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량이 10억t에 달해 ‘내륙의 바다’라 불리는 강원 화천의 파로호 하류 쪽 전경. 호수의 물길 아래에 화천댐이 보인다. 오른쪽 뒤쪽으로 부채처럼 산자락 너머 민통선 지역에 중동부 전선의 요충지인 백암산이 있다. |
강원 화천의 민간인 통제선 너머의 백암산에다 케이블카를 놓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게 벌써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중동부 최전방 전선의 요충지. 험준하기로 이름난 산에다가 관광객을 위한 케이블카를 놓는다니…. 뜬소문이란 얘기까지 나돌았고, 공사를 시작했다가 곧 중단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완공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백암산 케이블카가 자그마치 16년 만에 마침내 완성됐습니다. 이르면 내달 중 본격 운행을 시작할 예정인 케이블카를 타고 백암산 정상 전망대에 다녀왔습니다.
# 초연이 쓸고 간 계곡…백암산
강원 화천의 민간인 통제선 북쪽에 ‘흰바위산’(1178m·백암산)이 있다. 백암산은 육군 7사단 장병들이 고산준령을 넘어가는 철책을 지키고 있는 중동부 전선의 중심이다. 백암산은 또 ‘초연(硝煙·화약 연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으로 시작하는 가곡 ‘비목(碑木)’의 배경이기도 하다.
비목은 ‘나무(木)로 세운 비석(碑)’이다. 돌로 지은 게 비석(碑石)이라면, 나무로 지은 비가 비목인 셈이다. 비목은 전쟁통에 세워진다. 전쟁 중 병사의 주검을 수습할 겨를이 없어 녹슨 철모를 얹은 나무 십자가를 세운다. 가곡은 전란이 지나간 전방의 깊은 계곡의 비목을 통해 전쟁 중 죽어간 이름 모를 군인들을 기린다. 비목의 가사는 1960년대 중반 최전방 백암산 전투초소에서 소대장 생활을 했던 한명희(83·이미시 문화서원 대표) 씨가 썼다. 군 복무 중 그는 6·25전쟁 당시 백암산에서 벌어졌던 금성전투와 425고지 전투의 자취에서 무덤 대신 만든 돌무더기와 비목의 흔적을 수시로 목격했다. 제대 후 방송사 음악부 PD로 일하게 된 그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1968년 가사를 썼고 이듬해 작곡가 장일남이 곡을 붙여 가곡 ‘비목’이 탄생하게 됐다.
가곡 비목의 실제 무대는 백암산 일반전초(GOP)다. 백암산 정상에서 살짝 서쪽으로 비낀 능선 위에 있다. 잔설에 뒤덮인 막사와 막사 건물 사이 양지바른 곳에 비목 가사를 적어 세운 노래 가사비가 있고, 그 앞에 무명용사 가묘가 있다. 가묘 앞에 나무 십자가를 꽂고 인근에서 발견된 녹슨 철모를 걸었다.
백암산 GOP의 비목을, 백암산 정상의 이제 막 세워진 전망대에서 고배율의 망원경으로 봤다. GOP가 딛고선 능선의 북쪽 너머로 황폐한 북한 땅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였다. 가사에 나오는 ‘초연이 쓸고 간 계곡’은 어디쯤이었을까. 지금도 이곳에서는 흰 달빛이 쏟아지는 밤에 궁노루(사향노루)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고지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협곡을 눈으로 더듬었다.
삼엄한 경계의 민통선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자리에 있어 6·25전쟁 이후 민간인은 감히 접근할 수 없었던 백암산. 그 산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케이블카 덕분이었다. 백암산 정상까지 가는, 관광객을 위한 케이블카가 이제 막 놓였다. 다음 달이면 자기 차를 타고 민통선 너머 백암산 아래까지 갈 수 있고, 거기서 케이블카로 단숨에 백암산 정상에 오를 수 있게 됐다. 그곳에 먼저 다녀온 얘기다.
