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언어의 감옥[立象盡意論]

醉月 2012. 1. 6. 11:14
싱거운 편지
함경도 안변 땅에 벼슬 살러 가 있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서울에 있던 백광훈白光勳에게 편지를 보내 왔다. 반가운 마음에 겉봉을 뜯어보니,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 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히 지내고 있소. 三千里外, 心親一片雲間明月
라는, 딱 열 두 자 한 줄의 사연이다. 이만 사연 전하자고 천리 길에 편지를 띄웠더란 말인가.

 

그러나 음미할수록 새록새록 정감이 넘나는 뭉클한 사연이다. 한 조각 구름 속에 밝은 달이라 했으니, 달은 달이로되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달이다. `心親`이라 하여 그밖에 다른 것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였다. `月印天江`이랬거니, 달은 나 있는 안변이나 너 있는 한양이나 가뭇없이 비칠 것이 아니냐. 그래서 널 보듯이 달을 보고, 달 보듯이 너를 생각는다는 사연이다. 그나마도 그 모습은 보일듯 구름 사이로 숨기 일쑤이니 이 아니 안타까운가. 단지 열 두자의 편지가 심금을 울린다.
노산의 시조에 "진달래 피었다는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지 못하고"라고 한 것이 있지만, 야릇할 손 봉래의 편지여!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 구름 사이로 얼굴을 빠꼼이 내민 달과 친하다니 말이다. 그리움을, 보고 싶단 말을 이리 말하는 마음. 삼천리 밖에서 보낸 편지 치고는 싱거워서 뭉클한 사연이다.
서울 봄날 한 통의 편지를 받아드니
글 속엔 다만 `심친心親`이란 말 뿐이라.
그리는 맘, 구름 달을 오히려 부렀구나
삼천리 밖 사람에게 나누어 비칠테니.
一紙書來漢口春 書中有語只心親
相思却羨雲間月 分照三千里外人

 

앞 편지를 받고 쓴 백광훈의 시이다. 편지를 손에 들고 그 역시 그리움에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했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백광훈의 시를 다시 한 수 더 감상해 보기로 하자.
뜬 인생 백년 간을 괴로워 하며
웃는 얼굴로 식구를 달래었지.
금릉성 아래 와서 올려다 보니
흰 구름 아직도 구봉산에 걸렸구나
.
浮生自苦百年間 說與妻兒各好顔
却到金陵城下望 白雲猶在九峯山

 

제목은 〈별가別家〉이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부생浮生`을 탄식하며 `자고自苦`한다 했으니, 떠나는 사연이야 짐작할 만하다. 실제로 그는 젊은 날 실의와 곤궁 속에 처가에서 더부살이 하는 처지였었다. 이후로도 실의와 좌절은 평생을 두고 따라 다녔지만, 한미한 집안의 선비로 기약 없는 청운의 길을 찾아, 처자식을 처가에 맡겨 두고 길 떠나는 참담함이 1.2구 안에 눈물처럼 배여 있다. 좋은 낯빛으로 떠난다는 말이 그래서 더 안스럽다.

 

집을 떠나 재를 건너고 뫼를 넘어, 금릉성 아래 께까지 와서 참고 참다 집 쪽을 돌아보았다. 산 마루가 가로 놓여 있으니 보일 리 없다. 그러나 구봉산엔 흰 구름이 그대로 걸려 있구나. 집을 나설 때 암담하게 막아서던 구봉산. 그 때 그 묏부리 위에 걸려 있던 그 구름이 여태도 그곳에 머물러 있다. 1구의 `부생`과 4구의 `백운`이 여기서 다시 만난다. 정처 없이 떠돌아도 좋은 날은 오지 않는데, 저 산 마루 위 구름은 `공자망空自忙`의 부생浮生을 비웃기나 하는 듯이, 제가 무슨 바위 인양 꿈쩍 않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 웃는 얼굴로 헤어졌지만 가슴을 에이는 씁쓸한 느낌, 금릉성을 내려와 구봉산 돌아 보니, 올라 올 적 흰 구름이 그대로 걸려 있네. 아직도 가족 생각에 애잔한 내 마음처럼. 백광훈은 다정다감한 시인이다. 이런 그이고 보니, 봉래의 앞서의 편지가 있음직도 했겠다. 그의 시를 가만이 읽고 있노라면, 필자는 웬지 그 잔잔한 슬픔에 감염되어 가슴이 뻐근해지는 느낌을 받게 되곤 한다.

