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外之士

列傳小傳_동방삭[東方朔]

醉月 2009. 7. 17. 05:49

列傳小傳 동방삭(東方朔)

 

ⓒ 삽화 박영철

 

3,000갑자를 산 동방삭

동방삭은 기행의 인물이며,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3,000갑자를 살았다.

또는 서왕모의 선도복숭아 밭(蟠桃園)에 몰래 들어가 선도복숭아를 세 번 훔쳐 먹었다.'는 등 가지가지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동방삭에 대한 역사적 기록으로는 동방삭과 동시대인이던 사마천이 그의 ‘사기열전’ 중 골계열전(滑稽列傳 第66)'에 약 1,000자 조금 넘게 기재되어 있고, 한서(漢書)에도 출세를 위해 그가 한무제에게 올린 상서 일부가 전해져 온다.

 

◈ 출세를 위해 상서를 한무제에게 올리다
한무제가 황제자리에 있을 때는 혼란하던 전국시대도 끝나고 10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으며, 한제국의 판도도 넓어졌고,

내정도 충실하여 바야흐로 태평시대로 가고 있었다. 기원전 141년에 즉위한 한무제는 현명한 황제였다.

아직 과거제도가 시행되지 않았으므로 한무제는즉위한 그해에 전국에 명령을 내려 어진 사람을 뽑아 올리도록 하였다.

재야에 숨어있는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여 등용하려 하였다. 한서를 보면 '사방의 선비들이 상서(上書)하여 스스로 재능을 자랑하며 등용되기를 희망하는 자, 천(千)을 헤아렸다.'하니 벼슬길로 가려는 경쟁이 치열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시골의 젊은 동방삭도 출세를 위해 상서했던 수천 명 중 한 사람이었다. 동방삭은, 상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뛰어난 상서의 내용이나 형식을 준비하였다. 자기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첨가하여 단번에 눈에 띄도록 파격적으로 만들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골계열전 제66)을 보면,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기재하고 있다. 동쪽 제나라 촌놈이 멀리 수도, 장안(長安)까지 와서 공차(公車)라는 관가에 가서 상서를 제출했다. 이때 제출한 상서는 죽간 3,000조각에 내용을 적은 것으로,

관리 2명이 간신히 들고 운반할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아직 종이가 없었으므로 대나무 조각이나 나무판자에 글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동방삭이 올린 상서의 분량은 엄청나게 많은 것이었다.

많은 상서 중에서도 신기하고 특이했기 때문에 한무제의 눈에 제일 먼저 띄었다.

그런데 한 번 읽어보니 내용 또한 재미있고 특별했다. 한무제는 동방삭의 상서를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여 공무가 있으면 그 자리에 표시해 두었다가 다시 짬이 날 때마다 그 다음부터 읽고 해서 내용을 다 읽는데 2개월이나 걸렸다(讀之二月乃盡)고 한다.

그런데 2개월이나 걸렸다는 것은 단순히 분량이 그 정도로 많았다기보다는 그 내용이 재미있어서 단숨에 다 읽어 버리기에는 아깝고 서운하여 조금씩 읽었으리라는 추측이다. 동방삭의 상서내용이 어떠했는지는 한서(漢書)에 나와 있는 대로 일부 소개해 보겠다.

 

◈ 상서의 내용 중 일부
"신(臣) 동방삭(東方朔)은 어릴 때 부모를 잃었으며, 장성해서는 형수를 보살폈습니다. 12세부터 공부하기를 삼동(三冬:3년), 문과 사(文史)를 다룰 수 있게 되었으며, 15세에 격검(擊劒:장검 쓰는 법을 배움)을 하였고, 16세에는 서(書:사서삼경 중 서경)를 공부하였습니다.

암송한 것이 23만어, 19세에는 손자와 오자의 병법과 전진(戰陣)의 법을 배웠으며 이때 외운 것이 22만어, 따라서 신(臣) 삭(朔)이 암기하는 말이 도합 45만어이며 또한 항상 자로(子路)의 말을 따랐습니다.

신(臣) 삭(朔)의 나이 22세에 신장이 9척2촌, 눈은 구슬을 걸어 놓은 것 같고, 이(齒)는 조개를 짜 넣은 것 같습니다. 용감하기는 맹비(孟賁), 빠르기 또한 경기(慶忌)와 같으며, 청렴하기는 포숙(鮑叔)과 같고 신의를 지키기는 미생(尾生)과 같습니다…. 모든 것이 이러하니 이로 보건대 천자(天子)의 대신(大臣)됨이 마땅합니다."

