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한국인의 茶_04

醉月 2012. 8. 31. 08:00

차나무의 생태와 종류
이 지구상에 차나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진화를 통하여 오늘의 차나무가 되었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략 기원전 2000~1000년 사이에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북동쪽의 온대지역과 남동쪽의 아열대 및 열대 지역으로 나누어져 자생하였다 한다.



차나무의 특성과 생태
북동쪽 온대 지역은 중국이고 남동쪽 아열대와 열대지역은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이다. 이러한 기후와 토양의 영향에 따라 생태의 현상이 다르게 되어 북동쪽의 차나무는 관목성이, 남동쪽의 차나무는 교목성이 되었다. 관목은 주간主幹이 없이 하단부에서부터 여러 개의 가지를 뻗어 전체를 이루는 나무이며 교목은 한 개의 주간을 세워 크게 자라는 나무를 말한다. 관목성 차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약 2m 이상 자라지 않지만, 교목성 차나무는 잎이 크고 키도 9~10m에 이른다. 관목성 차잎은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이며 가공 방법 역시 발효차에서부터 덖음차까지 다양하지만, 교목성 차나무 잎은 손바닥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어 발효차에 국한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칭하여 관목성 차나무를 중국종이라 하고, 교목성 차나무를 인도종이라 부른다. 그러나 차나무 재배로 수익을 더 올리기 위해 교목이나 관목의 키를 1m쯤으로 잘라내어 제한하고 옆 가지를 양성하여 채취의 편리를 도모하는 경우가 많다. 차나무는 모두 상록수이며 장타원형의 잎은 서로 어긋나고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으로 뭉툭하며 끝과 기부는 뾰족하다. 꽃은 10~11월경에 1~3송이씩 겨드랑이나 가지 끝에 핀다. 치자꽃을 닮았으나 꽃의 크기가 반쯤 작고 흰색이나 연한 노랑색이다. 산골마을의 다소곳하고 청순한 소녀 같다. 매우 담백하고 우아한 꽃 색깔에 향기는 은은하여 환상을 부른다. 꽃받침은 5장, 꽃잎은 6~8장으로 이루어지고 진한 황색의 꽃 수술은 꽃에 비하여 많고 길쭉하게 튀어나와있다. 꽃이 귀한 늦가을이라 벌나비가 드나들어 먹이를 채취하느라 바쁘고 차꽃은 이들을 맞아 결실을 준비한다. 꽃이 지는 시기는 초겨울로 국화 꽃보다 더 이후이다.
꽃이 진 자리의 줄기에 팥알 크기의 아기 열매를 맺어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차싹과 함께 발육한다. 차싹이 어린 잎이 되어 차가 되기 위해 떠나고 나면 아기열매는 본격적인 발육을 시작한다. 여름이 되면 녹색의 둥글납작한 열매가 되며 호두알만큼이나 크게 된다.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한 9~10월이 되면 성숙한 열매의 바로 곁에 꽃이 핀다. 이를 가리켜 천하의 둘도 없는 실화상봉實花相逢, 즉 꽃과 열매가 서로 만난다는 묘경을 보여준다고 하는 것이다. 모
든 식물이 꽃이 지고 열매가 열리는데, 오로지 차나무만이 꽃과 열매와 잎과 줄기와 뿌리가 당대에 만나 차나무 전체를 이루는 기이한 식물이다. 이는 마치 만 백성이 경축을 드리는 가운데 제왕이 세자를 책봉하는 즉위식을 갖는 듯하고, 온 집안이 모인 가운데 부모가 그 집안의 후계자인 아들의 돌잔치를 여는 것 같다고 하겠다.



