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은 가짜 경서다
출처 : 최진규 약초학교
오래 전에 어떤 사람이 나한테 와서 물었다.
“아우?”
이 사람은 늘 나한테 아우라고 부르고 반말을 한다. 그러면 나도 꼭 같이 반말을 쓴다.
“왜?”
“천부경(天符經)이라고 하는 글이 있는데 들어봤나?”
“그런 글이 있어?”
“있지.”
“그럼 천부경(天符經)이 있으면 지부경(地符經)도 있겠네?”
“아니 지부경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천부경(天符經)은 지부경(地符經)이 없으면 쓸 데가 없는 것이다. 남자의 성기가 있으면 반드시 여자의 성기도 있어야 한다. 단추가 있으면 반드시 단춧구멍이 있어야 한다. 여자 성기가 없고 남자 성기만 있으면 그것은 혹이고 암 덩어리일 뿐이다. 둘 중에 하나만 있으면 그 어디에도 쓸 수가 없다. 천부경이 있으면 반드시 지부경이 있어야 한다.
천부경이 있으면 지부경이 있어야 옳다
천지인(天地人) 세 가지를 삼재(三在)라고 한다. 삼족정립(三足鼎立)이다. 솥발이 세 개가 있어야 솥을 바로 세울 수 있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만물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반드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담뱃갑은 담배가 있어야 존재하는 가치가 있다. 천지는 만물이 없으면 빈 껍질일 뿐이다. 만물이 없으면 하늘과 땅은 할 일이 없다. 천지(天地)는 무인(無人)이면 공곽(空郭)이다.
사람은 만물(萬物)을 대표한다. 모든 생명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열자(列子)의 천서편(天瑞篇)편에도 나와 있다. 글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글 속에 감추어진 뜻을 알아내야 한다. 열자(列子)의 천서편(天瑞篇)에 천지가 만들어질 때 청경(淸輕)한 것은 위로 올라가서 하늘이 되고 탁중(濁重)한 것은 내려가서 땅이 되었으며 그 가운데 충화기자(沖化炁者)-가운데 엉기어 기운이 꽉 찬 것은 사람이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충화기자(沖化炁子)는 초목군생(草木群生) 곧 모든 생명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모든 생명을 대표하는 존재다.
생명을 키우기 위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동방(東方) 목(木)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금수화토(金水火土)가 모두 필요한 것이다. 목은 생명이고 다른 어떤 것보다 목(木)을 키우는 것이 우선되는 일이다.
천부경이 있다면 반드시 지부경(地符經)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완벽하게 짝이 맞는 것이다.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며 중통인의(中通人義)해야 성인군자(聖人君子)라고 할 수 있다. 하늘만 통하면 건달(乾達)이다. 오직 하느님만을 찾고 하늘만을 위하는 것은 모두 건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생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땅에서 필요한 것을 얻는 사람은 언제나 땅만 쳐다보지 하늘은 보지 않는다.
하늘을 위하는 사람이 건달이다
건달(乾達)은 하늘을 위하는 것이다. 늘 상제(上帝)님을 부르는 사람들이나 하느님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은 모두 건달이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은 말만 요란하게 할 뿐이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건성(乾性), 건조(乾燥) 등 하늘 건(乾) 자가 들어 있는 말도 좋은 말이 별로 없다. 주역에 종일건건(終日乾乾)이라고 할 때의 건건(乾乾)은 종일토록 근심걱정을 한다는 뜻이다. 하늘이 무너질 것인가를 걱정하는 것이 건건(乾乾)이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보면 군데군데 이가 빠진 곳이 많다. 이를테면 십구세(十九歲)서 칠윤(七閏)두어 일월도수(日月度數) 일치(一致)거다 같은 것이다. 19년 동안에 일곱 번의 윤달을 두지 않으면 19년이 지나면 여름과 겨울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7개월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 그 이치를 알면 빠진 부분을 다 맞추어 넣을 수 있다. 원문이 전해지지 않아도 이치를 따져서 미루어 짐작하면 나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구전(口傳)으로 절반쯤만 전해져도 잃어버린 부분을 완전하게 복원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이 숨바꼭질놀이를 할 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하는 것처럼 꼭꼭 감추어져 있어도 하나의 실마리만 찾으면 모두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화두(話頭)는 말머리다. 화두를 푸는 방법이 있다. 먼저 천부경에 대해 말한 사람이 나한테 묻기를
“아우는 글을 많이 아니까 천부경(天符經)도 한 번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겠네?” 그래서 “천부경(天符經)이 몇 글자로 되어 있나?” 하고 물었더니 “81자로 되어 있지.” 라고 하였다. 9곱하기 9는 81이다. 81이란 숫자는 끝이라는 뜻이다. 81은 상극(相剋)으로 되어 있는 낙서(洛書)의 끝이다. 확산(擴散)의 끝이다. 바둑판의 눈금을 보면 가운데서 사방(四方) 끝까지 모두 아홉 칸이다.
