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발견이의 도보여행_01

醉月 2012. 1. 11. 12:19

흰눈 쌓인 도시의 겨울 숲길

尹文基
⊙ 1971년생.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졸업.
⊙ 《낚시춘추》 《월간낚시》 기자, 《월간 자전거생활》 편집장, 황금시간 걷기단행본
    출판팀장 역임.
    現 도서출판 우리미디어 대표, ‘발견이의 도보여행’(MyWalking.co.kr) 운영자.
⊙ 저서 : 《서울의 걷기 좋은 숲길》 《서울걷기여행》(공저) 《경기북부걷기여행》(공저)
    《경기남부걷기여행》(공저) 《지리산둘레길&언저리길걷기여행》(공저)
    《강원도걷기여행》(공저) 《제주도올레&언저리길걷기여행》(공저).

 

서리골공원 진입로. 깊은 산중에라도 들어온 듯하지만 멀리 솟은 건물들이 도심임을 일러준다.

  첫 번째 코스
 
  아파트 숲 사이로 뻗은 흙길 밟기
 
  ● 서울(서초구) : 허밍웨이와 서리풀공원 숲길
  ● 걷는 거리 : 6.6km
  ● 소요 시간 : 3시간 내외(쉬는 시간 포함)
 
 
  서울 동작구 동작역에서 출발하는 허밍웨이와 서리풀공원 숲길은 걷기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입문자 코스다.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산책삼아 걷기에도 좋다. 지하철로 오갈 수 있으므로 접근하기도 쉽다. 얼마 전에는 찻길로 끊겼던 숲길 능선을 ‘누에다리’와 ‘서리풀다리’로 이어놓아 산책로가 업그레이드됐다. 문지르면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이뤄준다는 조각상도 있으니 소원 하나 매달고 가는 것도 좋을 듯싶다. 단, 겨울철에는 동네 뒷산이라도 아이젠은 필수 안전장비이므로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허밍웨이길~서리골공원 숲길 1시간10분/3.5km
 
   동작역 1번 출입구(1)를 나와 바른편으로 걸어가면 곧바로 콧노래가 절로 난다는 허밍웨이 입구(2)다. 반포천 둑을 따라 놓인 이 길은 한강 지류(支流)의 많은 둑길 가운데서도 걷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췄다. 무엇보다 자동차 주행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 것이 여타 둑길과 차별화된다.
 
  눈이 내리면 길 위에 한동안 쌓여 있지만 바닥이 카펫 같은 재질이어서 쉬 녹는다. 길 좌우로 소나무, 벚나무, 메타세쿼이아 등을 심어놓았다. 길가에는 철 따라 야생화가 피어난다. 녹색으로 처리된 바닥 마감재 덕분에 황량한 겨울에도 안온한 느낌으로 걸음을 이어갈 수 있다.
 
  간혹 최근에 뚫린 반포천 둔치 길로 내려가는 이들이 있는데, 그곳은 삭막한 자전거도로이니 꼭 둑 위로 난 길을 걷기 바란다. 40분 정도 걸으면 지하철 고속터미널역 5번 출입구가 있는 성모병원사거리가 나타난다. 사거리 너머로 보면 작은 조각공원 같은 서래공원(3)이 보이니 그리로 건너가자.
 
  공원 뒤편으로는 프랑스인들이 올망졸망 모여 사는 서래마을이 있다. 그곳에는 파란 눈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수업을 받는 프랑스학교도 있다. 서래마을은 다양한 음식문화가 공존하는 외래문화 특화거리이기도 하다. 입소문을 탄 퓨전 음식점들이 많아, 이 글을 읽은 독자가 미식가라면 이미 가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음식기행보다 숲길 걷기가 더 매력적이다.
 
  서래공원에서 강남성모병원 쪽으로 길을 건너 잠깐 걷다 센트럴 육교 위에서 시작하는 서리골공원 숲길(4)로 들어서자. 서리골공원 숲길 입구에는 ‘서리풀공원 안내도’가 서 있어 지명이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걸을 서리골공원~몽마르뜨공원~서리풀공원을 하나로 모아 통상 ‘서리풀공원’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태풍 곤파스의 피해 현장. 벌목장을 방불케 할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서리골공원~몽마르뜨공원 15분/0.6km
 
  서리골공원 숲길은 몽마르뜨공원을 지상 30m 상공에서 이어놓은 누에다리까지 약 1km 남짓 이어진다. 이렇게 작은 숲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단일병동인 서울성모병원 본관을 감싸고 있는 야무진 숲이기도 하다.
 
  몽마르뜨공원으로 넘어가는 관문인 누에다리를 만나면 서리골공원은 일단 마무리된다. 누에다리는 생긴 형태도 특이하지만 만든 공법은 더 기이하다. 잘려나간 능선 끄트머리에 간단한 지반공사만 해 놓고 다리 본체는 다른 곳에서 조립하여 한 덩어리로 옮겨와 하룻밤 만에 두 능선을 이어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시도된 공법이어서 시공 당시부터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기도 했다.
 

몽마르뜨공원에는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와 맥문동 등이 많다.

  누에다리를 건너면 잠몽(蠶夢)이라는 조각작품이 몽마르뜨공원(5)의 청지기인 양 사람들을 맞는다. 몽마르뜨공원은 그리 넓지 않지만 빙 둘러 돌아보면 보기보다는 꽤 동선(動線)이 길다. 언뜻 보기에는 밋밋한 잔디공원이지만 외곽을 따라 심어놓은 소나무의 사이사이 난 길은 겨울에도 운치가 있다. 무엇보다 서리골공원과 서리풀공원을 녹지로 연결해 주는 것이 이 공원의 미덕이다.
 