 

궁중에 한가로이 은둔하며 수행

 

◈ 기이한 행적
동방삭이 관청에 제출한 상서는 죽간 3,000조각에 달하였다. 이를 읽어보던 한무제는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2개월에 걸쳐 다 읽어 보고는 상서 마지막 부분의 "천자(天子)의 대신(大臣)됨이 마땅함"이란 대목에서 빙그레 웃고는 ‘참 재미있는 놈이로구나.’ 하면서 동방삭을 낭관(郎官)으로 삼았다 한다. 낭관은 시종견습에 해당되는 직책으로 늘 황제 곁에 있으면서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는 업무를 맡았다.
사마천의 사기열전(골계열전 제66)을 보면 동방삭의 특이한 면은 그의 기행(奇行)에 있었다. 한무제를 모시고 식사를 하거나 시중을 들 때, 먹다 남은 고기는 전부 품에 싸서 가지고 왔는데 옷이 끈적끈적해져 말이 아니었다(飯已, 盡懷其餘肉持去, 衣盡?). 또 비단 등을 하사 받으면 그것을 어깨에 메고 퇴궐했다. 하사받은 돈이나 비단을 모았다가는 그것으로 젊은 미인을 샀으며,

1년 쯤 뒤에는 버리고 다시 젊은 미인을 샀다(率取婦一歲所者 卽棄去, 更取婦).

 

◈ 깊은 산속이 아닌 구중궁궐에 은둔하다
동방삭 주변의 동료들이 모두 동방삭의 이러한 행태를 보고는 선비로서 품위가 없다는 등 미친 사람(狂人)이라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한 번은 궁중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데 누가 “사람들이 자네를 미친 자라고 한다네.”라고 한다. 동방삭은 이에 “나는 말하자면 궁중에 한가로이 은둔하고 있는 셈이지(所謂避世於朝廷閒者也), 옛날의 은둔자들은 심산유곡에서 세상을 피했지만(古之人, 乃避世於深山中)!”라고 대답했다.

동방삭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땅에 넙죽 드러누워 노래를 부르곤 했다.

 

陸沈於俗  [육침어속] 속세에 푹 파묻혀
避世金馬門   [피세금마문] 궁궐 문안에서 세상을 피한다네
宮殿中可以避世全身  [궁전중가이피세전신] 궁전 안에서 세상을 피해 몸을 온전히 하나니
何必深山之中, 蒿廬之下   [하필심산지중, 호려지하] 하필이면 깊은 산속, 초막 아래가 아니어도 좋은 것을!

 

동방삭의 하염없는 넋두리 같은 노래 가락을 보면, 도를 찾아 수행을 하고 심성을 닦는데 어찌 꼭 심산유곡 암혈에서만 가능하단 말인가?

확실한 현실적 이익 앞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모순 속에서, 조직속의 불합리한 현상 속에서,

즉 가지가지 세상의 모순을 피하지 않은 채 벼슬과 금전에 초연하면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동방삭의 기행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사실 동방삭은 아마 달관의 경지에 있었을 것이다. 한무제는 동방삭의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는지, 다른 시종들이 동방삭을 미친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일을 시키면 아무도 그를 능가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동방삭의 출생 내력

동방삭은 한나라때 사람이며 어릴 때 만천(曼人+靑)이라 불렀으며 이백여세 살았는데 얼굴은 동자와 같았다 한다. 동방삭의 아버지는 장이(張夷)이고 자(字)는 소평(少平)이었다. 동방삭의 어머니는 전(田)씨인데 불행히도 동방삭을 낳은 지 3일만에 죽었다고 한다. 이때가 한나라 경제(景帝) 3년(기원전 154년)이다. 동방삭의 어머니가 죽고 아이를 키울 방도가 없자 아이를 길가에 버렸다. 마침 이웃 집 노파가 측은지심이 일어나 아이를 데리고 가 키웠다고 한다. 이때가 이른 새벽이고 동방이 점차 밝아오고 있었으므로 성씨를 '동방(東方)'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날이 아마 초 하루날이어서 이름을 '삭(朔)'으로 하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또 하나의 출생비화