왜 사냐건 웃지요
옛 사람의 글에는 야단스러움이 없다. 간결하게 할 말만 하고, 때로 아무 말도 않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은 글자 사이로 흘러, 행간에 고여 넘친다. 예전 중국의 곽휘원郭暉遠이란 이가 먼데로 벼슬 나가 있다가 집에 편지를 보냈는데, 착각하여 백지를 넣고 봉하였다. 그 아내가 오랜 만에 온 남편의 편지를 꺼내 보니 달랑 백지 한 장 뿐이었다. 답시를 보냈다.
푸른 깁창 아래서 봉함을 뜯어보니
편지지엔 아무 것도 써 있질 않더이다.
아하! 우리 님 이별의 한 품으시고
말 없는 가운데 그리는 맘 담으셨네.

碧紗窓下啓緘封 尺紙終頭徹尾空
應是仙郞懷別恨 憶人全在不言中

 

청나라 원매袁枚의 《수원시화隨園詩話》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내의 난데 없는 답장을 받아든 곽휘원은 아마 그때까지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꿈 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경우이긴 하지만, 일껏 편지를 써 놓고 백지를 봉해 부치는 곽휘원의 약간 모자란듯한 멍청함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정작 원매도 쓰다달다 말 없이 단지 그녀의 답장만을 실어 놓고 말을 멎고 말았다. 정말 마음이 통하는 사람 사이에 언어란 원래 불필요한 것이다.

 

본래 동양의 예술 정신은 다변과 요설을 싫어한다. 긴장을 머금은 함축을 소중히 여긴다. 진晋나라 때 환이桓伊란 사람은 피리를 잘 불기로 유명했다.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王徽之가 시내가에 배를 대고 있는데, 환이가 언덕 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때까지 서로 인사가 없던 터였다. 왕휘지가 사람을 보내 말했다. "듣자니 그대가 피리를 잘 분다는데, 나를 위해 한 곡 연주해 주겠는가." 환이는 당시 높은 신분이었는데, 그 또한 평소 왕휘지의 명망을 듣고 있었다. 두 말 없이 수레에서 내린 그는 호상胡床에 걸터 앉아 그를 위해 세 곡의 노래를 연주하였다. 연주가 끝나자 그는 말 없이 다시 수레에 올라 그 자리를 떠나갔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한 마디의 말도 직접 오가지 않았다.
예전 카알라일과 에머슨이 처음 만나 30분 가량을 아무 말 않고 앉았다가는 오늘은 퍽 재미나게 놀았다며 악수하고 헤어졌다는 싱겁고도 이상한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어는 부질 없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냐 묻길래
웃고 대답 아니해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떠 가거니
또 다른 세상일래, 인간이 아니로세.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閒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다. 산 속에 묻혀 사는 나에게, 왜 답답하게 산 속에 사느냐고 묻는다. 묵묵부답, 싱긋이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한들 그가 내 마음을 어이 헤아릴 것이랴. 또 낸들 무슨 뾰족한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나, "왜 사냐건 웃지요" 밖에는. 복사꽃이 물 위로 떠 가니, 상류 어디엔가 무릉의 도원이 있지나 않을런지.
다음은 고려 때 최유청崔惟淸의 〈잡흥雜興〉 시 연작 가운데 한 수이다.

 

봄풀 어느덧 저리 푸르러
동산 가득 나비가 날아다닌다.
봄바람 잠든 나를 속여 깨우려
침상 위 옷깃을 불어 흔드네.
깨고 보면 고요히 아무 일 없고
숲 밖엔 저녁 해만 비치고 있다.
난간에 기대어 탄식하려다
고요히 이미 기심機心 잊었네.
春草忽已綠 滿園蝴蝶飛
東風欺人垂 吹起床上衣
覺來寂無事 林外射落暉
依檻欲歎息 靜然已忘機

 

연초록 푸르른 동산에 나비 떼들이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꿈 같은 봄날의 스케치이다. 감미로운 햇살에 곤한 봄잠이 깊어 있던 그를, 짖궂은 봄 바람은 자꾸만 일어나라고 옷자락을 흔든다. 이 아름다운 봄날을 잠으로만 보내서야 되겠느냐는 점잖은 충고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부시시 일어나보면, 여전히 나비 떼는 날아다니고, 동산은 싱그럽고, 어느덧 햇살만이 뉘엿해 있을 뿐이다. 기운 햇살의 빗긴 볕을 받아 반짝이는 물상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시인은 자기도 모르게 `아!`하는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입술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입안을 맴돌다 고요히 사라지고, 어느덧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잊고 말았다는 것이다.

