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층층이 열두폭 드리운 ‘물의 실타래’…‘순한 자연’에 몸을 누이다

醉月 2022. 7. 8. 14:12

■충남 금산 ‘십이폭포’


계곡 오르기가 산책 수준 평이
보통 걸음으로 30~40분 남짓
폭포 모습 수시로 변해 이색적

세번째 폭포까지는 실망스러워
다섯번째 ‘죽포동천’ 탄성 절로
15m 높이에 하나의 암반 형태


‘風패-바람을 패처럼 차고 있다’
바위 곳곳에 새겨진 글씨 눈길
‘고래·거북’ 폭포 이름도 다채

‘용담호 나눔숲’ 이국정취 만끽
‘운일암 구름다리’도 14일 개통
계곡 위 허공 가르지르며 놓여


충남 금산에는 ‘십이폭포’가 있습니다. 금산과 전북 진안의 경계에 솟은 해발 648m의 성치산. 그 산의 무자치 계곡에 걸린 열두 개 폭포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두근거리는 기대와 동행한 길이었습니다. 전날 수도권과 강원 영서, 충청도 일원에 장대 같은 장맛비가 쏟아졌으니까요. 비 피해만 없다면 장마철은, 몸집 불린 폭포를 구경하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밤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대비가 내렸으니 십이폭포의 위용이 기대됐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요. 인근에는 다 폭우가 쏟아졌는데, 금산에는 거짓말처럼 짧은 소나기만 슬쩍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계곡 물은 흘러넘치기는커녕 물길만 겨우 잇고 있었지요. 자포자기 심정으로 계곡을 올랐는데, 생각보다 폭포가 볼 만했습니다. 이곳의 폭포는 물이 넘칠 때면 넘치는 대로, 물이 마르면 또 마른 대로의 매력이 따로 있는 듯했습니다. 다음은 장마철에 갔지만 물이 없었던 성치산 십이폭포 이야기입니다. 이제 장마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으니, 곧 몸집을 불린 십이폭포도 우레 소리를 내며 쏟아지겠지요. 물이 가득한 십이폭포에 다녀오실 분들이 벌써부터 부러울 따름입니다.

금산·진안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 명재 윤증과 선비들의 자취

꼭 가야 하는 곳은 아니지만, 먼저 가볼 곳이 있다. 성치산 북쪽 금산군 남일면 음대리. 십이폭포에 오르기 전에 들른 곳이다. 음대리에 간 건 ‘명재 윤 선생 유허비’를 보기 위해서다. 유허비란 흔적 없는 빈터를 기리며 세운 비석을 말한다. ‘명재 윤 선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윤증. 비석이 기리는 빈터에 있었던 건 ‘산천재(山泉齋)’다.

나중에 윤증을 기리는 서원이 됐지만 산천재는, 윤증의 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러니까 윤선거와 윤문거가 세운 서재였다. 서재가 서원이 됐다가 이제는 서원도 사라져 민가 담장 아래 1896년에 세운 돌비석 하나만 남았다. 초라하게 풍화돼가는 비석만 남았지만, 산천재는 한때 당대의 문사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던 곳이다.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이들이었다. 송시열, 김수증, 김수항, 송준길, 이유태, 이시필….

성치산의 십이폭포는 산천재에 모인 선비들이 나들이나 시회를 다녀오기 딱 좋은 자리에 있다. 그러니 십이폭포는 산천재를 찾아들던 이들이 자주 드나들었으리라. 그런데 십이폭포는 기록으로 새겨진 게 없다. 산천재는 문장 여기저기서 보이지만, 이 십이폭포를 노래한 시도, 글도 전해지는 게 없다. 당대 ‘최고의 글쟁이’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이 정도로는, 내로라하는 명소에다 대면 시시하다고 생각했을까.