▲ 가파른 능선을 오르내리는 백암산 케이블카. 여러 대의 캐빈이 순환하는 곤돌라 형식이 아니라, 46인승 케이블카 2대가 반대쪽에서 함께 움직이며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방식이다. |
# 민통선 너머 최초의 케이블카
또 케이블카야?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 전국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출렁다리 열풍에 ‘또 출렁다리야?’라고 힐난하는 질문처럼 말이다, 하지만 백암산 케이블카를 섣불리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민통선 너머의 접적(接敵) 지역에 케이블카를 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과 논란을 거쳤는지 알게 된다면, 그리고 케이블카 공사에 바쳐진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노고를 알게 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백암산 케이블카에 대한 논의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6년 시작됐다. 산천어축제가 대박을 터뜨리긴 했지만, 한겨울을 빼고는 화천까지 관광객을 불러들일 마땅한 방도가 없었던 때였다. 궁벽한 접적 지역인 데다 출입통제 지역이 많고 갖가지 규제까지 있었으니…. 그때 민통선 너머 최전방의 산에 케이블카를 놓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전국적인 케이블카 조성 붐을 불러일으킨 통영 케이블카가 완공되기 두 해 전의 일이었다.
민통선 안에 케이블카를 놓는다는 아이디어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화천군은 끈질기게 군부대를 설득했다. 제안과 대안을 제시하며 진행한 논의 과정에만 3년여. 결국 2009년에야 용역 조사가 시작됐고, 2012년에 케이블카 건설 착공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공사가 중단됐다. 백암산 일대에서 천연기념물 사향노루가 발견됐던 것. 공사를 중단하고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받아야 했다. 그렇게 또 2년을 보낸 2014년에야 실제 착공이 이뤄져서 8년여에 걸친 공사 끝에 최근에 케이블카가 완공됐다. 케이블카가 논의되기 시작한 지 무려 16년 만의 일이다.
# 고된 노고를 비벼 케이블을 놓다
공사 과정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영재 화천군 관광정책과 백암산특구담당 계장의 설명. “민통선 너머 길 가운데 상당 구간이 군용 차량이 아니면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거친 비포장길이었는데, 공사에 앞서 그 길을 모두 포장해야 했습니다. 군 진지를 가로지를 수밖에 없는 구간에서는 군부대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한전이 지원을 거절해 지자체 예산으로 전봇대를 하나하나 세워야만 했습니다.”
진짜 고난은 케이블카 설치 공사였다. 백암산은 접적 지역이라 자칫 군사적 긴장을 유발할 수 있어 헬기 이용이 아예 불가능했다. 실제로 공사 기간 중 단 한 번도 헬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 산 정상까지 찻길이 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순전히 인력으로 거친 산을 오르내리며 자재를 운반하고 공사를 해야 했다. 공사를 시작하면서 시멘트 등 자재 운반을 위해 가장 먼저 산정까지 화물 삭도를 놓았다. 가파른 경사를 수없이 오르내리며 수작업으로 케이블을 매야 했으니 얼마나 고됐을까. 레미콘 차량을 올릴 수 없으니 이렇게 시멘트를 받아 삽으로 비벼 쓰는 수밖에 없었다.
인부들은 매일 백암산 정상까지 걸어서 오르내리는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출입절차를 마쳤어도 민간인이 민통선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일출 이후부터 일몰 전까지.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일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이 모자란 데다 잔업도 아예 불가능했던 것. 고심 끝에 인부들을 산정까지 실어나르는 인력 삭도를 설치했다. 인력 삭도 역시 화물 삭도처럼 손수 케이블을 매서 만들어야 했다. 화물 삭도와 인력 삭도, 그리고 지금의 번듯한 관광용 케이블카까지…. 백암산 케이블카는 세 번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 민통선을 넘고 포진지를 지나서
백암산 케이블카는, 거기까지 가는 길부터가 흥미로운 여정이다. 화천읍에서 자전거 도로 공사가 한창인 한묵령 고개를 넘자 북한강 수계 최상류의 물길이 흘러내리는 습지 양의대가 나타났다. 이 물길이 바로 북한의 임남댐(금강산댐)에 담겼다가 남쪽의 평화의 댐을 향해 흘러드는 물이다. 양의대 습지는 민통선 너머의 땅이다. 이 습지는 ‘생태계의 보고’라고 일컬어지는 곳이지만, 전방지역은 아직 한겨울이라 강은 군데군데 얼어붙어 황량했다.
