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중국음식 기행_01

醉月 2011. 9. 6. 06:51

‘봄의 도시’ 윈난성 쿤밍서

159년 역사의 식당을 만나다

윤태옥 다큐멘터리 제작자  
감수 신계숙 배화여자대학 전통조리과 교수  

 

1852년 개업한 ‘이커인 라오팡쯔’
청나라 시대 전통가옥 구경하는 재미도
매운 요리 많아 한국인 입맛에 잘 맞아

▲ (좌)쿤밍의 ‘이커인 라오팡쯔’. 159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음식점이다.
(우)정초에 먹는 전통 음식인 차오얼콰이.누구나 ‘하루 세 끼’를 먹고 살지만 특히 중국 여행에서는 음식이란 화제가 꽤 자주 등장합니다. 중국이란 큰 땅덩어리는 환경과 물산이 다양한 만큼 음식의 맛과 색과 향, 그 풍미와 가격, 음식에 서려 있는 역사와 문화 역시 꽤나 다양합니다. 물론 좋지 못한 경험과 이야기도 많습니다. 더럽고 불친절하고, 맛도 이상하고 냄새도 거북하고…. 엽기적인 음식도 가끔씩 등장하지요.
   
   저는 일 년에 5~6개월 정도 중국 곳곳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한국인 여행객들을 마주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했던 현지 음식에 즐겁게 도전하기도 하지만 어떤 분은 음식 문제 때문에 여행을 포기하고 싶어할 정도로 힘들어 합니다. 여행에서 만난 어떤 분은 현지 음식을 가능한 피하겠다며 열흘치 빵을 배낭 안에 빼곡하게 담아오기도 했습니다. 또 최근 10년간 중국 배낭여행을 일상으로 하다시피 해온 분은 그동안 차오판(炒飯·볶음밥)만 하도 많이 먹은 탓에 너무너무 질린다고 하더군요. 하루 세 끼가 즐거운 이벤트가 아니라 ‘때우지 않으면 안되는 버거운 숙제’로 짊어지고 여행을 한 것이지요.
   
   제 생각에는 중국 음식이 냄새 나고 거북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입맛이 지나치게 옹졸하거나 자기 ‘냄새’에만 취해서 다른 냄새는 전부 이상한 냄새로만 느끼는 ‘냄새 불구자’이거나, 중국 음식에 관해서 나쁜 경험만을 축적해온 불운한 사람이란 것입니다. 유럽만한 땅에서 유럽의 세 배나 되는 인구가 살면서 즐기는 그 풍부하고 다양한 중국 음식을 외면하고 산다는 건, 그만큼 행복의 기회를 포기하고 사는 불행한 사람일 뿐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넓은 축구장을 주었더니 한 구석에서 그것도 공기놀이만 하는 꼴입니다.
   
   한국 사람은 대부분 중국 음식에서 샹차이(香菜·고수)의 향을 특히 거북하게 느낍니다. 중국 음식의 그 ‘이상한 냄새’의 주범 가운데 하나지요. 이 샹차이는 중국 사람도 누구나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국 식당에서는 음식 주문을 받을 때 지커우(忌口·가리는 음식)가 있는지 묻곤 합니다.
   
   그런데 샹차이와 똑같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데 중국 사람들은 못 먹는 채소가 있습니다. 바로 깻잎이지요.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니는 제 작은 아들이 장난 삼아 중국인 친구를 열심히 설득해서 깻잎을 먹인 적이 있었답니다. 집요한(?) 노력 끝에 먹이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목으로 넘긴 지 10초를 넘기지 못하고 모두 토해버렸답니다! 이상한가요? 아닙니다. 맛과 향은 이런 것입니다. 깻잎이 이상한 풀이 아닌 것처럼 샹차이도 이상한 풀이 아니라 단지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야채일 뿐입니다. 냄새나 입맛은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게 아닙니다. 조금만 친숙해지면 괜찮다는 걸 이해하고 이런 발상법으로 중국 음식을 대하면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샹차이를 먹어야만 중국 음식을 먹는 거라고 강변하는 건 아니니까 혹시라도 오해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중국 여행에서 음식이 좀 더 즐겁고 맛있어질까요. 마음과 입맛을 열고,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구해보고, 좋은 사람들과 유쾌하게 여행을 하면 상당 부분은 해결이 됩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중국 음식 역시 ‘관대한 만큼, 아는 만큼, 즐거운 만큼 맛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독자분들을 모시고 중국 음식기행을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윈난성의 대문 쿤밍
   
   중국으로 여행을 갈 수 있는 티켓이 한 장만 주어진다면? 저는 두말없이 윈난(云南)으로 가겠습니다. 그래서 중국 음식기행의 첫 번째 목적지를 윈난성 쿤밍(昆明)으로 정했습니다.
   
   윈난, 구름의 남쪽이라는 아주 낭만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 윈난성은 중국인에게도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로 꼽힙니다. 조용한 고색의 도시 다리(大理), 설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흐르는 살아있는 고성 리장(麗江)을 비롯해서, 해발 5000m가 넘는 위룽쉐산(玉龍雪山)과 하바쉐산(哈巴雪山) 사이를 흐르는 협곡 후타오샤(虎跳峽), 그리고 샹그릴라(香格里拉)로 이어지는 여정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실감케 하지요.
   
   이 윈난성의 대문이 바로 쿤밍입니다. 쿤밍은 해발 1891m에 위치해 있고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곳이라 사시사철 봄 같아서 ‘춘성(春城)’이라고도 불립니다. 골프를 치기에 좋은 곳입니다. 얼마 전 한국의 한 방송사가 직접 제작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윈난에서 생산된 푸얼차(普茶)가 티베트로 전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이후 윈난은 더욱더 많은 한국인들이 가고 싶어하는 여행지가 되었지요.
   
   윈난에서 소수 민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대도시에 파묻혀 사는 우리네들에게는 마치 신선한 샘물을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들게도 하지요. 최근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배낭을 메고 후타오샤 트레킹에 도전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찾다 보니 윈난의 편의시설 역시 많이 좋아졌습니다.
   
   
   한족과 이족의 가옥문화 결합
   

▲ (좌)2층에서 내려다본 마당의 테이블. (우)민물고기 요리

   쿤밍에서 소개하고 싶은 식당은 1852년에 개업해서 오늘까지 159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이커인 라오팡쯔(一顆印 老房子)’입니다. 어느 지역이든 괜찮은 식당을 찾는 방법의 하나가 ‘오래된 식당’입니다. 장사를 하는 식당이 오래됐다는 것은 그동안 식당의 종합평점이 평균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시류의 변화에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지요.
   
