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은 만당(晩唐)에 이르러 유미주의 경향을 띠는데, 온정균(溫庭筠)은 화간사파(花間詞派)의 영수로 불리며, 중당에서 시작된 사(詞)의 체제를 완성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시는 동시대의 두목(杜牧),이상은(李商隱)에게 뒤떨어지지만 사에 있어서만큼은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린다.
그는 어려서 총명했지만 과거시험을 끝내보지 않고, 행동도 검소하지 않았으며, 귀족의 한량자제처럼 歌樓,妓館을 드나들며, 도박과 술, 여색에 빠졌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버림받은 부녀의 시름과 사랑을 화려한 필치로 묘사하였는데, 진지함이 부족하고 약간 경박한 풍격을 지닌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기녀 어현기(魚玄機)와 얽힌 고사가 있다. 어현기는 재모를 갖춘 뛰어난 만당의 여시인으로, 황보매(皇甫枚)의 ≪삼수소독(三水小牘)≫에서 “얼굴은 나라를 망하게 할 만큼 미인이고 글의 구상은 신의 경지에 들어갈 정도며,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을 좋아하여 하나 짓고 읊조리는 것에 정성을 다했다(色旣傾國, 思乃入神, 喜讀書屬文, 尤致意于一吟一咏.)”고 극도로 칭찬할 정도였다. 또한 그녀는 이억(李億)과의 애정고사로 유명한데, 그 사이에 온정균이 끼여 있는 것이다.
어현기는 부친이 죽자, 어머니와 함께 기원이 모여있는 평강(平康)으로 들어가 생활했다. 당시에 경사에서 명성이 대단한 온정균은 그녀의 재화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장안의 평강으로 찾아가, ‘강변의 버들(江邊柳)’로 제재로 삼아 시를 써보라고 하니, 13살인 어현기는 망설임도 없이, “푸른색 녹음은 황량한 언덕까지 이어지고, 안개는 멀리있는 누대까지 들어가네. 봄날의 경치들은 봄의 강물 위로 펼쳐졌고, 꽃은 낚시하는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지네. 오래된 뿌리는 물고기의 집이 되고, 가지 밑둥은 나그네의 배를 매었네. 쓸쓸히 비바람부는 저녁, 꿈에 놀라 깨니 다시 근심이 쌓이네(翠色連荒岸, 煙姿入遠樓. 影鋪春水面, 花落釣人頭. 根老藏魚窟, 枝底繫客舟. 蕭蕭風雨夜, 驚夢復添愁.)”라고 하였다.
온정균은 그녀의 재주에 감복하고 곧 그녀의 스승이 되었다. 얼마 뒤 온정균이 장안을 떠나자 어현기는 <멀리 온정균에게 보냄(遙寄飛卿)>을 지어 그리움을 전했다. “섬돌엔 귀뚜라미 어지럽게 울고, 정원의 나무끝엔 안개가 맑네. 달이 뜰 때는 마을 동쪽이 시끄럽고, 누대 위엔 멀리 뜬 해가 밝네. 침상의 대자리엔 서늘한 바람이 일어, 거문고에 노래를 부르면 한스러움만 생기고, 당신은 편지쓰는 것이 게으르니, 도대체 무엇으로 가을의 외로움을 위로할까?(階砌亂蛩鳴, 庭柯煙霧淸. 月中隣東響, 樓上遠日明. 枕簟凉風著, 謠琴寄恨生. 稽君懶書禮. 底物慰秋情?)” 이부분에 이르면 둘 간의 관계가 조금 이상한 듯 하다.
이 시는 누가 봐도 애정시에 속하지 않는가? 하지만 둘간의 관계를 의심할 자료는 없고, 어현기는 이영(李郢) 등과도 시를 주고받은 사실을 고려할 때, 어린 어현기가 의지한 스승과 제자 사이이거나 아니면 이미 기생의 신분으로써 이영,온정균과 시로써 화답한 것일 수도 있다.
