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완전 변했구나…그래도 사랑받는다 |
오뎅은 대한민국 대표 길거리 음식이다.
어묵을 흔히 오뎅이라 부른다. 오뎅은 일본어로, 어묵과 함께 무, 유부, 곤약을 꼬치에 꿰어 가다랭이포 국물에 끓인 음식을 말한다. 그러니까 어묵을 오뎅이라 하면 잘못이다. 어묵의 일본어는 가마보코다. 이런 혼란은 어묵 제조업체가 유발한 측면이 있다. 특히 부산에 자리한 어묵 제조업체들이 어묵에 ‘부산 오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케팅한 탓이 크다.
어묵은 생선살에 전분 등을 더해 모양을 잡고 튀기거나 굽거나 찐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로 들어왔다. 부산, 인천 등 일본인이 많이 살고 생선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지역에 이 어묵 가공 가게가 섰다. 어묵으로 조리한 오뎅은 경성 등의 술집에서 팔렸다. 물론 일본인의 술집이었는데 종로 뒷골목에 ‘정종집’ ‘꼬치집’ 등으로 그 흔적을 남겼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의 어묵 가공 가게와 오뎅 술집은 대부분 사라지고, 일부를 한국인이 맡았다. 한국 정부는 일본 잔재를 없앤다며 언어순화정책을 폈다. 1960년대 언어순화자료를 보면, 가마보코와 오뎅을 구분했다. 가마보코는 어묵, 오뎅은 꼬치안주로 순화해야 한다고 적었다. 하지만 언어는 그 물건을 만들어 팔고 쓰는 사람 마음대로 정해진다. 그렇게 해서 꼬치안주와 가마보코는 사라지고 오뎅과 어묵만 살아남았다. 지금 와서 이를 바로잡자고 한다면 또 큰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먹거리’처럼 문법적으로 분명한 오류가 있는 조어가 널리 쓰인다는 이유로 표준어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오뎅도 한 세대 정도 뒤에는 당당히 표준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칼럼에서는 오뎅과 어묵을 구분하고자 한다. 오뎅은 어묵을 꼬치에 꿰어 끓인 음식, 어묵은 생선살에 전분과 밀가루 따위를 더해 튀기거나 굽거나 찐 음식이다.
오뎅의 위상은 해방 이후 크게 바뀌었다. 일본인의 술집 안주가 한국에서는 길거리 음식이 됐다. 재료와 모양에도 변화가 있었다. 유부, 곤약, 무는 빠지고 오직 어묵만 끼워졌다. 무가 있지만 양념용으로 국물에 담겨 있을 뿐이다. 국물 맛도 바뀌었다. 가다랭이포가 없으니 멸치 육수가 기본이 됐다. 무엇보다 어묵이 많이 바뀌었다. 한국에서의 어묵은 오직 튀기는 어묵만 만들어졌고, 밀가루가 점점 더 많이 들어가고 두께는 얇아졌다. 어떤 것은 어묵인지 밀가루튀김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맛이 변하든 말든 오뎅은 대한민국 대표 길거리 음식 자리를 꿰찼다. 떡볶이가 한국 길거리 음식의 최강이라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오뎅이 떡볶이보다 많다. 떡볶이 파는 곳에 반드시 오뎅이 있는데, 오뎅 파는 곳에 반드시 떡볶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떡볶이는 소비 세대가 어린아이와 젊은이로 한정됐지만, 오뎅은 남녀노소가 맛있게 먹는 음식이다. 이런 광범위한 소비 계층을 보더라도 한국 길거리 음식 1등을 꼽으라면 필자는 오뎅을 추천할 것이다.
필자는 마산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부둣가 옆 어시장에 어묵 공장이 있었다. 상품으로 가치 없는 작은 조기와 갈치 또는 잡어를 갈아 그 자리에서 튀겼다. 작고 볼품없는 생선이었지만 싱싱했다. 그때의 기억으로는 어묵에 밀가루며 전분의 함량이 높지 않았다. 그 고소했던 맛이 지금도 입안에 남아 있다.
요즘의 어묵 원료는 베트남 등지에서 가져온다. 도미살이라고 적혔지만, 흔히 시장에서 보는 도미 종류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도미과 생선이긴 할 것이다. 살을 으깨 냉장이나 냉동으로 가져오니 싱싱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인지 생선살 맛이 흐릿하다. 쫀득하게 씹히는 질감에 기름내만 난다. 멀건 국물에 이 덤덤한 어묵을 담은 오뎅 냄비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스산해진다. 우리의 살림 형편을 보는 듯하기 때문일 것이다.
