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차라리 하나의 장엄한 수석(壽石)입니다. 영산강 물길이 만든 영암의 너른 들판에 홀로 솟아 독립된 산맥을 이루고 있는 산. 거친 바위들이 첩첩이 겹쳐 마치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처럼 갈기를 세우고 있는 산. 밤마다 날카로운 갈기 위로 둥근 달을 토해 놓고는 그 빛으로 푸르게 물드는 산. 월출산의 형상이 그렇습니다. 전남 강진과 영암을 가르고, 동으로는 장흥, 서쪽으로는 해남 땅을 바라보고 있지만, 월출산은 온전히 영암의 것입니다. 사실 ‘영암(靈巖)’이란 땅 이름도 풀자면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뜻이니, 그게 곧 월출산의 암봉을 일컫는 것이기도 합니다. 월출산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바로 이즈음입니다. 마지막 단풍이 절정을 넘어서면서 우수수 잎을 떨구고 있을 때, 월출산의 거친 바위들이 그려내는 선은 더 선명해지고, 아찔한 높이는 더 뚜렷해집니다. 대기까지 맑아진 지금이야말로 월출산이 한 해 중 가장 선명한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는 때이지요. 월출산에 갑니다. 달이 솟는 암봉 뒤편에 비밀처럼 숨겨진 고요한 옛 절터를 들르고, 아홉마리 용이 노닐었다던 봉우리도 지나고, 끝내 아무도 찾지 못했다는 이상향으로 향하는 석문을 찾아나선 길. 가을에 제법 이름난 산이라면 어디든 울긋불긋 행락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지만, 당당한 ‘국립공원’임에도 월출산은 더없이 한적합니다. 산행 인파가 좀 늘긴 했다지만, 이즈음에도 월출산에서는 제법 긴 종주능선을 온전히 제 숨소리만 들으면서 걸을 수 있답니다. # 탄성과 감탄부호로 가득하다…월출산 전남 영암 들녘의 복판에 바위로 솟은 월출산은 그 우람한 풍모만으로도 그 앞에 선 이들을 단번에 압도한다. 남도 땅에서 들판을 앞에 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월출산은 영암 쪽에서 보는 것이 가장 빼어나다. 영암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은 봉우리마다 창과 칼을 들고 늘어선 기암괴석들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월출산은 당당히 국립공원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의외로 올라본 이들이 많지 않다. 수도권에서 멀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가 가장 크겠고, 월출산이 다른 산의 무리들과 지맥을 잇지 않은 채 저홀로 들판에 우뚝 솟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거칠고 위태로워 보이는 압도적인 풍모에 주눅이 들어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한 이들도 없지는 않았겠다. 조선 전기 사림파의 거두였던 김종직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가 늦은 나이에 월출산을 찾아서 남긴 글이 이렇다. “뜬 인생 반 넘어 살도록 이름 들은 지 오래이면서 / 올라보지 못하였으니 세상일 바쁜 것이라.” 그러나 세상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월출산 암봉들이 그려내는 선이 가장 또렷하게 떠오르는 늦가을 무렵의 월출산은 빼놓지 말 일이다.
