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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노군대도선경(太上老君大道仙經)_03

醉月 2018. 9. 26. 13:15

莊子 逍遙遊 바른 풀이

 

北冥有魚하니 其名爲鯤이라. 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化而爲鳥하니 其名爲鵬이라. 鵬之背不知其-幾千里也-니라. 怒而飛其翼-垂天之雲하니 是鳥也-니라. 海運則- 將徙於南冥하나니 南冥者天池也-니라.

 

북쪽 어두운 곳에 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곤의 그 위대함으로 말하면 그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곤이 기화(氣化)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그 붕의 등덜미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힘껏 날아오르려고 그 날개를 펼칠 것 같으면 마치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다. 붕새는 이처럼 대단한 새이다. 바다의 기운이 세차게 일어날 적에 장차 남명으로 옮겨가려 한다. 남명이란 곧 하늘 연못이다.

 

장자(莊子)의 글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므로 뒷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말로 해석을 하였다. 많은 학자들이 노장사상을 두고 하늘에 떠도는 구름과 같아서 변화무쌍하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장자경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보다 훨씬 더 어렵다. 중국의 당나라 태종은 천하의 석학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그들이 자리에서 서고 일어나고 앉을 때마다 금을 한 냥씩을 주면서 8년 동안 만금(萬金)을 소비하면서 장자경(莊子經)에 대한 연구를 하고 발표를 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붕새와 작은 새인 메추라기에 대한 비유가 대인(大人)과 소인(小人)을 비유한 것이라는 정도밖에 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나 곤()은 대인(大人)이고 메추라기는 소인(小人)-우리나라 같으면 뱁새라고 했을 것이지만-을 비유한 것이라는 정도 밖에 해석을 못한 것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천하에 장자경(莊子經)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북명(北溟)은 오행(五行)으로 보면 북방(北方)이다. 북방은 현()이고 흑()이다. 현무(玄武)이고 현제(玄帝)이다. 어두울 명()이나 검을 현()이나 다 같은 말이다. 북현(北玄)이나 북명(北溟)은 북쪽은 자()가 있는 곳이므로 북명은 씨앗이 있는 곳이다. 북명(北溟)에 유어(有魚)하니-물고기는 종자(種子)의 근원을 말하는 것이다. 감괘(坎卦) 감중련 에서 가운데 있는 양효(陽爻)는 남성 성기를 나타내고 위쪽과 아래쪽에 있는 음은 불알을 나타낸다. 이괘(離卦)이허중(離虛中)에서 가운데 음()은 여성 성기를 상징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양()과 음(), ()와 화()가 서로 교합하여 생식(生殖)을 할 수 있다. 정자는 수 억 마리 중에서 하나가 살아남아 난자와 수정을 하고 거북이 바닷가 모래밭에 알을 낳으면 알에서 깨어난 새끼 천 마리 중에서 한 마리 정도만 살아남는다고 한다.

북명에 있는 물고기는 종자라는 뜻이다. 종자가 싹이 트면 봄이고 봄은 청룡(靑龍)이고 동방(東方) ()이다. 임금의 씨앗을 용종(龍種)이라고 한다. 용마루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여자는 용이 아니므로 궁궐의 태후전에는 지붕에 용마루가 없다. 태후나 왕비가 거처하는 집에는 용마루가 없다. 지붕을 삿갓처럼 매끈하게 해서 회를 발라 버린다. 태후전에는 용두(龍頭)가 없다.

더 나아가서 남자의 성기를 용()이라고 하고 여자의 성기를 궁()이라고 한다. 용종(龍種)이 용궁(龍宮)을 다녀가면서 죽었다가 살았다 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7억 개의 정자가 가서 하나만 살아서 내가 되었으니 용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 북극이나 남극 히말라야보다도 더 무서운 곳이 용궁이다. 모든 풀과 나무의 잎은 싹이 트면서 푸른빛이 나므로 푸른 빛이 나는 것은 정자(精子)이다.

정자가 되기 전의 기운(氣運), 정자의 원료(原料)가 되는 물질이다. 음과 양이 서로 만나기 전의 상태이다. 벼의 꽃이 피어서 수분(受粉)이 되기 전의 상태-수분이 되면 열매가 되기 때문에 -가 곤()이다. 지금까지 곤이란 말을 옳게 풀이한 사람이 없었다. 장자의 글이 전체적으로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은 사람이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다. ()은 물고기알 곤()이다. 곤이(鯤鮞)라고 하지 않는가?

명태의 뱃속에 라면의 면발처럼 들어 있는 것이 곤()이고 곤은 성호르몬이다. 성호르몬이 수정되면 알이 된다. 정자(精子)나 난자(卵子)가 되기 전의 상태를 곤()이라고 한다. 곧 씨앗이 되기 전의 상태다. 이것이 씨앗이 되어 크게 자라게 된다. 완전히 자라면 무게가 수백 톤이나 되는 고래도 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나 세코이아 국립공원에 가면 키가 100미터나 되고 둘레가 30미터가 넘는 큰 나무들이 있다. 이렇게 큰 나무도 그 씨앗은 0.001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드리로 자라는 소나무의 씨앗, 곧 솔씨는 아주 작아서 잣의 10분지 1밖에 안 된다.

공자, 예수, 석가 같이 성인(聖人)으로 칭송을 받는 사람도 모두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나서 크게 자란 것이다. 이 씨앗은 모든 사람한테 공평하게 다 꼭 같이 주어진 것이다. 성인의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고 한 것처럼 성현(聖賢)한테도 더 준 것이 없고 범부(凡夫)한테도 덜 준 것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성현과 범부의 차이가 생기는가? 그것은 인연(因緣)이다. 사냥꾼들한테는 잡을 사냥감밖에 보이지 않고 도둑놈들한테는 도둑질할 물건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살생을 좋아하는 이들한테는 죽을 길만 보이게 되니 그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연이다.


齊諧者志怪者也-諧之言-鵬之徙於南冥也-水擊三千里하고 搏扶搖而上者-九萬里以六月息者也-니라

 

제해란 기이한 것을 적은 책이다. 그 글에 이르기를 붕새가 남명에 옮겨 가려고 그 날개 짓을 할 적에는 거센 물결을 삼천리나 일으키면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곧장 솟구쳐 오르듯 구만리를 단숨에 날아오른다. 남명에 옮겨 가려는 시기는 유월이 되어 바다의 숨결이 크게 일어날 적에야 이 기운을 타고 남명에 옮겨 가려 하느니라.


 

제해라고 하는 제나라의 책에는 그 뜻이 괴상한 것만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런 책이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다. 산해경(山海經)을 읽어보면 괴상한 말들이 많다. 이것은 장자가 가공으로 지어 낸 책에 의탁(依託)하여 말한 것이다. 기록할 지()를 중국 사람들은 뜻 지()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삼국지(三國志)나 수호지(水湖志) 같은 책도 기록할 지()로 써야 하는데 모두 뜻 지()로 잘못 쓰고 있다.

붕새가 남명으로 이사를 가려고 할 때에 3천리나 거센 물너울을 일으키면서 돌개바람을 타고 구만 리를 솟아오른다. 유월에 바다의 숨결이 크게 일어날 적에 남명으로 옮겨 간다. 6월은 바다의 기운이 왕성하여 큰 비구름이 만들어지고 태풍이 발달할 때이다. 바다의 기운이 가장 왕성할 때에 높이 솟아오른다는 뜻이다.

