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禪과 詩의 史的 考察

醉月 2011. 7. 12. 10:04
禪과 詩의 史的 考察 _

I.들어가는 말
II.禪과 文學
1.中國의 禪과 詩
2.新羅의 禪과 詩
3.高麗時代의 禪과 詩
4.朝鮮時代의 禪과 詩
III.끝맺는 말
*참고문헌

 


I. 들어가는 말
禪은 종교수행의 방편이며 명상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깨달음 그것 자체를 "直指人心 見性成佛 敎外別傳 不立文字"라는 것으로 표현되는 세계이다.그러한 禪의 세계에는 극도의 일상성과 유별성이 동시에 나타나는 등 일상인의 논리를 벗어나는 등 독특하고 다양한 표현의 영역이 있어 禪詩라는 쟝르를 형성하게 되었다.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나 그것의 표현인 문자없이 전달하는 것이 바로 別傳이요 禪이다.그 언어의 표현은 되도록이면 압축내지는 함축성을 띠어,극도의 상징이 될 수 밖에 없다.때문에 禪詩는 일상언어의 논리와 상징의 폭을 초월하는 표현으로서 悟道(깨달음)의 초현실적,신비적 체험을 형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禪詩의 문학적 특징은 우리의 지각경험이 전혀 인식하거나 재현해 낼 수없는 절대적 심상의 돌연한 결합과 多重的 심상의 중첩으로써 奧意를 그 자체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禪은 인간과 우주의 근본실체를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이러한 근본실체를 깨닫게 되면 인간의 생과 사를 초월하게 되고,모든 우주의 원리를 체득하게 되어 자유자재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또한 이것이 신통의 경지를 얻게 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그런데 이 禪의 깨달음의 길은 우주에 있는 것도 아니요,하늘 저편에 있는 것도 아닌,오직 내 마음의 실체 속에 있는 것이다.이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禪修行에 따를 수밖에 없다.禪이란 서구의 사상체계처럼 논리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논리는 지속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묶여 生의 깊은 심연을 뛰어넘지 못한다.禪 또한 예술적 직관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그러니까 인간의 정서나 감수성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세계도 아닌 것이다.그것은 선수행의 체험이 아닌 그밖에 인간이 지닌 어떤 총명함과 지혜로움으로도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禪師들의 어록과 禪詩에서 찾을 수 있는 돌연성,침묵가운데 솟아오르는 우뢰소리,번뜩이는 언어의 섬광,예기치 못한 돌발적인 행위와 기행,생태를 일깨우는 유머,격렬한 심장의 고동소리,캄캄한 절벽으로 몰아 세우는 듯한 갑작스런 질문,깨달음과 자비의 이름으로 제자의 빰을 치고 몽둥이질을 서슴치않는 이들의 행위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달마가 서쪽에서 온뜻,즉 달마가 전하려는 불법의 절실한 뜻을 물었을 때 조주스님이 '뜰앞의 잣나무'라 한 말은 일상적인 논리를 벗어난 것이지만 일종의 시적인 스피드나 경이로움 같은 것으로 감득할 수 있을 것이다.말하자면 문학적 정서나 감수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이와같이 현실을 넘어선 비약과 초월의 세계를 시적 발상법으로 표현하는 禪詩는 여타의 다른 문학적 장치보다도 사상과 미적인 본질에 있어서 변별성을 가진다.이런 점을 바탕으로 하여 禪과 詩의 세계를 史的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 본고의 초점이다.

 


Ⅱ. 禪과 文學
1.中國의 禪과 詩
禪은 '不立文字'라고 일컬어 왔다.언제부터 그것이 禪의 세계에서 언어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다만 <華嚴大疏>에서 '道는 원래 말이 아니다.말에 의하여 道를 나타낸다'라고 한 것처럼,道를 깨달은 사람이 그 깨달음 속에서 자기완결을 끝내버린 뒤,시종일관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道는 밖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다.밖으로 드어나든 드러나지 않든 道 자체에 있어서는 관계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禪도 하나의 종교인 이상 佛法내지는 인간과 동떨어진 곳에 道 또는 法의 완전한 완성이 있을 리 없으며,또 원래 禪에 있어서는 自己完結이야말로 더더욱 삼가야할 外道의 모습이기 때문이다.왜냐하면 佛向上이라는 것은 부처 또는 道를 목표로 하여 거기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위'를 뛰어넘는 것이요,부처의 저 너머로 훌쩍 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부처를 뛰어 넘는다는 것은 초월된 그 자기마져 다시 뛰어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되어 왔을 때에는 그것이 지닌 '此岸의 世界'와 '彼岸의 世界'는 서로 동떨어진 것이었다.차안의 세계는 속세의 일체를 포괄하는 것으로서 당연히 세속인들의 정신세계도 포괄하였는데 그것은 모두 더없이 불결하고 비천하며 비참한 것이었다.그러므로 불교도들의 관념 속에는 두 개의 확연히 대립적인 것의 세계,즉 현실의 부정적 객관의 세계,그리고 허환의 긍정적 이상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에 의해 묘사된 현실세계는 비할 수 없는 고난이었고 허환의 세계는 크게 과장되어 있었다.그러나 禪宗이 '彼岸의 世界'를 요원한 천축으로부터 티끌세계로,허환의 내생으로부터 현세로 끌어다가 모든 개인의 내심 속에 옮겨 놓은 후로,이들의 渭水와 涇水처럼 분명했던 본래의 한계는 불분명해지기 시작했다.즉 善과 惡,是와 非의 관계가 모호해진 것이다.그렇다면 이들의 구별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특히 禪宗은 梵我一如,梵我合一이라는 세계관을 신봉하여 산하 대지와 일월성신 그리고 산림의 짐승과 새가 모두 나의 '본심'을 체현하고 있고 나의 '본심'속에 곧 산하대지와 일월성신 그리고 산림의 짐승과 새가 모두 들어 있었으며,부처가 바로 내 마음이었고,내 마음이 곧 부처였다.즉 '直指人心 見性成佛'인 것이다.이처럼 禪은 스스로 內省照顧하여 體得悟入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그런데 禪이 세계와 自我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익하고 풍부한 상상력과 예리한 관찰,그리고 심도있는 투시력을 발휘하여 幽深玄妙한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면에서는 詩와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즉 신비의 세계,절대의 세계를 無碍한 무분별지에 근거하여 초논리적인 직관을 통하여 요해하려는 禪의 입장과 그대로 꾸준한 정신적 추구와 시적인 영감을 통하여 사물과 인생의 본질을 추구하고 미적가치를 발견하려는 시창작의 원리와 일치한다.