월출산은 암봉 사이사이의 활엽수들이 하나둘 낙엽을 내려놓고 나신으로 돌아가는 이맘때가 한 해 중 가장 아름답다. 늦가을은 월출산 봉우리마다 치솟은 암봉들이 하루하루 더 선명해지는데다, 대기가 청명해지면서 주위의 암봉들이 더 가깝게 당겨 앉는 때이기도 하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에 가진 것 다 버리고 전국을 떠돌던 김시습. 그가 월출산을 빼놓았을 리 없다. 그는 월출산을 두고 ‘호남에 제일가는 구름 같은 산’이라고 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미수 허목. 그는 중을 앞세워 월출산을 올랐던 모양인데, 희극(熙克)이란 이름의 중으로부터 철쭉나무를 꺾어 만든 지팡이를 건네받고는 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사례했으니 그 내용이 이렇다. “머리 풀고 나는 듯 신선 곁에 놀다가 내려와 만물과 함께 되는대로 살리라.” 여기에다 이름 없는 영암의 선비가 지은 시구절 하나를 더해 본다. “층층이 솟은 산 이마 푸른 하늘에 대고 있는데 / 노을 비칠 때가 진정 아름다워라.” 월출산에 한번 발을 들여놓게 된다면 이런 시구절이 절대 수다스럽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된다. 월출산의 빼어난 풍광에다 대면 오히려 이 글에서 옛 사람들의 겸양과 절제를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월출산을 올라본 이에게 글을 남기라 한다면, 반복되는 탄성과 감탄 부호 말고 다른 무엇을 적을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 자리를 바꿔가면서 빼어난 수석을 감상하는 맛 월출산의 해발고도는 809m다. 이 숫자만으로는 그 산의 웅장함을 짐작하기 어렵다. 1000m가 훌쩍 넘는 내륙의 산들을 올라본 이들이라면 ‘그만그만한 산’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월출산은 영산강이 흘러가는 영암의 들판 위에 우뚝 솟아 있어 출발지점이 거의 수준점에 가깝다. 그러니 그 산을 오르며 바쳐야 하는 노고는 내륙의 해발 1200m를 넘나드는 다른 산들과 견준대도 밀리지 않는다. 이리 설명하지 않더라도 월출산이 그리 만만치 않은 산이라는 것은,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는 들머리부터 능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월출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간명하다. 월출산을 오르는 들머리는 천황사와 도갑사 그리고 경포대 등 3곳. 천황사지에서 출발해 정상인 천황봉을 찍고 내려오는 3시간30분 남짓의 산행이 보통이지만, 제대로 월출산을 보겠다면 ‘종주코스’를 택해야 한다. 북동쪽 천황사에서 출발해 서남쪽 도갑사로 내려오거나 반대로 도갑사에서 출발해 천황사로 올라가는 코스다. 종주 거리는 8.9㎞ 남짓. 꼬박 6시간30분 동안 험준한 암릉을 걸어야 하는 코스지만, 그 노고는 암릉을 하나씩 넘어갈 때마다 펼쳐지는 풍광과 감탄사로 충분히 보상받고 남는다. 천황사지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곧 숨이 턱에 닿는다. 가파르게 일어선 비탈을 오르다보면 장딴지도 금세 팍팍해진다. 경사도가 덜한 바람골을 타고 오르는 쪽을 택한다면 그나마 수월한 편이지만, 월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 쪽으로 발을 들이밀었다면 바위를 타고 오를 때마다 가빠오는 숨과 터질 듯한 심장 소리쯤은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구름다리를 넘어 사자봉으로 올라붙으면 깎아지른 아슬아슬한 벼랑을 따라가야 하니 간이 콩알만 해지기도 한다.
월출산은 희한하게도 저마다 기억하는 풍광이 다르다. 구름다리나 천황봉 정상처럼 ‘대표하는 경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월출산의 느낌은 보는 이들마다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풍경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야 그렇다 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산을 오른 이들마저 서로 다른 풍경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건 바로 월출산이 지극히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월출산을 보는 것은 어찌 보면 수석을 감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시야의 각도를 조금씩 달리할 때마다 수많은 암봉의 모양은 달라진다. 똑같은 암봉에서 누구는 애 업은 아낙을 보고, 누구는 산신(山神)을 보고, 누구는 치솟은 창검을 보는 식이다. 월출산의 능선에서는 시선을 가리는 것들이 전혀 없다. 산줄기를 타고 가는 내내 시야에 거침이 없다. 그러니 월출산에서는 정작 정상이 주는 감격이 덜하다. 