 

野馬也-塵埃也-生物之以息으로 相吹也-. 天之蒼蒼其正色邪其遠而無所至極邪-其視下也亦若是則已矣리라. 且夫水之積也-不厚則負大舟也無力하고 覆杯水於坳堂之上이면 則芥爲之舟이나 置杯焉이면 則膠하니 水淺而舟大也-風之積也不厚則其負大翼也無力이라. 九萬里則風斯在下矣라야 而後乃今培風하고 背負靑天이라도 而莫之夭閼者리니 而後乃今將圖南이니라.

 

아지랑이와 티끌(식물의 수증기=산소)이 일어나는 것은 생물이 그 숨결을 서로 내뿜는 기운인 것이다. 하늘의 빛이 파랗고 파란 것은 올바른 색깔일까아니면 아득하게 멀고 끝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그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또한 이미 이와 같을 것일 뿐이리라.

대체로 물이 모인 것이 깊지 못하면 곧 큰 배를 띄우려 해도 띄울 수 없는 것은 가령 마당 가운데 우묵하게 들어간 웅덩이에 한 잔의 물을 부으면 즉 겨자씨 정도는 띄워 배를 삼을 수 있을 것이나 잔을 띄우려 하면 곧 땅바닥에 닿고 말 것이다. 이는 수심은 얕고 배는 크고 무겁기 때문이니라. 바람이 모여 크게 쌓이지 못하면 큰 날개를 띄워 날아오르게 하기에는 그 바람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만리를 날아오르려면 바람이 꽉 찬 연후에나 그 바람의 힘을 북돋아서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날아오를 지라도 막히거나 좌절됨이 없게 될 것이니 그런 이후에야 곧 남명으로 옮겨가는 것을 도모할 수 있느니라.

 

아지랑이와 티끌은- 진애(塵埃)는 먼지와 같은 바람이다. 아지랑이 같은 기운은 생명들의 숨결이 불어 올린 것이다. 숲이 있는 골짜기에는 안개나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서려 있지만 생명이 별로 없는 사막 같은 곳에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생기지 않는다. 아지랑이 같은 것은 식물이나 동물들이 뱉어내는 숨결이 햇볕으로 인해 증발하여 생긴 것이다. 숲에서 생기는 기운은 나뭇잎에 들어 있는 수분이 햇볕과 바람에 증발하여 생긴 것이다.

하늘이 푸르고 푸른 것은 바른 색깔일까? 장자는 여기서 하늘이 푸른 것이 본래 제 색깔인지 묻고 있다. 본래 하늘의 빛깔이 창창(蒼蒼)한 것인가? 아니면 너무 멀어서 끝 간 데를 알 수 없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어찌 되었든지 구만 리를 솟아올라서 내려다보아도 하늘의 빛깔은 꼭 같을 것이다.

몸속에 산소가 부족하고 이산화탄소 같은 가스가 차면 병이 난다. 뱃속에서 생긴 가스가 뇌로 올라가면 뇌에 산소가 모자라서 두통이 생긴다. 모든 생명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생명의 기운은 산소이다. 이 생명의 기운은 9만 리 위에서 보아도 과연 푸른 빛깔인가? 그렇다. 푸른 것은 생명의 빛깔이고 산소의 색깔이다. 산소가 몸에 가득 차야 생명이 가장 건강한 것이다. 산소가 곧 생명력이고 면역력이다. 그래서 몸속을 산소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 호흡법이 생긴 것이다. 바람의 색깔, 산소의 색깔이 푸르기 때문에 하늘이 푸르게 보이는 것이다.

화성(火星)에는 대기의 빛깔이 오렌지색이다. 가스의 빛깔 그대로 누르스름한 붉은 색이다. 화성에는 산소가 없으므로 공기의 빛깔이 오렌지색깔이고 생명이 살 수가 없다. 풀잎의 색깔은 초록색이다. 푸른 하늘 빛깔에 땅의 노란 색이 섞인 빛깔이 녹색이다. 산소의 푸른 빛깔이 햇빛과 접촉하면 녹색이 된다. 풀잎의 녹색과 하늘의 현()색의 간색이 하늘색이다. 창창(蒼蒼)하다고 하는데 창고 창() 위에 풀 초()가 붙어 있는 것이 푸를 창()이다.

북방(北方) 현무(玄武)는 자()이고 동방(東方) 청룡(靑龍)은 묘()와 인()이다. 인방(寅方)의 색깔이 창창(蒼蒼)한 것이다. 여기서 창생(蒼生)이라는 말이 생겼다. 푸르고 푸른 것이 생명이다. 온갖 생명이 동방 청룡에서 생겨나고 번성하는 것이다.

청구국(靑丘國), 창해국(蒼海國)은 모두 우리나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를 두고 그렇게 쓰지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씨앗과 생명이 모여 있는 곳이다. 곧 지구의 종자은행과 같은 곳이다. 모든 종자가 이 곳집에서 나와서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들에 뿌리고 가꾸어서 거두어들이는 것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동방(東方) 청룡(靑龍)에는 이십팔수(二十八宿) 중 동방청룡칠수 각항저방심미기에서 키를 나타내는 기성(箕星)이 있다. 키는 곡식을 까불러서 알곡은 알곡대로 모으고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나누어서 버릴 것은 버리는 도구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농장인(農匠人) 별이 있다. 농장인(農匠人)은 농사를 지어서 거두어들이고 기성(箕星)에서는 추려내는 것이다. 동방청룡(東方靑龍)에 속한 별에 또 천약성(天鑰星)이 있다. 천약(天鑰)이라는 이름 그대로 하늘의 곳집을 지키는 창고다. 그 옆에 곡식을 빻는 절구공이별도 있다.

생명이 창창(蒼蒼)-푸르고 푸른 곳은 우리나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청구(靑丘)별은 장익진, 각성과 진성 사이에 있다. 청룡은 우리나라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어디서 나오는 말이든지 청룡은 무조건 우리나라 땅을 가리킨다.

용포(龍袍)는 임금이 입는 옷이다. 제출호진(帝出乎震)이라 하였으니 청룡(靑龍)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이 나오게 되어 있다. 세계의 중심이 되는 곳이 동북방(東北方) 곧 간방(艮方)이다. 용잠산해(龍潛山海)라는 말이 있다. 용은 산해(山海)에 잠긴다는 뜻이다. 지금 간방이 세계의 중심에 와 있다. 제출호진(帝出乎震)의 시기가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이다.

하늘이 푸르고 푸른 것은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재주가 많은 사람은 덕이 적을 수밖에 없다. 도둑질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일 년 내내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는 농사꾼을 비웃는다. 농사꾼이 가을철에 수확하여 모아 둔 것을 한 번 가서 훔치기만 하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270일 동안을 일을 해서 땀을 흘리고 고생하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요유는 도학의 교과서이다​

대체로 물이 모인 것이 깊지 못 하면 곧 큰 배를 띄우려 해도 띄울 수 없는 것은 가령 마당 가운데 우묵 들어간 웅덩이- 파일 요()- 마당에 발자국 자국에 빗물이 고여 생긴 작은 웅덩이-에 한 잔의 물을 부으면 즉 겨자씨 정도는 띄워 배를 삼을 수 있을 것이나 잔을 띄우려 하면 곧 땅바닥에 닿고 만다. 이것은 수심은 낮고 곳 배가 크고 무겁기 때문이니라.