   저는 아직 한국에서 100년 이상 이어져온 식당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이 윈난에서 159년 동안 살아 숨쉬고 있는 식당을 만나보는 건 꽤 흥미가 당기는 일입니다.
   
   음식 또한 훌륭합니다. 이 식당에서 중국 음식과 첫 대면을 한다면 아마도 중국 음식이 거북한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쿤밍을 갈 때마다 한국인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식사를 하는데 이구동성으로 “베리 굿”이라 하는 걸 보니 한국인 입맛에도 잘 들어맞는다는 뜻이지요.
   
   식당 이름인 이커인(一顆印)에서 ‘인(印)’은 도장이란 뜻이고 ‘커(顆)’는 그것을 세는 단위입니다. 즉 ‘하나의 도장’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이 지방 특유의 청나라 시대 전통 민간가옥 구조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한족(漢族)과 이족(彝族)의 가옥문화가 합쳐진 것인데 이 식당의 건물이 바로 전통적인 가옥 그대로입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찬찬히 가옥구조를 뜯어보는 것도 요즘 주목받는 인문학적 즐거움의 하나가 될 만한 그런 가옥입니다.
   
   평면으로 보면 전형적인 사합원입니다. 사합원이란 사방의 방이나 벽(四合)이 가운데 위안쯔(院子·마당)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 즉 미음(ㅁ)자 형태라는 뜻입니다. 평면도로 보면 대개 정사각형이고, 4면 가운데 3면은 방이고, 나머지 한 면은 대문이지요. 그러나 베이징의 사합원과는 다르게 방들이 모두 2층 구조로 돼 있는데 1층과 2층의 가운데 칸은 침실입니다. 1층의 좌우에 있는 방은 창고 또는 축사로 사용하곤 합니다. 가운데 사각형의 마당이 하늘을 향해 만들어내는 공간은 우물과 같은 형태가 되어 천정(天井)이라고 부릅니다. 이 천정과 사면의 방들이 합쳐져 사각형의 도장과 같은 모양이 되기 때문에 이커인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1, 2층 모두 마당과 방 사이에는, 마당을 향해서 열려 있는 복도가 이어져 있어서 일단 집으로 들어오면 비를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면의 방들이 모두 층고가 높은 편이라 자외선이 강한 태양광도 피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자외선이 강하고 비가 자주 내리는 이 지역의 날씨가 잘 반영된 구조이지요. 이 식당은 이런 전통을 잘 보전하고 있는 가옥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어 건축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 지역의 전통 민간가옥의 구조를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밀가루 반죽 ‘얼콰이’ 요리 도전할 만
   
▲ (좌)훈제 돼지고기를 기왓장에 구워내는 와장펑러우. (우)박과 감자를 볶아낸 샤오과볜양위.

   이커인 라오팡쯔는 실제 민가와는 달리 1, 2층이 모두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방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 마당에는 파라솔이 가려주는 식탁이 몇 개 있을 뿐, 보통의 식당에서 보게 되는 홀은 따로 없습니다. 비가 오지만 않는다면 1층 마당의 식탁을 권합니다. 만일 두 사람만 식사를 한다면 2층 복도에 놓인 2인용 식탁을 권합니다. 1층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것도 좋고, 2층 복도에 걸린 홍등도 멋지고, 윈난의 파란 하늘도 가까이 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아주 낭만적이지요.
   
   잘나가는 식당이라 예약을 하는 게 좋습니다.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전화를 걸어보시길.
   
   윈난의 음식은 매운 맛이 많은 편입니다. 물고기는 주로 굽는 것이 특징이고, 아열대 지방이라 대나무에 하는 밥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쓰촨(四川)의 얼얼하게 매운맛(麻辣)과 후난(湖南)의 달고 매운맛(香辣)이 섞여 있는 느낌입니다. 매운맛을 기피하지만 않는다면, 또 ‘샹차이를 넣지 않고(不要放香菜)’ ‘너무 짜지 않게 한다(不要太咸)’면 한국인에게는 그만입니다.
   
   다행히 메뉴판에 요리 사진도 있어서 주문하기에 편리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고르는 한 가지 비법은 사진이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과감하게 찍는 것이지요. 스스로의 직감을 믿고 과감하게 주문해 보면 대개 큰 실패는 없습니다.
   
   네댓 사람이 식사를 한다면 일반적으로 네 가지 요리에 탕 하나를 시키라고 하는데 사실 이런 형식에 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만들어서 차갑게 식혀놓은 량차이(凉菜) 한 접시, 주요리로 뜨겁게 나오는 러차이(熱菜) 세 가지, 채소 요리(素菜) 하나에 주식으로 밥이나 면을 주문하면 충분합니다.
   
   그래도 너무 낯선 음식들이라 사전에 메모라도 해두고 싶다면 이런 음식들을 추천해 드리지요.
   
   샤오과볜양위(小瓜洋芋): 샤오과(小瓜·박)와 양위(洋芋·감자)를 뜨거운 기름에 오랫동안 달달 볶아낸 것. 윈난의 토란이 유명하니 꼭 맛보시길.
   
   카오루콰이(乳): 치즈를 불에 구운 것.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것이니 탐구할 만합니다. 치즈에 이미 친숙해진 한국인 입맛에 의외의 발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차오얼콰이(炒餌): 밀가루를 반죽해서 밀대로 얇게 민 다음 손가락 길이 정도의 직사각형 형태로 잘라낸 것을 얼콰이(餌)라고 합니다. 차오얼콰이는 이 얼콰이를 각종 양념과 부재료를 넣고 볶아낸 것인데 윈난에서는 정초에 먹는 전통적인 음식이자 서민들의 먹거리입니다. 얼콰이 자체가 얇게 썰어낸 떡과 비슷해서 밥을 대신할 수도 있지요.
   
   와장펑러우(瓦掌홵肉) 와장카오위(瓦掌횆): 소금에 절였다가 굴뚝에 걸어두어 훈제한 돼지고기 라러우(肉) 또는 민물고기를 와장(瓦掌·기왓장) 위에 구워낸 것입니다. 약간 짭짤하면서도 불에 구운 고기의 맛이 입에 착착 달라붙습니다. 기왓장 위에 뭔가를 구워내는 것이 이 식당의 대표 메뉴 가운데 하나인데 꼭 맛보시길 바랍니다.
   
