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바의 하얀 토끼’ 고향은 고구려
언어학적으로 토끼와 관련된 고구려 언어가 사할린·홋카이도 지역에 영향
|
고대 한국어의 어근을 추적하면 고구려의 영향력이 동해를 지중해 삼아 훗카이도, 사할린의 고아시아족에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다. |
한 종족 집단의 문화적 유산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속에 보존돼 있다. 유전학에서 DNA의 역할은 언어학에서 단어의 어근과 비슷하다. 내가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하는 24일간의 답사 여행에 참가한 목적은 이른바 ‘코리안 루트’ 주변에 남아 있는 한국어의 ‘언어 유전자’를 찾는 것이었다. 역사적 유물과 유적은 사라질 수도 있지만 단어 어근은 그 언어를 여전히 사용하는 한 계속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토끼와 거북이’ 세계 곳곳서 내려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토끼 이야기'에서 토끼는 트릭스터이자 메신저다. '이나바의 하얀 토끼'도 동해를 건너 고구려 제국의 문화와 문명을 일본 열도에 알린 메신저였다. |
고대 한국어의 어근들을 포함한 알타이어 어근들의 목록을 완전하게 작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중국에 있는 만주-퉁구스들은 더는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빠른 속도로 중국에 동화해가고 있다. 그보다는 덜하지만 내몽골인들 역시 중국에 동화해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고대 한국어의 어근을 찾는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믿는다면, 언어도 인류가 수만 년 동안 이동하고 교류하면서 분화한 결과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아프리카처럼 먼 곳의 언어 속에서도 우리 동아시아와 연결되는 언어 코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한국어의 유전자를 찾는 일을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서부 아프리카의 깊숙한 내륙에 위치한 북부 나이지리아의 여러 마을에서도 채집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오지에까지 퍼진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이솝 우화가 사하라 사막을 거쳐 내려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의 경로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즉 원래의 아프리카 이야기가 사하라 사막을 타고 올라가 지중해 세계로 전해져서 그리스의 이솝이 기록으로 남긴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토끼는 하나의 트릭스터(trickster, 속임수나 장난으로 질서를 어지럽히는 신화적 형상)다. 토끼는 상대방을 터무니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어 놀리고 조롱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결국 토끼의 이런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어리석은 상황에 빠지게 한다. 토끼는 경기 상대인 거북이를 조롱하지만, 도중에 잠을 너무 많이 자 결국 거북이에게 지고 만다. 이솝은 분명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는, 혹은 자신의 능력에 자만하지 말라는 도덕적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토끼의 트릭스터 성격은 ‘이나바의 하얀 토끼(因幡の白うさぎ)’라는 일본 이야기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이 이야기는 신화 범주에 속한다. 왜냐하면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에 모신 오오쿠니누시노카미(大 神)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나바(因幡), 혹은 인슈(因州)는 사닌도(山陰道)의 고대 지방 8개 중 하나이며, 돗토리 현(鳥取縣) 동부 지방의 옛 지명이다.
‘이나바의 하얀 토끼’는 바다를 건너가고 싶어했다. 자기의 고향 땅 고구려를 방문하기 위해 고구려의 동지중해(동해)를 건너서 말이다. 그래서 그는 와니자메(鰐鮫)라고 불리는 무서운 상어들을 모아놓고 그 등을 건너 뛰어 가려고 한줄로 늘어 놓으려는 꾀를 부렸다. 그러나 상어들이 그 꾀를 알아채고 토끼를 잡아 털과 가죽을 모두 벗겨버리고 만다.
바닷가에 발가벗겨진(赤裸, あかはだか, aka-hadaka, 발가벗다, 알몸뚱이) 채 있는 토끼를 발견한 오오쿠니누시노카미가 토끼를 도와주었다. 오오쿠니누시노카미는 기키 신화(記紀神話, 서기 712년 백제 귀족인 오오노야수아마로(大野安麻呂)가 편집한 ‘코지키(古事記)’ ‘キ’와 720년 쓰여진 ‘니혼쇼키(日本書紀)’)에 나오는 주요 신 중 하나다.