 

시인이 보여주는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 새 시인 대신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선잠을 깨어 바라보는 봄날 해질 녘 광경의 황홀함 속에서 그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느낌조차 무화無化시켜 버리고, 기심機心 즉 분별하고 헤아리는 마음마저 앗아가 버린 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 시는 이렇듯 모든 것이 기화해 버리고 남은, 순수한 결정의 세계를 노래한다. 그래서 내가 봄동산이 되고, 그 동산의 나비가 되어 봄날의 석양 속으로 훨훨 날아가 버리는 느낌을 노래한다. 필설로 옮기려 하는 순간 증발해 버리듯 사라져 버린 기심, 사물과의 순간적인 만남이 가져다 주는 이러한 생취生趣를 설명적 언어로 옮기려는 시도는 얼마나 허망한가. 그러고 보면 언어는 참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장자莊子》〈천도天道〉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나라 환공이 누각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아래서 수레 바퀴의 굴대를 끼우던 윤편이 다짜고짜 계단을 올라와 임금에게 물었다. "전하! 지금 읽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옛 성인의 책이니라." "그 분은 지금 살아 계신가요?" "죽었지." "그렇다면 전하께선 옛 사람의 껍데기를 읽고 계신 거로군요." 제환공은 화가 났다. 윤편의 수작이 방자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네 이놈! 무엄하구나. 그 말이 무슨 뜻인가. 까닭이 있으면 살려 주려니와, 그렇지 않다면 살려두지 않으리라." 윤편은 대답한다. "저는 저의 일을 가지고 판단할 뿐입니다. 제가 바퀴를 끼운 것이 지금까지 수십년입니다.

 

그런데 굴대가 조금만 느슨해도 금새 빠져 버리고, 조금만 빡빡해도 들어가질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빡빡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제 마음과 손으로 느껴 깨달을 뿐이지요. 그 이치는 제 아들 녀석에게도 가르쳐 줄 수가 없고, 전하께도 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옛 성인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해도, 그가 죽으면서 그 말은 다 없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 사람의 껍데기일 밖에요."
윤편이 수레 바퀴를 깎는 그 미묘한 기술을 어떻게 언어로 전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수레 바퀴를 깎는 기술을 익힐 수 있었을 것이다. 언어란 이렇게 불완전하다. 이런 불완전한 도구를 가지고 인간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고, 시비가 생겨난다. 그래서 장자는 이렇게 부연한다. "세상에서 귀하다고 말하는 것은 글이다. 글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말에는 귀히 여기는 것이 있으니, 말이 귀히 여기는 바는 뜻이다. 뜻에는 따르는 바가 있으니, 뜻이 따르는 바의 것은 말로는 전할 수가 없다."

 

언어는 뜻을 온전하게 전달할 수 없다는, 이른바 `언불진의言不盡意`의 생각은 고대로부터 널리 인식되어 왔다. 《주역》〈계사상繫辭上〉에서는, 공자의 입을 빌어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 書不盡言, 言不盡意"고 했다. 위 장자의 말과 그 뜻이 같다. 그러고 보면 옛 성인들이 남긴 글은 그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뜻과는 두 단계나 떨어져 있다. 그래서 순찬荀粲은 "비록 육경이 남아 있다고 해도, 진실로 성인의 겨와 쭉정이일 뿐"이라고까지 말하였다. 언어 표현이 갖는 한계를 철저히 인식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백아伯牙의 절현絶絃은 지음知音이던 종자기鍾子期의 죽음 때문이었다. 백아가 물 흐르는 것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종자기는 곁에서 "강물이 넘실대는 것 같군." 했고, 산을 오르는 것을 생각하면 종자기는 또한 그 마음을 그대로 읽었다. 그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평생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수선조水仙操〉란 시의 서문에는 이 백아가 처음 성련成連에게서 거문고를 배울 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성련에게서 3년을 배운 백아는 연주의 대체를 터득하였으나, 정신을 텅비게 하고 감정을 전일하게 하는 경지에 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성련은 "내가 더 이상은 가르칠 수 없겠구나. 내 스승 방자춘方子春이 동해에 계시다." 하고는 그를 따라 오게 하였다.

