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차길진_못다한 영혼이야기_20

醉月 2011. 3. 11. 08:58

왕자의 망령(妄靈)

나는 그 동안 영혼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다. 특히 구명시식을 통해 만나 본 영혼 중에는 역사적으로 이름을 크게 떨쳤던 인물들도 많았다. 그들을 직접 만나며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좀더 체계적으로 영혼의 문제를 연구해 나가던 중 우리의 역사 문헌에도 영혼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은 역사 문헌에 나타난 망령들의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이항복은 선조 때의 명신으로서 그 벼슬이 영의정에까지 이르렀던 사람이다. 어렸을 때에는 말썽꾸러기 골목대장으로 특히 친구인 이덕형과의 장난은 ‘오성과 한음’이란 이름으로 가지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한음’이란 이덕형의 호(號)이나 이항복의 호는 ‘오성’이 아니라 ‘백사(白沙)’이다. 임진왜란 때의 공로로써 이항복은 오성 부원군이란 칭호를 받았던 것이다.
어느 날 이웃집에 사는 소녀가 슬며시 들어와 글을 읽고 있는 이항복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항복은 흘끗 쳐다보았을 뿐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혼자 글을 읽고 있는데 이웃집 소녀가 찾아 온다는 것이 괴이한 일이었으나 그런 것에 쉽게 마음이 흔들릴 이항복은 아니었다.
그 후 비가 몹시 쏟아지는 날 이웃집 소녀는 다시 찾아왔다. 비를 흠뻑 맞고 와서 역시 글을 읽는 이항복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예삿일이 아니라고 느낀 이항복은 찬찬히 소녀의 차림새를 살펴보았으나 별로 수상한 흔적은 없었다.
“누군고?”
“예, 소녀는 이웃에 사는 무당이옵니다.”
이항복이 묻자 기다렸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그래? 그런데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가?”
“예, 사실은 망령이 소녀에게 씌워졌사온데 그 망령이 도련님을 뵈옵고자 하옵니다.”
“허허, 그래?”
뜻밖의 말이었으나 이항복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든 망령이든 심심하던 차에 잘되었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그 망령이 여기에 와 있는가?”
“아니옵니다.”
“그러면 너는 돌아가서 그 망령을 데리고 오너라.”
“예.”
무당이라는 소녀는 허리를 굽히고 돌아갔다.
쏟아지던 비는 밤이 되자 뜸하여졌으나 바람은 여전히 불었다. 검은 구름장 사이로 간간이 달빛이 비치기도 하였다.
무당이라는 소녀가 다시 와서 은근히 불렀다.
“모시고 왔습니다.”
“오냐.”
이항복은 태연히 대답하고 미닫이를 열고 내다보았다. 무당이라는 소녀 뒤쪽에 한 젊은이가 서 있었다.
얼굴은 옥같이 희고 눈썹은 검고 뚜렷하였으며, 남색 도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망령이라고 하더라도 필시 귀한 사람의 넋일 거라고 짐작이 되었다.
이항복은 급히 일어나 두루마기를 입고 뜰로 내려가서 공손히 맞았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은 서로 다른 것이거늘 어찌하여 나를 만나보고자 하시오?”
“나는 왕자 복성군(福成君)이오.”
망령은 설움이 복받치는 듯 흐느끼며 대답하였다. 복성군이라면 중종의 왕자로서 경빈 박씨의 소생이었다.

중종 이십이 년에 세자(世子)방 근처에서 흉한 물건이 발견된 일이 있었다. 즉, 쥐를 죽여 네 다리를 자르고 눈을 불에 지진 것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세자를 죽이고자 저주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대궐 안은 발칵 뒤집혔었다.
쉽게 범인이 잡히지 않았고, 경빈 박씨가 범인이라는 의심을 받아 경빈 박씨와 복성군은 대궐에서 내쫓겨 서인이 되었고, 드디어는 죽음을 당하기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그 후에 이 사건의 범인은 김안로의 아들 김희의 음모라는 게 알려졌다.
“하온데……?”
이항복은 상대가 왕자 복성군의 망령이라는 말을 듣고 더욱 공손한 태도를 취하며 말하였다.
“원통하게도 근거없는 죄로 죽게 되어 저 세상에서도 한이 맺혀있었소이다. 그래 누구에게 나에 대한 자세한 경위를 물어볼까 하였으나 모두 약하여 능히 나를 만나볼 수 있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났던 것이오. 그러나 그대는 비록 아직 나이 어리나 기백이 대단하고 또한 그 말에 신의가 있음을 아는 터라 저 무당을 중간에 놓고 이렇게 나타난 것이요.”
“두 분이 억울한 누명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터이온데 어찌 아직도 못 들으셨던가요?”
이항복은 공손히 대답하였다.
“물론 나는 내게 바쳐지는 제사로서 내게 죄가 없다는 것은 들었소이다. 그러나 내가 듣고자 하는 것은 세상에 떠도는 공론이 어떠한가를 알고 싶은 것이오.”
“그 일이라면 이러합니다.”
이항복은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죄없이 죽은 경빈 박씨나 복성군을 애통하게 생각하고 있나를 서서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복성군의 망령은 이항복의 설명을 듣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대는 신의 있는 사람이니 거짓은 아닐 것이로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아홉 번을 죽는다 하더라도 한은 없소이다.”
망령이 자기의 원통하게 죽은 일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나타났다는 것을 알자, 이항복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복성군의 망령은 무당 소녀를 돌아보았다.
“그 가지고 온 것을 드려라.”
“예.”
무당 소녀는 들고 온 쟁반을 이항복에게 내밀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과일이 담겨져 있었다. 이항복은 영문을 몰라서 복성군의 망령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변변치 못하나 내가 드리는 것이니 사양 말고 받으시오. 속이 후련해진 값이라면 너무 사소하나 사양 말고 받으시오.”
“예.”
이항복은 더 사양하지 않고 과일이 담긴 쟁반을 받았다. 그제서야 복성군의 망령은 빙긋이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또다시 무당 소녀에게 말하였다.
“자, 우리는 가자.”
복성군의 망령은 무당 소녀를 앞세우고 돌아갔다.

그제서야 이항복은 문득 황공한 생각이 들었다. 비록 망령이라고는 하지만 왕자의 몸으로 이런 누추한 곳으로 자기를 찾아 주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요 앞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이항복은 허둥지둥 따라 나갔다. 복성군의 망령은 몇 발자국 가더니 스르르 그 자태가 사라져 버렸다. 무당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제 집으로 갔다.
비 온 뒤라 땅은 촉촉이 젖어 있었고 찬 바람이 불었으며, 검은 구름이 희미하게 비치던 달빛을 가려 버렸다.
이항복은 한동안 서 있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방금 겪은 일이 꼭 꿈속의 일같이만 여겨졌다. 그러나 엄연히 과일이 담긴 쟁반은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이라도 하는 양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후로 이웃에 산다던 무당 소녀는 다시는 이항복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복성군의 망령을 보았다는 사람도 없었다.
“허허……. 허망한 노릇이다!”
이항복은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쉽게 믿지 않을 것이요, 또 자신조차도 그 일이 맹랑하게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은 이항복이 늙은 뒤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을 때, 심심풀이로 이야기하였기에 『독좌 견문 일기』가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죽음을 면하게 해준 무당

유의(柳誼)라는 사람이 암행어사가 되어서 경상도 지방으로 떠났다.
그는 아무에게도 눈치 채이지 않게 허름한 차림을 하고서 두루 염탐을 하며 돌아다녔다. 유의는 진주가 가까워짐에 따라 하나의 소식을 얻어듣게 되었다. 그것은 진주에서 좌수 자리에 있는 자가 간흉하고 혹독하여 행패가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허, 그자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지.”
“말해서 뭐하나……”
농민들은 둘러앉으면 이런 말들을 하였고 유의도 듣게 되었다.
“그게 누구요?”
유의는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물어 보았다.
“좌수라나 뭐라나……. 아주 죽일 놈이오.”
“허허……. 그래요?”
좌수라는 자가 얼마나 혹독한 방법으로 농민의 피를 뽑고 있느냐는 따위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흠, 죽일 놈이로군.”
유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이런 일을 다스리고 바로잡는 것이 자기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진주에 출두하면 그 놈을 당장 잡아서 박살을 내야겠다.”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새기며 진주를 향해서 가는데 십여 리를 남겨 놓고 해가 저물었다.