아무르강 길략족 언어서도 발견
오오쿠니누시노카미는 고구려 출신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 신은 아시하라 노 나카투쿠니(葦原あしはらの中つ )라는 나라를 세웠고, 나중에 왕위를 물려주고 이즈모타이샤로 은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러시아 부리야트공화국 울란우데 부근 부교도 마을의 민속 공연.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
미키 마우스나 도널드 덕 같은 동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영어를 알건 모르건 이 단어들에 포함돼 있는 ‘마우스(mouse)’와 ‘덕(duck)’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강력한 나라의 문화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먼 지역에까지 급속히 퍼져가는 것이다.
동아프리카 스와힐리어(Swahili)로 ‘책(book)’은 ‘키타부(kitabu)’인데, 서아프리카 하우사어(Hausa)로는 ‘리타피(littaafi)’이다. 이것들은 원래 아랍어 ‘kitaabu(-n)’나 아랍어 정관사 ‘al-(the)’을 갖고 있는 ‘al-kitaab’에서 온 것이다. 물론 ‘책(The Book)’이란 모슬렘에게는 성서인 코란(the holy book, al-Qur’an)을 뜻하는 것이다. ‘al-kitaab’는 모로코 아랍어(Moroccan Arabic)로 ‘ilktaab’인데, 서부 아프리카에서 ‘*liktaaf’로 바뀌었으며, 그것들은 오늘날의 현대 하우사어(Modern Hausa)와 많은 다른 북부 나이지리아의 언어에서 ‘littaafi’로 남아 있다.
우리의 불쌍한 ‘이나바의 하얀 토끼’는 일본어로 ‘이나바노 시로 우사기’다. ‘토끼(hare, rabbit)’란 단어는 고대 및 현대 일본어로 ‘兎· うさぎ?おさぎ usag-i < osag-i’다. 고구려어로 ‘토끼’는 ‘烏斯含 *osag-am’이다. 한국어 ‘토끼<톳기 thoski’에서 ‘-oski’부분은 고구려어 및 일본어와 유사하지만, 중국어 ‘[ 토]tho-’가 그 앞에 붙어 있어서 중국어-한국어 합성어(Chinese-Korean compound)가 만들어졌다.
규슈 대학의 이타바시(板橋義三) 교수에 따르면, 토끼와 관련한 이 고구려어 단어는 니브흐어(Nivh)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이 니브흐어는 아무르 강 하류에 사는 길략족(Gilyak) 사람들의 언어인데, 이들은 토끼를 ‘오스크(osk)’라고 하며, 그로부터 사할린과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족(Ainu) 사람들의 언어로 ‘오스케(oske, 兎)’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영향력이 고구려의 지중해를 건너 남쪽의 이즈모(出雲)로부터 북쪽의 사할린에까지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윤명철 교수가 보여준 통일신라와 발해(서기 698년~926년) 지도(우리 역사지도, 2006년)는 이런 상황을 매우 잘 형상화하고 있다.
일본에는 ‘이나바의 하얀 토끼’와 ‘토끼와 달’에 관한 어린이 동요가 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兎, 兎, 何見て跳ねる? 十五夜お月樣見て跳ねる. (토끼야, 토끼야, 무얼 보고 높이 뛰니? 둥근 보름달 보고 높이 뛰지.) |
프랑스에도 ‘Au clair de la lune, mon ami piero’(달빛 아래 나의 친구 피에로)란 동요가 있다. 영어의 ‘lunatic(머리가 좀 돈)’은 프랑스어 ‘la lune(달)’에서 기원한 것이다. 한낮의 더운 날씨가 지나고 보름날 밤의 시원한 달빛 아래 인간은 모두 낭만적으로 바뀐 것이다. 토끼가 뛰어오르면, 아이들은 춤추기 시작한다. 젊은 연인들은 들떠서 서로 꼭 껴안는다. 피에로(어릿광대)의 성격은 ‘우스운(comic)’ 것이기도 하고 또 ‘슬픈(sad)’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토끼의 트릭스터적 성격은 피에로의 성격과 다소 유사하기도 하다.
