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생활속의 심리학_김경일교수

醉月 2011. 6. 24. 10:04

 

대뇌의 좌반구와 우반구의 심리적 기능분화

몇 년 전만 해도 대학생들에게, 우리의 “마음”에 해당하는 신체 부위가 어디겠는가 지적하도록 물으면, 십중팔구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곤 했다. 아마도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하는 마음의 변화가 스스로 심장 박동의 변화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마음의 기관으로 자신의 머리를 지적한다. 우리의 대뇌, 포괄적으로 표현하면 신경계가 환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심리적인 경험을 만들어내는 주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요사이 사회적으로 치매 등과 같은 뇌 관련 질환이 널리 알려지고 있고, 특히 뇌의 중요성과 중추신경계와 관련한 신경과학 지식이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여러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거나 과대 해석하는 신경심리학적인 주제가 있으며, 바로 이번 글의 주제, 즉 좌우반구의 심리적 기능 분화에 관한 것이다. “좌뇌 보다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우뇌를 발달시켜라”라는 식의 장사 속 주장이 돌아다니고 있으며, 대뇌 반구의 분화가 마치 서로 다른 마음이 존재하는 것처럼 잘못 이해되고 있다.

 

 

대뇌 피질은 뇌량으로 연결되어 통합적으로 작용한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생물학 지식을 동원해 보자. 우리 인간의 정보처리 체계는, 머릿속에 있는 대뇌와 여기에 연결된 등뼈 속에 있는 척수로 구성되는 중추신경계와 여기서 신체의 각 말단에 연결되는 말초신경계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대뇌도 피질, 시상, 소뇌, 편도체, 변연계 등과 같은 여러 하위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생리심리학자들은 기억하고 학습하고 사고하는 것과 같은 우리의 정신 작용과 심리적 경험이 중추신경계의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구분해내려고 노력해 왔다. 최근에는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와 같은 장치를 통해 우리의 심리적 작용이 일어나는 대뇌의 국소 위치를 찾아가고 있다.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우리 인간의 고등 정신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뇌 피질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즉 두 피질이 거의 대칭적인 구조로 나뉘어져 있고, 이 부분이 하부의 뇌량이라는 신경섬유 다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구조적인 특징에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많은 양의 피질을 좁은 두뇌 공간에 넣다 보니 생긴 부산물일까? 왜 두 반구로 나뉘었을까? 서로 담당하는 기능을 구분할 필요가 있어서일까?

 

 

대뇌의 좌우반구: 대뇌 피질은 대칭적인 구조의 두 반구로 분리되어 있지만 뇌량이라는 신경섬유 다발로 연결되어 있다. <출처 : wikipedia>


대뇌 피질이 두 개의 반구로 분리되어 있지만, 뇌량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의 정보가 전달되며 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즉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두 반구는 대부분 함께 기능하기에, 한 반구만 쓰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단지 두 반구의 기능을 분리해 낼 수 있는 특별한 사례가 있다. 뇌에 종양이 있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외과적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대표적인 예가 심각한 난치성 간질을 앓는 환자라고 한다. 한 대뇌 반구에서 시작한 비정상적인 신경 흥분 혹은 발작이 뇌량을 건너 다른 반구로 전달되고, 다시 이 발작이 원래 반구로 전달되는 피드백 고리를 이루며, 마치 전체 뇌에 대폭발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여 환자를 기절시키고, 심지어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간질 발작이 심각할 경우, 이를 치료하기 위해 외과 의사들은 뇌량을 절단하여 두 반구가 분리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한 반구에서 시작한 발작이 그 반구에 한정되기에 발작 증상을 완화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술을 받은 환자는 소위 말하는 “분리된 뇌(split-brain)”를 갖게 되는 것이고, 이 환자를 통해 좌우 반구가 서로 다른 심리적 기능을 하는가를 탐구할 수 있게 된다.

 

 

분리된 뇌 환자의 실험

노벨상 수상자인 로저 스페리(Roger Wolcott Sperry)와 동료들은 분리된 뇌 환자의 행동을 조사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하였고 그 결과 좌반구와 우반구가 서로 다른 심리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많은 정보가 밝혀졌다. 여러분에게 다시 강조하지만, 정상적인 뇌를 가진 사람에게는 좌반구로 들어간 정보는 우반구에 전달되고 우반구에 들어간 어떤 정보라도 좌반구에 전달된다. 단지 분리된 뇌 환자의 경우에만, 한 반구에 들어간 정보가 뇌량이 절단되었기에 다른 반구로 전달될 길이 없는 것이다. 실험 결과가 시사하는 바를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실험 상황자체와, 우리의 시각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신경 회로의 해부학적인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앞에 놓인 화면 스크린의 가운데 있는 점 하나를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응시하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이 응시점의 왼쪽에 그림이나 글씨를 제시하면, 이는 좌반구에만 전달되고, 반대로 화면의 오른쪽에 제시한 것은 우반구에만 전달된다. 응시점이 눈의 망막의 초점(혹은 중심와, fovea)에 고정될 때, 안쪽 즉 코 있는 쪽의 망막 부분에 도달하는 정보는 반대쪽으로 교차해서 전달되고, 코 바깥쪽 망막 부분에 떨어지는 정보는 같은 방향 그대로 대뇌에 전달되는 신경해부학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고 분리된 뇌 환자를 실험 참여자로 사용하여, 한 반구에 특정한 정보를 전달하고,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환자에게 스크린의 중앙에 있는 점을 바라보게 한 후 스크린의 좌측 혹은 우측에 단어 혹은 그림을 제시하여 그 정보를 한 반구로만 전달할 수 있고, 환자에게 여러 반응을 하도록 요구하여 좌우 반구의 특성을 살펴 볼 수 있다.

 

열쇠 그림은 분리된 뇌 환자의 좌반구에만 전달되어 환자는 어려움 없이 열쇠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지만
우반구에 의해 통제되는 왼손으로 자신이 방금 본 것을 집는 행동에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분리된 뇌 환자의 왼쪽 시야에 열쇠 그림을 보여주었다고 하면 이 정보는 좌반구에 전달 될 것이다. 이 환자에게 제시된 것이 무엇인지 말로 설명하게 하면 어려움 없이 열쇠에 대한 설명을 한다. 정보가 전달된 좌반구가 언어를 담당하는 반구이기 때문에 환자는 방금 자신이 본 것을 말로 설명하는 데 어떤 어려움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환자에게 스크린 뒤로 왼손을 뻗어 방금 자신이 본 것을 여러 물건들 중에서 찾아 집어 보라고 지시했다고 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환자가 이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을까? 한 가지 여러분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왼손은 우반구에 의해 통제되며 오른손은 그 반대라는 점이다. 열쇠 그림은 좌반구에만 전달되었고, 뇌량은 절단되었으며, 왼손 통제는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은 우반구에 의해 일어나야 한다. 독자들도 충분히 결과를 추측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분리된 뇌 환자는 그림을 보고 말로 설명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에 해당하는 물건을 왼손으로 찾아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좌반구의 왼쪽 마음이 우반구의 오른쪽 마음과 따로 노는 셈이다.

 

물론 우반구에 전달된 정보도 비슷한 반대의 결과를 일으킨다. 환자의 오른쪽 시야에 친숙한 물건, 예를 들어 반지 그림을 보여주며 왼손으로 여러 물건들 중에서 골라 찾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물건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동작을 보여 줄 수 있지만(즉 반지를 손가락에 끼는 것과 같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 물건에 관해서는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우반구에 들어간 반지 정보가 언어 산출을 통제하는 좌반구로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반구의 분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실험 결과도 있다. 한 사람의 얼굴의 왼쪽과 다른 사람의 얼굴 오른쪽을 합성하여 만든 얼굴 사진을 가운데 응시점 좌우에 제시되도록 그림을 보여 주면, 분리된 뇌 환자는 자신이 두 얼굴 모두를 보았다고 답하게 된다고 한다. 어느 얼굴을 보았는가를 말하게 하면 왼쪽 시야에 제시되었던, 즉 좌반구에 전달된 사람을 보았다고 말하고, 어느 사람을 보았는지 왼손으로 가리키게 하면 오른쪽 시야에서 본 즉 우반구에 전달 사람을 선택한다고 한다. 왼쪽 얼굴에 관한 정보는 좌반구로 전달되고, 우측의 얼굴에 관한 정보가 우반구에 전달되기 때문에 두 사람 얼굴을 모두 본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반구의 분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실험

 

 

좌반구와 우반구의 분화가 두 가지 다른 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두 반구들이 서로 다른 심리적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즉 정보가 한 반구에서 다른 반구로 전달될 수 없는 분리된 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두 반구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비록 분리된 뇌 환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눈이나 얼굴을 움직이며 시야의 정보가 두 반구에 전달되도록 한다면 실험 결과에서 보인 것 같은 결함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두 반구가 뇌량으로 연결된 우리 정상인들에게는 두 반구가 신속하게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은 명확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언어적 정보, 그림 정보 그리고 그 대상에 어떻게 우리가 상호작용 할 것인가의 모든 정보들로 구성 되어 있으며, 두 반구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논리적 기능을 넘어서는 우뇌의 상상력을 키우는 우뇌 학습법이라는 식의 주장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두 반구 즉 뇌 전체를 사용하여 책을 읽고 함께 있는 삽화를 보며, 영화를 볼 때 배경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따라 흥얼거리며 공상적인 장면을 머릿속에 그릴 수도 있다. 좌반구와 우반구의 분화가 두 가지 다른 마음이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두 반구의 기능적인 분화가 어떻게 통합적으로 작용하는가를 더 자세히 밝히는 작업이 앞으로의 생리심리학 연구에서 필요할 것이다.

