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우중여행_춘천,화천

醉月 2011. 8. 23. 06:44

강원 화천군 하남면 서오지리의 ‘건넌들 연꽃마을’에는 16만5000여㎡의 습지 가득 화려한 색깔의 수련이 피어나고 있다. 꽃도 꽃이지만 장맛비가 내리는 날, 연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빗물이 떨어져 맺힌 물방울이 마치 보석처럼 빛난다.

바야흐로 장마의 한복판입니다. 지루하게 쏟아지는 장맛비는 자주 여정을 망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여행의 운치를 더해주기도 합니다. 동의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비가 내려서 더 근사한 여행도 있는 법이니까요.

장마철에 가장 근사한 여행지라면 누가 뭐래도 ‘호수’입니다. 호숫가 숲 속에 들어 타닥이는 빗소리를 들어도 좋겠고, 호수 위로 떨어지는 빗물이 동심원을 만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장마의 빗줄기 속에서는 활엽수 숲의 초록색은 수채화 속 풍경처럼 더 싱그럽게 반짝입니다. 낮게 내려온 구름은 자주 앞산 능선에 척척 걸려 선경을 빚어내곤 하지요. 잠시 비가 그칠 양이면 사위(四圍)는 고요한데, 어느 산자락에선지 뻐꾸기 청아한 울음이 보태집니다. 저물녘 논바닥 개구리 울음소리의 정취는 또 어떻구요. 이즈음 길옆 옥수숫대는 어깨높이쯤 자랐고, 연못의 둥그런 수련 이파리 위에는 또르르 물방울이 굴러다닙니다.

장마철에 이런 풍경을 두루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강원 춘천과 화천입니다. 춘천과 화천이야말로 비 오는 날의 여정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우선은 수도권에 가까워서 좋기도 하거니와 비 오는 날, 드라이브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호반도로가 있는 의암호와 소양호, 춘천호를 품고 있어서도 그렇고, 우산을 펼쳐 들고 ‘우중산책’을 즐길 수 있는 싱그러운 숲도 곳곳에 있기에 그렇습니다.

어디 이뿐일까요. 낭패처럼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 해도 갈 곳은 많습니다. 1980년대쯤 청춘을 건너온 세대라면, 지금은 쇠락했으되 한때 젊은이들의 명소였던 춘천의 공지천 옆 ‘이디오피아의 집’에서 향긋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비 오는 창밖을 내다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구봉산 능선의 제법 높은 자리에 늘어선 카페로 들어서 접은 우산을 탁탁 털어내고 춘천의 도심과 건너편 산자락에 걸린 운무를 내려다보면서 그윽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겁니다.

춘천과 화천으로 떠나는 ‘우중(雨中) 여행’은 춘천댐을 지나서 당도하는 화천군 하남면 서오지리 수변의 ‘건넌들 연꽃마을’을 목적지로 삼으면 좋을 듯합니다. 이곳에는 도합 여덟 가구의 마을 주민들이 16만5000여㎡(5만여평)의 너른 습지에 자연스럽게 가꾼 연꽃밭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지금 화려한 수련이 앞다퉈 피어나고 있습니다. 탐스럽게 피어난 수련도 좋지만 그보다 연잎에 동그르르 구르는 물방울을 보는 정취도 즐겁습니다. 게다가 여기서부터 야생화가 만발하고, 도예체험도 즐길 수 있는 원천리 동구래마을까지 이어지는 편도 3㎞의 호반 숲길을 걷는 맛도 더할 나위 없이 운치 있답니다. 장마 한복판, 춘천과 화천으로 떠나는 여정은 눅눅하고 지루한 장마를 수채화의 근사한 낭만으로 바꿔줄 것임을 확신합니다.

화악산 자락에서 발원해 춘천호로 흘러드는 춘천시 사북면 원평리의 마평천. 갈수기 때는 물이 줄어들었다가 장마철이면 수량이 늘고 바닥이 환히 비칠 정도로 물도 맑아진다. 춘천과 화천의 호반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지천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 비 내리는 날 ‘수채화 풍경’… 경춘국도

세상만사가 다 똑같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도 있는 법이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과 춘천은 가까워졌다. 외곽순환고속도로 강일나들목에서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줄줄이 이어지는 터널을 지나 78㎞를 달리면 채 50분도 안 돼서 춘천에 당도한다. 한 지점과 다른 지점을 잇는 것이 ‘길의 목적’이라면 춘천고속도로야말로 뛰어난 길이다. 그러나 속도와 시간을 얻는 대가로 ‘호반을 따라 달리는 정취’는 내줘야 했다.