   주소 昆明市 東風西路 吉祥巷 18,19號 전화 0871(쿤밍)-364-4555, 4인 기준 예상 식대 200위안

 

바이족의 고향 다리(大理)

1200년 古城에서 호수에 취하고 매실주에 취하다

 

     

     

    ▲ 다리의 음식점인 메이쯔징주가. 매실주로 유명하다.중국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서쪽 300㎞쯤에 다리 바이족 자치주(大理白族自治州)가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소수민족이 55개인데, 그중 윈난성 내 토착 소수민족이 16개나 됩니다. 이 가운데 이족(彛族)이 약 480만명으로 가장 많고, 두 번째가 바이족으로 180만명 정도입니다. 이 바이족의 고향이 다리입니다.
       
       바이족은 그 전설이나 역사상의 인구 이동으로 보면, 남으로 내려온 저강인(羌人)과 인도 쪽에서 장사를 하려고 들어온 사람들, 중원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토착민들과 장기간 함께 어울려 살면서 하나의 언어와 문화로 수렴된 민족입니다. 바이족이라는 말 그대로 흰 옷을 좋아하고 전통가옥에서도 흰 벽이 시선을 사로잡곤 합니다.
       
       다리의 1200년 고성(古城)은 명나라 초기에 지어진 것인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많이 훼손된 것을 1982년부터 복원한 것입니다. 고성은 남북으로 다섯 개, 동서로는 여덟 개의 길이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창산(蒼山)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계곡물이 성 안의 길가를 흐릅니다. 중국말로 ‘쟈쟈류쉐이, 후후양화(家家流水 戶戶養花)’라고 할 수 있지요. 집집마다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뜻입니다. 다리시의 서쪽은 창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얼하이(海) 호수가 동쪽을 해자(垓字)처럼 막아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으로만 출입이 용이한데 그 북쪽을 상관(上關)이라고 하고 남쪽을 샤관(下關)이라고 합니다. 윈난성의 이웃 도시인 리장(麗江)의 고성이 고색 위에 화려함을 더한 것이라면, 다리의 고성은 고색 위에 은은함이 가득한 곳입니다.
       
       다리에 가면 풍화설월(風花雪月), 바람과 꽃과 눈과 달을 수없이 마주칩니다. 이 네 가지를 실물로 보기도 하지만, 하얀 회칠이 예쁜 바이족 전통가옥의 담벼락에서 글귀나 그림으로 마주치거나, 바이족 여인네들이 쓰고 있는 모자에서 수없이 스치게 됩니다. 바이족 여자들이 쓰는 모자엔 이 네 가지가 숨어있다고 합니다. 모자 뒤로 늘어뜨린 흰 술은 샤관의 바람이고, 꼭대기의 흰 장식은 창산의 눈이며, 울긋불긋한 수는 상관의 꽃이며, 모자의 둥근 모양이 바로 얼하이에 비친 달이라는 것이지요.

       

    ▲ 메이쯔징주가 입구를 장식한 술병들.

       티베트 고원의 동쪽 끝자락인 창산은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봉우리들이 늘어선 산맥입니다. 창산은 다른 산과는 달리, 편하게 걸으면서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산입니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다리 고성에서 창산을 올려다보면서 해발 2000m의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좋습니다. 더 좋은 것은, 해발 2600m 높이의 창산 허리춤을 옆으로 길게 걸어가는 윈여루(云游路)입니다. 가슴으로는 창산을 숨 쉬고, 눈으로는 다리 고성과 얼하이 호수를 훤히 내려다보며 걷는 것이지요. 이 길은 길이 16㎞에 폭이 3m 정도 되는 깔끔한 스판루(石板路)인데, 창산의 다섯 개 계곡을 들어갔다가 여섯 개 산허리를 돌아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레길이나 둘레길이 유행인데, 이 길을 서너 시간 걸으면서 행복한 느낌에 푹 젖어볼 수 있습니다. 윈여루에 올라갈 때에는 말을 타든가(40위안), 케이블카(60위안)를 타면 되고, 운유로 북쪽 끝에서는 리프트(40위안)를 타고 내려오면 적당합니다.
       
       얼하이는 남북으로 길이가 40㎞나 되는 호수로 해가 뜰 때마다 아름다운 빛의 잔치를 벌여주곤 합니다. 아침 7시 정도에 선착장으로 나가면 해뜨기 전의 잔잔한 호수에서부터 해가 떠오르기까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아침 하늘을 맛볼 수 있습니다. ‘디카 놀이’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지요.
       
       여기서 나오는 풍부한 수산물로 즐거운 식탁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얼하이에서는 장어가 많이 잡히는데, 비싸지도 않습니다. 혹시 한국인이 운영하는 객잔(客棧)에 투숙한다면 주인장에게 미리 부탁해서 장어구이를 배 터지도록 맛볼 수도 있습니다.
       
       다리 고성의 번화한 거리에는 맥주바와 카페가 많고, 서양 음식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소수민족이라고 해서 그들만의 특별한 음식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바이족의 고향에 왔으니 그들의 평범한 음식을 느긋하게 즐겨보는 것도 좋겠지요.
       
       첫 번째로 추천할 만한 식당은 ‘황청건 바이주반점(皇城根白族飯店)’입니다. 다리 고성의 남문에서 성벽을 따라 창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성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성문에서 들어가는 길이 보아이루(博愛路)인데 그 첫 번째 집이 황청건 바이주반점입니다. 바이족 가족이 운영하는데, 성문 바로 밖에 있는 ‘넘버3’라는 한국인 객잔의 손님들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음식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고, ‘넘버3’의 멋쟁이 주인장이 동행해서 음식 주문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이 식당의 주요 메뉴들은, 바이족식 잡탕찌개라고 할 만한 샤궈차이(沙鍋菜·35위안), 토마토로 만든 장으로 메기를 시고 맵게 요리한 솬라위(酸辣魚·22위안), 우리네 가래떡 같은 것을 얇게 썰어 맛있게 볶아낸 차오얼콰이(炒餌塊·10위안), 얼하이에서 나는 해초류를 요리한 차오하이차이(炒海菜·10위안) 등입니다. 4인 기준으로 120위안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그 외의 소금에 절인 채소와 돼지고기를 함께 볶은 옌차이차오러우(菜炒肉·18위안), 돼지고기를 피망과 함께 요리한 후피칭자오(虎皮靑椒·10위안), 자더우피엔(炸豆片·10위안), 차오더우젠(炒豆尖·10위안), 피단(皮蛋·18위안), 칭자오차오러우(靑椒炒肉·20위안) 등등입니다. 평범하면서도 이 지방의 특색이 차분하게 묻어나는 백성들의 식단입니다.
       