가을이 깊어가는 11~12월에 차 열매는 육질의 표피가 밤색으로 변하면서 점점 마르다가 두 쪽이나 세 쪽으로 갈라져 씨알을 땅으로 내려보낸다. 모든 식물이 그 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만 오직 차 씨만은 전년에 열매를 맺고 다음해에 성장하여 초겨울에 떨어진다. 2년에 걸친 심사숙고한 여정을 거쳐 한 생명의 원천이 완성되는 것이다.
차씨는 두툼한 육질의 껍질과 각질의 표피로 두겹의 옷을 입고 있다. 차씨의 껍질은 차잎색처럼 녹색이다가 다 익으면 밤색으로 변하고 각질의 표피는 암갈색이거나 쥐색이다. 육질의 껍질 안에는 각질의 표피가 있고 다시 그 안에 보호막이 있으며 노란 영양덩어리가 있다. 노란 영양덩어리는 씨알이며 상부
중심에 씨눈이 예쁘게 얹혀 있으니 바로 이 씨눈이 장차 차나무가 되고 종족을 승계하고 승화하여, 인류에게 고고한 미지의 공간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차의 영원한 원천적 희망이다. 노란 씨알은 두 쪽으로 정확히 나누어져 있으며 껍질 속에는 보통 두세 알이나 간혹 한 알 또는 네 알의 각질 표피가 있는 경우도 있다. 육질 껍질의 크기는 호두알만하고 각질표피는 단단한데, 이는 외부 압력이나 수분증발과 고온다습으로 인해 씨눈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방어벽이다. 영양덩어리인 씨알은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되어 종자 번식에 장애를 겪을까봐 독성으로 무장하며 본연의 목적을 향한 진로에 추호도 결손이 없도록 한다. 그런 까닭에 산짐승이나 새의 먹이가 될 수 없다. 차씨는 차나무가 되는 길이유일한 길이다.
씨눈이 발아할 수 있는 적정한 온도와 습도가 갖춰지면 약 2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씨눈이 태동을 시작하면 노란 씨알의 영양분으로 뿌리를 내린다. 이 뿌리가 각질 표피의 문을 열고 나가 땅에 닿으면 올곧게 땅속으로 줄곧 내려가 서서히 정착한다. 그러면서 위로 움을 틔워 지표를 뚫고 땅밖으로 노란 차순을 내밀고 세상에 태어난다. 한 번 내리뻗은 뿌리는 어떤 장애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축을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한 번 지상으로 나온 차순은 천재지변까지도 제압하며 차나무라는 거대한 성공을 향해 매진할 뿐이다. 어린 뿌리와 차 싹은 나약하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그 나약은 나약이 아니라 강인한 본질의 출발이다.

한국 차나무의 종류
한국은 북위 33~43도에 걸쳐 있는 동아시아의 반도이다. 기후는 4계절이 분명한 대륙성 온대에 속한다. 하지만 차나무는 한 겨울 최저 -7도에서 3~4일 을 지내면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차령산맥 이남, 전북 일부와 전남 일대 그리고 경남이 적산지이다. 한국은 현재 3가지 종류의 차나무가 있다. 첫째는 4세기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토착화된 한국 순수 전통 자생(혹은 야생) 차나무로 일본의 개량종 차나무가 들어오기 전까지 1,600년 동안 한국차의 전부를 석권했었다. 지금은 다수확을 목적으로 개량된 일본식 차나무의 산업화에 밀려 몰락 위기에 접어들었고 이제 한국 자생 차나무 분포는 2%에 불과하다.
둘째는 19세기, 일본이 대량생산을 위해 서구의 과학을 빌려 육종 개량한 야부기다라는 차나무로 일제 식민지 때 한국을 점령하였다. 더욱이 해방 이후 한국은 급진적인 산업화 영향을 받아 지금은 한국차나무 분포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셋째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경남과 전남의 산간지역에 자생하여 오랜 역사를 지니고 일제 때까지도 한국차를 대표하던 차나무였으나, 1980년대 초부터 몇몇 녹차 회사가 생기며 차가 기업화되기 시작하자 찻잎이 모자란 기업과 공장 측에서 산간마을 서민들에게 다수확을 권장, 비료를 줌으로써 본래 지닌 심근성을 상실한 차나무이다. 한국 자생 차나무의 본질은 깊은 뿌리, 심근성이 전부이다. 비료를 단 한 번만 주어도 측근이 발달하고 심근은 썩어 단절되고 만다. 현재 한국에 분포한 세 가지 차나무 종류는 산삼, 인삼, 장뇌삼과 비교할 수 있다. 2%밖에 남지 않은 한국 전통 자생 차나무는 형태는 빈약하지만 1,000년을 산다. 산삼 또한 보잘 것 없는 허약한 몸으로 심심산천에서 저 홀로 수백 년을 당당하게 살아간다. 야부기다 차나무는 인삼과 비교할 수 있다. 수백 년 전, 고려 때부터 한국사람들은 산삼이 사는 자연조건을 연구하여 산삼의 씨를 배양하여 거름을 주고 밭에서 생산하였기에 체구가 건장하지만 길게 가야 6년을 넘지 못한다. 인삼은 다수확을 목표로 대량생산체제가 한층 더해져 희귀성을 배제하고 고급은 보약재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인삼공사가 설립되어 진액 등 흔히 음료수로 쓰이고 있다.
심근이 거세된 모양만 남은 변질된 자생 차나무는 전체 분포의 12%로 장뇌삼에 비교된다. 산삼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고 인삼은 너무 흔하여 산삼만큼의 고귀함이 없으니, 산삼의 씨를 최근 인공적으로 발아시켜 산삼과 비슷하게 깊은 산에 심고 자연에 맡겨두는 산삼에 가까운 삼이다. 외관상으로 산삼과 구분하기 어렵고 삶의 환경도 산삼의 자연조건과 다름 없지만 자세히 보면 체구가 산삼보다 조금 더 크다. 성장의 모든 것이 산삼과 별 차이가 없으나 사람이 심을 때 처음 개입하였다는 그 차이 하나로 20~30년이 장뇌삼의 생명의 한계이다. 삼이라고 다 같은 삼이 아니듯 차나무라고 다같은 차나무가 아니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일수 없는 이유는 인권은 평등하지만 추구하는 가치와 성실함의 노력에 따라 격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산삼은 산삼대로의 가치가 있고 인삼은 인삼대로의 가치가, 장뇌삼은 그만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가치에 따라 용도는 현격한 차이를 갖는다. 한국차의
진가는 순수 전통 자생 차나무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약재나 음식물에도 원산지를 표시하는 것은 그 태생과 성장과정, 사람과 접하게 될 때까지의 경로에 따라 그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다 좋은 차를 접하게 되는 행운의 순간에 그 차나무 생태와 차가 되기까지의 구체적인 사항과 정성이 담뿍 든 한국 순수 전통차의 과정을 모르고 마신다면 아름다운 절경을 건성으로 스쳐지나가는 안타까운 일이다. 차를 평범한 음료로 아는 이들 앞에서 한국 순수 전통 차는 슬프다.



