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황교익의 味食生活_11

醉月 2011. 11. 21. 17:54

국민 생선과 잡어 사이 그러나 우월은 없다

한국음식 vs 일본음식

홍대 앞 한 가게에서 오니기리를 사진 찍고 있는 야마시타 씨.

 

일본인 출판기획자 야마시타 씨는 한국음식에 관심이 많다. 한국에서 막걸리 기행을 하고 이를 책으로 엮어 내 한국 언론에 그의 얼굴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필자는 어찌어찌 인연이 돼 그와 두 차례 만났다. 그는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한국말을 곧잘 한다.

 

두 번째 만남은 서울 홍대 앞에 있는 일본식 음식점을 취재하는 날 이루어졌다. 음식점 여러 군데를 돌아보는데, 그도 덩달아 취재를 하게 된 것이다. 자주 접하는 홍대 앞 일본음식이라 내게는 별 신기할 것이 없었는데, 그는 이것저것 다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 나라 음식인데도 말이다. 그 반응이 하도 흥미로워 나는 일본음식이 아닌 그를 취재하게 됐다. “일본과 무엇이 달라요?”라는 질문이 자꾸만 쏟아져 나왔다.

 

야마시타 씨는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일본식 삼각김밥, 즉 오니기리 식당에서 여러 가지 오니기리를 먹으며 그 맛을 신기해했다. “일본에 없는 메뉴도 있다”고도 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의 오니기리 차이점도 말했다. “일본은 밥의 맛을, 한국은 밥 속 양념의 맛을 중시하는 듯하다.” 왜 그런지 대충 감은 잡히지만 이를 설명하자면 꽤 긴말이 필요할 것 같았다. 민족 간 입맛 차이를 논하는 것은 참으로 복잡한 일이다.

 

두 번째로 그의 흥미를 끈 집은 꼬치구잇집이었다. ‘비장탄’이라는, 일본에서도 귀한 숯에 안데스 호수의 소금으로 간을 하는 식당이었는데 여기서 몇 가지 꼬치를 먹은 야마시타 씨는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닭꼬치류는 일본에서도 맛보기 쉽지 않다고 했다. 부위별로 잘라 냉동 유통하는 닭이 아니라, 싱싱한 닭을 주방에서 부위별로 다듬는 정성에서 오는 맛 차이가 클 것이다. 솜씨의 좋고 나쁨보다 어떤 재료를 쓰는지가 맛에서 더 중요할 수 있음을 그와 나 모두 확인했다. 꼬치를 열심히 먹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일본에서 꼬치는 서민 음식이고 싸다. 꼬치를 손에 들고 고기를 입에 문 뒤 쑥 뽑아내 우걱우걱 씹어 먹는데, 한국에서는 꼬치 고기를 접시에 빼낸 뒤 아껴 먹는다. 그리고 비싸다.”

 

음식은 국경을 넘으면서 가격에 거품이 끼기도 하는데, 꼬치구이가 그런 음식 중 하나로 보인다. 하지만 비싼 꼬치구이는 강남이나 홍대 앞에 최근 문을 연 집들 것에 한정된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으로 보이는 꼬치구잇집이 종로 뒷골목에 있는데 그곳 음식값은 싸다. ‘다음에 그곳으로 한번 데려가리’라 생각했다. 야마시타 씨는 샐러리맨이 퇴근 후 한잔씩 하는 도쿄 뒷골목의 꼬치구잇집 분위기를 말하는 듯했다. 종로 뒷골목에 있는 집이면 도쿄 뒷골목 꼬치구잇집과 흡사할 터다.

 

마지막은 ‘이자카야’였다. 일본식 홍등이 걸려 있고, 유리 끼운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는 주택가 모서리 술집이었다. 상호는 ‘카도야’. 2층이 가정집이라 외관부터 일본 동네 술집인 이자카야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식 안주에 일본 술을 마시니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앞에 일본인까지 앉아 있으니….

 

안주로 전갱이회를 주문했다. 일본에서는 국민 생선이라 할 만큼 흔히 맛있게 먹는 생선이지만 한국에서는 잘 먹지 않는다. 필자가 “이런 생선을 한국에서는 잡어라 한다”고 하자 그는 곧바로 “한국의 국민 생선인 조기가 일본에서는 잡어다”라고 받아쳤다. 전갱이와 조기를 두고 술자리에서 논쟁 아닌 논쟁이 길게 이어졌다. 그 맛없는 조기를 소금으로 간해 최상의 맛을 이끌어내는 솜씨에 감탄했으며, 전갱이를 반(半)건조해 비린내 없이 구워내는 솜씨를 칭찬했다. 음식이란 이런 것이다.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르다. 여기에 우월이란 없다.