     

    ▲ 차오얼콰이. 가래떡 같은 것을 얇게 썰어 볶아낸 음식이다.
매실주를 직접 담가서 파는 ‘메이쯔징주가(梅子井酒家)’를 찾는 것도 다리의 향기를 만끽하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다리 고성의 가장 번화한 거리인 푸싱루(復興路)와 런민루(人民路)가 만나는 곳에 있는 야채시장 바로 안쪽에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빼곡하게 진열된 수십 개의 술병이 먼저 인사를 합니다. 이 식당은 대문을 들어서서 작은 마당을 지나 또 대문으로 들어가는데 이런 가옥 구조를 이진원(二進院)이라고 합니다.
   
   대문 안쪽으로 들어서면 100년 넘은 매화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옆에 옛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집에서 긷는 우물물과, 얼하이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수확한 매실로 빚는 술입니다. 술은 단맛이 조금 강합니다. 여기서는 식사를 하지 않고 구경만 하거나 무료 시음만 한 잔 해도 상관없습니다. 술 한 병만 사도 좋아합니다. 물론 식사도 느긋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식사를 한다면 꼭 가운데 마당의 식탁에서 하시길. 시골집 마당에 앉은 듯한 푸근한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이 집에서 몇 가지 요리를 추천하자면, 얼하이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시고 맵게 요리한 솬라위(30위안), 매실 향을 가미한 돼지고기 요리 메이샹러우(梅香肉·40위안)가 있습니다. 서넛이 먹어도 충분한 싼셴멘(三鮮面·20위안)을 주문하면 바이족 아가씨가 각자의 그릇에 능숙하게 비벼줍니다. 매실주 3년짜리는 한 병에 30위안입니다.
   
    저녁식사 후 홍등이 켜진 고성의 밤거리를 산책하다가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이 생각난다면 보아이루에 있는 ‘The Sweet Tooth’라는 케이크점을 찾아도 좋습니다. 청각장애자들이 운영하는 가게라서, 말이 없이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조금만 배려하면 언어가 다른 외국의 장애인들과도 함께 살 수 있다는 작은 메시지를 덤으로 얻게 되는 조금 특별한 곳이고, 맛도 중국에서는 양호한 편입니다.
   
   다리에서 보는 얼하이의 일출과 창산의 석양은 그야말로 장관이지요. 또 큰길이든 작은 길이든 조용히 걸으면서 창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길을 따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윈난을 수차례 여행한 사람들이 반년이고 일 년이고 조용히 묻혀 있고 싶어하는 곳으로 첫손에 꼽는 곳입니다.

 

윈난성 사시(沙溪)

차마고도 옛길에서 세 여인의 향기와 맛에 빠지다

     

     

    ▲ 사시의 식당 ‘시루’의 상차림.마방(馬幇)들이 윈난(雲南)의 보이차를 티베트에 가서 팔고, 말을 사가지고 돌아오던 길을 차마고도(茶馬古道)라고 하지요. 등에 짐을 가득 실은 수십 마리의 말이 긴 행렬을 이루던 이 길은 아스라한 옛 문명의 추억을 일깨우는 듯합니다.
       
       이런 교역로는 신작로나 터널이나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거대한 시장경제 시스템이 밀려들어 오면서 급작스레 사라져버렸고, 이제는 시골이나 산골 구석에 흐릿한 자국들만 조금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시장과 마방들의 흔적이 꽤 남아 있고, 아직은 덜 알려진 탓에 오히려 옛 마을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있습니다. 윈난의 사시(沙溪)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사시는 다리(大理)에서 리장(麗江)으로 가는 두 갈래의 차마고도 주요 노선 중 하나가 지나갑니다. 예로부터 집시(集市·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가 번성했습니다. 전국시대 이후 24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마을입니다. 당(唐)나라 시절에 이 근처에서 염정(鹽井)이 발견된 덕분에 차마고도에서 유명한 염도(鹽都)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시에는 정기시장이 열리던 광장인 쓰팡제(四方街)를 중심으로 옛 가옥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광장 동편 중앙의 구시타이(古戱台)는 고색 창연하고, 광장을 통과하면서 동서로 이어진 쓰덩제(寺登街)에는 옛 마점(馬店·마부들이 머물던 숙소)들의 멋진 객잔이 남아 있습니다. 이 객잔들에 투숙하지 않더라도 들어가 구경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광장이든 길이든 마방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홍사석판(紅砂石板)이 깔려 있지요. 광장 동쪽으로 난 둥자이먼(東寨門)은 다리로 가는 길이고, 시자이먼(西寨門)은 염정으로, 베이자이먼(北寨門)은 티베트로 가는 길입니다.
       
       마을을 동쪽으로 살짝 벗어나면, 란찬강(베트남의 메콩강)으로 이어지는 헤이후이허(黑河)가 흐릅니다. 그 물을 건너는 위진차오(玉津橋)는 멀리 논밭을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같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다리 근처에선 화판을 펼쳐놓은 젊은이들을 쉽게 만나게 됩니다. 다리를 건너 논두렁을 걸어서 조금 멀리 보이는 산 아래 마을까지 가면 이곳이 정말 평화로운 농촌이란 걸, 흙 냄새 가득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혹시 마을길을 걷다가 잔칫집이라도 마주치게 되거든 머뭇거리지 말고 작은 성의(50위안 정도면 좋습니다)와 함께 축하의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시길. 우리가 잃어버린 시골 인심이 이곳에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잊지 못할 객잔의 여인
       
       사시를 가려면 다리에서 젠촨(劍川)으로 가서 다시 사시로 가는 조그만 바오처(包車)를 타야 하므로 중국어가 능숙지 않은 외국인에게 수월치는 않습니다. 일행이 서넛이라면 아예 다리에서 차를 대절해 가는 게 훨씬 낫습니다.
       
       이 사시에서는 시골에 사는 세 여인네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대만에서 건너와 이 한적한 시골에서 58하오샤오위안(號小院)이란 예쁜 2층 객잔을 하며 사는 여인네입니다. 자외선이 강한 윈난에서는 볼 수 없는 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뭐라 말을 붙이면 얼굴이 발개지곤 하는 묘령(?)의 여인이지요.
       
