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윤제학_진봉산 망해사

醉月 2011. 6. 19. 11:02

전북 김제 진봉산 망해사

無常(무상)으로 영원한 바다를 본다

 


‘김만경’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지요. 사람 이름은 아닙니다. 한 글자를 더 붙여 ‘김만경뜰’이라고 하면 확실히 감이 올 겁니다. 김제·만경평야를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더군요. 이 고장 말로는 ‘징계 맹경 외애밋들’이라고 한답니다. 김제 만경의 너른 들을 일컫는 말이겠지요.

‘바다를 바라보는 절’ 망해사(望海寺)-.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바다가 보이지 않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 나들목에서 나와 만경읍을 거쳐 진봉면으로 가는 그 길은 들판 가운데로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정점, 만경평야를 가로지르는 길입니다. 가을걷이를 끝낸 텅 빈 들녘에는 청보리 싹이 하늘을 담고 있더군요. 쌀 수입 때문에 시름 깊은 농민들에게 그 푸른 싹이 위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차를 세우고 들판을 거닐어 봅니다. 바둑판의 금 같은 수로와 도로를 따라 선 전봇대가 솟대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으로 하여 들판의 수평성은 무한히 확장됩니다. 점점이 흩뿌려진 듯한 집들은 상당히 이국적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땅덩어리가 얼마나 좁았으면, 하고 자조할 일은 아닙니다. 산이 워낙 많은 나라에 사는 탓이겠지요. 

다시 들판을 달리자 야트막한 구릉 사이로 망해사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나타납니다. 초입은 소나무 숲길입니다. 짧지만 운치 그윽한 숲길이 허리를 낮출 즈음, 홀연히 한 바다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곁에 망해사가 바다를 보고 앉아 있습니다. 한참을 달려온 들판의 느낌은 어느 새 다 지워지고, 산과 바다와 절만이 한가롭습니다.

망해사는 작은 절입니다. 전각이라 해 봐야 주불전인 극락전과 낙서전(樂西殿), 종각, 그리고 요사가 전부입니다. 절의 규모나 문화재에 관심을 둔 탐방객이라면 아주 실망할 수도 있는 절입니다. 하지만 참으로 절다운 절입니다. 그 절다움은 낙서전(樂西殿)으로 하여 선명해집니다. ‘해 지는 서쪽을 기꺼워한다’는 이 ‘거대한 소박’ 앞에서 오늘 우리들의 ‘비만한 풍요’는 얼마나 초라한가요.

“낙조는 해가 산 넘은 뒤가 더 아름다워”

 
망해사가 등을 기대고 있는 진봉산은 구릉에 가깝습니다. 해발고도라 해봐야 72m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산기슭의 우람한 소나무들이 워낙 훤출하고 울울하여 깊은 산처럼 느껴집니다.

“진봉산요? 이곳에서는 얼마나 대단한 산인데요.”

주지 정국 스님의 말입니다. 스님의 말대로 진봉산은 예로부터 대단한(?) 산이었습니다. 대동여지도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경현 조에도 진봉산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절의 소재지인 진봉면의 이름도 이 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망해사는 산과 바다 혹은 땅과 물 사이에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인간이 온전히 자연에 깃들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건대, ‘해 지는 서쪽을 기꺼워할 수밖에 없는(樂西)’ 심미적 환기력으로 충만한 절이 바로 망해사입니다.

망해사는 시적인 절입니다. 자연이 빚은 절정의 시어(詩語)가 무시로 빛납니다. 그 몇 토막을 정국 스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차를 마시며 툭툭 던지듯 내뱉는 스님의 말투는 시인의 그것이었습니다.

“낙조는 해가 산을 넘고 난 뒤가 더 아름다워요.”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자 낙서전 뒤로 녹차의 뒷맛 같은 노을이 걸려 있습니다.

“해는 가을부터 작아지면서 더 해맑아져요. 겨울요? 회초리로 맞는 것 같은 싸한 바람 맛이 좋죠. 그것을 즐길 줄 모르면 살기 힘든 절이지요.”

스님은 시인 기질 못지않게 선동가 기질도 다분했습니다.

“달은 보름보다 열나흘이 더 좋아요. 약간 모자란 듯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이 더 좋지요.”