사실 십이폭포는 계곡과 물길의 규모도 작고, 높이도 높지 않다. 열두 개나 된다지만, 실제 폭포라 이름 붙일 만한 곳의 숫자는 그 절반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건 다른 계절 얘기고, 장마가 지나간 여름철만큼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장맛비가 내리고 나면 실타래가 걸리듯 계곡 곳곳에 폭포가 내걸린다. 장마철에 계곡을 따라서 그렇게 쏟아지는 폭포는 열두 개가 아니라, 이십 개도 넘는다. 산천재의 선비들은 장마 뒤끝의 장엄한 십이폭포를 보지 못했던 게 틀림없다.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십이폭포를 가봤다면야 어찌 글 한 줄 안 남길 수 있었겠냐는 말이다.



# 뱀도, 거북이도 없다… 무자치골

폭포가 있는 계곡을 ‘무지치(茂芝峙)’ 혹은 ‘무자치’ 골이라고 부른다. ‘무자치’란 물뱀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물뱀이 얼마나 많으면 계곡 이름으로 붙였을까. 잔뜩 긴장하며 내내 발밑을 살폈지만 계곡에 뱀은 없었다. 뱀을 봤다는 마을 주민도 없다.

십이폭포 들머리는 남이면 구석리다. ‘구석구석’이라고 할 때의 그 구석이 아니라 ‘구석(九石)’이다. 본래 이곳에 거북 형태의 바위가 있어 ‘구석리(龜石里)’라고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구(龜)’ 자가 어렵다는 이유로 ‘구(九)’ 자로 바꿨다고 전한다. 구석리를 지나 무자치 계곡으로 들어섰는데 아뿔싸, 이게 웬일일까. 계곡에 물이 없다. 물이 흐를 자리에는 풀썩풀썩 마른 먼지만 날렸다. 전날 수도권과 강원 영서, 충청지방에 장맛비가 물 폭탄처럼 쏟아졌는데, 이곳만은 딴 세상이었다. 비가 내리긴 했는데, 5분쯤 소나기가 내리고는 말았단다.

하류가 말라붙었으니 위쪽 계곡에 물이 있을까. 그런데 계곡을 따라 오르니 거짓말처럼 물소리가 청량하다. 무자치 계곡은 거의 전 구간의 바닥이 암반이다. 그러니 물이 스미지 않고 흐른다. 그렇게 계곡을 내려온 물이 암반이 끝나는 하류쯤에서 땅으로 스며들어 물이 마른 ‘건천(乾川)’처럼 보이는 것이다. 물론 비가 내리고 나면 무자치 계곡은 상류부터 하류까지 물이 계곡을 넘쳐 흐른다.

가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계곡은 개울보다 조금 큰 정도. 그래도 한 가족이 호젓하게 탁족을 하며 놀 만한 공간이 여기저기 있다. 걸터앉기 좋은 자리도 있고, 낮잠 잤으면 딱 좋을 너럭바위도 있다. 이르거나 늦은 휴가 시즌의 평일이라면 계곡을 독차지하고 호젓하게 서늘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 가벼운 산책길에 폭포 열두 개

십이폭포를 따라 무자치 계곡을 오르는 코스는 산행이나 탐방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십이폭포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30∼40분 남짓으로 거리도 짧은 데다 경사도 거의 없어 가벼운 산책 수준이다. 아이들도 문제없이 다녀올 수 있을 정도다. 계곡을 걷다 보면 열두 개의 폭포가 수시로 나타나니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다.

무자치 계곡에는 물소리가 제법 청아하다. 긴 가뭄에도 폭포의 물줄기는 한 군데도 끊어지지 않았다. 가뭄이 심할 때는 물줄기가 끊어져 폭포 몇 개조차도 찾을 수 없다는데, 지금은 물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두 개의 폭포를 다 볼 수 있다. 장마를 앞두고 국지적으로 드문드문 내렸던 비 덕분인 듯했다.