하여간에 당 의종(懿宗)연간에 온정균이 장안으로 돌아온다. 두 사람은 성 남쪽 경치가 아름다운 숭정관(崇貞館)을 거니는데, 새로 진사에 합격한 젊은이들이 서로 다투어 지를 짓는 모습을 보았다. 어현기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만히 담장에, “구름에 묻힌 봉우리에 걸린 만월에 봄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내고, 빛나는 하얀 낚시바늘로 아래에 있는 백성을 가리키네. 옷을 펼쳐 싯구를 가리는 자신이 한스러워, 고개들어 과거시험에 합격한 이름을 공연히 부러워하네(雲峰滿月放春睛, 歷歷銀鉤指下生. 自恨羅衣掩詩句, 擧頭空羨榜中名.)”라고 썼다.
이 시는 장안의 명문의 후손 이억(李億)도 보게 되었고, 어현기의 재주에 감탄한 그는 온정균과는 이전에 일면식도 있고 해서, 온정균을 찾아가 그녀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온정균은 이억을 매우 좋게 생각하여 그들을 맺게 해 주었다. 곡절많은 어현기의 운명은 여기서 또한번 시련을 겪게 되는데, 이억의 부인 배씨가 이를 도저히 용납하지않았다.
아울러 이억은 집안의 세습으로 좌보결(左補闋)이란 관직으로 나가게 되어, 그녀를 장안의 함의관(咸宜觀)의 여관(女觀)을 시켰는데, 그때 어현기의 나이는 17세였다. 이것으로 이억과는 이별하게 되었고, 그녀는 시기 끝에 여제자 녹교(綠翹)를 죽이는 일로 처형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온정균과 어현기의 관계를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온정균이 기루에서 심취하였고, 어현기같은 시문에 갖춘 기녀들과 시문을 주고받은 일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주색잡기에 능한 사람이 낚시도 좋아하는 것일까? 온정균도 낚시를 아주 좋아한 듯 하다.
그의 시 <서강의 낚시꾼이 운명을 달리한 것에 부쳐(西江貽釣叟騫生)>란 제목을 보아도, 낚시꾼과 절친한 친구사이를 맺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하루 이틀 낚시해서 이루지는 일이 아님을 볼 때, 그는 또한 낚시광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또 <빗속에 이선생과 낚시 약속이 어그러져, 첩운으로 지음(雨中與李先生期垂釣先后相失, 因作疊韻)>에서 “바위를 사이에 두고 등산용 나막신의 흔적을 찾고, 서계는 닭울음소리로 시끄럽네. 조그만 새들이 새벽 연못을 소란스럽게 하고, 쟁기질한 흙은 낮은 밭두둑과 높이가 비슷하네(隔石覓屐迹, 西溪迷鷄啼. 小鳥撓曉沼, 犁泥齊低畦.)”라고 한 것을 보면, 낚시약속이 어그러진 상황에서, 작자는 아쉬운 마음에 집안에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서쪽 시내와 연못을 거닐며 손 끝에 느껴지는 낚싯대의 전율을 달래는 모습을 그렸는데, 농촌에서는 마침 비가 오는 틈에 밭에 쟁기질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음을 볼 때, 말뿐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람은 항상 해보지 않은 길에 대해선 무한한 동경과 아쉬움을 지닌다. 현재 어떤 일을 하는 사람도 친구나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자신이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낚시는 더욱 그러하다.
낚시를 떠나기 전, 채비를 챙길 때는 누구나 고래를 잡을 것 같은 기대를 갖고, 떨친 고기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기대를 가진 낚시약속이 취소되었을 때 우리 조사님들은 어떠한가? 아마도 그날 하루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짜증과 불평으로 왼종일 옆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다시 <시내를 거슬러 오르며(溪上行)>를 보자.
綠塘漾漾煙濛濛(녹당양양연몽몽), 푸른 연못의 물결은 출렁이고 안개는 흐릿하게 깔렸고,
張翰此來情不窮(장한차래정불궁). 장한이 이곳으로 와서는 마음이 끝이없네.
