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절리의 석벽에서 위태롭게 뿌리를 내린 활엽수들이 싱그러운 숲을 이루고 있고, 그 한가운데에 폭포가 성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습니다. 폭포를 다 내려온 물은 깊은 소에 담겼다가 아직 분이 채 풀리지 않았던지 여전히 포효하면서 흰 포말과 함께 협곡을 흘러내려갔습니다. 폭포가 뿜어내는 기운이 어찌나 강하던지요.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팔에 오슬오슬 소름까지 돋은 것은 꼭 협곡의 공기가 서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장마 때만 되면 연중 최고의 풍경을 펼쳐 보여주는 폭포를 찾아 북쪽으로 나선 길이었습니다. 장맛비가 몇날 며칠간 쏟아진 뒤끝이라 폭포마다 어마어마한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더군요. 어떤 폭포는 끓어넘치고 있었고, 어떤 것은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장관(壯觀)’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풍경에다 쓰는 말이지 싶었습니다. 경기 포천의 비둘기낭폭포가 그랬고, 강원 철원의 삼부연폭포와 매월대폭포, 직탕폭포가 그랬고, 경기 연천의 재인폭포와 화진폭포가 그랬습니다. 용 네 마리가 기거하다가 세 마리가 승천했다는 철원의 삼부연폭포. 그곳에서는 하늘로 오르지 못했다는 나머지 한 마리의 용이 귀를 찢는 폭포의 굉음 속에서 몸을 칭칭 휘감으며 곧 나타날 것만 같았습니다. 매월대폭포는 습기를 머금은 진초록 이끼로 가득한 계곡이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폭포가 내려다보이는 거친 암봉 매월대에 오르면 평생을 방랑으로 떠돌다가 이곳에 은거했다던 매월당 김시습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탄강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연천의 재인폭포는 한창인 댐 공사로 가둔 물이 역류하면서 진입로의 강변길이 물에 잠기고 말아, 먼 발치에서 머리부분밖에 볼 수 없긴 했지만 거기서 보는 위용도 혀가 내둘러질 정도였습니다. 댐이 생기고 나면 폭포는 곧 물에 잠기고 말 것이라서일까요. 발길을 돌리기가 못내 아쉬웠습니다. 여기다가 마을 사람들도 알지 못해 일대의 석벽을 뒤지다시피 해서 찾아낸 화진폭포를 더합니다. 울창한 숲 사이의 까마득한 높이의 벼랑에서 쏟아지는 화진폭포는 마치 자결하듯 곧은 물줄기를 그으며 고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서 유장한 물줄기를 쏟아냈을 수많은 폭포에 전설 같은 이야기 한자락이 없을 리 없었고, 폭포를 찾아나선 길의 협곡과 벼랑에서도 깃든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났습니다. 폭포를 보러 떠난 여정이라 해도, 어디 물줄기만 보고 올 일이겠습니까. 모든 일이 그렇듯 풍경도 다 때가 있는 법입니다. 꽃을 보려거든 화창한 봄날을 택해야 하고, 진초록 숲을 만나려면 한여름에 찾아가야 하듯 폭포를 만나겠다면 장마의 뒤끝으로 접어드는 지금이 딱 그때입니다. 수도권에서도 그리 멀지않은 길. 좀 서두른다면 일대의 폭포를 두루 돌아본다고 해도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이랍니다.