동방삭의 아버지인 장소평이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 전(田)씨는 오랫동안을 혼자 살았다. 어느 날 깊은 밤에 전씨는 잠결에 하늘로부터 한 사람이 내려와 그녀의 배를 힘껏 누르는 꿈을 꾸었는데 이 꿈을 꾼후에 임신을 하였다고 한다. 임신한 사실에 놀란 전씨는 스스로 “지아비가 없이 자식을 임신하였으니 다른 사람들이 알면 얼마나 나를 경멸할 것인가?” 탄식하면서 이웃 지역인 동방리(東方里)로 이사하여 살았다. 5월 모일(某日), 하늘이 막 밝으려할 때 아이가 태어났다. 전씨가 동방리에 살고 있었으므로 지명인 ‘동방(東方)’을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

 

천재소년 동방삭

태어난 지 잠깐 사이에 동방삭은 이미 삼 세가 되었다. 동방삭은 기억력이 뛰어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눈이 지나간 곳은 모두 암송하였다. 늘 작은 손을 흔들어 하늘을 가르키면서 암송한 글귀를 혼자 중얼거리며 반복하였다 한다.

 

어린 동방삭, 수개월씩 어디론가 사라지다

어느 하루 동방삭은 어디론가, 아무도 모르게 홀연 사라졌는데 몇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집에 돌아와 양모(養母)의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또 외출을 했다. 이번에는 1년이 지나서 집에 돌아왔다. 이러한 동방삭을 본 양모는 크게 놀라면서 꾸짖듯이 묻는다. “너는 집을 나간 지 1년만에야 돌아오는데 양모인 나에게 한 마디 말도없이……. 어쩌면 나를 볼 낯이 있는가?”하였다. 이 말을 들은 동방삭은 심히 괴이하다면서 변명하였다. “양모님, 저는 다만 자니(紫泥:무도武都에서 나는 자줏빛 진흙으로 조서를 봉하는 인주로 썼음) 의 바닷가를 한번 갔다가 옷이 자줏빛으로 물들어서 ‘우천(虞泉)’이라는 곳에 가서 옷을 빨았습니다. 저는 새벽에 집을 나서 오후 쯤 되돌아 왔는데 어떻게 집 떠난 지 1년이나 되었다고 하십니까?”하였다.

이 말을 듣고 그의 모친은 추궁하듯 “너는 도대체 어느 곳을 갔다 왔느냐?”하고 물었다. 동방삭은 “저는 더러워진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명도숭대(冥都崇臺)란 곳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어렴풋이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멋지게 차려입은 고귀한 사람이 저에게 복식(服食:도가에서 장생불사의 약을 복용하는것), 붉은 밤(丹栗), 신선이 먹는 음료(霞漿) 등을 주어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 답답하고 참을수 없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고 하였다.

 

호랑이를 타고 돌아오다

동방삭은 양모에게 “의식이 몽롱한 가운데 낯선 사람들이 주는 진기한 음식들을 너무 많이 먹었습니다.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하여 하마터면 죽을 뻔하였습니다. 다행히 신선들이 마신다는 현천황로(玄天黃露)라는 귀한 음료를 마시고 가까스로 위험한 상태를 벗어나, 몸의 안정을 찾으면서 잠결에서 깨어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공교롭게도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길을 가로막고 누워 있었습니다. 길을 재촉하기 위해 몸을 날려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타고는 필사적으로 호랑이 등을 두드렸습니다. 호랑이가 아파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달리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소자의 다리를 물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양모는 이러한 사정을 알고는 몹시 마음이 아픈지 얼른 헝겊을 길게 찢어서 호랑이에게 물린 상처를 싸매주었다.

 

상처를 감싼 헝겊이 용(龍)으로 변하다

얼마 후에 동방삭은 다리의 상처가 아물자 또 집을 떠나 만리 밖으로 구경을 갔다. 한 번은 낯선 곳을 지날 때, 커다란 고목을 발견하고 상처를 싸맸던 헝겊을 풀어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자 이 기다란 헝겊이 한 마리 용(龍)으로 변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포룡택(布龍澤: 기다란 천이 용으로 변한 못)이라고 불렀다.