       이 객잔에 들어서면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참 세련되고 예쁘게 꾸며놨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지인이란 걸 너무 드러내지도 않고 화려함으로 나대지도 않는 객잔입니다. 카페와 작은 식당을 겸한 1층도 그렇고, 안쪽의 작은 마당도,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도, 방 하나하나도 너무나 멋집니다. 남자가 묵으면 이 여인네만 쳐다보게 되고, 여자가 묵으면 이런 객잔을 운영하며 살고 싶은 아련한 꿈에 푹 젖게 됩니다. 하루 숙박비라야 50위안에서 100위안 수준. 이 여인네의 사는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사시에서는 저우(周)란 성을 가진 이 여인네가 홍보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한 여인네는 마을의 중심이 되는 쓰팡제 광장에서 샤오우(小屋)라는 작은 카페를 하는 산둥(山東) 미녀입니다. 어찌해서 이곳까지 흘러왔는지 그 속내야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열고 있는 작은 카페에서 어두워지는 광장을 바라보며 기울이는 한 잔의 맥주는 무척 향기로울 것입니다. 그녀가 언제 사시를 떠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오동통한 토박이 여인의 집
       
    ▲ 사시 광장의 큰 홰나무

       그리고 서른을 갓 넘은 토박이로 자그마한 시골 식당을 하는 여인네도 있습니다. 남편은 대도시로 돈 벌러 나갔고, 아들 하나 데리고 시어머니와 함께 참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귀엽고 오동통한 얼굴에 바지런한 손놀림이 야무져 보이는 젊은 처자, 이름은 마뤼잉(馬瑞英)입니다. 이 젊은 후이족(回族) 처자에게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토박이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이 처자가 운영하는 식당 이름은 룽펑칭전판뎬(龍鳳淸眞飯店)입니다. 중국말로 칭전(淸眞)은 이슬람교란 뜻입니다. 따라서 이 식당은 무슬림이 하는 곳으로 돼지고기가 없다는 뜻이며, 이 식당에서는 이슬람 의식을 거쳐서 도살한 고기만을 쓴다는 뜻입니다. 이 허름한 시골 식당 한쪽 벽면에는, 제가 몇 년 전에 블로그에 쓴 글과 사진을 프린트한 것이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가 프린트해서 가지고 왔다가 주고 갔답니다.
       
       이런 시골의 작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요령 몇 가지를 더 말씀드리지요. 이런 시골에서는 주로 농가채(農家菜)가 쓰입니다. 그 지역에서 산출되는 재료와 장을 넣어 그들만의 방법으로 만들기 때문에 주인장에게 이 식당에서 제일 잘하는 요리가 뭔지 물어야 합니다. 한자로 나서우차이(拿手菜)라고 세 글자만 써서 보여줘도 딱 알고 자기 집에서 제일 잘하는 요리를 냅니다.
       
       시골에서 식사를 하는 또 다른 즐거움은 각 지역마다 나오는 채소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채소를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채소를 선택하고는 무조건 “솬롱(蒜茸)!”이라고 외쳐도 됩니다. 채소를 볶을 때 마늘을 다져서 넣어 달라는 소리입니다. 마늘의 향이 구수하기도 하고, 소화를 돕기도 하니 일석이조입니다.
       
       또 생선이 끌릴 때는 민물생선이든 바다생선이든 칭정(淸蒸)으로 해달라면, 생선의 깨끗한 맛을 살려서 쪄주기 때문에 아주 담백합니다. 탕이 생각난다면, 둔탕(湯)이라고 쓰여 있는 요리를 고르세요. 두어 시간 동안 한약을 달여 내는 듯한 정성으로 끓인 탕이 나옵니다.
       
       그래도 좀더 안전하게 주문을 한다면 마파두부(麻婆豆腐)와 계란볶음밥(鷄蛋炒飯)을 기본으로 해서, 그 외에 두어 가지 요리를 과감하게 시키면, 약간 매운맛의 두부와 볶음밥이 안전판이 되어주기 때문에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차오판(炒飯·볶음밥)을 시키면 세숫대야 크기로 나오니 네댓 명이 식사를 하더라도 하나만 주문하시길 바랍니다.
       
       
       한국식 동치미 꼭 맛봐라
       
그리고 시골일수록 염도가 높고, 상차이를 넣을지 여부를 묻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짜지 않게 하고(不要太咸), 상차이를 넣지 말라(不要放香菜)고 ‘콕’ 짚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식당에는 우리의 동치미와 똑같은 게 있으니 꼭 맛보시길. 어디를 가나 우리의 김치 종류와 비슷한 게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아주 괜찮은 식당이 또 하나 있습니다. ‘시루(翕廬)’라고 하는 식당인데, 시(翕)는 합하다는 뜻이고, 루(廬)는 오두막집이란 뜻입니다. 마을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공로(公路) 삼거리에 있어서 찾기 쉽습니다. 이 식당은 정말 깨끗합니다. 주방에 들어가 보면 그날 사용할 식재료가 놓여있는데 정말 깨끗하게 잘 정리돼 있습니다. 음식도 특색이 있으니 어떤 요리든 마음 놓고 드셔도 좋습니다.
   
   끝으로 이런 시골에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투지(土鷄·토종닭) 요리를 특색 있는 음식으로 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도 마찬가지지요. 사시의 쓰팡제에서 남문으로 빠져서 50m 정도만 가면 있는 구전자위안(古鎭佳院)이라는 농가 객잔도 갈 만합니다. 30분은 기다려야 하지만, 이 집 마당의 식탁에 앉으면 키 낮은 담장 너머로 넓은 논이 보이는데, 평화의 바다로 끌어다 주는 기분이지요.

 

윈난성 리장(麗江) 고성(古城)

만년설산 물길이 키운 가물치 샤브샤브 별미

    800년 역사 간직한 고성
    내셔널 지오그래픽 ‘중국서 가장 아름다운 곳’
    나시족 전통요리 맛볼 수 있어
    ▲ 리장 고성의 낭만적인 카페 전경.
    길 옆을 흐르는 맑은 물, 물살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수초와 그 안에서 사는 빨간 금붕어들, 물가의 테이블에 앉은 연인들, 붉은색의 오화석(五花石)이 매끈하게 닳아서 반짝이는 쓰팡제(四方街) 광장…. 해가 기울면 광장에서는 전통 선율이 울려퍼지고 노천카페에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여행객들이 서로 어울립니다.
       
       허름한 인민해방군 팔각모에 담뱃대 물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나시(納西)족 할아버지, 청남색의 전통복장으로 외지인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여인네, 살아있는 상형문자, 그리고 고성 안에서 바로 올려다보이는 위룽쉐산(玉龍雪山)의 하얀 봉우리 등도 이채롭습니다.
       
    ▲ 고성 안에서 올려다 보이는 위룽쉐산의 하얀 봉우리.
이 모든 풍경을 담고 있는 곳, 바로 윈난(蕓南)성 리장(麗江)의 고성(古城)입니다. 리장은 중국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곳, 짝을 찾고 싶어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혼자 찾아가는 첫 번째 여행지, 한국 배낭족들의 새로운 국민여행지로 꼽히기도 합니다.
   
