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윤제학_치악산 상원사

醉月 2011. 7. 9. 15:28

강원 원주 치악산 상원사

금대리~영원사~남대봉~상원사~성남리 코스 답사

날 선 바람이 숲을 벤다. 몸서리치는 나뭇잎에 스미는 붉은 빛. 생장을 멈춘 식물이 마지막 열정을 뿜어내고 있다. 만산홍(滿山紅)! 가을의 축제가 한창이다. 요즘 단풍은 우리 땅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것이다. 앞마당의 작은 수풀에도, 공해에 찌든 도로변 가로수에도 단풍은 든다. 그러나 역시 차고 맑은 공기가 빚어낸 높은 산의 단풍빛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안타깝게도 단풍이 화려함을 뽐낼 수 있는 시간은 지극히 짧다. 색깔을 입기 시작해 2주면 절정에 이르고 곧 그 생을 마감한다. 혹 이즈음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제대로 빛을 내기도 전에 낙엽 되어 뒹굴 운명이다. 생명력 짧고 가냘프기에 단풍의 화사함은 더 애끓는 모양이다.

11월은 낮은 곳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다. 하지만 단풍의 절정은 곧 끝을 의미한다. 저기 멀리 산으로 눈을 돌려보자. 아래쪽 산자락에는 원색으로 물든 나뭇잎이 남아 있어도 위쪽은 낙엽이 진 곳이 많다. 특히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는 예외 없이 초겨울 풍경이다.

 

산에서 만나는 1,000m 고도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이 높이가 낮은 산과 높은 산이 구분되는 기준이 된다. 산의 높이가 1,000m를 넘어서면 공기부터 다르다. 대도시의 공해도 범접할 수 없어 언제나 청정한 대기를 만날 수 있다. 산 아래와 달리 기온도 낮아 가을철 해질 녘이면 거의 초겨울 날씨다. 그만큼 단풍도 빨리 들고 먼저 지게 된다.

이번 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 치악산 상원사가 목적지다. 상원사의 고도는 약 1,100m로 해발 1,244m인 설악산 봉정암에 비해 낮다. 하지만 부속암자가 아닌 사찰 중에는 상원사의 고도가 가장 높다. 게다가 치악산 이름의 기원이 된 꿩의 보은설화가 전해오는 곳이라 유난히 관심을 끈다.

사찰은 산중 인간의 거처 가운데 가장 유서 깊고 수도 많다. 이처럼 절이 산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아무래도 절에 대한 탄압이 저잣거리보다는 미치기 어려워 산속에 사찰이 많이 남게 됐다는 추정이다. 산은 또한 속세의 간섭을 멀리 할 수 있어 수도와 공부를 위해서도 좋은 장소다. 산과 절의 밀접한 관계는 이렇게 오랜 전통을 지녔다.

단풍 시작하기 전후가 가장 호젓해

상원사(上院寺) 가는 길은 푸르렀다. 한 달 앞서 가는 산행이라지만, 기대했던 단풍에 대한 환상은 산산이 깨졌다. 하지만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단풍이 짙으면 산사 가는 길에서 느껴 보려던 고즈넉함 대신 인파에 시달릴테니 말이다. 오히려 이렇게 단풍 들기 전과 후가 조용하고 한적해 걷기 좋다.

 


산행은 금대리에서 시작했다. 보통 상원사로 오르는 이들은 성남리에서 출발한다. 대중교통이 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산행거리가 짧기 때문이다. 성남매표소에서 상원사까지는 3시간이면 여유 있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산사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 짧게 잡을 수는 없는 일. 취재팀은 영원사에서 남대봉 줄기를 넘어 상원사로 이어지는 코스를 잡았다.

출발이 조금 늦었다. 그래도 오름길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이 좋은 가을의 하루를 만끽하려면 여유가 필요하다. 어느덧 짙어진 바위색과 계곡빛에 눈길이 머문다. 바람 따라 그네를 타는 나뭇잎이 경쾌한 마찰음을 빚어낸다. 역시 성큼 다가온 가을을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템포를 조금 늦추면 평소에 스쳐지나가던 것들이 하나 둘 정겹게 말을 걸어온다.

금대리 자동차야영장부터 걷는다. 흙이 깔린 산길은 어느새 거친 포장으로 바뀐다.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역시 호젓하다. 이제 상류에 남은 영원사밖에 없다. 주중이라 그런지 절을 오가는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포장도로도 이렇게 오붓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정오가 가까워오고 있지만 하산객은 보이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상원사로 출발한 이들이라면 이즈음 금대리에 도착할 시간이다. 교통이 좋지 않아 금대리 코스가 인기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처럼 한적할 줄은 몰랐다.

 


포장도로 끝의 영원사에 닿는다. 절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 보인다. 잠시 망설이다가 대웅전을 향해 발을 옮긴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이번 기회에 둘러보기로 한다. 가파른 산자락을 깎아 만든 평지에 웅장한 크기의 대웅전이 서 있다. 건물 앞 공터에서 보는 금대리쪽 조망이 멋지다. 잔잔한 산줄기들이 서로 겹치며 만들어내는 원근감에 한 폭의 동양화가 펼쳐진다.

