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윤제학_오대산 월정사

醉月 2011. 7. 2. 12:41

강원 홍천 오대산 월정사

보살상의 웃음꽃 선한 마음의 고갱이

 


낮과 밤. 시간의 두 기둥입니다. 우리는 이 두 기둥이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삶을 이어갑니다.

‘주리면 먹고 졸리면 잔다.’ 출세간의 사람들이 사는 법입니다. 세간 살림 꼴로 바꾸면 이렇게 되겠지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쉰다.’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일이 왜 이리 ‘꿈’같은지요.

 

저녁 공양을 마치고나자 도량 가득 법고 소리가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그 소리를 따라 산그늘은 깊어지고 침묵은 단단해집니다. 가끔씩 들리던 까마귀 소리도 종적을 감춘 지 오래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저 법고의 텅 빈 심장 속으로 들어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사의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법고 소리를 따라 어둠이 밀려오는 때입니다. 동지와 설 사이인 이맘때가 제격이지요. 더욱이 월정사는 언제 봐도 꽉 찬 달 같은 형국의 둥두렷한 오대산 자락이 감싸고 있어서 밤 풍경은 더욱 그윽합니다.

절집에서는 일거수일투족이 절로 정갈해집니다. 신발을 벗으면서도 몸을 바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섬돌의 정갈한 네모가 신발을 제멋대로 벗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든 바깥에서든 신발 하나 제대로 벗어 두지 못하는 우리네 일상의 매무새가 얼마나 구겨져 있는지를 여실히 알게 합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쉰다’는 이 단순한 삶의 원리가 ‘꿈같은 일’로 느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겠지요.

따뜻한 온돌 위에 두 다리를 뻗고 시간을 헤아려 봅니다. 오후 7시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느낌은 한밤중 같습니다. 덤으로 하룻밤을 더 얻은 기분입니다. 졸음이 봄볕처럼 다가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나른한 기쁨입니다.

 

 

 

 

 

 

 

한소끔 단잠을 자고나자 머리가 말개집니다. 사위는 고요 그 자체입니다. 다시 일상을 떠올려 봅니다. 한밤중에도 끊이지 않는 자동차 소리, 냉장고 윙윙대는 소리가 귀에 생생합니다.

잡것이라고는 조금도 섞이지 않은 밤의 정체가 궁금하여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맙소사,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없이 전혀 다른 세상이 태어나 있습니다. 눈입니다. 

살금살금 적광전 앞뜰로 나갔습니다. 낮과 밤 혹은 빛과 어둠의 경계가 무너진 대적광(大寂光)의 세계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광명의 부처’로 일컬어지는 비로자나불의 세계가 결코 관념의 세계가 아님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봅니다.


 

 

 

 

다시 방안으로 들어서자 옷에 묻어온 한기가 청신한 겨울 냄새로 코끝에 서립니다. 문득 한 생각이 일어납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단 하루도 온전한 밤을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이 그것입니다. 낮에 하는 일은 두고라도, 밤에 쉬어야 하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허겁지겁 사는 현실이 통탄스러웠습니다.

제대로 살려면, 제대로 쉬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런 강박도 없이 그냥 쉬는 공부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결코 요가센터나 피트니스클럽, 스키장, 온천… 같은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겠지요.

산사의 아침은 눈을 치우는 일로 시작됐습니다. 그냥 두면 될 일이지 무슨 법석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할 일이 또 있는 법. 눈을 내린 하늘의 뜻과 눈을 치우는 사람의 뜻이 다른 건 아닐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눈을 치우는 일도 법석(法席)이겠지요.

