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과학기술, 현대에 뒤떨어지지 않아
고진숙 <하늘의 법칙을 찾아낸 조선의 과학자들> 상세히 조명
예전 한의학에 관한 글을 올리니 한 독자는 "한의학은 미신이니 올리지 마시오"라는 독자의견을 달았다. 서양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 미신이라는 주장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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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법칙을 찾아낸 조선의 과학자들> 책 표지 © 한겨레아이들, 2006 |
"서양에서 예전엔 천동설이 과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천동설을 과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고, 지금은 이 지동설이 과학이 되었습니다. 이는 서양의 과학도 언젠가는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진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서양 과학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다고 미신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나라엔 과학도 없고, 그래서 과학자도 없다고 믿는 것이다. 또 그런 까닭으로 우리 것은 대부분 미신이라는 생각이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자세일까?
이에 대해 "아니다"라고 분명히 대답하는 책이 있다. 그것은 고진숙이 쓰고, '한겨레아이들'이 펴낸 <하늘의 법칙을 찾아낸 조선의 과학자들>이다. 이 책은 어린이책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괜찮을 만큼의 책일 것이다.
이 책에는 간의, 앙부일부 등의 천문기구를 발명한 이순지, 조선에 맞는 농사책인 <농사직설>을 펴낸 정초, 세계 최초로 규격화된 측우기를 발명한 이향(문종), 지구가 둥글고, 스스로 돌고 있음을 밝힌 김석문, 자동천문시계 혼천의를 발명한 홍대용, 예방접종으로 천연두를 극복한 지석영 등 조선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백성을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과학자의 길을 택했다. 특히 양반의 신분으로 중인이나 하는 길도 스스럼없이 택했음을 얘기했다. 특히 정초는 농사직설을 펴내면서 책상머리에서 짜내는 것이 아니라 함길도에서 전라도까지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농부들의 살아있는 지혜를 담아내려 애썼음을 보여준다.
그는 늘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을 보면서 무언가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 당시에 중국에서 들어온 <농상집요>라는 책이 있었지만 조선의 땅과 기후에 맞지 않아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 땅에 맞는 농사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조참판, 이조참판 등의 고위직에 있던 양반이었지만 무지렁이 농부 만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던 그의 노력이 빚은 귀중한 책이 바로 <농사직설>이라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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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 이향이 만든 세계 최초의 우량계, 측우기 오른쪽 : 영조 35년의 해성 관측보고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기록 © 한겨레아이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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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밖에 나갔다가도 볼일만은 집에 와서 봐야겠네"라는 말을 재미있게 그린 유준재 그림 © 한겨레아이들 제공 |
이렇게 조선의 과학자들이 무언가 남다름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의 장점은 참 많다. 특히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구수한 이야기책 형태가 바로 그 중의 하나이다.
홍대용이 실학자 박지원에게 월식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대는 장면을 이야기 쓰듯 풀어간다. 또 정초는 땅심을 키우기 위해 멀쩡한 밭을 묵히던 당시 사람이나 가축의 똥을 뿌려 매년 농사지어도 좋도록 한다는 한 농부의 지혜를 소개하고 "이제 밖에 나갔다가 볼일만은 집에 와서 봐야겠네"라면서 껄껄껄 웃는 장면을 만들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책의 곳곳에는 낱말의 설명과 유래, 관련 이야기를 별도의 상자에 담아 들려주는 친절함도 보이고 있다. 김석문과 코페르니쿠스를 비교해 보이기도 하고, 달력의 비밀을 풀어주기도 한다. 또 세계 최초의 규격화된 측우기를 조선에서 만들었음을 말하며, 조선이 미신의 나라가 아님을 역설한다.
이 책은 마지막 장인 지석영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과학은 무조건 옳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천연두를 극복한 큰 공을 세운 지석영을 부산시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부산을 빛낸 인물'에서 뺀다고 발표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더불어 독가스를 개발한 독일의 프리츠 하버, 마루타로 악명이 높은 731부대를 창설한 일본의 이시이 시로 등도 함께 예를 들며, 과학이 오히려 사람을 해치는 나쁜 구실도 할 수 있음도 밝힌다.
그리고 쪽마다 지루하지 않게끔 유준재 씨가 그린 친근한 그림은 읽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런 것들이 한번 책을 들면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대중서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면에 이 책도 약간의 흠은 있다. '규표와 노몬'처럼 어려운 설명이 있는가 하면, 우리 겨레의 중심 철학인 음양오행설을 설명하면서 음양오행설이 미신인듯한 오해를 줄 수 있게 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또 뜻이 같은 일본식 한자말 '애매'와 한국식 한자 '모호'를 같이 써서 '애매모호'라고 하는 잘못된 낱말을 쓴 점도 지적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흠이 이 책을 칭찬하는 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하늘의 법칙을 찾아낸 조선의 과학자들>은 누가 읽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번 여름엔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등산해보자.
조선의 과학이 뒤떨어지지 않았음을 알리고 싶었다. [대담] <하늘의 법칙을 찾아낸 조선의 과학자들> 저자 고진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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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법칙을 찾아낸 조선의 과학자들> 저자 고진숙 © 김영조 | - 어떻게 이 책을 내게 되었나?
"한번은 내 아이가 하늘색 컵을 달라고 해서 줬더니 그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회색 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서울에서 자란 아이에게 하늘은 파란색이 아닌 회색으로 비친다는 걸 깨닫고, 아이들이 올바로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을 내보고 싶었다.
특히 평상시 관심을 두었던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아이들에게 비춰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과학(천문기상학)을 공부한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을 매개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이 과학이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 이 책을 쓰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과학이란 말은 18세기에 생겼다. 그 이전엔 자연철학이 개념이었다. 따라서 과학을 하기 위해선 철학을 공부해야만 했다. 그러는 중에 홍대용과 김석문이 찾으려 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또 당시 지식인들이 철학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 뒤부터 나는 자연과 우주에 끊임없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 조선의 과학이 당시 서양과학에 비해 뒤떨어졌다고 생각지는 않는지?
"우리의 현대과학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런 탓인지 많은 사람은 서양과학은 옳고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발전지상주의, 과학지상주의에 파묻혔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서양과학을 꿰뚫어보면 서양과학이 늘 옳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조선의 과학은 나름대로 철학과 특징이 있었기에 서양과학과 비교우위를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 이 책에는 측우기를 발명한 문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이는 이 문종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뛰어난 천재 세종임금의 그늘에서 문종은 자랐다. 그래서 지도력이란 측면에서 보면 세조보다는 문제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상으로야 세조가 왕권을 빼앗지 않고, 단종을 도와 지도력을 발휘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역사는 당시의 시스템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세종 말기엔 세종이 당뇨가 심해 세자였던 문종이 10여 년 동안 대신 정사를 보았기 때문에 실제 집권기간은 1년이 아니라 10년이 넘는다."
- 이 책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 것은 '다 싫다'다. '나쁘다'란 자격지심을 가지기도 하며, 특히 과학은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하지만, 김치, 된장 등은 대단한 과학이며, 우리 과학이 뒤떨어지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우리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우리나라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조상의 슬기로움을 통해 스스로 자부하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고민해 줄 것을 부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