적당한 곳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 일찌감치 진주로 들어가기로 작정하고서 유의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대가(大家)로 보이는 집이 있어서 유의는 주인을 찾았다.
“이리 오너라.”
두어 번 부르자 대문이 열리고 열서너 살 되어 보이는 소년이 나와서 맞아 주었다.
“누구십니까?”
“주인 어른 계시오?”
유의는 워낙 자신이 초라하게 차린 터요, 또 보아하니 소년이 양반집 자제인 듯하여 공대하는 말투로 물었다.
“아버님께서는 진주성 안에 들어가시고 지금 안 계십니다만.”
“허허, 지나가는 나그네가 하룻밤 묵고 갈까 하였더니 낭패로다.”
“그러십니까? 어서 들어오십시오. 변변치는 않습니다만 주무실 곳과 잡수실 것은 드릴 수 있습니다.”
소년은 상냥하게 안으로 청하였다. 그 태도가 의젓하고 인정있어 보여서 유의는 대견하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사랑채는 넓고 깨끗하였다. 소년은 세숫물을 손수 떠오며 대접이 깍듯하였다. 조촐한 저녁상이 나왔을 때에도 소년은 옆에 앉아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음식이 입에 맞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허, 지나는 나그네의 주린 창자가 뭣인들 마다하겠소.”
나이가 워낙 차이가 있었으나 소년의 높은 기풍을 어여삐 여겨 유의는 계속 존대 말씨를 썼다.
“말씀 낮추십시오. 저는 아직 어린 아이입니다.”
소년은 유의가 저녁을 든 뒤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로 말벗을 하고서야 제 방으로 물러갔다. 유의는 누워서 생각해도 소년의 영리함이 마음에 들었다.
“허, 저런 자식을 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유의는 피곤하여 잠이 들었다가 소란한 소리에 눈이 떠졌다. 이미 밤은 깊었는데 마당에서는 둥둥 북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 일어나 미닫이를 열고 내다보니 마당에는 큰 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상에는 갖가지 음식이 마련되었고 촛불이 켜져 있었으며, 무당이 굿을 하고 있었다. 아까의 그 소년은 연방 두 손을 모아 정성으로 큰 절을 하는 것이었다.
“허, 알 수 없는 노릇이로군…….”
유의는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윽고 소년을 불렀다.
“이 무슨 일이오?”
“주무시는데 소란하게 하여 죄송합니다. 허나 좀 사정이 있어서…….”
“관계치 않으면 그 사정을 좀 들읍시다.”
“예, 집의 가친에게 관재(官災)수가 있다고 무당이 말하였삽고, 또 꼭 오늘 굿을 하여야 그 관재수를 면할 수 있다고 하기에 이렇게 일을 벌린 것입니다.”
“허허, 그럼 춘부장 어른이 오셨소?”
소년은 얼굴빛을 흐리었다.
“아닙니다. 언제나 진주성 안에 계시고 이곳에는 별로 오시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일은 제가 혼자서 마련하였습니다.”
“흠.”
“이런 말씀 드리기는 부끄러운 일이오나 집의 가친께서는 여러 백성들에게서 원한을 많이 사고 계시는 터입니다. 그러지 마시라고 여쭈어도 소용이 없으니 이는 제가 불효한 까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답답한 터에 무당의 말을 따라 이렇게 굿을 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유의는 소년의 영리함과 그 효성에 놀라 혀를 찼다.
“허, 그런데 이 댁 주인 어른은 무슨 벼슬을 하시오?”
“좌수입니다.”
“허!”
유의는 너무나 놀라워 가슴이 뛰었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좌수라면 자신이 진주에 출두하는 날 때려 죽이려고 벼르던 자가 아닌가. 그런 몹쓸 죄인에게 이런 효성스럽고 인자한 아들이 있다니 놀랍기만 하였다.
“그런 연유이오니 소란스럽더라도 널리 용서하십시오.”
소년은 다시 상을 차려 놓고 굿하는 마당으로 내려갔고, 유의는 이 생각 저 생각에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튿날 유의는 소년에게 좋은 대접을 받은 치사(致謝)를 하고서 진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으로 들어가 알아본 결과 역시 이제까지 들은 소문과 같이 좌수라는 자는 용납할 수 없는 죄인이었다.
유의는 어사 출두를 하고서 동헌에 좌정하고 앉아 좌수를 잡아들이게 하였다.
“이놈! 네가 네 죄를 아느냐?”
“예…….”
좌수는 결박되어서 벌벌 떨기만 하였다.
“간악한 짓으로 죄없는 백성을 괴롭히고 농간을 부린 것은 죽여 마땅하다. 나 또한 출두하는 날에는 필히 너를 때려 죽여 그 죄를 다스리려고 하였었다.”
“…….”
“그러나, 어젯밤에 뜻하지 않게 네 집에 묵게 되어 네 자식을 보았다. 네게는 실로 과분한 자식이었다. 영리하고 효성스러움이 갸륵하니 그런 자식을 어제 대하고 오늘 너를 죽이는 것은 인정이 아니기에 너를 참하는 것만은 용서하리라. 이자를 엄히 다스려서 멀리 내쫓도록 하라!”
목숨만은 부지하게 되자 좌수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넓으신 처분 황공하옵니다.”
유의는 임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몇 번이고 혼자 중얼거렸다.
“허, 그 무당이 참 용하게 점을 쳤거든……. 그날 내가 그 집에 묵으리라고 어떻게 알았을까?”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서 그 무당은 신무(신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무당의 집 문 앞은 저자를 이루도록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죽은 목숨도 살릴 수 있다면서……?”
“암, 그저 무엇이든 귀신같이 알아낸다니까…….”
비단 좌수의 아들에게 굿하라고 권한 것만이 아니라, 그 무당은 신통함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욕심 많은 무당

서울 장안 창방(蒼坊)이라는 곳에 한 무당이 있었다.
다른 무당과는 달라서 이 무당에게는 영특한 신이 씌워있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 무당에게 씌워 있는 귀신은 언제나 무당 옆을 떠나지 않았고, 공중에서 똑똑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심쩍은 게 있어서 물어보면 틀림없이 가르쳐 주었고, 병이 든 자에게는 나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그러기에 용하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다.
“창방에 가봤나?”
“암, 용하기 짝이 없더군.”
이러한 소문이 점점 퍼지자 무당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즉, 돈을 긁어 모으기에 여념이 없어서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번에 평안도까지 다녀오라는 아버님의 분부를 받았는데 무사하게 다녀올 수 있을까요?”
“암, 무사하게 다녀오지.”
무당은 귀신의 말을 들어 앞일을 내다볼 수 있었기에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데 아버님은 어째서 저더러 다녀오라고 하시는 걸까요? 형님이 두 분이나 계신데요…….”
“허, 거기에는 까닭이 있지. 두 형을 다 귀여워하는 터라, 이러한 먼 길을 떠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대에게 다녀오라는 거지.”
이 말을 들은 사람은 크게 아버지를 원망하였다. 이후로는 부자간에 정이 뜨악해지고 집안에 냉랭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저희 집 주인께서는 이번에 저더러 추수해 들이는 것을 보라는데요. 크게 꾸지람이나 안 들을는지요?”
“여러 종들 중에서 특히 너를 보내니 무척 기쁘겠지?”
“암요. 그래서 혹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고 이렇게 물으러 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조금도 좋아할 게 없어.”
“왜요?”
무당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입가에 웃음을 띠더니 말을 이었다.
“주인은 너의 계집에게 욕심을 품고 있단 말야.”
“예?”
“그래서 그 더러운 욕심을 채우고자 기회를 만들려는 것에 지나지 않아. 다녀와 보라니까. 네 계집은 벌써 주인에게 욕본 뒷일 테니…….”

