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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영지순례] 일본 침몰 예언한 탄허 스님 생가에 가보니

醉月 2022. 8. 17. 16:04

기후변화의 원인을 과도한 탄소배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탄소배출과는 다른 맥락에서 원인을 생각하는 노선도 있다. 19세기 말엽부터 한국에서 시작된 거대담론인 후천개벽설이 그것이다. 후천개벽이 되니까 기후변화도 동반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관점은 20세기에 들어와 불교계의 탄허 스님(呑虛·1913~1983)이 주장하였다. 스님이 1983년에 돌아가셨으니까 벌써 40년이나 되었다. 탄허는 1970년대 후반쯤에도 일본 열도가 물에 잠겨 침몰한다는 예언을 하였다. 당시에는 너무도 황당한 예언으로 느껴져서 ‘선데이서울’ 같은 잡지에서 대중적 흥밋거리 수준에서 다루었다.

어떻게 일본이 침몰한단 말인가? 그게 가능한 말인가? 탄허가 일본 침몰을 예언한 이론적 근거는 바로 ‘정역(正易)’이었다. 19세기 말 계룡산 자락인 연산에서 태어난 김일부(金一夫·1826~1898)가 평생을 연구해서 내놓은 연구업적이 바로 ‘정역’이었고, 이 ‘정역’이 후천개벽설의 원리적 근거로 작용하였다. 탄허가 주목한 ‘정역’의 구절은 ‘水汐北地(수석북지) 水潮南天(수조남천)’이었다. ‘북쪽의 물이 빠져서 남쪽 하늘로 흘러간다’는 내용이었다. 북쪽의 물이란 무엇이냐? 바로 북극의 얼음이 녹는다는 의미였다. 요즘 북극에서 얼음이 녹아 내리는 장면이 자주 방송에 나오고 있고, 이 얼음 녹는 장면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것 아니냐’며 긴장을 한다.

유럽에 근거를 두고 있는 세계 금융자본의 주인들은 탄소세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아시아 제조업은 탄소세를 내거라. 탄소세 안 내면 금융 네트워크에서 퇴출시키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핵심은 결국 탄소세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탄허가 주목한 ‘수석북지 수조남천’, 즉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의 상승을 초래하는데 그러면 상당 부분의 육지는 물에 잠길 수밖에 없다. 남극은 밑바닥이 대륙이어서 녹는 얼음의 양이 북극보다 많지 않다고 한다. 북극은 전부 얼음이라고 한다. 그러니 북극의 빙하가 문제인 것이다. ‘北地(북지)’라는 표현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참으로 신기한 선견지명처럼 느껴진다. ‘南地(남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김일부의 ‘정역’을 읽었어도 그러려니 넘어갈 일을 탄허는 공식석상에서 발표까지 하였다. 그만큼 확신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탄허는 오대산 방한암 선사의 핵심 제자이다. 한암 선사는 6·25 때도 피란가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오대산 상원사를 지켰다. 선사가 앉아서 돌아가신 좌탈입망(坐脫立亡) 사진이 유명하다. 경허, 한암으로 이어지는 한국 선종의 정통 화두선 문중에서 불교 공부를 한 탄허가 왜 정역에 관심을 갖고 일본 열도 침몰을 예언했을까. 불교 선승은 예언 같은 것은 잘 하지 않는다. 자칫 본분사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언을 하더라도 극히 사적인 자리에서 한두 마디 간단하게 하는 정도이다. 탄허는 이런 선불교의 전통에서 보자면 파격적 인물이었다.



성철과 탄허는 길이 달랐다

1970~1980년대 한국 불교계의 스타는 성철과 탄허였다. 성철이 가야산 해인사 깊은 산중에 있으면서 철저하게 수행가풍에 집중하는 길을 걸었다면, 탄허는 오대산에 있다가 서울 개운사의 암자인 대원암으로 왔다. 서울로 온 셈이다. 서울에서 많은 지식 대중들과 만나고, 강연도 하고, 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서울의 식자층을 상대한 인물은 탄허였다. 서울은 기독교가 주류 종교이다. 불교도는 숫자가 적어서 세가 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탄허가 말년에 서울에서 활동했던 맥락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탄허가 서울에 머물면서 정역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불교 전반의 경전을 이야기했다. 특히 ‘화엄경’에 집중하였다. 방대한 화엄경 번역에 주력하기도 했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고 엄청난 작업이 화엄경 번역이었다. 탄허는 화엄경이 대승불교의 경전을 통합하고 있다고 보았다.

탄허는 불교 승려로서는 드물게 유·불·선 3교의 회통을 중시하였다. 유가와 선가의 경전도 인정하고 이를 수시로 인용하였다. 불교계 출가 이전에 이미 유교경전과 선교의 전통을 익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역과 후천개벽도 이러한 회통적 관점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탄허의 이러한 폭넓은 불교관 중에서 대중들이 관심 있어 하고 머릿속에 남은 이야기가 바로 일본 열도 침몰이었던 것이다. 이사무애(理事無礙)와 같은 불교의 심오한 내용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주제가 아니다.

탄허의 후천개벽 역사관에서 중요한 부분은 한국의 부상이다. 한국이 세계적인 나라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간방(艮方)’ 사상이다. 간방은 주역에서 방향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동북쪽이다. 동쪽과 북쪽의 중간을 ‘간방’이라고 한다. 한국이 이 간방의 위치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후천개벽이 되면 한국이 간방의 위치에서 이동하여 정동(正東)의 위치에 자리 잡는다고 보았다. 동북쪽에서 동쪽으로 자리가 옮겨지는 셈인데,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세계의 중심국가가 된다. 즉 어변성룡(魚變成龍)이 된다. 잉어가 변해서 용이 된다는 의미다. 한국이 용이 된다는 것이다.