거울뉴런

엄마는 아이가 아프면 같이 아파한다. 수년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하였던 다모라는 미니시리즈에서도 유명한 대사가 있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인간은 어째서 이런 행동과 말을 할 수 있을까? TV에서 아이돌 그룹이 멋진 춤을 춘다. 나도 그 춤을 따라 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우리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동작을 눈으로 슬쩍 한 번 보고 난 뒤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다. 타인이 느끼는 것을 마치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경험도 한다. 당연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과연 지구상의 다른 동물들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말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다.

 

 

거울뉴런의 발견

이탈리아의 저명한 신경심리학자인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 교수는 자신의 연구진과 함께 원숭이에게 다양한 동작을 시켜보면서 그 동작을 함에 따라 관련된 뇌의 뉴런이 어떻게 활동하는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리촐라티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나 주위에 있는 사람의 행동을 보기만 하고 있는데도 자신이 움직일 때와 마찬가지로 반응하는 뉴런들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직접 할 때와 내가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보거나 듣고만 있을 때 동일한 반응을 하는 뉴런이 있다는 것. 이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얼핏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지나칠 수 있지만 사실 인간의 뇌와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에게는 엄청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인간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본질적인 해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연구를 종합하면 거울뉴런(별표)은 뇌의 3곳에 분포한다. 전두엽 전운동피질 아래쪽과 두정엽 아래쪽, 측두엽, 뇌성엽 앞쪽이다. 거울뉴런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정보를 처리해 지각한 행동의 의미를 파악한다.

 

 

 

수만 년과 십 분의 차이

거울뉴런은 뇌의 어느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핵심적 기능은 동일하다. 관찰 혹은 다른 간접경험만으로도 마치 내가 그 일을 직접 하고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거울 뉴런이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즉, 사회 내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의사소통하면서 생활해야 한다. 따라서 타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공감하며 이를 위해 언어 등 의사소통 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요인들이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이른바 문화를 이루는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면? 혹은 그것에 맞게 진화해 나가야 한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될 것이다. 예를 들어, 북극곰은 북극에서 극한 추위를 견뎌야 하므로 털로 자신의 몸을 감싸야만 한다. 아마도 이를 위해 몇 만 년의 진화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에스키모 아이는 어떤가? 곰을 잡아 털옷을 만드는 부모를 보고 단 10분 만에 이를 학습할 수 있지 않은가? 아마도 부모가 털옷을 만들어 입는 그 순간 그 아이의 뇌에 있는 뉴런들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따뜻함을 느꼈을 것이다. 수만 년과 10. 이 얼마나 대단한 차이인가? 연약한 육체를 지녔으면서도 바로 이런 방법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이 지구에서 중심적 지위를 누려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거울뉴런의 다양한 활동

거울뉴런들은 주로 어떤 외부 상황이나 행동에 주로 반응할까? 가장 잘 반응하는 대상은 타인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타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자폐환자라고 부른다. 신기하게도 자폐환자들은 이 거울뉴런들이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거울뉴런은 자폐에 대한 신경학적 원인에 대해서도 대답을 해 주고 있다.

 

아이들은 어떻게 다양한 활동들과 언어를 배울까? 바로 모방, 따라하기를 통해서이다. 이를 위해서도 거울뉴런은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무언가를 따라하기 위해 타인의 말이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할 때 아이들의 뇌 안에서 거울뉴런들은 열심히 반응한다. 자신도 그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끼기 위해서이다.

 

공감은 누가 더 잘할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아프면 누가 더 같이 아파해 주는 경향이 있을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상식적으로 이러한 공감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한다. 사실이다. 그리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강한 거울뉴런 활동을 보이고 있다.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드라마 중독이 여성에서 더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원숭이의 거울뉴런은 주로 운동을 담당하고 있는 뇌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단순한 행동을 따라할 수는 있지만 다른 차원의 높은 것들은 모방이 불가능하다.
<출처: http://dx.doi.org/10.1371/journal.pbio.0040311>

 

 

 

인간과 매우 근접한 영장류라고 불리는 원숭이들은 이 거울뉴런이 주로 운동을 담당하고 있는 뇌에서만 발견된다. 즉 단순한 행동을 따라할 수 있지만 다른 차원의 높은 것들은 모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의 뇌에서는 이 거울뉴런들이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간이 수많은 종류의 정보를 모방할 수 있는 이유이다. 수백 만 년 전부터 현재의 두뇌 용량을 보유했던 인류가 도구의 사용과 언어, 더 나아가 문명을 창조하게 된 것은 불과 4~5만 년 전이다. 공교롭게도 거울뉴런 시스템의 출현이 이 시기와 맞아 떨지는 것 같다는 것이 관련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생명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우리 뇌의 같이 느끼고 따라하기를 가능케 만들어주는 뉴런, 즉 세포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접근과 회피

학생들은 모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 그리고 회사원들은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 그런데 열심히 하려는데 그게 잘 되지를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답답하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하게 만들어주는 마음은 무얼까? 가지고 싶다.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 같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동기(motivation)라는 용어로 말한다. 하지만 이 동기라는 것은 단순하지가 않아서 최소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이를 이해하면 우리가 왜 어떤 일을 열심히 하지 못하는 걸까에 대한 답을 꽤 구체적으로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우리 뇌 안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같이 한 번 알아보자.

 

 

행복해지기 위해서 혹은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영범과 성진 두 친구 모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 정도가 정말 똑 같아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두 친구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한 사람(영범)은 부모님께 칭찬을 받기 위해서이고 다른 한 사람(성진)은 부모님께 혼나지 않기 위해서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두 사람 모두 똑같은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매우 다르다. 영범은 좋은 성적을 받고 난 뒤 ‘기쁨’을 느낀다.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번째 친구인 성진도 좋은 성적을 받았다. 어떤 기분일까? 기쁨일까? 아니다 그 보다는 ‘안도감’이다. 부모님의 꾸중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기쁨과 안도감은 모두 좋은 정서이긴 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경험하는 마음의 세계는 매우 다를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심리학자인 토리 히긴스(Tori Higgins)는 인간의 동기를 접근과 회피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접근(接近)동기는 무언가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즉 그것에 가까워지기 위해 열심히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말하는 반면, 회피(回避)동기는 무언가 좋지 않은 것으로부터 벗어나거나 회피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게끔 만든다. 다시 위의 두 사람의 예로 돌아가 보자. 영범과 성진은 각각 접근동기와 회피동기를 가지고 일을 열심히 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 일을 열심히 한 결과, 즉 성공했을 때의 느낌은 ‘기쁨’과 ‘안도감’으로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이 두 동기를 가지고 일을 했는데 실패하게 되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접근동기는 슬픔을, 회피동기는 불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상식적으로 당연하다. 즉 무엇을 열심히 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동기를 가지고 그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의 차원에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고 안도감과 불안의 차원에서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차원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을까? 대부분의 경우 기쁨과 슬픔의 세계가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주위에서는 회피 동기를 자극하는 메시지를 더 많이 주곤 한다.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바보처럼 산단다.”에서부터 “열심히 돈 벌지 않으면 나중에 추하게 지낸다.” 등 말이다. 이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에서 벗어나 안도하기 위해 열심히 살라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이다.