이 말은 붕새가 날아오르려면 힘을 모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곧 정력(精力)을 모아 두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물이 얕고 배가 크면 가라앉을 수밖에 없고 바람이 세차지 않으면 큰 날개를 펼치기에 힘이 부족하다. 구만 리에 바람이 가득해야 바로 하늘로 날아 솟아오를 수 있다. 꺾일 요()에 가로막을 알()이다. 하늘에 바람이 가득 쌓여 있어야 남명(南冥)으로 가려 하는 것을 도모할 수 있다.



소요유에는 도학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구만 리는 지구의 둘레를 가리킨다. 남자는 하루에 정자(精子)5억 마리에서 7억 개 쯤을 생산한다. 이 정자를 만들어서 빠져나가 버리고 마는 정자의 근원이 되는 힘을 돌이켜서 내 힘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80-90살이 될 때까지 살 수 있는 것도 다 정자 하나의 힘이다. 정자 한 개에 사람의 전부가 들어 있는 것이다. 도토리알 하나에 거대한 참나무 한 그루가 들어 있는 것과 같다.

개는 오래 살아도 20년 밖에 살지 못한다. 개의 정자에는 그만한 능력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루살이는 하루밖에 살지 못하고 죽는 것도 하루살이의 정자에 그만큼의 기운만 받았기 때문이고 봄풀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것도 씨앗에 그런 기운만 받고 났기 때문이다. 타고난 품성에 따라서 목숨의 시한이 결정되는 것이다.

7억 개나 되는 정자가 모두 내 몸에서 빠져 나가 버리면 내 힘이 되지 못한다. 빠져 나가서 음과 양이 서로 결합하면 남의 것이 되어 버린다. 자식은 남이다. 그러나 음양(陰陽)이 결합하기 전까지는 내 것으로 되돌릴 수 있다. 석가모니와 노자 같은 사람이 가장 아깝게 여긴 것은 정액(精液)을 소모하는 것이다. 석가와 노자는 정액을 소모하는 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버려지는 정액의 에너지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도학(道學)이다.

북명(北溟)은 아래쪽에 있는 신장(腎臟)을 가리킨다. 신장은 콩팥이고 고환, 방광, 성기(性器)가 그 부속 기관이다. 머리를 남명(南冥)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천지(天池), 곧 하늘연못이라고 하였다.


사람은 머리 속은 어둡고 대신 눈코입귀가 밝게 태어났다


스승님은 늘 나를 놀려 먹기를 좋아하셨다. 어렸을 적에 나는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머리는 하늘을 닮아서 건삼련(乾三連)이 있어야 하고 몸통은 씨앗이 있는 곳이니까 곤삼절(坤三絶)이 있어야 하는 법이거늘 네가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아라. 네 머리통 속이 하늘처럼 맑은지, 머릿속에 맑은 하늘이 들어 있는지 한 번 찾아보아라.” “안 보이는데요?” 내 스스로 생각해 보니 머릿속이 깜깜한 것이다. “그렇다면 네 머리는 이허중괘(離虛中卦)로구먼. 무릇 사람은 머리통 속이 하늘처럼 투명하게 모든 것이 다 보여야 하거늘 네 머리통 속은 한밤중처럼 깜깜하니 지옥이구나. 머릿속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너는 머릿속이 검은 놈이구나.”

사람은 머릿속은 검고 그 대신 눈코입귀가 밝은 것이다. “머릿속이 하늘마냥 투명하여 보이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하거늘 네 머릿속은 어두운 골방과 같으니 그래서야 만권서적을 어떻게 보고 알 수 있겠느냐?” 하셨다. 사람이 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깜깜한 밤중에 책을 읽으려 하니 무엇이 보이겠는가? 글을 읽어도 그 뜻을 모르고 읽으면 눈 뜬 장님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머리통에 있는 건삼련(乾三連)중에서 가운데의 양() 하나가 빠져서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아랫도리에 있는 음() 하나가 빠져나와서 건삼련(乾三連)의 가운데로 들어왔으니 머리통은 이허중(離虛中)이 되고 몸통의 아랫도리에 있는 곤삼절(坤三絶)에서 가운데 음() 하나가 머리통으로 올라가고 양() 하나가 머리통에서 빠져 내려왔으니 감중련(坎中連)이 된 것이다.


우물에 빠진 만년필을 건져 내는 방법  

 

어렸을 적에 파카 만년필을 앞주머니에 꽂은 채로 집 안에 있는 우물에 몸을 기울여서 두레박으로 물을 긷다가 만년필이 우물에 빠져 버렸다. 우물에 만년필이 빠졌다면 어떻게 건져내야 할까? 우물 속이 깊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건져 낼 방법이 없다. 우물 속은 햇빛이 비치지 않으니 늘 깜깜하여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정오에 태양이 우물 속을 수직으로 비추는 적도 지방이라면 잠시나마 우물 속에 햇빛이 비칠 것이므로 그 때 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년필에 들어 있는 잉크가 우물 속에서 계속 새어나올 것을 생각하니 건져내지 않고 그냥 두어서도 안 될 것 같다.

거울을 햇빛을 반사시켜서 우물 속을 비추니 바닥이 훤하게 보였다. 우물 속은 바람이 없으니 너울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 다음 대나무 장대 끝을 감 따는 장대처럼 쪼개어 물 속에 넣어 만년필을 갈라진 장대 끝에 조심스럽게 끼워서 꺼냈다. 우물에 만년필이 하나만 빠져 있는 줄 알았는데 다 꺼내고 보니 만년필이 열 세 개나 되었다. 우물에 빠진 지 오래 되어 녹이 붉게 슨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 아무도 그런 방법으로 만년필을 꺼낼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우물이 좁고 깊어서 햇빛이 우물 속에 비치어 들지 않으므로 우물의 물이 아무리 맑아도 속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만년필을 꺼내는 것을 보고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이 모두 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맥가이버가 이름이 난 것은 도구를 잘 다루어서 그렇게 된 것이지 아무리 훌륭한 도구가 있어도 머리가 나쁘면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다.

내 몸통도 이와 같이 밑으로 빠져 내려간 것을 우물에 빠진 만년필을 장대로 건져내듯이 꺼내어 올려야 하는데 몸통에는 우물처럼 장대를 집어넣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 때까지 나는 책에서 읽은 것들이 모두 하늘과 땅에 관한 모든 지식들이 한 번 읽기만 하면 머리 속에 다 차곡차곡 쌓여서 정리가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물건 정리하듯이 차곡차곡 머리 속에 온갖 지식이 쌓여서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나 꺼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머리 속을 들여다보니 밤처럼 깜깜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렇다면 내 머리통에서 빠진 것을 찾아서 넣어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스승께서는 끊임없이 나를 자꾸 놀리셨다.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 옆에 와서 사람인척 하지 마라. 개는 입으로 음식을 먹는데 너는 왜 사람처럼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밥을 먹느냐?” 하고 틈만 나면 나를 놀리고 구박하셨다.

