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저우성 구이양(貴陽)
원시의 땅에서 후진타오 사로잡은 보양식 맛보다
윤태옥 다큐멘터리 제작자
감수 신계숙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조리과 교수
닭고기 볶은 ‘궁바오지딩’ 대표적 자라 보양식도 도전해볼 만
▲ 구이양 칭옌구전의 거리. |
우리나라에서는 구이저우로 가는 직항이 없어 베이징이나 상하이, 또는 다른 도시에서 비행기나 열차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지도상의 거리보다 멀게 느껴지지요. 서로는 윈난, 북으로 쓰촨(四川)과 충칭(重慶), 동으로 후난(湖南), 그리고 남으로 광시(廣西)좡족자치구로 둘러싸인 산악지역으로 산지는 많고 농경지가 적어 ‘팔산일수일전(八山一水一田)’이라고 합니다.
중원에서 보면 변방이고, 변방에서 보면 중원 쪽에 가까운 야릇한 위치로 벽지 또는 오지의 느낌이 많은 곳입니다. 그래서 구이저우를 일컬어 “3일 연속으로 맑은 적이 없고, 평평한 땅이라야 3평을 넘지 못하고, 사람은 3푼의 돈도 없다(天無三日晴, 地無三尺平, 人無三分銀)”는 말도 전해내려 옵니다.
구이저우는 인문학적 볼거리가 여행객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끌곤 합니다. 명·청(明淸)시대 이 지방의 세습 토착권력(土司)을 해체하면서 중앙의 군대를 파견해 주둔시키고(改土歸流·토사를 폐지하고 중앙에서 파견한 유관(流官)으로 대체한다는 뜻), 인근의 한족들을 상당수 이주시켰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군사 도시를 툰바오(屯堡)라고 하는데 군사적 기풍으로 인해 좀더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한족의 전통이 잘 보존돼 있습니다. 구이양(貴陽)의 칭옌구전(靑岩古鎭)이나, 안순(安順)의 윈펑바자이(云峰八寨), 진위안구청(鎭遠古城)이 바로 그런 툰바오입니다.
이 지역의 소수민족 역시 독특한 향기로 사람들을 끌어당깁니다. 중원에서부터 수천 년간 계속된 고난의 남천(南遷) 역사를 갖고 있는 먀오족(苗族), 마을 주민 전체가 거대한 합창단으로 나서기도 하는 둥족, 남쪽에서 강을 따라 올라와 계곡에서 사는 수이족(水族) 등이 손에 꼽힙니다.
‘전설의 요리사’ 라이빙룽의 식당
구이저우 음식은 약자를 써서 쳰차이(黔菜)라고도 하는데, 매운맛과 신맛이 특징입니다. 대표적 음식으로는 궁바오지딩(宮保鷄丁)과 쏸탕위(酸湯魚)를 들 수 있습니다. 궁바오지딩은 잘게 썬 닭고기에 땅콩을 넣어 매운맛과 단맛으로 볶아낸 것입니다. 우리도 맛있게 먹어본 경험이 많고 중국 어느 지역 에나 있는 가장 대중화된 음식 중 하나입니다.
지딩은 닭(鷄)고기를 주사위 모양(丁)으로 썰었다는 뜻이고, 궁바오(宮保)는 이 음식을 만들었다는 정보정(丁寶楨)이란 사람의 관직 명입니다. 정보정은 구이저우 출신으로 쓰촨 총독을 지냈다고 합니다. 어느 식당의 메뉴에는 바오(保)를 비슷한 발음의 다른 글자(爆)로 쓰기도 하는데 이는 바오차오(爆炒), 즉 아주 강한 불에 빠르게 볶아낸다는 뜻입니다. 궁바오지딩은 쓰촨요리로도 분류됩니다.
우선 구이양의 칭옌구전을 오가는 길에서 맛볼 수 있는 ‘한 식당 세 점포’를 소개하겠습니다. 라이(賴)씨가 하는 구이저우차이 식당이란 뜻의 ‘라이스쳰차이(賴氏黔菜)’(貴陽市 花溪區 迎賓路 1號·0851-363-0093)와, 분점인 ‘라이스탕관(賴氏湯館)’(黔靈西路 80號·0851-363-0093, 普陀路 58號·0851-674-2686)입니다.
이 식당의 원조는 라이빙룽(賴炳榮·1905~1986)이라는 이 지역에서 제일 유명했던 요리사입니다. 충칭 출생인 그는 쓰촨요리의 대가였던 공도생(孔道生)에게서 요리를 배웠고 구이저우 명문대가의 주방장을 맡은 이후 이 지역을 찾아오거나 체류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주방을 책임지곤 했습니다. 그의 주인이나 손님 가운데에는 장제스와 저우언라이도 있었습니다, 1985년 구이저우성의 공산당 서기였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당시 개설한 ‘구이저우차이 요리사 양성학교’의 주교(主敎)를 이 요리사에게 맡기기도 했습니다. 1964년에는 중국정부가 명예롭게 팽조기사(烹調技師·조리명장)로 공인했고 사후인 1997년 중국명주대전(中國名廚大典)에 수록됐습니다.
이 요리사가 1938년에 창업한 라이스쳰차이는 구이양시 남쪽 외곽인 화시구(花溪區)에 있습니다. 구이양시에서 칭옌구전으로 가려면 201번 버스를 타고 화시(花溪)공원에 내려 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바로 이 근처에 있습니다. 구이양 시내에는 후손들이 낸 분점인 라이스탕관(賴氏湯館)이 두 곳 있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구이저우차이로서 가업으로 이어온 전통도 보기에 좋고 본점과 분점 두 식당을 차례로 맛보는 것도 이색적이지요.
고추·돼지고기 볶은 요리 ‘밥도둑’
본점 라이스쳰차이에서는 일반적인 구이저우차이를 두루두루 맛볼 수 있습니다. 매운맛이 적절하게 배어있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는 커우다이더우푸(口袋豆腐)와 빠바오자위(八寶甲魚)입니다.