옛 경강국도와 경춘국도는 어땠던가. 6번 국도와 46번 국도를 번갈아 타고 가며 팔당과 두물머리를 지나서 청평댐과 대성리, 가평, 강촌을 따라 춘천으로 가는 길은 그것만으로도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여름 휴가철이면 극심한 정체가 빚어지는 곳이었지만, 노점에서 갓 따서 삶아 파는 옥수수를 사서 물고 여행의 가벼운 흥분 속에서 느릿느릿 호반을 달리는 맛이 그만이었다. 이게 그리 오래전의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취가 좋다 한들 짧은 거리와 빠른 속도의 고속도로를 두고 구불구불한 옛 국도 길을 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여행에서 때로는 ‘길 자체’가 목적인 경우도 있는 법. 비 오는 날에 춘천으로 향하는 길이 그렇다. 장마철의 여정이라면 그리 마음이 바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다.

팔당호와 청평호, 의암호의 호반을 따라가면서 벌써 어깨높이까지 자란 옥수숫대를 지나고, 하나둘씩 튼실하게 달린 고추밭도 지나고, 강변의 그럴듯한 카페나 미술관도 지나쳐가는 길. 이 길에서 정취가 가장 빼어난 곳을 꼽자면 가평의 춘성대교를 건너면서 시작되는 호반 길이다. 호수 건너편 산자락에는 낮은 구름들이 척척 걸려 있는데, 의암호반에 떠있는 붕어섬과 중도에는 초록의 녹음으로 가득하다. 어차피 빠른 속도를 원하는 차량들은 죄다 고속도로를 택했을 터이니, 이 길에서는 속도를 내지 않아도 좋다. 내친김에 춘천댐을 지나서 화천으로 이어지는 길로 접어들어도 정취는 모자라지 않다. 그렇게 호반의 국도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춘천 혹은 화천으로 향하는 여정은 충분히 보람이 있다.

춘천의 호수라면 청평사로 가는 배가 뜨는 소양호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이쪽은 장마철을 앞두고 댐의 수문을 열어 물을 워낙 많이 빼놓아서 황량한 느낌이 들 정도라 굳이 다녀올 이유는 없겠다.

# 연잎 구르는 빗방울, 청아한 뻐꾸기 소리

호반 드라이브의 종점으로 삼을 곳은 화천군 하남면 서오지리의 ‘건넌들’이다. 춘천댐을 지나고 사북우체국과 신포리성당을 지나서 현지사란 절집의 이정표를 따라가다 다리를 건너면 ‘건넌들’이 있다. 한때 화천에서 가장 넓은 들이 있었다는 마을이다. 그러나 들은 춘천댐이 들어서면서 죄다 수몰이 되고 말았다. 60호 남짓의 마을 주민들도 뿔뿔이 흩어져 단 8가구만 남아 있다. 남은 주민들은 지난 2003년부터 습지에 연을 심었다. 그동안 손수 심은 수련만 130여종, 연은 150종이나 된다. 그렇게 심어진 연이 8년을 자라면서 지금 습지 16만5000여㎡(5만여평)가 수련으로 뒤덮였다.

아직 연꽃은 이르지만, 이즈음 장맛비 속에서 수련들은 갖가지 색깔의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두 손으로 다 쥘 수 없을 만큼 큼지막하게 피어난 선홍색 수련꽃부터 탐스러운 크림색의 수련꽃과 엄지손가락만 하게 피어난 노랑어리연까지 앞다퉈 피어나고 있다. 수면에 떠있는 연잎에는 빗물이 또르르 굴러다닌다. 특히 잎이 큰 백련의 이파리에는 빗방울이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며 굴러내린다. 후두둑 빗줄기가 연잎에 떨어지는 소리와 흙길에 빗줄기가 쏟아지면서 풍기는 내음은 비 오는 날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것들이다.

연꽃마을의 정취가 연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에서 호숫가를 따라 더 들어가면 은밀한 호반 숲길을 만나게 된다. ‘신선이 다니는 길’이라 해서 ‘선로(仙路)’란 이름이 붙은 길이다. 화천군은 관내에서 빼어난 생태길 23코스를 정해 ‘동려이십삼선로(同侶二十三仙路)’란 길을 만들고 있다. 그 이름을 풀어보자면 ‘함께 걷는 스물세개의 신선의 길’쯤 되겠다. 이중 연꽃 마을길은 세 번째 길이다. 호반에 딱 붙어 연꽃을 감상하며 걷는 길인데, 이 길은 가벼운 언덕을 넘어 네 번째 길인 ‘물위 야생화길’로 이어진다. 호반의 숲길을 따라가는 매혹적인 길이다. 우산 하나 펴들고 빗물이 호수로 떨어지며 동심원을 그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후두둑 활엽수 이파리에 비 듣는 소리를 듣고 걸어가는 맛이 그만이다.

