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1456

[조용헌의 영지 순례]미륵신앙 원조 진표율사가 선택한 김제 금산사

▲ 미륵신앙의 본산 김제 금산사의 미륵전 전경. 우리나라에는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지역감정도 한 개가 아니고 여러 개가 있다. 가장 큰 지역감정은 이북, 즉 북한 지역 사람들이 가졌던 차별의식이었다. 조선조 500년 동안 이북은 차별당했다. 여기서 차별이라 하는 것은 고위직 진출이 어려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평양(평안)감사 자리이다. 이북 출신이 평양감사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 이남 출신이 이 노른자 벼슬을 차지하였다. 조선에서 중국 북경(베이징)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신들이 중간에 반드시 들르는 지역이 평양이다. 사신으로 가는 정권 실세들에게 평양감사는 대접을 후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홍수로 압록강에 물이 불어나면 평양 체류기간도 길어졌다. 평양감..

풍류, 술, 멋 2021.06.06

'산의 고장' 함양

황석산 정상 부근의 경관. 산정을 따라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일어선 기이한 암릉이 길게 이어져 있다. 황석산성은 이 거친 암릉에 덧대 지어졌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황석산성은 정유재란 때 왜병에 의해 함락됐다. 그때 황석산은 병사와 주민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다. 경남 함양은 산(山)의 고장입니다. 남쪽은 지리산이 이끄는 거대한 산군(山群)이 있고, 북쪽에는 남덕유산의 지맥을 이어받은 산의 무리가 있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함양 땅에서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산을 헤아려 보니 자그마치 서른네 개나 됩니다. 웬만한 산의 기세로는 함양에서 명함조차 못 내미는 것이지요. 함양 땅에서 해발 1000m가 넘는 두 개의 산을 골랐습니다. 하나는 대봉산. 새로 놓인 모노레일을 타고 정상까지 편안히 오를 수 있는 산입니..

풍류, 술, 멋 2021.06.03

도립미술관부터 예술따라 한바퀴...전남 '미술관'기행

전남도립미술관 개관 전시 중 하나인 ‘현대와 전통, 가로지르다’는 전통의 순수화와 수묵화를 한국화와 미디어아트, 설치미술 등 현대적인 조형언어로 재해석한 전시다. 이 전시에 걸린 김병연 작가의 수묵 대작, ‘지리산’(사진 왼쪽)과 ‘월출산’(오른쪽). 수묵으로 옮겨진 지리산은 전남 구례의 사성암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여행에서는 일상에서 결핍한 것들을 찾으니, 도시 사람들의 여행이 자연으로 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습니다. 하지만, 결핍한 게 어디 자연뿐이겠습니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문화예술 콘텐츠를 직접 접할 기회가 크게 줄었습니다. 미술관도, 공연장도, 박물관도 멀어졌습니다. 바깥을 통해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인문학적 성찰의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지요. 미술관을..

풍류, 술, 멋 2021.05.29

자연 역사 영화... 여러 겹의 감동 '강원 영월'

천연기념물인 강원 영월 무릉리의 요선암 돌개구멍. 주천강의 물길이 흰 바위를 숟가락으로 떠내듯 깎아놓은 곳이다. 요선암을 끼고 있는 벼랑 위에는 요선정과 마애불이 있다. ‘요선(邀仙)’이란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강원 영월은 ‘여러 겹’의 공간을 가진 여행지입니다. 자연과 역사, 옛것과 새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관심 있는 범용성 넓은 명소가 있는가 하면, 취향에 따라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법한 여행지도 곳곳에 있습니다. 영월을 다양한 연령대와 다채로운 취향을 가진 가족의 여행지로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산에서 강으로, 바위에서 별로, 자연에서 사람으로, 역사에서 영화로 바삐 건너다니며 여행할 수 있는 곳, 여기는 영월입니다. # 단종과 명승…영월이 가진 자산 강원 영월에서 가장 범용성..

풍류, 술, 멋 2021.05.23

[조용헌의 영지 순례]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달마산 도솔암으로

[조용헌의 영지 순례]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달마산 도솔암으 ▲ 전남 해남 달마산 정상에 있는 도솔암의 낙조는 마음을 치유해준다. 사람은 조명(照明)을 받을 때 존재감을 느낀다. 조명도 여러 종류가 있다. 전기 불빛으로 내는 스튜디오 조명도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조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해와 달, 그리고 별이 하늘에 떠 있는 조명이다. 시인 윤동주는 별빛의 조명을 느낄 때 시상이 떠올랐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다. 나는 태양의 조명, 즉 장엄한 낙조를 볼 때마다 위로를 받는다. 보름달은 떠오르기 시작하는 단계가 장엄한 조명이라고 한다면, 태양은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단계에서 충만감을 준다. 낙조를 볼 때마다 위로받는 대목이 이것이다.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한 세상 다 간..