雪羽褵褷立倒影(설우이시립도영), 눈같이 난 하얀 깃털이 거꾸로 보이고,
金鱗撥刺跳晴空(금린발자도청공). 금빛 비늘은 가시를 발라내듯 맑은 하늘로 튀어 오르네,
風翻荷葉一向白(풍번하엽일향백), 바람이 부니 연잎은 뒤집혀 계속해서 하얀색만 드러내고.
雨濕蓼花千穗紅(우습료화천수홍). 비에 젖은 여뀌꽃은 천여 봉우리가 붉구나.
心羨夕陽波上客(심선석양피상객), 마음 속으론 석양에 물결 위의 객을 부러워하고,
片時歸夢釣船中(편시귀몽조선중). 짧은 시간 다시 돌아가 낚시배 속에 있을 생각을 해보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냄새만 맡아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하물며 좋은 날씨와 풍경, 낚시찌가 물에 반사되어 거꾸로 보이는 가운데,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모습을 보는 시인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낮시간이나 밤낚시의 매력 중의 하나가수면을 중심으로 찌가 두 배로 비치다가, 입질이 오면 더욱 크게 솟아오르는 매력은 조사님들이라면 짜릿함을 느낄 것이다.
필자도 충주호에서 낚시할 때, 캐미라이트를 달고 밤낚시를 하며 깜빡 졸았는데, 쳐다보니 찌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지켜보고 있는데, 그제서야 찌가 서서히 넘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거의 1미터에 가까운 충주호용의 큰 찌가 너무 높게 솟구쳐서 캐미라이터불빛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찌올림과 손맛을 아는 시인은 빨리 돌아가서 낚시채비를 챙겨 낚시가고픈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낚시광인 시인의 입장에서는 그곳에서 낚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럽겠는가? 잠시 시인은 저 낚싯배속에 자신이 앉아있는 착각도 할 정도였다.
그의 낚시광적인 모습은 <설씨의 연못에서 낚시하며(薛氏池垂釣)>란 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거니와, <상음의 염소부에게 편지를 보내 릴낚시대를 부탁하며(寄湘陰閻少府乞釣輪子)>도 시 제목에서 그가 얼마나 낚시를 좋아하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釣輪形與月輪同(조륜형여월륜동), 릴낚시의 모습은 달이 둥근 것과 같고,
獨繭和煙影似空(독견화연영사공). 오직 낚시줄만이 안개와 어울리니 아무 것도 없는 듯 하네.
若向三湘逢雁信(약향삼상봉안신), 삼상으로 가서 편지를 받는다면,
莫辭千里寄漁翁(막사천리기어옹). 천리길로 사양하지 마시고 漁翁에게 부치시길.
篷聲夜滴松江雨(봉성야적송강우), 거룻배엔 저녁 비떨어지는 소리, 소나무 서 있는 강엔 비
菱葉秋傳鏡水風(능엽추전경수풍). 마름 잎은 가을철 거울같은 강물로 바람에 전해오네.
終日垂釣還有意(종일수조환유의), 종일토록 낚시해도 또 하고 싶어,
尺書多在錦鱗中(척서다재금린중). 편지는 대부분 은물결 속에서 쓴다오.
‘종일토록 낚시해도 또 하고 싶어’라는 부분에서 얼굴에 웃음을 짓는다. 누구나 낚시꾼이라면 동감하는 부분이 아니겠는가? 입질을 많이 받으면 많이 받을수록, 적게 받으면 또한 오기라도 내어서, 시간만 허락한다면 며칠밤을 새고 싶은 것이 낚시꾼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시의 마지막 부분은 그의 행동반경이 대충 짐작이 간다. 기루 아니면 낚시터... 왠지 어울릴 것 같지도 않지만, 주색잡기를 좋아한 사람의 면모로써 본다면 오히려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낚시가 고아한 행위로써 치장된 것만 걷어버리면 잡기에 능한 손재주많은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오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릴낚시(釣輪)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육구몽과 피일휴 등의 시에서 나오는 내용을 종합하면, 당 말에는 릴낚시가 상당히 보편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또한 <서강에서 어부를 보내며(西江上送漁父)>를 보면,
却逐嚴光向若耶(각축엄광향약야), 엄광을 쫓다가 약야산으로 향하네,
釣輪菱棹寄年華(조륜능도기년화). 낚시줄과 마름으로 만든 노는 세월에 의탁하네.