커우다이더우푸는 ‘주머니 두부’라는 뜻으로 1960년대 초 저우언라이 총리 일행이 구이저우에 왔을 때 첫선을 보인 요리죠. 1960년대는 중국의 경제정책 실패와 자연재해로 식량이 부족하던 시기여서 총리에게도 특별히 대접할 음식이 마땅치 않아 두부를 작은 주머니 같은 형태로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두부의 질감이 보들보들하여 연두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국물 역시 입안에서 부드럽게 도는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빠바오자위는 ‘여덟 가지 귀한 재료로 조리한 자라요리’란 뜻인데 일종의 보양식으로 1인분에 88위안입니다. 자라요리를 말로만 들어봤다면 한번 도전해 보세요.
이외에 다른 음식들도 좋습니다. 쟈오차오메이쯔러우(椒炒梅子肉)는 고추와 돼지고기를 볶은 요리인데, 고추의 매운맛과 돼지고기의 고소한 맛이 잘 어울립니다. 한 숟가락 가득 떠서 흰쌀밥에 얹어 먹으면 가히 밥도둑이란 말을 들을 만합니다.
샤오미자(小米) 역시 이 식당에서 추천하는 특색 있는 음식의 하나입니다. 쌀로 만든 떡을 기름에 튀긴 것인데 아주 고소하고 부드럽습니다. 먹다가 남으면 숙소로 가져가세요. 식어도 맛있습니다.
시내의 분점 라이스탕관에서는 전통적인 구이저우 요리가 주를 이루면서 조금 깊은 돌솥에 끓여내는 탕이나 덮밥이 많습니다. 탁자마다 깔려있는 식탁지에 나열된 음식들 사진을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도 좋습니다. 음식 값도 비싸지 않아서 4인 기준으로 150위안 안쪽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동굴·절벽에 관 매다는 장례풍습
칭옌구전은 구이양 근방에서 나는 여러 가지 장(醬)이나 짭짤한 밑반찬, 간식으로 먹는 말려 구운 두부 등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칭옌구전은 성벽과 집, 큰 길, 작은 길 모두 파란 기운이 도는 청암(靑岩)을 쌓아 만들어서 돌마을에 온 느낌이 듭니다. 이 마을엔 불교·도교·천주교·기독교 네 종교의 사원이 모두 있으니 하나씩 찾아보면서 간식 한두 가지를 맛보는 것도 좋습니다. 백설기 비슷해 보이는 가오바(糟), 후추를 넣어서 독특한 맛을 내는 흑갈색의 죽 시판(稀飯), 기름에 튀겨낸 처우더우푸(臭豆腐) 등등, 길거리에서의 ‘작은 도전’을 즐겁게 해볼 만합니다.
그런데 칭옌구전에 가면 잊지 않고 찾아볼 만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칭옌구전에서 시외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를 대절해 가오포(高坡)를 거쳐서 자딩(甲定)을 가면 동굴 안에 관을 그대로 쌓아둔 관현장(棺懸葬)이라는 독특한 장례 풍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신을 관에 넣어 동굴 또는 절벽에 매달아두는 것을 관현장이라 하고, 동굴에 안치하는 것을 동장(洞葬)이라고 합니다.
구이저우성 카이리
이곳에 가면 중국식 민물매운탕쏸탕위를 맛봐라
▲ 시장첸후먀오자이 마을. 인구 6000여명 중 99%가 먀오족이다. |
이 치우천왕은 먀오족(苗族)의 공인된 선조입니다. 중국에서는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기도 합니다. 치우가 한족의 선조인 황제(黃帝) 부락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후 치우의 구리(九黎)족은 일파가 동북으로, 또 다른 일파는 남으로 흘러갔습니다. 동북으로 간 치우족의 일파가 동이족(東夷族)이고, 남으로 흘러간 치우족의 일파가 바로 먀오족이라는 것이지요. 중국 전통 가옥의 1층 가운데 방을 중당(中堂)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먀오족의 중당에는 예외 없이 치우천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든 먀오족이든 선조가 서로 먼 사촌 관계라는 점을 크게 의식하거나 연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눈여겨 음미할 만한 역사의 대목입니다.
먀오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50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민족입니다. 민족적 자긍심도 강하고 고유의 문화 역시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또한 광둥 지역과 동남아 지역을 거쳐 서양으로도 가장 많이 진출한 소수민족이라고 하니 국제감각도 높았던 모양입니다. 먀오족이 개고기를 즐겨 먹기 때문일까요? 치우천왕이 아니더라도, 뭔지 모르게 우리와 유사한 것들이 많이 느껴집니다.
이 먀오족의 향기를 맡으려면 구이저우의 카이리(凱里)와, 카이리 외곽 동남쪽 35㎞에 있는 시장첸후먀오자이(西江千戶苗寨)를 찾아가면 됩니다. 먀오링의 명주(苗岺明珠)라고도 불리는 카이리는 쳰둥난 먀오주 둥주 자치주(黔東南苗族族自治州)의 중심지입니다. 구이양의 동쪽 130㎞ 정도에 있는데, 55만명 인구의 반이 넘는 28만명이 먀오족입니다.
제가 카이리를 가는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시장첸후먀오자이를 가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구이저우와 먀오족의 대표적 음식인 쏸탕위(酸湯魚)를 맛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쏸탕위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먀오족의 대표음식
쏸탕위를 한 글자씩 분해해서 보면 구이저우와 먀오족의 음식 습관이 상당 부분 나옵니다. 쏸(酸)은 시다는 뜻으로 먀오족과 구이저우의 음식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말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3일간 신맛을 보지 못하면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합니다. 구이저우는 비가 자주 와서 습기가 많고, 내륙 지역이라 소금도 풍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사가 많은 편인데, 이에 대응하는 전통적 음식요법이 바로 발효시킨 신맛입니다.