풍류, 술, 멋 2021.05.20

[조용헌의 영지 순례]숨가쁜 인생길 닮은 소백산 죽령 고갯길에도 이것이…

[조용헌의 영지 순례]숨가쁜 인생길 닮은 소백산 죽령 고갯길에도 이것이… ▲ 소백산 죽령 고갯길의 사과밭. 죽령은 말안장처럼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소백산을 넘어가는 죽령(竹嶺) 고갯길. 고개를 올라가는데 숨이 가쁘다. 심장 펌프질은 가빠지고 숨 쉬기는 어렵다. 숨 쉬기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계속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는 게 인생이다. 살다 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대장부 4대 과목이 감방·부도·이혼·암이라는데 이 4가지는 숨 쉬기 어렵게 만드는 고갯길과 같다. 어떻게 이 고개를 넘어간단 말인가 하는 한탄을 죽령 고갯길을 넘어가면서 했다. 숨이 가쁘니까 주변 풍경은 눈에 안 들어온다. 아니 눈에 들어와도 가슴에 들어오지 못한다. 가슴에 들어와야 인생길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것 아닌가. 중간중간에 아름..

풍류, 술, 멋 2021.05.20

부처님 오신날 앞두고 미리 가본 작은 절집들

전남 광양의 백운산 턱밑 해발 1000m 높이에 들어선 암자 상백운암. 풍수지리와 비기에 능했던 도선국사가 ‘봉황 둥지 형상의 천하 길지’를 골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본래 가파른 산길을 걸어야만 당도할 수 있는 속세에서 까마득한 거리의 암자였지만, 광양시와 사찰이 합작해 산을 깎고 산림을 훼손해 암자 앞까지 시멘트 포장도로를 놓았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대중과 교유하는 내로라하는 이름난 절집 말고, 숨 가쁘고 거친 길 끝의 암자와 작은 절집을 골라 다녀왔습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고승들이 용맹정진했던 긴장감이 넘치는 자리에 들어선 암자들입니다. 사실 종교가 꿈꾸는 게 위안과 평안이라면, 이렇듯 배반적인 장소가 또 있을까요. 짐작하건대 이처럼 위태로운 벼랑 끝에다 암자를 뒀던 건, 자신을 가두는 ‘..

풍류, 술, 멋 2021.05.15

[조용헌의 영지 순례]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달마산 도솔암으로

▲ 전남 해남 달마산 정상에 있는 도솔암의 낙조는 마음을 치유해준다. 사람은 조명(照明)을 받을 때 존재감을 느낀다. 조명도 여러 종류가 있다. 전기 불빛으로 내는 스튜디오 조명도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조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해와 달, 그리고 별이 하늘에 떠 있는 조명이다. 시인 윤동주는 별빛의 조명을 느낄 때 시상이 떠올랐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다. 나는 태양의 조명, 즉 장엄한 낙조를 볼 때마다 위로를 받는다. 보름달은 떠오르기 시작하는 단계가 장엄한 조명이라고 한다면, 태양은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단계에서 충만감을 준다. 낙조를 볼 때마다 위로받는 대목이 이것이다.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한 세상 다 간 것 아닌가’ 하는 한탄에 석양은 답변을 해준다. ‘아니다. 그만하..

풍류, 술, 멋 2021.05.08

충북 진천.증평...고요한 호반길을 걷다

충북 증평의 좌구산 아래 삼기저수지를 끼고 조성된 수변 걷기 길 ‘등잔길’ 나무 덱 구간.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3㎞ 남짓한 산책로로 물에 몸을 담근 수몰 버드나무들이 신록에서 녹음으로 건너가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19 이전에는 여행의 목적지 목록은 너나없이 다들 비슷했습니다. 인기투표 순위를 매기듯 순서를 정하고 다들 똑같은 여행지를 찾아다녔지요. 잠깐 끓다가 금세 식는 유행처럼 이름난 여행지를 메뚜기떼처럼 몰려다니던 여행자들을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게 한 건 순전히 코로나19의 가공할 만한 위력 때문이었습니다. 긴 고통의 터널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지만, 코로나 시대를 건너가며 새끼손톱만큼이나마 얻은 게 없지 않네요. 이를테면 생각 없이 누려왔던 것에 대한 감사, 사소해..