 

생모(生母)와 황색 눈썹의 부친을 만나다

한무제 원봉(元封)년간에 동방삭은 홍몽(鴻蒙)이라는 못으로 놀러가서 우연히 그의 생모라는 전(田)씨를 만났는데 마침 백해(白海)라는 해안가에서 뽕을 따고 있었다. 동방삭이 깜짝 놀라 순간 멍하니 서 있었다. 이때 황색 눈썹을 한 노인이 앞으로 다가오더니 전(田)씨를 가리키면서 동방삭에게 “그녀는 태백성(太白星:金星) 정혼(精魂)의 화신이다. 따라서 너도 이 태백성의 정혼(精魂)이다. 나는 종래 음식을 먹지 않는다. 단지 기(氣)를 삼키며, 지금 이미 90세가 넘었다. 그러나 두 눈은 밝아 일체 감추어져 있는 물건도 무엇이나 능히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3,000년에 한 차례씩 뼈를 바꾸고(換骨) 골수를 씻는다(洗髓). 또 2,000년에 한 차례씩 껍질을 벗고(剝皮) 털을 갈고(伐毛)있다. 이번 생애에 이미 3차례 세수(洗髓)하였고, 5차례 털을 갈았다(伐毛).”고 하였다.

 

한무제, 늙지 않는 방법을 묻다 (지하세계 이야기)

한무제 때 동방삭이 태중대부(太中大夫)를 맡고 있을 때이다. 한무제는 만년에 신선술(神仙術)을 좋아하였다. 동방삭을 특별히 총애하였는데 한번은 동방삭에게 물었다. “짐(朕)이 사랑하는 첩을 영원히 늙지 않게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는가?” 동방삭이 답하기를 “동북지방에 가면 영지초(靈芝草)가 있고, 서남해중에는 봄에 자라는 고기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사람들이 먹으면 수명을 더하고(延年益壽)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게 합니다.”라고 하였다.
동방삭의 말을 들은 한무제는 흥미가 진진하여 서둘러서 추궁하듯 묻는다. “동방삭! 자네는 이것을 어떻게 아는가?” 동방삭이 대답하기를 “당초, 태양 속에 있는 다리가 세 개 달린 새(三足鳥)가 지상에 내려와 영지초(靈芝草)를 먹으려 하는데 태양차(日車)를 돌린다는 희(羲)란 사람이 손으로 삼족조(三足鳥)의 두 눈을 가려 지상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 삽화 박영철

기이한 지하세계 이야기

동방삭은 한무제에게 늙지 않게 하는 약을 이야기하였다. 동북에서 나는 영지초(靈芝草)와 이것을 먹고 사는 삼족조(三足鳥)가 태양 속에 산다는 이야기였다. 이를 듣던 한무제는 다시 물었다. “너는 이를 어떻게 아는가?” 동방삭이 대답하기를 “신(臣)이 어릴 때 우물을 파다가 땅이 함몰되어, 수십 년 간 지하세계에 있게 되었습니다.”

“탈출하기 위해서 길을 찾던 중에 홍천(紅泉:붉은 샘, 즉 용암이 분출하는 샘)이 앞을 가로막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저에게 나무신(木履) 하나를 주어서, 그 신발을 신고 이 홍천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를 인도하여 어떤 나라로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서 영지초를 뜯어 먹으며 연명했습니다.”

“그곳 백성들은 저를 짐승가죽으로 만든 천막 안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속에 펼쳐져 있는 것은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희한한 것이었습니다. 구슬(珠玉)로 짠 방석, 검은색의 옥석(黑玉石)으로 조각한 침상, 침상머리에는 태양, 달, 구름, 우뢰를 조각한 형상으로 소위 누공침(鏤空枕) 혹은 현조침(玄雕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백여종의 새털을 모아서 짠 이불과 침구가 있었습니다. 이 새털 이불은 매우 시원하였는데 여름에 덮으면 특별히 시원하면서 포근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이불을 ‘유호수조(柔毫水藻)’의 이불이라고 부릅니다. 한번은 제가 이불 위에 물방울이 가득한 것을 보고 자리가 젖을까 염려되어 막 그 물방울을 닦으려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빛방울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무제, 동방삭에게 나라의 운세를 묻다

동방삭은 어떠한 기묘한 질문에도 모르는 것이 없었고 대답에 막힘이 없었다. 처음 보는 기이한 새라든가,

무슨 신기한 벌레 등이라도 그들에게 코가 있고 눈이 있다면 소통할 수 있었다.

그 깊이와 박학함 그리고 몸소 체험한 기이한 이야기 등은 듣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다.

한번은 한무제가 영광전(靈光殿)에 누워있으면서 동방삭을 장막 아래로 불러서 물었다.

“한나라 왕조가 불의 덕(火德)으로서 천명을 받았는데, 결국 하늘의 어떠한 상서로움으로써 이를 증명할 수 있는가?”

동방삭이 대답하기를 “신(臣)은 늘 넓디넓은 무한한 공간을 다니면서 놀기를 좋아합니다.