그 길의 끝에는 동구래마을이 있다. 반평생을 야생화에만 매달려온 이가 온실을 지어 야생화를 기르는 곳이다. 야생화와 함께 도예체험장으로도 운영하고 있다. 고즈넉한 호숫가의 운치 있게 지어진 건물 안에서 도예체험을 하는 맛도 좋지만, 비 그친 뒤 건너편 숲의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잘 가꿔진 정원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곳이다.

# 비 오는 숲 고즈넉하게 즐길 수 있는 곳

비 오는 날의 깊은 숲의 느낌은 아는 사람만 안다. 후두둑 쏟아지는 빗방울이 활엽수 잎을 두드리고, 건너편 산자락은 자욱한 안개가 감싸는 정취는 무엇하나 더 보탤 것이 없다. 빗방울이 잦아질 때 촉촉한 습기로 가득한 숲을 거니는 맛이라니…. 춘천에는 고즈넉하게 숲에서 이런 정취를 맛볼 수 있는 알려지지 않은 숲이 숨어 있다. 이름 하여 ‘강원숲 체험장’이다.

춘천에는 집다리골휴양림과 용화산자연휴양림 등의 숲이 있다. 그러나 주말이면 집다리골은 바비큐 연기로 자욱하고, 용화산은 숲의 깊이가 좀 모자란 편이다. 그러나 강원숲 체험장은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다. 당초 강원도립춘천수렵장이었다가, 올 초에 수렵장을 폐쇄하면서 숲체험장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삿갓봉(716m) 아래 골짜기에 들어선 숲은 일반인들의 접근이 뜸했던 터라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숲체험장에서는 하루 두 번 숲해설사가 진행하는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꼭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체험장 뒤편으로 이어진 잘 다듬어진 임도를 따라 산책을 하는 맛도 좋다. 임도는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데, 무려 30㎞가 넘는 코스도 있다. 오월삼거리까지 가는 데만도 6.5㎞ 남짓이다. 그러니 다 걷자고 욕심을 낼 것 없이 마음이 내키는 대로 걷다가 되돌아오면 된다. 임도를 따라들어가면 꿩이며 멧돼지가 자주 출몰할 만큼 숲이 깊다. 수렵장이 들어서면서 일반인들의 접근이 뜸했던 곳인데다가 숲체험장으로 변모한 뒤에도 알려지지 않아 숲길은 인적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수렵장은 폐쇄됐지만 클레이사격장은 그대로 영업하고 있다. 숲 속에서 즐기는 클레이 사격은 색다른 경험이 되기도 한다. 휴양림처럼 산막 숙소도 운영하고 있는데, 추첨을 통해 예약이 이뤄지는 휴양림과는 달리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고 있다. 여름 피서를 즐기기에는 계곡의 수량이 적은 편이라는 것이 단점인데, 이즈음 같은 장마철이면 수량이 풍부해져 반짝 햇볕이 날 때면 물놀이장을 독차지하며 호젓하게 즐길 수 있다.

# 장맛비 억수처럼 쏟아진대도…

장맛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기라도 하면 드라이브도 별 의미가 없다. 앞을 가리는 빗물에 바삐 움직이는 와이퍼 속에서는 드라이브보다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이런 날씨라도 춘천에는 가볼 만한 곳들이 많다. 단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곳이 막국수체험박물관이다. 막국수를 놓고 무슨 박물관까지 있느냐고 지나치기 쉽겠지만, 이곳에서는 손수 막국수를 만들어서 맛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메밀가루를 구입해서 반죽을 하고, 성형틀에 넣어 국수를 뽑아서 즉석에서 준비된 양념을 넣어 막국수를 만들어 먹는 체험이다. 이게 의외로 쏠쏠하게 재미있다. 손수 만든 막국수의 맛이 내로라하는 맛집에 견줘도 손색이 없다.

