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땡볕 막은 운동장 · 해 품은 요양원 ‘공간 쓰임’ 만큼 돋보인 ‘마음 씀’

醉月 2022. 11. 28. 08:48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스산한 초겨울, 무주로 떠나는 건축기행

봉하마을 사저 지은 고 정기용
군민 복지 애쓴 전 군수와 투합
서른 개 넘는 공공건축물 건립

늘 그늘 그득한 등나무 운동장
흙으로 빚어낸 진도리 마을회관
사는 사람들 편의에 맞춰 설계

문화관 지하주차장 대신 수영장
촌구석에 예산낭비 비아냥에도
완공 후 가장 인기 있는 시설로

면사무소 한쪽 잘라내 목욕탕
버스 정류소엔 풍경 담은 액자
곳곳에 마음 움직일 공간 가득



겨울에 여행지를 고르는 건 쉽잖은 일입니다. 자연경관이 어디든 다 황량해지는 때라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즈음은 여행에 대한 욕망이 줄어드는 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때보다 지금처럼 스산한 초겨울이 훨씬 더 좋은 여행지도 있습니다. 다른 계절의 화려한 자연에 묻히거나 가려서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의 뼈대가, 나뭇잎이 다 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곳입니다. ‘어딜 가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가 더 중요한 여행, ‘공간’보다 그 공간에 스며있는 ‘마음’이 더 중요한 여행. 그런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주 = 글 · 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건축을 보러 무주로 간다

이번 주의 목적지는 전북 무주다. 구천동 단풍은 이미 다 졌고, 덕유산의 설경은 아직 이른 무주에서, 지금 보면 딱 좋은 것이 ‘건축’이다. 두 가지 질문이 있겠다. 먼저 하나는 ‘건축이 무슨 여행이 되느냐’는 것.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유럽 여행의 주된 목적지인 광장과 성당은 모두 건축 아닌가. 고궁도, 고택도, 사찰도, 근사한 카페도 다 건축이지 않은가. 두 번째 질문은 ‘첩첩산중 시골에 무슨 건축이냐’다. 모르시는 말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사저 등을 설계한 건축가 고 정기용이 자그마치 서른 개가 넘는 공공건축물을 무주에 남겼다. 한 건축가가 소읍에다 이만한 숫자의 공공건축 작품을 남긴 건 그야말로 전례 없는 일이다.

확인된 것들만 서른 개쯤 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무주에는 그의 건축을 정리해놓은 기록이 없다. 서른 곳보다 두 배 이상으로 많은 예순 개가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내로라하는 당대의 건축가가 남긴, 그것도 민간 건축이 아니라 공공건축인데도 소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짐작이 가는 바는 있다. 정기용이 무주에 지은 건 모두 ‘공공건축물’이다. 당시 무주군수는, 정기용과 의기투합해 공공건축물 설계를 몰아주듯 줬다. 당연히 말썽이 났다. 소외된 이들의 투서가 빗발쳤다. 그때마다 혐의를 벗었지만 감사도 받고, 내사도 받았다.

정기용이 남긴 건축물을 보러 무주를 찾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무주에는 정기용의 이름이 희미하다. 복수의 무주 주민에게서 들은 ‘분석’은 이렇다. 3선을 다 채우고 군수가 물러난 뒤에 정기용의 이름은 일종의 금기가 됐다. 어찌 됐든지 전임군수 이름이 지역주민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건, 현직의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 그렇다고 ‘입을 막은’ 주체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냥 ‘밑에서’ ‘알아서’ ‘조용히’ 정기용 얘기를 묻었다는 게 무주에서 만난 이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이런 와중에 설계도가 없어졌고, 기록은 유실됐다.

무주에서 정기용 건축을 여행한다는 건 어쩌면 유실됐을지도 모를 그의 건축을 찾아내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관심이 높아지고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무주의 공공건축을 조사해 기록으로라도 정리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정기용 건축기행 안내 지도’라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 같아서는 적상산 아래 산촌 마을에 그가 남겼으되 애초의 쓸모를 잃은 지 오래인 서창향토박물관에 그의 공공건축이 담아낸 마음을 기리는 기념관이라도 들였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 마음이 만든 그늘…등나무운동장

정기용의 건축을 두고 흔히 ‘감응의 건축’이라 부른다. ‘감응(感應)’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어떤 느낌을 받아 마음이 따라 움직임’. 여기서 ‘마음이 움직인’ 주체는 건축가이기도 하고, 그의 건축물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정기용은 자신의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서 건물을 지었고, 그렇게 지은 건축은 앞에 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얘기다. 그의 건축에서 보아야 할 것은 공간의 효율이나 미감보다는 ‘마음 씀’이다. 그의 건축에서는 따스한 마음이 드러난다. 그가 지은 몇몇 건축물 앞에서 진짜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이유다.

