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올해의 여정 5選

醉月 2021. 12. 31. 08:10
지난 신년 초에 찾았던 강원 정선 두위봉 능선에서 만난 주목. 1400년의 시간을 견뎌온 거대한 위용의 노거수 앞에서 인간사의 하찮음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았다. 1년여가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팬데믹의 긴 터널에 있으니 그때의 위로는 지금도 유효하다. 틀림없는 건 다가올 새해는, 희망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힘겨웠던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여행이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팬데믹의 시대.
새로운 여행의 방법을 모색하고,
여행의 가치를 물으며,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녔던 한 해였습니다.
여행 결핍의 시대.
되돌아보니 지난 한 해 동안
여행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여행의 의미와 여행이 주는 위안을
더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의 여행을 되돌아보면서
그중 다섯 곳을 골라봤습니다.
새해에는 부디 지긋지긋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여행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그래서 바깥과의 관계를
다시 복원할 수 있기를….
그래서 자연으로부터,
또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한 해를 보내며 감회보다는
새해에 대한 기대가 앞서는 건
지나온 터널이 길고도 어두웠기 때문일 겁니다.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잃은 게 훨씬 더 많지만,
얻은 것도 없지 않습니다.
다시 꺼내놓는 지난 다섯 번의
여행을 돌아보면서 그걸 느낍니다.


#1 정선 두위봉
나무 세그루 나이 合 ‘3700’… 거대한 시간과 위용에 감탄

코로나19의 길고 어두운 터널이 두 해가 넘도록 이어지고 있으나 신년을 맞는 마음은 지난해와 다르지 않다. 지난 신년, 그러니까 1년여 전쯤 강원 정선 두위봉(1446m)에 올랐다. 감염병의 공포로 여행이 금기였던 때였으니, 목적은 안내나 소개보다는, 우울로 가득한 신년에 대한 위로였다.

두위봉에는 늙은 나무 세 그루가 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딛고 가파른 비탈에 서 있는 세 그루 주목의 나이가 순서대로 1100살, 1400살, 1200살이다. 합계 나이 3700살. 두위봉 주목은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거대한 위용으로 그 앞에 선 사람을 ‘압도’한다.

첩첩한 시간이 쌓인 노거수 앞에서 느끼는 건 ‘세상사의 하찮음’ 같은 것들. 왜, 높은 곳에 올라 굽어보면 저 아래서 아웅다웅 살았던 게 다 사소하고 헛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던가. 두위봉 주목의 시간에다 대면 인간의 시간은 찰나. 거대한 자연의 시간 앞에서 ‘인간의 일’이란 게 얼마나 티끌 같은가. 비탈에 선 늙은 나무가 주는 깨달음이다.

가파른 비탈에서도 자세를 잃지 않고 서 있는 나무 앞에서 생각했던 건 ‘담대한 마음’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주목이 자라는 가파른 비탈과 매한가지가 아닌가. 또다시 다른 해를 맞으려 하지만 일상을 언제 되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 기약이 없다. 새 출발의 기지개 같은 신년의 여행조차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가오는 새해에 다시 희망과 기대를 말한다. 노거수의 1400년 시간도 티끌 같은 시간이 모여 한 줄 한 줄 나이테로 그려진 것이 아닌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봄이면 가지와 잎을 틔우고, 여름의 비바람과 겨울의 혹한을 견뎌 가며 제자리를 지켜와서 지금의 당당함을 만든 게 아닌가. 두위봉의 세 그루 주목은 여전히 두위봉의 비탈에 버티고 서서 또 한 번의 겨울을 보내고 있으리라.

거문도에 나흘째 배가 끊긴 날, 섬에 갇힌 관광객들이 서도의 불탄봉 아래 능선 ‘기와집몰랑’에 올랐다. 고립된 섬에서의 생활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조바심으로 애를 태우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유로운 시간’을 받은 느낌이었다.


#2 여수 거문도
배끊긴 나흘간 섬에서 ‘쉼표’… 불탄봉 능선 앉아 여유 만끽

지난 이른 봄에 전남 여수의 거문도에 갔다가 풍랑주의보에 뒤이은 여객선 결항으로 나흘 동안 섬에 갇혔다. 속수무책의 섬에서 보낸 나흘의 경험은 코로나 시대 우리가 겪는 불안이나 무력감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포개졌다. 섬에서의 고립은 여행의 방식과 태도를 바꾸는 경험으로 다가왔다.