부모님께 혼나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의 동기는 회피동기이며 시도한 일이 실패했을 때 회피동기는 불안을 만들어낸다. <출처: NGD>

물론 회피동기를 지니고 해야 그 결과가 더 좋은 일도 이 세상에는 많다. 잘해야 본전이거나 그 행동 자체가 무엇으로부터 회피를 기본으로 하는 일이 그런 것이다. 그 좋은 예가 ‘피구’ 경기이다. 피구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상대편이 던진 공을 피하는 것이다. 즉 회피동기를 지니고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멋지게 피해야지’라는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그 ‘멋지게’라는 마음 자체가 접근동기에 더 들어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운동을 잘하거나 민첩한 친구들이 경기 초반에 공을 잡지도 피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자세로 아웃되는 일을 보곤 한다. 회피동기를 가지고 해야 할 일을 접근동기를 가지고 했기 때문이다. 일이 어느 동기에 더 부합되느냐에 따라 내가 가져야 할 동기도 거기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더 쉽게 말하자면,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이 좋은 것을 지향한다면 “이 일을 잘 해서 즐거워야지”라고 생각해야 하며, 그 일이 나쁜 것을 막기 위한 일이라면 “이 일을 잘 해서 바보 같이 되지 말아야지”라고 마음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알려주고 있는 것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우리 뇌를 보면 그 대답이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 예일 대학 심리학과의 커닝엄(Cunningham)교수 연구팀이 최근 연구한 바에 의하면 뇌의 편도체 (amygdala), 전측대상회 (anterior cingulate), 그리고 선조 외 피질(extrastriate cortex)등 인간의 정서와 그에 따른 각성 및 주의집중(편도체와 전측대상회)과 정보를 받아들여 분석하는 지각(선조 외 피질)과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들의 상호작용이 이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선조 외 피질이 받아들인 정보를 편도체와 전측대상회로 보내는데 이 연결의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져야 인간은 받아들인 정보에 대한 대응을 잘 할 수 있다.

 

뇌의 편도체, 전측대상회,선조 외 피질

 

 

 

접근동기가 성격적으로 강한 사람(예를 들어, ‘나는 실패를 막기 보다는 성공을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이나 접근동기가 상황적으로 강조(예를 들어, ‘이 일을 잘 하면 상을 받겠구나.’)되는 경우에는 지각을 담당하는 선조 외 피질이 긍정적인 자극(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 정보를 받은 편도체와 전측대상회가 더 활발하게 작동한다. 이러한 작용이 극대화되는 경우는 그 일의 종류 자체가 즐거움을 지향할 때이다. 마찬가지로 회피동기가 성격적으로 강한 사람(예를 들어, ‘나는 성공을 하는 것보다는 실패를 막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이나 회피동기가 강조(예를 들어, ‘이 일을 잘 못하면 처벌이 주어지겠구나.’)되는 상황에서는 선조 외 피질이 부정적인 자극(예를 들어, 내가 싫어하는 것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정보를 받은 편도체와 전측대상회가 더 활발하게 작용(즉, 각성하고 주의집중)한다. 이 회로의 활동이 극대화되는 경우는 당연히 그 일이 불행하거나 나쁜 결과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졌을 때일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회피동기를 가지고는 즐거운 일의 즐거운 측면들이 잘 보이지 않으며 접근동기를 지니고는 즐겁지 않은 일의 즐겁지 않은 측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보이지 않으니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고 따라서 성공적으로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것만이 최선일까?


이러한 연구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알려주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세상에 많은 일들을 그저 열심히 만 한다는 것은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또한 즐겁고 즐겁지 않은 일들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공부를 할 때 즐거운 무언가를 목표로 공부를 하면 자연스럽게 공부의 즐거운 측면들이 잘 보이기 마련이며 따라서 그 과정 또한 즐거워지기 쉽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오늘부터라도 조금씩 바꿔보면 그 쌓인 결과는 매우 클 것이다. “나중에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 지금의 고통을 참아내자”라고 마음먹기 보다는 “나중에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 지금도 즐겁게 공부하자”라고 마음먹어보자. 우리의 뇌와 동기가 우리의 공부를 더 잘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정서의 표현

키우는 강아지가 어떤 기분(정서, 감정 등 여러 용어가 쓰이는데, 심리학에서는 보통 정서라는 단어를 대표로 사용한다.) 상태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으면,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강아지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는 소리나 하는 짓으로도 알 수 있지만 아마도 가장 잘 정서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얼굴 표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상대방이 사람이건, 동물이건 얼굴 표정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는’ 셈이다. 우리의 기분은 어떤 얼굴 표정으로 나타날까? 우리는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어떻게 파악할까?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처럼, 웃는 얼굴 표정을 하면 행복해 질까? 얼굴 표정을 통한 정서의 표현에 관한 흥미로운 몇 가지 심리학 연구 결과를 이야기 해보자.

 

 

얼굴 표정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다


정서의 표출과 전달, 즉 상대방의 마음 읽기에 얼굴 표정이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은 사실 심리학자가 처음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진화론의 창시자로 잘 알고 있는 다윈을  정서 연구자의 효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872년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정서 표현]이라는 책에서 정서 표현이 진화론적으로 중요하며, 사람과 동물들이 특정한 방식의 얼굴 및 자세 표현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표현들은 유기체들이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한 정보를 서로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정서 표현은 한 동물이 다른 동물에게 자기가 무엇을 느끼고 있으며, 그래서 어떻게 행동하겠다는 것을 표출하는, 전달자나 수용자 모두에게, 편리한 방법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집단을 이루며 사는 늑대 무리에서 우두머리가 이를 드러내며 화난 공격성을 표출하고, 낮은 서열을 인정하는 다른 늑대가 머리를 낮춰 두려움을 표출한다면 굳이 싸우지 않고도 평화로운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동물들의 다양한 표정 <출처 : NGD>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진화론적으로 가장 고등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고 가장 정교하게 분화된 사회 집단을 발전시킨 인간에게서 정서의 표출이 가장 발달되었으리라는 가정을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아울러 정서의 표출과 이를 읽어내는 능력은 인간이라는 종에 공통적인 특성일 것이라는 가정도 해볼 만하다. 이 역시 사실은 다윈의 통찰이다. 그는 보편성 가설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주장을 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정서 표현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예를 들어 미소 짓는 얼굴 표정은 자신의 행복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며, 이 미소를 통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행복한 상태라는 것을 읽어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서를 표출하는 얼굴 표정은, 우리가 서로 의사소통하는 말과 글 같은 또 다른 소통의 도구인 셈이다. 물론 언어의 단어는 대상과 인위적인 관련성을 갖는 상징(symbol)이지만, 얼굴 표정은 정서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일종의 신호(sign)가 되는 차이는 있다.

 

 

 

몇 가지 연구 결과가 이러한 생각을 지지한다. 우리는 보통 다른 민족(예, 인도인이나 아프리카인)의 개인들을 얼굴로  구별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처음에는 모두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그 민족 사람의 다양한 얼굴을 본 경험이 적어서, 그 민족 사람의  얼굴 모양이 갖는 공통성만 눈에 들어오고, 차이점을 찾아낼 수 있는 지각적 식별 능력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얼굴 정서 표현은 상당히 정확하게 읽어 낸다는 것이다. 동양인이건 서양인이건 모두 미소를 행복의 표시로, 찌푸린 얼굴을 슬픔의 표시로 알아보고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거의 없이 생활하는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들도 미국인들의 정서 표현을 미국인들과 거의 같은 정도로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얼굴 표정으로 상대방의 정서를 읽어내는 능력이 문화적인 학습 결과가 아닌, 진화론적으로 결정된 타고난, 그러기에 보편적인 능력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상실한 장님들이나, 얼굴 표정을 본 경험이 적은 신생아도, 우리와 같은 얼굴 정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을 보면, 보편적인 정서 표정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다른 민족의 개인들을 얼굴로 구별해 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동양인이건 서양인이건 모두 미소를 행복의 표시로 알아보고 구분할 수 있다 <출처 : NGD>

 

 

행복해서 웃는 것일까 아니면 웃어서 행복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정서가 얼굴 표정으로 드러날까? 아니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내적인 기분이나 감정 상태를 겉으로 즉 얼굴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얼굴로 얼마나 다양한 정서 표정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뛰어난 연기자들이 극의 상황에 따라 짓는 다양한 얼굴 표정들을 보면 경이로운 게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한 연구 결과들은 보통 인간의 여섯 가지 기본적인 정서인 “화, 혐오, 공포, 행복, 슬픔 및 놀람”의 얼굴 표정을 사용해 얻어진 것이다. 물론 수치심이나 당황스러움과 같은 다른 정서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은 있다. 우리의 얼굴에는 43개의 근육들이 있어서 10,000개 이상의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그러기에 놀라울 정도로 미묘하고 구체적으로 우리의 정서 상태에 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심리학자인 에크만(Paul Ekman)은 인간 얼굴이 보여 줄 수 있는 근육 운동을 목록화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우리의 정서 상태와 관련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앞에서 예로 들었던 행복한 정서 경험을 나타내는 얼굴 표정인 미소의 경우, 양쪽 입술 끝을 위로 당기는 근육과, 눈의 바깥쪽 끝 부분을 주름지게 하는 근육의 운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얼굴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정서 상태를 읽을 수 있고, 얼굴 표정을 연기해야 하는 연기자에게 지침을 줄 수도 있는 것이기에, 앞으로의 이러한 연구 결과는 기대가 된다.