단순하게 신맛이 아니라 시고도 매운맛(酸辣)입니다. ‘매운맛이 없으면 음식이 되지 않는다(无辣不成菜)’고 할 정도이지요. 이에 비해서 구이저우 서북쪽의 쓰촨(四川)은 산초를 사용하여 입안이 얼얼한 매운맛(마라·麻辣)을 선호하고, 동쪽인 후난(湖南)은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을 때처럼 아주 매운맛이 나는 요리가 많아 자라(炸辣)라고 표현합니다.
쏸탕(酸湯)은 먀오족들이 집집마다 만들어 먹는 전통식품입니다. 먀오족의 전설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전통음식입니다. 술지게미에 고추와 토마토, 레몬즙 등을 넣어 만들기도 하고, 쌀뜨물을 작은 항아리에 넣어서 3~5일간 자연 발효시켜 만들기도 합니다. 이 쏸탕에 다시 돼지, 닭, 오리고기, 또는 채소 등을 넣고 소금을 뿌려 쏸탄(酸丹)이라는 단지에 넣어 숙성시킵니다.
이 쏸탕을 냄비에 붓고 끓인 다음에 메기(鮎魚·녠위)나 잉어(鯉魚·리위)를 통째로 넣거나 큼지막하게 토막 쳐서 끓여 먹는 것이 바로 쏸탕위입니다. 다른 생선을 넣기도 하고, 끓인 육수에 채소와 두부, 버섯 등을 넣어서 샤브샤브처럼 먹기도 합니다.
식당의 메뉴에서 사진을 본다면 우리네 민물매운탕과 똑같습니다. 토마토로 만든 쏸탕은 붉은색을 띠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맛은 완전히 다릅니다. 시고 매운맛이니까요. 이 맛은 한국인에게는 익숙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어 숟갈 맛을 음미해 보면 점차 그 깊은 맛에 빠져듭니다. 메기나 잉어의 부드러운 육질을 탐하다가 채소와 버섯을 원하는 대로 넣어 건져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지요.
‘량환자이’ 식당을 찾아라
카이리에 도착한 여행객이 쏸탕위를 제대로 맛보려면 ‘량환자이(亮歡寨)’를 찾아가면 됩니다. 카이리의 택시기사는 모두 아는 식당인데, 이전의 이름인 ‘콰이훠린(快活林)’이라고 말해도 금방 알아듣습니다. 주소는 ‘環城西路 98號’. 카이리 시내 어디서든 택시를 타면 10위안 이내로 갈 수 있습니다.
량환자이는 인터넷상에서 중국 여행정보를 훑어보면 카이리에서 필히 들러야 하는 식당으로 예외 없이 지목되곤 합니다. 베이징의 조어대 국가 연회에도 량환자이의 쏸탕위가 올라있어 일 년에 몇 번씩은 베이징으로 출장도 간다고 하네요. 이 식당에서는 쏸탕위 이외에 다른 먀오족 음식도 얼마든지 탐구해 볼 수 있습니다. 메뉴에 사진이 잘 구비되어 있는데, 매운맛 가지요리(苗味茄條)도 권할 만하고, 대나무 벌레나 메뚜기 등의 벌레요리(炒香蟲)도 도전해볼 만합니다.
이 식당 내부 곳곳에 전시해놓은 먀오족의 전통복장이나 장식 등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종업원들 역시 전통적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있어서 외국인에게는 멋진 볼거리가 됩니다. 양해를 구하면 함께 사진을 찍는 것에도 인심이 후한 곳이니, 놓치지 마시길.
카이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 동남쪽 외곽으로 가면 먀오족의 전통 향기가 물씬 나는 시장첸후먀오자이가 있습니다.
시장(xijiang)은 한자(西江)의 뜻과는 달리 먀오족 언어로 ‘시(xi=西)’씨 부족이 ‘정벌(jiang=討)한’ 지역이란 말을 한자로 전사한 지명입니다. 시씨 부족은 먀오족의 선조인 치우천왕의 직계후예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역의 먀오족에게는 린인지(林蔭記)라는 아주 오래된 족보가 있는데, 치우로부터 시작해서 284대에 이르는 가계가 기록돼 있지요.
시장첸후먀오자이의 마을 인구는 6000여명인데 99%가 먀오족입니다. 먀오족 집단거주지로서는 가장 크고, 먀오족의 복식과 가무, 전통가옥 등등이 가장 잘 보존된 마을입니다.
매일 저녁 먀오족 공연
가파른 산에 기대어 3층이나 4층으로 지어진 댜오쟈오러우(吊脚樓)가 온 산기슭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어 일대 장관을 연출하지요. 주변의 가파른 산에 물을 대 논농사를 짓기 때문에 계단식 논(梯田)을 볼 수 있는데, 아침 햇살을 받으면 또 다른 풍광이 연출됩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물길 위에 지어진 풍우교(風雨橋) 역시 아주 멋집니다. 또 매일 저녁 마을 광장에서 열리는 먀오족 공연 역시 외지인들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지요.
전편에서 먀오족의 현관장(懸棺葬)이라는 기이한 장례풍습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시신을 넣은 관을 매장하지 않고 동굴에 쌓아두거나 절벽에 매달아두는 것이지요. 이런 동굴은 전편에서 안내했던 칭옌구전에서 자딩이란 곳을 가면 볼 수 있고, 절벽에 매단 관은 장강삼협 유람선을 타면 장강의 지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장례는 고난으로 얼룩진 먀오족의 이주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치우(蚩尤)가 황제(黃帝)와의 탁록대전에서 전사하자, 먀오족의 선조들은 황하 하류에서 창강 중하류로 이주해서 산먀오(三苗)에 자리 잡습니다. 이 산먀오국(三苗國)이 다시 화하족과 충돌한 후 먀오족들은 지금의 장시(江西)와 후난(湖南)의 산간 지역으로 이주했는데 이들이 머문 곳은 형(荊), 형만(荊蠻) 또는 형초(荊楚)라고 불렀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초(楚)나라 지역들로, 이곳에 살던 먀오족들은 잦은 전란을 피해서 다시 우링(武陵·현재의 장가제 지역) 등으로 이주했지요. 이후 한과 당송 왕조는 수시로 군대를 일으켜 이 지역에 대해 소탕작전을 전개하거나 무거운 부역과 세금을 강요했습니다. 그러자 먀오족들은 더 깊은 서남 산간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레이공산(雷公山), 즉 오늘날의 카이리 지역에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먀오족의 수난과 반란의 역사
특히 먀오족의 수난은 청나라 시대에 심했습니다. 청나라가 투쓰(土司)제도를 폐지하면서 중앙정부가 보내는 관리(流官)가 통치하도록 한 게 계기였습니다. 이것을 개토귀류(改土歸流)라고 하는데, 청나라는 이에 저항하는 소수민족과 토착민들을 잔혹하게 토벌하였지요.