거문도 서도의 덕촌마을에서 해발 195m의 불탄봉 정상을 넘는 길은 거문도 최고의 트레킹 코스다. 용의 등 같은 능선을 딛고 발아래로 쪽빛 바다와 기이한 해안 경관을 내려다보며 걷는 길이다. 거문도를 다녀올 때마다 늘 바쁘게 넘어갔던 불탄봉의 능선에 오래 앉아서 저물도록 쪽빛 바다를 볼 수 있었던 건 결항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이전의 섬 취재는 정해진 배 시간을 맞춰야 해서 잠시도 쉬거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결항으로 주어진 시간은 자연과 사물을 자세히 보게 했으며, 또 오래 생각하게 했다. 그동안의 시간을 쪼개서 하는 여행이 행동이나 동선으로 계획되고 실행됐다면, 여유가 주어진 여행에서는 공간과 시간 대신 ‘나의 느낌’이 훨씬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몰두해온 맛집 선정이나 포토 포인트에서의 근사한 사진, 빠르고 효율적인 이동 같은 게 무슨 대수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눈에 더 들어온 건 민박집의 규칙적인 사방무늬 벽지나 아침 밥상을 차리는 식당 할머니의 노고 같은 것들이었다.

▲ 철원에서 군 복무 중 사망한 아들을 못 잊은 아버지가 아들이 죽은 자리에 아들 이름을 딴 다리를 놓고 그 앞에다 세운 표지석.


느닷없는 여객선 결항이 섬을 여행하는 방식과 속도를 바꾸게 했듯이,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의 고통도 종래에는 좀 더 나은 방식의 여행 혹은 삶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믿음은 여전히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지금까지도 흐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물음 하나가 남았다. 우리가 일상을 되찾게 된다 해도 지금의 결핍을 기억하고 달라질 수 있을까. 다시 예전의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건 아닐까.


#3 비석 이야기
자식·남편 잃고 세운 비석
참혹한 슬픔의 증거를 보다


창자가 끊어진다는 ‘단장(斷腸)’의 슬픔으로 세워진 비석을 찾아 청도에서 장수로, 포항에서 철원으로 이어진 여정이었다. 자식의, 혹은 남편의 죽음이라는 가장 참혹한 슬픔으로 세운 비석을 찾아 나선 길. 여정의 시작은 경북 청도 매전면 지전리의 국도변에서 우연히 만난 ‘육군 대위 예태원 도사비(悼思碑)’였다. 비석의 이름에 ‘설워할 도(悼)’에 ‘생각할 사(思)’ 자를 가져다 썼다. 6·25 전쟁에서 전사한 육군 대위 아들의 죽음이 애통했던 아버지가 고향에다 세운 비석이다.

비석에 새겨진 글귀 중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건 한 귀퉁이의 아버지 이름 앞에 새긴 ‘미사부(未死父)’란 글씨였다. ‘아직 죽지 못한 아비’란 뜻이다. 비석의 글씨를 쓰다듬으니 전쟁통에 아들을 앞서 보낸 아버지의 가슴을 치는 애통함이 만져지는 듯했다.

전북 장수 계북면 원촌리에도 6·25 전쟁 때 전사한 아들 박춘봉을 기리며 아버지가 세운 추모비가 있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아들의 추모비는 비각 안에 있었는데, 본디 비각은 아버지 박노준의 기념비를 세우려 지은 것이라 했다. 순천 박씨 일가에서 아버지의 선행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우려 했는데, 아들을 앞세운 아버지가 무슨 자격이 있나 싶었던 것일까. 아버지는 비각 한쪽에 아들의 죽음을 위로하는 충혼비를 세웠다.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친척에게 500평 땅문서를 내놓으면서 “나 죽은 뒤에도 아들 박춘봉을 위해 제사를 지내달라”고 부탁했단다.

경북 포항의 용화사에서는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법연 스님 얘기를 만났다. 남편이 숨을 거둔 자리쯤에 비석을 세우고 출가한 법연 스님은 거기 절집을 짓고 평생을 수도하다가 아흔둘의 나이에 입적했다. 철원에선 군 복무 중 교통사고로 숨진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아들 이름을 딴 다리를 놓은 아버지의 이야기와 마주했다. 어쩌다 마주친 비석 하나로 시작했던 긴 여정이었다.


돌담 하나로 바다와의 경계를 삼은 진도 소마도 마을의 집. 목포항을 출발해 진도 동거차도까지 가는 완행 여객선 새마을 13호에서 본 풍경이다.



#4 목포서 진도까지
목포~서거차도 ‘9시간 뱃길’… 서른두개 섬 느긋하게 즐겨

목적이나 속도에 집착하지 않는, 거리 두기의 느긋한 여행이라면 이걸 꼽아야 하겠다. 가을의 초입쯤에 전남 목포에서 서거차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항지가 많은 항로’를 오가는 156t급 여객선 ‘섬사랑 13호’를 탔다. 목포에서 서거차도까지는 뱃길로 자그마치 9시간 30분. 비행기로 대륙을 건너가고도 남는 시간이다.