한번은 장안 동쪽에서 부상(扶桑: 동해에 있다는 신목(神木)으로 여기에서 해가 뜬다고 함)을 지나 7만리 떨어진 곳에 갔는데

그곳에 구름산(雲山) 하나가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는 우물이 하나 있으며, 구름이 그 우물 가운데에서 뭉실뭉실 나왔습니다.”

“토덕(土德)의 세상을 만나면 황색구름(黃雲)이 나오고, 화덕(火德)의 세상이 오면 붉은 구름(紅雲) 이 나옵니다.

금덕(金德)의 세상을 만나면 흰 구름(白雲)이 나오며, 수덕(水德)의 세상이면 검은 구름(黑雲)이 나옵니다.

지금에는 산 정상 우물에서 붉은 구름(紅雲)이 자욱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한(漢)나라 세상의 상서로운 조짐인가 합니다.”라고 했다.

한무제는 이 말을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동방삭의 이러한 이야기를 반신반의하면서 웃어넘기거나

뒤에서 쑥덕거리면서 손가락질하는 자들도 있었다.

 

 
ⓒ 삽화 박영철

주인이 아프면 땀 흘리는 나무
태초 2년(기원전 103년) 동방삭은 서나사국(西那邪國)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손가락 굵기와 구척 길이의 ‘성풍목(聲風木)’ 열 그루를 가져와 한무제에게 진상하였다. 이 성풍목은 인환(因桓)의 물을 먹고 자라는데 그 물 맛이 달다. 그리고 붉은 제비와 누런 고니가 그 나무위에 집을 짓고 살기를 좋아한다.

성풍목의 열매는 마치 작은 진주와 같아서 바람이 불면 그 열매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옥이 부딪치는 소리와 같아 성풍목(聲風木)이라고 한다. 한무제는 대신들에게 작은 가지 하나씩을 하사하였는데 1백세에 가까운 대신들에게 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나무의 주인이 병이 들면 나뭇가지에서 땀을 흘리고, 만약 그 주인이 죽으려 하면 나무가 스스로 꺾여 죽었다고 한다.

옛날 노자가 주나라에 2천7백 년 동안 세상에 나와 있을 때 이 나무는 땀을 흘린 적이 없었으며, 또한 홍애(洪崖) 선생이 요임금 때, 이미 3천세였는데 이 나무가 말라 죽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동방삭은 한무제에게 “신(臣) 동방삭은 이 나무가 세 번 말라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았으나, 이 나무가 땀을 흘리거나 절단되어 죽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나무는 5천년에 한 번 땀을 흘리며 1만년에 한번 마릅니다.”라고 했다. 한무제는 이 말을 듣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동방삭의 지성목(指星木)으로 혜성을 없애다
동방삭이 한번은 ‘지성목(指星木)’이라는 기이한 나무를 구해와 한무제에게 바쳤다. 이때 마침 하늘에는 혜성(彗星)이 나타났다. 별자리를 관찰하던 관원들과 일반 백성들은 모두 이것이 세상에 괴변이 나타날 징조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무제는 동방삭이 건내준 ‘지성목(指星木)’으로 혜성을 한 번 가리키자 그 문제의 혜성은 종적은 고사하고 그림자조차 없이 사라졌다. 관상감의 관원과 백성들은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기뻐했다고 한다.

 

누가 나를 아는가?
동방삭은 생전에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에게 “이 한나라 천하에서 나를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태왕공(太王公)뿐이며, 기타 그 누구도 나의 근본을 아는 사람이 없다.”라고 하였다.

동방삭이 세상을 떠난 후 한무제는 이 말을 기억하고 태왕공을 불러서 “너는 동방삭의 근본을 아는가?” 물었다. 태왕공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자 한무제는 다시 묻는다. “너는 무엇을 가장 잘하는가?” 태왕공이 답하기를 “저는 능히 하늘의 별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한무제 “그럼 지금 하늘에 별들이 모두 다 있더냐?” 태왕공은 “예전에는 하늘의 별자리에 변동이 없었는데 유독 세성(歲星:목성)만 18년 동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세성이 나타났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한무제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장탄식을 하면서 “동방삭이 내 곁에 십팔년 동안이나 있었는데 그가 세성(歲星:목성)인 것을 몰랐구나!“ 말을 끝내고 하루 종일 슬퍼하였다고 한다. 물론 세상에서 동방삭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선계(仙界)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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