정기용이 무주에 남긴 ‘마음’ 가운데 하나인 ‘등나무운동장’ 얘기부터 해보자. 정기용의 무주 건축 중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얘기다. 등나무운동장의 본래 이름은 무주 공설운동장이다. 운동장은 정기용이 설계했거나 지은 건 아니다. 그저 아주 작은 부분에만 손을 댔는데 그게 그의 건축이 지향하는 바를 극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준다. 김세웅(70) 전 무주군수를 등나무운동장 앞에서 만나 당시 얘기를 들었다.

“공설운동장에서 행사를 치를 때면 군민들이 잘 참석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을 어른께 ‘좀 나오시라’고 했더니 ‘군수만 떡하니 본부석에서 햇볕을 피해 앉아있고 우리는 땡볕에 있으라 하니 그게 무슨 경우냐’는 답이 돌아왔어요. 당장 군수실로 돌아와 운동장에 등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라고 지시했지요.”

그렇게 심은 240여 그루의 등나무가 제법 자라자 김 군수는 정기용을 불러 공설운동장을 보여 줬다. 등나무를 심긴 했는데 어떻게 덩굴을 지지하고 그늘을 만들지 설계해달라고 부탁했다. 정기용은 즉석에서 연필을 꺼내서 종이에 스케치했다. 그는 ‘행정기관이 군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자체만으로 건축은 다 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뒤에 술회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등나무운동장 관중석을 빙 돌아 세워진 지금의 철제 구조물이다. 구조물은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기둥을 뒤쪽에 뒀고, 주인공인 등나무를 가리지 않도록 딱 나무 굵기 만한 철제로 지었다. 구조물을 감고 자란 240여 그루의 등나무는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운동장에 풍성한 그늘을 드리고 있다.

지루하고 밋밋하기 짝이 없는 표정의 중소도시 공설운동장이 등나무를 심은 군수의 마음과 그늘을 설계한 건축가의 마음이 합쳐져서 근사한 등나무운동장이 됐다. 이 얘기는 주민들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관료, 혹은 사용자들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축에 대한 우화처럼 읽힌다. 등나무운동장은 보라색 등꽃이 환하게 피는 늦봄이 최고지만, 낙엽이 이불처럼 덮인 이즈음의 등나무운동장 관중석 분위기도 제법이다.


# 흙으로 지은 공공건축…진도리 마을회관

정기용은 어떻게 무주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됐을까. 그가 무주에 지은 첫 건축물은 마을회관이다. 서울 빈민촌에 교회를 짓고 빈민을 위해 헌신하다 생태운동에 뜻을 두고 1996년 무주로 귀농한 허병섭 목사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귀농 후 이장호 영화감독, 정범구 전 국회의원 등과 함께 무주 안성면에다 예술인 마을을 만들 계획을 추진하고 있던 허 목사는, 친분이 있던 정기용에게 마을회관을 흙으로 지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여기에 답하면서 무주를 드나들게 된 정기용은 흙 건축으로 진도리 마을회관을 지었다.

진도리 마을회관은 흙으로 지은 최초의 공공건축이다. 나무를 켜서 기둥으로 세우고 진흙을 이겨 흙벽을 쳤다. 누마루와 정자, 사랑방 등을 둔 옛집 공간형태의 흙집 구조 건물이다. 지붕은 곡선으로 마감해 지루한 느낌을 덜었다.

2007년 정기용이 10여 년 만에 다시 마을을 찾았을 때, 마을회관은 외관도, 내부 공간도 달라졌다. 내부가 완전히 바뀐 건 물론이고 개방감 넘치는 누마루의 난간에도 유리창이 끼워져 실외이던 공간이 실내가 됐다. 그걸 보고 온 뒤에 정기용은 이렇게 적었다.

“평범하고 좋은 건축이란 쓰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다. 진도리 마을 사람들 또한 훌륭한 건축가들이다.”