아무튼 잘 맞히기도 하였거니와 이런 따위로 이간질도 많이 하였다. 부자·부부·노주(奴主)간에 이 무당으로 인하여 반목하게 되는 일이 수두룩하게 생겼다.
이렇게 되니 소문도 자자하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으나 한편 원한을 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공연한 소리를 지껄여서 집안에 풍파를 일으켰지.”
“어쩌자고 함부로 떠드는 거야?”

이런 판에 하루는 대갓집 하인인 듯한 차림의 사나이가 찾아왔다. 무당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혀 보이고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모시러 왔습니다.”
“허, 누구기에?”
무당은 거드름을 피우며 가슴을 쑥 내밀었다.
“다름이 아니오라, 홍인문 안에 있는 김 대갑 댁에서 왔습니다.”
“그래?”
김 대감이라는 말에 무당은 귀가 솔깃하였다.
“집안에 급작스러운 환자가 생겼는데 아무런 방법도 없군요. 무슨 약도 듣지 않고 워낙 급하기는 하고요.”
“그럼 내게 와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이렇게 뵈러 온 것이 아닙니까? 대감께서 곧 모시고 오라는 분부가 있어서 이렇게 왔습죠.”
여기까지 찾아오기가 싫고 남의 눈을 꺼리는 대갓 집에서는 하인을 시켜서 무당을 데려가는 것이 예사였다.
그러면 으레 듬뿍 후한 보수를 받는 것이 보통이어서 이번에도 무당은 저절로 신바람이 났다.
“밖에는 날랜 말을 한 필 대령하였습니다.”
“암, 그래야지.”
“그러니 어서 가십시오. 워낙 급한 일이라서요.”
“두둑히 주시기는 하시겠지.”
“암요.”
무당은 그제서야 하인을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과연 거기에는 말이 한 필 대령하고 있었다. 안장이 눈이 부시게 사치스러운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만저만한 대갓 집이 아니라는 게 짐작되었다.
“어서 타십시오.”
무당이 말에 오르니 하인은 말고삐를 잡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해가 저물어도 무당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 무당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기에 모두들 궁금히 여겼다.
“어찌 된 일일까? 어디에 청을 받고 가더라도 다음날까지 돌아오지 않는 일은 없었는데.”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았을까?”
“허허, 모르는 소리. 앞에 닥쳐올 일까지 환하게 내다보는 사람이 무슨 실수가 있을라구.”

그러는 와중에 기묘한 소문이 돌았다.
성 밖 남쪽 먼 곳에서 무당을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로 거기까지 갔담!”
모두 곧이듣지 않았으나 여러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수상쩍었다. 그러다가 또 새로운 소문이 퍼졌다.
즉, 무당은 누구에겐가 죽음을 당하여서 개울에 버려져 있더라는 것이었다. 모든 일을 척척 알아맞히고 앞일까지 훤히 알고 있던 사람이 엉뚱한 데서 죽어 넘어졌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가서 보고 왔다는 사람까지 생겼으니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허, 사람의 일은 도대체 알 수 없군. 그렇게 용하던 사람이 자신의 죽음은 몰랐다니 알 수 없어. 인명은 재천이라더니 과연 사람의 명은 하늘에 있나 보군.”
이렇게 탄식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무당에 씌웠던 귀신이 다른 데로 떠나가 버린 게지. 그렇지 않고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라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든 이 무당이 죽은 뒤로는 그렇게 떠들썩하고 소문이 자자하던 것도 점차 가라앉았다.
그러던 터에 이번에는 엉뚱한 곳에 있는 무당에게 그 귀신이 씌워졌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였다.
“바로 창방에 있던 무당에 씌웠던 귀신이라던데…….”
“그래?”
모두들 기이하게 여겨 우르르 그리로 몰려갔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무당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어……. 하나 여쭈어 보겠습니다.”
“뭔데?”
“신령님은 전에 창방에 있던 무당에게 씌웠던 바로 그 어른이십니까?”
“그렇지.”
이 말에 거기에 앉아 잇던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이 무참히 죽음을 당한 것을 아십니까?”
“알지!”
“앞질러 미리 아셨더랬습니까?”
“암!”
“그러면 어째서 미리 일러주어서 그런 꼴을 당하지 않게 해주지 않으셨습니까?”
“허허, 모르는 소리, 그 무당은 재물에 너무 눈이 어두워서 남을 이간질하여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라네. 그러니 나 같은 귀신이 어떻게 하늘이 내리는 벌에서 그 무당을 구하겠는가?”
모두들 창방 무당의 행실을 잘 아는 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몽고와 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쓰려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논증이나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그러한 능력도 없고 또 그런 확신에 찬 말을 해서 나중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심각한 상태가 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영혼의 세계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단편적으로 느꼈던 것을 적고자 할 따름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부언할 것은 내가 쉽게 표현하고 쉽게 한 말일지라도 어느 한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공부하는 영혼의 세계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이 있다. 이것은 영혼과의 대화중에 내가 배운 것이기도 하다.
“20세기 미국은 샌프란시스코가 개항하고부터 세계의 종주국로 부상하였다. 21세기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때 우리의 38°선은 몽고의 38°선으로 지각이 변동할 것이다.”
지난 80년대 말부터 사람들이 중국에 많이 가고 있다.
물론 중국과 국교를 맺으면서 90년대 초부터는 관광객뿐 아니라 기업의 직원들,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사이에서 뭔가 한 건 잡아보려는 사람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많은 수가 중국에 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든 저렇게 가든 중국을 가는 한국인에게는 공통적인 마음이 있을 것이다.
바로 민족의 성지인 백두산을 오르고 싶어하는 것과, 과거 독립을 위해 일본군과 싸웠던 선열들의 발자취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어느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새 중국의 북동부 지역, 과거 우리의 선열들이 고귀한 생명을 바쳐 독립 운동을 하던 여러 지역에는 많은 한국 관광객이 붐비고 있다고 한다.
백두산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을 가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실제 중국의 명승지를 찾기보다는 백두산을 찾기를 원하고 있단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민족의 성지를 방문하는 일은 아마도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산에 오르는 그것만으로도 종교행위가 되고, 그것이 순례의 형식을 띈다면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번씩은 백두산을 방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요새 이러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백두산, 만주 지역 순례 러시를 중국 정부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한 마디로 말해 만주 용정시에 가서 윤동주 시인의 유물·유적을 붙들고 우는 사람들, 그리고 백두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옛날에 우리의 선조들이 문화를 이루고 나라를 이루며 살았던 땅’이라고 감격해 하는 모습은 실로 중국인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등에 식은땀이 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한줄기 해란강은 흘러흘러 갔지만…….’이라는 <선구자> 노래까지 감격해서 부르기까지 하면 그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것은 지금은 중국의 땅이지만 과거 이 일대는 우리나라의 땅이었다는 것이었고, 그리고 앞으로 어느 시기에 가서는 우리나라의 국토가 된다는 이야기로, 또는 그 결심으로 그들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이 백두산과 만주 지역에 대해 ‘우리 땅’이라는 막연한 무의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에 겁이 난 중국 당국은 최근 들어 만주 지역을 방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백두산에 오르려는 한국인 순례자들도 예전에 없었던 통제 비슷한 조치를 받게 됐다.(북한에서 탈출하는 북한사람들이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도움으로 중국을 벗어나는 사건이 생기면서 이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이야기도 있음)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그렇다고는 해도 표현을 안 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눈물 흘리고 노래 부르는 것은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좁은 한반도의 한구석에서 아등바등 살고 잇다는 것이 어떤 콤플렉스를 가지게 한 것은 아닐까.
그것은 바로 땅덩어리 콤플렉스라고 이름 지을 수 있겠다.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좁은 땅 덩어리마저도 가진 사람들만 왕창 많이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은 아예 손바닥만한 땅 한 덩어리도 못 가진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이러한 현실에 대해 별 감각이 없다. 자본주의의 속성상 이것은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이러한 불균형이 생존경쟁을 촉발시켜 나라를 살찌게 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구의 절반이 몸 눕힐 자기 집 한 채가 없는데 세계화가 무슨 말이고 국민 총화가 웬말인가 싶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 아이디어 인지 모르지만 수년 전부터는 한반도의 모습을 담은 위성사진이 괴상망측하게 나오고 있다.
사진을 제주도 위에서 찍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한반도의 밑부분만 나오고 중부 지방부터 북부 지방은 손톱만하게 나오거나 아니면 안 보이는 사기성 한반도 사진도 버젓이 신문 잡지에 나오고 있다.
그 사진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남한 땅덩어리가 국토이고 북한은 상관없는 땅이니까 우리는 여기서 잘살겠다는 굳센 의지(?)를 표현한 것이리라.
결국 땅을 많이 가진 사람들, 그리고 땅을 적게 가진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땅 문제, 아니 기본적인 주택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하는 양반들, 이제 남한 땅에서만 잘 살자는 머리 좋은 양반들, 이러한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땅 콤플렉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만주 땅에 가서 우는 사람들, 그러한 모습은 사실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바로 땅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참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땅의 협소함에서 오는 콤플렉스와 만주에 가서 비석 붙들고 우는 과거 희구형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이디어는 바로 지금 우리나라가 몽고와 합쳐서 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은 바로 잠실의 삼전동이다. 원래 이 삼전동은 삼전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삼전도는 지난 조선 시대에 청나라의 침입이 있었을 때 인조가 베옷을 입고 청나라 군대에 항복을 했던 장소이다.
인조가 항복하는 장면을 역사는 비참과 모멸의 극치로 적고 있다. 동북 아시아의 강국이었던 나라의 왕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그 위에 대고 청나라의 병사들은 침을 뱉었다. 이민족에 의해 더럽혀진 그 치욕의 장소가 바로 이 삼전도 였던 것이다.
또한 이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고려는 몽고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그 후 98년간, 강화도 항쟁기간가지를 합쳐 전부 156년간 지배를 받게 된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를 이제는 다시 환원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피의 복수가 아닌 공존 공영의 새로운 화합과 통일의 시대를 열 때가 된 것이다.
지난 ‘88년 바로 이곳 삼전동과 접한 잠실벌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이민족에 의해 더럽혀진 굴욕의 땅이 영광의 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몽고와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에게는 과거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 역사의 주인공인 몽고, 그 몽고의 후손들과 하나가 되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바로 지난 ‘88년 올림픽은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를 지닌 8자가 두 개나 붙어 있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더욱이 몽고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해라는 의미도 있다.
일제 36년의 역사로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넓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일제가 침략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더욱 발전했으며 국가적인 치욕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을 돌보지 않는 왕조나 지배 계급, 그리고 정권을 쥔자들의 어두움이 침략이라는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어느 누가 말한 ‘역사의 책임은 민족 자신에게 있다’는 말에 100% 공감한다.
몽고의 고려 지배도 마찬가지이다. 몽고의 강성과 침략에 대한 준비를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것은 결국 지배 계층의 책임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우리 민족 전체의 책임인 것이다.