잎이 피고 꽃이 피었다가 씨앗을 맺으면 꽃잎이 진다. 자연은 사치를 부리거나 낭비를 하지 않는다. 씨앗만 맺고 나면 잎은 모두 떨어져서 낙엽이 된다. 죽는 자들은 모두 낙엽이다. 잎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은 씨앗을 맺기 위한 것인데 씨앗을 안 맺으면 잎과 꽃이 핀 보람이 없다. 대를 이을 씨앗을 만들지 못하면 생명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죄업이 많으면 바른 인연을 만나지 못한다
죄업(罪業)이 많으면 올바른 인연줄이 안 보인다. 보인다고 하더라도 줄을 잡기가 쉽지 않다. 서울대학교에 정식으로 시험을 치지 않은 무자격자를 총장 같은 사람이 입학을 시켜 주면 정식으로 시험에 합격해서 들어 온 다른 사람들한테 질시를 받거나 찍혀서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줄을 서기도 어렵다. 하늘과 땅이 귀신 중에서도 가려내서 버릴 것은 버리는 것이다.
역경의 천풍구괘(天風姤卦)에서 강(剛)과 유(柔)가 만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한테 시집을 온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일 첫머리에 물용취녀(勿用取女)라고 하였다. 이 말은 절대로 여자하고 같이 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을 공자가 했다면 아무리 보아도 병신이 꼴값한다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주역에는 거의 모든 괘를 뒤집어 짝을 지어 놓았다. 도전괘(倒轉卦)를 나란히 둔 것이다. 이를테면 지산겸괘(地山謙卦) 다음에 뇌지예괘(雷地豫卦)를 두었다. 이것은 얼굴에다 똥구멍을 들이대는 격이다. 얼굴은 얼굴끼리, 아랫도리는 아랫도리끼리 두어 서로 마주보게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니겠는가.
죽겠네 하면 죽을 일만 생긴다
이런 당연한 이치를 아는 것이 상식이다. 상식을 벗어난 것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천부경(天符經)은 분산(分散)의 극(極)을 나타낸 글이다. 극(極)은 끝이고 죽음이다. 죽을 사람은 스스로 죽을 짓만 골라서 한다. 요즈음 말끝마다 죽겠네, 죽겠다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뻐서 죽겠네, 미워서 죽겠네, 배불러 죽겠네, 맛있어 죽겠네, 우스워 죽겠네, 속상해 죽겠네 이런 식으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모든 일에 죽겠네 라는 말을 붙인다.
이것은 자신이 스스로 앞일을 알아서 미리 말하는 것이다. 요즈음 저승사자는 무엇을 조사하고 다니는가? 죽겠네, 죽겠네 하는 사람들만 찾아다니고 있다. 죽겠네, 죽겠네 라고 소원처럼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스스로 말한 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지 않겠는가?
역경에서 성언호간(成言乎艮)이라고 했다. 간방(艮方)에서는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누구든지 말을 하면 말하는 대로 다 들어준다. 누구든지 소원을 말하면 소원을 다 들어준다. 죽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였으니 모든 행위를 판단하는 재판관은 그 사람이 한 말을 그 사람을 재판하는 근거로 삼는다. 요즈음 천신(天神)들은 죽겠네, 죽겠네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만 찾아다니고 있다.