그때는 어려서 도망도 가지 못하고 대들 힘도 없으니 내가 진짜 병신인 줄 알았다. 남들은 다 머리 속이 훤하여 모든 것들이 다 잘 보이는데 나만 혼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줄 알았다. 옥편을 찾는데 깜깜한 밤에 찾는 것 같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제대로 알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뒷짐을 지고 밑으로 내려간 것 하나를 위로 올리는 훈련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밑으로 빠진 것을 건져 올리는 시늉을 해서 기운을 위로 끌어올리는 훈련을 시작하였다.

사람은 누구든지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면 뒷짐을 지고 기운을 순환시키는 훈련을 해야 한다. 기운을 상승시켜야 순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마음만 먹고 실천을 하기만 하면 저절로 되는 것이다. 이 운동이 바로 도학(道學)이다.

여기서 밑으로 빠져 내려간 양() 하나가 성기(性器)가 되었다. 머릿속이 이허중(離虛中)이 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은 누구든지 여자들 마냥 요란한 것들을 좋아한다. 여자들은 속이 비어 있으므로 껍질이 요란하고 고운 것만 찾는다. 화려(華麗)한 것만 찾는 것이다. 화려는 꽃 화(), 빛날 화()에 밝을 려(), 고울 려()이다.

여자는 남방 이()에 속하므로 빛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좋아한다. 보석, 명예, 이름, 겉이 예쁘고 화려한 것을 다 좋아하는 것이다. 머리통이 이허중(離虛中)이 되면 가운데에 음은 여성의 성기를 가리킨다. 밑으로 내려간 양 하나를 끌어올리면 머리통은 건()이 되고 아랫도리는 곤()이 되어 건곤(乾坤)이 된다.

건곤(乾坤)이 몸에 다 갖추어지면 후덕하게 된다. 이화(離火)는 불이므로 위로 타오르려고 하고 감()은 물이므로 아래로 내려가려고 한다. 흩어지고 헤어지는 것이 배의 중심에서 불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과 양(), ()와 화()가 서로 나누어져서 헤어지면 죽는 것이다. 몸은 수()이고 정신은 불이다. 물과 불이 서로 헤어지면 죽음으로 끝난다.

스승님은 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나한테 거짓말을 하신 것이다. 스승님께서는 머리는 하늘을 닮아 둥글고 배와 엉덩이, 발바닥은 땅을 닮아서 넓적하니 이를 두고 사람을 소천지(小天地)라고 한다. 사람은 마땅히 수화기제(水火旣濟)가 되어야 하거늘 너는 화수미제(火水未濟)가 되었구나. 천지(天地)가 크냐? 화수(火水)가 크냐? 화수(火水)보다는 천지(天地)가 크네.” 하고 수시로 나를 놀리셨다.

어렸을 적에 아이를 놀리느라고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식의 말을 흔히 한다. 다리 밑에 있는 거지가 네 부모일거다. 너는 부산의 영도다리 밑에서 울고 있던 것을 주워 와서 길렀으니 이제 네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라. 하는 식으로 놀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그 아이는 부모가 놀림으로 하는 말이 진짜인줄 믿기도 하여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엄마 아빠 아무도 안 닮은 것 같네. 내가 정말 우리 식구가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水火旣濟가 곧 道學이다


사람은 늘 화수미제(火水未濟)로 살고 있는데 수화기제(水火旣濟)일 때가 있다. 그것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이다. 태아는 자궁 속에서 머리를 아래 쪽으로 두고 있다. 그러므로 수화기제가 저절로 이루어진다. 노자는 어머니 뱃속에서 14개월 만에 나왔다는 말이 있다. 뱃속에서 수화기제(水火旣濟)가 다 이루어져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7개월 만에 낳은 아이를 칠삭둥이라고 하고 8개월 만에 낳은 아이를 팔삭둥이라고 한다. 어머니 뱃속에서 덜 익어서 나왔다는 뜻이다. 수화기제가 되어 불을 때서 익혀야 하는데 덜 익어서 나와서 좀 모자라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사람이 직립(直立)하여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능이 갑자기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아이를 갖고 나서 곧 임신했을 때 늘 서서 일을 하거나 서서 움직이기를 많이 하면 수화기제(水火旣濟)가 저절로 잘 되어 아주 똑똑한 자식을 낳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편안하게 늘 누워 있기만 하면 병신 같은 자식을 낳게 된다. 궁중의 왕자나 귀족들의 자식들이 머리가 나쁘고 병신이 많은 것은 임신하였을 때 그 어머니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늘 누워 있거나 편안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신장(腎臟)의 물을 머리로 끌어올리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려면 두레박을 던져서 길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두레박을 던져 물을 길어 올리듯 아래쪽의 물을 위로 끌어올리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연구하여 찾아낸 것이 뒷짐을 지고 회광반조(回光返照)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내 머릿속이 이허중(離虛中)이라고 한 것은 스승님께서 나를 곯려 주려고 한 말인데 그 말에 자극을 받아 도를 닦는 방법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마 스승님도 나한테 자극을 주어서 스스로 깨우치게 하려고 하신 것이었을 것이다. 어려서 순진할 때는 스승님께서 놀리려고 한 말을 진짜인줄 믿고 열심히 밑에 있는 물을 데워서 위로 끌어올리려고 노력을 많이 하였다.


북명은 신장이고 남명은 머리를 가리킨다

 

북명(北溟)은 신장을 말하고 남명(南冥)은 머리를 가리킨다. 머리는 이화(離火)이다. 머리통에는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붙어 있다. 그래서 사람은 촉감(觸感)과 오감(五感)만 발달한 것이다. 흔히 감() 잡았다고 말하지 않는가? 머리통이 이화(離火)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은 빛나는 것만 열심히 하려고 하고 빛나는 것만 좋아한다. 명예와 사치를 좋아하고 겉을 요란하게 치장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공부를 해서 머리 속에 참된 지식을 쌓는 것보다는 박사(博士), 석사(碩士), 교수(敎授)가 되어 이름을 얻는 것에 목적이 있고 대통령이 되고 부자가 되어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고 출세하는 것에만 목숨을 걸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온 힘을 다 기울여서 콩팥의 물 기운을 머리 쪽으로 끌어올리려고 애를 많이 썼다. 그랬기 때문에 나중에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글을 읽고 이 글이 바로 도학의 수련법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몸에 산소가 가득 차야 9만 리나 되는 먼 하늘을 단숨에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이다. 불이 활활 잘 타려면 산소가 많이 있어야 한다. 큰 바람이 있어야, 생명이 불어 낸 숨결이 많이 있어야 불이 힘차게 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산소를 많이 마시도록 하기 위해서 호흡법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호흡을 가만히 앉아서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좌선(坐禪)을 하는 자세에서는 호흡을 올바르게 할 수 없다. 편안한 자세에서는 호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되지 않는다. 반대로 불편한 자세를 하고 있으면 오히려 호흡을 하기가 쉽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자세에서는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결가부좌는 가장 편안하게 앉은 자세이다. 힘이 가장 적게 들이고 앉는 자세인 것이다. 등뼈를 수직으로 하고 책상다리를 하고 있는 자세는 앉아 있는 모든 자세 중에서 가장 편안하고 힘이 가장 적게 드는 자세이다. 등뼈를 곧게 하고 앉은 자세는 가장 힘이 적게 드는 앉음새다. 작대기 한 개가 천 근의 무게를 받칠 수 있는 법이다. 가부좌(跏趺坐)로 정좌(正坐)하면 머리통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저울대 끝을 손으로 잡고 저울추를 들어 올릴 수 있는가? 저울대의 끝을 잡고서는 저울추를 들어 올릴 수 없다. 머리를 숙이면 몸에 힘이 들어간다.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면 힘이 들어가서 호흡할 때 공기를 더 많이 들이마시게 된다. 가부좌(跏趺坐)는 호흡할 때 숨을 가장 적게 들이마시는 방법이다. 오히려 호흡을 줄이고 방해하는 것이 가부좌로 앉은 자세이다. 앉은 채로 잠이 들어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가부좌로 앉은 자세이다. 가부좌는 오히려 호흡을 방해하여 호흡을 가로막는 자세이다.