  프랑스마을과 인접했다는 이유로 파리의 몽마르트르언덕에서 이름을 가져온 이 공원에서는 실제로도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인형같이 귀여운 아이들과 산책 나온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몽마르뜨공원을 조경(造景)할 때에는 프랑스 유명 패션업체의 후원이 있기도 했으니, 프랑스인들의 ‘산책 치외법권(治外法權)’(?)을 인정해 줄 수도 있을 법하다. 몽마르뜨공원 이후로는 코스가 끝날 때까지 공중화장실과 식수대가 없으니 이 점 참고하자.
 


 
  서리풀공원~방배역 50분/2.1km
 

코스 끝부분인 청권사 쉼터에서 만난 눈사람. 올 겨울 이 길의 수문장이 될 듯하다.
  몽마르뜨공원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공원 진입로를 따라 걸으면 서리풀공원(6) 능선과 연결되는 서리풀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면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서리풀공원의 아담한 오솔길이 언덕 위에서 시작된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우회전 후 곧바로 왼쪽 작은 정자 있는 쪽으로 간다. 그 후로는 직진해서 기슭을 따라 걷는다는 느낌으로 가면 된다. 이정표가 나오면 ‘청권사 쉼터’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틀림없다. 길을 잃더라도 청권사를 물어 찾아가면 된다.
 
  빽빽한 활엽수들이 길 뒤편을 슬금슬금 감추다 내어주는 구불구불한 서리풀공원 숲길은 어느 산중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고운 선을 그려낸다. 다만 작년 9월에 불어닥친 태풍 곤파스의 피해가 심했던 일부 구간은 마치 벌목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피해지역의 수십 년 된 신갈나무 숲은 이제 겨우 엄지손가락 굵기를 면한 어린 묘목들로 대치됐다. 겨울에는 하얗게 쌓인 눈으로 황량함을 덜어내지만 봄이 되고 여름이 오면 아름드리나무들이 펼쳐내던 시원한 그늘이 그리울 것이다.
 
  서리풀공원의 걷기 좋은 숲길은 느린 걸음으로 50분 정도 이어지다 고색창연한 청권사 기와담장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담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서리풀공원이 마무리된다. 서리풀공원 자락에 있는 청권사는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묘와 사당이 있는 곳이다. 평일 낮에만 개방한다. 여름철 수련이 아름다운 연못 뒤로 자리 잡은 모연재(慕蓮齋)의 단아함은 수련에 비길 만큼 당당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평일이라면 꼭 들러보기 바란다. 언덕 위에 자리한 효령대군 묘에서 바라보는 효령로의 풍광도 나쁘지 않다.
 
  청권사 정문을 나서면 3분 만에 지하철 2호선 방배역(7)에 도착한다.
 



  두 번째 코스
 
  굽이굽이 돌며 걷는 미니 오솔길 천국
 
  ● 서울(노원구) : 영축산 오솔길과 초안산공원
  ● 걷는 거리 : 5.2km
  ● 소요 시간 : 2시간 내외
 
 

기슭과 둘레를 따라 이어지는 영축산 오솔길.
  영축산 오솔길에 발을 들이면 이 재미난 길이 연주하는 음률(音律)에 여러 번 감탄사를 토해내게 된다. 아파트 사이로 들어가는 오묘한 진입로가 그 첫 번째요, 이 작은 야산에 박힌 수많은 오솔길이 펼쳐내는 산책의 즐거움이 두 번째다. 눈이 내려 더 그윽해진 영축산의 그물망 오솔길은 한 바퀴만 돌아서는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길을 이어 다시 흙길을 제공하는 것이 초안산이다. 조선시대 내시들이 많이 묻혔다고 하여 내시네산이라고도 불리는 산이다. 초안산에는 걷기 좋은 널찍한 흙길이 하얀 눈을 이고 겨울 산책객들을 맞는다.
 
 
  성북역~영축산 오솔길 10분/0.4km
 
   전철 1호선 성북역 광장(1)으로 나간다. 역 이름 때문에 이곳이 성북구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이곳의 행정구역은 노원구다. 성북역이 처음 개통했을 때만 해도 이곳은 성북구였다. 그 후에 주거인구가 늘면서 도봉구와 노원구가 순차적으로 분할되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혼선이 생긴 것이다.
 
  성북역 광장에서는 성도상회 옆길로 간다. 인도가 좁아 조금 불편하지만 곧 숲길로 들어가니 조금만 참자. 국민은행이 있는 월계삼거리가 나오면 은행 방향으로 길을 건너 왼쪽으로 간다. 100m를 간 후 오른쪽에 있는 꽃집(The Flower)을 끼고 돌아 골목으로 간다. 그러면 곧 ‘신도브래뉴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자,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영축산은 아파트 101동과 102동 사이에 있는 아파트관리사무소 옆길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샛길만 잘 찾으면 곧바로 이 야무진 산으로 진입할 수 있다. 영축산 진입로(2)를 찾았으면 일단 5분간에 걸쳐 오솔길을 따라 정상 부근까지 오른다.
 
  이 첫 오르막만 걸어도 길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영축산이 품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기슭과 중턱으로 뻗은 곁가지 오솔길이 바로 이 오르막과 맞닿아 끝이 안 보이는 행로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단 5분 만에 정상 언저리에 닿아버린다. 이런 작은 산이 품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운 오솔길이 지금부터 계속 이어진다.
 
 
  영축산 오솔길 1시간/2.4km
 
영축산은 아주 작은 뒷동산이지만 근사한 오솔길을 품었다.
  작은 봉우리에 오솔길이 거미줄처럼 얽혔다는 것은 식물이 자라기에는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 산길을 정비할 때에는 작은 샛길들을 막고 큰 산책로만 살려놓는 것이 큰 흐름이다. 관청이 주도했던 예전 조사에서 영축산은 무분별한 작은 샛길들로 인해 생태계가 제자리를 잡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그래서 후일 영축산에서 생태계 복원을 위해 샛길들을 막는 작업이 진행된다 해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큰길들만 골라 코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렇게만 해도 영축산의 숲길은 2.4km에 달한다. 놀며 쉬며 천천히 걸으면 1시간은 너끈히 보낼 수 있는 거리다. 필자가 미처 포함시키지 못한 길을 찾아낼 경우 훨씬 더 긴 거리를 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도를 참조하여 이 작은 산을 한 바퀴만 걸어보자. 그저 길만 무작스럽게 많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올망졸망 연결되는 뒷동산 길들이 아기자기한 풍광을 그릴 때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현실로 오버랩된다. 영축산의 구불구불한 좁은 오솔길에서는 리듬감과 템포까지 느껴진다.
 