십이폭포의 번호는 하류에서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서 순서대로 매겨져 있다. 기대가 커서였을까. 가장 먼저 만나는 첫 번째 폭포인 제일폭포부터 네 번째 폭포인 삼단폭포까지는 좀 실망스럽다. 폭포의 규모가 작은 데다 물이 떨어지는 낙차도 그리 크지 않아 폭포 특유의 위용이나 결연한 느낌이 없다. 첫 번째 제일폭포는 폭포가 숲 속에 비밀스럽게 있는 게 아니라 사방으로 탁 트인 자리에 덩그러니 있어 신비감이 없고, 두 번째 장군폭포는 수량이 적어 볼품이 없다. 세 번째 일주문폭포는 두 바위가 문(門)의 형상이라는데 뭔가 억지처럼 느껴졌으며, 네 번째 삼단폭포는 이름처럼 삼단은 삼단인데, 그 높이가 계단 정도의 느낌이다. 이 구간에서 거대한 자연의 힘이 느껴지는 장쾌한 폭포의 경관을 생각했다면 십중팔구 실망한다.

십이폭포에서는 경관을 보는 눈높이를 바꿔야 한다. 무자치 계곡의 십이폭포가 보여주는 건 ‘통제 가능한 정도의 자연’이다. 계곡의 폭포는 거칠고 포효하는 자연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순한 자연이다. 가꾸거나 다듬은 것도 아닌데, 담양의 소쇄원이나 보길도 부용동의 원림(園林·옛 집터에 딸린 숲)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크기와 높이만으로 십이폭포를 본다면 시시하다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원림을 누리는 자세로 그곳을 보면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 죽포동천…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다

십이폭포 중에서 최고의 경관은 다섯 번째 폭포인 ‘죽포동천(竹浦洞天) 폭포’다.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십이폭포 중에서 보는 순간 ‘와’ 하는 탄성이 나오는 유일한 폭포다. 일단 15m쯤 되는 폭포의 높이부터가 압도적이다. 전체가 하나의 암반으로 이뤄진 폭포는 한 눈에도 웅장한 느낌이다.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크고 아름다운 폭포다. 그래서일까. 죽포동천 주변 바위에는 십이폭포 중 가장 많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폭포 아래 너럭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읽어보자. ‘하락(河落)’ ‘의하(疑河)’ ‘청뢰(晴雷)’라는 서로 다른 글씨체의 글이 새겨져 있다. 하락(河落)은 ‘물 하(河)’에 ‘떨어질 락(落)’을 쓴다. 그대로 해석하면 ‘물이 떨어진다’는 뜻인데, 여기서 하(河)는 물이 아니라 은하수를 뜻한다. 새겨서 뜻을 풀면 ‘은하수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의심할 의(疑)’에 ‘물 하(河)’자도 ‘물을 의심한다’는 게 아니라 ‘은하수인가 의심하노라’라는 뜻이다. 청뢰란 ‘갤 청(晴)’에 ‘우레 뢰(雷)’를 쓰는데, ‘맑게 갠 우레’가 아니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뜻이다.

폭포 윗부분에도 ‘죽포동천(竹浦洞天)’이란 큼지막한 글씨가 새겨져 있다. 죽포동천은 폭포 이름이 된 글씨다. ‘죽포(竹浦)’란 푸른 대숲 같은 우거진 수목이 맑은 물에 비쳐 수면이 대숲처럼 보인다는 뜻. 실제로 십이폭포가 만들어내는 소(沼)는 ‘동천(洞天)’이란 신선이 사는 별천지를 말한다.

폭포 아래 바위는 폭포 물살에 움푹 파였는데, 마치 아이스크림 스쿠프로 떠낸 것처럼 생겼다. 비가 내린 뒤에는 우르릉거리며 폭포수가 흘러넘치지만, 갈수기에 물이 줄면 푸른 물이 고인 이 자리는 한 사람이 누우면 딱 맞는 욕조가 된다. 요즘처럼 뜨거운 삼복 더위를 쫓는 데는 이만한 자리가 없다. 더위를 씻어내는 게 어찌 계곡 물의 차가움 뿐일까. 청량한 숲의 기운과 폭포의 시원한 물소리가 더위를 저만큼 밀어낸다.



