’이다. 기암을 비슷한 눈높이에서 가장 극적으로 볼 수 있는 자리가 장군봉이다. 협곡 계단을 딛고 장군봉으로 오르다가 뒤돌아서 본 기암의 모습. 여행하기에, 혹은 여행지를 고르기에 가장 어려운 계절은 ‘겨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난도는 ‘눈 내리기 전까지’의 겨울 여행입니다. 그때는 모든 풍경이 황량하니 마땅한 여행지를 찾기 쉽지 않지요. 그런 때 딱 맞는 여행지로 꺼내어 놓는 곳. 경북 청송입니다. 푸른(靑) 소나무(松). 그 이름만으로 어쩐지 알싸한 박하 향기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청송은 차갑고 맑은 곳입니다. 주왕산의 기기묘묘한 암봉의 뼈대는 겨울에 더 잘 보이고, 주왕산 계곡 길도 시리고 추운 날..

풍류, 술, 멋 2021.12.19

미술작품으로 더 매력 넘치는 "제주"

제주의 ‘빛의 벙커’에서 몰입형 미디어아트 영상을 상영하는 모습.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도슨트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이서준 가이드다. 무선마이크로 이어폰을 낀 고객에게 작품을 해설해준다. 그는 유럽의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가이드 일을 하다가 코로나19로 귀국해 제주에서 미술관 도슨트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데, 고객의 만족도가 5점 만점에 5점이다. 감히 필적할 상대가 없는 가장 강력한 여행 콘텐츠는 ‘자연’입니다. 그곳이 꼭 제주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제주를 꿈꾸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니까요. 여행에서 기대하는 대부분 위안은 아름다운 자연에 있습니다. 자연을 이길 수야 없겠지만, 그와 견줄 만한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여행에서 우리를 몰입하게 하는 첫 번째가 자연이라면,..

풍류, 술, 멋 2021.12.14

[조용헌의 영지 순례]세계 유명 셰프들이 찾는 진관사의 비밀

[조용헌의 영지 순례]세계 유명 셰프들이 찾는 진관사의 비밀 ▲ 진관사 대웅전과 뒤쪽의 매봉. 조선시대 서울의 궁궐을 중심으로 사방 4군데의 호위 사찰이 있었다. 동쪽에는 불암사, 서쪽에는 진관사(津寬寺), 남쪽에는 삼막사, 북쪽에는 승가사이다. 이를 사고사찰(四固寺刹)이라고도 한다. 4군데서 도성과 궁궐을 지킨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서쪽에 있는 진관사. 근데 이름이 좀 특이하다. 나루 진(津)에 너그러울 관(寬)이다. 산속에 있는 절 이름에 어찌 나루 진(津) 자가 들어가는가? 고려 때 진관대사(津寬大師)의 이름을 따서 절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진관의 뜻은 ‘너그러운, 넓은 나루’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피안의 세계, 또는 이승에서 저승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물을 건너야 한다. 물을..

풍류, 술, 멋 2021.12.09

[조용헌의 영지 순례]물소리로 깨우침을 얻는 곳, 함양 유가대

▲ 지리산 자락 유가대에는 500년은 됨 직한 노송이 서 있다. 한국의 영지는 대략 3가지 조건을 갖추면 된다. 바위 암반, 소나무, 그리고 냇물이다. 냇물가에 넓적한 바위 암반이 있고, 그 옆에 노송이 있으면 대개 그러한 장소는 옛날 신선이나 도사, 고승들이 노닐거나 수도했던 터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암반에서는 기가 나온다. 기가 너무 세게 나오는 곳에서는 구안와사가 오기도 한다. 경락이 막혀 있는 일반인들이 바위에서 잠을 자면 턱이 돌아가는 불상사가 나기도 한다. 세게 들어오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면 턱이 돌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220볼트 밥솥에 500볼트가 들어와 버리면 타 버리는 이치와 같다. 하지만 도를 닦는다는 것은 볼트 압력을 높이는 행위이기도 한다. 어느 차원에 도달하려면 볼트가 ..

풍류, 술, 멋 2021.12.05

켜켜이 새겨진 이야기가 있는곳...전북 익산

가을빛으로 물든 아가페 정원. 50년 전, 은퇴한 뒤에 노숙자를 보살피던 한 신부가 길러서 팔면 보탬이 될까 싶어 손수 심은 나무들이 이렇듯 거대한 숲이 됐다. 울타리처럼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인상적이다. 전북 익산은 호남의 관문이자 호남고속선, 일반선, 전라선 등 5개 철도 노선이 지나는 명실상부한 철도교통의 중심입니다. 하지만 여행 목적지로는 존재감이 덜합니다. 미륵사지나 왕궁리유적 등 백제유적이 있긴 하지만, 백제의 대표 도시라 할 수 있는 공주나 부여에 밀려, 익산은 그동안 제대로 눈길 한번 받지 못했지요. 익산이 보여주고자 하는 건 ‘백제 무왕의 천도(遷都)의 꿈’입니다만, 고심 끝에 그 얘기는 여기서 빼기로 했습니다. 익산에는 백제 말고도 곳곳에 켜켜이 새겨진 이야기가 가..

풍류, 술, 멋 2021.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