 

월정사 대중들이 가르마처럼 곱게 내놓은 길을 따라 다시 적광전 앞에 섭니다. 뒤로 눈을 이고 선 금강송의 자태가 비로자나부처님의 광배(光背)처럼 빛납니다. 적광전 앞의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은 구름을 어깨 위에 올린 양 하늘 깊숙이 솟아 있습니다. 그런데 석탑 앞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의 빈 자리가 어제와 달리 더 크게 느껴집니다. 아쉽게도 석탑 앞의 보살상은 현재 월정사성보박물관(보장각)에 모셔져 있습니다. 영구 보존을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이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문화재로서가 아니라 신앙적 측면의 현재성을 고려하면 제자리에 있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굳이 탓을 하자면 산성비로 상징되는 고약한 환경에 손가락질을 해야 할 텐데, 결국 그 손가락 끝은 우리 모두를 향하겠지요. 만시지탄입니다.

사실 이번 여행은 그 보살상의 선한 웃음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한국의 얼굴 중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월정사 보살상을 들 것입니다. 그 얼굴을 떠올리면 나는 인간의 본성은 본디 선하다는 쪽으로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 얼굴에 어린 웃음은 세계인이 경탄해마지 않는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이나 서산 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과도 다릅니다. 월정사 보살상의 얼굴에는 온 마음 온몸으로 자신을 누군가에 바치는 진심이 어려 있습니다. 그 얼굴에 핀 웃음꽃에서 나는 자타(自他) 혹은 주객(主客)이 무너진 마음자리의 향기를 느낍니다.

 


 

 

절에서 쓰는 말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수희(隨喜)’입니다. 사전적 해석은 ‘다른 사람이 행한 선(善)을 수순(隨順)하여 기뻐하는 것’인데, 나는 ‘남의 기쁨을 내 것인 양 함께 기뻐하는 것’으로 새깁니다. 고약한 비유를 하지면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픈’ 심사의 대극점에 있는 마음이 바로 ‘수희’일 것입니다. 슬픔은 작은 동정심만으로도 함께 할 수 있지만, 기쁨을 함께하는 일은 그것보다 훨씬 큰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기쁨 함께하기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리 허물될 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슬픔 함께하기보다 더 힘이 들 수 있습니다.

월정사 보살상의 얼굴에서 나는 이기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선한 마음의 고갱이를 봅니다.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오려면 그 보살상이 탑을 우러러는 딱 그만큼 각도로 고개를 젖혀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절묘하게도 보살상의 키가 180cm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그렇게 됩니다. 키가 큰 사람이라면 약간 무릎을 구부려야 하겠지요.

 

 

 



 

 

모습만으로도 월정사 보살상은 특이합니다. 오른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공양을 드리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강릉 일대에만 보이는 양식인데,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과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4호)이 대표적입니다.

월정사 보살상은 약왕보살로도 불립니다. 부처님의 사리를 수습하여 팔만사천의 탑을 세우고 탑마다 보배로 장엄한 다음, 그 앞에서 칠만이천 세 동안 자신의 두 팔을 태우며 공양했다는 법화경의 약왕보살이 바로 이 보살입니다.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는 800여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과 상원사 적멸보궁만으로도 보배로운 절입니다. 특히 월정사가 깃든 오대산은 늘 5만의 진성(眞聖)이 머물고 있다는 불교의 성지입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오대산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도량인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천과 효명이라는 신라의 두 왕자가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에 올라 예를 드렸는데, 이때 동대(東臺)에는 1만의 관음, 남대에는 1만의 지장, 서대에는 1만의 대세지, 북대에는 석가여래를 앞세운 5백의 아라한, 중대에는 1만의 문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다섯 대에는 암자가 자리하고 있는데, 동대 관음암·서대 수정암·남대 지장암·북대 미륵암·중대 사자암(적멸보궁을 돌보는 암자)이 그것입니다. 어쩌면 오대산의 울창한 수림과 깊은 계곡이 곧 5만 진성(眞聖)의 현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산문을 연 월정사는 이후 여러 차례 불에 타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6·25때는 팔각구층석탑과 그 앞의 보살상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탔습니다. 하지만 그 정신만큼은 한 번도 탄 적이 없습니다. 오대산 아니 자연 그 자체를 성인의 현신으로 섬기는 그 정신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보살의 정신이기도 할 것입니다.

월정사 보살상의 그 선한 얼굴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참으로 닮고 싶은 얼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