 

中國에 있어서 본격적인 禪詩의 창작은 五祖 弘忍에서 六祖 慧能과 신수의 남북종으로 갈릴 당시 禪家에서 悟境의 표현이나 傳法時 詩偈를 사용하면서 비롯되었고 그후 南宗이 五派로 나뉘고 다시 臨濟와 曹洞의 二宗으로 통일되면서 더욱 확고한 禪詩文學의 토대를 굳혀갔다.특히 唐에서 근체시가 성행할 때 佛典的인 偈頌이 近體詩의 押韻과 格調를 따르게 되면서 일반 시문학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이때의 禪詩人들은 唐의 寒山,拾得,豊干,皎然 등이 대가들이다.

 

唐代의 隱者 寒山의 다음과 같은 詩가 있다.
吾心似秋月 내 마음은 가을 달과 같고
碧潭淸皎潔 푸른연못은 맑아 깨끗하다
無物堪比倫 감히 견줄 것이 없으니
敎我如何說 날더러 어떻게 말하라는 것일까,

 

寒山은 윗시에서 자기의 마음을 가을의 달과 푸른 연못에 비유하고 있다.그 푸르고 맑아 투명한 연못과 중천에 두둥실 떠올라 있는 달,이들이 교차된 모습 또는 대조적인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그런데 3행과 4행에서 '이 마음은 견줄만한 것이 없다.도대체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라는 것은 그 어떠한 부류도 대비물도 없는 절대초월적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1행과 2행을 보면 확실하게 모순된다.그렇다면 비교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詩를 이치만으로 따진다는 것은 없다 할지라도 이 한 수의 詩에 표현상 모순이 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요컨대 寒山의 시에는 起承轉結의 형식에 매이지 않는 자유시가 많다.지금 설명의 편의상 이것을 빌려 표현하면,위의 세번째 구절은 앞의 두 구절을 전환한 句가 되지는 못한다.

 

그 대문에 앞의 두 구절의 비유자체도 안정성이 결여되어 중도에 그만둔 어설푼 채로 끝나고 있다.이것은 시인에게 있어서 시정신의 결정도 또는 발표도는 결국 시자체에 의하여 증명되고 판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아무리 구도자라 해도 자신의 경지를 詩를 빌려서 표현한다고 하는 이상,그 시의 완성도가 어떠한 가에 의해 그 사람 자신에 있어서 道의 성취도의 깊이를 판단당해도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高高峰頂上 높고 높은 산봉우리
四顧極無邊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이 없네
獨坐無人知 홀로 앉아 아무도 아는이 없고
孤月照寒泉 외로운 달이 찬 샘물을 비춘다.
泉中且無月 샘물 속에 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月自在靑天 달은 원래 푸른 하늘에 있다
吟此一曲歌 이 한 곡의 노래를 읊지만
歌中不是禪 노래 속에 있는 것은 禪이 아니네.

 

위의 詩에서도 자기를 드러내는 것과 감추는 것의 기묘한 조합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앞의 여섯구절은 거의 모두 옛 사람의 언어를 이어 붙여서 만든 것이며,이것이 조금 꼬아서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즉 제1구는 中唐의 藥山禪師가 李皐羽에게 답한 말 '높고 높은 산봉우리에 서서 깊고 깊은 바닷속을 간다'를, 5구와 6구도 역시 이고에게 보낸 약산의 답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독에 담겨 있다'를 밑에 깔고 있는 수사이다.또 3,4구는 왕유의 <竹里館>이라 제목을 붙인 시에 나오는 '우거진 숲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명월만이 찾아와 비춘다.'의 변화이다.이 변주는 매우 교묘하여 외로운 달에 차가운 샘을 짝지우면서 게다가 독자가 예상하게 될 샘가운데 비친 달을 다음 구에서 자못 싹 지워 버린다.