이런 이치를 깨달은 뒤부터 가부좌로 앉아서 참선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어머니 저 병신들 하는 꼴을 좀 보십시오. 저런 것들의 어미도 저런 짓 하는 것을 사람이라고 낳고 미역국을 먹었을 것 아닙니까? 어머니, 어머니 자식은 저런 병신 짓 안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하고 혼잣말을 하곤 한다.


결과부좌 자세의 명상이나 참선은 오히려 호흡을 망친다


결가부좌하여 명상을 하거나 참선을 하는 자세는 도리어 호흡을 방해하는 것이다. 바른 호흡은 소요유(逍遙遊)에 있다. 거닐 소()에 거닐 요(), 놀 유(). 도학(道學)은 거닐며 노니는 데 있는 것이다. 뛰면 숨이 차서 호흡이 너무 거칠어진다. 천천히 거닐 때 호흡이 완성된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도학(道學)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부처는 말 그대로 붙박이 부처일 뿐이다. 붙박이는 장식품 말고는 쓸모가 없다.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은 말 뿐이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걷는 것은 일을 하는 자세이다. 좌선(坐禪)은 절대로 옳은 수행 방법이 아니다. 좌선으로 올바른 도를 얻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좌선하여 면벽(面壁) 수행한 달마는 어떻게 득도(得道)하였는가?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고 본다. 본디 이 세상이 생기기 전의 상태를 어둠 속에서 본 것이다. 내가 도태(道胎)라는 글에서 말한 것이 있다.


宇宙時空開闢前   우주나 시간 공간 등이 싹조차 드러나 열리기 전에는

銀漢星宿未曾有   은하계나 별자리도 일찍이 존재할 수 없었거늘

天地萬維奈何存   천지 만물이 어찌 우주시공보다 먼저 존재할 수 있으리오.

若遇此境念頭絶   우주는 대체 어디서 왔는가 생각하면 염두조차 끊어지나니

汝將超達時空前   그대도 장차 시공이 열리기 전의 단계 너머에 도달하려면

九曲蟻窟對面壁   끝없이 구불구불한 개미굴 같은 데 들어가서 면벽하여 보라.

 

나는 지극한 어둠의 세계에서 깨우침을 얻었다. 깜깜한 굴 속에서는 코앞이 몇 만 리 인지도 알 수 없고 상하전후좌우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빈혈증이 있는 사람이 차를 타면 어지럼증을 느낀다. 마치 하늘로 몸이 둥둥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사장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여 몸을 가눌 수가 없다. 그러다가 눈을 뜨면 현실의 사물이 보이므로 멀미를 덜 하게 된다. 이처럼 깜깜한 굴 속에 오래 있으면 빈혈증 환자가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도 더 심한 멀미를 하게 된다. 깜깜한 굴 속에 오래 있어 보면 몸이 허공에 떠 있는지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뇌가 혼돈을 일으킨다. 몸통이 거꾸로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흐르는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동서남북 상하좌우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다.

구불구불하게 활 궁()자 모양으로 파서 들어간 굴 속에서는 동서남북 아무 방향도 짐작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줄을 잡고 들어갔다가 줄을 잡고 줄을 따라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불구불하고 갈래가 많아 방향을 알 수 없으므로 나가는 것인지 들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미로에 빠져 헤매게 된다.


바른 호흡의 도는 소요유에 있다


달마가 7년을 면벽(面壁) 수행하여 마침내 도를 얻었다고 하는데 거기서 무엇을 보았는가? 달마는 지극한 어둠의 세계를 본 것이다. 그것을 1초 만에 보았는지 7년 만에 보았는지 알 수 없으나 어둠 속에서 태초의 순간, 궁극의 상태를 본 것이다. 나도 그 상태를 보고 내가 도태(道胎)라는 글을 쓴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하늘과 땅도 없고 더위와 추위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오직 어둠만이 확연하게 보이는 것이다. 나는 어법이 다른 사람과 달라서 어둠만이 확연하게 보이더라고 해서 료연개(瞭然開)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법인데 나는 어둠만 확연하게 보이는구나 하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호흡을 제대로 하면 몸속에 산소가 많아진다. 사람의 몸은 자동 조절장치가 있는 기계와 같다. 가부좌로 앉은 상태에서는 몸의 모든 시스템이 에너지가 산소와 결합을 적게 하도록 작동한다. 가부좌로 앉은 상태에서 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만큼만의 산소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부좌로 앉은 자세에서는 일부러 심호흡을 해도 산소가 몸 안에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일부러 숨을 크게 쉬어도 몸에도 필요한 만큼 더 이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뛰면서 호흡을 해야 숨이 가빠지는 것이지 앉아서 숨을 가쁘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무리하게 하면 늑막염에 걸린다. 폐를 억지로 부풀리려고 하니 갈비뼈에 늘어난 폐가 부딪혀서 염증이 생긴다. 역도를 하는 사람들이 호흡조절을 잘 못하면 늑막염(肋膜炎)에 걸린다. 말을 탈 때나 걸을 때나 달릴 때에도 호흡을 잘 맞추어야 숨이 뱃속까지 깊이 들어간다. 숨을 급하게 몰아쉬면 숨이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바가지로 우물 속 깊이 있는 물을 떠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깊은 우물 속의 물을 길어 올리려면 두레박을 깊이 던져야 한다. 호흡을 급하게 쉬면 목 부분만 헐떡거린다. 뒷짐을 쥐고 소요유(逍遙遊)하면서 숨을 쉬면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숨이 뱃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빈 깡통 두개를 가진 거지로 태어났다​

생명은 빛이고 밝음이다. 누구든지 밝음이 내가 된 것이다. 아버지의 몸에서 만들어진 정자(精子)가 어머니의 몸에서 만들어진 난자(卵子)와 만나서 내가 태어난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몸에서 나와 어머니의 몸으로 갈 때에는 마치 12개의 태양이 뜬 것과 같이 스스로의 빛으로 밝았다. 그래서 칠흑 같은 밤에 가장 어두운 동굴 속을 한 번도 발을 헛디디지도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달려 간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한테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전등불이 없으면 밤중에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사람이 되자마자 감중련(坎中連)이허중(離虛中)이 되어 빛이 사방으로 옮겨 간 것이다. 비누 덩어리였던 것이 비누거품처럼 된 것이다. 속은 텅텅 비고 껍질만 남은 것이다. 타고난 선천적인 밝은 기운이 오감(五感)으로 옮겨가서 오감(五感)만 발달하고 머리 속은 텅 비어 깜깜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빈 깡통 두 개를 가진 거지로 태어났다. 사람은 동냥통 두 개를 들고 있는 거지와 같다. 올바른 스승을 못 만나면 빈 머리통에 지식을 채우기 어렵고, 가난한 부모를 만나면 빈 밥통을 채우기 어렵다. 무식한 부모를 만나면 머리통이라는 동냥통에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누구든지 빈 통 두 개를 들고 태어난 거지다.