  거미줄처럼 엮인 영축산 길에서 꼭 걸어봐야 할 구간은 동쪽 기슭으로 뻗은 길이다. 이 많은 길을 걷고 난 후 출구만 제대로 짚어내면 초안산으로 가는 길은 쉽다. 영축산을 벗어나는 곳은 월계문화정보도서관이 보이는 곳이다. 녹음이 우거질 때는 월계도서관 건물이 나뭇잎에 가려지기도 하지만 겨울에는 훤히 내다보인다. 혹시라도 길을 잃었다면 지나는 이들에게 월계문화정보도서관 방향을 물어보기 바란다.
 


 
  초안산숲길~체육공원~녹천역 50분/2.4km
 
  영축산에 오를 때 부지불식간에 산길로 접어들었던 것처럼 빠져나오는 길도 단출하기 그지없다. 아무런 표식도 없이 그냥 보도블록 위로 내려오게 된다. 월계문화정보도서관 맞은편 인도로 내려서면 왼쪽으로 간다. 100m도 못 가 나오는 지하보도로 들어가 길을 건너 우체국 방향으로 나온다. 인덕대학 방면으로 길을 잡아 10분 정도 걸으면 ‘성원교회’ 건물이 보인다. 이 교회 직전에 오른쪽으로 쉼터가 있는데, 그곳이 초안산으로 진입하는 통로(3)가 된다.
 
  초안산에서는 영축산의 거미줄 같은 오솔길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가야 할 길을 제외하곤 철망이 둘러져 일탈의 여지를 애초부터 차단한 외길 숲이다. 작은 암반을 올라 넓게 다져진 흙길을 휘적휘적 20여 분 정도 걸으면 왼쪽으로 틀어지는 듯한 길이 보인다. 이때 왼쪽으로 돌면 오른쪽 소나무숲 사이로 난 작은 철망문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 문이 초안산근린공원(체육공원)으로 통하는 쪽문(4)이다.
 

아이젠만 있으면 눈 쌓인 길은 솜처럼 부드럽고 폭신폭신함을 선사한다(초안산).

  이 안으로 들어서면 국제규격의 잔디축구장을 비롯해 테니스, 배드민턴장 등이 들어서 있어 급작스런 변화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체육공원 안에는 식수대와 화장실이 있고, 수리산과 불암산을 또렷이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까지 갖춰져 있다. 이 코스는 초급자용으로 짧은 편이지만 북서울꿈의숲까지 연계할 경우 길이가 크게 늘어난다. 그럴 경우 이 초안산근린공원은 중간 쉼터로 이용하기에 제격이다.
 
  초안산근린공원을 나오는 길도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좁은 철망문이다. 그 철망문은 들어온 방향의 정반대에 있다. 화장실 건물 왼편 길로 간 후 철망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가다 곧바로 왼쪽으로 내려간다. 약 5분 정도 내리막을 걷다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곧 이면도로를 만나고 왼쪽 멀리 녹천역(5) 건물을 볼 수 있다

 

노량진공원과 서달산 산책로 / 연세대캠퍼스와 안산산책로 일주

 

서달산 주능선 길에서 만나는 소망탑.
  첫 번째 코스
 
  도심 속 잃어버린 숲길을 찾아서
 
  ● 서울(서초구) : 노량진공원과 서달산 산책로
  ● 걷는 거리 : 5.6km
  ● 소요 시간 : 2시간30분(쉬는 시간 포함)
 
 
  노량진공원 길은 그동안 재개발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잊힌 숲길이었다. 그런데 콘크리트에 묻혀버린 줄 알았던 그 능선 오솔길이 ‘노량진공원’이란 명찰을 단 깊은 산중에 숨어 있었다. 그 위에 현대식 공원시설을 갖춘 채 말이다. 노량진공원에 이어 걷게 되는 서달산 서쪽 능선의 길은 나무데크를 통해 이어지면서 그윽한 숲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길에는 두 곳의 전망(展望)명소가 있다. 노량진공원에서는 한강대교를 중심으로 한 북쪽이 선명하게 보이고, 서달산 정상에 세워진 ‘동작대’ 전망대에서는 360도 사방이 훤히 보인다.
 
 
  노들역~노량진공원 정상 20분/0.9km
 
   한강대교 남단(南端)에서 이어지는 상도터널 위에 아파트들이 열을 지어 들어선 후, 그곳의 숲길은 완전히 맥이 끊긴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고(高)해상도의 항공사진을 분석하며 길을 찾다 보니 상도터널 위로 흙길이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노량진공원’이라고 불리는 이 숲길은 중앙대학교 뒤의 잣나무 길로 시작되는 서달산 서쪽으로 연결된다. 콘크리트에 모조리 덮인 줄 알았던 이 숲길을 걷다 보니 잃어버린 자식을 되찾은 것처럼 마냥 흥분이 됐다.
 
  지하철 9호선 노들역 4번 출입구(1)를 나오며 이 길을 시작하자. 왼쪽으로 유턴하듯 돌아가면 곧바로 오른쪽으로 쌍용아파트 입구가 보인다. 아파트 102동 옆으로 비밀스럽게 솟은 석축 옆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계단 위의 세상은 ‘비밀의 숲길(2)’이다. 능선을 따라 걸을 수도 있고, 왼쪽 중턱 오솔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차피 길은 저 끝에서 다시 만나니 기왕이면 깊은 숲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는 중턱길을 선택해 보자.
 