三秋梅雨愁楓葉(삼추매우수풍엽), 삼추의 장맛비에 단풍드는 잎들을 걱정하며,
一夜篷舟宿葦花(일야봉주숙위화). 하룻 저녁 거룻배를 타고 갈대꽃 속에서 자네.
不見水雲應有夢(불견수운응유몽), 물과 안개에 꿈을 두었음을 보지 않았는가?
偶隨鷗鷺便成家(우수구로편성가). 우연히 갈매기,해오라기를 따라 한 식구가 되네.
白蘋風起樓船暮(백빈풍기루선모), 하얀 개구리밥이 바람에 일고 망루가 있는 큰 배에 저녁이 지고,
江燕雙雙五兩斜(강연쌍쌍오양사). 강가의 제비는 쌍쌍이 다섯 짝이나 비껴드네.
*若耶(약야): 산 이름. 서시완사(西施浣紗)의 옛 유적지가 있음
라고 하여, 역시 그는 어부와 다름없는 낚시광임을 알 수 있다. 정해진 낚시터도 없고, 배에서 낚시줄을 드리우고, 세월을 낚으며 그 속에서 밤을 지샌다. 이미 주위의 새들도 한 식구처럼 정답고, 물과 안개,개구리밥은 항상 보는 자연풍경으로, 자신 또한 이와 비슷한 자연의 일부처럼 느낀다.
여기서 다시 26살에 죽임을 당한 어현기와의 관계가 살며시 떠오른다. 그가 위의 시 셋째연 첫째구에서 ‘물과 안개에 꿈을 두었음을 보지 않았는가?’라고 한 것은 이미 인생무상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26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어현기를 보고 잘못된 중매에 대한 회한일까? 사실 그의 중매가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이미 어현기를 낚아 그에게 주었으니, 그 죄는 오히려 이억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부인 배씨를 잘 다스리지 못했고, 또한 어현기를 함의관에 오래도록 방치한 것이 어현기가 요절한 이유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기녀 어현기(魚玄機)와 얽힌 고사가 있다. 어현기는 재모를 갖춘 뛰어난 만당의 여시인으로, 황보매(皇甫枚)의 ≪삼수소독(三水小牘)≫에서 “얼굴은 나라를 망하게 할 만큼 미인이고 글의 구상은 신의 경지에 들어갈 정도며,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을 좋아하여 하나 짓고 읊조리는 것에 정성을 다했다(色旣傾國, 思乃入神, 喜讀書屬文, 尤致意于一吟一咏.)”고 극도로 칭찬할 정도였다. 또한 그녀는 이억(李億)과의 애정고사로 유명한데, 그 사이에 온정균이 끼여 있는 것이다.
어현기는 부친이 죽자, 어머니와 함께 기원이 모여있는 평강(平康)으로 들어가 생활했다. 당시에 경사에서 명성이 대단한 온정균은 그녀의 재화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장안의 평강으로 찾아가, ‘강변의 버들(江邊柳)’로 제재로 삼아 시를 써보라고 하니, 13살인 어현기는 망설임도 없이, “푸른색 녹음은 황량한 언덕까지 이어지고, 안개는 멀리있는 누대까지 들어가네. 봄날의 경치들은 봄의 강물 위로 펼쳐졌고, 꽃은 낚시하는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지네. 오래된 뿌리는 물고기의 집이 되고, 가지 밑둥은 나그네의 배를 매었네. 쓸쓸히 비바람부는 저녁, 꿈에 놀라 깨니 다시 근심이 쌓이네(翠色連荒岸, 煙姿入遠樓. 影鋪春水面, 花落釣人頭. 根老藏魚窟, 枝底繫客舟. 蕭蕭風雨夜, 驚夢復添愁.)”라고 하였다.