풍류, 술, 멋 2021.05.07

봄빛 보고 느끼고 걷는 '무주'

구천동 계곡의 맑은 물길과 나란히 달리는 덕유산국립공원 북쪽의 37번 국도. 이 길을 차로 달리면 ‘무주구천동 33경(景)’ 중 제1경인 나제통문부터 와룡담, 학소대, 세심대를 거쳐 14경 수경대까지 감상할 수 있다. 비대면으로 즐기는 훌륭한 계곡 드라이브 코스다. 도소 섬마을공원-대소-대티-잠두-서면마을까지 20㎞ 구간 트레킹땐 5시간 소요… 보라색 등나무꽃 벗삼아 걷기에 딱 향로산 등산로 포함한 ‘금강 맘새김길’의 옛 통학로도 일품 자기 눈 찔러 ‘조선의 고흐’라 불렸던 최북의 고향 일대기·당시 회화의 흐름·작품 등 전시한 미술관도 한풍루엔 군민 염원 담긴 수천개 노란 리본 인상적 # 무주의 봄날이 가진 다채로운 풍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일상..

풍류, 술, 멋 2021.05.03

[조용헌의 영지 순례]이곳에서 기도하면 신통력이? 울산바위 밑 계조암의 힘

[조용헌의 영지 순례]이곳에서 기도하면 신통력이? 울산바위 밑 계조암의 힘 ▲ 설악산 계조암은 굴 입구에 바위들이 포진해 기가 새는 것을 막아준다. 불교는 바위동굴을 좋아했다. 인도의 아잔타석굴, 중국의 둔황석굴, 중국 산시성의 윈강석굴, 그리고 경주의 석굴암이 모두 불교 승려들이 거처했던 석굴들이다. 불교 승려들이 석굴을 선호했던 이유는 우선 다른 사람들과 격리된 장소를 원했기 때문이다. 수도는 혼자 있는 연습이다. 홀로 있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도 닦는 일이다. 그러려면 외로움을 자처해야 한다. 도시와 시장(市場), 그리고 동네 마을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고독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 산속의 동굴이 여기에 적격이다. 또 하나는 비를 피하고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어야 한다. 구석기시..

풍류, 술, 멋 2021.04.24

봄이 머무는 '인문의 풍경' 청산도

청산도 당리 마을 언덕을 따라 ‘청산도 슬로길’을 걷던 관광객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청산도의 낭만적인 봄 풍경은 가득 피어난 노란 유채꽃과 구들장 논의 초록 보리밭, 그리고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푸른 바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다. 가장 아름다운 봄 풍경을 가진 섬, 전남 완도의 청산도에 다녀왔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섬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피어난 노란 유채꽃밭과 물결치는 청보리밭의 푸르름은 여전하더군요. 한적한 봄날의 청산도에서는 몸도 마음도 느긋해졌습니다. 여유가 주어지자 바삐 다닐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게 된 것이 청산도의 ‘구들장 논’이었습니다. 미처 몰랐습니다만, ..

풍류, 술, 멋 2021.04.24

전북 완주 '호젓한 산책'

암봉 능선에서 바라본 대둔산의 경관. 암봉 아래 흰 건물이 대둔산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이다. 전북 완주의 대둔산군립공원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단숨에 여기까지 올라가서 곧바로 기기묘묘한 암봉과 협곡으로 들어설 수 있다. 공화주의 부르짖은 최초의 혁명가 정여립의 생가터 추사와 견줄 정도였지만 초야에 묻혀 지낸 이삼만의 묘 피나는 수련 끝에 판소리 새 기법 만든 권삼득의 생가 옛 인물들의 흐릿한 발자취를 돌아보는 이야기 여행 아원고택 등 BTS 뮤비 촬영장소로 관심집중 호수·편백숲·절집·가톨릭 성지서 예술촌·카페까지… 다양한 여행자들에게 두루 만족감을 주는 여행지 ‘전주의 근교’에서 ‘신흥 관광도시’로 자리매김 여행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그림 보듯 하는 여행’. 다른 하나는 ‘책 읽듯 하는 여행..