城에 해당하는 일본어 한국어에 기원
대보름 십오야(十五夜)는 한국인들에게 특별하다. 하지만 왜 달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는 것일까. 언어학적으로 그 해답을 풀어보기로 하자. 일본어로 ‘떡방아 찧기’와 ‘보름달’은 발음이 거의 똑같다. 즉 ‘모치 투키(餠搗もちつき, 떡을 침)’와 ‘모치 두키(望月もちづき, 보름달)’다. 보름달 ‘모치 두키’ 안에 토끼의 형상이 있다고 상상해보면, 그 모습은 마치 떡방아 찧는 ‘모치 투키’의 모습인 것이다.
한국어로 ‘보름(달)’은 일본어로 ‘모치(두키)’다. 그래서 ‘떡은 ‘모치(餠, もち)’다. 이 두 한국어 단어의 어두자음 ‘p-’는 고조선어(Old Chosun)에서 기원한 것이며, 그 고조선어는 고구려어에서 ‘m-’으로 바뀌었다가 앞에서 말한 2개의 일본어 단어 형태로 남은 것이다.
일본에는 한국식으로 지은 성과 요새들이 남아 있다. 내가 예전에 산책을 다니던 후쿠오카 현(福岡縣)에 있는 오오노조우 성(大野城)은 전형적인 조선식 산성이다. ‘성(castle)’이나 ‘요새(fort)’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3개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한국어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고대 일본어 サシ(sas-i <*cas-i, ‘니혼쇼키’ 神功紀 五年 등)다. 이것의 한국어 형태는 자시라(cas-ira, ‘月印釋譜’ 第一六)와 잣(cas, ‘訓蒙字會’ 八)이다. 이렇게 볼 때 아이누어(Ainu) 형태인 チャシ(cas-i)는 일본어를 거쳐 온 것이 아니라 한국어에서 직접 차용해온 것임에 틀림없다.
아프리카에서 토끼는 트릭스터이기도 하지만 또한 누가 오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닥쳐오는지를 빨리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전달자(messenger), 혹은 예고자(harbinger)로 알려져 있다. 토끼는 고구려의 지중해를 건너서 다가오는 고구려 제국의 문화와 문명을 일본 열도에 살고 있는 조몽시대 사람들과 아이누족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고구려 사람들이 지중해를 건너가면서 한국식 성과 요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은 새로운 지배자가 진출해 세운 중요한 기지로, 새로운 문명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고구려 제국이 사라지고 1000년 이상이 지난 후에도 고구려어에서 기원한 이야기와 단어들은 옛 영토와 그 영향권 아래 있던 지역들에 여전히 남아 있으면서 우리들에게 고구려 제국의 영광을 말해주고 있다.
※ 본문 내용 ‘떡은 ‘모치(餠, もち)’ 다.에서 떡은 뒤 ‘모치(餠, もち)’ 앞에 아래그림이 들어간다 .
<시미즈 키요시 순천향대 초빙교수, 극동대 겸임교수·언어학>
시베리아 대륙 동토의 문명들
신석기시대부터 뛰어난 문화 태생… 청동기문명 한반도·만주 등에 파급
|
레나 강 살류 카축 지역의 쉬시킨스키 암각화. |
시베리아는 추운 곳이다. 겨울에는 정말 춥다. 1월 평균 온도가 남시베리아는 -16℃, 야쿠치아는 -48℃다. 그러나 여름에는 따뜻하다. 봄이면 땅속은 얼어 있어도, 땅 위는 새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여름이면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일광욕도 한다.