# 가히 ‘최고의 폭포’라 할 만한 곳… 비둘기낭폭포 북부 일원의 폭포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가진 곳을 꼽는다면 그 맨 앞줄에 비둘기낭폭포를 올려야 하리라. 그건 비 내린 뒤에 이 폭포를 한 번이라도 봤던 이들이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게 틀림없다. 아니 굳이 북부 일원이라고 제한할 것도 없다. 전국의 모든 폭포를 다 모아놓고 경합을 한다 해도 비둘기낭폭포의 이름은 웬만해서는 앞 줄에서 밀려나지는 않을 듯 싶다. 비둘기낭폭포는 찾아가는 길부터 잘 짜여진 반전의 시나리오같다. 무방비 상태에서 의표를 찌르며 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비둘기낭폭포는 경기 포천시 영북면 대회산리에 있다. 대회산리는 제법 너른 들을 품고 있는 60여호 남짓의 자그마한 마을. 구멍가게 두 개와 허름한 버스종점이 있는 그저 그런 보통 시골마을이다. 대개 폭포를 보겠다면 깊은 산중으로 들어야 하거늘, 비둘기낭폭포를 만나려면 벼가 자라는 논이 펼쳐진 마을 어귀로 가야 한다. 도대체 이런데 무슨 폭포가 있을까 싶은 곳이다. 그런데 논 옆의 무성한 숲을 헤치고 들어가면 갑자기 땅이 푹 꺼지며 현무암 주상절리의 협곡 벼랑이 나타난다. 난데없는 반전이다. 그 벼랑의 이름이 ‘비둘기낭’이다. ‘비둘기가 사는 낭떠러지’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논 옆으로 흐르던 물줄기는 그 꺼진 벼랑으로 급작스레 곤두박질친다. 비둘기낭폭포다. 한때 인근 군부대 장성들의 휴양소로 쓰였다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았던 곳이다. 그러나 한탄강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보호구역 현판이 치워졌고, 최근에는 폭포로 내려가는 길에 나무 덱까지 놓였다. 풍광에 반해 알음알음 찾아드는 이들을 위해 포천시에서 설치해 놓은 것이다. 나무덱 계단을 타고 짙은 숲으로 감춰진 거대한 협곡으로 내려가면 먼저 스프레이로 물을 뿌린 듯 축축하고 서늘한 기운이 엄습한다. 계단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된다. 이국적인 정취에다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숲 그리고 기이한 지형이 어우러져 왈칵 무섬증마저 느껴진다. 협곡 아래 내려서면 딴 세상이다. 귀를 찢는 물소리와 함께 높이 10m가 넘는 폭포가 마치 물기둥처럼 장쾌하게 물줄기를 쏟아낸다. 폭포 아래에는 옥빛 소(沼)에 담겼다가 콸콸 넘친 물이 다시 하류쪽 주상절리 협곡을 따라 우당탕탕 포말을 일으키며 흘러내린다. 당초 비둘기낭폭포는 한탄강댐 건설로 수몰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탄강댐이 담수를 전제로 한 발전용 댐이 아니라, 폭우 시 하류의 홍수를 막는 ‘홍수조절용’이어서 폭포가 수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수자원공사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평상 시에는 드러나 있다가도 비가 많이 내려 한탄강댐이 홍수조절을 위해 물을 가두면 도리없이 폭포는 잠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힘찬 물줄기가 내려오는 장마철의 비둘기낭폭포를 볼 수 있는 것도 얼마남지 않은 일이겠다. # 겸재 정선의 그림과 똑같은 선경… 삼부연폭포
이즈음 장마로 폭포의 물살이 힘차게 내리꽂히고 있지만, 삼부연폭포는 비가 오지 않아도 수량이 제법 많아 늘 한결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금강산을 오가는 길에 이 일대에 은거하던 스승 삼연 김창흡을 찾아왔다가 이 폭포의 경관에 반해 진경산수화를 남겼는데, 그림 속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다른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다. 겸재는 서른여섯살 때와 일흔두살 때 이곳에 들렀다가 두 번 다 그림을 남겼고, 그 그림 위에 스승 삼연이 시를 얹었다고 전해진다. 철원의 폭포 중에서는 매월대폭포도 빼놓을 수 없다. 근남면 잠곡리 복계산 자락에서 떨어지는 폭포다. 매월대란 이름은 복계산 정상 40m 높이의 층암절벽을 일컫는데, 세조의 왕위찬탈에 비통해하며 전국을 떠돌았던 매월당 김시습이 조씨 성을 가진 육형제 및 두 조카와 함께 은거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김시습이 은거하면서 바둑을 뒀던 암봉을 마을 사람들이 매월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매월대폭포는 등산로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500m쯤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산길이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데다 폭포를 타고 내려온 물이 길 양쪽의 계곡을 찰랑찰랑 채우고 있어 오름길은 청량하다. 