머리에 있어야 할 양() 하나가 밑으로 빠져 내려가서 머리통이 이화(離火)가 되었으므로 사람은 안 시켜도 잘 하는 것은 명예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거나 오감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 밖에 없다. 생식행위 같은 것이나 육신의 감각과 쾌락을 쫓는 것은 시키지 않아도 누구나 잘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학문을 좋아하기를 주색을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五感에 빠지면 결코 道를 이룰 수 없다


왜 사람들은 모두 공부하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오감(五感)에 빠지면 공부를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몹시 크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는 즐거움은 다른 차원의 즐거운 일이다. 공부를 하면 새로운 정신세계를 볼 수 있게 된다.

사람한테 오감(五感)은 다섯 명의 주인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다섯 주인을 섬기는 노예와 같다. 사람은 눈, , , 귀가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코는 언제나 좋은 향기만 맡으려 하고, 눈은 늘 예쁜 것만 보려 하고, 귀는 늘 아름다운 소리만 들으려 하며, 입은 언제나 맛있는 것만 먹으려 하고, 몸뚱이는 늘 편한 것과 쾌락만 찾으려 한다. ! 다섯 주인을 섬기는 노예로 살기가 얼마나 고달픈 일인가?

나는 지하철을 타고 서서 가면 내 눈과 다리는 서로 짜고 내 마음이 의식적으로 빈 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는데도 빈 자리를 찾아가서 그 앞으로 간다. 내 마음이 시키지 않는데도 내 눈과 다리는 둘레둘레 빈 자리를 찾고 무의식적으로 편하게 앉아서 쉬며 갈 자리를 찾는 것이다. 나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빈 자리 앞으로 가게 되는데 그때서야 내가 그것을 알아채고는 빈 자리에 앉지 않고 돌아서 버린다. 곁에 있는 사람이 앉으시지요.” 하고 말을 걸면 아닙니다. 저는 곧 내릴 겁니다.” 하고는 돌아서서 몇 걸음쯤 다른 쪽으로 가 버린다. 이렇게 하면 내 감각(感覺)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이성(理性)이 시키는 하는 것이 된다. 몸이 앉으라고 할 때 나는 앉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내 감각에 훈련을 시키면 오감(五感)이 나를 부리려고 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오감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감각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몸이 하려고 하는 것을 마음이 들어주지 말고 마음이 하려는 것을 몸이 들어주지 않도록 스스로를 훈련해야 한다.

석가모니(釋迦牟尼)는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고 하였는데 불교에서 이를 눈, , , , , 뜻도 없다고 해석하여 육근(六根)이라고 하였다. 또 이와 함께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곧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촉감과 법을 일러서 육경(六境)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풀이가 아니다.

모든 것은 배합괘(配合卦)로 해석해야 한다. 무안이비설선의(無眼耳鼻舌身意)는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없다는 뜻이고 라고 해석해야 옳은 해석이다. 그리고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은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촉감도 없는 법이고 라고 해석해야 옳은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은 오감(五感)과 그 감각기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와 법()은 뜻과 법은 서로 짝이 맞지 않는다. 뜻으로 법을 이라고 하는 말이 성립될 수 없다. 육근(六根)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오감(五感)이 옳은 것이다. 의미도 그럴 법한 것이 없다 라고 해야 옳은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六根은 틀렸다 五感이 옳다​


빛깔이 고운 과일이면 다 맛이 좋은가? 얼굴이 예쁜 여자는 다 마음씨도 고운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기 쉽다. 색깔이 요란한 것은 대개 독이 많다. 아프리카에는 배 부분이 새빨간 빛깔이 나는 개구리가 있다. 이 개구리의 등을 두들기면 귀부분에서 하얀 독을 뿜는다. 그 독을 화살촉에 발라서 짐승을 사냥할 때에나 전쟁 때에 썼다고 한다.

얼굴이 예쁜 여자가 마음도 고울 것 같지만 얼굴이 고운 여자가 덕성을 갖춘 여자일 법도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은 해석이지 뜻은 법이다 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 의미 있는 것이 있겠나? 하는 식의 댓글이다. , , , , 몸은 맞는 말이나 뜻도 법도 없다는 해석은 틀린 것이다.

예전에 공자(孔子)의 글을 읽다가 너무 틀린 것이 많아서 나중에 공자를 만나면 혓바닥을 뽑아버리겠다고 늘 말하곤 했다. 이처럼 유교나 불교, 도교에 관한 책을 읽다가 보면 잘못 해석하거나 번역한 것들이 많다.

의약(醫藥)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과연 겉이 아름다운 것이 약효도 좋은 것인가? 과연 향기가 좋은 것이 몸에도 좋은 것인가를.

산에 다니면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미있는 것이 많다.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은 무덤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면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이 한꺼번에 죽는 것처럼 산에 가서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6-7명의 심마니가 산삼을 캐러 한꺼번에 산에 가서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죽은 것이 틀림없지만 시신을 찾을 수 없어서 무덤을 만들 수가 없고 산으로 나간 날을 제삿날로 정하여 놓고 한 번에 합동제사를 지내는 곳이 많다고 한다.

산삼은 음력 7월부터 낙엽이 들기 시작한다. 다른 풀이나 나뭇잎보다 빨리 잎이 진다. 그런데 이 무렵은 7월 독사라는 말이 있을 만큼 독사의 독이 제일 셀 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독한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7월 독사이고 다른 한 가지는 독이 오른 고추이고 마지막 한 가지는 독 오른 여자라고 한다. 고추는 열매 끝부터 붉어지려고 한창 약이 올랐을 때가 제일 맵다. 이것을 그냥 먹으면 천하에 고칠 방법이 없는 염증이 생긴다. 절대로 입에 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빨갛게 잘 익은 고추는 독이 없다.

독사는 떼를 지어 뭉쳐 있으면서 향기를 내뿜어 그 향기로 먹잇감들을 홀린다. 독사들은 4-5백 마리가 한데 엉켜서 모여 있으면서 어떤 동물이나 사람도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향기를 내뿜는다. 그 향기는 마치 더덕의 향기 같으면서도 마치 천국에라도 온 것 같은 향기가 난다. 뭇 동물들이 향기에 취하여 저절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끌려서 뱀굴에 들어가서 독사떼의 먹이가 되고 만다.

수많은 동물들이 독사들이 내뿜는 향기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서 제 발로 독사굴로 들어가서 독사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독사들이 내뿜는 향기에 홀려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상태가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독사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너무 황홀하여 마치 천상의 향기와 같아서 그 향기에 한 번 홀리면 아무도 빠져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심마니 5-6명이 한 번에 모두 독사떼가 내뿜는 향기에 홀려 한꺼번에 목숨을 잃고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강원도 설악산에 있는 어느 한 독사굴에서는 사람의 해골이 100여 개가 발견된 적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독사들이 수백 마리가 모여서 떼를 이루면 각자 따로 사냥을 하지 않고 큰 덩어리로 한데 뭉쳐서 향기를 내뿜어서 동물들을 유혹하여 잡아먹는다. 지금은 땅꾼들이 뱀을 하도 많이 잡아서 뱀이 많이 없어졌지만 나도 옛날에 두 번이나 독사들이 내뿜는 향기에 홀려서 독사가 떼를 지어 있는 구덩이에 빠질 뻔한 적이 있다.