  5분 넘어 길을 가면 상도터널 위로 작은 터널 입구가 보인다. 입구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 ‘노량진공원’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왼쪽 아파트 단지 앞길로 향한다. 아파트 단지를 오른쪽에 두고 3분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조망명소’라는 이정표가 있다. 그곳으로 오르면 곧 너른 공터와 정자 쉼터다. 조망명소는 오른쪽으로 50m 정도 가면 나온다.
 
  조망명소 데크에서는 바라본 한강철교가 또렷하게 보인다. 멀리 솟은 안산, 인왕산, 북악산은 서울의 뿌연 하늘에 가려 좀처럼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조망명소에서 다시 정자 쉼터로 돌아가서 그대로 지나쳐간다. 공중화장실을 50m 앞둔 곳에는 오른쪽 숲으로 향하는 나무계단이 있다. 여기서 3분쯤 걸으면 사각형의 정상(頂上)표지석이 나타난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표지가 이곳이 능선의 정상임을 알린다.
 
도시개발로 사라진 줄 알았던 노량진공원 숲길이 이렇게 팔팔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노량진공원~서달산 정상 40분/1.8km
 
  노량진공원 정상석을 지나 맞은편으로 내려가면 곧 넓은 임도(林道) 같은 길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간다. 곧바로 만나는 컨테이너 가(假)건물 앞 갈림길에서 왼쪽 계단으로 내려간 후 곧바로 오른쪽으로 간다. 강남초등학교 담장을 오른쪽에 두고 100여m의 실낱같은 흙길이 이어지다 중앙대학교 후문 부근의 찻길로 떨어진다.
 
  찻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중앙대학교 후문 앞 삼거리다. 찻길을 건넌 후 ‘상도로53길’ 이정표를 따라 찻길 옆 인도로 간다. 5분이 채 안되어 왼쪽 석축 위로 작은 정자 쉼터가 보일 것이다. 그 위로 올라간다. 정자 옆으로는 ‘서달산 자연관찰로’ 푯말과 안내지도가 서달산 길의 시작(3)을 알려준다.
 
  정자에서 잠시 쉰 후 ‘잣나무숲길’ 이정표가 가리키는 나무계단을 오른다. 심은 지 몇 년 안돼 보이는 키 작은 잣나무들이 도열한 이 길은 단풍나무가 바통을 이어받기도 하고, 이 숲의 터줏대감인 아까시나무가 길손을 맞기도 한다. 한여름에는 보라색 맥문동꽃이 길가를 수줍게 장식한다. 사계절 언제 걸어도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갖는다.
 
국립현충원 담장을 왼쪽에 끼고 걷는 서달산 주능선 산책로.
  10분 넘게 이어지던 이 숲길은 국립현충원을 둥그렇게 감싸는 서달산 동쪽 주능선으로 건너가는 생태육교로 이어진다. 생태육교로 향하는 이정표에는 ‘현충원’, ‘피톤치드체험장’이라고 적혀 있다.
 
  생태육교를 지나 서달산 주능선(4)에 닿으면 향할 곳은 서달산 정상. 산 정상은 해발 179m지만, 경사가 그리 급하지는 않다. 그대로 직진하듯 언덕 위를 오르면 10분이 채 안되어 서달산 정상에 닿게 된다.
 


 
  서달산 현충원 담장 숲길~동작역 1시간/2.9km
 

국립현충원 담장은 와플무늬 콘크리트와 녹색철망으로 번갈아 구성되어 있다.
  서달산 정상에는 근엄한 폼을 잡고 있는 삼층 정자 ‘동작대(銅雀臺)’가 우뚝 서 있다. 삼층 정자는 주변의 잣나무보다 약간 높은 정도다. 여기서는 사방으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다. ‘나무들이 자라 정자의 시야를 가리게 되면,누각 한 층을 더 올려야 하나’하는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동작대 이후의 길은 길 안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쉽다. 국립현충원(국립묘지) 담장(4)을 왼쪽에 두고 나 있는 담장 옆길만 따라가면 된다. 담장 옆이라서 삭막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길은 야무진 숲길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치게 정비해 놓는 바람에 계단이 곳곳에 생겼지만,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걷기에는 무리가 없다. 다만 작년 가을, 태풍 곤파스의 강풍이 파헤쳐놓은 상처가 숲 곳곳을 훤하게 비워놓은 것이 아쉽다. 이 길에는 작은 돌에 소원을 담아 쌓은 소망탑도 있고, 국립현충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도 두 곳 있다.
 
  이 개방문을 통해 현충원 안으로 들어가 순례길로 코스를 마무리할 수도 있다. ‘현충원 개방문(사당동)’은 소망탑을 지난 지 1분여 만에 나온다.
 
  현충원 개방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장 오른쪽 길을 50분 정도 계속 걸으면 동작역 맞은편으로 내려가는 꽤 긴 나무계단을 만난다.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천천히 쉬면서 내려가는 것이 좋다. 이 계단을 내려오면 동작대로 맞은편으로 동작역이 보일 것이다. 왼쪽에 보이는 육교를 건너가면 곧장 동작역(5)과 이어진다.
 



  두 번째 코스
 
  말안장 출렁이듯 그리 걸어보세!
 
  ● 서울(서대문구) : 연세대캠퍼스와 안산산책로 일주
  ● 걷는 거리 : 9.2km
  ● 소요 시간 : 4시간30분(쉬는 시간 포함)
 
 

태고종 총본산으로 천년고찰의 역사를 가진 봉원사.
  숲길 걷기는 입산(入山)이라고 할 수 있다. 등산(登山)이 아닌 입산(入山), 그것은 낮은 곳으로 겸허하게 임할 수 있다는 겸손함과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여기 온전히 입산하는 자를 위해 솟아난 땅과 바위가 있으니, 연세대학교 뒤에 자리한 안산(鞍山)이다. 말안장을 닮았다는 이 산에서 말 위에 올라탄 듯 출렁출렁, 실근실근 걸어보자. 정상 봉수대에서는 서울 시내를 한 폭의 그림인 양 바라보고, 산 중턱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어보자. 천년고찰(千年古刹) 봉원사(奉元寺)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산보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신촌역~연세대학교 캠퍼스 35분/1.7km
 
   서울 서대문구 구민들에게 안산은 가장 친숙한 뒷동산 놀이터다. 그러나 그냥 ‘뒷동산’이라고 하기엔 이 산에 미안하다. 산림욕장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멋진 전망대, 태고종(太古宗) 본산(本山)이 있기 때문이다. 명문 연세대학교도 바로 이 안산 기슭에 기대어 넓게 자리를 잡았다. 이 작은 산의 행정적인 공식명칭은 ‘안산도시자연공원’이다.
 