그는 생전에 입버릇처럼 ‘건축가의 가장 큰 약점은 거기 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건축은 보이는 것보다는 생활하는 공간이어서 거기 사는 사람들이 불편한 걸 고치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건축은 완벽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마을회관은 지금 외관은 그대로 둔 채 다시 고쳐 짓고 있는 중이다. 기둥의 썩은 밑동 일부를 새 나무로 다시 끼워 넣었고, 내부 공간도 전체적으로 다시 구획했다. 건축가의 손을 떠나 두 번째로 고쳐 짓는 마을회관은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건축가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면 진도리 마을회관은 ‘다시 한 번 주민들의 개입으로 더 좋은 건축이 돼가는 중’이다.


# 주차장 대신 수영장과 극장을

김 군수가 정기용에게 직접 맡긴 첫 공공건축은 ‘예체문화관’이었다. 건축가에게 맡길 당시에 예체문화관은 이미 설계가 다 끝나 손을 쓸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김 군수는 기존의 설계도에서 무신경하게 배치한 지하주차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큰돈을 들인 건물 지하를 주차장으로 쓴다는 게 아까웠어요. 지하를 싹 뜯어고쳐서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이나 헬스클럽 같은 걸 넣어보자고 했지요. 남이 설계한 설계도에 덧대는 작업이라 ‘나를 뭐로 보고…’란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제안했는데, 취지를 듣고는 뜻밖에 흔쾌히 응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김 군수는 최종 정규학력이 중졸이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식당을 운영한 적도 있고, 신문사 지국장으로 일한 적도 있지만 건축에는 문외한이었다. 건축의 가치를 깨달은 건 유럽 여행을 통해서였다고 했다. 공간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건축의 힘과 기능을 깨달은 그는, 정기용에게 ‘독창적이고 따뜻한 건축의 공간을 만들려면 민간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런 방편으로 좋은 공공건축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도와달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정기용 건축가가) 손을 꼭 잡고 ‘도와드리겠다’고 해요.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지요.”

정기용은 지하층을 건물 앞쪽으로 끌어내서 공간을 확대한 뒤 헬스클럽을 넣고 수영장과 사우나를 들여놓고 위층에는 공연장과 미술관, 도서관을 넣었다. 군의회에서 “이 촌구석에서 누가 수영을 하겠냐”며 수영장 건립을 ‘전시성 행정’이나 ‘예산 낭비’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완공 후 수영장은 군민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설이 됐다. 작은 극장인 ‘산골영화관’을 넣은 건 이장호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등나무운동장과 예체문화관은 바로 이웃해 있다. 등나무운동장을 돌아보고 예체문화관의 최북미술관을 둘러보거나, 산골영화관에서 개봉 영화 한 편 보고 오는 걸 추천한다. 무주 출신인 최북은 18세기 문예 부흥기를 바람처럼, 광인처럼 떠돌았던 화가. 그림이 잘 안 된다며 제 눈을 찔러 한쪽 눈을 실명하는 등 기행이 끊이질 않았던 인물이다. 미술관에서는 소동파의 ‘빈 산에 사람은 없고 물 흐르고 꽃피네’라는 시구의 쓸쓸한 정서를 강렬한 필치로 그려낸 ‘공산무인도’를 비롯해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다. 미술관 개관 이후 무주군이 사들인 진품 4점도 있다.


# 무주프로젝트가 시작되다

다시 김 군수의 회고담. “정기용이 건축한다면 시공업자들이 손을 다 내저었어요. 돈이 안 남는다는 거예요. 다른 건축가들은 자재품을 넉넉하게 주문해 어느 정도 남기도록 해서 부수입이 생기는데, 정기용은 딱 맞춰서 자재를 주문해요. 그러니 다들 안 한다 그랬지요.”

그런 사정을 아는 김 군수는 정기용을 돕기 위해 편법을 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공공 건축물 설계비가 보통 억대를 넘는데 당시 군수의 재량으로 수의 계약을 할 수 있는 계약의 금액 기준은 3000만 원 미만. 그래서 2900만 원에 설계 계약을 한 뒤에 감리까지 맡기는 방식으로 수익을 보전해줬다는 얘기다. 그래도 돈이 남지 않으니 회사 직원들이 정기용에게 ‘무주군의 일은 맡지 말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예체문화관 공사 직후 김 군수는 정기용에게 안성면사무소 건축설계를 맡겼다. 인구 2만6000명에 불과한 작은 지역에 10년 가까이 이어진 정기용의 공공건축물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건물 한쪽을 뚝 잘라내서 주민들이 이용하는 목욕탕으로 만든 기발한 발상의 안성면 행정복지센터나, 깨진 유리병을 꽂은 시멘트 담을 헐고 주차장을 밀어내 근사한 정원으로 만든 군청 뒷마당은, 지금은 고인이 된 건축가와 은퇴한 군수가 젊은 시절, 협업으로 지어낸 것이다. 건축가는 세상을 떴고, 군수는 물러나 소일하고 있지만 건축은 설계 당시 모습 그대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기용이 만든 건축은 공간 하나하나에서 세심한 의도와 마음이 읽힌다. 가령 적상면행정복지센터 건물 바깥으로 빼낸 긴 경사로는, 민원을 위해 찾은 주민들이 경사로를 따라 걸으며 적상산과 주변 풍경을 보라는 건축가의 의도다. 면사무소 3층의 작은 테라스는 적상산을 보는 전망대다. 두 곳 모두 제가 사는 땅이 얼마나 근사하고 아름다운지를 감상하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건축을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끝도 없다.