방향을 바꿔서 생각해 볼 때, 몽고 지배 약 2백년간 우리의 문화는 철저히 몽고와 하나가 됐다.
원래 기마와 단궁이라는 군사 과학으로서 병참 지원 부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 몽고군은 현지에서 적극적으로 종족을 번식하는 전략을 가졌었다. 이로 인해 실제로 몽고인과 우리나라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차이가 없는 민족이 되고 말았다.
인종학적으로 우랄 알타이족에 속하고 장두족으로서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으나, 몽고인과 우리가 하나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지난 2백 년 동안 한 나라가 되어 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시집갈 때 각시가 장식하는 족두리에서부터 우리의 음식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된장 문화, 그리고 색동저고리 등에 이르기까지 몽고와 한국은 사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문화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조선이 통치 철학으로서 유교를 받아들이고 중국을 아버지의 나라라고 믿었지만 실제 중국 사람들과 우리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한국과 일본과 몽고, 그리고 중앙아시아, 항가리와 핀란드까지 이어지는 알타이 민족의 핏줄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몽고는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22배나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50만이라는 적은 인구만이 그 광활한 영토 위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몽고인들은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보다 실제로 우리를 자신들의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친근감도 훨씬 더 느끼고 있다. 그리고 몽고에는 반도체의 원료가 되는 귀중한 광석이 무한정으로 널려 있으며 호수에 들어가면 물고기를 손으로 건질 수 있을 정도로 무한정한 수산 자원도 있다(몽고인들은 물고기가 용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지 않음).
그러나 이러한 자원과 영토를 가지고 있는 몽고는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자동차도 필요하고, 주택도 필요하고, 그리고 도로나 공장도 필요하다.
몽고와 우리나라는 마음도 하나지만 서로 필요로 하는 것도 보완할 수 있는 것들이다. 몽고는 우리와 한 국가가 됨으로써 생활 향상과 함께 새로운 국가의 명운을 열 수 있고 우리는 도리어 선인들이 꿈꾸던 천년 왕국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징기스칸의 무덤을 찾아준다는 미명 아래 몽고 개발을 준비해 왔다.
국가적인 주도로 조사를 실시해 이를 공용화하여 기업들에게 줌으로써 몽고 진출이 용이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일본이 만주와 중국에 진출하기 전 일본군 참모부 주도로 만주 지역을 조사하고 광개토대왕비의 주요 구문을 일본에 이롭게 고쳐 버린 것과도 유사한 것이다. 일본은 그만큼 정보의 중요성과 자료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선진국이기 때문이다(비겁함이 먼저임).
그러나 실제로 몽고 국민들이 전적인 친화감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지금 남의 뒷다리만 긁고 있는 입장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바로 몽고와 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한의 통일도 자연히 되고 그리고 21세기 세계 5대 강대국으로서 고려(Korea)라는 나라도 자연히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몽고와의 공식, 비공식 접촉을 증가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는 몽고의 사회 간접 자본 시설 등을 지원하는 동시에 몽고는 우리에게 모든 특별한 혜택을 주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몽고에 사원 연수원을 세우고 골프 코스와 관광지도 개발할 수 있다. 정부는 몽고의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고 그리고 몽고의 관리들과의 교류를 확대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양국간의 교류가 무르익었을 때 양국 정부는 고려국 건국 위원회를 결성하고 여기서 새로운 민주 헌법과 체제 형태를 정한 후 이를 발표한다.
이후 우리나라와 몽고는 하나의 국가로서 국제 사회에 참여하며 우리나라와 몽고의 각 지역간, 계층간에는 철저히 평등한 대우를 받게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망국병인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도 없어질 것이다.
21세기는 지축이 변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지축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 아시아가 될 것이다. 그곳은 춥고 자원이 그렇게 많지 않은 곳이다. 여기에 기술과 자본, 그리고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몽고와의 합중국을 성사시킬 때 우리의 운명, 고려인들의 운명은 완전히 질적인 변화를 가지게 되며 비로소 세계를 주도하는 선민으로서의 입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운명이 기적처럼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도 시간이 걸리는 것이며 그 기적을 이루기 위해 걸리는 시간을 8천만 고려인들과 몽고인들이 슬기롭게 미래를 보면서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집에서도 구명시식을 할 수 있다.