퍽퍽한 살 뜯으며 ‘영양센타’가 떠올랐다
전기구이 통닭

전기구이 통닭이다. 프라이드 치킨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통닭은 날씨가 쌀쌀해지면 생각나는 음식이다. 특히 눈 내리는 겨울이면 그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날씨와 통닭이 무슨 연관이 있기에 이럴까. 흔히 통닭이라 하지만 통닭구이가 바른 말이다.

 

통닭은 닭의 털과 내장을 제거하고 통째로 굽는다. 구이인 만큼 오븐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터이나, 옛날 닭집에서는 기름에 튀긴 것도 통닭이라며 팔았다. 시장에는 으레 닭집이 있었고, 여기에 통닭튀김이 있었다. 요즘엔 길거리에서 장작불로 굽는 통닭을 가끔 본다. 한때는 닭을 장작불이 아닌 전기로 구웠다. 필자의 기억과 주변 증언에 따르면,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전기구이가 강세였다. 통닭집 전기구이 기계에서는 ‘누드’ 닭이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진 채 뱅글뱅글 돌았는데, 그 앞에 유리를 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간판에는 ‘영양센타’ ‘전기통닭’이라 적어놓았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통닭이라 하면 이 전기구이 통닭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가 들어오면서 전기구이 통닭이 일시에 밀려났다.

 

전기구이 통닭은 당시로선 비싼 음식이었다. 지금이야 마음대로 프라이드 치킨을 먹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큰맘을 먹어야 했다. 그 귀함은 ‘영양센타’라는 이름에도 묻어 있다. 통닭 한 마리 먹는 게 특별식이었고, 이 특별난 음식을 내는 ‘영양센타’는 대체로 시내에 있었다. 직장인들은 일을 끝내고 이 통닭에 맥주를 한잔 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러다 혼자만 ‘영양통닭’을 먹은 것이 미안했는지 통닭을 포장해 집으로 가져가는 남자들도 있었다. 늦은 밤 가장의 손에 들린 통닭은 아이들에게 큰 선물이었다. 통닭을 맛있게 먹으면서 아이들은 자신을 지켜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따뜻한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이때 통닭에 ‘행복한 가정’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졌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통닭을 자주 집에 사갈 수 없었다. 월급날에나 사갈 수 있을지 말지 했다. 1960년대 중반 전기구이 통닭집들이 연말에 맞춘 마케팅을 시도했다. “크리스마스에는 가족과 함께 통닭을” “연말연시 선물은 통닭으로” 등의 광고를 내걸었던 것. 신문에 광고도 했다. 이 마케팅은 크게 성공해 12월 24일과 12월 31일 밤 ‘영양센타’는 통닭을 사려는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연말에 연인이 데이트할 때도 통닭을 뜯는 것이 기본이었다.

 

통닭집의 연말 마케팅은 서구의 칠면조구이 관습에서 착안한 것이다. 6·25전쟁 이후 한국인은 영화, TV, 신문, 소설 등을 통해 서구의 여러 풍습을 접할 수 있었고, 이를 우리의 일상에 접목시켰다. 특히 크리스마스는 국경일로 정해질 정도로 한국화했다. 거리마다 트리가 세워지고 집에서도 창문에 반짝이를 걸었다. 이런 것을 두루두루 따라하다 보니 음식도 그들처럼 먹자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 연말 음식으로 처음 각광받은 것은 케이크고, 그다음이 통닭이었다. 서구인이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칠면조를 오븐에 구워 먹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는데, 한국에는 칠면조가 없으니 닭으로 대신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연말에 통닭구이를 먹는 풍습은 사라졌다. 수시로 프라이드 치킨을 먹게 된 뒤로 통닭은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시내 곳곳의 ‘영양센타’가 프랜차이즈 닭튀김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제는 전기구이 통닭을 찾기가 참 어렵다. 최근 영등포 시장 근처를 돌다가 오랜만에 전기구이 통닭을 발견했다. 옛 생각이 나서 가게에 들어가 주문했다. 바싹한 껍질과 촉촉한 살을 기대했지만 껍질은 축축했고 살은 퍽퍽했다. 예전에도 그랬을 것인데, 그때는 몰랐을 수도 있다. 아니면 프라이드 치킨의 바싹한 튀김옷에 미각을 버렸을 수도 있다. 전기구이 통닭은 이제 추억 속에나 담아둬야 하는 음식인가 싶다.