간방의 위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탄허는 지축이 움직인다고 보았다. 지축은 23.5도가 기울어져 있다. 이게 바로 선다는 주장이다. 지구가 약간 비스듬하게 자전을 하다가 똑바로 서서 돈다는 내용이다. 엄청난 규모의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지축이 바로 선다니! 지축이 바로 서면서 태평양 바닷속의 용암이 위로 치솟아 북극을 때린다고 본 것이다. 불덩어리인 용암이 북극으로 치솟으면 얼음이 녹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지각변동과 기후변화가 온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엄청난 스케일의 우주적 담론이 아닐 수 없다.

탄허의 이론에서는 이런 식으로 기후변화를 설명하는 셈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탄소세를 걷는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된다. 서구 금융자본 몇몇이 어수룩한 아시아 사람들 돈 벌어 놓은 것을 세금으로 뜯어내려고 하는 발상이다.

탄허의 정역 해석에서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미국과의 관계이다. 지축 변화로 한국이 정동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 그 반대편 정서쪽에는 미국이 자리를 잡는다. 김일부의 ‘정역팔괘도’가 이런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동쪽에 한국이 있고 서쪽에 미국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파트너십을 의미한다. 파트너십이란 부부관계도 포함한다. 한국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말이다. 혹시 미국의 완벽한 속국이 된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상호 호혜적인 관계로 된다는 것일까? 삼성이 미국에다가 수백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는 뉴스는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미국이 한국에다 빨대 꽂고 빨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한 차원 높아진 파트너십의 단계로 접어드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탄허의 정역팔괘도 해석에 의하면 후자일 가능성을 암시하는데, 과연 그럴까? 모든 예언은 시간이 지나봐야 맞는지 맞지 않는지 판명이 난다. 하지만 예언은 우리의 시야와 상상력을 넓고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승들의 태를 묻은 평야

탄허의 생가는 전북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大東里)이다. 김제, 만경 일대는 지형이 특이하다. 온통 들판이라는 점이 그렇다. 한국에서 이처럼 광활한 들판 지형은 드물다. 지평선 축제가 있을 만큼 끝이 안 보인다. 중간중간에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구릉지대가 자리 잡고 있다. 산도 아니고 들판도 아닌 야트막한 구릉. 이런 구릉지대에 동네가 있고, 탄허가 태어난 생가도 여기에 해당한다. 풍수가에서 하는 말이 비산비야에 대명당이 있다고 한다. 비산비야는 돋보이지 않는 터이다. 너무 평범하다. 그런데 대명당은 이런 평범한 곳에 숨어 있다. 들판 가운데 약간 솟아 있는 구릉지대가 명당이 형성되는 곳이다. 대동리가 그런 곳이고, 탄허 생가도 그렇다. 약간 구릉으로 솟아 있는 지점에 탄허 생가가 있었다.

이런 넓은 들판에서 태어나면 우선 포용력이 큰 인물이 된다. 사방이 터졌으니까 말이다. 갇히지 않는다. 탄허 생가 주변으로 조선시대 부처님의 환생으로 일컬어질 만큼 대단한 도력의 소유자였던 진묵대사의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위로는 한국 미륵신앙의 중창조인 진표율사가 태어난 동네가 있다. 여러 고승 중 이 근방 태생이 많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원행(71) 스님도 탄허 스님의 대동리 옆 동네인 소동리(小東里) 출신이다. 소동리에서 조금 더 가면 ‘왕칭이’라는 동네가 있고 여기에서 1950~1960년대 유명한 정치인이자 익산 남성고를 키웠던 윤재술의 동네가 있다. 간재 선생의 말년 제자가 윤재술이기도 하다.

김제, 만경 들판은 한반도의 쌀 창고였으므로 권력의 수탈이 심했다. 수탈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변화의 사상에 관심이 많았던 동네이다. 동학농민군도 이 동네 사람들이 많았다. 동학 이후 보천교의 텃밭이기도 하였다. 탄허의 속가 아버지 김홍규가 바로 보천교의 5대 핵심인물 가운데 하나인 목방주(木方主)이기도 하였다. 탄허의 사상적 뿌리는 집안 내력과 무관할 수 없다. 동학과 보천교를 관통하는 역사관은 후천개벽이다. 충청도 계룡산 자락의 연산에서 형성된 김일부의 정역팔괘와 후천개벽 패러다임은 서쪽 노선을 타고 내려와 이 김제, 만경 평야에서 꽃을 피웠다. 여기서 김일부의 사상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연담 이운규가 나오고, 이운규가 김일부에게 건네준 ‘影動天心月(영동천심월)’이라는 한 구절이 정역을 배태하게 만들었다. 이운규의 맥을 올라가면 전라관찰사를 두 번이나 지냈던 이서구가 나오고, 더 올라가면 화담 서경덕이 나온다. 조선 초 개성에서 한 소식을 했던 서화담의 선천팔괘, 후천팔괘 사상이 흘러흘러 김일부에게 전달되었고, 그 김일부의 정역이 20세기 후반의 한국 사회에 드러나게 된 계기는 바로 불가의 탄허였다. 1970~1980년대에는 탄허의 예언을 우습게 알다가 기후변화가 눈앞에 당도하니까 다시 탄허의 사상적 뿌리가 무엇이었는지 새삼 식자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