민통선 검문소는 양의대 습지의 물길을 건너가는 다리, 안동철교 앞에 있다. 이 검문소를 지나서 10㎞ 남짓 더 들어가야 거기 백암산이 있다. 민통선을 지나자마자 믿기지 않았던 건 포대 진지와 진지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진지 내부가 다 들여다보이는 구불구불 놓인 작전도로를 달리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래도 되나’ 하는 것이었는데, 주변 지형을 살피니 강과 벼랑에 막혀서 도무지 우회도로를 낼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들었던 두 번째 생각이 ‘이 길을 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논란과 협의가 필요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백암산으로 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던 건 ‘경계의 땅’이란 긴장보다는, 그곳에서 만나게 될 날것과 같은 풍경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포진지를 벗어나자 한눈에 양의대 습지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말쑥하게 새로 지은 건물이 들어서 있다. 백암산 케이블카를 놓으면서 함께 지은 생태관찰학습원이다. 백암산 케이블카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내려 양의대 습지 일대를 관찰할 수 있다. 반세기 넘게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습지에는 멧돼지, 고라니는 물론이고 산양과 사향노루도 물을 마시러 내려온다고 했다.
백암산 케이블카에서 뒤로 돌아보면 잔설로 뒤덮인 산의 거대한 능선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이렇게 장엄한 위용을 갖고 있음에도 민통선 안에 있는 이 산들은 변변한 이름조차 없다. 오른쪽 사진은 평화의 댐 하부의 국제평화아트파크에 전시된 탱크 조형물.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탱크를 들고 날아오르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
# 뒤돌아서 보는 우리 땅의 경관
민통선보다 더 삼엄한 경계의 최전방 부대 검문소를 또 한 번 지나서 케이블카 하부 승강장에 도착했다. 백암산 케이블카는 스키리조트에서 흔히 보는, 케이블에 캐빈이 줄줄이 매달려 가는 곤돌라형이 아니다. 남산 케이블카처럼 두 대의 대형 케이블카가 서로 왕복하며 운행하는 방식이다. 케이블카의 정원은 46인승. 운행 거리는 2.12㎞로 제법 긴 편이다. 지금이야 더 긴 것도 흔하지만, 설계 당시에는 국내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였단다.
케이블카에 오르자 발아래로 백암산의 급경사 구간이 펼쳐졌다. 시험운행 중인 케이블카를 화천군 문화관광해설사들과 함께 탔는데, 해설사들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손끝의 방향을 따라가니 예닐곱 마리의 산양이 있었다. 멸종위기종인 산양은 개체 수가 워낙 적은 데다 주로 험준한 산악지대에 서식해 웬만해서는 목격하기 어려운데, 여기서는 무슨 ‘염소’나 ‘동네 개’처럼 출몰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때도 바위 사이를 껑충거리며 뛰는 산양을 목격했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감격스러웠는데, 정작 문화관광해설사들은 무심하기 이를 데 없다. 왜 그런가 했더니 화천에 살면 수시로 산양을 목격한단다. 한 해설사가 휴대전화를 꺼내 “출근길에 맞닥뜨린 산양”이라며 여러 장의 선명한 산양 사진을 보여줬다.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에서 내려 잠깐만 걸으면 백암산 정상 전망대다.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산정의 전망대는 북쪽을 향해 있다. 북쪽으로는 구분할 만한 지형지물이 거의 없는데, 딱 한 곳 임남댐만큼은 뚜렷하다. 망원경으로 보니 댐 하류의 수문이 선명하다. 맑은 날에는 임남댐 뒤쪽으로 금강산이 보인다는데, 북쪽 방향의 시계가 좋지 않아 그게 어디쯤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백암산 전망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뜻밖에도 북쪽보다는, 서쪽과 남쪽의 경관이었다. 헐벗은 북한의 산보다 잔설이 채 녹지 않은 북사면의 우리 산이 그려내는 실루엣이 훨씬 더 근사했다. 대성산, 적근산, 화악산 등 해발 1000m를 훌쩍 넘긴 전방고지 고산 중봉들의 능선이 그려내는 경관은 자못 장엄했다. 저 아래로 양의대 쪽 북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흘러가고 있었다. 북쪽으로 열린 전망대에서 뒤돌아서 남쪽을 더 오래 바라봤다. 뒤돌아서 보는 우리 땅의 아름다움. 이게 바로 백암산 전망대가 전방지역 군부대가 운영하는 안보관광 위주의 통일전망대와 다른 점이 아닐까.