# 무주에서 공공건축 찾아가기

공공건축물은 보통 공공 소유의 땅에 밀집해 있다. 무주의 경우도 그래서 건축 구경을 하러 다니기 편하다. 무주읍에서 가장 많은 공공건축이 몰려 있는 곳이 당산리 일대다. 이곳에 보건의료원과 평화요양원, 장애인노인종합복지관, 농업기술센터가 몰려 있다. 모두 정기용이 설계하거나 리모델링한 건물들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노인 거주시설인 평화요양원이었다. 뒤에서 보면 직선의 평범한 건축물인데 앞쪽에 벽돌을 쓰고 기와를 얹고 공간을 나눠서 앞에서 보면 마치 단독주택처럼 보인다. 거실과 마당이 이어지는 공간배치는 여기가 낯선 ‘시설’이 아니라 익숙한 ‘집’처럼 여겨지게 한다. 어르신들이 이곳을 제집처럼 편안하게 느끼게 하기 위한 섬세한 배려다. 이런 배려가 곳곳에 있다.

평화요양원의 주인공은 ‘빛’이다. 유리로 마감된 건물 중심의 중정이 유난히 밝고 환하다. 태양광 집전판으로 덮어버려 아쉽긴 하지만,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해놓은 건물 중심 공간이 인상적이다. 불편하고 아픈 이들을 위한 배려다.

복지관 옆은 무주 보건의료원이다.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을 사들여 리모델링한 보건의료원을 손보면서 건축가는, 병원 후문 장례식장 바깥에다 특히 공을 들였다. 후문에 건물을 덧달아서 버스 대합실 같은 공간을 마련했는데, 외벽을 반쯤 뚫어놓아 그 공간으로 파노라마처럼 무주의 경관을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망자가 장례식장을 떠나는 순간 커다란 창으로 자기가 살던 마을을 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이렇게 봐야 할 곳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무주 추모의 집은 인삼포 형상을 한 납골당 건물이 인상적이고, 서창향토박물관은 건물의 감각적인 미감이 돋보인다. 정류장 좌석을 ‘ㄱ’ 자로 배치해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게 한 것이나, 단정한 시멘트 구조물로 액자를 만들어놓고 바깥의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인 버스정류소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궁금한 게 또 하나 있다. 정기용은 ‘왜 무주를 택했을까’다. 그 대답이 그가 쓴 책 ‘감응의 건축’에 있다. 처음 허병섭 목사를 만나러 무주읍을 지나 안성면에 도착하던 날을 그는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날 안성면의 첫인상을 두고 그는 책에다 ‘평생을 잊지 못할 풍경’이라고 적었다. 안성면의 풍경이 어떻길래….

덕유산의 자락인 안성면은 해발고도가 높은 분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늑하면서 따스하다. 그런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안성면 공정리의 카페 ‘정원산책’이다. 잘 꾸민 정원으로 이름난 카페인데 이 카페의 백미는 정원보다 석양이다. 꽃이 없는 계절이지만, 꽃이 있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언덕 위 카페에서 보는 해 질 무렵 안성면 전경은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건축가가 평생 잊지 못할 풍경으로 기억해둔 풍경이 이랬으리라. 저무는 해를 보며 무주로 떠난 건축 기행을 마무리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 무주 건축기행에 요긴한 책

정기용 건축가가 무주에 남긴 건축물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겠다면 무주군에서 발간한 ‘정기용 무주공공건축 프로젝트’란 책이 요긴하다. 오지 여행가로 활동하다 14년 전 아무 연고 없는 무주에 정착한 여행작가 최상석 씨가 공들여 쓴 책이다. 외부 배포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어서 쉽게 구할 수는 없지만, 관광안내소 등에서 문의하면 볼 수 있다. 책에는 정기용의 공공건축이 장소별로 잘 소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