1703년 청나라 강희제가 군대를 보내 도륙한 먀오족이 40여만명이었고, 300개가 넘는 먀오족 마을을 태워버렸습니다. 옹정제 시대인 1735년 먀오족은 반란을 일으켰으나 30만명이 주살당하는 보복으로 끝났습니다.
태평천국의 난이 끝난 이후 1855~1872년까지, 레이공산에서 먀오족들은 장수메이(張秀眉)와 양다류(楊大六)를 중심으로, 청나라의 가혹한 정책에 대해 먀오족 최대 최장의 반란을 일으킵니다. 20세기 전반까지도 먀오족의 봉기는 다섯 차례나 더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와 전통으로 인해 지금도 중국 정부의 먀오족 정책은 수면 아래서는 아주 차갑고 억누르는 것 위주라고 합니다. 물론 공식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먀오족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저항할 수 있는, 순치되지 않는 민족이라는 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의 역사 자체도 그랬습니다.
이런 수난사 속에서 사람이 죽으면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갈 때 시신도 가져가 달라는 뜻으로 관을 묻지 않고 현관장을 했다고 하니, 그 애절한 민족사가 동굴과 절벽과 산속에서 울려나올 듯합니다.
‘마파두부’ 탄생지 150년 역사 원조식당 아직도 성업 중
쓰촨성 청두
산초 넣어 얼얼하게 매운 요리 특징
소고기로 만든 ‘푸치페이펜’도 대표적
▲ 천마포더우푸 |
중국 쓰촨(四川)은 ‘사천요리’와 ‘유비의 촉나라’ 두 가지만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한국인은 쓰촨요리가 맵다는 걸 알고 있고, 유비가 등장하는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成都)를 여행하려고 합니다.
우선 쓰촨과 관련해서 몇 가지 잘못 알기 쉬운 것들을 짚고 넘어가지요. 쓰촨이란 지명이 ‘네(四) 개의 강(川)’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닙니다. 쓰촨이란 지명은 익주(益州)·재주(梓州)·이주(利州)·기주(夔州)를 묶어서 부른 ‘천협사로(川峽四路)’에서 나온 말입니다. 송나라 때 설치된 행정구역인 천협사로를 줄여서 ‘사천로(四川路)’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삼국시대 유비가 세운 나라의 국호는 촉(蜀)이 아니라 한(漢)입니다. 후세 사가들이 유방이 세운 한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청두 지역을 칭하는 촉을 붙여서 촉한(蜀漢)이라 했던 것입니다. 파촉(巴蜀)이란 말도 가끔 듣습니다. 이 단어에서 파는 충칭(重慶)을, 촉은 청두(成都)를 뜻합니다. 하지만 현재 충칭의 간칭은 위 입니다. 자동차번호판에 ‘’라고 쓰여 있는 것은 충칭에 등록된 차량이란 뜻이지요.
충칭은 1997년 쓰촨성과 분리돼 직할시로 독립됐지만 오늘 우리가 맛보려는 쓰촨요리라고 하면 충칭과 쓰촨성 전체 지역을 포함하지요. 쓰촨요리는 장강(長江)의 상류인 청두, 러산(樂山) 지방의 요리(룽파·蓉派 또는 샹허방·上河幇으로 불림)와 하류 쪽인 충칭과 다저우(達州) 지방의 요리(위파·派 또는 샤허방·下河幇으로 불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매운맛이 특징
아무튼 쓰촨은 매운맛으로 유명한데, 매운맛은 그 종류가 꽤 많습니다. 생파나 생마늘의 매운맛, 청양고추의 매운맛, 발효시킨 신맛이 들어있는 매운맛, 후추에서 나오는 매운맛, 생강의 매운맛도 있고, 입안이 얼얼해지는 매운맛도 있습니다. 쓰촨요리는 바로 산초(花椒)에서 나오는 얼얼한 매운맛이 대표적 특징입니다. 고추(辣椒)·후추(胡椒)·생강(鮮姜)의 매운맛이 함께 어울리곤 하지요. 서로 다른 맛이지만 우리말에서는 전부 매운맛이란 말로 표현하게 됩니다.
이런 향신료를 바탕으로 각종 재료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쓰촨요리의 대표적 맛은 일곱 가지로 불립니다. 우선 위샹(魚香)은 짜고 달고 시고 매운 맛을 다 갖춘 맛입니다. 또 마라(麻辣)는 입이 얼얼할 정도의 매운맛이고, 라쯔(辣子)는 고추가 듬뿍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천피(陳皮)는 말린 귤껍질의 맛과 향입니다. 그 외에 고추와 산초를 듬뿍 넣으면 쟈오마(椒麻)로, 여러 가지 다양한 맛이 나는 음식은 과이웨이(怪味)로 불립니다. 해장에 좋은 쏸라탕의 쏸라(酸辣)는 식초와 후추를 넣은 음식입니다.