벌레 먹은 자연산 배 배꽃 향기가 거기 있더라!
먹골배

관리하지 않아 아주 작게 자란 먹골배다. 맛은 진짜 배다.

 

먼 옛날부터 한반도에 배가 있었다. 야산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야생 배가 그 배다. 이를 가꾸면 제법 먹을 만한 크기가 된다. 우리 조상은 이 배를 먹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먹는 배는 이것과 관련이 없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어온 품종과 이를 바탕으로 근래 한국에서 개량한 품종의 배를 먹는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품종은 장십랑, 금촌추, 만삼길, 신고, 행수, 신수, 이십세기 등인데 지금도 널리 재배한다. 특히 신고는 현재 국내 배 재배면적의 70~80%를 차지한다. 화산, 황금, 추황, 원황, 한아름 등 국내 육성 품종이 꾸준히 선보이지만 신고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배는 맛이 없어 거의 맹탕이다. 추석 때 받은 선물 중 반갑지 않은 것이 배다. 그러니 제 돈 주고 사는 일도 자꾸 줄어든다. 한때 한국 배가 맛있다고, 외국에 수출한다고 했는데 그 맛이 엉망이 된 것이다. 이는 배를 제대로 익히지 않고 때깔만 내 출하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신고를 이렇게 많이 심는 것은 맛있기 때문이 아니다. 추석과 설이라는 ‘배 특수’에 맞추기에 이 품종이 딱 좋기 때문이다. 제수와 선물용 배 시장에서 신고가 가장 좋은 가격으로 가장 많이 팔린다. 농가는 이 두 명절에 잘 팔 수 있는 품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신고가 적당한 것이다. 신고는 여느 배와 달리 저장성이 좋아 추석에 팔다 남으면 설에도 팔 수 있다. 그런데 신고는 중만생종이라 대체로 추석 전에 익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려고 농가에서는 지베렐린이라는 성장촉진제를 쓴다. 지베렐린은 배를 급격히 키우지만 익는 것과는 관련 없다. 그러니까 덩치만 큰, 익지 않아 당도가 떨어지는 신고를 시장에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익지 않은 배를 연중 보관해 파는 것이다. 그러니 맛이 있을 리 없다.

 

서울 태릉 인근 중랑구에 묵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원래 이름은 먹골인데 일제강점기에 한자어인 묵동으로 바뀐 것이다. 이 동네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배가 맛있기로 유명했다. 이곳 배를 먹골배라 하는데, 배 재배 농가가 아직 몇 군데 남았다. 물론 먹골배는 토종 배가 아니다. 1920년대 일제가 먹골에 배 과수원을 조성하면서 유명해진 것이다. 예전에는 장십랑이 많았는데 요즘 품종도 이것인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 태릉에 갈비를 먹으러 갔다. 이곳 갈비는 일명 태릉갈비라 하는데 배 과수원에 자리를 마련하고 구워 먹는다. 1970년대 들어 생긴 음식으로, 지금도 과수원이 남은 식당이 있다. 그런데 내가 간 곳은 과수원이 관리가 되지 않았다. 배보다 갈비 파는 것이 더 남는 장사기 때문이다. 이곳의 배는 비료도 주지 않았고 지베렐린도 뿌리지 않았으며 봉지도 씌우지 않았다. ‘자연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배는 아주 작았고 군데군데 벌레 먹은 자국도 있었다. 식당 주인에게 부탁하니 적당히 따서 먹으라 했다. 배를 깎아 맛을 보았는데 생각 외로 달았다. 부드럽고 과즙도 풍부했다. 시중의 배와 확연히 다른 건 바로 향이었다. ‘화~’ 하게 번지는 향에 온몸이 쩌릿했다. 배꽃의 향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엉터리 배를 먹는지 이 작은 배 하나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과수원이 있는 태릉갈비 식당에는 봄에 손님이 많다. 꽃이 화사하게 핀 배나무 아래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태릉갈비는 가을에 먹으러 가는 것이 더 낫다. 갈비맛이야 그게 그거지만, 아무렇게나 자란 ‘야생’ 배를 맛볼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단, 다른 손님을 위해 한두 개씩만 맛보시라!