감각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향기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을 홀리기 위한 것이다. 3년 전에 중국에 한 국수가게가 있었는데 그 집의 국수를 서로 사서 먹으려고 사람들이 늘 1킬로미터 넘게 줄을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옆집의 가게는 손님이 전혀 없어서 파리를 날리는 상태였다. 그 집에는 손님 한 사람이 보통 2-3그릇을 주문하여 가져가는데 가게 안에 앉아서 먹을 만한 자리가 없으므로 주인은 그릇에 담아주기만 할 뿐인데도 그토록 사람이 많이 밀려 있었다는 것이다. 국수는 하루나 이틀을 두고 먹으면 퉁퉁 불어나서 맛이 없어지기 마련인데 얼마나 맛이 좋았으면 한 사람이 2-3일씩 두고 먹으려고 몇 그릇씩이나 주문해서 포장을 해서 집으로 가져갔겠는가?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 국수에 마약을 넣은 것이 들통이 나서 주인과 그 가족들이 모두 경찰에 잡혀 갔다고 한다. 술이나 마약에 한 번 중독되면 끊기 어렵다. 혓바닥이 맛있는 것에 한 번 중독되면 여간해서는 끊기 어려운 것이다.

좋을 법하다, 가치를 둘 만 하다고 할 의미가 없다, 향기롭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라는 뜻인데 석가 이래로 모든 중들이 이를 육근(六根)이라고 해석하였다. 성철도 육근(六根)이라고 풀이하였다. 이것은 오감(五感)이라고 해야 옳은 것이다. 육근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불교에서 말하는 여러 숫자와 불교의 사상은 우리 전통 사상과 전통의학에서 나온 말이다. 108번뇌라는 말도 곤도(袞道)에서 나온 것이다. 곤도(袞道)의


春夏秋冬曰十方也- 方中又有十二門道하고 此上各有井田方便이라 是故極明卽九也- 迷惑卽- 七十有二也- 煩亂卽- 凡百有八也-

 

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역에 나오는 숫자인 129,60012로 나누면 10,800이 되고 이것을 다시 100분지 1로 줄여서 108이 된 것이다.



결가부좌로는 도를 얻지 못한다


절간에 있는 부처상을 보면 손바닥을 위로 하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채로 단 위에 앉아 있다. 사람들이 이와 같은 자세로 참선을 하고 명상을 한다. 그러나 화두(話頭)를 푼다고 하여 손바닥을 하늘로 하여 벌리고 있는 모양을 하는 자세는 옳은 자세가 아니다. 우리가 물건을 남한테 줄 때 상대방의 손바닥 위에 올려 주면서 가져가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자세인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벌려서 하늘에서든지 높은 곳에서 내려 달라고 하지 말고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스스로 주워서 가져라. 모든 물건은 줍는 자의 것이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주워서 가져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제자보다 낮은 자세에서 제자를 높이 떠받쳐 주는 스승이 올바른 스승이다. 하늘이 땅을 떠받드는 세상이 곧 지천태(地天泰) 세상이다. 지천(地天)의 상태가 되어야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이다. 하늘이 땅 위에 군림하면 천지비세(天地否世)가 된다. 스승이 무엇이든지 제자한테 전해 주려고 할 때 물건을 주려고 쥐고 있는 손을 받으려고 하는 제자의 받는 손보다 더 아래쪽으로 가게 하여 제자의 손에 꼭 쥐어 주면서 여기에 물건이 있다, 받아서 네가 가져라 고 하는 것이 올바른 스승의 자세인 것이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하면 위에서 주는 것만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것은 날이 가물어서 물이 말라서 목이 타서 죽게 되었는데 우물을 파지 않고 하늘에서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과 같다.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하늘바라기가 된다. 이것을 건달(乾達)이라고 한다. 마치 이것은 하늘에서 비가 와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천수답(天水畓)과 같다.

 

蜩與學鳩笑之曰- 我決起라도 而飛槍楡枋이오 時則不至하고 而控於地而已矣어늘 - 以之九萬里하야 而南爲適芥蒼者三飡而反이라도 復猶果然이나 適百里者宿舂糧하고 適千里者三月聚糧이어늘 之二蟲又何知리오

 

매미와 새끼 비둘기가 붕새를 비웃어 말하기를 우리들은 아무리 온 힘을 다해 뛰듯 날아올라도 울타리나 섶의 느릅나무나 박달나무에 이르는 것이 고작이요, 어느 때는 이르지 못하고 땅에 내동댕이쳐지거늘 어찌 구만리나 되는 남명(南冥)까지 솟구쳐 오른다고 하는가가까운 푸른 들녘에 가려는 자는 세 끼 분의 양식을 싸서 가지고 가야 저녁에 돌아올 때까지 오히려 배가 든든할 수 있고, 백 리를 가려는 자는 밤을 새워 곡식을 찧어야 하며, 천 리를 가려는 자는 석 달간 양식을 모아야 하거늘 이 두 벌레(매미와 새끼비둘기)가 또한 이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매미와 갓 난 비둘기가 비웃으며 말하기를 우리는 힘껏 날아올라도 기껏해야 창대 높이만한 느릅나무나 박달나무에 간신히 다다를 수 있거늘, 그것도 너무 힘이 들어서 땅에 덜어지곤 하는데 어찌 구만리를 날아오르려 한단 말인가? 저 들녘으로 풀을 베러 가는 사람은 세 끼 먹을 것을 장만해서 가져가야 하고, 백 리 길을 가려는 사람은 밤을 새워서 먹을 것을 준비해야 할 것이며 천리 길을 가려는 사람은 석 달간 양식을 준비해야 할 것이거늘 뱁새가 어찌 황새의 뜻을 알 것인가?


 

南海之帝爲儵이오, 北海之帝爲忽이며 中央之帝爲渾沌이라. 儵與忽相與하야 遇於渾沌之地渾沌待之甚善이라. 儵與忽謀報渾沌之德하야 -人皆有七竅라서 以視聽食息이어늘 此獨無有嘗試鑿之라하고 日鑿一竅하니 七日而渾沌死러라.

 

남해의 임금은 숙이라고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이라고 하며 중앙에 있는 임금은 혼돈(混沌)이라고 하는데 숙과 홀이 때때로 서로 혼돈의 거처에서 만날 적에 주인인 혼돈이 융성하게 대접하는지라 숙과 홀이 혼돈의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꾀를 내어 말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다 일곱 구멍이 있어서 이것으로써 보고 듣고 먹고 호흡하거늘 이 혼돈 임금만 홀로 있을 것이 없으니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 보세. 하고 하루에 한 구멍씩을 뚫기를 하였더니 칠일 만에 혼돈 임금이 그만 죽었더라.

 

남해의 제왕은 숙()이라고 하고 북해의 제왕은 홀()이라고 한다. ()은 부싯돌이 부딪혀서 불꽃이 한 번 일어나는 순간을 나타내는 말이다. 불꽃이 튀는 순간이 이화(離火). 사람의 목숨은 부싯돌에서 불꽃이 한 번 튀는 순간과 같은 것이다. ()은 수직으로 세운 막대기 하나를 명주실 한 가닥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순간이다. 아마 1,000분지 1초쯤 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사람은 이 짧은 시간을 살면서 그 순간의 오감(五感)을 만족시키는 데에 목숨을 건다. 중앙의 제왕은 혼돈(混沌)이라. 혼돈(混沌)은 오감(五感)에 끌려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 , , , 신체의 촉각을 따르지 않는 것을 혼돈(混沌)이라고 한다.

