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황교익의 味食生活_08

醉月 2011. 8. 29. 06:23

살아 있는 것 ‘회’쳐야 쫄깃하고 맛있다고?어이없는 ‘싱싱함 신화’

 

큼직하게 썬 선어회다. 숙성하면 큼직하게 썰어도 부드럽게 차져 식감이 좋다. 활어회를 이렇게 썰면 고무 조각 씹는 느낌이 든다.

 

최근 농촌진흥청이 쇠고기 포장지에 맛 예측 정보를 표시하겠다고 밝혔다. 마블링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등급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맛 예측 정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숙성도 표시다. 쇠고기는 일정 기간 숙성해야 맛이 좋아지는데 그 숙성 기간을 알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숙성도 표시 하나만으로도 맛 예측 정보 사업은 백번 잘하는 일이다.

 

쇠고기 맛에 관한 한 숙성도 앞에서 마블링은 아무 소용이 없다. 기름이 잔뜩 껴 있는 1++ 등급의 싱싱한 쇠고기와 기름 하나 없는 2등급의 1개월 숙성 쇠고기 가운데 선택하라면 나는 후자를 고른다. 숙성육의 깊은 풍미를 알면 쇠기름 맛이 거북해지고 나중에는 쇠기름이 쇠고기 맛을 방해한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쇠고기 마블링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맛있는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 또한 수입 곡물 사료에 의존하는 한국 축산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숙성 쇠고기 시장을 확장해야 한우가 산다.

 

숙성 쇠고기가 맛있다는 것을 축산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알았다. 마블링 중심의 등급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이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신문방송에 나오는 축산 전문가는 다들 “한우는 마블링이 좋아 맛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나는 의아했다. 국민 미각을 속이면서까지 마블링을 유지해야 하는 말 못할 이유가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이제 더는 ‘마블링이 좋은 한우고기’ 같은 말은 하지 말기 바란다.

 

쇠고기는 그렇다 쳐도, 싱싱한 것이 맛있다는 잘못된 신화가 여전한 또 다른 먹을거리가 있으니 바로 생선회다. 살아 있는 생선을 그 자리에서 잡아 회를 쳐 먹어야 맛있다는 ‘활어회 신화’는 정말 굳건하다. 활어회 신화는 쇠고기와 그 상황이 조금 다르다. 전문가들이 선어회(생선을 미리 잡아 냉장 숙성한 생선회)가 더 맛있다는 것을 수시로 말하고 있다. 수협에서는 이런 활어회 선호 풍토를 바로잡으려고 선어회 사업을 펼친 적도 있다. 소비자의 잘못된 인식이 쉬 바뀌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생선회는 일본이 앞장서 세계화한 음식이다. 세계 각국의 횟집을 다녀본 사람은 말한다. “왜 그들 나라에는 수족관이 없죠?” 생선회의 나라 일본에서도 수족관 있는 횟집은 없다(혹 있다면 이벤트를 강조한 횟집이거나 한국인을 위한 횟집일 것이다). 한국 횟집에만 유독 수족관이 있다.

 

살아 있는 생선을 잡아서 바로 먹으면 그 조직이 질기거나 퍽퍽하다. 차지다는 느낌은 없다. 한국인은 그 질긴 식감을 쫄깃한 것으로 착각해 활어회가 맛있다 여긴다. 생선살은 최소 2시간 이상 냉장 상태에서 숙성해야 차진 식감이 살아난다. 또한 단백질이 분해되어 감칠맛도 난다. 큰 광어의 경우 12시간은 숙성해야 그 진미를 느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루 이상 숙성해 내놓는 일도 있다. 차진 느낌에 감칠맛까지 우러나는 생선회가 선어회다.

 

활어회 신화가 안 깨지는 이유는 미식가입네 하는 사람들 탓이 가장 크다. 특히 미식 블로거들이 활어회 신화를 부추긴다. 살리기 힘든 생선도 어떻게든 살려서 그 살아 있는 모양부터 회 뜨는 과정과 먹는 장면까지 찍어 인터넷에 도배한다. 지금 민어가 제철인데, 살리기 까다로운 민어를 수족관에 넣어놓고 ‘쇼’를 한다. 이는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혼자 ‘쇼’를 하는 것까지야 말리지 못하겠지만 이로 인한 폐해는 생각해야 한다. 언제까지 그 맛없는 활어회에 사진빨이 좋다는 이유로 목을 맬 것인가. 수족관의 소포제며 세균 문제는 말하지도 않겠다.