차나무의 수줍은 소원
차나무가 씨로부터 출발하여 나무가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한 해의 클라이맥스는 일구월심日久月深 가지마다 눈을 트고 뾰쪽한 창 하나에 필 듯 말 듯한 어린 잎 하나와 조금 더 핀 잎 하나, 즉 일창이기一槍二旗의 순을 내는 이른 봄이다. 산짐승이 지나가고 산새가 청명한 봄볕을 즐길 때 마음씨 고운 여인이 예쁜 손으로 일창이기의 순을 따가기 바라는 것이 차나무의 수줍은 소원이다. 어린 잎들은 초록이거나 자주빛 싱그러운 얼굴을 서로 부비며 어느 선량한 농부가 짠 대바구니에 담기길 꿈꾼다. 이끼 낀 한옥 부엌의 가마솥에 들어 장작불 덖는 소리 들으며, 부지런한 손이 어린 잎의 온몸을 뒤적여 줄 때 차나무에 내재한 정열의 삶은 태양보다 뜨겁다.
4세기 때 인도의 스님을 따라 고국을 떠난 뒤 한반도의 남단이 고향이 된 지 1,600년이 아득한데 차나무의 영광은 한국의 가을하늘처럼 푸른 빛이나 흰
새털구름 빛 찻잔에 차가 되어 비취빛으로 담겨지는 일로 완성된다. 그런 뒤 차나무의 혼은 고즈넉한 산사, 마른 바람이 스치는 마루에 마주 앉아 한 두어
사람 정겨운 미소가 되어도 좋고, 앞산 봉우리 막 떠오른 달을 두고 적요한 노승의 선정禪定이 되어도 좋고, 도회지 속 어느 단란한 가족끼리 오순도순 둘러 앉아 서로서로의 꿈이 되어도 좋다. 한 잔의 차는 단순한 한 잔의 차가 아니다. 한 잔의 차 속에 차의 역사가 있고 철학이 있고 생태학이 있다. 그렇기에 무수한 옛 선비들의 세상살이 애증이 담긴 차시가 있고 끊길 듯한 애간장의 선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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