 

한 가지 떠오르는 의문은 연기자들의 정서적인 얼굴 표정에 관한 것이다. 연기자들은 매번 우선 정서 상태를 만들고, 이를 자연스럽게 얼굴 표정으로 드러내는 것일까, 아니면, 특정한 정서를 나타내는 얼굴 표정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연기하는 것일까? 특히 후자라면, 얼굴 표출에 상응하는 정서 경험이 일어나게 될까 아니면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얼굴로만 연기할까? 연기를 해본 경험이 없는 필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떻게 시작을 했건 생생한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연기자가 실제의 정서 경험을 하고 있어야 될 것처럼 생각된다.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흥미로운 생각이, 얼굴 표정이 거기에 상응하는 정서 경험을 만들어 낸다는 안면 피드백 가설(facial feedback hypothesis) 이다. 즉 정서적 얼굴 표출이 그것이 나타내는 정서 경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필을 입술에 물고 있도록 요구받을 때에 비해, 연필을 이로 물고 있도록 요구받아, 미소의 특징인 입 꼬리가 올라가도록 했을 때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소의 특징인 입 꼬리가 올라가도록 했을 때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아마도 미소 짓는 얼굴 표정이 우리의 행복한 경험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신호이기에 즉, 표정과 감정이 강력하게 연결되어 거의 하나이기에 어느 것에서 시작했건 동일한 상태에 빠지는 것인 아닌가하는 추측할 수 있다. 물론 그 기제는 앞으로의 연구를 통해 밝혀야 할 것이다. 여하튼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기분이 울적하고 우울할 때는 거울을 보면서, 입 꼬리를 올리고 얼마동안 미소 짓는 얼굴 표정을 해볼 일이다.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온 몸을 쫙 펼치고, 심호흡도 하면 더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자, 여러분들도 미소 짓는 얼굴 표정을 하며 행복하게 하루를 지내보자.

인간의 주의와 행동

살아가면서 어떤 경우에는 한 가지 일만 하기에도 벅찰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다. 바꿔 말하자면 어떤 일들은 하기 쉽고 어떤 일들은 하기 어렵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 ‘하기 어렵다’라고 말하고 어떤 경우에 ‘하기 쉽다’라고 말하는 걸까? 물론 ‘38 +63’은 ‘387+639’ 보다 쉽다. 계산을 위해 해야 할 단계들의 수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고려해 보아야 할 중요한 요인들이 더 있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주의(attention)라는 측면을 탐구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인간의 주의에 관한 연구


아래의 그림 중 왼편 그림에서 빨간 사각형을 찾아보자. 매우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럼 이번에는 오른편 그림에서 빨간 사각형을 찾아보자. 이것도 매우 쉽다. 찾아내는 시간에 있어서 왼편 그림과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림A

 

 

위 그림에서 빨간 사각형을 내가 찾아야 하는 ‘표적(target)’이라고 하자. 그럼 다른 것들은 모두 ‘방해자(distractor)’일 것이다. 왼편 그림과 오른편 그림에서는 방해자의 수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오른편 그림에는 방해자가 10개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찾는 시간에는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방해자의 수가 표적을 찾는 시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어떨까? 이번에도 빨간 사각형을 찾는 것이 과제다.

 

그림B

 

 

이번에는 왼편 그림이 더 쉽다. 오른편 그림에서는 다소 시간이 더 걸리고 약간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방해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찾는 시간도 더 걸렸다고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눈치가 빠른 독자들은 벌써 알아챘을 수도 있다. A의 두 그림에서 빨간 사각형을 찾기 위해서는 그저 ‘빨간 것’만 찾으면 된다. 하지만 B의 두 그림에서 빨간 사각형을 찾으려면 녹색 도형들뿐만 아니라 빨간 동그라미도 무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B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빨간’ 그리고(AND) ‘사각형’을 찾는 것이다. 즉, 고려해야 할 조건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분명해 진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복잡하고, 따라서 어렵다고 느끼며 이로 인해 시간이 더 걸리는 일들은 대부분 이 ‘AND’관계들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훨씬 

더 어려운 예를 한 번 보자. 최근 스마트폰용으로도 출시된 일명 ‘월리를 찾아라(Where's Wally?)’라는 게임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 그림은 1990년대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즐겼던 같은 이름으로 출판된 책 중 한 장면이다. 게임방법은 간단하다. 제시된 월리의 모습을 보고 그 월리가 그림의 많은 사람들 중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 것이다. 즉, 월리는 표적이고 다른 모든 사람은 방해자이다. 정말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방해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위 그림 B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의 탐색 시간을 급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제 분명해진다. 월리는 어떻게 규정되는가? “안경을 썼다” AND “모자를 썼다” AND “남자다” AND “수염이 없다” 등등 굉장히 많은 AND를 써야만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월리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어떤 것을 찾아야 할 때 혹은 해야 할 때 그 표적이 많은 수의 AND 관계를 포함하고 있으며 방해자들 역시 그 AND 관계들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면 주변의 방해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그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렇지 않다면 방해자의 수는 일의 어려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학술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떤 대상을 구성하는 속성들의 결합관계(conjunction)의 수가 과제의 복잡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에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데 이 주의라는 기제는 결합관계의 수를 복잡함의 정도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한 번에 여러 개의 결합관계를 고려(즉, 주의를 분산)하기는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1990년대 전세 계의 많은 사람들이 즐겼던 ‘월리를 찾아라(Where's Wally?)’ <출처 : Wikipedia>

 

 

선택적 주의와 분할 주의


그렇다면 이번에는 여러 개의 일을 동시에 할 때는 어떤 요인이 중요할까를 생각해 보자. 사실 어떤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생각해야 한다. 첫째는 예를 들어,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일들에 ‘번갈아’ 주의를 기울이면서 하는 것이다.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동시에 하는 것은 아니고 순차적으로 하는 것이다. 다만 빠르게 두 일 사이를 오가면서 하고 있기 때문에 동시에 두 일을 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뿐이다. 둘째는 그야말로 ‘동시’에 하는 것이다. 좋은 예가 대화하면서 운전을 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두 가지 종류의 ‘동시에 어떤 일들을 하는 것’ 즉 멀티태스킹에 관여하는 주의(attention) 기제가 다르다는 것이다. 첫 번째를 위한 것을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이라 하고 두 번째의 경우를 분할 주의(divided attention)이라 한다. 상식적으로 선택적 주의를 통해 어떤 일들을 열심히 연습하면 나중에는 분할 주의로 진정한 의미의 동시 수행이 가능해진다.

 

선택적 주의라 함은 나에게 주어진 어떤 정보에는 주의를 기울이고 다른 정보들은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선택적 주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는 방법은 이른바 양분 청취법(dichotic listening)이라는 과제를 통해서 잘 파악될 수 있다. 아래 그림을 보자.

 

양분 청취법 과제

 

 

이 사람은 헤드폰을 끼고 있는데 일반적인 상황과 다른 점은 두 귀를 통해 들어오는 메시지가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동시에 들리는 이 두 개의 다른 메시지에 대해서 사전에 지시 받은 쪽의 메시지만 따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 그림의 사람은(그 사람을 기준으로) 자신의 왼쪽 귀로 제시되는 정보만을 입으로 따라하도록 지시 받았다. 따라서 “그 누렁이는 무언가를 쫓고 있는데 그건..”이라고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왼편 혹은 오른편 귀로 들리는 메시지 중 어느 것을 따라해야 하는가는 실험이 진행되면서 수시로 바뀐다. 그 때마다 맞는 쪽의 메시지를 입으로 따라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최소한 두 가지가 필요하다. 자기가 따라해야 하는 편의 정보에 주의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동시에 반대편의 정보는 불필요하기 때문에 ‘무시’해야 한다. 두 과정이 잘 조화를 이루면 이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게 되며 이를 선택적 주의 능력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단순한 능력이 그보다는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일들의 수행을 잘 예측해 주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자면 1970년대 이스라엘 공군비행학교의 교육훈련생의 비행 수행을 가장 잘 예측하는 지수가 바로 이 선택적 주의과제 결과였다. 또한 미국의 상업용 차량 운전자들의 사고율 역시 이들의 선택적 주의과제 수행점수에 의해 가장 잘 예측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를 종합하면 우리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즉 멀티태스킹을 잘 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 못지않게 바로 직전에 했던 일을 중 지금의 일과는 무관한 것을 ‘무시’하는 것 역시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조금 전에 했던 일이 그 조금 전에는 표적이었겠지만 지금은 방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떤 것을 무시(즉 억압)하는 능력은 초점화(즉 활성화)하는 능력 못지않게 필요한 능력이다. 그런데 어떤 일들을 계속적으로 연습하면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선택적 주의를 통해 다수의 일들에 초점을 신속하고 적절히 바꿔가면서 그 일들을 수행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이다. 이젠 아예 주의를 분할하여 그 여러 가지 일들에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운전대를 꽉 쥐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온 정신을 집중해야만 간신히 차선을 바꿀 수 있는 초보운전자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수석에 앉은 사람과 웃으며 잡담을 나누면서도 얼마든지 운전을 할 수 있다.