# 폭포 옆에 새긴 시(詩)를 읽다

죽포동천 폭포 위쪽으로 여섯 번째 폭포부터 열한 번째 폭포까지는 거의 붙어있다시피 하다. 죽포동천 아래쪽에는 이렇다 할 글씨가 없지만, 죽포동천 위쪽 폭포에는 여기저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아래쪽 폭포보다 위쪽 폭포에 선비들이 더 자주 드나들었던 모양이다. 바위에 새겨진 글 중에는 도가적 사상의 낭만적인 문장도 있고, 풍류로 가득 찬 글도 있다. 폭포와 폭포 사이는 가깝지만, 그걸 찾아 읽고 새기느라 걸음이 느려진다.

여섯 번째 ‘소유천(小有天)폭포’ 암반에는 시가 적혀있다. “눈을 뿜어 숲나무 끝과 벽에 푸른 안개 피어오르고 / 층층이 열두 개의 신령스러운 발이 걸려있으니 / 석문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네 / 이것이 구지봉과 소유천이라는 것을 알겠네.” 구지봉은 중국 간쑤(甘肅)성에 있는 산 이름이고, 소유천은 허난(河南)성에 있는 골짜기로 도교에서 신선이 살고 있다고 믿는 곳이다.

소유천폭포 위쪽으로 몇 걸음만 오르면 검은 이끼가 낀 암반에 큰 글씨로 ‘풍패(風패)’라고 적혀있다. 풍패란 ‘시원한 바람을 패처럼 차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운치 있는 표현이라니…. 폭포가 이어지는 계곡 사이로 부는 서늘한 바람이 바위에 새긴 글씨에 값하고도 남는다.


# 눈과 구름, 그리고 학을 탄 선비

일곱 번째 폭포는 ‘고래폭포’다. 물살의 형상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물살이 부챗살처럼 넓게 펼쳐지는 작은 폭포인데, 그 모습이 수염고래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다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여덟 번째는 ‘명설(鳴雪)폭포’다. 바위에 새겨진 글귀를 그대로 이름으로 삼았다. 명설. ‘울 명(鳴)’에 ‘눈 설(雪)’ 자를 쓴다. 폭포의 물소리는 울음(鳴)이고, 흰 물보라는 눈(雪)이라고 보았던 것일까.

아홉 번째는 ‘운옥(雲玉)폭포’다. 흰 암반 위를 물살이 흐르고 꺾여 흐르는 와폭이다. 와폭은 여섯 개의 작은 못을 만들어서 흐른다. 흰 암반을 구름(雲)으로, 폭포수에서 튀는 물방울을 옥(玉)으로 보았던 것일까. 열 번째 폭포는 ‘거북폭포’다. 자그마한 바위가 거북의 머리를 닮았고, 작은 폭포가 만든 소(沼)를 거북의 등껍질로 보고 붙인 이름이다.

열한 번째는 길게 이어지는 와폭인데, 폭포가 흘러내리는 물길이 매끈하다. 그래서 그럴까. 폭포의 이름이 ‘금룡(錦龍)’이다. 금룡폭포에서 뚝 떨어진 곳에 마지막 열두 번째 폭포가 있다. 폭포의 모양도, 폭포 아래 소(沼)도 그다지 특별한 게 없는데 작은 폭포 바로 옆에 ‘산학(山鶴)’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산학에서는 학을 타고 다니는 선비와 신선, 두 가지 이미지로 다가온다. 벼슬과 부귀를 좇지 않고 자연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는 선비. 산천재에서 학문을 닦으며 평생 벼슬하지 않고 청빈한 생활을 했던 윤증과 그의 아버지 윤선거를 뜻하는 것일까.

장맛비가 내리지 않았어도 십이폭포는 더위를 식히고 풍류를 느끼며 소요하기에 모자람이 없지만, 장맛비가 내리고 난 뒤면 더할 나위 없다. 장맛비가 내리고 딱 이틀 뒤면 가장 훌륭한 경관을 보여준다. 스무 개가 넘는 폭포가 바위에 내걸리는 풍경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열두 개의 폭포가 있는 계곡이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다는 것이다.