때깔 고운 분홍색 곶감 옛날 맛은 어디로 갔어? |
곶감의 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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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균 처리 없이 자연에서 말린 곶감은 거무스레하며 향도 다르다. 그 묘한 곶감의 발효취를 기억하는 사람이 이제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토종 감은 떫은감이다. 단감은 일제강점기에 건너온 외래 감이다. 한반도 곳곳에서 자생하는 이 떫은감은 종류가 참 많다. 대체로 주산지 이름과 품종명을 붙여 부른다. 완주 고종시, 청도 반시, 상주 둥시, 의성 사곡시, 산청 단성시, 논산 월하시, 임실 먹시… 대충 200여 종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의 떫은맛은 탄닌 때문이다. 이 떫은맛을 없애려면 탄닌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다. 나무에 그대로 두어 홍시로 익히거나, 따뜻한 물에 담그거나, 알코올을 뿌려 숙성하는 방법이 있고, 껍질을 깎아 곶감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방법은 탄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떫은맛이 느껴지지 않게 탄닌을 불활성화하는 것이다. 떫은맛이 없어도 탄닌은 존재한다.
떫은감으로 만든 먹을거리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곶감으로, 당도가 상당하다. 생감 상태에서는 20브릭스 정도이던 것이 곶감으로 만들면 50~60브릭스에 이른다. 이 정도면 설탕이 따로 없다. 오래된 곶감에서는 하얀색 분이 생기는데 이것은 과당과 포도당으로, 옛날에는 이 분을 긁어모아 꿀 대신 쓰기도 했다.
곶감은 비싸다. 제조 과정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감을 깎아 덕장에 매다는 일은 일부 기계화됐지만, 대부분 수작업이다. 곶감을 말리는 데는 30~70일이 필요하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다. 바람과 기온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 다 마른 것은 일일이 손으로 모양을 잡아줘야 한다. 여기에 포장과 냉장까지 하니 비싸질 수밖에 없다.
곶감이 비싸니 거의 선물용으로 소비된다. 자기 돈으로 곶감 사먹기는 버겁지만 선물로 내놓기엔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선물용으로 포장하려니 곶감 때깔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보기 좋은 분홍색 곶감이 대세다. 그런데 이 분홍색의 예쁜 곶감은 옛날 정취를 빼앗는다. 옛날 곶감은 이렇지 않았다.
곶감을 만들려면 감 껍질을 깎아야 하는데, 이렇게 속살이 노출된 상태에서는 여러 균이 붙는다. 좋은 균, 나쁜 균 문제가 아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이런 균이 으레 붙는 것이다. 여러 균은 감이 마르는 과정에서 많은 작용을 한다. 약간의 발효취를 내기도 하는데, 결정적으로 곶감 때깔에 관여한다. 곶감을 거무스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분홍색의 고운 때깔을 띠는 요즘의 곶감은 어떨까. 독자의 짐작대로 살균 처리한 것이다. 감을 깎은 뒤 겉에 붙은 균을 죽이려고 훈증하거나 알코올을 뿌려 소독한다. 더 적극적으로는 자연에서가 아닌, 건조기에서 말린다. 그러면 때깔이 고운 분홍색이 되며, 그 안이 투명하게 비친다.
살균 처리와 건조기 사용이 곶감 때깔을 곱게 만들기 때문에 자연 건조에 비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또 기술이란 게 늘 ‘발달’하게 돼 있으니 옛날의 시커먼 곶감은 또 그렇게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살균 처리와 건조기 사용이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감을 깎아 아무 작업을 하지 않고 자연에서 말릴 경우, 곶감의 겉과 속은 거의 동시에 마른다. 반면, 훈증을 강하게 하든지 건조기에서 말리면 곶감 겉이 질겨진다. 속이 단단해지기도 한다. 특히 곶감 특유의 발효취가 멀리 달아난다. 단지 단맛만 강렬한 곶감이 되는 것이다. 대체로 음식이란 이와 비슷해, 때깔을 좇다 보면 맛은 버린다.
잡고 삶고 말리고 시원한 국물 끝내줘요
마른 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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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어느 섬에서 만난 햇볕 건조 멸치. 정치망으로 잡았다. 참 귀하다.