식당이나 요리 이름에 쓰촨의 촨(川) 자가 들어있다면 십중팔구는 쓰촨 음식을 한다는 뜻입니다. 쓰촨의 음식점은 중국 어느 지역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고, 찾는 사람도 많습니다. 쓰촨의 대표적 음식 가운데 곰 발바닥 요리인 이핀슝장(一品熊掌), 장목가루를 넣고 찻잎에 훈제하여 구운 오리고기 장차야쯔(樟茶鴨子), 돼지고기·닭고기 등에 표고와 죽순을 넣어 간장양념으로 졸인 훙샤오쉐주(紅燒雪猪) 등은 만들 때 섬세한 기술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격도 비쌉니다. 대중적 음식으로는 마파두부(麻婆豆腐), 푸치페이펜(夫妻肺片), 판판샤(盆盆蝦), 간샤오위(干燒魚), 후이궈러우(回鍋肉), 간볜니우러우쓰(干煸牛肉絲), 과이웨이지콰이(怪味鷄塊), 덩잉뉴러우(灯影牛肉), 탕추파이구(糖醋排骨), 수이정니우(水煮牛肉), 라쯔지(辣子鷄), 샹라샤(香辣蝦) 등도 유명합니다.
짐꾼들 통해 마파두부 전국으로 퍼져
▲ 바이즈완위 |
이 식당은 커다란 다리 옆에 있었는데, 다리 근처에서 짐꾼들이 수레를 고치기도 하고 쉬어가기도 했습니다. 이들 짐꾼들은 두부와 소고기를 사가지고 천씨 아주머니를 찾아가 양념을 넣고 볶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씨 아줌마가 볶아준 음식이 맛도 좋고 매운맛에 땀도 나 음식을 먹고 나면 몸도 가뿐해지더랍니다. 이 맛있는 두부요리가 청두의 동서남북을 누비는 짐꾼들의 입을 타고 사방으로 퍼지면서 유명해진 것이 오늘날의 마파두부입니다.
일본이 침략했던 1930~1940년대에 쓰촨성은 중화민국 임시수도 충칭의 바로 후방이었던 탓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청두에서 마파두부를 맛보고는 훗날 자기 고향으로 그 맛을 가져가면서 전국으로 퍼져갔습니다. 해방 이후 각지의 군벌들이 해외로 도주하는 가운데, 마파두부는 홍콩, 대만, 일본 등으로도 퍼져나갔습니다. 또 개혁·개방 이후에는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쓰촨을 찾으면서 마파두부의 이름이 더 널리 알려졌던 것이지요. 그러나 2005년 그만 큰 화재가 일어나 마파두부의 본산인 천싱성판푸의 100년된 건물이 전소되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이후 다시 지은 것이고, 분점도 곳곳에 있습니다.
고급식당 ‘누리찬’도 찾아볼 만
▲ 누리찬 닭요리 |
이 음식은 1930년대 초 궈챠오화(郭朝華)라는 사람이 부인과 함께 만들어 바구니에 넣고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맛이 좋고 값도 저렴해서 인기가 좋았답니다. 부부가 합심해 장사하는 것도 보기 좋아서인지 이들 부부는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한 칸짜리 가게를 내면서 ‘푸치페이펜’이란 간판을 걸었고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요리에 이름과 달리 페이(肺), 즉 소의 허파는 들어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회족(回族)들은 원래 소의 내장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음식을 향해 ‘버린다’는 뜻으로 페이펜(廢片)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들 부부를 놀리는 말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훗날 공산정권이 들어서서 개인사업을 국영회사에 통합하면서 페이펜(廢片)이란 말이 듣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廢’와 같은 발음의 ‘肺’로 바꾸었답니다. 본래 재료에는 없던 허파가 이름에 들어간 연유입니다.
청두에서는 중국 정치사를 품고 있는 고급 식당 하나도 찾아볼 만합니다. 누리찬(努力餐)이라고 하는 식당인데, 우리말로는 ‘노력식당’ 정도가 되겠네요. 식당 이름이 계몽주의적 구호로 들리지 않습니까. 실제 “혁명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으니 동지들 모두 계속 노력하자”는 쑨원의 구호에서 따왔답니다. 이 식당은 1930년 5월 처야오셴(車耀先)이란 사람이 창업했습니다. 1930년대 청두의 진보적 인사들이 활동하던 곳이었습니다. 이 식당은 분위기도 고급스럽고 종업원들의 서비스도 세련됩니다. 음식도 깔끔하고 눈으로 보기에도 좋습니다. 대표적 음식으로는 성샤오스진(生燒什錦)과 궁바오둥지(宮保童鷄), 바이즈완위(白汁魚)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바이즈완위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완위라는 민물생선을 칼로 대여섯 군데 흠집내 그 틈에 생강 조각과 연근,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얇게 끼워 쪄낸 요리입니다. 그 육질의 부드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입에 고기와 생강을 함께 넣으면 생강의 향이 은은하게 입안을 자극하는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음식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쓰촨 요리에 삼초(고추·후추·산초)와 생강이 많이 쓰인다고 했는데, 생강의 향이 은근하게 가미된 이 요리를 음미해 보면 쓰촨음식이 삼초를 많이 넣은 서민적인 매운맛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운 미식에서도 빛을 발한다는 것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 식당의 주소는 金河路 1號이고 전화번호는 028-8612-5181입니다.
중국식 샤브샤브 훠궈의 도시 건륭제 5000명과 즐겨
충칭
▲ 담담한 육수인 바이탕(왼쪽)과 매운 육수인 훙탕으로 나뉜 훠궈 냄비. |
3박4일짜리 크루즈를 타고 창장의 물과 강안의 절벽에 숨어있는 유적들을 느긋하게 훑어 내려와 충칭 훠궈(火鍋)를 즐겨본다면, 충칭에서의 호사로는 그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충칭에서 훠궈 이야기입니다.