# 파로호에 새로 띄운 유람선
백암산 케이블카는 파로호 유람과 짝을 이룬다. 백암산은 파로호 상류의 평화의 댐에서 멀지 않다. 그러니 케이블카를 타려는 관광객들은 오며 가며 평화의 댐을 들르게 된다. 백암산 케이블카 건설 사업이 ‘화천 평화·생태 특구 조성사업’으로 이름 붙여진 건 일찌감치 이런 연계관광 인프라 구축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화천군은 최근 새로 건조한 유람선 ‘평화누리호’를 파로호에 띄웠다. 기왕에 파로호에는 2013년부터 관광여객선 ‘물빛누리호’를 운항하고 있었으니 이번 평화누리호 투입으로 파로호에 두 척의 배를 운항하게 된 셈이다. 새로 투입된 평화누리호는 정원이 40명으로 물빛누리호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테이블을 놓은 응접실풍의 실내가 훨씬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물빛누리호가 여객선급이라면, 평화누리호는 명실상부한 유람선급이다. 기존의 물빛누리호는 운항이 중단된 상태. 파로호 상류가 얼어붙은 겨울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날이 풀려도 여름 장마철까지는 운항할 수 없다. 지난해 파로호 수위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바람에 선박검사용 독으로 배를 옮길 수 없어, 지난여름에 받아야 했던 선박 안전검사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운항에 나서기 위해서는 여름 장마철 수위가 차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물빛누리호가 정상 운항했을 때도 승선 정원 문제 때문에 이용객들의 불편이 적지 않았다. 정원에 육박해야 배를 띄울 수 있으니 손님이 적을 때는 운항할 수 없었기 때문. 그러니 주중에는 거의 서 있다시피 했고, 주말에도 단체 관광객 위주의 운항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물빛누리호가 취항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적은 수의 손님에도 얼마든지 운항할 수 있게 되는데, 백암산 케이블카와 연계하면 파로호에서 평화의 댐 하부 선착장까지 매일 운항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된다면 꼭 백암산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다고 해도, 파로호를 유람하면서 평화의 댐을 편하게 다녀올 수 있게 된다. 평화의 댐까지는 해산(日山)을 넘어가는 육로가 있긴 하지만, 워낙 먼 길로 둘러가는 데다 길도 멀미가 날 정도의 굽잇길이라 접근성이 떨어진다.
화천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거례리수목공원. 얼어붙은 북한강과 펜화 같은 수몰 나무들이 흑백사진 속 풍경처럼 보인다. |
# 평화의 염원으로 종을 매달다
평화의 댐은 군부정권 시절에 ‘북한의 수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댐’이란 명분 속에서 지어졌다. 정권 유지를 위해 실재하지 않는 위기감을 고조시켜 코흘리개 어린아이의 저금통까지 깨서 지은 ‘불신의 기념물’이란 비난이 쏟아졌으나, 후에 임남댐 안전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댐 수문 무단방류로 인한 사고 등이 잇따르자 재평가 움직임도 있다. 위협에 대한 과잉 대처냐, 아니면 안보 불안을 통치에 이용한 것이냐는 논란은 여전하지만 분명한 건 평화의 댐은 이제, 남북한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분쟁 종식을 염원하는 ‘평화의 상징적 장소’가 됐다는 것이다.
