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창 수승대 거북바위에는 조선시대 수많은 문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photo 조용헌 |
열 받을 땐 계곡을 찾아라
요수(樂水)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등산을 다니면서 요산의 개념은 파악이 되지만 요수는 잘 파악되지 않는다. 도대체 물을 어떻게 좋아하고 즐긴단 말인가? 이걸 알려주는 책도 없는 것 같다. 지자요수(知者樂水)는 무슨 말인가? 물을 바라다보면 머리로 상기되었던 기운이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 물은 아래로 내려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은 매일 뚜껑이 열리는 삶을 살고 있다. 열 받을 일이 부지기수다. 이 열을 어떻게 내릴 수 있겠는가. 물을 많이 보는 것도 방법이다. 고스톱을 쳐 봐도 열을 내서 ‘열고’를 하면 돈을 잃기 마련이다. 성질내는 사람이 진다. 차분해지면 판단이 정확해진다. 지혜가 생긴다. 지자요수는 이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물을 좋아하면 성격이 차분해져서 판단을 오버하지 않는다. 오버하지 않는 게 지혜 아닌가.
서양의 휴양 시설은 주로 바닷가에 있다. 바다가 보이는 해변에서 쉬는 게 서양 사람들의 휴가이다. 동양은 바다보다는 산속의 계곡수를 좋아하였다.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 여기로 흐르는 계곡수를 즐기는 게 ‘요수’의 핵심이었다. 계곡의 바위 틈새로 흐르는 물을 바라다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상을 관조하는 지혜를 얻기 위한 장치가 ‘구곡(九曲)’이었다. 중국 주자가 무이산(武夷山)의 계곡을 9단계로 나누고 그 단계마다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도의 경지를 표현한 무이구곡(武夷九曲)이 대표적이다.
계곡수를 즐기는 구곡 문화는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암 송시열이 이름 붙인 화양구곡(華陽九曲)도 있고, 안동의 퇴계학파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낙동강 상류, 즉 청량산에서부터 예안, 안동에 이르는 지역을 도산구곡(陶山九曲)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전국 수십 군데에 구곡이 있다. 정권 실세 집안인 장동김씨 김수증이 은둔하면서 성리학을 연마한 강원도 화천의 곡운구곡(谷雲九曲), 전북 변산의 봉래구곡(蓬萊九曲), 경북 성주군 수륜면의 한강 정구 선생이 설정한 무흘구곡(武屹九曲) 등등. 조선조에서 구곡을 많이 가진 학파는 서인에서 노론으로 내려오는 계통이었다. 이른바 기호학파들이다. 기(氣)를 중시하는 주기파(主氣派)들이 구곡문화를 특히 좋아하였다. 산수 자연의 계곡에서 기를 느낀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동인에서 남인들에 이르는 주리파(主理派)들도 구곡을 좋아했지만 주기파들보다 그 비중은 덜하다고 보인다. ‘이(理)’는 자연에도 있지만 자기 마음속에 더 있다고 여겼던 듯하다. ‘이’는 형이상학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계곡보다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비춰 보면서 경공부(敬工夫)를 취하는 노선이다. 그러나 경치 좋은 계곡수(溪谷水)를 좋아하는 성향은 당파에 상관없이 보편적인 취향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편안한 에너지를 주는 3개의 계곡, 안의삼동
삼남 지역의 계곡수 가운데 최고로 치는 풍광이 현재의 경남 거창 지역 원학동(猿鶴洞)이다. 화림동(花林洞), 심진동(尋眞洞)과 함께 안의삼동(安義三洞)이라 일컬어진다. 백두대간의 동남쪽 경사면 자락이다. 영호남 최고의 경치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지역명이 현재는 안의(安義)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안음(安陰)이었다. ‘편안한 음’이라는 뜻이다. 양(陽)만 좋은 게 아니다. 음(陰)도 필요하다. 음에서 휴식을 얻고 충전을 한다. 지명을 안음이라고 했던 것은 이 3개의 계곡이 편안한 휴식을 주고 에너지를 주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추측된다. 안의의 3개 동(洞) 가운데 원학동에는 수승대(搜勝臺)가 있다. 이 수승대의 압권은 계곡 중간에 있는 거북바위이다. 학교 교실만 한 커다란 거북 형상의 바위가 놓여 있다. 거북바위 정상은 어느 정도 평평하여 삼국시대 신라·백제 사신이 여기서 만났다고 한다. 백제·신라의 경계지역이었던 것이다.
바위 중에서도 거북바위는 고대로부터 중시되었던 바위이다. 거북이는 영물이다. 거북의 등껍데기가 갑골(甲骨) 아닌가. 골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갑이다. 거북 등뼈를 모든 뼈 중에서 으뜸으로 친 이유는 거기에서 점괘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행동 지침을 알려주는 점괘가 거북이의 등뼈에서 나타났다. 한자문화권의 우주론을 담고 있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도 거북과 용이 상징한다. 거북이는 그만큼 영물이다. 불교 고승들의 비석이나 유교 학자들의 신도비를 보아도 아랫돌은 거북이가 받치고 있다. 거북이는 지상의 에너지를 상징하고 용은 하늘로 승천하는 에너지를 상징한다. 이런 거북이를 빼닮은 커다란 바위가 수승대에 점잖게 앉아 있다. 그 거북바위 옆에는 적당하게 평평한 암반들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암반 주위를 계곡물이 흐르고, 계곡 옆으로는 푸른 소나무들이 받쳐 주고 있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신권(愼權)은 호가 요수(樂水)이다. 거북이와 계곡을 그만큼 사랑했던 것이다. 거북바위 옆에다가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지어놓고 공부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수승대 일대가 깊은 오지였다. 은둔지였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경치가 워낙 아름답고 물을 즐길 만한 입지 조건을 갖춘 곳이다 보니 수많은 문사들이 이곳을 찾아왔다. 그 문사들은 거북바위 사방에다가 자기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 각수(刻手)들을 데리고 왔을 것이다. 그 이름들이 거북이 주변에 덕지덕지 새겨져 있다. 그야말로 ‘명함’으로 범벅이 된 거북바위다. 수승대 거북바위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잡념을 잊을 수 있다. 그리고 계곡물이 열 받은 머리를 식혀 준다. 머리 쓰는 사람은 하여튼 물을 많이 봐야 한다. 그리고 계곡 바닥과 주변이 온통 단단한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화강암에서 올라오는 강력한 지기가 있다. 이 암반의 지기와 계곡의 수기운과 물소리, 그리고 장엄한 거북이의 형상이 있으니 시청각을 다 만족시켜 주는 영지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