온정균은 그녀의 재주에 감복하고 곧 그녀의 스승이 되었다. 얼마 뒤 온정균이 장안을 떠나자 어현기는 <멀리 온정균에게 보냄(遙寄飛卿)>을 지어 그리움을 전했다. “섬돌엔 귀뚜라미 어지럽게 울고, 정원의 나무끝엔 안개가 맑네. 달이 뜰 때는 마을 동쪽이 시끄럽고, 누대 위엔 멀리 뜬 해가 밝네. 침상의 대자리엔 서늘한 바람이 일어, 거문고에 노래를 부르면 한스러움만 생기고, 당신은 편지쓰는 것이 게으르니, 도대체 무엇으로 가을의 외로움을 위로할까?(階砌亂蛩鳴, 庭柯煙霧淸. 月中隣東響, 樓上遠日明. 枕簟凉風著, 謠琴寄恨生. 稽君懶書禮. 底物慰秋情?)” 이부분에 이르면 둘 간의 관계가 조금 이상한 듯 하다.
이 시는 누가 봐도 애정시에 속하지 않는가? 하지만 둘간의 관계를 의심할 자료는 없고, 어현기는 이영(李郢) 등과도 시를 주고받은 사실을 고려할 때, 어린 어현기가 의지한 스승과 제자 사이이거나 아니면 이미 기생의 신분으로써 이영,온정균과 시로써 화답한 것일 수도 있다.
하여간에 당 의종(懿宗)연간에 온정균이 장안으로 돌아온다. 두 사람은 성 남쪽 경치가 아름다운 숭정관(崇貞館)을 거니는데, 새로 진사에 합격한 젊은이들이 서로 다투어 지를 짓는 모습을 보았다. 어현기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만히 담장에, “구름에 묻힌 봉우리에 걸린 만월에 봄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내고, 빛나는 하얀 낚시바늘로 아래에 있는 백성을 가리키네. 옷을 펼쳐 싯구를 가리는 자신이 한스러워, 고개들어 과거시험에 합격한 이름을 공연히 부러워하네(雲峰滿月放春睛, 歷歷銀鉤指下生. 自恨羅衣掩詩句, 擧頭空羨榜中名.)”라고 썼다.
이 시는 장안의 명문의 후손 이억(李億)도 보게 되었고, 어현기의 재주에 감탄한 그는 온정균과는 이전에 일면식도 있고 해서, 온정균을 찾아가 그녀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온정균은 이억을 매우 좋게 생각하여 그들을 맺게 해 주었다. 곡절많은 어현기의 운명은 여기서 또한번 시련을 겪게 되는데, 이억의 부인 배씨가 이를 도저히 용납하지않았다.
아울러 이억은 집안의 세습으로 좌보결(左補闋)이란 관직으로 나가게 되어, 그녀를 장안의 함의관(咸宜觀)의 여관(女觀)을 시켰는데, 그때 어현기의 나이는 17세였다. 이것으로 이억과는 이별하게 되었고, 그녀는 시기 끝에 여제자 녹교(綠翹)를 죽이는 일로 처형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온정균과 어현기의 관계를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온정균이 기루에서 심취하였고, 어현기같은 시문에 갖춘 기녀들과 시문을 주고받은 일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주색잡기에 능한 사람이 낚시도 좋아하는 것일까? 온정균도 낚시를 아주 좋아한 듯 하다.