 

 

스트룹(Stroop) 과제


하지만 아무리 연습하려 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John Ridley Stroop이 고안한 그 유명한 스트룹(Stroop) 과제이다. 이 과제는 매우 간단하다. 아래 그림에서 왼편의 8개 단어들을 보고 각 단어의 폰트 색(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을 순서대로 빠르게 말해 보자.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그림의 오른편을 보고 각 단어들의 폰트 색을 순서대로 말해 보자. 왼편 그림에서보다 상당히 어려워진다. 중간 중간 글자를 그대로 읽는 실수를 범하면서 ‘아차, 폰트 색을 말하는 거지’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스트룹 과제

 

 

이러한 현상을 스트룹(Stroop) 효과라 하며 하나의 자동화된 실행이 다른 중립적인 실행을 오히려 방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오른편 그림에서는, 예를 들어, ‘파란색’으로 쓰인 빨강을 ‘빨강’으로 읽는 자동화된 읽기실행이 ‘파랑’이라고 말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의 수행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존의 자동화된 한 과제를 오히려 ‘억제’나 ‘무시’해야 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일은 좀처럼 숙달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일에 익숙해지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것들이나 멀티태스킹이 힘든 상황들 중 상당수가 지금까지 설명한 요인들에 기인한다. 이렇듯 겉보기에는 유사한 두 일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 종류의 일에 숙달되면서 나머지 하나를 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실생활에서 종종 발생한다. 좋은 예를 라켓을 사용하는 스포츠들 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테니스를 잘 치는 사람은 배드민턴 배우기가 오히려 더 힘들다. 왜냐하면 배드민턴 라켓을 쥐는 순간 테니스 라켓으로 했던 일들이 자동적으로 활성화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드민턴의 셔틀콕이 날아오는 속도와 이를 잘 받아내기 위한 스윙의 궤적은 테니스 공이 오는 속도와 라켓의 궤적과는 전혀 다르다. 때문에 종종 테니스를 잘 치기 때문에 배드민턴도 빨리 배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우스꽝스런 자세를 고치지 못하고 놀림감이 되곤 한다. 내가 이전에 많이 했던 일과 표면적으로 유사해서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 일들 혹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유사한 다른 분야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들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경우 우린 이러한 원인들 때문이 아닌지를 곰곰이 살펴보아야 한다.

 

 

인간의 주의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인간의 주의사용 기제에 관한 연구들이 자폐(autism)나 ADHD(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와 같은 장애들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중요한 단초들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상인은 상대방의 정서를 파악하기 위해 상대방의 눈이나 입의 가운데 부분 등 어떤 사람의 정서를 잘 반영해 주는 부위들을 주로 응시하는데 비해 자폐환자들은 얼굴윤곽의 끝 혹은 입 가장자리 등 불필요한 부분을 주로 관찰한다. 상대방의 정서를 파악하는 것은 사회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한 기능이고 따라서 정서파악에 중요한 정보에 주의의 초점화가 되지 않는 것은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없음을 의미할 것이다. 자폐의 주요 증상이 타인과의 접촉을 철회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연관성이 높은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ADHD 아동들의 특징 역시 주의기제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와 매우 관련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TV 프로그램을 아무 것도 없는 빈방에서 시청할 때는 정상아동들과 ADHD 아동들의 집중 정도에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하지만 TV 주위에 장난감이나 시계 혹은 달력과 같이 TV 시청과 무관한 물건들이 놓여있는 방에서는 ADHD 아동들의 TV에 대한 집중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즉, 무관하거나 불필요한 대상에 대한 ‘억제’가 적절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 그 치료 기제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최근에는 이렇게 눈의 시선 자체를 교정하여 ADHD 증상의 개선에 효과를 보는 기법들도 몇몇 보이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인간의 주의에 관한 연구들과 그 결과들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아니 할 수 없다.

 

  1. 이 연구를 40여 년 전에 했던 연구진 중 한 사람인 Daniel Kahneman은 훗날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분야인 노벨 경제학상을 2002년에 수상한다(Gopher, D. and D. Kahneman (1971). Individual differences in attention and the prediction of flight criteria. Perceptual & Motor Skills. 33(3): 1335-1342.)
  2. Mihal, W. L., & Barett, G. V. (1976). Individual differences in perceptual information processing and their relation to automobile accident involvement.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61, 229–233.
  3. 흥미롭게도 이러한 연구들에서 사용된 선택적 주의과제가 시각이 아닌 청각을 대상으로 한 과제라는 점이다(비행과 운전은 상식적으로 시각 위주의 활동이다.) 하지만 이는 시각과제의 수행이 청각능력으로 더 잘 예측된다고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청각과제가 선택적 주의 능력을 더 용이하게 측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한 장면은 일단 눈을 뜨고 있으면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것을 무시하는 것 자체가 모호해진다. 표적과 방해자가 모두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의 그림에서 나온 양분청취법과 같은 청각과제를 사용하면 표적 정보와 방해자 정보가 완전히 다른 채널(즉, 귀)을 통해 제공되기 때문에 선택적 주의 능력을 측정하기가 보다 수월해진다.

인간의 지각

요새와 같은 날이면 나들이 할 때 주변을 보느라 눈이 바쁘다. 온갖 초여름 꽃들이 피기 시작했고, 신록은 짙게 푸르러 지고 있어, 거리를 걸으며, 꽃들 보랴, 지나가는 자동차 피하랴, 마주치는 사람과 인사하랴 바쁘다는 표현이 실감이 난다. 그런데 어리석은 질문하나. 여러분들은 어떻게 이런 여러 가지의 세상을 알아보는 바쁜 작업을 바쁘지 않고 쉽게 수행하세요? 아마 여러분은 “뭐 어떻게 하긴 눈으로 보면 되지”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할지 모르겠다.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한 이유는,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세상의 여러 사물들을 보며 그 의미를 해석하는(이를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지각(perception) 과정이라고 부른다.) 심리적 과정을 탐구하는 지각심리학의 기본 의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색깔을, 형태를, 움직이는 사물의 운동을, 그리고 삼차원적인 입체를 어떻게 파악하는 것이며, 여러 다양한 사물들을 어떻게 구별하고 알아채는 것일까?

 

 

눈으로 본다는 것


우선 “눈으로 보면 된다.”라는 표현부터 생각해 보자. 보통 우리들은 눈의 구조와 기능을 사진기에 비유 한다. 눈에도 조리개가 있고, 렌즈가 있으며, 필름이나 이미지 센서에 해당하는 망막이 있다. 예전 사진기에서는 필름은 인화하면 되고, 요새 디지털 기기에서는 이미지센서의 신호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jpg파일방식으로 바꾸면 된다. 망막에서도 원추세포간상세포가 빛을 신경 부호로 변환한다. 그러면 이 망막정보도 인화하거나, 그림 파일로 만들면 끝일까? 그렇지 않다. 망막 정보는 시상하부라는 대뇌 하부를 거쳐 대뇌 피질의 시각 영역에 전달하고, 다시 여기서 여러 다른 신피질 영역으로도 연결된다. 그러니까 사진기에서는 필름이 마지막이지만, 그에 대응되는 우리의 망막 정보는 시각적인 작용의 마지막이 아니라, 보다 복잡한 처리가 일어나야 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망막이 제공하는 정보는 아주 결핍되어 있어, 우리의 실제 세상 경험을 나타내주기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그림1> 망막 정보는 시각적인 작용의 마지막이 아니라, 보다 복잡한 처리가 일어나야 하는 출발점이다

 

 

그림1에서처럼, 서로 다른 크기의 기울어진 정도가 다른 사각형들이, 떨어진 거리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같은 망막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말하자면, 망막 정보만으로는 어느 사각형을 보았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단 말이 된다.
 