 

봉래산에 이르러 백아를 남겨두고 "내 장차 내 스승을 모셔 오마."하고는 배를 타고 떠나가 열흘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백아는 너무도 슬퍼, 목을 빼어 사방을 둘러 보았지만 단지 파도 소리만 들려올 뿐, 숲은 어두웠고 새 소리는 구슬펐다. 그때 백아는 문득 스승의 큰 뜻을 깨달았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장차 내게 정을 옮겨 주신 게로구나."하고는 이에 거문고를 당겨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깨달음은 말로는 가르쳐 줄 수가 없다. 마음으로 깨달아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이른바 심수상응心手相應이다. 성련은 마지막 단계에서 백아가 강렬한 바램을 가지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함으로써, 말로는 도저히 전해줄 수 없었던,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최후의 심법을 전수해 주었던 것이다.

 

석가가 연꽃을 따서는 제자들에게 들어 보였다. 아무도 그 뜻을 몰라 의아해 할 때 가섭만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하여 문자로 세울 수도 없고 가르쳐 전할 수도 없는 부처의 정법안장正法眼藏 미묘법문微妙法門은 그에게로 이어졌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가 바로 이것이다. 언어란 본시 부질 없는 것이기에 큰 진리는 언제나 언어를 초월하여 전해지고, 깨달음은 언어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사벌등안舍筏登岸`의 법을 말한다. 언덕을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장자는 `득어망전得魚忘筌`을 말한다. 고기를 얻었으면 통발을 잊어라. 또 `득의망언得意忘言`, 즉 뜻을 얻었거든 말을 잊으라고 주문한다. "지붕에 올라간 다음에는 누가 쫓아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치워야 한다. 유용한 진리는,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움베르또 에코의 말이다. 그래서 도연명은 〈음주飮酒〉시에서 "이 가운데 참된 뜻이 있으나, 말하려 하니 이미 말을 잊었네.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라 하였다.

내 혀가 있느냐?
언어가 이처럼 불완전한 도구라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서진西晋의 구양건歐陽建은 〈언진의론言盡意論〉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금에 이름을 바로잡으려 힘쓰고, 성현이 말을 능히 떠나지 못한 것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 진실로 이치를 마음에서 얻어도 말이 아니면 펼 수가 없고, 사물을 말에 고정시켜도 이름이 아니면 구분할 수 없다." 언어가 제 아무리 불완전한 존재라 해도, 인간은 언어를 떠나서는 결코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옛 성인의 뜻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계사繫辭〉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성인은 상象을 세워서 그 뜻을 다하고, 괘卦를 세워서 참과 거짓을 다하며, 문사를 이어서 그 말을 다한다." 여기에서 `입상진의立象盡意`의 말이 나왔다. 말로 뜻을 다 할 수 없다면 형상으로써 뜻을 전달하라는 것이다.

 

《주역》에서 입상진의 하고 있는 몇 예를 보기로 하자. 중부괘中孚卦 구이九二의 효사爻辭를 보면 "우는 학이 그늘에 있고, 그 새끼가 화답한다. 내게 좋은 술잔 있으니, 그대와 함께 나누리라. 鳴鶴在陰, 其子和之. 我有好爵, 吾與爾靡之."라 하였다. 무슨 말인가? 괘를 풀이하는 사람은 이를 `군자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어미 학이 산 기슭에서 울면 그 새끼는 어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화답하여 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은 뜻없이 던지는 한 마디 말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곤 한다. 좋은 술잔이 있으면 여러 사람이 함께 이것을 가지고 술을 마신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언행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군자는 각별히 언행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해괘解卦 육삼六三의 효사에는 "짐을 지고 수레를 타니, 도적을 불러 들인다. 負且乘, 致寇至"라 하였다. 이 말은 상하의 기강이 문란해지면 외적의 침입을 자초하는 일임을 경계한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가? 등에 짐을 지는 것은 천한 소인이나 하는 일이다. 수레는 고귀한 신분의 군자가 탄다. 등에 짐을 져야 할 소인이 귀한 사람이나 탈 수레를 탔으니, 그 기강이 문란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외적이 이 틈을 타서 도발하려 함은 당연하다. 그 분석 유추의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시를 분석하는 것과 방불치 아니한가.