평화의 댐의 대표적 상징물은 ‘종’이다. 평화의 댐 위쪽에는 ‘세계평화의 종’이 있고, 댐 아래쪽에는 ‘염원의 종’이 있다. 먼저 댐 위의 종 얘기부터. 세계평화의 종은 6·25전쟁 당시 탄피와 세계 분쟁지역의 탄피를 더해 지은 종이다. 종 위의 용뉴(고리) 부분에는 네 마리의 비둘기가 주조돼 있는데 그중 한 마리 비둘기는 오른쪽 날개가 반만 있다. 남북이 통일되는 날에 9999관의 종에다가 비둘기 날개 반쪽 1관(3.75㎏)을 더해 1만 관(37.5t)으로 완성한다는 이야기를 새긴 것이다. 종 앞에는 기증받은 탄피를 전시해 놓았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라 러시아 유즈노사할린스크 봉사단체가 기증했다는 탄피에 오래 눈이 갔다.
평화의 댐 하부에는 ‘염원의 종’이 있다. 댐 위의 종이 평화에 대한 기원의 의미를 담았다면 댐 아래의 종은 남북분단의 현실을 담았다. 나무를 깎아 만든 염원의 종은 소리가 나지 않는 침묵의 종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종 앞에 서서 침묵이 가진 의미를 읽게 된다. 백암산 전망대에서 본 북한 땅의 모습과 백암산 GOP 앞에 세워진 비목과 그 비목이 기리는 이름 모를 병사의 주검이 떠올랐다. 평화의 댐에는 백암산 GOP의 비목을 재현해 놓은 비목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비목 노래비가 세워져 있는데, 노래비 뒤편에 ‘남북 간 평화가 이뤄져 민통선이 없어지는 때 이 비석이 백암산으로 옮겨지길 염원한다’고 새겨놓았다. 남북 간 평화도 위협받고 있고, 민통선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노래비도 옮길 수 없지만, 이제 내달부터 백암산 정상에는 누구나 오를 수 있게 됐다. 전쟁의 비극이 지나간 자취를 가까이 다가가서 본다는 건, 평화에 대한 마음을 조금 더 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또 하나 분명한 건 그곳에 가면 북녘땅을 바라보게 되겠지만, 그보다 더 오래 우리 땅을 뒤돌아보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 4월 케이블카 운행…하루 500명만
백암산 케이블카는 이르면 4월 중 운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케이블카와 상·하부 승강장, 전망대 등은 공사가 끝났고 편의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백암산 케이블카는 예약제로 운영된다. 예약 정보로 민통선 출입신청이 이뤄지므로 하루 전까지 인터넷 예약을 마쳐야 한다. 환경부와의 협의를 거쳐 예약 인원을 하루 500명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기로 했다.
백암산까지는 개인차량을 이용해 민통선을 넘어 육로로 가는 방법과 파로호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평화의 댐을 거쳐서 가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민통선 안쪽 군부대 앞 주차장에 차를 두고 셔틀버스로 하부 승강장까지 이동한다. 배를 타면 평화의 댐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탄다. 케이블카는 오전 9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왕복 이용요금은 성인 1만9000원, 어린이 1만4000원이다. 유람선을 타고 가면 뱃삯은 별도다.
■ 화천의 새로운 명소
화천에 젊은이들의 발길을 끄는 목적지가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TV 예능 프로 ‘어쩌다 사장’을 촬영한 하남면의 원천상회는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명물이 된 곳. 36년 동안 원천상회를 지켜왔다는 주인이 끓여내는 라면 맛이 훌륭하다. 북한강을 끼고 있는 거례리수목공원은 수변에서 활개 치듯 가지를 뻗고 자라는 한 그루 느티나무가 사진 포인트로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면서 명소가 됐다. 외딴 느티나무에는 ‘사랑나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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