풍류, 술, 멋 2021.04.17

[조용헌의 영지 순례]지리산에서 가장 氣 센 도량에서 벌어진 전투

[조용헌의 영지 순례]지리산에서 가장 氣 센 도량에서 벌어진 ▲ 화엄사 각황전의 홍매화. 정유재란 때 석주관(石柱關)전투가 있었다. 아주 치열했고 사상자가 엄청났던 전투다. 이 전투로 전라남도 구례의 성인 남자는 80% 이상 전멸했다고 전해진다. 석주관은 하동과 구례 사이에 있는 지점이다. 서출동류(西出東流)가 섬진강이다. 전라도에서 시작하여 경상도 쪽으로 흘러간다. 영호남을 배를 타고 왕래할 수 있도록 해준 강이 섬진강이라는 점에서 섬진강은 독특한 강이다. 또한 섬진강은 양쪽에 지리산과 광양의 백운산을 끼고 있다. 두 개의 거대한 산자락 사이를 흐른다. 임진년에 전라도를 공략하지 못했던 왜군은 정유재란 때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박살내기 위해서 진격한다. 왜군이 지나는 길은 함양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코스가..

풍류, 술, 멋 2021.04.10

山水가 아름다운 곳 경북 청도

나른한 봄날 오후의 선암서원 풍경. 동창천의 물길을 끼고 있는 선암서원은,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사랑채와 안채까지 갖춘 그윽한 한옥 고택이다. 서원은 500년 전 청도의 두 선비, 소요당 박하담과 삼족당 김대유를 기린다. 맑은 기운 품은 선암서원, 복사꽃이 절정 정자 삼족대 오르면 동창천이 훤히 내려다보여 6·25때 이승만 묵은 여든여덟칸 운강고택 조선 궁중 내시 가문 이어온 운림고택 신라 화랑의 세속오계 시작된 운문사까지 느긋이 산책 한가지 소원만큼은 들어준다는 속설 운문사 사리암 1008개 계단 발길 끊이지 않아 한재골 봄 미나리 전국에서 인기 폭발 부드러우며 아삭아삭… 은은한 향 일품 100여 농가 농사… 비닐하우스 바다처럼 보여 # 맑은 풍경으로 가득하다…청도 경북 청도. 우리와 한자어 ..

풍류, 술, 멋 2021.04.10

충남 서산 '불국토 기행'

충남 서산 인지면의 작은 절집 죽사(竹寺). 비룡산 산정의 바위 아래 절묘한 자리에 위태롭게 들어서 있다. 절집 마당에 서면 서산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죽사는 알려지지 않은 절집이라, 인적이 뜸해 적막할 정도다. 경남 합천의 가야산이 더 이름나긴 했지만, 충남 서산에도 가야산(伽倻山)이 있습니다. 가야란 이름에서 고대국가 가야를 떠올리기 쉬운데 ‘가야’란 지명은, 실은 인도 동부 지방의 불교 최대 성지로 꼽히는 붓다 가야에서 왔답니다.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성불했다고 전해지는 곳, 거기가 바로 붓다 가야라는군요. 지명 유래로 짐작할 수 있듯이 가야산 일대에는 불교의 굵은 자취가 선명합니다. 가야봉을 비롯해 원효봉과 석문봉, 옥양봉, 수정봉 등 다섯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 가야산에는 백제 시대에 자..

풍류, 술, 멋 2021.04.02

[조용헌의 영지 순례]양지바른 땅 두고 굳이 늪지대에 절 지은 까닭

▲ 익산 미륵사지 바로 옆에는 ‘황등제’라는 큰 저수지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물을 빼고 논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오래된 사찰 가운데는 늪지대를 메우고 여기에다 절을 지은 경우가 있다. 늪지대에다가 사찰을 짓는다는 것은 요즘 상식으로는 의외이다. 보통 좌청룡 우백호가 잘 자리 잡고 있는 명당 터에 절을 짓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늪지대는 풍수적 관점에서 볼 때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여기에다 지었을까? 그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용(龍)이 살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동양의 신화에서 용은 물에서 사는 동물로 생각하였다. 서양의 신화에서 용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룡(飛龍)이 주를 이룬다. 커다란 날개를 펴고 입에서는 불을 뿜는다. 서양에서 용은 불을 뿜고 사람과 가축에게..