 

말하는 이의 `입상立象`이 듣는 이에게 `진의盡意`되기까지는 이렇듯 몇 차례의 유추와 비약이 감행된다. 그래서 연암 박지원은 〈답이중존서答李仲存書〉에서 이렇게 말한다. "속담에, 꿈에 중을 보면 부스럼이 생긴다고 하는데 무슨 말인가? 중은 절에 살고, 절은 산에 있고, 산에는 옻나무가 있으며, 옻나무는 사람에게 부스럼이 나게 하니, 꿈 속에서 서로 인하게 되는 것이다." 중과 부스럼, 이 두 `象` 사이에는 `중-절-산-옻-부스럼`이라는 여러 단계의 유추가 생략되어 있다. 생략된 이 여러 단계를 복원시켜야 만이 올바로 `진의盡意`할 수 있다.

 

《토정비결》이 일러주는 점괘는 모두 `입상`만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 안에 담긴 뜻은 그래서 사람마다 귀에 걸면 귀거리, 코에 걸면 코거리 식으로 풀이된다. 그러니 《토정비결》은 언제든지 신통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입상`들은 뒷 세상 사람들의 견강부회를 낳게 마련이어서, 뒤에 가면 어느 것이 사실에 가까운지 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많다. 다른 예로 땅이름을 통해서도 이러한 오해를 보게 된다. 문경에 가면 새재가 있다. 한자로는 조령鳥嶺이다. 새재가 먼저고 조령은 한자로 옮긴 말이다. 그러나 조령이 입에 굳어지자, 새도 날아 넘어가지 못하는 고개라는 식의 견강이 이루어진다. 새재란 `사이재` 즉 `샛 고개`라는 뜻이다.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올라올 때에는 이 길이 가장 지름길이므로 생긴 이름이다. 광주 무등산의 `무등無等`은 향찰식 표기이다. 예전 식으로 읽으면 `무돌`이니, `무지개를 뿜는 돌`이라는 근사한 뜻이다. 이 산의 옛 이름을 서석산瑞石山이라고도 하는데, 이때 서석은 바로 무지개를 뿜는 돌을 달리 말한 것이다. 이것을 한자 대로 풀이하려다 보니, 하도 좋아서 등급으로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그럴듯한 부회를 낳는다. 모두 입상을 진의하지 못한데서 온 오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의 염려 때문에 입상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직설적 언어의 나열보다 전달면에서 더욱 훌륭한 효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허균의 《한정록閑情錄》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상용商容은 어느 때 사람인지 모른다. 그가 병으로 눕자 노자가 물었다.
"선생님! 제자에게 남기실 가르침이 없으신지요?"
"고향을 지나거든 수레를 내리거라. 알겠느냐?"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높은 나무 아래를 지나거든 종종걸음으로 가거라. 알겠느냐?"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러자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내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내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알겠느냐?"
"강한 것은 없어지고 약한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천하의 일을 다 말했느니라."
이렇게 말한 상용은 돌아 누웠다.

 

이것이 입상진의이다. 여러분은 알겠는가? 상용이 노자에게 준 가르침은 자신의 본 바탕을 잊지 말고, 웃 사람을 공경하며,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이기라는 것이니,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며 지녀야 할 마음가짐의 모든 것을 다 말했다고 한 것이다. 언어란 본시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이것을 굳이 억지로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할 것이 아니다. 큰 가르침은 사람마다 일깨워 가르칠 수 없다. 본래 알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알아 듣고, 모를 사람에게는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 준댔자 더 혼란스럽기만 하다.
허균은 또 같은 책에서 이런 일화를 전하고 있다. 손님이 초당을 지나다가 문을 두드리며 자연에 묻혀 사는 일에 대해 물었다. 주인은 대답하기 귀찮아 고인의 시를 가지고 대답하고 만다.