그의 시 <서강의 낚시꾼이 운명을 달리한 것에 부쳐(西江貽釣叟騫生)>란 제목을 보아도, 낚시꾼과 절친한 친구사이를 맺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하루 이틀 낚시해서 이루지는 일이 아님을 볼 때, 그는 또한 낚시광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또 <빗속에 이선생과 낚시 약속이 어그러져, 첩운으로 지음(雨中與李先生期垂釣先后相失, 因作疊韻)>에서 “바위를 사이에 두고 등산용 나막신의 흔적을 찾고, 서계는 닭울음소리로 시끄럽네. 조그만 새들이 새벽 연못을 소란스럽게 하고, 쟁기질한 흙은 낮은 밭두둑과 높이가 비슷하네(隔石覓屐迹, 西溪迷鷄啼. 小鳥撓曉沼, 犁泥齊低畦.)”라고 한 것을 보면, 낚시약속이 어그러진 상황에서, 작자는 아쉬운 마음에 집안에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서쪽 시내와 연못을 거닐며 손 끝에 느껴지는 낚싯대의 전율을 달래는 모습을 그렸는데, 농촌에서는 마침 비가 오는 틈에 밭에 쟁기질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음을 볼 때, 말뿐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람은 항상 해보지 않은 길에 대해선 무한한 동경과 아쉬움을 지닌다. 현재 어떤 일을 하는 사람도 친구나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자신이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낚시는 더욱 그러하다.
낚시를 떠나기 전, 채비를 챙길 때는 누구나 고래를 잡을 것 같은 기대를 갖고, 떨친 고기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기대를 가진 낚시약속이 취소되었을 때 우리 조사님들은 어떠한가? 아마도 그날 하루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짜증과 불평으로 왼종일 옆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다시 <시내를 거슬러 오르며(溪上行)>를 보자.
綠塘漾漾煙濛濛(녹당양양연몽몽), 푸른 연못의 물결은 출렁이고 안개는 흐릿하게 깔렸고,
張翰此來情不窮(장한차래정불궁). 장한이 이곳으로 와서는 마음이 끝이없네.
雪羽褵褷立倒影(설우이시립도영), 눈같이 난 하얀 깃털이 거꾸로 보이고,
金鱗撥刺跳晴空(금린발자도청공). 금빛 비늘은 가시를 발라내듯 맑은 하늘로 튀어 오르네,
風翻荷葉一向白(풍번하엽일향백), 바람이 부니 연잎은 뒤집혀 계속해서 하얀색만 드러내고.
雨濕蓼花千穗紅(우습료화천수홍). 비에 젖은 여뀌꽃은 천여 봉우리가 붉구나.
心羨夕陽波上客(심선석양피상객), 마음 속으론 석양에 물결 위의 객을 부러워하고,
片時歸夢釣船中(편시귀몽조선중). 짧은 시간 다시 돌아가 낚시배 속에 있을 생각을 해보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냄새만 맡아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하물며 좋은 날씨와 풍경, 낚시찌가 물에 반사되어 거꾸로 보이는 가운데,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모습을 보는 시인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낮시간이나 밤낚시의 매력 중의 하나가수면을 중심으로 찌가 두 배로 비치다가, 입질이 오면 더욱 크게 솟아오르는 매력은 조사님들이라면 짜릿함을 느낄 것이다.
필자도 충주호에서 낚시할 때, 캐미라이트를 달고 밤낚시를 하며 깜빡 졸았는데, 쳐다보니 찌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지켜보고 있는데, 그제서야 찌가 서서히 넘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거의 1미터에 가까운 충주호용의 큰 찌가 너무 높게 솟구쳐서 캐미라이터불빛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찌올림과 손맛을 아는 시인은 빨리 돌아가서 낚시채비를 챙겨 낚시가고픈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낚시광인 시인의 입장에서는 그곳에서 낚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럽겠는가? 잠시 시인은 저 낚싯배속에 자신이 앉아있는 착각도 할 정도였다.
그의 낚시광적인 모습은 <설씨의 연못에서 낚시하며(薛氏池垂釣)>란 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거니와, <상음의 염소부에게 편지를 보내 릴낚시대를 부탁하며(寄湘陰閻少府乞釣輪子)>도 시 제목에서 그가 얼마나 낚시를 좋아하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釣輪形與月輪同(조륜형여월륜동), 릴낚시의 모습은 달이 둥근 것과 같고,
獨繭和煙影似空(독견화연영사공). 오직 낚시줄만이 안개와 어울리니 아무 것도 없는 듯 하네.