 

100% 메밀 면발 고집에 공장 육수가 웬 말이냐

막국수

메밀 겉껍데기가 들어간 전통 막국수다. 겉껍데기가 하는 구실은 시각적 만족감(?) 제공밖에 없다.

 

여름 휴가철이면 강원도 막국수 식당이 호황을 누린다. 누구든 이 지역에 가면 으레 ‘막국수 한 그릇은 먹고 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강원도에 가면 막국수를 찾는다. 웬만큼 알려진 막국숫집은 다 다닌 터라 이제는 시장통에 가서 사람들을 붙잡고 “어디 맛있는 막국숫집 없나요?”라고 묻는다(맛칼럼니스트는 이런 식의 ‘맨땅에 헤딩하기’를 자주 한다).

 

얼마 전 강원도 홍천 중앙시장의 방앗간에서 막국수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얻었다. 방앗간 입구에 놓인 막국수용 분말을 보며 “막국숫집은 다들 이거 쓰죠?”라고 했더니 여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다들 그 면에 익숙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제분공장에서는 밀가루와 전분을 60~70% 함유한, 그러니까 메밀은 조금 든 막국수용 분말 제품을 내놓는데 대부분의 막국수는 이것으로 만든다. 식당 간판에 ‘메밀가루를 직접 내린’이라고 쓰지 않고 ‘직접 뽑은 막국수’라고 써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엔 메밀 30~40%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메밀은 극소량이고 태운 보리 냄새 풀풀 나는 막국수를 만나는 일도 흔하다.

 

방앗간 여주인은 메밀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는 나에게 좋은 식당이 있다며 한 곳 알려줬다.

“우리 방앗간에서 메밀을 빻는데 그 가루만 가져가 면을 뽑는 식당이 있어다. 100% 메밀을 고집하는 막국숫집이죠. 그런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메밀 100%인 면은 힘이 없어 씹는 맛이 덜하므로 그 식당을 추천하면서도 조심스러워했다.

소비자는 막국수와 평양냉면을 동떨어진 음식으로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 계통이다. 메밀로 국수를 내려 동치미 등에 말아 먹는 음식이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있었고, 근대화 시기엔 강원도 막국수,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으로 외식시장에 등장했다.

 

막국수와 평양냉면은 면 내리는 방식이 똑같다. 메밀가루에 밀가루나 전분을 적절히 배합해 반죽한 후 국수틀에 넣어 눌러 뽑는다. 그런데 식당의 막국수와 평양냉면은 대부분 면 색깔이 다르다. 막국수는 검고 평양냉면은 희묽다. 이런 차이는 ‘메밀의 겉껍데기를 넣었느냐 안 넣었느냐’에서 온다. 그러니까 막국수가 검은 것은 메밀의 겉껍데기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평양냉면은 겉껍데기를 넣지 않는다(평양냉면집 중 겉껍데기를 조금 넣는 곳도 있다. ‘이건 메밀이다’ 하는 기분을 주려는 차원이다).

 

‘막국수’라는 이름은 메밀 겉껍데기가 들어간 국수와 관련 있다. 사람들은 국수를 ‘마구’ 뽑았다, ‘금방’ 뽑았다 해서 ‘막’이라는 말이 붙은 것이라 하는데, 국수를 뽑는 방식에 ‘마구 하는 일’은 없으며, ‘금방 먹어야 하는 것’은 다른 메밀국수와 똑같다. 메밀은 원래 겉껍데기를 벗기고 난 다음 분말로 내는 것이 기본이다. 겉껍데기 벗긴 메밀은 메밀쌀이라 하는데 집에서는 보통 이 상태로 보관했다가 죽, 묵, 국수를 해 먹었다. 메밀 겉껍데기를 벗길 것도 없이 그냥 분쇄해 국수를 내릴 수도 있다. 이런 국수를 ‘메밀을 마구 분쇄했다’ 해서 막국수라 불렀고, 이것이 강원도 메밀국수 이름으로 굳은 것이다.

 

방앗간 여주인이 소개해준 막국숫집에 기대를 잔뜩 안고 갔다. 100% 메밀국수, 그것도 겉껍데기는 완전히 제거한 국수는 맞았다. 이런 메밀국수는 서울의 유명 평양냉면집에서 ‘순면’이라는 이름으로 판다. 메밀국수 마니아는 이런 순면 먹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막국숫집에선 가장 좋은 면에 들척지근하고 시큼한 구연산 맛이 풀풀 나는 시판 육수를 사용했다. 최근 싸구려 공장 육수가 전국 막국숫집에 온통 번진 사실에 한숨이 나왔다. 요즘 막국숫집 육수가 이렇다. 막국수란 이름을 다시 해석하자면 ‘공장의 육수에 마구 말아 먹는 메밀국수’ 정도가 될 것이다.