 

"무엇 때문에 즐겨 숨어 사는가?"
많은 일들 밖에서 한가함을 얻었고
젊은 시절에 만족함을 알았노라.
得閒多事外 知足少年中
"무슨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가?"
꽃 심느라 봄날에는 덮인 눈 쓸고
도서道書를 읽느라 밤에는 향을 피우네.
種花春掃雪 看 夜焚香
"어찌해야 양생하여 늙음을 마칠 수 있는가?"
글쓰는 일에는 흉년이 없고
술 나라에는 언제나 봄이라오.
硏田無惡歲 酒國有長春
"어디를 다니면서 무료함을 지우는가?"
날 찾아 오는 손님이 있어
통성명을 하고 보면 복희씨(농부를 말함)로다.
有客來相訪 通名是伏羲
옛 사람의 상쾌한 정신의 한 자락을 들여다 보게 해주는 이야기다. 《암서유사 栖幽事》란 책에 나온다고 허균은 적고 있다.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다시 그림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다. 산수화에서 비가 오는 광경은 어떻게 그리는가? 화면 위에 빗금을 그어 빗줄기를 그리지는 않는다. 눈이 오는 것을 어떻게 그리는가?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릴 때처럼 칫솔에 흰 물감을 묻혀 뿌리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바람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는? 바람은 없고 비만 올 때는? 비를 그리지 않고, 눈을 그리지 않고, 바람을 그리지 않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것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왕유王維의 저술로 전해지는 〈산수결山水訣〉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비가 오면 천지가 구분되지 않고 동서를 알 수가 없다. 바람만 불고 비는 오지 않으면, 단지 나무의 가지만 보인다. 비는 오지만 바람이 없으면, 나무 끝이 축 처지고, 행인은 우산이나 삿갓을 쓰고, 어부는 도롱이를 걸친다." 자! 이 비결을 가지고 다시금 눈에 익은 여러 산수화를 살펴 보라.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연암은 〈중북소선서鍾北小選序〉에서 이렇게 말한다. "먼 물은 물결이 없고, 먼 산은 나무가 없으며, 먼 사람은 눈이 없다. 그 말함은 가리킴에 있고, 그 들음은 손을 맞잡음에 있다." 먼 물과 가까운 물은 파도의 있고 없음으로 구분한다. 산의 원근은 나무의 유무로 드러낸다. 사람의 멀고 가까움은 눈을 그리느냐 그리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화면 속에 두 사람이 나오면, 으례 한 사람은 어딘 가를 가리키고 있고, 한 사람은 손을 맞잡고 있다. 가리키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고, 맞잡은 사람은 듣고 있는 사람이다. 싸구려 산수화를 보면 아득히 먼 산에도 어김 없이 소나무가 빽빽히 그려져 있다. 연암의 위 말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효험있는 처방이다. 이것이 바로 그림에 있어서의 입상진의이다.
이제 입상진의의 거울에 비추어, 시 몇 수를 감상해 보자.
차운 밤 고양이는 가까이 붙고
개인 하늘 제비는 높이 나누나.
남은 해 깊이 문 닫아 걸고
맑은 새벽 홀로 뜰을 걸으리.
夜冷狸奴近 天晴燕子高
殘年深閉戶 淸曉獨行庭

 

《소문쇄록 聞 錄》에서 한적시閑寂詩의 대표적 예로 들고 있는 목은 이색의 작품이다. 서늘해진 가을 밤, 고양이는 추위를 못 이겨 자꾸 사람 곁을 찾아들고, 하늘 높이 제비는 강남 가는 길을 서두른다. 시인은 고양이와 제비를 빌어 가을이 깊어 감을 말하고 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고양이만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외롭고 춥기야 고양이나 나나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나뭇잎이 지듯 모든 것들은 훌훌 떠나버리고, 남은 생애도 하잘 것 없어 사립문을 닫아 걸었다. 닫아 건 사립 안에서 맑은 새벽 홀로 뜨락을 거니는 시인의 심사는 안으로 잔잔한 서글픔과 허탈함을 담았으면서도, 새벽 공기처럼 맑고 깨끗하다. 그러나 세상과 어그러져 닫은 사립문은 밖에서 열기 전에는 스스로도 열 수가 없다. 사립문 속에서는 자신과의 싸움이 있고, 치열한 자기 갱신이 있다.
다음은 고려 말 이제현李齊賢의 〈산중설야山中雪夜〉란 작품이다.
홑이불 한기 들고 불등은 희미한데
사미는 밤새도록 종조차 울리잖네.
나그네 일찍 문 연다 응당 투덜대겠지만
암자 앞 눈이 소나무 누른 모습 보아야겠네.
紙被生寒佛燈暗 沙彌一夜不鳴鐘
應嗔宿客開門早 要看庵前雪壓松