   리장 고성은 소수민족 나시족의 주된 거주지로, 나시족 언어로는 공번즈(鞏本知)라고 합니다. 공번(鞏本)은 식량창고, 즈(知)는 시장이란 뜻으로 오래전부터 이 지역이 양곡시장을 중심으로 발달해온 고도라는 걸 알 수 있지요. 고성 전체를 보면 커다란 벼루(硯)와 같다는 의미에서 다옌진(大硯鎭)이라고도 했는데, 옌(硯) 자와 옌(硏) 자의 발음이 같아 지금은 다옌진(大硏鎭)이라고도 합니다.
   
   
   골목골목 붉은색 돌길
   
▲ 리장 고성의 골목길
이 리장 고성은 쓰촨(四川)의 랑중(閬中), 산시(山西)의 핑야오(平遙), 안후이(安徽)의 서셴(歙縣)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4대 고성의 하나지요. 송말·원초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니 8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 고성에는 사방을 둘러싼 성벽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곳의 토착 권력자, 즉 토사(土司)는 오래도록 목(木)씨였는데 입구(口) 자 형태로 성벽을 둘러싸면 곤궁하다는 뜻의 곤할 곤(困)이 되기 때문이었답니다. 물론 다른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겠지만, 한자의 파자(破字)로 해설하니 이것도 꽤 절묘해 보입니다.
   
   고성의 길은 쓰팡제를 중심으로 광이제(光義街), 치이제(七一街), 우이제(五一街), 신화제(新華街)의 네 갈래 길이 나 있고, 그 사이사이를 작은 골목들이 그물망처럼 잇고 있습니다. 고성의 길바닥을 덮은 돌들의 꽃무늬가 참 아름다운데 이 돌은 오화석(五花石)이라고 합니다.
   
   붉은색이 감도는 각력암(角礫岩)의 일종인데 서로 다른 암석 조각들이 섞인 채 생성된 것이라 마치 돌덩이 하나하나에 꽃무늬를 새긴 것 같습니다. 비가 와도 질지 않고 말라도 먼지가 날리지 않는 길이지요. 새벽에 쓰팡제 광장에 나가 보면 아침 햇살이 오화석에 반사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색다른 것은 아마도 골목마다 콸콸 흘러가는 맑은 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위룽쉐산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위허(玉河)가 고성에 들어오면서 세 갈래로 갈라져 고성 안쪽 곳곳을 휘돌아나갑니다. 마치 장강 하류의 강남수향(江南水鄕)을 신묘하게 연출해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 물에는 빨간 금붕어가 곳곳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을 흐르는 물 치고는 물살이 빨라서 금붕어들은 물을 거슬러 올라갈 듯이 활기차게 온몸으로 헤엄을 치고 있지요. 어항 속에서 느릿하게만 오가던 빨간 금붕어가 이렇게 생생하게 헤엄치는 것도 참 신기해 보입니다.
   
   
   玉龍雪山 물이 시내를 휘감고
   
고성 곳곳을 흐르는 물을 건너는 크고작은 다리들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자그마치 354개나 되는 고성의 다리에서도 고성 건축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평이하게 물을 건너는 석판교(石板橋), 커다란 반원을 그리면서 오르내리막으로 넘어가는 석공교(石拱橋), 실내복도처럼 만들어 비를 맞지 않고 건널 수 있는 풍우교(風雨橋 또는 廊橋)도 있습니다. 통나무를 반 잘라서 단순하게 걸쳐놓은 다리, 난간을 벤치처럼 만들어 여행객들이 쉴 수 있게 한 다리, 난간도 없어 자칫 물에 빠질 것 같은 작은 다리도 있습니다.
   
   이곳 고성에 주로 사는 소수민족은 나시족입니다. 나(納)는 자신들을 칭하는 이들 고유의 발음을 한자로 전사한 것이고, 시(西)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한국인들은 ‘납서족’이라고 읽기 쉽지만 원래의 발음을 옮긴 말이라 나시라고 발음하는 것이 옳습니다.
   
   고성을 걸으면 나시족이 눈에 들어옵니다. 청남색의 전통의상을 입은 부녀자들이 거리를 오가고 광장에서는 저녁마다 남정네들의 연주에 맞춰 나시족 부녀자들이 여행객과 함께 가벼운 춤을 추며 민족 정취를 듬뿍 뿌려주기도 합니다.
   
   특히 나시족의 전통 복식이 눈길을 끌지요. 리장 고성에서 자주 보게 되는 이들의 복장은 피성대월(披星戴月)이라고 합니다. 별을 지고 달을 인다는 뜻으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는 것을 묘사하는데, 나시족 전통 복장의 등판에 수놓인 일곱 개의 별과 머리에 두르는 둥근 모자를 형용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 남자들은 대부분 마방의 일원으로 장기간 외지에 나가는 일이 잦았고 전란으로 죽는 경우도 많아 가사와 농사를 주로 여자들이 감당해 왔습니다. 그 힘겨운 생활사가 배어 있는 것이지요.
   
   둥바(東巴)문화는 나시족의 전통 문화를 이르는 말인데 그 가운데 나시족 고유의 문자인 둥바문자는 따로 감상해볼 만합니다. 책이나 여러 종류 의상, 기념품 등에 새겨진 다양한 디자인으로 접할 수 있지요. 이 문자는 오늘날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상형문자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살아있는 원시문명의 건강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실용적인 문자로서는 역사의 유물로 물러나고 있고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으로 전이되는 것 같습니다.
   
   
   돼지고기볶음 등 한국인 입맛에 잘 맞아
   
▲ 바삭하게 조리한 삼겹살(우화러).
리장 고성에서는 역시 나시족의 음식을 꼭 한번 탐구해볼 만합니다. ‘아마이 나시주 인스위안(阿媽意納西飮食院)’(문의 1390-888-3112)은 2007년에 개업한 식당으로 그 이름에 자신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아마이는 원래 1912년 리장에서 태어나 요리로 꽤 이름이 알려진 장이이(將義意)라는 나시족 여성 요리사의 별명이었답니다.
   
   당시 차마고도를 오가는 마방들에게 꽤나 잘 알려진 요리사였는데 그 손자가 가업으로 이어받았고 2007년에 이 자리에 새로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이 식당은 쓰팡제 광장에서 우이제를 따라 100여m 걸어가면 왼편에 있습니다. 식당 입구가 골목 안쪽으로 들어앉은 형태라서 자칫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식사시간에는 종업원 한둘이 좁은 골목 입구로 나와 귀엽게 호객을 하기도 합니다.
   