다른 산들이 정상에 당도해서야 비로소 탁 트인 경관을 보여준다면, 월출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칠 것 없는 시야를 보여준다. 월출산을 찾으면 정상 등반을 목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종주 능선을 타고 가야 한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 기기묘묘한 바위에 새겨진 무궁무진한 옛이야기들 월출산은 산 자체가 암릉과 암봉이어서 기기묘묘한 바위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부러 만든다 해도 이보다 더 닮게 만들 수 있을까. 남성의 모양을 조각해 놓은 듯한 남근바위와 여성의 모습을 한 베틀굴은 그중 압권이다. 싱거운 음담이나 까르르 웃음을 쏟아내기에 앞서 감탄사가 앞설 정도다. 어디 이뿐일까. 돼지머리 모습을 한 ‘돼지바위’도 있고, 구레나룻을 기른 장군의 옆 얼굴을 닮은 ‘얼굴바위’도 있다. 구태여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봉우리들도 닮은 것 몇가지쯤은 댈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형상으로 서 있다. 이처럼 기기묘묘한 바위가 곳곳에 있으니 전해지는 전설 또한 없을 리 없다. 예로부터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세 개의 바위가 있다고 전한다. 한 사람이 흔들 때도, 열 사람이 흔들 때도 똑같이 움직였다는 ‘동석(動石)’인데 하나는 운무봉에, 나머지는 도갑과 용암 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높이는 한 길 남짓이고, 둘레는 열 아름쯤이나 되는 큰 바위로 서쪽은 돌뼈뿐인 산머리에, 동쪽은 끝없는 절벽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 동석의 영험함으로 ‘영암에 큰사람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중국사람이 이를 시기해 모두 떨어뜨려버렸다는 것이다. 그저 전설로만 전해져온 이야기인데 10여년 전쯤 천황봉에서 도갑사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왼편의 천길 낭떠러지에 ‘動石’이라 새겨진 바위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밖에 정천대에는 나라가 어지러웠던 시절 벼슬을 버리고 아녀자들과 월출산으로 숨어든 정씨 성을 가진 이가 깃들였다는 전설 속 공간의 이야기도 전해온다. 열두시간 타들어가는 양초 두 개가 다 녹을 때까지 어두운 굴을 걸어 들어가 돌문을 열면 불을 켠 듯 환한 새로운 세상이 나타난다는데, 그곳에 정씨가 보물을 숨겨두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월출산에는 또 무당이 줄을 걸고 건넜다는 광대바위도 있고, 홍수로 월출산이 잠겼을 때 배를 맸다는 배바위도 있다. 기기묘묘한 월출산의 바위들이 무궁무진한 옛이야기들을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월출산의 정상인 천황봉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리는 봉우리가 바로 구정봉이다. 천황봉에서 도갑사 쪽으로 이어지는 바람재를 지나 우뚝 솟은 해발 738m의 암봉이다. 바위에 물이 고인 아홉 개의 구멍이 있다고 해서 구정(九井)이란 이름이 붙여진 암봉이다. 속설에는 아홉마리 용이 그곳에 깃들여 있다고도 하고, 옥황상제의 벼락이 떨어진 자리라는 이야기도 있다. 파인 웅덩이에는 항시 물이 고여 있다는데, 과연 아홉 개의 웅덩이 중 한 곳에 물이 찰랑거린다. 순전히 가둬진 빗물일 터인데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여태 한번도 물이 마른 적이 없단다. # 월출산에서 비밀처럼 숨어 있는 공간을 만나다 달이 솟는 월출산 등 뒤의 깊은 땅에는 마치 비밀처럼 마애석불과 탑이 꼭꼭 숨어 있다. 구정봉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진 내리막 산길을 따라 30분쯤 가면 그곳에 옛 절터인 용암사지가 있다. 첩첩이 암봉을 둘러치고 있는 고요한 절집의 빈터. 여기에 지그시 감은 눈으로 서쪽을 향해 앉아 있는 마애불이 있다. 마애석불과 삼층석탑에 ‘비밀처럼’이란 수사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웬만해서는 그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애석불을 찾아가자면 6시간30분짜리 종주코스를 택해야 하는데, 그 코스에서도 왕복 1시간이 더해지는 내리막과 오르막을 더 걸어야 하는 까닭이다. 마애석불로 가는 갈림길은 종주 코스의 딱 중간쯤에 있는데, 체력이 웬만큼 소진됐을 무렵에 1시간을 더하는 코스를 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마애석불로 이어지는 코스는 고스란히 간 길을 되짚어 나와야 한다. 그러니 자연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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