若向三湘逢雁信(약향삼상봉안신), 삼상으로 가서 편지를 받는다면,
莫辭千里寄漁翁(막사천리기어옹). 천리길로 사양하지 마시고 漁翁에게 부치시길.
篷聲夜滴松江雨(봉성야적송강우), 거룻배엔 저녁 비떨어지는 소리, 소나무 서 있는 강엔 비
菱葉秋傳鏡水風(능엽추전경수풍). 마름 잎은 가을철 거울같은 강물로 바람에 전해오네.
終日垂釣還有意(종일수조환유의), 종일토록 낚시해도 또 하고 싶어,
尺書多在錦鱗中(척서다재금린중). 편지는 대부분 은물결 속에서 쓴다오.
‘종일토록 낚시해도 또 하고 싶어’라는 부분에서 얼굴에 웃음을 짓는다. 누구나 낚시꾼이라면 동감하는 부분이 아니겠는가? 입질을 많이 받으면 많이 받을수록, 적게 받으면 또한 오기라도 내어서, 시간만 허락한다면 며칠밤을 새고 싶은 것이 낚시꾼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시의 마지막 부분은 그의 행동반경이 대충 짐작이 간다. 기루 아니면 낚시터... 왠지 어울릴 것 같지도 않지만, 주색잡기를 좋아한 사람의 면모로써 본다면 오히려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낚시가 고아한 행위로써 치장된 것만 걷어버리면 잡기에 능한 손재주많은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오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릴낚시(釣輪)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육구몽과 피일휴 등의 시에서 나오는 내용을 종합하면, 당 말에는 릴낚시가 상당히 보편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또한 <서강에서 어부를 보내며(西江上送漁父)>를 보면,
却逐嚴光向若耶(각축엄광향약야), 엄광을 쫓다가 약야산으로 향하네,
釣輪菱棹寄年華(조륜능도기년화). 낚시줄과 마름으로 만든 노는 세월에 의탁하네.
三秋梅雨愁楓葉(삼추매우수풍엽), 삼추의 장맛비에 단풍드는 잎들을 걱정하며,
一夜篷舟宿葦花(일야봉주숙위화). 하룻 저녁 거룻배를 타고 갈대꽃 속에서 자네.
不見水雲應有夢(불견수운응유몽), 물과 안개에 꿈을 두었음을 보지 않았는가?
偶隨鷗鷺便成家(우수구로편성가). 우연히 갈매기,해오라기를 따라 한 식구가 되네.
白蘋風起樓船暮(백빈풍기루선모), 하얀 개구리밥이 바람에 일고 망루가 있는 큰 배에 저녁이 지고,
江燕雙雙五兩斜(강연쌍쌍오양사). 강가의 제비는 쌍쌍이 다섯 짝이나 비껴드네.
*若耶(약야): 산 이름. 서시완사(西施浣紗)의 옛 유적지가 있음
라고 하여, 역시 그는 어부와 다름없는 낚시광임을 알 수 있다. 정해진 낚시터도 없고, 배에서 낚시줄을 드리우고, 세월을 낚으며 그 속에서 밤을 지샌다. 이미 주위의 새들도 한 식구처럼 정답고, 물과 안개,개구리밥은 항상 보는 자연풍경으로, 자신 또한 이와 비슷한 자연의 일부처럼 느낀다.
여기서 다시 26살에 죽임을 당한 어현기와의 관계가 살며시 떠오른다. 그가 위의 시 셋째연 첫째구에서 ‘물과 안개에 꿈을 두었음을 보지 않았는가?’라고 한 것은 이미 인생무상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26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어현기를 보고 잘못된 중매에 대한 회한일까? 사실 그의 중매가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이미 어현기를 낚아 그에게 주었으니, 그 죄는 오히려 이억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부인 배씨를 잘 다스리지 못했고, 또한 어현기를 함의관에 오래도록 방치한 것이 어현기가 요절한 이유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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