   식당은 리장의 전통적인 민간가옥 그대로입니다. 가운데 마당이 있고 2층으로 돼 있습니다. 2층 난간 쪽의 테이블에 앉으면 마당도 가까이 정겹게 보이고, 운남의 맑고 투명한 햇살도 느낄 수 있고 창문 곳곳에 놓인 화분의 꽃들도 보기 좋지요. 혹시 창가 자리가 없거나 인원이 4명을 초과하면 안쪽의 방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 방에 있는 둥근 식탁과 붉은 의자들은 목공예품들로 나시족 전통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집니다.
   
   이 아마이에는 메뉴에 사진도 어느 정도 잘 정리돼 있고 곳곳에 자신들이 추천하는 메뉴 리플을 걸어놓은 것도 있어서 외국인이 음식을 주문하기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추천하자면 이 지역 특색 음식으로 민물고기를 불에 구운 마방예카오위(馬帮野魚)를 권할 만합니다. 우화러우(五花肉·삼겹살)를 바삭하게 조리한 것도 훌륭합니다. 아마이샤오차오러우(阿媽意小炒肉)도 돼지고기를 약간 맵게 볶아서 한국인 입맛에 잘 맞습니다. 나시샹수러우(納西香肉)도 바삭한 맛이 일품이지요.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 가격이 4인 기준 150위안 정도입니다.
   
   
   가물치 샤브샤브 3인분 1만5000원이면 충분
   
▲ ‘가물치 샤브샤브’의 얇게 저민 가물치(왼쪽)와 담백하고 구수한 맛을 내는 육수.
리장에서 한국인 입맛에 아주 잘 맞는 윈난의 음식을 하나 더 추천하지요. 바로 ‘가물치 샤브샤브’입니다. 가물치는 우리에겐 잉어와 함께 대표적인 민물고기 보양식입니다. 고아서 산모에게 먹이기도 하고 고추장으로 양념해서 철판에 구워 먹기도 합니다만 값이 아주 비싸지요. 그런데 리장에서는 가물치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가물치는 중국어로 우위(烏魚), 헤이위(黑魚) 또는 반위(斑魚)라고 합니다. 우(烏)나 헤이(黑)는 가물치의 검은색을 칭하는 것이고 반(斑)은 검은 반점을 말하는 것이지요. 다 자란 가물치는 길이가 40~50㎝나 되고 살도 두꺼워 리장에서는 가물치를 얇게 샤브샤브로 먹습니다. 육질의 부드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육수도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그만입니다.
   
   가물치 샤브샤브를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리장 고성에서 물길을 따라 위룽쉐산 쪽으로 올라가 헤이룽탄(黑龍潭) 공원을 찾으세요. 이 공원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화마제(花馬街)가 있는데 이 거리에 있는 ‘룽지 반위좡(龍記斑魚庄)’(문의 0888-512-3458)이 바로 가물치 샤브샤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입니다.
   
   이 식당에서는 궈디(鍋底·육수가 들어있는 냄비)가 25위안, 가물치살은 1㎏에 60위안인데 이 정도면 세 사람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가물치살을 끓는 육수에 데쳐 먹으면서 따로 나오는 다섯 가지 채소도 함께 익혀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채소는 서비스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단 손을 대면 음식값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면을 뽑아 육수에 끓여 먹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식당은 쿤밍(昆明)과 위시(玉溪)에도 분점이 있습니다.

 

윈난성 후탸오샤(虎跳峽)

협곡 따라 구름 위 트레킹 길 끝에서 만난 ‘천국의 맛’ 토종닭에 배추김치


     

     

    ▲ 위룽쉐산의 연봉후탸오샤(虎跳峽). 창강(長江·양쯔강은 창강의 중하류를 이르는 말)의 상류인 진사강(金沙江)이 해발 5596m의 위룽쉐산(玉龍雪山)과 해발 5396m의 하바쉐산(哈巴雪山)이 조여놓은 좁은 틈새를 거칠게 빠져나가는 대협곡입니다. 호랑이가 뛰어올라 한번 박차고는 건너편 계곡으로 건너갔다는 집채만한 바위가 협곡 중간에 놓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경이로운 시선으로 위아래를 훑어보면 몸부림치듯 협곡을 거칠게 흐르는 물은 해발 1630m의 하류와 위룽쉐산의 정상까지 고저 차이가 자그마치 3900여m나 되는 대자연의 장관이 펼쳐집니다. 구름은 양쪽 산을 모두 넘을 수 없어 협곡을 따라 여행객 시선 높이로 옆으로만 흘러가게 되지요.
       
       칭짱(靑藏)고원에서 발원한 누강(怒江), 란창강(瀾滄江·베트남에서는 메콩강), 창강이 동남으로 흐르다가 윈난 서북부에 이르게 되면 나란히 남쪽으로 흐릅니다. 이 중 창강, 즉 진사강은 샹그릴라(香格里拉)를 지나 리강(麗江) 서북쪽 37㎞ 되는 지점에서 위룽쉐산에 막혀 급격하게 북쪽으로 꺾여 올라갑니다. 이렇게 꺾여 올라가는 16㎞ 협곡 구간이 바로 후탸오샤입니다.
       
       
       세계서 손꼽히는 트레킹 코스
       
    ▲ 후탸오샤 계곡
협곡 입구의 강수면은 해발 1800m이지만 끝부분은 1630m로 낮아집니다. 강물이 170m의 고도차로 떨어지기 때문에 평균 유속이 초속 6~8m나 된답니다. 중간의 7군데는 낙차가 아주 커서 거대하고도 엄청난 물살이 좌우 바위에 부서지면서 협곡 가득 굉음을 채우곤 합니다. 폭은 좁은 곳이 30m 정도. 이 부근에는 높이 13m짜리 거대한 바위가 윗부분 5m 정도만 수면 위로 드러낸 채 가로막고 있는 후탸오스(虎跳石)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위룽쉐산의 호랑이가 이 바위를 박차고 협곡을 건넜다고 합니다. 진사강의 물빛은 거친 물살 탓에 황토색입니다. 그러나 갈수기인 겨울에는 수량이 적고 물의 흐름이 그닥 거칠지 않아 오히려 옥색으로 변하곤 하지요.
   
   후탸오샤는 협곡의 장관뿐 아니라 트레킹 코스로도 세계에서 손꼽힙니다. 산길이든 들길이든 걷기를 무척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이 후탸오샤는 트레킹 코스로서 훨씬 큰 의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이 대협곡에는 북서쪽 하바쉐산의 해발 2000m 부근을 지나가는 도로, 일명 ‘로 패스(Low Pass)’가 있어 차량이 통행할 수 있고, 해발 2670m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하이 패스(High Pass)’ 산길 소로도 있습니다. 아찔한 절벽을 타기도 하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이 산길이 훌륭한 트레킹 코스가 됩니다. 위룽쉐산 쪽에도 일부 구간을 걸을 수는 있지만 협곡을 통과하는 코스는 없습니다.
   