어찌나 숲이 깊은지 들어서는 순간 서늘한 한기가 느껴진다. 촉촉한 계곡의 습기와 바위에 가득한 진초록 이끼로 산길의 공기는 달고 길옆 숲에는 개망초부터 애기똥풀, 까치수염 등 여름 야생화들이 만발해 눈을 즐겁게 한다. 오름길에 들어선 지 10분쯤이면 당도하는 매월대폭포는 자체만으로는 빼어나다 할 수는 없지만, 제법 높이도 있고 물줄기도 힘차다. 복계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은 이곳 폭포에서 떨어진 물을 수통에 받아다 그대로 마셨다. 그 모습을 보곤 따라서 물을 받아 마셨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갑다. 철원에 또 하나의 폭포가 있으니 바로 직탕폭포다. 대개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별칭을 듣고 찾았다가 열 명이면 열 명이 다 실망하는 곳이다. 낮은 낙차나 폭포의 규모만으로 보자면 ‘나이아가라’는 터무니없다. 아니 폭포라는 표현도 과분하다. 천변의 자그마한 보(洑) 정도라고 해야 정확할 듯하다. 그러나 직탕폭포는 위용을 보는 곳이 아니다. 화산이 분출할 때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그대로 폭포가 된 지형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폭포의 주상절리는 통성냥 속의 성냥에 비유할 수 있겠다. 물이 주상절리 위로 넘어가면서 육각형의 절리가 통성냥 속 성냥 한개비 한개비처럼 떨어져나가면서 독특한 지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사라질까 아쉬워 뒤돌아보다… 재인폭포 경기 연천에도 꽤나 이름난 폭포가 있으니 바로 재인폭포다. 줄타기를 하는 재인(才人)의 아내를 탐하던 고을 원님이 재인에게 폭포의 벼랑에서 줄타기를 하라고 명한 뒤 줄을 끊어 죽이고 그 아내를 차지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재인의 아내와 원님은 어떻게 됐을까. 뒷얘기는 뻔하다. 재인 남편이 죽은 뒤 아내는 원님의 수청요구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재인폭포는 3년 전부터 장마철에는 여간해서 다가가기 어려워졌다. 폭포는 한창 공사 중인 한탄강댐의 바로 위쪽에 있는데, 댐 공사를 위해 우회 수로를 내면서부터 비가 오면 강물이 역류해 폭포로 들어가는 강변길이 모두 잠겨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가 그치고 사나흘은 지나야 비로소 폭포 앞까지 접근할 수 있다. 물이 불어나면서 힘차게 떨어지는 모습 대신 유순한 폭포의 모습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마저도 보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탄강댐이 완공되면 수위가 높아져 폭포가 물에 잠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폭포 입구에서 관광객들을 차단하던 동네주민은 손가락을 들어 산자락의 허리쯤을 가리켰다. 수자원공사에서 그 정도 높이쯤의 묘를 모두 이장하고 보상해줬다는 것이다. 거기까지 물이 차게 된다면 폭포는 아예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 틀림없다. 수자원공사는 홍수조절용 댐이라 늘 물을 가두지 않기 때문에 폭포가 수몰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수자원공사가 댐을 짓고 첫해에 물을 가득 채웠다가 방류할 것이라고 했다”며 “그러면 폭포가 물에 잠기게 되는데, 한번 물에 잠기면 흙이며 ‘뻘’이 쌓여 예전의 정취가 남아나겠느냐”고 아쉬워했다. 비가 내린 뒤라면 재인폭포는 먼 발치서 바라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야 한다. 폭포쪽 강변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서면 숲 너머로 멀리 폭포의 위쪽이 바라다 보인다. 곧 수몰될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일까, 재인폭포를 찾았다가 길이 물에 잠겨 허탕을 친 관광객들이 까치발을 하고 오래도록 폭포를 바라다봤다. 연천에는 지도에도 없고, 현지 주민들도 잘 모르는 꼭꼭 숨겨진 폭포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화진폭포다. 전곡읍에서 숭의전으로 이어지는 372번 지방도로 부근에 숨어있는데 폭포를 물으면 현지 주민들도 ‘여긴 그런 폭포가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니 찾아가는 길도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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