훠궈는 끓고 있는 육수에 얇게 썬 고기나 채소, 생선 등을 넣어 익혀 먹는 음식입니다. 우리 음식 중 전골과 유사합니다만 흔히 샤브샤브라고도 하지요. 샤브샤브는 ‘살랑살랑’이란 뜻의 일본어로 육수에 데치는 동작을 묘사한 말입니다. 훠궈는 중국 음식으로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조조의 아들로서 황제에 오른 조비가 오숙부(五熟釜)를 언급한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솥 안을 다섯 칸으로 나누고 각각 다른 육수를 부어 끓인다고 돼 있습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새로 담근 술 보글거리고, 작은 화롯불이 발갛게 타오르고, 저녁엔 눈도 올 듯하니, 술 한잔이 어떻겠소” 하면서 훠궈를 안주 삼아 술 한잔 하기를 권했습니다.
지역마다 이름도 제각각
중국의 훠궈는 지역적으로 부르는 이름도 다양합니다. 베이징이나 내몽골 등 북방에서는 양고기를 주로 먹기 때문에 솬양러우(涮羊肉) 또는 양러우솬궈(羊肉涮鍋)라고 합니다. 솬이란 말은 고기 등을 끓는 육수에 데쳐 내는 동작을 의미하지요. 광둥에서는 해산물을 많이 즐기기 때문에 하이셴다볜루(海鮮打邊爐)라고 합니다. 그 외에 닝샤(寧夏)의 궈쯔(鍋子)나 항저우 등지의 놘궈(暖鍋)도 모두 훠궈와 같은 뜻입니다. 식탁 가운데 커다란 냄비를 하나 올려놓고 여럿이 먹기도 하고, 개인별로 작은 냄비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냄비도 스테인리스스틸이 대부분이지만, 동냄비도 있고, 도기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훠궈를 끓일 때 센불을 쓰기 시작했고, 청나라 시대에는 황제가 좋아하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가스, 불꽃 없이 전기로 열을 내는 인덕션 등을 사용하기도 하고, 우리 신선로처럼 구리로 만든 솥 가운데 숯불을 넣는 전통적인 것도 있습니다. 알코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청의 건륭제는 훠궈를 꽤 좋아해서 1796년 정월 자금성에서 연 천수연(千傁宴)에서는 1550개의 훠궈 솥을 걸어넣고 5000여명이 함께 먹었다고 하니, 중국 대표음식의 하나로 꼽을 만하지요.
훠궈전문식당(火鍋店)은 중국 어느 지역에서도 만날 수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충칭의 훠궈는 아주 매워 마라훠궈(麻辣火鍋)라고 하고, 마오두훠궈(毛肚火鍋)라고도 합니다. 창장싼샤 유람선이 출발하는 차오톈먼(朝天門) 근처에는 당시에 회족들이 운영하는 도살장이 있었는데, 회족들은 소의 고기, 뼈, 껍데기만 먹었고 그 외의 부산물은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인근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이 저렴한 소의 부산물을 구입해 도시락으로 싸서 일을 나갔고, 식사 때가 되면 함께 모여 훠궈로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마오두훠궈입니다. 소의 혀나 위장, 허파와 머릿고기 등이 모두 마오두훠궈의 재료였습니다.
항구 노동자들이 추울 때 먹던 요리
충칭은 중국에서 훠궈의 도시(中國火鍋之都)라고 부르는데 전국 100대 훠궈 전문식당의 상위 20개 가운데 11곳이 몰려있을 정도로 훠궈를 많이 즐기는 곳입니다. 이 지방의 훠궈는 창장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장은 습기가 많은 곳이라 겨울에는 특히 매운맛을 즐기면서 땀을 내는 음식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창장의 해운이 발달하면서 배의 안팎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훠궈였던 것이지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충칭의 수운이 발달하면서 하나의 훠궈에 둘러앉아 여러 사람이 각자 자신이 싸오거나 사온 것들을 매운맛 육수에 데쳐먹었던 것이 점차 고급화된 게 오늘날의 훠궈입니다.
1930년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인해 중화민국의 수도가 이곳 충칭으로 옮겨오면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훠궈 또한 많이 알려졌습니다.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에는 전국 각지에서 충칭의 훠궈를 외식사업으로 내면서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 음식이나 마찬가지지만 음식에는 나름대로의 역사와 문화가 서려있습니다.
이제 훠궈를 즐겨볼까요? 훠궈 먹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끓는 육수에 고기 등을 데쳐서 양념을 찍어 먹으면 됩니다.
우선 궈디(鍋底·육수 냄비)를 선택해야 합니다. 매운맛 육수는 훙탕(紅湯)이라고 하고 돼지뼈나 닭고기, 오리고기 또는 생선 등을 우려낸 담담한 육수는 바이탕(白湯)이라고 합니다. 냄비 안쪽을 둘로 나누고 훙탕과 바이탕을 각각 끓이면서 함께 즐기는 것을 위안양(鴛鴦) 궈디라고 합니다. 냄비를 태극 모양으로 나눠놓은 모양이 원앙새와 같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지요.
육수에 간이 되어 있기 때문에 데친 다음에 소스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양념장을 찍어먹는 게 일반적입니다. 주로 땅콩소스인 마장(麻醬)이나 생선으로 만든 소스인 하이셴장(海鮮醬)이 환영받지요. 이런 양념은 따로 마련된 코너에서 각자 취향에 맞게 셀프서비스로 가져다 먹는 경우도 많은데, 기름이나 땅콩소스에 다진마늘이나 풋고추 등을 넉넉하게 넣으면 됩니다.