그림2가 어떤 그림인지는 굳이 답이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모나리자를 단순히 ‘본다’는 표현보다는 ‘알아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이미 이 명화를 여러 번 본 경험과 기억이, 설령 흐린 정보가 망막에 들어와도 알아채게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지각 경험의 대부분은 세상(환경)에 관한 지식이나 과거의 기억의 영향을 받는다. 심리학도들은 이러한 지식의 영향을 하향(top-down)처리라고 부르며, 빛에서 망막을 거쳐 들어오는 상향(bottom-up) 처리와 대비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하향처리 덕분에, 주어진 정보를 넘어서는 지각 처리가 가능하고, 우리의 세상에 대한 지각 경험이 실제 세상과 잘 맞아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감각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는 정확하고 믿을만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실제 세상의 실체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은 아니며, 대뇌의 여러 처리가 만들어 내는 즉 재구성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대뇌의 창의적인 재구성 작용은 대부분의 경우 성공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이 실패하는 경우가 있으며, 심리학도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인 착시 현상이 한 예가 된다. 착시란,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지각 경험과 물리적 실체 사이에 괴리가 있는 현상을 말한다. 다음 예를 보자. 


<그림2> 모나리자

 

 

착시효과

 

<그림 3> A와 B 부분이 같은 밝기 같은가요, 그렇지 않은가요? 비교해보세요. 왜 그렇게 지각 되었는지 설명해 보세요!

 

 

MIT의 시지각 연구자인 아델슨(Adelson)이 만든 위 그림을 보면, 믿을 수가 없겠지만 A, B는 같은 밝기(휘도)를 갖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의 대뇌가 망막이 제공하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것들과의 비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진짜 그런지를 알아보려고, 두 영역만 남겨 놓고, 주변을 포스트잇으로 붙이고 비교해 봤다. 여러분도 직접 해보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주변 맥락 정보가 사용되는 또 다른 예로, 듀크대학의 로토(Lotto)와 퍼비스(Purves)가 만든 다음 그림의 색깔 비교에서도 알 수 있다. 윗면의 갈색 네모와 옆면의 주황색으로 보이는 네모는 사실 같은 색깔이다. 역시 다시 포스트잇으로 실습해 보자.

 

<그림4> 듀크대학의 로토(Lotto)와 퍼비스(Purves)가 만든 다음 그림

 

 

거꾸로 착시효과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도 있으며, 건축물에서 여러 예를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건물에 대한 지각 경험을 우선하여, 지각 경험에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  건축의 구조와 배열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물에서도 예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경복궁의 근정전 바닥과 앞마당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약 1미터 가량의 기울기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비가 오면 물 빠짐이 좋게 하기 위한  것이란다. 그런데 눈으로 봐서는 이를 깨달을 수 없다고 한다. 남쪽으로 올수록 지붕을 낮추고, 회랑의 기둥도 북쪽 기둥을 남쪽 기둥보다 짧게 하여 높낮이가 같아 보이게 축조했다고 한다.

 

<그림5> 경복궁 근정전

 

 

독자들도 지금까지의 몇몇 예로 우리들의 세상 지각이 단순히 사진 찍기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망막 정보가 바탕은 되겠지만, 대뇌에 저장된 여러 지식과 정보가 합쳐져 우리의 지각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리 인간처럼 지각하는 로봇을 만들어 내기 힘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지각 과정에 관한 인지적, 신경생리학적 기제가 밝혀지는 날 아마도 그런 로봇이 만들어 질 것이다.

파블로프 조건학

예전 삼국지에서 읽었던 조조 이야기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짧게 줄여보자. 조조가 군사를 데리고 적을 공격하러 갔는데, 적들이 성안에 꼼짝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공격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가져간 식량과 물이 바닥나게 되었다. 굶주리고 목이 탄 병사들이 급기야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위험을 감지한 조조가 모든 병사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집 뒷마당에 있던 살구나무 열매 얘기를 실감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를 듣던 병사들의 입에 침이 흥건히 고여 갈증을 해소하게 되었고, 이때를 이용해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이다. 독자들은, 이미 이 얘기가 고등학교 생물학 시간에 배웠으며, 러시아 생리학자인 파블로프가 체계적으로 연구한 개의 조건반사를 말한다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음식은 당연히 침을 분비하게 하고(반사), 음식물과 연관된 소리, 이야기 등도 역시 침을 분비하게 한다는 것이다. 조조도 이를 알고 있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리더십에 이 원리를 활용까지 한 셈이니 조조도 아마 심리학개론을 수강한 모양이다.

 

 

조건반사와 학습


우선 몇 가지 용어를 정리하자. 유기체가(인간이나 동물) 환경과 상호작용 할 때, 유기체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합쳐, 심리학자들은 자극(stimulus, 이 단어는 어원상으로 양치기가 양을 몰 때 쓰는 뾰족한 막대기를 의미했다고 한다)이라고 부르며, 이에 대한 유기체의 대응을 반응(response)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자극-반응 관계 중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을 ‘무조건 자극-반응(반사)’이라고 부른다. ‘음식물-침 분비’가 반사의 예이다. 그리고 무조건 자극(음식물)이 새로운 자극(혹은 조건자극, 예, 소리)과 연결되며, 침을 분비하게 되는 과정을 조건화(형성)이라고 부른다. 이런 단순한 연결 짓기 과정 즉 조건형성 과정이, 우리 인간의 ‘경험을 통한 행동의 변화라는 의미의 학습(learning) 과정’의 기본적인 밑바탕 원리의 하나 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이 조건형성 과정에 관심을 가져왔다. 독자들과 이를 공유하는 것이 본 글의 목적이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를 인간행동에 적용한 선구자가 왓슨(Watson)이다. 그는 알버트라는 9개월 된 건강한 아이를 ‘흰 쥐에 대한 공포 환자’로 학습시켰다. 그 과정은 단순하다. 아이에게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흰 쥐를 보여주고 아이가 관심을 보이고 만지려고 할 때마다 막대

기로 큰소리를 들려준다. 몇 번을 반복하면, 결국 아이는 휜 쥐만 봐도 울고, 피하려는 소위 공포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 상황을 차근차근 분석해 보자. 큰소리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일으키고(무조건 자극-반응), 호기심의 대상이던 흰 쥐(사실 귀엽기까지 한 새로운 자극)가 연결 되며 놀라는 공포반응이 학습된 것이다. 왓슨은 이를 통해 파블로프의 조건형성이 단순히 동물의 침 분비의 문제가 아니며, 인간의 특정 대상에 대한 불안, 공포 등과 같은 복잡한 정서 반응 획득의 기본 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아니, 갓난쟁이를 환자로 만들다니”하면서 분노할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논리적으로 명쾌한 해결책이 있을 수 있다. 흰 쥐에 대한 공포 반응은 학습된 것이기에 새로운 학습 경험으로, 즉 동일한 조건형성의 원리를 사용하여 흰 쥐를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생각이, 학습 원리를 이용한 부적응 문제의 치료 방법인 행동수정 치료법의 기본이 된다. 본 글에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지만,  행동수정 기법의 하나인 체계적 둔감법, 즉 불안과 공포와 양립할 수 없는 반응을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방법으로 공포 반응은 극복될 수 있다.


왓슨의 실험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혐오학습이 이루어진다


우리들에게는 토하기, 재채기, 근육의 움직임 등 수십여 가지의 무조건 반사가 있다. 흥미롭게도 유아들은 빨기, 움켜잡기 등 성인보다 더 많은 종류의 반사를 갖고 태어나며, 커가며 이것들이 없어진다고 한다. 아마도 반사의 기능이 유아의 생존에 필수적이기에, 적응의 기제로

 

음식에 대한 혐오도 역시 생존에 필수적이기에 단 한 번의 체험만으로도 학습이 이루어지기에 충분하다. <출처 : NGD>


선택된 것이라고 진화론을 빌려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특정 음식을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것이다. 특히 어떤 음식에 대한 혐오는 아주 흥미로운 탐구거리가 된다. 필자도 요사이는 극복했지만 감을 못 먹고 싫어했던 적이 있다. 가르시아(Garsia)라는 심리학자는 쥐들에게 보통 물과 단맛이 나는 물을 제공하여 골라 먹도록 하였다. 물론 쥐들도 단맛이 나는 물을 좋아하고 선택한다. 그 후 연구자는 쥐가 단맛이 나는 물을 마실 때마다 감마 방사선에 노출 시켰다. 방사선은 구역질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쥐들은 단맛을 회피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노출된 방사선 수준이 높을수록 단물에 대한 혐오 반응이 심했다. 이를 ‘조건 형성된 맛(미각) 혐오 반응’이라고 부른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단맛과 방사선의 연결이 한 번밖에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혐오학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의 생존에 반사가 필수적이라면, 이와 관련한 음식에 대한 혐오도 역시 생존에 필수적이기에 단 한 번의 체험만으로도 학습이 이루어지기에 충분한 것이다. ‘맛보고 배 아프고, 맛보고 배 아프고'를 반복해야만 학습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비효율적이겠는가? 아니 반복하기도 전에 음식에 포함된 독소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삼국지의 조조처럼 이 맛 혐오 학습을 적용을 해볼 수는 없을까? 이러한 맛 혐오학습을 뒤집어 생각해보자. 요사이 농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야생 동물의 피해 때문에 고민한다고 한다. 애써 키운 농작물을 고라니 같은 야생 동물들이 먹어치우고, 요즘 자주 출몰한다는  멧돼지는 아예 농작물 밭을 뒤집어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사냥을 허용하고 동물들을 죽이는 수밖에 없을까? 동물들에게 농작물에 대한 맛 혐오 학습을 시켜보면 어떨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외국에는 여러 사례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성공적으로 시도된 적이 있다. 관심 있는 독자는 KBS의 환경스페셜 100회 특집 ‘공존 실험: 까치(2001년 10월 3일)’를 찾아보기 바란다. 짧게 요약한다. 배 과수원에서 까치가 말썽을 일으킨다. 한두 개쯤 먹는 것을 주인도 뭐라고 하겠냐만, 문제는 배 여러 개를 조금씩 쪼아 먹어 상품성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우선 까치에게  배 조각을 먹게 하고, 나중에 배 속에 약품을 넣어 구토를 일으키게 하고, 결국 배를 피하게 되는, 과수원 배나무에 달린 배에 가까이 가지도 않는 일련의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맛 혐오 학습으로 과수원 주인과 까치가 함께 같은 자연 공간을 공유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은 것이다. 실험실이 아닌 자연 환경에서 이를 구현하는 작업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면역체계도 학습이 된다