구명시식은 결코 경이로운 의식만은 아니다.
어느 누구나 돌아가신 분들의 유지를 받들고 그 분들의 뜻에 따라 살려고 한다면, 그러한 경우에는 이미 구명시식이라는 의식을 거치지 않고서도 그 효과를 본 셈이다.
결국 구명시식은 하나의 의식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구명시식을 하는 분들의 마음, 또는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최근 들어 내가 가진 구명시식의 가치와 의의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그리고 구명시식을 결코 영능력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 가정에서 모두 조상의 사진, 특히 부모님의 사진이나 위패를 모시고 간단한 명상과 기도의 형식으로 일반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와 같이 영적인 세계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만 구명시식을 한다면 그 동안 역사를 살다 갔던 수많은 영혼들의 구명시식은 과연 누가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결국 이것은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자신들에게 생명을 준 부모나 조상들의 구명시식을 일정한 의식을 거쳐 거행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영혼의 세계는 깊이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영혼의 세계는 지극히 정의로운 세계이다. 악한 인연과 선한 인연의 결과가 반드시 나타나며, 인간의 지각을 속일 수 있는 거짓말과 위선이 그대로 드러나고야 마는 투명한 세계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바로 영혼의 세계가 가진 가치와 의미를 바탕으로 이를 부모에 대한 효와 조상에 대한 예배로 연결시킨다면, 일반인들의 가정이 가장 중요한 종교적인 장소가 되고 사실 현재 늘어나고 있는 사원이나 교회가 별로 필요없는 시대가 되리라는 것이다.

역사상 모든 종교는 가정을 버리고 밖으로만 향했다.
개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나아가 조직과 사회,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 잘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자 가정 밖으로 향해 걸어 나갔다.
종교인, 아니 정확히 말하면 종교의 교주라고 하는(역사의 4대 성인들도 교주라고 할 수 있음) 인간 생명의 프로그래머들에게서 대답을 찾고자 했다.
그들이 말하는 인간 생명의 기원, 발생, 발전, 가치, 작용, 관계, 소명, 영향 그리고 사후의 세계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신의 일생에 대입하는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종교는 바로 그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인간 생명의 프로그램 상품의 하나이다.
결국 개인의 생명에 관한 문제를, 가정의 문제를 타인이 만들어낸 생명의 프로그램에 맞춰서 해결하려고 시도해 온 것이 인류의 종교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의 종교는 조직과 이념보다 자신과 가정, 그리고 적선(積善)과 적덕(積德)이라는 상식의 종교로 환원되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몰입하여 그러한 종교를 통해 자신과 조직 그리고 국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류가 일으킨 피 흘리는 전쟁의 대부분은 종교로 인한 것이고, 이러한 종교에 의한 편견은 현대에 와서까지도 인류에게 큰 재앙이 되고 있다.
또 일부 종교 집단은 ‘인생과 세계는 이런 것이다’라는 종교 프로그램을 팔아 세상사에 지친 선한 사람들을 혹세무민하여 돈벌이에 급급하고 있다. 또한 때로는 종교가 정부 권력에 도전해 정치적 권력을 차지하려는 망상까지 갖게 한다.
국가간의 분쟁에서도 종교가 문제이다.
미국이 이라크나 이란, 그리고 리비아 등의 중동 국가들을 두들기는 것은 그들의 종교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태인들이 미국의 정부를 조종해 미국이라는 나라와 회교국간의 분쟁을 조작해 내기 때문이다.
종교가 종교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또 교단 내에 교주를 둘러싼 특정 계급들의 배만을 채우게 될 때 그 종교는 반드시 악의 집단이 된다. 민주주의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역전 앞의 양아치 집단이 되고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교주는 폭군이나 정신병자 또는 앵벌이들에게 지시해 돈벌이를 시키고 이를 갈취하는 양아치 두목밖에 안된다.
이러한 비정한 현실은 어떤 특정한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현대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많은 종교들이 이렇게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솔직히 불교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나라의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종교들이 소위성직자들이나 사제들이 가진 편견 때문에 쌈박질하고 세력 다툼을 하고 종교를 팔아 돈벌이하는 것을 볼 때 ‘왜 저렇게 살아야 하나’하고 그저 멍하게 쳐다 보고만 있을 때가 많다.
이러한 조직의 종교, 집단의 종교, 소대장이 나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는 종교는 이제 종교의 가장 중요한 기본 요소인 개인 각자, 그리고 가장 핵심 단위인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종교로 바뀌어야 한다.
천국 들어갈 때, 깨달음을 얻을 때, 바로 중요한 것은 ‘나’라는 기본 단위가 갖는 ‘정신의 질’인 것이며 죽어서 영혼이 된 후, 현상계로부터 자신의 영적 성장을 도모하게끔 도와주는 것은 바로 자신의 가족과 후손들인 것이다.
이제 종교는 장사를 그만하고 각자의 가정으로 그 바탕을 돌리고 노력과 이윤을 돌려야 할 때가 되었다.
가정을 중심으로 한 종교는 간단하다. 지극히 간단한 상식을 바탕으로 한다.
바로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존경하는 것과 같이 부모님과 나의 이웃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내 형제 자매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길은 쌀을 퍼다 주고 기부하는 일뿐만이 아니다(정확한 목적과 동기 그리고 절제되지 못한 기부 행위는 선한 인연을 맺는 방법으로 적당하지 않다).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효과적인 것은(강조를 여러 번 하자면) 바로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정직하게 그 분야의 귀신이 될 만큼 열심히 일해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모든 개인이 직업에 충실할 때 세상은 자연히 서로서로를 도와주면서 발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 또한 효과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은 지극히 쉬운 일이다.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안 보고 방망이를 휘두르는데 틀렸는지 맞았는지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천지신명의 위대함을 우리 인간들에게 전해 주었던 4대 성현들이 우리와 같은 범인들에게 가르친 바는 바로 무엇이었겠는가.
바로 살아 있는 자들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역사의 여명기에 오셔서 인간을 가르치고 가신 성현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간단한 상식을 말씀하고 가셨다.
수많은 경전과 해설서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살아 있는 자들의 생명이고 그 생명의 조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상식,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현재까지 구명시식을 하면서 느낀 바는 바로 영혼의 세계도 반드시 인연을 따라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인연의 법칙은 물론 핏줄이라는 몸도 중요한 것이며 또한 타계한 사람의 얼을 되새기는 정신적인 인연도 중요하다.

구명시식의 교훈

구명시식을 통해 받은 교훈과 가르침을 간단하게 적고자 한다.
첫째, 구명시식을 하면서 수많은 영혼을 만나본 결과 두 가지 중요한 점이 있었다.
하나는 영혼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은 육체적인 핏줄을 통해 행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영혼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가장 쉽게 그 영혼의 힘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현상계와 영혼의 세계와의 사이에 조건이 맞아야 하며, 조상과 부모를 전혀 모시지 않을 경우 그 영향력은 전혀 감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조상들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영력의 유무에 따라 현재 살고 있는 자손들에게 좋지 않은 힘으로 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좋은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나머지 하나는 영혼 세계의 보이지 않는 힘은 핏줄이 아닌 정신이 같은 파장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몸을 통한 것이 아닌 ‘얼(spirit)'을 통해 힘이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인의 삶을 되새기는 사람들이나 역사적 인물들의 뒤를 쫓아 의(義)를 세우는 사람들에게 이러하나 영계의 힘은 행사될 수 있다.
역사와 조국과 인류를 위해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인과 열사들의 영력이 작용하여 그들을 도와주게 된다.
구명시식은 바로 이러한 선인, 조상, 부모들의 영혼이 우리 현상계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의식이다.
그러나 물론 영계의 이러한 작용력은 결코 조건이 맞지 않는다거나 사이클이 다르고 인연이 닿지 않으면 전혀 소통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다 큰 눈으로 생명의 실상을 보는 것이다.
나 자신의 생명은 긴 핏줄들의 연속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부모와 조상에 대한 예의와 그들에 대한 경배는 인지상정, 천하의 근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구명시식을 통해 얻은 영혼세계의 가르침으로 일반 사람들이 조상들의 선한 영력, 또는 위인과 열사들의 선한 영력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적으면 다음과 같다.