▲ 나시객잔
트레킹 코스는 시외버스가 정차하는 차오터우전(橋頭鎭)에서 출발하여 매표소-제인스객잔(Jane’s)-나시객잔(納西客棧)-28과이(拐)-산길 정상(해발 2670m 지점)-차마객잔(茶馬客棧)-중투객잔(中途客棧)-관음폭포-중샤객잔(中峽客棧·Tina’s Guest House)으로 이어집니다. 보통 차오터우에서 차마객잔까지 5시간이 걸리고, 차마객잔에서 중샤객잔(티나스객잔)까지도 5시간 정도 걸립니다. 대개 시외버스를 타고 차오터우에 도착해 차마객잔이나 중투객잔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이튿날에는 중샤객잔까지 가서 북쪽, 즉 진사강의 하류 쪽으로 더 내려가 배를 타고 진사강을 건너 다쥐(大具)로 들어가서 다시 밤을 지냅니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리강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3일 코스 말고 티나스객잔에서 차를 타고 로 패스를 돌아 나와 차오터우에서 샹그릴라나 리강으로 돌아가면 1박2일 코스가 됩니다. 로 패스를 돌아 나오는 길에는 진사강 물길 가까이 다가가는 곳이 몇 군데 있어 강물이 거칠게 쏟아져 내려가는 장관을 가까이서 만끽할 수도 있습니다.
   
   
   雪山에 숨은 슬픈 전설
   
▲ 오골계 백숙
혹시 후탸오샤에서 비를 만날 수도 있지만 큰 비만 아니라면 날씨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빗속을 뚫고 당당하게 걸어가길 권합니다. 고도가 높은 산의 중턱인 탓에 반 시간이면 날씨가 완전히 변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협곡을 가득 채웠던 구름이 빠르게 걷히는 풍경은 또 하나의 장관이라서 운이 좋은 사람만이 만끽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후탸오샤를 지날 때 위룽쉐산의 정상은 보이지만, 하바쉐산의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 이곳 노인들이 전해주는 전설이 재미있습니다. 옛날 위룽과 하바 두 형제가 있었고, 아리따운 여동생 진사가 있었답니다. 이 여동생이 동쪽으로 가려고 하자 두 형제가 말렸고, 두 형제는 교대로 당번을 서서 여동생이 고향을 떠나지 못하게 지켰답니다. 그런데 하바가 당번을 섰던 어느 날 그만 여동생의 아름다운 노래에 취해서 잠이 들어버렸고 잠에서 깨어보니 여동생은 이미 동방으로 만 리나 가버렸답니다. 하바는 너무 민망해서 얼굴을 들지 못했고 그래서 하바쉐산의 정상은 보이지 않게 됐다는군요.
   
▲ 후탸오샤 계곡의 운무
여자가 먼저 떠난 이야기입니다. 이 깊은 산골 마을에서도 외지의 문명이 전해오면서 마을의 젊은 여자들이 먼저 도시로 나가고 젊은 남자들이 또 그들을 따라 나가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처음 후탸오샤를 갔을 때 길에서 만난 티베트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산골 마을에 살았지요. 그 이후 매년 그 친구를 후탸오샤 산길에서 만났는데 올해는 리강 시내로 나간다고 하더군요. 결혼하려고 했던 여자친구가 도시로 떠난 탓이랍니다. 이 산골에도 변화의 물결은 비켜가지 않습니다.
   
   다시 후탸오샤로 돌아가서, 이 트레킹 코스에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산길 내내 발 아래로 진사강의 물길을 내려다보고, 옆으로는 손에 잡힐 것 같은 거리에서 떠다니는 구름을 감상하고, 눈을 들어서는 눈덮인 위룽쉐산의 연봉(連峯)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침과 저녁에는 깊은 협곡에 비껴 들어오는 햇빛을 만끽하고,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관음폭포의 물보라를 비켜서 통과하는 것도 짜릿한 희열입니다. 협곡 속의 객잔 테라스에서 밤하늘에 쏟아져 내리는 별빛에 젖어보는 것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일입니다.
   
   
   토종 오골계에 바이주 한잔
   
▲ 다쥐마을
그리고 그 객잔에서, 산속에서 놓아기른 토종 오골계를 푹 삶은 백숙에 바이주(白酒) 한잔을 곁들이는 것입니다. 이 트레킹 코스 중간에 만나는 객잔들은 전부 영어 소통이 가능하고 잠자리도 깨끗하고 편한 데다 음식도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차오터우에서 시작해 숨이 턱에 찰 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대여섯 시간 걷고 나면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시장기는 뱃속에서 합창을 하게 됩니다. 이럴 때 말끔하게 샤워를 하고 나서 푸짐한 오골계 백숙이 식탁에 오른다면 그 희열은 어떤 미식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오골계는 차마객잔(139-8877-9726, 139-8870-0522)이나 중투객잔(139-8870-7922)에 한두 시간 전 미리 예약을 하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 시장기의 고난을 겪지 않아서 훨씬 좋습니다. 전화로 예약할 때는 “토종닭 한 마리(請你准准備一只土鷄)”라고만 해도 충분히 알아듣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객잔들에는 한국의 배추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공장에서 생산된 포장김치가 아니라 이 집 주방장이 직접 담근 것이지요. 작지만 너무 유쾌한 서프라이즈가 아닐 수 없지요? 대여섯 시간 멋진 산길을 넘어서 멋진 협곡의 멋진 객잔에서, 닭다리를 죽죽 뜯어내 한입 큼지막하게 베어 물고 김치를 얹어서 먹으면 바로 이곳이 천국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골계 백숙은 다음날 아침 죽으로도 끓여져 식사로 제공됩니다. 한 마리에 100위안 정도인데 두부요리와 야채요리 하나씩과 밥을 곁들인다면 셋이서 넉넉한 식사가 됩니다. 혹시라도 전날 저녁에 약간의 음주를 했다면 적절한 해장이 된답니다. 중샤객잔에 가면 가벼운 서양음식들도 있으니 후탸오샤는 음식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멋진 트레킹 코스라고 자신있게 권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자연 풍광과 트레킹 코스를 소개해 드리느라 음식 얘기는 많이 못했지만 후탸오샤는 진짜로 가볼 만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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