애더(Ader)라는 심리학자가 비슷한 실험을 하다 발견한 우연한 결과로 넘어가기로 하자. 애더도 쥐에게 소량의 사카린 단물을 준 후, 구토제인 시클로포스파미드(cyclophosphamide)를 주사하였다. 그리고 기대한 대로 주사를 한번만 주었는데도 사카린물이 구토반응과 연합되어 쥐들이 단물을 피하게 만들었다. 그 후 구토제 주사 없이 사카린 물을 먹게 했는데, 건강했던 쥐들이 시름시름 앓으면서 죽어나가는 것이었다. 이 이유를 조사하다 애더는 구토 유발 약물이 쥐의 면역체계도 억제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약물이 바이러스나 균과 싸우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수를 낮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약물(무조건 자극)은 한번만 준 것이고, 단지 사카린 물을 마시게 한

것 밖에 없기에, 애더는 사카린 맛(새로운 자극)과  약물이 연결되어 사카린 맛만으로 T-세포를 억제하게 만드는  파블로프 조건형성 즉 학습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생각은 면역학자들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다시 확인되었고, 면역체계도 학습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연구가 된다. 이 연구 결과는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심리적 경험은 중추 신경계를 통해 학습이 이루어진다. 앞에서 언급했던 알버트 공포 반응도 뇌의 편도체의 중심핵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면역체계가 학습이 된다는 것은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가 독립적이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발견으로, 마음의 작용(psycho), 신경내분비계(neuro), 면역학(immunology)을 하나로 묶는 연구 분야 (psychoneuroimmunology)가 탄생하게 된다. 우리 마음의 작용이나 정서 상태가 중추신경계의 뇌세포에서 어떤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을 분비하게 하고, 이들이 우리의 신체적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탐구하는 길을 열어 놓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연결 고리가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과 몸의 관련성을 이해하는 시발점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면역체계가 학습이 된다는 것은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가 독립적이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출처 : NGD>

 

독자 여러분들은 이제, 단순히 두 자극을 연결시키는 단순한 기제가, 우리 인간의 경험에 의한 여러 다양한 행동 변화 즉 학습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배움 즉 학습 과정은 반사에 기초하는 수동적인 파블로프 조건형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능동적인 환경 조작과 강화, 내적인 인지 구조의 변화 등 학습의 다른 측면도 살펴보아야 하며 이는 나중에 얘기할 주제가 된다.

인간은 어떻게 배울까 ?

영화 ‘7월 4일생(Born on the Fourth of July)’에는 월남전 참전 용사가 이후 사회에 돌아와서 시가행진의 폭죽 소리에도 두려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활달하고 술도 잘 먹는 어떤 여자 동창이 맞선 보는 자리에서 얌전한 척 하다가 흘러내리는 맥주 거품에 자기도 모르게 ‘어이쿠, 이 아까운 술을’하고 입을 대었다가 민망해 했었다는 이야기를 남자 동창들이 키득거리며 주고받는 장면도 꽤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그 월남전 참전 용사나 여자 동창생이 처음부터 그렇게 행동하도록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환경 속에서 잘 살아나가기 위해 많은 것들을 후천적으로 배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학습(learn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표현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심리학자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자들은 고등동물일수록 유전보다는 환경이 그 유기체의 생활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하등동물일수록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와 기능으로 일생을 보낸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후천적으로 배운 것들 중 상당수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능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상하거나 필연적 이유를 찾기 어려운 것들도 상당수 있다. 바로 위의 월남전 참전 용사나 여자 동창생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후천, 즉 생후의 삶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학습된 내용들 역시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우리 모두가 그 참전용사나 여성처럼 행동하지는 않는 이유이다.

 

 

인간은 어떻게 학습하는가?


그렇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뒤 어떻게 무언가를 학습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 학습이란 ‘과거 경험 때문에 일어나는 행동 상의 비교적 영속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 말은 다시금 몇 개의 세부적인, 하지만 중요한 요소들로 나누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째, 학습은 ‘변화’가 관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변화는 어떻게 관찰될 수 있는가? 바로 ‘행동’을 통해서 가능하다. 따라서 학습은 ‘행동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둘째, 학습은 ‘비교적 오래 지속되는 변화’가 있음을 의미한다. 1회성의 행동 변화를 무언가 학습되었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셋째, 학습은 ‘경험’에 의해 생겨나는 변화이며 따라서 육체적 성숙, 약물, 질병 등으로 인한 행동 변화와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하지만 학습에 대한 정의를 그럴 듯하게 내릴 수는 있어도 “인간은 어떻게 학습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학문들에 비해 비교적 역사가 길지 않은 심리학의 초창기에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심리학자들은 분석하기 쉬운 단순 형태의 학습행동부터 연구했으며 이를 실제 인간의 복잡하고 고차적인 학습 이해를 위한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들은 인간의 학습을 하나의 연합(association) 과정으로 보았으며 이는 ‘주위 환경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간의 연관성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합을 통한 학습에는 2가지 종류가 있는데 먼저 고전적 조건형성(classical conditioning)은 두 자극이나 사건 사이의 관련성을 배우는 것으로서 예를 들자면, 번개를 목격하고는 천둥소리가 들릴 것을 예상하여 귀를 급히 막는 행동의 형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연합은 도구적(혹은 조작적) 조건형성(instrumental or operant conditioning)으로 반응과 그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학습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성적이 향상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공부와 성적 간의 관계 인과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발소리와 그릇은 먹이와 함께 나타난다

파블로프의 개와 실험장치(좌) 고전적 조건형성 절차(우)

 

 

먼저 고전적 조건형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러시아의 유명한 생리학자인 파블로프(Ivan P. Pavlov)는 1900년대 초반 개의 침샘 일부를 외과적으로 적출하여 먹이를 먹을 때마다 분비되는 침의 양을 측정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 개가 먹이 주는 사람 발소리를 듣거나 빈 밥그릇만 보아도 침을 분비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유명한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형성의 개념이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즉, 그 개는 발소리와 그릇이 먹이와 함께 나타난다는 일종의 ‘연합’을 학습한 것이고 따라서 처음에는 침분비와 아무 상관이 없었을 소리와 그릇이 먹이와 같은 효과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파블로프는 먹이를 주기 전 항상 불빛을 보여주며 먹이와 같은 효과를 가질 수 있는가를 알아보았고 그 결과는 적중했다. 종합하자면 고전적 조건 형성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요소를 가정한다.

 

*무조건 자극(US: unconditional stimulus): 자동적/생득적 반응을 유발하는 자극(예: 먹이)
*무조건 반응(UR: unconditional response): 학습되지 않은 자동적/생득적 반응(예: 먹이에 대한 침분비)
*조건 자극(CS: conditional stimulus): 무조건 자극과 짝지어져 새로운 반응(즉 무조건 반응)을 유발하는 자극

                                                             (예: 발소리, 빈 밥그릇, 또는 불빛)
*조건 반응(conditional response): 조건 자극에 의해 새로이 형성된 반응(예: 조건자극에 대한 침분비)

 

따라서 불빛이 개로 하여금 침을 분비하게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최초에는 무조건 자극(먹이)에 의한 무조건 반응(침분비)만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자극과 조건 자극(불빛)이 계속적으로 같이 제시됨으로써 조건자극만 제시되어도 무조건 반응과 동일한 조건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고전적 조건 형성은 왜 필요할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사건들(CS와 US) 사이의 관계성을 학습하여 다가올 사건에 대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번개(CS)가 치면 귀를 막아 조금 있으면 경험하게 될 천둥소리(US)에 대비하여 귀의 손상을 막는다. 또한 긴급한 자극에 대비해 생명 유지를 가능케도 해 준다. 영양은 사자 냄새(CS)가 흘러 들어오면 미리 멀리 달아날 수 있다. 사자(US)를 직접 보는 순간 이미 때는 늦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조건형성된 조건 반응도 무조건 자극 없이 조건 자극만 되풀이 되면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다. 불빛이 계속 먹이 없이 제시되면 결국 그 개가 불빛에 침을 흘리는 일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소거(extinction)라고 한다. 하지만 일정한 기간 후 불빛(CS)을 제시하면 소거된 침분비가 다시 나타나며 이를 자발적 회복(spontaneous recovery)이라 한다. 즉 소거된 반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 억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회복된 반응은 강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원래의 조건자극이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자극은 조건반응 유발이 가능하다. 이는 자극 일반화라고 한다.