영원사 입구에서 다리를 건너 숲으로 접어든다. 하늘을 가리는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계곡으로 들어간다. 길 옆에서 얼음처럼 찬 계곡물이 졸졸대며 속삭인다. 조금씩 좁아지며 깊어지는 계곡은 그 끝을 짐작키 어렵다. 사실 영원사 계곡은 수려함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단아하게 풍기는 그윽한 자연미가 더 매혹적이다.

치악산 이름의 유래, 꿩의 보은설화

 

양쪽으로 수직 절벽이 형성된 좁은 계곡을 통과한다. 철다리가 놓여 있지만 갑자기 물이 물어나면 통과하기 어려운 장소다. 영원사 계곡에서는 이런 내밀한 아름다움을 지닌 곳을 자주 보게 된다. 물줄기가 잦아들 즈음 커다란 바위가 계곡 양옆에 기둥처럼 서 있다. 이 바위는 가파른 산길의 초입을 의미하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크고 작은 돌이 쌓인 급경사는 거의 1km 가까이 이어진다. 잔인하게 가파른 길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진을 뺀다. 하지만 이 고빗사위를 넘지 않으면 상원사로 갈 수 없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고 전진한다. 온몸이 땀에 젖어들 즈음 남대봉 능선 갈림길에 앉는다.

폐부를 찌르는 얼음장 같은 바람에 기침이 터져나온다. 높은 산에서 겨울을 만난 것이다. 웃옷을 꺼내 입고 초콜릿으로 허기를 달랜다. 이제 길은 상원사를 향해 아래로 흐른다. 산죽이 우거진 산자락을 헤치고 잠시 내려서니 금대봉 갈림길에 이른다. 왼쪽 사면을 오르면 금대봉으로 연결되고 직진하면 곧이어 상원사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 금대봉이라 표기되어 있는 봉우리는 사실 망경봉(望景峰·1,181m)이다. 실제 금대봉은 망경봉 남쪽 1.5km 지점에 솟아 있는 1,187m봉(지형도 상에 시명봉으로 표기)다. 하지만 많은 지형도와 등산안내도, 심지어 이정표와 정상의 팻말에도 망경봉을 남대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제 옛 이름은 거의 사라져 버린 거나 진배없다.

조망이 볼 것 없는 남대봉은 생략하기로 하고 갈림길을 지나쳐 상원사 입구로 내달았다. 잠시 후 왼쪽으로 아담한 일주문이 보인다. 그 뒤로 육중한 산줄기가 감싸안은 우묵한 곳에 상원사가 자리하고 있다. 꿩의 보은 설화가 전해오는 바로 곳이다. 그 유명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상원사에서는 한번쯤 그 전설이 되새기게 된다.

 


옛날에 한 나그네가 과거를 보러 가는 위해 치악산 기슭을 지나던 중 구렁이에게 잡혀 먹힐 뻔한 꿩을 구해주게 된다. 그 날 밤 나그네는 외딴 민가에서 하룻밤 지내다가 남편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나타난 암쿠렁이의 습격을 받게 된다. 구렁이는 날이 밝기 전 상원사의 종이 세 번 울리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제안을 한다. 살기를 포기하고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던 나그네는 세 번의 기적 같은 종소리를 듣게 된다. 구렁이는 약속을 지켰고, 날이 밝아 종루를 찾아가보니 꿩 세 마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다고 한다.

나그네에게 입은 은혜를 갚은 꿩의 이 이야기는 치악산의 이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치악산은 원래 단풍이 뛰어나다 하여 붉을 ‘赤’ 자가 들아간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리던 곳인데, 보은 설화가 전해진 이후 꿩 ‘雉’ 자를 써서  치악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상원사 범종각 옆에는  치악산 과 상원사에 얽힌 설화를 전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사람 사는 모습 묻어나는 상원사 계곡

상원사 대웅전 앞에 서면  치악산 남부 일대가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산 자락에서 툭 튀어나온 넓은 암반 위 절집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은 독특하기 이를 데 없다. 날씨가 좋으면 남쪽으로 신림뿐만 아니라 제천, 영월, 충주 일원의 산과 들이 가마득히 펼쳐진다. 산자락이 단풍에 물들거나 설화가 만발하면 이곳에서 느끼는 조망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상원사는  치악산 남부 일대에서는 가장 조망이 좋은 장소다.

 
일주문 근처의 샘터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내리막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상원사에서 성남리 매표소까지는 빠듯하게 잡아 약 2시간 거리. 구름이 적지 않아 온종일 늦은 오후 같은 분위기가 계속됐는데, 이러다 밤이 될 모양이다. 쌍룡수를 스쳐지나 계속된 계단길에서 속도를 낸다. 성남매표소에서 금대분소로 돌아가는 관리사무소 직원의 차편을 얻어타려면 퇴근시간 전에 상단 주차장에 닿아야 한다.