풍류, 술, 멋 2021.03.25

미리가본 벚꽃명소'전남 영암'

전남 영암의 월출산은 근육질의 바위로 가득한 남성미 넘치는 산이다. 기기묘묘한 암봉과 아찔한 벼랑으로 가득하다. 사자봉 직벽을 등산객들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고 있다. 월출산은 선경을 감상하며 산행을 하는 것도, 거기 올라 영암의 들녘을 내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멀찌감치 물러서서 수석을 감상하듯 월출산을 보는 맛도 좋다. 매화며 산수유가 분분히 지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벚꽃을 만나는 가장 찬란한 봄의 시간이다. 봄꽃은 그게 어떤 것이든 다 좋긴 하지만, 화려하기로 벚꽃에 감히 견줄 만한 게 있을까. 줄지어 늘어선 벚나무 가지마다 꽃이 한꺼번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봄 풍경은 황홀하다. 봄날의 밤에 숨 막힐 듯 피어난 벚꽃의 정취는 또 어떤가. 계절이 오면 언제든 할 수 있었던 벚꽃놀이가 팬데믹 시대에는 꿈같..

풍류, 술, 멋 2021.03.25

경북 의성 '옛마을'

경북 의성 사촌마을의 만취당 대청에 앉으면 기둥과 기둥, 창호문과 창호문 사이로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완연한 봄기운으로 가득한 마을 풍경이 마치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놓은 듯하다. 만취당은 ‘보물’이지만, 반들반들한 대청마루에는 누구든 올라앉을 수 있다. 하루 1만여갑 생산하던 ‘성광성냥공업사’ 문 닫았지만 미술프로젝트 통해 모빌·조형물 설치… ‘예술 골목’ 변신 산업유산 지정돼 2025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한옥·슬레이트집 뒤섞여 고즈넉한 매력의 사촌마을 류성룡 외조카가 지은 ‘만취당’이 필수 방문코스 대청마루서 내다보면 마을 전경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남녘 땅에 꽃소식이 들려오면서 이름난 봄꽃 명소마다 행락객 인파가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채 가슴 졸이며 보내야 했던..

풍류, 술, 멋 2021.03.20

[조용헌의 영지 순례]경허스님과 전봉준의 사연이 깃든 마이산의 고금당

[조용헌의 영지 순례]경허스님과 전봉준의 사연이 깃든 마이산의 고금당 ▲ ‘조계산 호랑이’라고 불리던 대종사 활안 스님이 친필로 쓴 ‘고금당’ 현판. 도를 닦기에 가장 적합한 터는 어떤 곳인가? 답은 바위굴이다. 이는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적용된다. 그리스의 아테네에 가면 파르테논신전이 있다. 파르테논신전 터도 범상하지 않다. 동양의 풍수전문가가 보기에는 회룡고조(回龍顧祖)의 명당이다. 용이 내려오다가 고개를 휙 돌려서 자기가 출발했던 지점을 쳐다보는 형국을 가리킨다. 판델리산에서 용이 오다가 한 번 방향을 꺾어서 바다를 향해 내달리다 중간에 멈춰 선 지점이 리카베투스 언덕이다. 리카베투스 언덕에는 바위들이 솟아 있다. 아테네 시내를 전부 볼 수 있는 전망대이고 그 앞으로는 파르테논신전도 보인다. 리카..

풍류, 술, 멋 2021.03.12

뱃길 끊긴 거문도서 본 희망

거문도의 남쪽 끝 ‘거문도 등대’로 이어지는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룬 숲길. 섬에 도착하자마자 한 번, 섬에 고립된 뒤에 다시 한 번 다녀왔는데, 걷는 속도와 보고 온 것이 완연하게 달랐다. 이 숲 터널을 다시 걸었을 때는 파도 소리와 봄의 냄새, 바람의 촉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 뱃길 끊긴 거문도서 본 희망 섬에 갇혔다.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로 뱃길이 끊겨 전남 여수의 가장 먼 섬, 거문도에 갇혀 나흘을 보냈다. 코로나 시대에 여행이 조심스럽듯, 여행취재도 조심스럽다. 사람들을 한데 모으지 않는 여행 얘기를 위해 먼 곳으로 떠난 출장이었다. 뜻밖의 결항으로 속수무책의 섬에서 보낸 나흘의 경험은,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겪는 불안이나 무력감과 거의 같은 모양으로 포개졌다. 여행의 방식과 태도를 바꾸게 ..