예니세이 중·상류 선사문화 발달
|
북방유라시아 문화 유적 분포 |
시베리아의 남쪽 지대는 유목 문화권에 속했다. 예를 들면, 기원전 7~3세기의 선(先)흉노-스키타이 시대에 알타이 지역에는 파지릭 문화가, 예니세이 강 상류 지역에는 타가르 문화가 각각 분포했다. 이 두 문화에는 소위 스키타이 3요소라는 모든 문화 요소를 다 갖추고 있어, 흑해 북안 우크라이나 지역의 본원적인 스키타이 문화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선흉노-스키타이 세계에는 동쪽의 오르도스 지역 모경구 문화도 포함되고, 그 문화 요소들은 중국 하북성 북부 지방에까지 확인된다. 고조선은 이곳에서 유목민들과 국경을 접했을 것이니 그 문화 요소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반도를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에 널리 보이는 아키나크 모양의 마제석검은 바로 유목민의 문화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시베리아와 관련이 있다고 할 때는 사실 그 넓은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을 말하는지 파악하기가 힘든 때가 있다. 시베리아는 넓고, 지역마다 문화가 서로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에는 바이칼 유역의 세로보 문화를, 청동기시대에는 예니세이 강 상류지역의 카라수크 문화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초기 철기시대에는 타가르 문화나 파지릭 문화를 거론하기도 한다. 우리가 스키타이 문화라고 한 것은 사실 헤로도투스가 말한 흑해 북안의 그 스키타이가 아니라 스키타이 문화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사카 문화,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 그리고 예니세이 강 유역의 타가르 문화였으며, 가깝게는 오로도스 지역의 모경구 문화였다.
시베리아에서는 예니세이 중·상류 지역이 가장 발달된 면모의 선사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미누신스크 분지가 있다. 구석기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화가 발달했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는 타스민 문화, 아파나시예보 문화, 오쿠네보 문화, 안드로노보 문화, 카라수크 문화, 타가르 문화가 일부 공존하기도 하면서 차례로 등장했다.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유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예니세이 강과 레나 강 상류 사이에 자리 잡은 말타 유적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매머드의 상아로 만든 여인상과 새(鳥)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베리아에는 또한 암각화 유적이 수없이 분포한다. 예니세이 강 유역에는 바야르 암각화와 쉬쉬카 암각화가 있다. 특히 바야르 암각화에는 소도 그려져 있고, 천막도 그려져 있고, 또 솥도 그려져 있다. 구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의 그림이 있다. 암각화는 레나 강 유역에도 많다. 카축 암각화와 나린얄가 암각화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 강변을 따라 나 있으며, 암벽에 동물을 새기기도 하고 그리기도 했다.
시베리아 청동기문화 몽골서도 확인
|
'말타의 비너스',안드로노보 문화 토기, 아파나시예보 문화 토기(오른쪽부터 시계방향). |
시베리아의 청동기 문화를 연 것은 기원전 3000년 중엽~2000년 초의 아파나시예보 문화다. 이 문화는 미누신스크 분지를 중심으로 하지만 관련 유적들이 동쪽으로 몽골에서까지 확인되었다. 당시 이 지역의 주변 타이가와 삼림초원지대에서는 아직 석기시대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파나시예보 문화인들은 청동으로 칼, 송곳, 장신구 등을 만들어 사용했고, 금과 은도 알고 있었다. 토기는 바닥이 둥글거나 뾰족한 것이 많았으며, 향로도 만들어 썼다. 무덤은 토광에 적석을 하고 둘레에는 호석을 두른 것이었다. 신석기시대 타스민 문화인들이 남긴 석상에 황소를 새기기도 했다. 이들은 사냥과 어로 이외에 소와 양, 말을 사육했다. 목축에 종사한 것이었다. 예니세이 강 중·상류 지역의 청동기문화는 그 유물이 청동기시대 초기의 일반적인 양상이므로, 자생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이는 사얀-알타이 지역에 천연 동광석이 풍부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베리아 지역은 이후 오쿠네보 문화 단계를 거쳐 안드로노보 문화와 카라수크 문화로 넘어간다. 안드로노보 문화는 그 중심 지역이 지금의 카자흐스탄 지역이기 때문에 시베리아와는 약간 무관한 느낌을 주기도 하나, 예니세이 강 유역도 이 문화권에 포함됐다. 안도로노보 문화 자체는 기원전 17세기에 시작됐지만, 예니세이 강 유역의 안드로노보 문화는 대체로 기원전 14~12세기로 편년된다. 안드로노보 문화는 번개무늬 토기가 가장 큰 특징이다. 지금으로부터 6000~7000년 전의 아무르 강 유역 토기와 신석기시대 후기 연해주와 두만강 및 압록강 유역 토기에도 그와 꼭 같은 번개무늬가 새겨져 있다. 아랄 해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신석기-청동기시대에 동일한 문양 모티브를 사용한 것이다.