섬사랑 13호의 운항시간이 이렇게 긴 건 항로 주변의 섬이란 섬은 죄다 들르기 때문이다. 한 번의 편도 항해에서 들렀다 가는 섬의 숫자가 서른두 개다. 하지만 서른두 개 섬을 다 들르는 일은 거의 없다. 내리거나 탈 사람이 있어야만 배가 섬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류장이 있긴 하지만 길에서 손을 들면 세워주는 완행버스와 비슷하다. 섬사랑 13호 항로의 서른두 개 섬 중에서 열 가구 미만의 주민이 사는 낙도가 절반쯤은 되는 듯하다.

낙도 주민들에게 섬사랑 13호는 소중한 발이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배를 타고 거의 10시간 동안 느긋하게 뱃전에 앉아서 다도해국립공원의 섬과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이 여행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애써 여행을 준비하거나 일정을 짜고 동선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배표를 끊고 배에 올라타기만 하면 남쪽 바다의 섬과 섬 사이를 크루즈처럼 항해하며 여행할 수 있으니 말이다. 중간중간 타고 내리는 낙도 사람들이 보여주는 소박한 삶을 곁눈질하는 감동도 있다. 섬사랑 13호를 탔다면 어디서 내리든 상관없다. 목적지가 아니라 교통수단이 여행의 즐거움을 담보하는 것이니 말이다.

겨울에도 여객선은 운항하지만 날씨가 차고 바다가 거치니 그때는 빼고, 봄부터 가을 사이에는 언제든 좋다. 섬사랑 13호를 타려면 잊지 말고 챙겨가야 할 게 있다. 멀미약과 도시락 두 개, 휴대용 의자 혹은 작은 돗자리, 그리고 스마트폰에 저장한 음악과 이어폰이다.


벽화와 소품 등으로 옛 청주역을 재현해 놓은 공간. ‘노잼 도시’로 일컬어지는 청주에는 이런 소소한 볼거리들이 많다.


#5 충북 청주
유행 비켜간 ‘노잼 도시’에서 익숙하고 평범한 것의 재발견

코로나19는 당연했던 모든 것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여행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목적지도 바뀌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자극적인 공간은 어쩔 수 없이 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조건의 변화였다면, 기호나 취향이 바뀐 것도 있다. 이전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작고 사소하고 평범한 것의 매력을 비로소 알아챘다. 재미없는 도시라고 해서 흔히 ‘노(No)잼 도시’라 불리는 충북 청주를 찾았던 데는 이런 맥락이 있다.

청주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난 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관광지의 절대 수도 부족하고 다양하지도 않다. 2014년에 청원군과 합쳐진 거대 도농 통합시인데도 그렇다. 청주의 도심은 유행을 말하기에는 낡았고, 추억을 되살리기에는 모자란 그런 어정쩡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 청주는 매일 조금씩 늦어지는 시계를 닮았다. 실은 청주가 느려진 게 아니라, 세상이 현기증 날 만큼 빨라진 건지도 모른다.

청주에서 눈여겨보았던 건 건축. 청주의 공무원들은 84년 된 충북도청 건물과 56년 된 청주시청 건물에서 근무한다. 둘 다 근대문화유산. 도청 건물이 더 오래되긴 했지만, 눈에 더 들어오는 건 청주시청이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출신의 대한민국 건축가 1세대 강명구의 설계로 지어진 건물은 청주 현대건축의 시작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주에는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목욕탕 ‘학천탕’도 있다. 1988년에 지어져 32년 동안 영업해오다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아 문을 닫았다. 목욕탕 자리에는 목욕탕 내부를 그대로 살려낸 카페 ‘목간’이 들어섰다.

노잼도시 청주 여행의 가장 큰 효능은, 제가 사는 도시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익숙하고 지루한 것들의 재발견. 그게 노잼 도시를, 그리고 제가 사는 도시를 재미있게 여행하는 방법이다.


■ 새로운 명소의 탄생

코로나19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도 전국 곳곳에 눈길을 끄는 새로운 명소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Culture & Life는 한 해 동안 이런 곳들도 찾아다녔다. 강원 동해의 두타산 협곡 마천루와 전북 순창의 용궐산 잔도, 강원 철원의 주상절리길…. 원주의 치악산 둘레길이나 소금산 그랜드 밸리, 함양의 대봉산 모노레일도 올해 새로 조성된 곳들이다. 감염병 확산이 진정되고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지역관광의 축으로 떠오를 곳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