  안산은 정상이 해발 300m에도 못 미치는 낮은 산이지만, 조선시대의 긴급 통신체계였던 봉수대의 주요 루트 두 곳이 거쳐가던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목멱산(남산) 봉수대로 최초, 혹은 최후 신호가 송수신되었던 셈이다. 그만큼 거칠 것 없는 조망이 사방으로 보장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안산으로 오르는 길목은 사방으로 뻗었지만,여기 소개하는 코스의 출발점은 교통 요충지라 할 수 있는 지하철 신촌역 3번 출입구(1)다. 지하철을 나와 오른쪽인 홍익문고 방향으로 걸으면 10여 분 만에 굴다리 하나를 통과한다. 큰 길을 건너 연세대학교 정문(2)으로 진입해서 그대로 걸어간다.
 
  봄볕이 내리쬐는 3월의 대학캠퍼스는 상상만 해도 상큼하다. 연세대 경영대학원 건물 뒤쪽으로 이어지는 인도를 따라 100m쯤 가다 작은 차도를 건너면 곧 안산으로 진입하는 길 입구(3)가 나온다.
 
  연세대학교에서 안산으로 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입구인 이곳은 우리가 안산을 다 걷고 원점회귀할 때 내려올 곳이기도 하다. 많은 이가 드나드는 이 숲길 입구에는 별다른 표식은 없고 산불조심 푯말만 덜렁 서 있다. 대학캠퍼스를 통해 입산(入山)하는 것을 대학 측에서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안산 숲길~봉원사~안산 주능선 50분/1.6km
 
안산 봉수대 거북바위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 전경.
  숲길 입구에서 50m만 오르면 소나무가 울창한 작은 능선이다. 능선 등줄기를 따라 왼쪽으로 가면 연세대학교 울타리 격인 철망과 굵은 파이프로 아치를 두른 출입구가 나온다. 여길 통과하면 곧 ‘ㅓ’자 형태의 갈림길이다. 그대로 직진하듯 살짝 오르막을 오른다. 100m 정도 가면 오른쪽에 블록 담장이 있는 Y자 갈림길이다.
 
  왼쪽 나무계단으로 가면 곧바로 안산 무악정으로 올라갈 수 있으나 우리는 태고종 총본산인 봉원사를 거쳐갈 것이므로 담장을 끼고 직진하듯 1시 방향으로 간다. 5분 정도 그대로 평지 같은 길을 직진하면 봉원사 주차장이다. 주차장을 그대로 통과해 주차관리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봉원사 경내에 5분 만에 도달할 수 있다.
 
  봉원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우리나라 단일 목조건물로는 최대라고 알려진 ‘삼천불전(三千佛殿)’이 7톤의 대들보를 이고 내방객을 맞는다. 봉원사는 한여름의 연꽃 축제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자리에 멈춰 시선을 고정하면, 바삐 길을 갈 때에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숨은 그림찾기 하듯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오래된 산사가 그렇다. 신라 진성여왕 때 창건했다는 천년고찰 봉원사는 그럴 가치가 충분하므로 여유를 갖고 천 년의 시간을 음미하기 바란다.
 
  봉원사에서 삼천불전과 대웅전 사이로 올라가 몇 개의 전각을 지나 만월전(滿月殿) 왼쪽으로 난 숲길로 간다. 만월전을 지나 100m 정도 가면 갈림길이다. 오른쪽에 있는 철망을 끼고 유턴하듯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아직 잎을 틔워내지 않은 3월의 숲이지만 곧 성긴 잎들로 우거지고 또 우거져서 햇빛 한 줌 샐 틈 없는 어스레한 길이 될 것이다.
 
  5분 못 미쳐 중턱 오솔길을 가다 다시 철망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돈다. 10분 정도 오르막을 오르면 안산 남쪽 주능선 길이 T자 갈림길로 나타난다. 여기서 왼쪽으로 100m 남짓 가면 안산 일주코스의 주요 갈림길이 되는 사거리다. 안산을 말안장에 비유하자면 이쯤이 꼬리뼈가 닿는 부분이 될 것이다.
 


 
  안산 중턱 오솔길~신촌역 2시간30분/5.9km
 
  갈림길 중간에 작은 바위들이 삐죽삐죽 머리를 내민 이 사거리는 6시 방향과 12시, 1시, 3시 방향으로 길이 갈라진다. 여기서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길은 중급자 길이 될 수도 있고, 초급자가 갈 수 있는 길이 되기도 한다. 이정표와 매치시켜 설명하면 12시 방향은 ‘안산천약수터’ 1시 방향은 ‘봉수대’로 되어 있고, 우리가 왔던 방향은 ‘체력단련장’이다. 3시 방향은 따로 지칭하는 이정표 푯말이 없다.
 
  정상 봉수대 방향은 중급자 수준의 길이다. 이보다 난이도가 낮은 길은 안산천약수터 방향으로 간 후 안산 중턱 오솔길을 따라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안산 봉수대를 올라보길 권한다. 오를 때 쏟는 공에 비해 주어지는 대가가 송구할 정도로 장엄미 넘치는 조망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안산 봉수대 전망대에서는 도시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을 갈구하는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발밑으로 성냥갑처럼 늘어선 아파트들이 저마다 크고 작은 산에 기대어 가지런하다. 산이 없는 곳에서도 쑥쑥 자라는 속성수를 심어 수목을 주거지 가까이 붙여두었다.
 