기원전 14/13~8세기의 카라수크 문화는 광대한 시베리아는 물론이고, 서쪽으로 멀리 우크라이나 지역까지, 남서쪽으로 카자흐스탄 지역까지, 동쪽으로는 중국 북방 지역과 동북3성, 한반도 그리고 연해주에까지 깊은 영향을 끼쳤다.
똑같은 청동손칼 한반도에서도 출토
나린얄가 암각화를 조사하는 탐사단. |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둥근 고리 모양의 손잡이가 있는 손칼이 우리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평북 용천 신암리 유적에서 시베리아 예니세이 강 유역의 것과 꼭 같은 청동 손칼이 출토되었다. 비파형동검보다 더 이른 시기의 청동 유물로서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청동 유물 중의 하나다. 카라수크의 손칼은 연해주에도 보인다. 이 시기 북방유라시아 대륙은 그야말로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카라수크 문화라는 강풍이 휩쓸고 있었고 한반도를 포함한 극동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연해주와 한반도의 청동기문화는 그 시작이 시베리아 예니세이 강 유역의 카라수크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연해주와 한반도의 이른 시기 청동유물은 많은 부분 카라수크 문화와 공통성을 띤다. 앞의 청동 손칼이 그러하고, 청동기시대 전기의 검신이 세장한 삼각형 모양인 마제석검이 그러하다.
시베리아의 바람은 이후 초기 철기시대인 선흉노-스키타이 세계에서 더욱 세차게 불었다. 남시베리아 지역에서 발생한 ‘스키타이’ 동물 양식과 같은 문화 요소들이 서쪽로는 카르파트 산맥에까지 이르고, 동쪽으로는 하북성 북부지역까지 도달하여 북방유라시아 대륙을 소위 ‘스키타이 문화’로 뒤덮었다. 나는 기원전 7~3세기의 이 문화권을 모두 통칭하여 ‘선흉노-스키타이 세계’라고 부른다. 이 시기 고조선은 카라수크 문화에 뒤이어 바로 선흉노-스키타이 세계와 인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 고조선을 대표로 하는 ‘환(環)만주문화권’은 비파형 동검이라는 독특한 청동단검 문화를 창조했지만, 역시 서쪽의 유목민 문화 요소를 전혀 모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시베리아는 동서 길이가 약 7000㎞, 남북 길이가 약 3500㎞, 면적이 약 1000만㎢로 정말로 엄청난 크기다. 크기만큼 시공에 따른 문화 양상 또한 지극히 다양했다. 신석기시대부터 뛰어난 문화를 태생시킨 시베리아 대륙은 계속해서 새로운 문명을 태동했으며, 그 영향은 청동기시대에 이르러서는 북방유라시아 대륙을 모두 포괄할 정도였다. 한반도와 만주지역 그리고 연해주도 그 시베리아의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교수·고고학>
'문화&사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성동의 현대사 아리랑_04 (0) | 2010.02.28 |
---|---|
조선시대의 과학기술, 현대에 뒤떨어지지 않아 (0) | 2010.02.27 |
거꾸로 보는 도덕경 (0) | 2010.02.25 |
란보라의 중국속으로_01 (0) | 2010.02.20 |
공자에게 경영을 묻다_01 (0) | 2010.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