 


우리는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음력 10월13일이어서 스님 말대로 약간 빈 달이 들판을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무작정 차를 몰고 들판을 가로질렀습니다. 광활면을 지나는 들판은 이름 그대로 광활(廣闊)했습니다만, 한자는 廣活이라고 씁니다. 그런데 광활면 일대는 대부분 개펄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인들이 동진강 하구에 방조제를 쌓고 경작지로 만든 수탈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본디는 진봉면에 속해 있다가 해방 뒤 1949년에 광활면으로 분리됐습니다.

김제·만경평야는 해남 대둔산에서 발원한 만경강과, 정읍 상두산에서 발원한 동진강이 남과 북을 감싸듯 흐르며 서해로 흘러드는 사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강이 만나는 곳이 바로 새만금입니다. 이제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끝나면 망해사 앞 바다는 엄격한 의미에서 바다가 아닙니다. 물이 통하기는 한다지만 역동성이 거의 없는 바다가 되겠지요.

 

과거 동진강 방조제가 일인들의 수탈 행위였다면, 21세기의 새만금 방조제는 문명의 수탈입니다. 망해사가 그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후대의 사가들은 문명의 둑으로 막힌 새만금의 바다에서 21세기의 비극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나마 절망적이지 않은 것은 완전히 물을 가두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연의 끝없는 생명력에 희망을 걸어 봅니다.

그런데 이 매력적인 곳에 처음 절을 세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통일신라시대인 754년(경덕왕 13)에 중국에서 온 중도(中道) 스님이 세웠다는 설도 있고, 백제 후기의 도장(道藏) 혹은 통장(通藏) 스님이 세웠다는 설도 있습니다. 현재 절에서는 671년(신라 문무왕 11)에 부설 거사가 세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589년(조선 선조 22)에 진묵 스님이 낙서전을 지은 이후 1933년과 1977년에 고쳐 지었고, 극락전은 1991년에 중창한 것입니다.

현재 절에서 부설 거사를 초창자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부설 거사가 도를 이룬 곳은 옆 동네인 부안 변산의 월명암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사에는 전설적인 세 거사가 있습니다. 인도의 유마힐, 중국의 방온, 그리고 한국의 부설 거사가 바로 그들입니다. “중생이 앓고 있으므로 나도 앓는다”는 대승 선언으로 널리 알려진 유마힐. 전재산을 바다에 버리고 대바구니를 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당대의 이름난 선사들을 통쾌하게 꺾어버린 선의 고수 방온. 이들 거사의 행적이 높게 빛난다면 부설 거사의 삶은 인간적으로 아름답습니다.

 


벙어리 처녀 입을 연 부설 거사의 법문

거사로 출가한 부설 거사(당시는 거사가 아니었지만)는 도반 영희(靈熙)·영조(靈照) 스님과 함께 지리산·천관산·능가산 등지서 수행하다가 문수도량을 순례하기 위해 오대산으로 향했습니다. 가던 길에 거사는 지금의 김제 만경의 두릉에서 구무원(仇無寃)이라는 사람의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18살이 되도록 벙어리로 살던 구씨의 딸 묘화(妙花)가 거사의 법문을 듣고 말문이 터졌습니다. 묘화는 함께 살기를 간절히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거사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묘화는 자살 기도로 자신의 입장에 충실했습니다. 거사는 “중생이 앓고 있으므로 나도 앓는다”는 유마의 선언을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거사는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두 아이를 부인에게 맡기고 수도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결코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 매몰되지 않았습니다. 속에 처하되 그것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훗날 옛 도반 영희와 영조가 찾아와 도력을 시험했을 때, 대들보에 매단 물병을 깨뜨려 물을 떨어지지 않는 것은 거사의 것밖에 없었습니다. 살활(殺活) 자재의 경지에 든 것입니다. 거사는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남기고 좌탈하였습니다.

눈으로 보는 바 없으니 분별할 것이 없고
귀로 듣는 바 없으니 시비 또한 사라지네.
분별 시비는 모두 놓아 버리고
다만 마음 부처 보고 스스로 귀의할지라.

目無所見無分別 耳聽無聲絶是非
分別是非都放下 但看心彿自歸依

거사가 바라봤을 그 바다를 지금 우리도 보고 있습니다. 물이 들 때는 시끄럽고, 물이 나가고 나면 호수 같기도 한 바다입니다만, 한 순간도 출렁거림을 멈춘 적이 없는 바다입니다. 무상(無常)으로 영원한 자연이 거기에 있습니다.


망해사는 한가한 절입니다. 그러나 그 한가함을 즐길 뿐 탐하지는 않습니다. 풍경 소리 대신 바람을 몰고 오는 밀물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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