풍류, 술, 멋 2021.03.12

산청'三梅'를 만나다

경남 산청 남사마을의 고택 남호정사 마당에 ‘이씨매’가 환하게 피어났다. ‘산청 삼매(三梅)’ 중 하나인 원정매를 비롯해 최씨매, 박씨매 등 이름난 명매(名梅)가 자라고 있는 남사마을에서, 이씨매는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매화다. 바야흐로 봄. 남녘에서는 매화와 산수유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맞는 두 번째 봄입니다. 긴 겨울 뒤의 봄이 반갑습니다만, 축포처럼 피워올린 봄꽃을 물러나서 바라봐야 해서 아쉽습니다. 아직은 거리를 두어야 하는 때이니까요. 기억하시지요. 지난해 봄날에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외지인들이 찾아온다’며 봄꽃을 갈아엎어 버린 일을 말입니다. 봄꽃을 찾아가는 여정을 말하기가 못내 조심스러웠던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궁리 끝에 되도록 한가한 봄꽃 여행을 ..

풍류, 술, 멋 2021.03.04

[조용헌의 영지 순례]안동 고택 ‘충효당’의 부엌 8각 기둥에 숨은 비밀

[조용헌의 영지 순례]안동 고택 ‘충효당’의 부엌 8각 기둥에 숨은 비밀 ▲ 안동 풍산의 예안이씨 충효당 고택 별채인 ‘쌍수당’. 한자문화권에는 상수학(象數學)이라고 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거의 30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상(象)은 형상을 가리키고, 수(數)는 글자 그대로 숫자이다. 상과 수가 중요한 이유는 하늘의 뜻을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하늘의 뜻이 무엇이냐? 서양식으로 물으면 ‘신의 뜻이 무엇이냐’다. 이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하늘의 답변은 상과 수로 나타난다고 믿었다. 상과 수를 보면 지금 정치가 제대로 가고 있다, 이번 전쟁은 하면 진다, 다음에 흉년이 닥친다 등등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하늘의 뜻은 사태가 오기 전에 미리 조짐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조로 받아들여졌다. 말하자면 상과 수..

풍류, 술, 멋 2021.02.26

주민들이 직접만든 이색 관광삼품 4選

강원 양양의 낙산 해변에는 도시에서 이주해온 서핑 마니아들이 주축이 돼 서핑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주민사업체 ‘서프시티’가 있다. 서프시티 교육에 참가한 강습생들이 거친 겨울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고 있다. 지역 주민이 관광사업체를 만들어 숙박, 식음, 여행, 체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보이는 지역 고유 특색의 관광상품이 있다.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름난 관광지를 찾아가는 대단위 여행의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훌륭한 여행상품들이다.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지역주민이 관광사업체를 창업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공동체 발굴부터 사업화 계획, 창업과 경영 개선까지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관광 두레’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85개 지역에서 발굴한 주민사업체만 600여 개에 이..

풍류, 술, 멋 2021.02.26

수평선 너머 별마중...돌담길 넘어 봄마중

바굼지오름이라고도 불리는 단산 정상은 ‘제주의 이른 봄’을 보는 가장 훌륭한 자리다. 단산에 오르면 유채밭을 두른 산방산과 겨울 무, 쪽파를 심어 진초록으로 반짝이는 대정의 들녘과 코발트 빛 제주 해안, 모슬포의 바다와 형제섬, 마라도가 마치 한 장의 두루마리 그림을 편 듯이 펼쳐진다. 어디서든지 봄은 ‘꽃’입니다. 꽃이 피어야 비로소 봄입니다. 지난 겨울은 폭발적 코로나19 감염확산에 따른 거리 두기와 집합 금지로 말 그대로 ‘유폐의 시간’이었습니다. 꽃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한 이유입니다. 봄이 된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따스한 봄이 온다면, 충만한 봄기운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겁니다. 봄이 가장 먼저 딛고 ..

풍류, 술, 멋 2021.02.18

[조용헌의 영지 순례]주역 대가가 환란을 피한 대둔산 석천암

[조용헌의 영지 순례]주역 대가가 환란을 피한 대둔산 석천암 ▲ 가파른 절벽 사이에 있는 대둔산 석천암. 머리가 좋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능력이 있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솔루션을 내놓는 능력이 아닌가 싶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진짜 머리 좋은 사람이다. 솔루션, 해결책이라는 부분을 압축하면 결국 예측 능력이다. 앞일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를 미리 예측하는 능력이다. 특히 상황이 혼돈일 때가 더 그렇다. 여러 가지 변수가 총체적으로 엉켜 있어서 도저히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 때 ‘어디로 가야 한다’라는 이정표를 제시하는 사람이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이고 지도자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예측 능력을 갖추기가 어렵다. ..