널찍하게 잘 조성된 계단길은 경사도 완만해 영원사 계곡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코스라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상원사까지는 등산객과 함께 신자들의 왕래가 잦기 때문에 길이 더 좋았다. 계단은 걷기 적당한 높이로, 둥근 나무를 촘촘히 세워 박고 중간에 흙을 채워 세심하게 마무리해 두었다.

 

깔끔한 계단길이 끝나자 길은 계곡으로 접어든다. 커다란 나무들이 숲을 이룬 계곡은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늘이 짙었다. 게다가 이리 저리 물을 건너면서 맞게 되는 서늘한 바람에 흐르던 땀이 쑥 들어간다. 하류로 내려가니 수량이 늘어나며 계곡 곳곳에 작은 폭포들이 얼굴을 내민다. 낙엽이 둥둥 떠다니는 물가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마지막 철다리를 건너 조금 내려서니 갑자기 시야가 확 터지면서 널찍한 공터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 아래로는 계곡과 나란히 하는 도로가 이어지고 있다. 포장과 비포장이 교차되는 이 길을 따라 2.5km를 더 내려가면 성남매표소에 닿는다. 시간이 제법 걸리는 구간이다. 취재팀은 다행스럽게 차를 얻어타고 이 지루한 길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성남매표소까지 길을 따르는 사이 골짜기 양옆으로 민박집과 찻집이 제법 많았다. 한강변에서 본 듯한 근사한 별장도 눈에 뜬다. 산사는 결코 속세와 분리된 신선의 세계가 아니다. 사람도 있고 자연도 있고 부처의 마음도 있는 장소다. 그러니 그곳에 가는 길에서 완벽한 자연의 호젓함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겠다. 사람 사는 모습이 묻어나는, 하지만 너무 번잡하지 않은 길이면 충분하다. 바로 그런 곳이 상원사 가는 길이다.

산행 길잡이

성남매표소~상원사 코스가 비교적 유순해

영원사 계곡의 내밀한 자연미도 멋진 볼거리


상원사로 가려면 보통 성남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1시간은 도로를 걷고, 다시 2시간은 산길을 따라 오르게 되는데, 전체적으로 길 상태가 좋고 평탄한 편이다. 막판에 40분 가량 계단길이 나오는데, 그리 급한 편이 아니고 잘 정비되어 있어 어렵지는 않다. 상원사 밑 삼거리에서 100m쯤 아래 샘터에서 물을 구할 수 있고, 경내에도 탐방객을 위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두었다.

취재팀의 답사 경로인 영원사를 통해 산을 넘을 생각이라면 약간 힘을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주능선에 닿기 전 막판 1km 구간의 급경사가 보통 벅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대리매표소를 기준으로 하면 상원사까지 시간은 거의 비슷하게 걸린다. 다만 버스를 이용할 경우 금대계곡 입구에서 매표소까지 들어가는 시간을 감안해야 한다. 식수는 영원사나 상원사에서 구할 수 있고 총 산행시간은 5~6시간 정도 걸린다.

교통

치악산행 교통편은 원주가 기점이 된다. 금대리까지는 원주시 장양동을 출발, 고속버스터미널과 원주역을 거쳐 신림까지 운행하는 21~25번 시내버스 이용, 금대리 입구에서 하차해 매표소까지 도보로 이동하면 30분쯤 걸린다.

성남리는 원주 자양동 종점서 1일 5회(07:20, 09:25, 12:25, 15:25, 18:55) 출발하는 성남행 21번 태창운수 시내버스 이용. 성남에서 원주행 버스는 1일 5회(08:30, 10:30, 14:30, 16:30, 20:00) 출발. 약 50분 소요, 요금 600원. 연송정 버스종점에서 매표소까지는 약 1.2km 거리. 또는 원주에서 수시 운행하는 신림행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신림으로 간 다음 여기서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경유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면으로 진입한다. 원주 직전 만종 분기점에서 대구 방면 중앙고속도로를 탄 뒤, 신림 나들목에서 빠져나온다. 금대리로 가려면 신림을 거쳐 원주 방면(5번 도로)으로 진행하다 금대계곡 입구에서 우회전해 끝까지가면 된다.

성남매표소는 신림 나들목에서 영월쪽으로 우회전해 1km쯤 진행하면 왼쪽으로  치악산  상원사 입구가 보인다. 이 갈림길에서 좌회전한 뒤 끝까지 가면 성남매표소가 나온다.

숙박(지역번호 033)

성남매표소 일대에 민박집과 식당 등이 산재해 있다.  치악산 민박(762-7979), 소롯길(763-4071), 봉이민박(762-3391) 등. 성남매표소 전화 762-5695.

금대리 일원의 민박집들은 대개 음식점을 겸해 운영하고 있다. 금대장여관(763-6663~4), 청솔가든(763-8960),  치악산장(762-4338) 등.  치악산 국립공원 금대분소 전화 763-5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