 

깊은 산에 자리 잡은 암자에 손님이 찾아 들었다. 궁벽한 암자라 식구라야 스님과 심부름하는 사미승 둘이 고작인데, 예기치 않던 손님을 맞아 군불도 때지 않은 법당에다 잠자리를 마련했던 모양이다. 얇은 이불로 스물스물 스며드는 한기에 손님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인이 잠 못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미승이 종을 울리지 않은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등 희미한 법당 한 구석에서 추위에 떨고 있으려니, 날이 어서 새었으면 하는 바램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사미승 녀석은 따뜻한 제 방에서 잠만 쿨쿨 자느라 종을 울리지 않으니 깜깜한 밤에 나그네는 도무지 시각을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춥고 괴로운 밤이 지나고 터오는 먼동이 나그네는 어느 때보다 반가왔겠다. 내다 보니 밤새 흰 눈이 내려 천지는 은세계로 변해 있었다. 소담스런 눈에 덮혀 눈 뜨는 물상들의 조촐한 모습에 이끌린 나그네는, 간 밤의 추위와 불면도 까맣게 잊고 탄성 속에 밖으로 나선다. 3구는 문을 나서면서 나그네가 혼자 하는 독백이다. 밤새 잠만 잔 사미승 녀석은 이른 새벽부터 나그네가 부산을 떨어 아침 잠을 깨운다고 투덜대겠지. 네 녀석이 뭐라건 말건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설경만은 꼭 보아야겠노라는 말이다. 산중 경치에 익은 사미승이야 그깟 눈이 온댔자 눈 치울 일이 귀찮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속세의 나그네야 어디 그런가. 나그네와 어린 사미승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이 시의 흥취는 속세의 시간이 멈춰선 눈 온 아침 겨울 산사의 고즈녁한 정경과, 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약간은 들뜬 시선 사이에서 내밀하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봄 바람 문득 이미 청명이 가까우니
보슬비 보슬보슬 늦도록 개이잖네.
집 모롱이 살구꽃도 활짝 피어나려
몇 가지 이슬 머금고 날 향해 기울었네.
春風忽已近淸明 細雨  晩未晴
屋角杏花開欲遍 數枝含露向人傾

 

그리하여 봄은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 온다. 위 시는 권근權近의 〈춘일성남즉사春日城南卽事〉이다. 청명이 가까워진 어느 봄날 성남의 소묘이다. 굳이 두목의 "청명시절우분분淸明時節雨紛紛"을 말하지 않더라도, 이 시절에는 꽃 소식을 재촉하는 봄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신다. 이른 바 행화杏花의 시절이 온 것이다. 가을 날의 근심이 덧 없이 스러진 청춘의 꿈을 애상하는 허탈한 독백이라면, 봄 날의 근심은 근심이라기 보다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설레임을 동반한다. 늦도록 개지 않고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뜨락으로 그는 내려 선다. 집 모롱이 살구꽃은 망울이 부퍼, 이제 막 꽃망울을 일제히 터뜨릴 기세다. 그 위에 봄비의 빗방울이 얹히니, 꽃가지는 그만 제 무게를 못이겨 기우뚱하다. 4구의 `향인경向人傾`, 즉 `날 향해 기울었네`는 말은 사실 `날 향해 인사하네`의 뜻이다.
옛 절 문 앞에서 또 봄을 보내니
남은 꽃, 비를 따라 옷을 점 찍네.
돌아올 제 맑은 향내 소매에 가득하여
무수한 산벌들이 먼데까지 따라오네.
古寺門前又送春 殘花隨雨點衣頻
歸來滿袖淸香在 無數山蜂遠 人

 