선조들의 영력과 위인들의 음우(陰佑)를 받고, 그리고 선한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대체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세 가지 방향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인간(人間) 본연 3대 주업(主業)이라고 이름 짓는다.
우선 미래를 향한 것으로 그 분들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해야 한다.
가능하면 집의 방 안에 자신의 부모,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진 등을 모시고 매일 아침 또는 저녁에 묵상을 하는 것도 좋다.
불자인 경우는 합장과 경문을 읽어도 되며 기독교도일 경우에는 기도와 성경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종교이든 인간의 선한 삶과 적덕을 가르치기에 성인들이 남긴 경전을 읽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부모나 조상들이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었을 때는 그 종교의 의식을 따르는 것이 좋다.
특히 부모, 조상의 종교와 자신의 종교가 다를 때에는 부모와 조상의 종교 의식을 따르고 이를 지키지 못할 때는 묵상만을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묵상을 할 때에는 핏줄을 준 부모와 조상에게만 경의를 표하고 안녕을 비는 것이 아니고 역사를 살다 간 의인과 열사, 위인, 성현, 애국자, 발명자 등에 대해서도 명복을 빌어야 한다.
우리 인류가 이렇게 과학의 혜택을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도 수백만 년 동안 죽음을 무릅쓰고 인지의 발달을 도모해 온 선현들의 노력과, 그리고 역사와 민족을 지키다 산화해간 용기 있는 의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상과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 사진이 없을 때는 ‘조상신위 천은왕생(祖上神位 天恩往生)’이라는 위패나 서원(誓願)을 포스터처럼 써서 붙일 수도 있고 이것마저 여의치 않은 장소에서는 정결한 벽면을 향해 묵상과 기도를 할 수가 있다.

두 번째로 조상과 위인들의 영력을 받고 선한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업에 열심히 임하는 것이다.
낮은 직업이든 높은 직업이든 자신에게 맡겨진 직업에 가치를 두고 열심히 사는 것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물론 도둑과 사기꾼 등 인생을 바르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외한 것이다.
집을 버티는 축대와 집을 둘러싼 담장을 보라.
거기에는 작은 돌, 큰 돌이 한꺼번에 섞여 들어가 있다.
큰 돌만 있으면 견고한 구조를 이룰 수가 없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좋은 직업만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되어 버릴 것이다.
힘이 들지만 댓가가 적은 직업이든 외롭고 쓸쓸한 직업이든 용기와 위험을 감내하는 직업이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위해서 모두가 진실로 소중한 직업인 것이다.
선업을 베풀기 위해, 타인을 위해 헌금을 하고 마음과 몸을 희생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조상과 위인들의 영력을 받을 수가 있으며 크고 선한 인연을 쌓을 수가 있는 것이다.
또 가장 강조해야 하는 것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속이고 적당히 넘어가는 등 확고한 직업 윤리가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
자신의 직업에 귀신이 될 정도로 전문가가 되어야 하며 결코 쉽게 땀을 흘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해서는 안된다.
또한 고지식할 지라도 원리 원칙을 지키고 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야 진정으로 이웃을 위하는 선한 인연을 맺을 수가 있고 의인과 열사들의 선한 영력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미래를 향한 노력은 바로 교육과 환경 보존이다.
교육은 1백 년의 큰 계획이며 사회 발전의 근간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모두가 대학을 다니는 고등 교육을 향한 집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교육이며 실제로 살기 위한 교육이라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와서도 남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충분하다.
세상은 결코 많이 배운 사람들만 살라고 만들어진 곳은 아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못난 사람도 살고 잘난 사람도 살고 이런 사람들이 서로서로의 가치를 존중해 주면서 사는 게 사회인 것이다.
교육은 바로 이러한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자신이 가진 소질과 재주를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가치를 중심으로 자식을 가르치고 사회를 가르치고 남의 자식을 내 자식같이 교육할 때 우리는 서로 돕고 좋은 인연을 맺고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절대자가 주신 우리의 생명계를 지키는 일은 국가가 하는 일도, 사회가 하는 일도 아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아들딸들이 수천만 년 살아나갈 이 터전을 길이 보존하는 길이다.
강에다가 산업 폐기물을 버리고 쓰레기를 버리고 내 집 안방만 깨끗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짧은 편견이다.
모두 다 비가 되어 내리고 땅에서 솟고 공기로 변하고 쌀에 들어가고 배추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내 입으로 다시 들어올 것이다.
물을 사먹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나와 가족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온 한반도가 공해 삼천리가 된 다음에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 그리고 생명의 다음 단계로 이동을 해간다.
우리 모두의 사진은 우리의 후손들이 사는 집 벽에 걸려 있을 것이고 후손들은 우리에게 제사나 명상과 기도 또는 훌륭한 행동을 통해 죽은 우리들의 영혼이 성장하는 것을 도와 줄 것이다.
살아 있는 자들이 바로 영혼의 성장을 가져오는 핵심 열쇠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귀중한 그들에게서 손가락질은 받지 말자.
‘이 사람들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자기들 맘대로 망쳐 놓고 가버린 사람들’이라는 지탄을 받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조상과 선인들에 대한 묵상, 그리고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것은 과거와 미래를 위해 선업을 쌓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설명한 교육과 환경 보존은 후세를 위해서 선업을 쌓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이라가 살아있을 때 영혼의 세계로부터 선한 영력을 받고 또 죽어서는 현상계로부터 영혼의 성장을 위한 육력을 받기 위한 것이다.
주는 대로 받는 것, 그것이 바로 영혼의 세계가 가르쳐 주는 가장 큰 교훈이며 또 구명시식을 통해 현시하신 많은 영혼들이 내려준 가르침이다.