두 번째로 추천할 만한 곳이 강원도립화목원이다. 제법 잘 가꾼 동산과 산림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박물관은 문을 연 지 오래된 탓인지 전시기법이 다소 평면적이어서 그다지 감흥은 없다. 대신 주제별로 가꾼 숲과 유리온실의 식물들이 더 눈길을 끈다.식물원 한복판의 대형 파고라가 설치된 ‘반비쉼터’가 있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면서 테이블에서 챙겨간 도시락을 펴놓고 운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애니메이션박물관이나 인형극박물관도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다.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흠뻑 빠져들 만한 곳이다. 여자아이들이 열광하는 인형극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막국수박물관과 강원도립화목원, 애니메이션박물관 등 3곳 박물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이 어른 5000원, 어린이 35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연인들을 위한 곳이라면 구봉산 전망 카페거리를 꼽을 수 있겠다. 구봉산 산자락의 고갯길에 춘천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빼어난 전망의 카페와 휴게소가 예닐곱 곳 모여 있다. 건너편 산자락에 구름이 내걸린 날이어도 좋겠지만, 이곳은 특히 야경이 아름답다. 야외 탁자에 앉아 시원한 밤공기 속에서 야경을 바라보는 맛이 각별하다.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이라면, 공지천교 부근의 ‘이디오피아의 집’을 빼놓을 수 없겠다. 20∼30여년 전 젊은이들에게 춘천은 ‘안개의 도시’이자 ‘몽환의 도시’였다. 당시만 해도 경춘선 열차를 타고 이곳 ‘이디오피아의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최고의 로망이었다.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지만 1968년 문을 연 이래 지금도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춘천을 가려면 새로 놓인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것이 빠르긴 하지만, 호반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려면 옛 경강국도와 경춘국도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덕소에서 경강국도(6번 국도)를 타고 양수리까지 가서 조안교차로에서 좌회전. 북한강로로 이름 붙여진 45번 국도를 따라가다 금남교차로에서 경춘국도인 46번 국도로 갈아탄다. 의암교차로에서 의암교를 건너가는 46번 국도를 버리고 박사로라 불리는 40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곧 춘천댐이 나온다. 여기서 계속 직진하면 길은 화천군으로 이어지는데, 절집 현지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들어가면 연꽃마을이다.

비 오는 날이라면 휴양림 숙박이 제격. 예약이 어렵긴 하지만 집다리골자연휴양림(033-243-1443)이나 용화산자연휴양림(033-243-9261)이 가장 추천할 만한 곳이다. 춘천 시내의 춘천세종호텔(033-252-1191)은 고즈넉한 정취가 느껴지는 곳이다. 엘리시안강촌(033-260-2000)이나 라데나리조트(033-240-8000), 춘천베어스관광호텔(033-256-2525)은 가족단위 여정에 딱 맞는 곳들이다. 춘천의 음식이라면 단연 닭갈비와 막국수. 닭갈비는 명동의 닭갈비 골목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 막국수는 샘밭막국수(033-242-1712)와 명가막국수(033-242-8443)와 부안막국수(033-254-0654) 등이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는 집이다.


화천군 하남면 서오지리 ‘연꽃마을’은 그림 같은 호반 숲길로 원천리 ‘동구래마을’과 이어진다. 연꽃마을이 ‘연꽃’이 주제라면, 동구래마을은 ‘야생화’가 주제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가히 명소라 이름 할 두 곳 마을은 동갑내기 이호상(사진 왼쪽·52)·서윤석(52)씨가 일구어온 곳이다. 시작은 서씨였다. 1996년 화천으로 귀농해 배 과수원을 운영하던 서씨는 2003년부터 수몰된 너른 습지에 주민들과 연꽃을 심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로 연과 수련의 종자를 받으러 다니던 서씨는 2006년쯤 춘천에서 ‘야생화에 미친’ 이씨를 만나게 됐다. 산악구조대 활동을 하며 야생화에 빠진 이씨는 전국의 야생화 자생지를 찾아다니다가 한발 더 나아가 야생화의 증식법을 연구했다. 이렇게 길러 낸 야생화로 춘천 집의 826㎡(250평) 정원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가꾼 정원을 서씨가 방문하면서 인연은 시작됐다.

결국 이씨는 2006년 서씨의 권유대로 화천군의 지원을 받아 원천리의 마을로 이주해 야생화 정원과 온실을 가꾸기 시작했다. 인가가 없던 호숫가에 집을 들이고 단 한 가구가 사는 곳에 ‘동구래마을’이란 이름도 붙였다. 운치 있는 야생화 정원이 만들어지자 안쪽에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번듯한 도예체험장을 들였다. 작업장을 제공하고 문화마을로 가꿔가겠다는 취지에 동참한 도예가도 선뜻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서씨와 이씨는 서둘지 않는다. 좀 더 느리게, 차근차근 마을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제대로 된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벌이의 욕심으로서가 아닌, 마을 주민들의 진정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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