()은 잠깐 숙(), 빠를 숙()이다. ()은 갑자기 홀()이다. 숙과 홀이 서로 만날 때 혼돈의 땅에서 만났다. 혼돈이 숙과 홀에게 대접을 잘 하여 주므로 혼돈에게 어떻게 보답을 할까 하고 의논을 하였다. 숙과 홀이 꾀를 내어 말하기를 사람한테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는데 혼돈은 있을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일곱 개의 구멍은 사람의 얼굴에 있는 일곱 개의 구멍 곧 눈, , , 귀를 말한다. 오감을 느끼는 감각기관이다.

사람은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서 이것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숨 쉬고 하거늘 혼돈(混沌)만 있을 것이 없으므로 시험 삼아 하루에 한 구멍씩 뚫었더니 7일 만에 혼돈이 죽었더라.

지금은 이성(理性)보다 감성(感性) 곧 이큐가 앞서는 시대이다. 무조건 상대를 홀리기만 하면 된다. 먹는 것을 예로 들면 무조건 맛있게만 만들면 된다.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맛있으면 되는 것이다. 맛있게 만드는 재료와 기술은 공개하지 않아도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중국의 국수집을 중국 공안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국수를 수거하여 가지고 가서 조사를 해 보니 마약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 집안의 아버지, 아들, 손자의 3대가 다 잡혀 갔다고 한다.


일곱 구멍에 빠지면 도학을 이룰 수 없다


도학(道學)은 오감(五感)에 빠지면 절대로 이룰 수 없다. 오감에 치우치면 도학의 목표에 이를 수 없다. 음악, 미술, , 노래, 명예, 대통령병, 권력, 섹스 이런 것에 치우치면 곧 감각에 구멍이 뚫려서 오감이 열리면 도학(道學)을 이룰 수 없다. 오감이 열리면 도학(道學)은 죽어버린다.

오감(五感)으로 판단하는 것은 하나도 맞지 않다. 감각(感覺)이라고 하는 것은 감추어져 있는 속을 보지 못하고 껍데기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각이 발달하여 감각에 의존하게 되면 이성이 흐려지고 마비되는 것이다.

우리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세 가지 계율이 있다. 하나는 이모취인(以貌取人)이고 다른 하나는 이언취인(以言取人)이고 마지막 하나는 이미취식(以美取食)이다. 곧 사람을 생김새로 취할 것인가? 사람을 말솜씨로 취할 것인가? 음식을 맛으로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람을 생김새로 취하지 말 것이며, 사람을 말솜씨로 취하지 말 것이며, 음식을 맛으로 취하지 말 것이다.

향기로도 음식을 선택하여 먹지 말라. 향기 역시 껍질일 뿐이다. 그러나 향기가 강한 약초로 약을 만들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향기가 강한 식물에는 특별한 면역력을 지닌 벌레들만 달라붙어서 잎을 뜯어 먹는다. 이를테면 칡잎은 아무 벌레든지 와서 잎을 뜯어먹지만 박하 잎을 먹는 벌레는 별로 없다. 박하 잎을 먹을 수 있는 벌레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탱자나무 잎을 먹는 벌레나 깻잎을 먹는 벌레는 한 가지밖에 없다. 향기가 진한 것을 많이 먹으면 세포막이 녹아서 분해되어 버린다.

향기는 식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독이다. 향기가 좋은 것들만을 찾아다니지 말라. 향수, 화장품이나 비누의 향기 같은 것은 모두 감각을 유혹하는 성질을 지닌 것들이다. 가능하면 비싼 화장품, 비싼 비누 같은 것들을 쓰지 말라. 향기가 많은 것에는 모두 독이 있다. 유혹하는 성질을 지닌 것들에는 모두 독이 있다. 유혹하는 것은 모두 올가미와 같다. 맛있는 먹이를 먹으려고 다가가다가는 함정에 빠지거나 올가미에 걸리는 것이다.

얼굴이나 말솜씨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말만 잘하는 사람을 언적(言賊)이라고 한다. 얼굴이나 말솜씨 뒤에 감추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닌 척 하고 겉으로 내숭을 떠는 것을 묵적(默賊)이라고 한다. 십대 후반의 여자 아이들은 무엇을 물어보아도 본심을 말하지 않고 이리저리 빙빙 둘러서 본뜻을 감추는 경우가 많다. 자기의 의사를 철저하게 감추는 사람을 묵적이라고 한다.

국무총리가 하지 못할 일이 한 가지 있다. 제 돈으로는 토큰가게 같은 구멍가게도 겁이 나서 못한다. 국가 돈이니까 제 맘대로 북한에 갖다 주든지 복지사업에 쓰든지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제 돈이라면 손이 떨려서 한 푼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국가 돈이니까 제 멋대로 퍼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수해가 크게 났을 때 북한의 김정일을 예찬하는 무리들이 수재 의연금을 한 푼도 낸 적이 없다. 소말리아에서 굶어 죽어가는 난민들한테 성금 한 푼도 낸 적이 없다. 그런데 북한에는 더 많이 퍼 주어야 한다고 시위를 한다. 제 돈은 남한테 주기가 아까워서 한 푼도 안 내면서 국가 돈이니까 마구 퍼 주라고 떼거리로 모여서 시위를 하고 떠들어 대는 것이다.

나는 겁이 나서 중 옷을 못 입는다. 중 옷을 입고 있으면서 중 노릇을 잘 못하면 부처를 욕 먹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중이 중 노릇을 잘 못하면 부처님이 욕을 먹는다.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한 사람한테 이로우면 다른 한 사람한테는 해롭다. 우리 집 앞에 조그만 가게가 하나 있는데 다른 가게에서 물건을 하나 사서 집으로 들고 들어가면 그 다음날부터 그 가겟집 주인이 나를 보아도 인사도 하지 않아서 나는 일부러 물건 산 것을 들고 먼 길을 돌아서 집으로 들어온다. 우리 집 앞에 있는 구멍가게 주인은 가게 앞에 앉아서 온 동네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무엇을 사 오는지를 도끼눈을 뜨고 쳐다본다. 그런데 꼭 같은 물건을 다른 가게에서 사면 54백 원인데 그 집에서 사면 7천원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 집에 일부러 가서 54백 원짜리를 7천원에 사 준다. 그래도 그 집 주인은 도끼눈을 뜨고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이다.

장자의 글에 혼돈(混沌)이 남들과 어울려서 놀다가 오감(五感)이 열려서 7일 만에 죽었다고 하였다. 오감 곧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중에서 안이비설(眼耳鼻舌)의 네 가지는 머리에 있고 나머지 한 가지 신()은 몸통 전체에 있다. 오감(五感)이 열리면 안 된다. 오감에 치우쳐서 오감의 노예가 되면 안 되는 것이다. 감성을 이큐라고 하고 이성을 아이큐라고 하는데 이큐는 남을 홀리는 것이다. 오감만족이니 감성마케팅이니 하는 것이 상대방을 홀려서 물건을 팔아먹으려는 수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