궈디와 소스가 정해진 다음에는 데쳐먹을 것들을 고르면 됩니다. 고기와 채소, 그 외의 것들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고기는 소고기와 양고기가 주종을 이루고 새우나 생선도 있습니다. 소나 돼지의 부산물도 꽤 많습니다. 이밖에는 각종 채소, 해초, 두부, 버섯 등이 있고 국수를 삶아 먹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각종 식재료 이름 옆에 원하는 것을 체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주문표가 있습니다. 해당 칸에 체크표시를 하거나 1, 2 등의 숫자를 사용해 몇 인분이지 표시할 수도 있습니다. 1인분의 반도 주문할 수 있는 곳이 많으니까 1/2이라고 표시하거나 반펄(半彬兒)이라 말하면, 같은 값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육수 온도 너무 뜨겁지 않아야
훠궈를 먹을 때 알아두면 좋은 몇 가지 팁도 있습니다. 음식의 온도가 50~60도 정도가 되면 펄펄 끓지는 않지만 뜨겁기 때문에 먹기에 적합한 온도입니다. 만약 끓는 육수에 살짝 데치면 음식 온도가 120도 정도까지 되기 때문에 앞접시에 잠깐 놓았다가 먹는 게 좋습니다. 담담한 바이탕을 작은 그릇에 떠서 마시기도 하는데 처음 끓어서 한 시간 이내에 맛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훠궈를 즐기다 보면 고기를 많이 먹게 되는 만큼 채소와 두부를 넉넉하게 함께 먹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중국사람들은 훠궈에서 두부와 시금치, 무와 목이버섯을 함께 먹지 않습니다. 결석을 유발하거나 피부에 좋지 않다고 하네요.
충칭에는 너무 많은 훠궈 식당이 있어서 해가 지기 시작하면 어느 길거리에서나 매운 육수가 끓는 향이 진동합니다. 아래의 식당들은 믿고 갈 만한 곳입니다. 德庄火鍋(http://www.cqdz.cn), 秦媽火鍋, 小天鵝火鍋(http://www.cqxtels.com), 家福火鍋(http://www.cqjiafu.com), 外婆槗火鍋, 奇火鍋(http://18.caistv.com/20590), 齊齊火鍋, 劉一手火鍋(http://www.cqlys.com), 猪圈火鍋(http://www.zhujuan.com), 王少龍火鍋(http://www.yxgz.cn/member-20374.html), 孔亮鱔遴火鍋(http://www.cq-kongliang.com), 君子薇火鍋
충칭에서 훠궈를 실컷 즐겼다면 이제 제대로 된 라쯔지(辣子鷄)를 즐겨 보시지요. 라쯔지는 고추를 듬뿍 넣은 닭요리입니다. 충칭 시내 한가운데 자러산(家樂山)을 빙글빙글 돌아서 산중턱쯤에 닿으면 임중락(林中樂)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닭고기를 아주 잘게 썰어 산초와 고추를 듬뿍 넣고 볶아서 그 매운맛이 하늘을 찌르지요. 그럴 때는 뜨겁게 데운 맥주와 함께 드시면 매운맛이 금세 사라집니다. 늘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지요. 포장도 해줍니다.
소동파가 詩 읊던 절벽 동굴에 앉아 중국식 갈비찜 별미
창장싼샤와 후베이성 이창
▲ 창장싼샤 유람선 종착지인 후베이성 이창의 유적지 싼여우둥. |
이 창장싼샤에서 창장 양안의 절경을 감상하며 삼국시대의 영웅호걸들이 만들어내고 후세의 여러 작가들이 윤색한 이야기들을 제대로 음미한다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중국 여행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유람선의 종착 지점인 이창에 내려 싼여우둥(三游洞)에서 당·송 시인들의 묵향을 맡아보고, 한국인의 입에도 착 달라붙는 후베이(湖北)의 미식으로 마무리를 할 수 있다면 신선이 따로 없지요.
창장 양안은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 곳곳에 있어 거슬러 오르기 어려운 강입니다만, 지금은 높이 185m의 댐이 풍부한 수량을 확보하고 있어 유람선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와 보면 유비와 제갈량이 왜 이 지역에 나라를 세웠는지가 명확하게 이해됩니다. 상대방보다 세력이 약해 상대방 내부에서 틈이 벌어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그들로서는 싼샤의 상류인 파촉(巴蜀), 즉 충칭과 청두를 중심으로 한 산세와 물길 험난한 곳에 촉한(蜀漢)을 세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박4일짜리 유람선은 저녁에 승선해서 충칭의 야경을 훑어가면서 출발합니다. 다음날 오전에 펑두구이청(豐都鬼城)을 들르는데, 우리말로 ‘귀신공원’이라 할 수 있지요. 살아서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이 죽어서 갈 지옥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중국인들의 일상생활 속에 가장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도교문화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셋째 날 이른 아침에 삼국시대 유비가 이릉전(彛陵戰)에서 패퇴하여 주둔했다가 궁궐로 돌아가지 못하고 병사한 백제성(白帝城)을 오르게 됩니다. 백전노장 유비가 오나라의 30대 ‘소장파’ 육손에게 패배하여 ‘천하 삼분지계’라는 촉한의 국가전략을 망가뜨리면서 어린 아들 유선을 제갈량에게 맡기고 죽은 곳이지요. 유비가 덕장이고 전쟁은 주로 제갈량이 했다고 잘못 알기 쉬운데, 유비는 죽을 때까지 한번도 군 지휘권을 제갈량에게 쥐어준 적이 없는 역전의 무장이었습니다. 제갈량은 유비가 살아있을 때에는 후방의 행정관이었고 적벽전에서는 영리한 외교관이었을 뿐입니다. 제갈량은 유비가 죽은 다음에야 군 통수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었던 문관이었습니다.
유비가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일생을 마감한 곳에서, 그의 일생을 압축해 보는 것도 자그마한 인문학적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비는 저잣거리의 짚신장수 출신으로 용병과 다를 바 없이 초라한 행색으로 출발합니다. 자신보다 월등한 군벌들과의 치열한 각축전에서 승리하여 황제 자리까지 오른 시대의 영웅입니다.
다만, 개인으로서는 커다란 성공이었으나 ‘역사 삼국지’에서 보면 삼국 가운데 끝자리를 탈피할 수 없었고, ‘소설 삼국지’에서는 주인공의 자리마저 제갈량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인물입니다.