 

 

스키너 상자가 알려주는 것은


이러한 연합의 개념은 이후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 사이의 관계를 학습하는 도구적 조건화의 개념으로 발전된다. 여기서 ‘도구적’이라 함은 어떤 행동이 특정 결과를 초래하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학사(心理學史)에서 유명한 연구자인 손다이크(Thorndike)와 스키너(Skinner)가 바로 이 시점에서 등장하며 그들의 연구는 동물들도 논리적 사고와 이해력을 지니고 있는가에 관한 논쟁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스키너는 동물의 행동을 단순하고 관찰하기 쉽도록 상황을 설정한 상자(이를 스키너 상자라고 부른다)를 만들고 쥐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관찰하였다.

 

 

스키너(좌) <출처 : Silly rabbit at en.wikipedia.org> 스키너 상자(우)

  

 

스키너 상자에서 들어간 쥐가 하는 개별 행동들은 그 형태별로 관찰된다. 그 중 가장 중점적으로 관찰되는 내용은 쥐가 레버를 누르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위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쥐가 레버를 누르면 자동적으로 먹이가 하나씩 나오게 고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가 고픈 쥐는 벽을 긁기도 하고 먹이가 나오는 구멍에 입을 대기도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히)레버도 누르게 된다. 그 때마다 먹이가 나오면 쥐는 그 먹이를 맛있게 먹곤 하는데 처음에는 그 ‘레버 누르기 행동’과 ‘먹이 받기’간의 관련성을 알아차리지 못하였으나 어느 순간 ‘아! 내가 레버를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구나’라는 걸 인식하게 되며 그 때부터는 마치 사람이 냉장고 문을 여는 것처럼(실제 연구 장면에서는 상당히 천연덕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레버를 누르고 냉큼 먹이를 받아먹는 수준에 도달한다.  이를 두고 스키너는 쥐가 자신의 레버를 누르는 행동과 먹이를 받는 결과 간의 인과관계를 다수의 시행착오를 거쳐 점진적으로 학습하였으며, 이는 쥐의 행동이 먹이(강화물)에 의해 강화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여기서 강화물(먹이)은 특정 반응의 확률을 증가시키는 사상(event)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아닌 동물조차도 외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간의 관련성을 인식함으로써 행동이 유발되는 수동적 학습(고전적 조건화)뿐만 아니라 자신이 능동적으로 취한 행동으로 환경을 조작하는 인과관련성을 파악하는 능동적 학습(도구적 조건화)이 가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조건화 방식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기본 원리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맞아요”나 “참 잘했어요”라는 강화물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빈도를 증가(즉, 강화)시킨다. 또한 성장기에 부모가 좋아하는(즉, 강화하고 보상하는) 성격 특성에 부합되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아동은 자신의 성격 특징을 형성해 나간다(이 두 조건화 원리가 인간의 모든 학습을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논의할 것이다.)

 

조건화로 인간의 학습을 설명하는 관점은 보다 다양한 인간 행동 유형 설명에 적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비둘기가 어떤 행동을 하던 상관없이 매 15초 마다 먹이를 줄 경우, 먹이를 받을 때 공교롭게도 자신이 했던 행동을 비둘기는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한다. 자신의 그 행동과 먹이는 사실 아무 관계도 없는데도 말이다. 이는 인간의 미신적 행동이 왜 유발되는가의 설명에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미신행동이란 실제 자신의 행동이 특정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착각하고 그 행동을 계속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레버를 누른다고 언제나 먹이 하나를 얻을 수는 없다


그런데 스키너 상자에서는 레버를 누르면 언제나 먹이 하나를 얻을 수 있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이 상자에서처럼 특정 행동에 대해 언제나 강화물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이렇게 행동을 하였을 때 강화물이 부여 되거나 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경우들을 강화계획에 의거하여 설명할 수 있다.

 

* 강화계획: 실제 세계에서 드문 연속강화 이외에 실제적인 강화
* 강화계획의 종류: 고정비율계획, 변동비율계획, 고정간격계획, 변동간격계획

 

고정간격은 정해진 시간이 지난 후에 나타나는 첫 번째 행동이나 반응에 대해 강화하는 것(예를 들어, 매 20초가 지났을 때 첫 행동마다 강화물 제시)을 의미하며, 고정비율은 일정한 수의 행동이나 반응 이후에 강화하는 것(예를 들어, 어떤 목표 행동이 5번 일어날 때마다 강화물 제시)을 의미한다. 그리고 변동이라 함은 그 일정함이 간격 혹은 비율에 있어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강화는 변동적, 즉 불규칙적일수록 소거가 적게 일어나는 것으로 관찰된다. 그리고 이는 인간이 왜 도박에 빠져드는가에 대한 설명으로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만약 예를 들어 매 8번째 게임마다, 혹은 매 15분 간격의 첫 게임에서 돈을 따게 된다면 사람들은 도박을 강박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언제 돈을 딸지 알 수 없으므로’ 매번 다음 판에 대한 기대를 걸면서 도박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박을 끊는 것(소거)이 어려운 것이다. 또한 우리가 강박적으로 자꾸만 무언가를 확인하는 행동들이 대부분 이러한 불규칙적인 강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조건화 원리에 기초한 학습 이론가들은 보고 있다.

 

 

조건형성이 아니어도 인간은 학습한다

그러나 조건 형성을 통해 인간의 학습을 설명하는 관점들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직접적인 강화물의 경험 없이도 모방을 통해서 얼마든지 학습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원숭이들도 다른 원숭이들이 어떤 특정 행동을 할 때마다 당하는 고통을 관찰하면서 그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인간만큼 신속하고 정교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러한 형태의 학습을 관찰학습 또는 모방학습이라고 한다. 이 분야의 대가인 앨버트 밴두러(Albert Bandura)는 어른이 보보인형을 발로 차고 때리는 모습을 본 아동들이 그렇지 않은 아동들보다 혼자 남겨졌을 경우 그 인형에 대해 유사한 공격적 행동을 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욱 중요한 점은 그 어른이 자신의 부모이거나 존경할만한 사람, 혹은 권위가 있는 사람일수록 인형에 대한 공격행동의 가능성이 더 증가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간접경험들은 상당기간 축적되면서 즉시적인 행동의 변화를 초래하지 않더라도 점진적인 가치관이나 관


보보인형

점의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서두에서 학습은 ‘행동의 변화’를 포함해야 한다고 했는데 인간의 학습이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행동의 변화 없이도 학습은 우리 내부에서 꾸준히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취학 전 아동들이 어른의 공격행동을 모방하는 장면들. 이 아동들은 실험 전에 이런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다 (Bandura, 1965, p. 76)’
<출처 : http://open.jorum.ac.uk/xmlui/bitstream/handle/123456789/770/Items/ED209_1_section10.html>  보보인형 실험 관련 동영상보기

 

 

이렇듯 인간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수많은 현상들과 사건을 경험하고 그것들 중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연합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이를 타고난 행동들과 연결시켜 가면서 보다 더 복잡한 체계를 형성해 나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반드시 직접 경험할 필요 역시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관찰과 모방이라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관찰대상이 지니는 권위나 신뢰성같이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우리의 성격과 지식체계, 더 나아가 우리의 문화가 바로 이렇게 만들어져 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만들어져 갈 것이다.

 

  1. 그리고 단순 형태의 학습에서 진행 양상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인간보다 더 단순하다고 생각되는 동물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이것이 바로 초기의 학습심리학에 동물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2. 고전적 조건 형성에서는 자극과 자극의 관계성에 대한 학습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3. 강화물은 보상이라는 용어와 기능적으로 동일하나 보다 객관적 용어이기 때문에 사용된다.
  4. Bandura, A. (1965). Behavioral modification through modeling procedures. In L. Krasner & L. P. Ullman (Eds.), Research in behavior modification. New York: Holt, Rinehart & Win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