서울에 이런 길이 있으리라곤 상상하기 힘들다(안산산림욕장 메타세쿼이아 길).
  봉수대에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반대방향으로 헬기장을 가로질러 간다. 그리로 가면 무악정이라는 2층 정자 앞 갈림길이다. 오른쪽 옥천약수터 방향으로 간다. 옥천약수터를 지나 내리막 계단을 앞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향한다. 계단을 내려가면 산림욕장 정규 루트를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오르막을 올라야 하므로 계단 오른쪽 길로 간다. 이리 가더라도 산림욕장 상부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을 수 있다.
 
  이 코스는 안산 봉우리의 중턱 오솔길을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걷는 길이다. 이후로도 왼쪽 내리막과 평지형 오솔길이 갈라지는 갈림길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직진하듯 중턱 오솔길을 선택하면 된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지난 지 30분 정도 되면 백암약수터를 지난다. 혹 길을 잃으면 백암약수터를 물어 가면 된다. 갈림길이 많은 도심 숲길을 걸을 때는 지나는 이들에게 길을 묻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심신이 편하다.
 
  백암약수터를 지나 왼쪽으로 길을 잡고 3분 정도 가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안산 주능선에 처음 올라온 후 만난 바로 그 사거리다. 12시, 1시, 3시 방향으로 길이 갈라진다고 했던 바로 그 갈림길이다. 이번엔 안산천약수터 방향으로 간다. 넓은 산책로를 10분 넘어 가면 다시 무악정 앞 갈림길이다. 여기서 왼쪽 내리막으로 쭉 내려가면 연세대학교 캠퍼스(4)로 갈 수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신촌역(5)까지 가는 길은 올 때와 동일하다

 

배봉산근린공원과 중랑천 벚꽃길 / 선정릉 산책로와 봉은사 순례길

제주도올레&언저리길걷기여행》(공저).

 

야트막한 산에 걷기 좋은 숲길을 품은 배봉산 중턱길.
  첫 번째 코스
 
  하얀 천일염처럼 빛나는 귀한 길
 
  ● 서울(동대문구) : 배봉산근린공원과 중랑천 벚꽃길
  ● 걷는 거리 : 7.1km
  ● 소요 시간 : 2시간30분(쉬는 시간 포함)
 
 
  효심(孝心)과 충절(忠節)의 이야기가 묻힌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拜峰山)에서는 옛 이야기만큼이나 부드러운 흙길을 만날 수 있다. 산이 낮아 가파른 언덕을 싫어하는 걷기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다. 산자락으로 쉬어 갈 곳과 운동시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이제 막 걷기운동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도 좋다. 봄이면 하얀 면사포를 뒤집어쓰는 중랑천 벚꽃 둑길과, 이 길과 배봉산을 잇는 육교가 이 길의 가치를 몇 배 더 빛나게 한다.
 
 
  회기역~배봉산 입구 15분/0.9km
 
   배봉산 자락에는 뒤주 속에서 숨을 거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인 수은묘(垂恩墓)가 있었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正祖)는 즉위 직후 수은묘를 승격시켜 영우원(永祐園)으로 부르게 했다. 정조 13년(1789년) 정조는 영우원을 지금의 화성시 안녕동으로 이장(移葬)하면서 그 이름을 현륭원(顯隆園)으로 개칭했다. 아버지의 무덤이 이장되기 전까지 정조는 아버지의 무덤이 있던 배봉산을 향해 날마다 배례를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산의 이름이 배봉(拜峰)이 되었다.
 
  배봉산에 왕릉(王陵)이 많아 지나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지났다고 하여 배봉이라 불렸다는 설도 있고, 산의 지세(地勢)가 도성(都城)을 향해 절을 하는 형국이라 배봉이라 부르게 됐다는 설도 있다.
 
  배봉산으로 향하는 길은 1호선 회기역 2번 출입구<1>에서 시작한다. 계단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가면 곧 큰길을 만난다. 건널목을 건너 찻길을 따라 왼쪽으로 5분 정도 걸으면 파출소 옆으로 삼육의료원 입구가 있다. 삼육의료원 안으로 들어가 찻길을 왼쪽에 두고 쭉 올라간다.
 
  치과병원 건물 앞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왼쪽으로 ‘병원주차장·응급실’이라고 쓰인 큰 이정표가 있다. 그리로 간다. 100m 못미처에 조그마한 스테인리스 가(假)건물이 있고 그 옆 쉼터에서 배봉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날 수 있다.
 
숲길 걷기에 입문하는 사람도 쉽게 접근이 가능한 유순한 길이다(배봉산).
 
  배봉산 능선길 20분/1km
 
이제 곧 연초록 잎들이 아우성치듯 온 숲을 뒤덮을 것이다.
  삼육의료원에서 배봉산으로 올라가는 계단<2>은 두 개가 있다. 어느 계단으로 가느냐에 따라 중간 갈림길에서 잡는 방향이 좀 다르다. 스테인리스 가건물 바로 옆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으로 설명하기로 한다.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길은 숲으로 쭉 이어진다. 중간에 작은 갈림길을 만나지만 멀리 정자 쉼터 기둥이 나뭇가지 사이로 슬쩍슬쩍 비치고 왼쪽에 화장실이 보이는 곳으로 그대로 직진, 계단을 올라선 지 3분 만에 왼쪽으로 발지압장이 있는 정자쉼터에 다다른다.
 
  ‘자연학습장 종합안내판’이 있는 오른쪽 방향으로 간다. 이후로는 배봉산 능선을 따라 정상 부근까지 나 있는 산책로를 걷는다. 약간의 오르막이 계속되지만 무시해도 될 수준의 낮은 경사다. 수많은 사람의 발길로 닦아진 길은 넓고 판판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능선을 걸은 지 10분이 채 안돼 정상 부근 군(軍)부대 울타리가 앞을 가로막아 선다.
 