백제성을 보고 난 다음에 싼샤의 첫 번째 협곡인 취탕샤를 지납니다. 취탕샤를 지나서는 작은 배로 옮겨 타서 창장의 지류인 다닝허(大寧河)를 거슬러 올라가 샤오싼샤(小三峽)를 유람합니다. 이곳에서는 깎아지른 절벽의 가는 틈새에 관을 안치해 놓은 현관(懸棺)을 볼 수 있습니다. 먀오족들의 특이한 장례 풍습과 같은 것이지요.
다시 창장을 따라 내려가면서 두 번째 협곡인 우샤를 지나고, 창장싼샤에서 가장 높은 선녀봉을 지나면 셋째 날의 해도 벌써 떨어집니다. 이날 저녁에 선장이 주최하는 환송만찬을 즐기고 나면 밤에는 커다란 유람선이 도크를 통해 싼샤댐을 향해 내려가는데 유람선 창밖으로 볼만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다음날 아침 싼샤댐 근처에서 하선하여 싼샤댐을 구경하고 다시 두어 시간 하류로 내려가면 종착점인 후베이성 이창에 도착합니다.
후베이성은 삼국시대 조조·손권·유비가 천하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었던 패권 쟁탈의 길목이었습니다. 손권이 당시 최강의 조조군에 맞서 일생일대의 승전을 기록한 적벽(赤壁), 손권이 일궈낸 최고의 승리 속에서 유비가 영특하게 차지해버린 형주(荊州), 제갈량과 방통 등 젊은 인재들이 사마휘의 학당에 모여 난세를 논하며 시세를 조망하고 출세를 꿈꾸던 룽중(隆中)과 난장(南漳), 관우가 오나라에 덜미를 잡혀 죽음에 이르게 된 당양(當陽) 등이 모두 후베이성에 있습니다.
후베이는 서부에 산지가 많고 동부에는 강한평원(江漢平原)에 내수면과 농경지가 많아 식재료가 풍부합니다. 후베이 음식은 청양고추와 같이 맵고 단맛이 나는 고추를 많이 써서 그런지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습니다. 또 다양한 민물고기를 맛나게 조리해 내는데, 사용하는 재료의 색깔도 선명하게 살려내 보는 이들의 식욕을 자극합니다.
먼저 후베이에 가면 어디서든 드실 수 있는 대표 음식 두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첫 번째 요리는 소동파가 즐겨먹었다는 동파육(東坡肉)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동파육이 저장성 항저우 음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후베이성의 황강(黃岡)에서 처음 만들어진 음식이었더군요. 동파육은 삼겹살 속의 비계가 살코기의 두 배는 되는 듯합니다. 보기만 해도 얼마나 느끼할까 지레 염려가 되지만 먹어보니 두부처럼 부드럽고 전혀 느끼하지 않습니다. 동파육에 죽순과 시금치 등의 부재료를 더하는 요리는 호북성 동쪽 지역에서는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요리이지요.
두 번째 음식은 황피샤오싼허(黃陂燒三合)입니다. 황피(黃陂)지방에서 먹던 음식이 근대 이후 인근 지역으로 퍼진 것인데, 생선살과 돼지살코기와 비계를 갈아 쪄낸 러우까오(肉餻), 생선완자 위완(魚圓), 고기완자 러우위안(肉圓) 세 가지를 넣어 볶아낸 것입니다. 홍색·황색·백색의 식재료가 어우러져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지요.
이창에서 유람선을 하선하여 서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싼여우둥(三游洞)이란 유적지가 나옵니다. 북에서 내려오는 샤라오허(下牢河)가 창장에 이어지면서 만들어낸 자그마한 반도에 있는 동굴인데, 깎아내린 듯한 양쪽 절벽이 절경을 이룹니다. 당나라 때에는 백거이(白居易)·백행간(白行簡)·원진(元稹) 세 사람이, 송나라 때는 소동파의 삼 부자가 와서 시를 읊었다는 연유로 싼여유둥이란 이름이 붙었답니다.
이 싼여우둥 정문 바로 건너편에 팡웡주자(放翁酒家)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팡웡(放翁)은 싼여우둥을 찾아 시를 남겼던 남송의 시인 육유(陸游)의 호입니다. 이 식당은 싼여우둥 절벽의 동굴 속에 있습니다. 입구나 통로, 창가의 식탁에서 수십m 아래의 창장 지류를 건너는 작은 현수교를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이 식당에서 주문할 수 있는 이 지방의 특색 음식을 소개해 드리죠. 우선 파이구오우탕(排骨藕湯)이 먹을 만합니다. 갈비를 토막 내어 물에 담갔다 건져서 물기를 빼지요. 팬에 기름을 두르고 갈비를 볶은 다음, 작은 단지에 넣어 물을 붓고 소금 간을 해서 끓입니다. 연근은 껍질을 벗겨 깨끗이 씻은 다음 마름모꼴로 썰어서 함께 넣고 끓이는데 그 깊은 맛이 아주 일품입니다.
이외에도 찻잎에 파를 넣어 깔끔하게 볶은 총쓰칭차오차이에(蔥絲淸炒茶葉), 밀가루에 야생 채소를 넣어 튀겨낸 이에차이빙(野菜餠)을 주문해 보시지요.
생선요리를 주문할 때는 몇 가지 요리법 용어를 익혀서 구사해 보십시오. ‘칭정(淸蒸)’은 생선을 양념하지 않고 그대로 쪄서 깔끔한 맛에 먹을 수 있는 방법이고, ‘훙샤오(紅燒)’는 간장을 넣어 붉게 조린 약간 간간한 맛이 나는 생선요리입니다. ‘간소(干燒)’는 새콤 매콤 달콤한 요리입니다. 생선을 고르고 양념을 한자로 써주면 잠시 후에 후베이의 미식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협곡의 동굴 식당에 자리를 잡고 후베이 음식 몇 가지를 주문해서 입맛을 즐기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삼국시대 유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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