나는 말을 배운 이래로 죽겠네 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왜 좋은 말을 두고 나쁜 말을 쓰는가? 누구든지 생각하기도 싫어하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닌가?
천부경(天符經)을 읽어 보았을 것이니 첫 부분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외어 보아라고 하였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첫 한 마디를 듣고 나서 “그만하라.” 고 했다. 그러면 “그 끝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겠네.” 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천부경(天符經)을 안 보았다더니 봤구먼.” 본 것이 아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화두(話頭)다. 무시일(無始一)이라 하였으니 끝은 무종일(無終一)이 되는 것이다. 시종일관(始終一貫)이라는 말은 아주 나쁜 말이다. 종시일관(終始一貫)이라고 해야 옳다. 끝이 있은 뒤에야 새로 시작이 있는 것이다. 시작이 먼저 오면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한래서왕(寒來暑往)은 나쁜 말이다. 한왕서래(寒往暑來)라고 해야 옳다. 나쁜 것이 가고 좋은 것이 온다고 해야 옳은 말이다. 어려서 천자문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한래서왕(寒來暑往)이라고 읽어도 나는 한왕서래(寒往暑來)라고 고집하여 읽었다. 아버지한테 매를 맞으면서도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혼이 나고 매를 맞고 위협을 해도 바꾸지 않았다.
사생결단(死生決斷)을 하겠다는 사람은 그다지 무섭지 않다. 죽일 듯 죽일 듯이 하다가 끝에 가서는 사는 것이다. 그러나 생사결단(生死決斷)하겠다는 말은 무서운 말이다. 생사결단(生死決斷)은 살아날듯 살아날 듯 하다가는 마지막에 죽는 것이다. 구사일생(九死一生)은 죽을 고비를 아홉 번을 넘겨도 마지막에 살아남는 것이므로 좋은 말이다. 그러나 구생일사(九生一死)는 아홉 번을 살아날 듯 살아날 듯 하다가 마지막에 죽는 것이므로 아주 나쁜 말이다. 살아날 고비를 아무리 많이 넘겼다 해도 마지막에 죽으면 모두 헛일이 되고 만다.
시작이 일시(一始)이면 마지막은 일종(一終)이 된다. 천부경(天符經)은 악마의 글이다.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는 글이다. 적선여경(積善餘慶)하지 못한 사람이 남긴 글이다. 그런 까닭에 그런 사람들의 자손들이 그 글을 보고 감격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아는 것이 화두(話頭)이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하나의 시작은 시작이 없는 하나이다 라고 하였으니 그 끝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하나의 끝은 끝이 없는 하나이다 로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 글이나 함부로 보아서는 안 된다.
공자는 일찍이 스스로 깨달은 것이 하나도 없다. 문언(文言)으로 전하여 오던 것을 여기저기에 꿰어 맞추어 놓았을 뿐이다.
죽겠네, 죽겠네 하는 소리를 나는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세상, 이 자리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다. 아무도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나도 세상을 풍류를 즐기면서 재미있게 놀다가 가고 싶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주역을 바로잡을 사람이 없어서 혼자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역의 모든 괘상(卦象)은 배합괘(配合卦)끼리 나란히 두어야 하는 것이지 도전괘(倒轉卦)와 나란히 두면 안 된다. 그런데 문왕(文王)은 일부러 도전괘(倒轉卦)와 짝을 짓도록 했고 공자(孔子)는 문왕이 한 것이 무조건 옳은 것으로만 여겼다.
'수련단체&요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행자들의 명약 석청과 만병초 (0) | 2019.03.02 |
---|---|
태상노군대도선경(太上老君大道仙經)_01 (0) | 2018.09.26 |
태상노군대도선경(太上老君大道仙經)_03 (0) | 2018.09.26 |
東語西話 (0) | 2017.11.15 |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0) | 2013.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