  울타리를 왼쪽에 두고 오른쪽으로 3분 정도 걸으면 맞은편 능선길이 오른쪽으로 보인다. 이제 내리막으로 바뀐 숲길은 2~3분 가량 더 가다 철재 난간이 있는 갈림길과 만난다. 이 철재 난간 길과 만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크게 돌아간다. 이 갈림길에서 그대로 직진하면 주(主)능선에서 잘린 남쪽 능선을 더 걸을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중랑천 벚꽃길과 연계하기 어렵다.
 
  철재 난간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지금까지 능선으로 걸어왔던 배봉산의 동쪽 기슭을 되짚어 걷게 되는 셈이다. 산은 작지만 숲은 울창하기 그지없다. 철재 난간과 계단을 만드는 데는 공을 많이 들였지만 새로운 나무를 심은 흔적은 많지 않다. 숲에 손을 덜 댄 덕분에 숲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마음에 든다. “자연을 가장 아름답게 가꾸고 보존하려면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배봉산 숲길~중랑천 벚꽃 둑길 1시간30분/5.3km
 

지나친 감이 있을 정도로 산책로 정비가 잘되어 있는 배봉산 산책로.
  배봉산 자락길은 울창한 숲 그늘 밑으로 배드민턴장이 무수히 들어섰다. 그 때문에 갈림길도 많지만 그저 산언저리를 걷는다는 느낌으로 숲길을 찾아 나아가면 된다. 배드민턴장과 체육시설이 집중된 곳을 지나면 잠깐 석축 밑으로 마을 옆을 스치듯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서게 된다. 곧 만나는 Y자형 갈림길에서 오른쪽 노란 계단으로 내려간다.
 
  길섶으로 맥문동이 늘어선 그림 같은 숲길을 10분 정도 걷는다. 그러다 왼쪽으로 ‘동대문구 공원·녹지 순환길’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중랑천 둑길과 배봉산 숲길을 한 번에 연결하는 육교를 지나게 된다. 이 육교를 건널 때마다 숲길과 둑길을 이렇게 연결한 건 절묘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육교 덕분에 중랑천 둑길은 자연스럽게 배봉산 산책로와 하나가 됐다.
 
  육교를 건너 중랑천 둑길<3>로 들어서면 울타리를 타고 넘는 장미넝쿨이 인사를 건넨다. 말랑말랑한 우레탄 포장길은 걸음에 탄력을 준다. 중랑천 둑을 따라 군자교까지 3.4㎞나 이어지는 이 둑길은 이 지역에서는 벚나무길로 유명하다.
 
  4월 중순이면 벚꽃 잎이 흘러 하늘과 땅은 온통 하얀 강을 이룬다. 서울의 각 지역마다 벚나무길 없는 곳이 없지만, 이 둑길은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다. 수㎞에 걸쳐 직선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벚꽃의 향연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라!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지 않은가?
 
  이 둑길은 군자교에서 끝난다. 길이 끊어지면서 찻길을 만날 때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찻길 옆 인도를 10여분 걸으면 지하철 5호선인 장한평역<4>이 나온다.
 



  두 번째 코스
 
  강남 빌딩 숲 사이의 푸른 섬
 
  ● 서울(강남구) : 선정릉 산책로와 봉은사 순례길
  ● 걷는 거리 : 7.4km
  ● 소요 시간 : 3시간 내외(쉬는 시간 포함)
 
 

선정릉 소나무 산책로.
  만일 한 마리 새가 되어 서울 강남 일대를 내려다본다면, 직각의 마천루(摩天樓)들로 이루어진 정글이 보일 것이다. 이 삭막한 빌딩의 숲 속에, 마치 바다 한가운데 있는 고도(孤島) 같은 녹지(綠地)가 있다. 선정릉(宣靖陵)이다. 선정릉의 아름다운 소나무숲 산책로는 울타리 바깥의 빌딩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그려낸다. 선정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천년고찰 봉은사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생활에 지친 영혼이 쉬어 가는 마음의 쉼터다. 섬과 쉼터가 빌딩 숲에서 만났으니 이보다 더 럭셔리한 길이 또 있을까?
 
 
  선릉역~선정릉 매표소 5분/0.3km
 
   선정릉에는 모두 세 개의 능이 있다. 조선 성종(成宗)의 능인 선릉(宣陵)과 그의 계비(繼妃) 정현(貞顯)왕후의 능, 그리고 중종(中宗)을 모신 정릉(靖陵)이 그것이다.
 
  빌딩이 숲을 이룬 삭막한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선정릉에는 고맙게도 숲길까지 얼키설키 이어졌다. 2009년 6월 조선왕릉 40기(基)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덕에 이 공간은 앞으로도 온전히 지켜질 수 있게 됐다. 우리의 문화유산이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기억되게 된 것도 기쁜 일이지만, 걷기꾼의 한 사람으로서 왕릉이 품은 아름다운 자연의 길이 대대손손 지켜지게 되었다는 것은 더욱 기쁜 일이다.
 
  선정릉과 가까운 지하철역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선릉역이다. 8번 출입구(1)에서 불과 5분이면 선정릉 매표소에 다다른다.
 
  선정릉 매표소 앞에 있는 안내도를 보면 다양한 루트로 산책로가 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선정릉 외곽을 돌며 왕릉만 보고 나오면 짧게 끝나버리고 말지만, 여러 갈래의 산책로를 지그재그로 걸으면서 요령 있게 길을 잡아 나가면 꽤 긴 거리의 솔숲길을 거닐 수 있다.
 
  선정릉매표소(2)에서 입장권(성인 1000원)을 끊고 입구로 들어선 후에는 오른쪽 정릉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선정릉기념관 공사현장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왼쪽으로 단청(丹靑)이 없는 한옥(韓屋) 한 채가 보일 것이다. 이 집은 선정릉에 딸린 재실(齋室)로 제관(祭官)들이 제사 준비를 하거나 제사를 모시러 온 왕이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이용되던 곳이다. 지금도 선정릉에 제사를 모실 때는 이곳을 이용한다.
 