소금에 절인 매실 끊기 힘든 치명적 중독
우메보시

일본인에게는 한국인의 김치 같은 음식 우메보시.

 

우메보시는 일본 음식이다. 매실을 소금에 절인 것이다. 우리말로 순화하면 매실절임쯤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매실절임과 그 맛이 확연히 달라 그냥 매실절임이라고 하면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의 매실절임은 대부분 설탕절임이기 때문이다. 고추장절임도 있는데, 이는 매실장아찌라 부른다. 우메보시를 일본매실절임이라 하기도 그렇고, 왜매실절임은 더 이상하다. 그래서 필자는 그냥 우메보시라고 부른다.

 

음식 이름을 놓고 한국인은 묘한 민족 감정을 드러낼 때가 많다.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작업을 했는데, 그중 상당수가 음식 이름이었다. 오뎅을 어묵, 우동을 가락국수, 사시미를 생선회, 다꾸앙을 단무지로 바꾸는 식이었다. 어떤 것은 한국어로 정착했고, 또 어떤 것은 일본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대체 가능한 좋은 한국어가 있다면 이는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한국어로 바꿔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옳지 않다.

 

처지를 바꿔놓고 보면 음식 이름에서 언어 순화라는 것이 얼마나 억지스러운 일인지 바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요즘 일본에서 김치를 많이 먹으니 이를 일본인이 쉽게 발음하게 하고 또 자신들의 음식문화에 편입하려고 ‘조센츠케모노’ 또는 ‘조센츠케’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어떨까. 음식 이름은 그 음식을 주로 먹는 지역이나 그 음식이 유래한 지역의 명칭을 따르는 것이 세계적 관례임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특히 김치라는 이름에 대해 한국인은 놀라울 정도로 강렬한 민족적 감정을 드러낸다. 일본사람도 반드시 김치라고 발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이 ‘기무치’라고 발음하는 것을 두고 한국의 음식문화를 빼앗기기나 한 듯이 여긴다. 몇 해 전 영화 ‘식객’은 김치에 대한 민족적 감정을 마케팅에 이용했다. 일본의 극우신문에 ‘KIM-CHI’라고 영문 발음을 그대로 쓴 광고를 내면서 그 영화가 무슨 ‘독립투사의 영화’인 양 굴었다. 여기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일본인을 붙잡고 ‘김치’ 발음을 아무리 가르쳐봤자 그들 대부분은 ‘기무치’라고 한다. ‘김치’라고 말할 수 있게 그들의 구강구조를 수술로 바꾸자 생각하는 것은 아닐 테니, 이런 억지는 이제 그만뒀으면 한다.

 

우메보시에 대한 글인데, 김치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일본인에게 우메보시는 한국인에게 김치와 비슷한 음식이다. 이 음식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얀 밥에 빨간 우메보시를 박아 일장기처럼 보이는 도시락을 싸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일본 어른들은 이 우메보시 때문에 걱정이다. 젊은이들이 우메보시를 잘 안 먹고, 또 먹는다 해도 전통적 방식의 우메보시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단맛과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우메보시가 크게 번진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전통음식을 안 먹어 골치 썩이는 젊은이가 있는 것은 똑같은 모양이다.

 

전통의 우메보시란 매실에 소금과 차조기 또는 소금만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우메보시는 매실 향이 산다. 일본 여행을 갈 때면 나는 이런 우메보시 찾기에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일본 백화점이며 재래시장이며 곳곳을 뒤져봐도 전통의 우메보시를 찾기 어렵다. 10여 곳 뒤지면 한 곳 정도에서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최근 전남 광양의 한 매실농원에서 이 전통의 우메보시를 찾았다. 일본의 한 업체가 이 농원에 우메보시 제조를 부탁했는데, 그중 일부를 국내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재미난 사실은 일본 업체는 이 우메보시에 화학조미료와 단맛을 첨가해 가져가고, 한국에는 전통 방식 그대로의 우메보시를 내놓는다는 점이다. 포장지에 ‘한국산 일본 전통 우메보시’라고 쓴다면 일본인의 반응이 어떨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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