 

왁자지껄 그곳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강화장 예찬

강화장에 나온 할머니의 좌판 물건.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모습에서 인품이 느껴진다.

 

인천 강화도에 가면 풍물시장이 있다. 2, 7일에 서는 오일장이지만 장날이 아닌 날에도 건물 안 상설시장은 문을 연다. 장날에는 건물 밖 야외에 많은 장꾼이 모인다. 강화의 할머니 농민들이 채소 조금, 곡물 조금 쌓아놓고 파는데 하나같이 탐나는 물건이다.

 

내 경험으로는 강화도 농산물은 무엇이든 맛있다. 같은 품종의 쌀이라도 강화도 것이 더 차지고, 검정콩은 밤처럼 달며, 인삼은 단단하면서도 향이 짙다. 땅이 좋은 데다 바닷바람을 많이 맞아 더 맛있다고 설명하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조금 신비화하자면, 강화도는 기운이 다르다. 조상들도 이런 기운을 알았는지 강화도를 특별한 땅으로 여겼다. 강화도 복판에 우뚝 솟은 마니산을 옛 사람들은 마리산이라 했다. 머리산이란 뜻이다.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표기하려니 마니산이 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머리에 해당하는 산이라 해서 붙인 이름이다. 마니산 정상에 참성단을 두고 천제를 지낸 역사는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 강화도에는 뭔지 모를 좋은 기운이 있는 것이다.

 

필자는 고양시 일산에 살다 보니 강화장까지는 다리 하나 건너면 금방이다. 이것저것 장 볼 일이 있다 싶으면 그냥 강화도로 내달린다. 시장 건물 2층에서 밴댕이비빔밥 한 그릇 먹고 슬슬 구경에 나서는데, 찬찬히 보면 두어 시간 걸린다. 도심 대형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싱싱하고 싼 농수산물이 널렸다. 무엇보다 물건의 불규칙한 진열이 장보기의 흥미를 돋운다. 대형마트에서는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다 예측할 수 있어 장보기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만, 이런 재래시장에서는 의외의 물건이 눈앞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마늘 하나를 사더라도 가격과 품질을 일일이 따져가며 시장 한 바퀴 돌고 선택하기에 시간이 꽤 걸린다. 대형마트였다면 단 10초 만에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장보기의 즐거움을 모르면 이 같은 재래시장 순례를 시간 낭비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 하는 이런 행동을 정신 건강에 좋은 여가 활동이라 여기면 된다.

 

생산자가 직접 진열한 좌판을 보면 주인의 인품이 드러난다. 대충 아무렇게나 풀어놓은 물건은 확실히 질이 떨어진다. 말끔히 정리해놓은 좌판을 볼 때면 그 물건을 사지 않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미녀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강화장에 나온 어느 할머니의 물건을 살펴봤다. 오른쪽 끝의 버섯은 운지인 듯싶었고, 그 곁의 가느다란 줄기는 말린 고구마줄기였다. 그 위는 오가피 열매와 수피, 그 아래는 수박껍질 말린 것이고. 말린 수박껍질은 처음 봤는데, 차로 마신다고 했다. 그 왼쪽에는 호박고지와 말린 옥수수수염이 있었고, 제일 왼쪽에는 푸성귀가 놓여 있었다. 다 산에서 뜯어온 것이라 했다. 단아한 분위기의 좌판에 넋을 놓고 있다가 할머니에게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여쭈었다. 얼굴은 안 나오게 할 것이라 말씀 드렸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편하게 찍으라는 뜻으로 읽혔다.

 

할머니가 진열해놓은 물건들을 보면서 한식당의 상차림을 떠올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차림 모양새만으로도 겉멋 잔뜩 든 음식, 열정 가득한 음식, 게으른 음식, 속이려 드는 음식, 소박한 음식, 정직한 음식을 알아낼 수 있다.

 

한식 요리사는 상차림에 대해 무척 많이 고민한다. 반찬 때깔이 그다지 화려하지 않아 시각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이 많은 탓이다. 이런 때는 음식의 원재료가 깔려 있는 재래시장에 가보면 큰 도움이 된다. 생산자를 만나보고 ‘자연의 배치’에 대한 고민도 하다 보면 혜안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방에만 있으면 안 보인다. 수도권이라면 강화장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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