 
  선정릉 산책로~봉은사 입구 1시간50분/4.9km
 
  재실을 나와 붉은 빛이 영롱한 토종소나무 길을 10분 정도 거닐면 왼쪽으로 중종임금의 능인 정릉이 보인다. 홍살문까지 간 후 제향(祭享)을 올리는 정자각으로 간다. 이때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박석(薄石) 깔린 길에서 왼편의 높은 길은 가급적 밟지 않는 것이 좋다. 두 개로 나누어진 이 길 중에서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도(神道)라고 하여 죽은 영혼이 다니는 길이고, 오른쪽의 길은 임금이 밟던 어도(御道)이다.
 
  정릉을 보았으면 그 뒤로 이어지는 솔숲 산책로를 밟아 간다.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토종소나무길이기 때문에 비온 뒤에 찾으면 제대로 된 피톤치드 샤워를 할 수 있다. 10분 정도 길을 따라 걸으면 선정릉 울타리가 있는 곳까지 오게 되므로 왼쪽으로 간다.
 
  갈림길이 나올 때 외곽을 따라 걷는다는 느낌으로 가면 곧 성종임금의 계비인 정현왕후릉에 다다른다. 정현왕후는 우의정 윤호의 딸로 입궁(入宮)했다가 연산군(燕山君)의 생모(生母)인 왕비 윤씨가 폐위된 이듬해 왕비로 책봉됐다. 후에 중종이 된 진성대군을 낳았다.
 
  정현왕후릉에서 조금 밑으로 내려가면 선릉으로 들어가는 샛길을 통해 능 입구까지 가 볼 수 있다. 다른 왕릉과 달리 오전 10시30분과 오후 2시30분에 능침 부근까지 들어갈 수 있으니 시간을 잘 맞춰 가길 바란다. 선릉까지 보았으면 밑으로 내려오다 정자각 부근에서 왼쪽으로 간다. 음료수 등을 파는 매점이 나오면 이 매점을 끼고 정릉이 있는 방향으로 넘어간다. 작은 언덕을 넘은 후 오른쪽으로 가다 화장실이 있는 곳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언덕을 넘어오면 선정릉 산책로를 겹치는 곳 없이 거의 다 돌아보게 된다.
 
  이제부터는 봉은사로 가는 길이다. 매표소를 나와 왼쪽으로 간 후 선정릉 울타리를 왼쪽에 두고 초록 우레탄 길을 밟으면서 나아간다. 15분 정도 걸어가다 선정릉 울타리 길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간다. 오른쪽으로 5분 정도 걷다 사거리에서 건널목을 두 번 건너 잠실 방향으로 가자. 삭막한 도심을 걷다 갑자기 신기루(蜃氣樓)처럼 봉은사 입구(3)와 만날 것이다. 아주 쉬운 길이지만 혹시라도 봉은사 가는 길이 헷갈리면 길 가는 이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빌딩보다 낮게 지어졌으나 그 이상의 진중한 무게감을 주는 봉은사의 전각들.
 
  봉은사~삼성역 1시간/2.3km
 
  신라시대의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원성왕 10년에 견성사(見性寺)란 이름으로 창건한 봉은사는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조선시대에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에 의해 전국의 사찰들이 폐쇄될 때에도 능침(陵寢)사찰이었던 봉은사는 번창했다. 봉은사의 이런 위상을 잘 보여주는 여러 전각(殿閣)들이 보존되어 내려왔으나 1939년 큰불이 나는 바람에 대부분 불타 버렸다고 한다.
 
  봉은사를 찾으면 절대불변의 진리를 찾으러 들어간다는 진여문(眞如門)이 힘들고 지친 영혼들을 맞아 준다. 진여문 편액에는 수도산 봉은사(修道山 奉恩寺)라고 적혀 있다. 느릿한 걸음으로 이 문을 지나 법왕루(法王樓)를 거치면 곧바로 대웅전 앞마당에 다다른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면 각각의 이름표를 매단 연등(燃燈)이 대웅전 앞마당 하늘을 가린다. 여기서는 신자들이 합장을 하고 음전한 모습으로 탑돌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에 선 모든 사람을 숙연케 만드는 미륵대불.
  대웅전 오른쪽 길로 올라서면 봉은사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영산전(靈山殿)이 나타난다. 여기서 뒤를 돌아본다. 대웅전와 법왕루의 둥그런 처마 끝 예각이 기세등등한 강남 빌딩 숲의 직각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세속(世俗)과 불가(佛家)의 경계를 이룬다. 계속해서 왼쪽으로 가다 미륵대불 바로 앞에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미륵대불 뒤의 산길을 돌아온다. 여기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왔다는 미륵의 시선으로 바라본 화려한 강남 땅은 왠지 극락과는 점점 거리를 멀리하는 것 같아 보인다.
 
  미륵대불을 돌아 나와 정식으로 미륵께 곱게 인사를 드린 후에 만나게 되는 건물은 판전(版殿)이다. 이 판전의 편액(扁額)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마지막 글씨라고 한다. 판전을 지나 법왕루 옆에 있는 해우소 옆에 자리한 쉼터로 간다.
 
  이 쉼터에서 옆을 보면 최근에 폭을 넓힌 흙길이 보일 것이다. 이 길이 바로 봉은사 산책로 입구다. 그 길을 따라 15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더 작은 소로(小路)가 보인다. 아는 사람만 아는 봉은사의 비밀산책로다. 그리로 들어가 아늑한 숲길을 잠시 걸으면 아까 걸었던 미륵대불 뒷길과 만난다.
 
  이제 봉은사의 길은 모두 걸어 본 셈이니 다시 진여문을 통해 봉은사 밖으로 나온다. 봉은사를 나온 후로는 큰 찻길을 건너 삼성동길 지나 삼성역(4)까지 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도가 넓고 가로수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걷는 동안 그리 삭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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