구명시식이란 행위는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두가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구명시식은 그 마음가짐에서부터 출발한다. 평소에 업을 쌓지 않는 것, 그것은 다음의 예와 같이 우리의 생활에서 시작된다.
첫째, 아무리 조상이 물려준 음덕도 일상 생활에서 좋지 않은 행위를 하면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대화하는 중에 상대방의 말을 묵살하고 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언어 폭력이다.
이 언어 폭력은 상대방에게 매우 큰 불쾌함을 가지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력 행위이다.
이때 그 사람은 큰 업을 쌓게 된다. 상대방에게 분노를 품게 하는 업을 말이다.
둘째, 음식을 먹을 때 유난히 까다로운 사람이 있다. 음식은 즐거운 마음으로 먹어야 좋은 영양소가 골고루 몸에 퍼져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짜증스럽고 불평하며 먹으면 그것도 음식에 대해 업을 쌓는 것이다.
셋째, 의복을 가지고 유난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외제가 아니면 입지 않는다든지, 색깔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옷을 사더라도 꼭 한두 번 바꾸러 가고, 그냥 입지 않고 줄이거나 짜깁기를 해서 입는 등 옷에 대해 유난히 까탈스러운 사람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업을 짓고 있는 것이다.
넷째, 어떠한 모임에서 항상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자신이 그런 것도 모르고 남에게 불평을 늘어 놓거나 남의 탓만 한다. 자기 주관이 유난히 강하거나 고집이 몹시 센 사람들,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업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조상이나 부모를 위한 구명시식을 아무리 거창하게 하더라도, 현존하는 본인 자신이 위의 여러 가지 업을 계속 쌓아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집에서 하는 구명시식은 위의 여러 가지 업이 쌓이지 않은 후에야 가능하다.
구명시식은 죽음의 길을 떠나간 영혼을 불러내는 의식이다. 여기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 기술을 영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기술, 곧 영능력은 수련을 통해서, 공부를 통해서 터득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불교의 스님들처럼 산중에서 선(禪)을 열심히 하게 되면 자연히 마음이 맑아져 눈이 열리고 미래를 보며 운명을 예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대체로 공부를 많이 한 스님일수록 이러한 능력을 드러나지 않게 가지고 있다. 고양이가 발톱을 감추는 식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렇게 산에서 마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서도 이러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학이지지(學而知之)라는 말이 될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능력이라는 것은 선천적인 경우가 보통이다.
아니 선천적이라기보다는 운명적이라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운명적이라는 말은 조상들의 은덕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리고 또한 조상들의 직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전이라고 하는 말과 운명이라고 하는 말은 구명시식에서 보면 ‘동일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구명시식을 하고 영혼에 대한 공부를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이러한 의견에 일치한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영혼과 육체는 둘이면서도 하나라는 역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구명시식에서 나타나는 영혼의 대부분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자는 죽어서 영혼이 되어서도 알코올 중독자처럼 행동하고 마약 환자들은 구명시식 현장에 나타나서도 마약을 찾는다.
한번은 내가 미국 뉴욕에서 구명시식을 할 때 였다. 보안관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면허증(permit)'하고 호통을 치던 일이 있었다. 물론 그 보안관 할아버지는 영어로 말했다.
알고 보니 구명시식을 하는 한국 여자가 미군 병사와 결혼을 했는데 그 보안관 할아버지는 그녀의 시아버지였던 것이다.
영가가 생전에 보안관이었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더니, 그녀 남편의 아버지가 남부 텍사스 조그마한 마을에서 보안관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 동안 영혼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바로 이러한 현생과 내생의 접합성이다.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지층으로 말하자면 역단층이 아니라 성격이 다른 채널을 흘러 가는 물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물은 더러운 물일 수도 잇고, 깨끗한 물일 수도 있다. 그 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선업(善業)을 쌓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선업을 쌓고 덕을 쌓는 것은 결코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인이 열심히 일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인들에게 월급을 주게 된다면 이것은 종교적 행위와 같은 큰 선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법관도 마찬가지다. 불편부당에 치우치지 않고 정확한 판단으로 심판을 할 수 있다면 이것 또한 큰 선업을 짓는 것이다. 잘못 판단해 오판을 내린다면 큰 원한과 부조리를 만들 수 있는데 이것을 바르게 판단을 내려 부정을 없앴기 때문이다.
구명시식에서 보면 인간의 영혼이 편안한 것, 구중 심처를 떠돌지 않고 밝은 영혼으로 살다가 대부분 인간의 몸을 받아 왕생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사람 구실 잘하고 정직하게 열심히 사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영혼의 세계와 현생은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다른 세계를 밝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직하고 열심히 살면서 남을 돕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신의 아들이고 하느님이고 부처다.

영혼 박사

영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더욱 깊고 깊은 심연이다.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도대체가 알 수 없다.
아마도 인간으로서 이것을 모두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를 살다 간 많은 도인들, 종교인들, 그리고 영적인 천재들도 어느 한 부분만을 알고 가는 게 보통이다.
역사적으로 자신이 살다 간 시대적 배경에서 영혼의 세계를 이해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종교적 기반에 의해 영혼의 세계를 이해하기도 한다. 나는 감히 또 말하거니와 그 동안 인생의 반 이상을 영혼 공부에 몰두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더욱 캄캄한 암흑의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는 않았다고 그래도 많은 세월을 여기에만 몰두하다 보니 타인이 가지지 못한 여러 가지 재주 아닌 재주, 능력 아닌 능력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야기해서 어떤 사람의 이름을 맞춘다든가 아니면 누구의 미래를 본다든가 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이것은 영혼의 세계에 파장을 맞출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고 또 어느 정도의 훈련만 하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영능력을 과소평가하고 개발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모두는 부처님, 예수님, 공자, 소크라테스와 같은 성인이나 그 이상도 될 수 있다. 특히 제 목숨 하나, 아니면 자기 마음 하나 편안하게 할 정도의 영적인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모두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혹자는 나에게 이렇게 물어온다.
“차 법사님은 좋겠습니다.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고 또 앞날도 볼 수가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능력은 언제 어디서 생긴 겁니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첫째,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다 보고 살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내가 누구의 미래를 보고 싶고 전생을 보고 싶다고 해서 모두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나는 절대적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에게 이러한 것을 보이는 사람은 나와 인연이 맞아야만 한다.
그리고 어느 도통한 사람이라도 어느 누구의 미래가 훤히 100% 드러나 보이고 세상 만사가 손바닥처럼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죽했으면 4대 성인 중의 한 분도 자신의 운명을 주체 못해 십자가에 사형을 당했겟는가.
하늘 아래 사는 인간에게 절대는 없으며 주장하건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인간의 몸으로 100% 신성은 없다.
아니 오히려 인간이 이러한 완전을 포기할 때 신성과 다른 인성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추구할 때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한 삶을 원하는가? 영원한 삶은 바로 죽음과 같은 말이다.
두 번째 대답을 하자면 이렇다.
내가 어느 정도라도 영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영혼의 세계에 대한 생각에 몰두해 왔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고등학생때부터 과학자의 꿈을 키우며 공과계통으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좋은 포항공대에 가려고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20대 박사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저 ‘특별한 과학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했겠지’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영혼 공부를 했으니 학위 제도라는 것이 있다면 나도 영혼 분야에서 박사 정도는 안 되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내가 영혼의 세계에 프로페셔널로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도 좀 보고 그리고 앞날도 남다르게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안되는가?
남들은 항상 틀리기 일쑤인 주식 동향도 예언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 4류 정치인들이 몰려다니는 것도 예언하고 있는데 영혼의 세계에 대해 아는 것, 느끼는 것을 사람들에게 잘 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하지 말아야 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로 내가 스스로 생각해 오고 또 내가 걷고자 한 길을 지금 그대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내가 11살 때 세상을 뜨신 아버님의 영혼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나를 어린시절부터 아버님의 영혼과 살아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듯이 말을 주고 받으며 살아왔다.
아버님은 때로는 나에게 용기도 주시고 때로는 꾸지람도 주시면서 나를 기르고 키우셨다.
나는 늘 영혼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러한 영혼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고귀한 가치에 대해 진심으로 깊숙이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이 분야에 몰두해 왔다면 내가 영혼의 세계에 대해 보통 사람들보다 그래도 조금은 냄새를 더 맡을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동양과 서양의 죄의식

서구인들의 죄의식은 기독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들은 주로 기독교의 성경에서 가르치는 원죄(原罪)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꾀임으로 금단의 과일을 먹은 것에서부터 죄가 비롯한다는 신화에 근거하여 죄의 본성을 논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동양의 특히 인도에서 기원을 한 불교 문화권의 사람들은 죄에 따로 본성이 없지만, 다만 마음이 탐진치에 얽매어 죄업을 짓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죄에 대한 두 가지 사고 패턴을 살펴보면 서구인들의 죄에 대한 사고 방식은 그들의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형태에 크게 어긋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불교인들은 마음 한번 쉬면 죄업 역시 사라진다는 것을 원천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사죄는 죄와 업이 없어지도록 하는 것은 물론, 마음이 함께 공(空)하면 진실한 참회라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은 기독교적인 사고 형식에 깊이 영향을 받아 씌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서구의 소설은 선과 악의 극한 대결이라는 양상으로 전개되어 그 줄거리와 내용이 지극히 드라마틱하고 다양하다.
이에 비해 동양의, 특히 상업 사회 이전의 동양 산문들은 일시적인 상황의 어려움 속에 순간적인 오류로 죄악을 저지르고는 이내 마음속 깊이 참회함으로써 심성적으로 화해하는 까닭에 소설조차 극적인 전개가 어렵게 된다.
어쨌든 죄 의식에 관한 한 서구, 특히 기독교의 접근 방식은 죄의 본상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니체의 말대로 인간은 신과 짐승의 사이에 있는 중간자라고 하더라도 어찌 인간이 한낱 미물의 유혹으로 영생의 죄를 짓겠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라.
똑같은 물건, 똑같은 상황에서 죄가 되고 안되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생각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은 오늘날과 같은 지식 보편화 시대에는 부질없는 사족일 뿐일 것이다.
<천수경>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라는 구절은 천언 만언이 필요 없는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인 것이다. 똑같은 물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그러므로 죄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독립된 체성(體性)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동양의 지혜는 정녕 가슴에 와닿는 참된 통찰력이다.