임억령林億齡의 〈시자방示子芳〉 세째 수이다. 봄이 떠나는 옛 절 문 앞. 시인은 봄비에 젖어 숲을 걷는다. 가는 봄과 지는 꽃잎, 거기에 어우러진 이끼 낀 옛 절의 모습. 비는 내리고, 걷는 옷깃 위로 자꾸 묻어나는 꽃잎. 이러한 몇 개의 겹쳐진 장면 속에 봄을 보내는 울적한 심사는 어디에도 없다. 꽃잎이 묻은 소매이니 맑은 향기가 가득하고, 벌은 꽃으로 오인하여 잉잉거리며 쫓아온다. 가는 봄에 져버린 꽃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꽃이 되고 봄이 되어 벌을 몰고 돌아오는 것이다.
네 구 가운데 어디에도 시인의 정은 드러남이 없다. 단지 있는 그대로를 서술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미 많은 이야기가 독자에게 건네지고 있고, 그 경물 속에 몰입하면서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그 숲 속을 거니는 듯한 흥취를 만끽한다. 벗과 헤어져 있음을, 봄이 떠나감을, 떠나감으로 헤어짐으로 인식치 아니하고, 꽃잎이 묻은 소매로 내가 꽃이 되고 봄이 되는 인식의 갱신에서 시인은 몰아의 희열 속으로 빠져든다.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송나라 때 관사복管師復은 스스로 와운선생臥雲先生이라 자호하며 전원에 묻혀 살았던 사람이다. 인종仁宗이 그를 불러, "경이 전원에 살며 얻은 것은 어떤 것인가?"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둔덕 가득 흰 구름은 갈아도 끝이 없고
못 속의 밝은 달은 낚아도 자취 없네.
滿塢白雲耕不盡 一潭明月釣無痕
라 하였다. 언제나 흰 구름 자옥한 둔덕, 그 구름을 밭삼아 다 갈아볼 날은 과연 언제이겠는가. 못 위에 둥두렷이 떠오는 밝은 달은 제 아무리 낚아 채도 한량 없는 무진장이다. 그러니 어떻다는 말인가?
섬돌 쓰는 대 그림자, 먼지는 그대로요
못을 뚫는 달빛에도 물에는 흔적 없네.
竹影掃階塵不動 月光穿沼水無痕
대나무 그림자는 바람에 일렁이며 섬돌 위를 빗질한다. 그래도 섬돌 위의 먼지는 그대로이다. 달빛은 연못 밑바닥을 뚫고 비친다. 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푸른 바다 배 간 자취 찾을 길 없고
청산에는 학 난 흔적 볼 수가 없네.
滄海難尋舟去迹 靑山不見鶴飛痕
시란 이와 같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와 닿아 있다. 무언가 꼬집어 말하려 하면 사라져 버리는 느낌,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노래한다. 효용 가치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저편으로 울려 오는 떨림, 그 떨림의 미묘함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인간에게는 단지 입상함으로써만이 진의할 수 있는 묘오妙悟의 세계가 있음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명나라의 사진謝榛은 그의 《사명시화四溟詩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를 지음은 핍진한 것은 마땅치 않다. 마치 아침에 가서 멀리 바라보면 청산의 아름다운 빛이 은은하여 사랑스럽고, 안개와 노을은 변화무쌍하여 무어라 이름하여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막상 올라가 보면 별반 기이한 경치가 아니고, 오직 돌 조각과 몇 그루 나무일 뿐이다. 멀고 가까움에 본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니, 妙는 어렴풋함에 있어, 그러한 속에서 비로소 솜씨가 드러나게 된다.
시에서 입상진의를 귀히 여기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막상 시인이 말하고자 한 것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놓고 보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몇 줄의 교훈이거나, 아니면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도 없는 미묘하고 추상적인 느낌의 단편 뿐이다. 마치 멀리서 본 산이 아름답지만 막상 올라서서 보면 바위돌 몇 개, 나무 몇 그루 뿐인 것과 같다. 그렇다고 멀리서 바라보는 산의 아름다움을 거짓이라고 거부할 일은 아니다. 〈어부사시사〉에서 "강촌의 온갖 꽃이 먼빛치 더옥 됴타"고 노래할 줄 알았던 고산 윤선도는 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던 사람이다. 소월이 말한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도 그 뜻이다. 양파의 껍질은 아무리 벗겨도 알맹이가 나오지 않는다. 시를 낱낱이 해부하여 찢어 발기고 나면, 남는 것은 언어의 시체 뿐이다. 멀리서 바라보이던 은은하고 아름다운 산의 모습은 간 곳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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