풍류, 술, 멋 2021.02.07

밤새 눈 내린 '정읍 내장산'

전북 정읍 내장산의 절집 내장사로 드는 단풍나무 길. 밤새 눈이 내린 다음 날 아침의 풍경이다. 서로 손을 맞잡듯 하늘을 가리고 있는 단풍나무 가지마다 눈이 가득 쌓였다. ‘천년고찰’ 내장사 닿기전 2.4㎞ 단풍나무길 코스 손 맞잡은 듯한 가지에 쌓인 눈 ‘순백의 터널’ 이뤄 관음전 뒤편에 병풍처럼 펼쳐지는 서래봉 경관 마술처럼 도드라지는 능선, 마치 한 폭 그림같아 인구 10만 소도시… 도심 한복판에 쌍화찻집만 13곳 잘 조린 밤·대추 넣고 정성껏 끓여… 대도시선 맛볼 수 없어 전봉준 장군 고향이자 첫 동학봉기 시작된 곳 곳곳에 기념탑·조형물… 폭정의 상징 ‘만석보터’도 가볼만 # 눈 내린 내장산으로 가는 길 내장산국립공원이라면 내장산 하나가 국립공원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국립공원을 이루는 건 세 개의..

풍류, 술, 멋 2021.02.04

[조용헌의 영지 순례]설악산 늑대소년 통해 속세로 나온 3000년 무술의 정체

▲ 3000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계룡산 ‘기천문’의 본산(왼쪽)과 돌비석. 기(氣).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을까.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것이 기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아니하고 무게도 형체도 이름도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기천(氣天)이라 하느니라. 말이나 글에 집착하지 말고 몸으로만 수행하라.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나니 스쳐 보아야 그 위력을 아느니라.’ 단군 이래 내려오는 전통 무술을 연마하는 단체인 ‘기천문(氣天門)’에서 내건 캐치프레이즈이다. 단군 이래라고 한다면 적어도 3000년을 넘게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이다. 고조선 시대 이래로 고구려의 조의선인(早衣仙人)을 거쳐 고려·조선 때도 끊어지지 않고 현재까지 전해져..

풍류, 술, 멋 2021.01.27

'춘천' 소소한 겨울 산책

소양강의 물안개가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의 노랗고 붉은 기운을 받아 산불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소양호와 춘천호, 의암호에 둘러싸인 춘천은 안개가 끼는 날이 잦다. 조금만 운이 좋다면 이른 아침 강변이나 호반에서 몽환적인 경관과 맞닥뜨릴 수 있다.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시간이 오래 계속되고 있습니다. 감염확산이 순순히 수그러들어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그렇게 기대처럼 좀 상황이 나아진다면 여행은 다시 시작될 수 있겠지요. 저마다 기준이나 시기는 다르겠지만요. 조심스럽게 여행이 시작될 때, 맞춤한 여행지로 추천하는 곳이 춘천입니다. 수도권에서 거리도 멀지 않고, 아직은 좀 부담스러운 숙박 없이 당일로 다녀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숙박을 한다면 여행이 좀 더 만족스럽겠지요. 거리와 입지만 좋은 게 아닙니다..

풍류, 술, 멋 2021.01.22

조선시대 "감염병 극복" 지혜 찾아 떠난 문경

공덕산 자락에 아슬아슬 벼랑을 이룬 너럭바위에 올라앉은 사불암(四佛巖). 사방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비단에 싸여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사불암 너머 저 아래로 암자 윤필암이 내려다보인다. 윤필암에는 불상 대신 유리창 밖으로 올려다보이는 사불암을 모신 법당 사불전이 있다. 감염병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체계적인 격리원칙이나 방역수칙이 있고, 치료제나 백신에 대한 기대라도 있지만 조선 시대에는 어디 그랬겠습니까. 세균과 바이러스 관련 지식이 없었던 왕조시대에 감염병은 속수무책 떼죽음을 당하는 재앙이었지요. 감염병과 더불어 배척과 차별의 고통도 컸을 겁니다. 모르긴 해도 신분제의 시대였으니 지금보다 차별은 훨씬 더 극단적이었겠지요. 경북 문경의 유서 깊은 절집 대승사에는 감염..

풍류, 술, 멋 202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