복은 스스로 찾는 것이다.

“나는 인복(人福)이 없다.”
“난 참 인복이 없어.”
이 말은 평소 우리 귀에 참 많이 들리는 말이다.
친구에게 언짢은 일을 당했다든지 직장 동료에게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든지, 아니면 자신이 경영하는 사업체의 유능한 직원이 다른 곳으로 전직하려 할 때, 심지어는 아내, 남편, 자식에 대한 푸념에 이르기까지 이 말은 너무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한 개념도 모르는 체 인복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다.
옛말에 ‘입성수 구성수’, ‘입이 보살이다’라는 말이 있다.
푸념처럼 입으로 하는 말이 그대로 이뤄진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이 말에 따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모두 불행하고 각박한 사람들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경쟁하듯 자신들이 인복이 없다는 말을 너무도 자주 되뇌곤 하기 때문이다.
인복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잘 사귀고 상종하여 도움을 받는 복을 말한다. 인덕(人德)이란 말과 같이 쓰였던 말인데 요즘엔 그 의미가 약간 분화되어 쓰이고 있는 듯하다.
즉, 인복은 자신의 노력 없이 선천적·운명적으로 나타나는 복이고, 인덕은 자신이 남에게 베푸는 실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저 사람은 인복은 있는데 인덕이 없어.”
와 같은 말을 듣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튼 인복이 없다는 푸념은 이제 그만하자는 것이 필자의 제안이다.
따지고 보면 인복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획득 형질이다.
자신이 남에게 먼저 솔선해서 잘하면 되돌아오는 과보 또한 그에 못지않을 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자신이 먼저 베풀 생각은 하지 않고 남에 대한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는 것은 아닌가.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크기 마련이다. 실망이 지나치면 공연한 배신감으로까지 비화되어 상대를 원망하고 헐뜯게 된다.
여기에 또 하나 거론되어야 할 것이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사양의 미덕에 관한 얘기이다.
우리들은 남이 나에게 베푸는 호의에 대해서는 일단 겉으로라도 사양하고 봐야 한다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다. 현대의 서구적 관점에서 보면 솔직하지 못한 면으로 비쳐질 수 있다.
개항 초기 우리나라에 왔던 선교사 등 서구인들이 우리의 이 사양 미덕 때문에 많은 곤경을 치렀다고 한다.
……서구인들은 자신을 도운 사람들에게 관습대로 무언가 답례하려 했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를 사양했다. 그러면 서구인들은 두 번 권하지 않고 도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가 떠나면 우리는 섭섭해서 욕을 마구마구 해대고…….
괜찮다고 사양하는 마음이 본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예스와 노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잔뜩 기대를 하고 있으니…….
반면에 서구인들은 그렇지 않다. 남의 호의는 호의 그대로 선선하게 ‘마이 플레져(My pleasure)'하면서 받아들이지 않는가. 물론 받을만한 호의에 대해서이다.
우리도 이젠 자신이 인복이 없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좀더 적극적이며 솔직해져야 하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아울러 엉뚱한 기대를 갖지 않는 정신을 키워야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머물러 있지 않는, 늘 변하는 것이거늘 의사 표시는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잔뜩 기대에만 부풀어 있는 인간 관계, 이 관계에서는 실망과 불만만이 있을 뿐이다.
먼저 베풀고, 그러나 기대하지 않는 마음. 이 무주상 보시의 정신이 바로 인복과 인덕을 극대화 시키는 바른 지혜인 것이다.

시간의 가르침

흔히 우리 인생에 가장 덧없는 것을 세월이라고들 한다.
한편으로는 지나고 보면 어떻게 흘렀는지 화살과 같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덧없는 것과 빠른 것, 어찌 보면 영 다른 소리 같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같은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인생에 있어 세월, 즉 시간은 가장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없다면, 세월이 없다면 인생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공간만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대개 생명이 없는 물체이기 마련이다. 시간은 움직임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시간의 흐름 없는 공간의 이동이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나가면서 크게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 시간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만을 확고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있기 십상이다.
60초로 구성된 1분, 60분으로 구성된 1시간, 24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루, 그리고 30일로 구성된 한달, 열두 달로 구성된 한 해, 듣고 보면 가장 과학적이고 엄밀하면서도 조금의 빈틈도 없이 짜여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도 어김없이 시계는 째깍거리며 움직이고 있어 얼마만큼의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1분이 60초이며 60분이 1시간이라는 개념처럼 모호하고 상대적인 개념도 없다. 어떻게 각자의 세월을 자로 재듯 단위로 나눠 똑같다고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누구나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때에 따라 빨리 흐르기도 하고 늦게 흐르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즐겁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흐르게 마련이다. 반대로 귀찮고 싫은 일을 하는 시간은 지독히도 흐르지 않는다.
따라서 때에 따라선 일각이 여삼추며 여삼추가 일각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같은 흐름은 단지 느낌뿐일까. 진짜 시간은 그러면 어떤 것이란 말인가.
자로 재듯 나누어진 수학 공식의 시간은 정말 우리의 시간일까.
과학 공상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광속으로 날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해 순식간에 미래로도 갈 수 있다고 한다.
광속으로 나는 우주의 1시간은 지구의 일 년과도 맞먹는다고 한다.

시간 그 자체는 운동하는 물체도 아니고, 물체의 운동도 아니며 독립된 존재자도 아니다. 시간은 예로부터 공간과 관련된 일종의 형식 내지 양(量)으로서 모든 운동적 현실을 포괄하는 지평으로 여겨져 왔었다.
서구 철학에 있어 시간의 주관적 의의에 대해 처음 설명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한다. 그 이후 칸트 등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철학의 큰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서구 철학에서는 영원한 절대적 존재와 시간적 상대적 존재의 구분은 시간 위에 서 있는 현실 세계가 가치가 낮은 가변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간은 존재하면서도 자성을 지니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 존재로 위치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듯 싶은 것도 사실이다.
존재하면서도 자성이 없는 것, 그것을 불가에서는 무주(無主), 혹은 무주상(無主常)이라 한다.
무주는 자성(自性)을 가지지 않고 아무것에도 주착(主着)하지 않으며, 연(緣)을 따라 일어나는 만유의 근본이라고도 한다.
남에게 베푸는 보시(布施)중에서도 가장 높은 보시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무주상의 보시라는 말은 무수히 들어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주상인 시간이 바로 만유의 근본이 될 수도 있진 않을까.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시간, 그렇다고 스스로 존재하려 하지도 않는 시간, 마치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저마다 기둥이다, 담벼락이다, 큰 부채다, 뾰족한 바위다, 하는 식으로 얘기해지는 시간.
이 시간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무래도 독선적으로 집착하지 않는 자세, 나만의 것이라고 고집하지 않는 지혜를 배워야 하는 것이 우리 범부 중생들의 일일 것 같다.
나만의 것이 아닌, 그렇다고 남의 것도 아닌 시간, 세월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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