# 성치산 북쪽 금산과 남쪽 진안

성치산을 중심으로 보면 북쪽은 십이폭포가 있는 충남 금산 땅이고, 반대편 남쪽은 전북 진안이다. 진안 쪽 성치산 발치에는 용담호가 있는데, 용담호 못미처 ‘용담호 녹색 나눔 숲’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12년 7월 산림청 복권기금으로 조성된 거대한 숲이다. 이 숲에 주천생태공원이 있다. 골프장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초지에 크고 작은 생태호수와 습지가 있고 그 주위로 참나무와 자작나무, 메타세쿼이아 등 다양한 나무들이 아름드리로 자라나서 이국적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경관만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는데도 찾아오는 이들이 거의 없다. 이런 외딴곳에다 조성하기에는 생태공원의 규모가 커도 너무 크다. 습지와 숲이 어찌나 큰지 걸어서 돌아보는 게 엄두가 안 날 정도다. 게다가 관리가 잘되고 있지 않기도 하다. 그러니 간혹 이곳을 찾는 이들은 생태공원을 아예 차로 드나든다. 차량 출입을 통제하지 않으니 차를 몰고 생태공원을 둘러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초지의 비포장 길을 조심조심 가다가 공원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생태호수 주변의 초록과 하늘의 구름이 수면에 그림처럼 찍히는 모습을 감상하다 보면, 이국의 휴양지 어디쯤 여행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주천생태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안의 ‘운일암반일암’이 있다. 운일암반일암은 명덕봉과 명도봉 사이의 협곡에 붙여진 이름이다. 거대한 계곡을 따라 집채만 한 기암괴석들이 겹겹이 자리 잡고 있어 일찌감치 명승지로 꼽혔던 데다 국민여가캠핑장이 들어서면서 여름 피서지로 이름을 알린 곳이다. 이곳에 오는 14일 ‘운일암반일암 구름다리’가 개통한다. 운일암반일암 계곡 위 허공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다. 구름다리는 지난 6월 8일부터 임시개통 중이라 지금도 건널 수 있다. 캠핑장 주차장에서 걸어서 왕복 50분쯤 소요된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금산에도 월영산과 부엉산을 잇는 ‘월영산 출렁다리’를 완공했다. 제원면 원골유원지 인근의 금강 물길을 건너가는 구름다리다. 다리 길이가 275m로 운일암반일암 구름다리보다 55m가 더 길다.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비슷비슷한 관광시설을 지으면서 ‘자고 나면 출렁다리가 하나씩 만들어진다’는 비판 속에서 지어진 진안과 금산의 출렁다리는, 일단 관광객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먼저 개통한 월영산 출렁다리는 한 달 반 만에 20만 명의 방문객을 불러들였을 정도다. 진안의 구름다리도, 금산의 출렁다리도 사실 특별할 건 없다. 출렁다리는 이제 자체의 매력보다는 ‘목적지 좌표’를 설정하는 임무와 역할이 더 큰 듯하다. 그러기에는 너무 비싼 좌표지만 말이다.


■ 금산의 보석, 보석사

진악산 자락에 있는 절집 보석사는 경내에 있는, 입이 딱 벌어질 만한 위용의 은행나무 노거수 하나만으로도 가볼 이유가 충분하다. 은행잎이 물드는 가을이 가장 좋지만, 요즘 같은 여름철도 이에 못지않다. 지금 은행나무는 잎보다 둥치다. 무성한 잎을 달고 있는 거대한 밑동과 거친 수피가 나무가 지나온 시간을 보여준다. 경내로 들어서는 오솔길에 하늘을 찌르듯 서 있는 전나무들의 청량함은 물론이고, 산내 암자인 영천암까지 가는 서늘한 그늘의 숲길 또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