한국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가 마른 멸치다. 국물이 많은 한국 음식에 감칠맛을 더하는 게 바로 이 마른 멸치다. 다시마, 새우, 표고버섯, 쇠고기 등도 국물 내는 재료로 쓰지만, 가격 면에서 이 마른 멸치가 만만해 가장 많이 사용한다.
한반도 남쪽 바다에서 멸치가 많이 잡히니, 예부터 이 마른 멸치를 국물용으로 썼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동안 우리 조상의 식생활 형편은 국물 음식에 감칠맛을 더하는 재료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남해 죽방렴(竹防簾)은 예부터 사용한 어획 도구고, 죽방렴 멸치가 유명하니 옛날부터 마른 멸치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죽방렴으로 주로 잡았던 것은 멸치가 아니라 여러 생선이다. 바다 자원이 빈곤해진 지금과는 퍽 다른 때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죽방렴에 멸치도 잡혔을 테지만 그 멸치로 젓갈이나 담갔을 것이다.
마른 멸치가 우리 땅에 알려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일제가 마른 멸치(예전에는 자숙멸치라 불렀다)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 마른 멸치를 일본에 가져갔다. 일본에서 이를 국물용으로 썼을 것이다. 일본에 가져가려고 만들었던 마른 멸치 중 일부가 우리 땅에서 점점 세력을 넓혀 결국 한국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 재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멸치를 잡는 방법은 크게 나누면 기선권현망 어업과 정치망 어업 두 가지로 나뉜다. 다시 그물과 어구 종류에 따라 여럿으로 나뉘지만 기본은 이 둘이다. 기선권현망 어업은 배 두 척이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멸치 어군이 보이면 그물을 던져 양쪽에서 끌어당겨 잡는다. 정치망 어업은 바다에 붙박이 그물을 놓아 조류를 따라 들어온 멸치를 거둔다.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죽방렴이다.
죽방렴이란 말 그대로 ‘대나무로 만든 그물’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얕은 바다에 놓아 물살에 밀려들어온 물고기를 잡는 도구다. 대나무를 박았다고 하지만 정치망의 일종이며, 법적으로도 정치망으로 분류한다. 죽방렴, 즉 ‘대나무 정치망’으로 잡은 멸치가 흠집 없이 곱다 해서 비싸게 팔리는데, 잡는 방식을 보면 ‘일반 정치망’과 큰 차이가 없다. ‘일반 정치망’도 멸치를 흠집 없이 곱게 잡는 것은 같다. 죽방렴 멸치는 극소량이다. 그러나 연중 팔리는 죽방렴 멸치의 양은 상당하다. ‘일반 정치망’의 멸치가 ‘대나무 정치망’ 멸치로 팔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죽방렴 멸치가 좋다는 생각은 멸치를 잡자마자 곧장 삶아 말린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러나 ‘일반 정치망’ 멸치도 이와 비슷한 시간 안에 삶아 말린다. 멸치를 삶아 말리는 곳을 ‘멸막’이라 하는데, 멸치 잡는 정치망은 이 멸막 바로 앞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방렴 때문에 멸치를 어떻게 잡는지에 대한 ‘마케팅’이 활발한 반면, 어떻게 삶고 말리는지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사실 멸치는 어떻게 잡는지보다 어떻게 삶아서 말리는지에 따라 맛 차이가 더 크다. 멸치 삶는 물에는 소금을 넣는다. 어떤 소금인지에 따라서도 맛 차이가 크게 난다. 저질 소금을 쓰면 찌르는 듯 쓴맛이 배어 국물 맛을 보장하지 못한다. 멸치 제조업체마다 천일염을 쓴다 하지만, 천일염 질이 천차만별이니 마른 멸치 맛도 천차만별이다.
마른 멸치 맛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바로 말리는 방법이다. 요즘 가장 흔한 것이 바람이 나오는 건조기에 넣고 돌리는 기계건조다. 이렇게 말리면 멸치는 딱딱해지고 맛이 덜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옛날식으로 햇볕에 말리는 것이다. 그런데 햇볕에 말리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멸막 근처의 환경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차가 다녀 먼지가 이는 곳에서는 햇볕에 내놓지 못한다. 남해에 자리한 작은 섬에나 가야 이 햇볕 건조 멸치를 만날 수 있다. 가끔 이런 멸치를 만나면 더없이 귀해 국물 내기에도 아까울 정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