 

寒山의 분신이라고 할 拾得에게도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한다.
我詩也是詩 나의 시도 역시 시이다
有人喚作偈 그런데 偈라고 하는 자가 있다
詩偈總一般 詩도 偈도 같은 것이다.
讀時須子細 이것을 잘 읽지않으면 안된다.

 

여기에는 분명히 그들의 시가 정통파의 시와는 다른 파격적인 시인 것을 자인하고,일반인들로부터 偈와 같다고 평가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詩와 偈頌은 같은 것이라고 정색을 하고 나서고 잇다.앞에서 한산의 시에 대해서 언급할 때,습득의 작품으로 되어 있는 시를 인용하여 그들의 시가 일반에게는 시로 인정되지 않고 '偈頌'이라 불리었다는 것과,이에 대해 습득이 항의하여 '시도 偈頌과 같은 것이다'라고 변명하였던 것을 보았다.그들의 시가 偈頌이라고 불리었던 이유는 먼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그들의 시에 타고 남은 향냄새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둘째는 그들의 시는 일반적인 시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은 것이 많다고 하는 점이다.특히 후자의 것은 漢譯佛典에서 볼 수 있는 偈頌은 전혀 중국의 시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전혀 押韻을 하지 않은 것,五言 또는 七言으로 된 문구라 할지라도 중국 운문으로서의 오언,칠언의 리듬을 갖추고 있지 않는 것이 아주 많다는 사실 등이 의심할만한 것이다.

宋代의 葉夢得의 <石林詩話>에 선승의 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평론이 실려 있다.

 

唐代의 詩僧은 중기이후에는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이가 상당히 많다.그러나 시는 그 어느 것도 전해지지 않는다.다만 '經은 白馬寺로 오고,僧은 赤烏年에 다다르다'라고 한 몇 연만이 겨우 문사들에 의하여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그뒤 貫體나 齊己 등의 경우 시는 지금 전해지고 있으나 말할만 한 것이 못 된다.그러나 그중에 皎然만은 아주 걸출나다.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집 10권은 예외적으로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뛰어난 점은 보이지 않는다.요즈음 승려들 중에는 시를 배우는 자가 무척 많지만 그 누구나 超然自得의 기개가 없으며,오히려 사대부가 던져버린 구절등을 모아 그것과 똑같 이 흉내내는 것이 많다.그도 나름대로의 하나의 스타일을 형성하고 있으나 격조는 대단히 세속적이다.

 

소동파가 僧惠通에게 보낸 시에 '언어가 江霞를 띤 것은 옛부터 많지 않다.향기의 蔬筍을 머금은 것은 그대에 이르도록 없었다'라고 한 구절이 있는데,어느 때인가 동파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저 시의 蔬筍운 운 하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가? 시금털털한 냄새가 없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결국 중국인의 일반적인 사고 방식은 詩든 文章이든 그 작품으로써의 완성도는 그 작자의 인간으로서의 성숙도와 서로 맞붙어있다고 하는 통념이 있다.문학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창작과 시감상을 왕왕 도덕적인 편견으로 경직시키는 폐단을 낳기 쉽다.그러나 이와같은 사고방식은 작품 그 자체에 대한 문학적으로도 엄격한 비평을 폭넓게 끌어 올리는 효과도 낳게 했다고 본다.그래서 일상의 논리가 게재될 여지가 없고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시간이나 공간개념을 초탈하여야 시에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뿐만 아니라 물의 개념도,소니 말이니 하는 種의 개념도 마찬가지다.이것이 禪과 詩가 합류될 수 있는 反常合道인 것이다.

 

결국 중국인의 禪詩는 나름대로의 시작은 있지만 완전한 성숙도에 이르지 못한 기형적인 대립형태를 띠고 있는 不調和된 偈頌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禪詩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新羅의 禪과 詩
신라에 禪이 최초로 전래된 것은 선덕여왕 때 法朗이 渡唐하여 달마후 四祖인 道信으로부터 禪을 배워 온데서 비롯된다.또 그의 문인 神行이 스승의 선법이 행하여지지 않음을 알고 당으로 건너가 北宗 神秀系의 普寂의 문인 志空으로부터 法을 받고 귀국한 것이 두 번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상세한 내력이나 사상 내용은 오늘날의 사료로써는 알 길이 없다.다만 이들에 의해서 남북분파 이전의 道信의 선법과 분파이후의 北漸禪이 처음으로 전래되었고 이것이 그후 遵範에게 전하여 졌고 여기서 다시 惠隱을 거쳐 道憲에 이르렀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신라 때에 실제로 선법이 전해진 것은 그로부터 40년 뒤 道義와 洪陟에 의해서다.도의는 선덕왕 5년(784년)에 입당하여 헌강왕 13년(821년)에 귀국하였고,홍척은 헌강왕때 입당하여 흥덕왕 원년에 귀국하였던 바,이들은 南頓宗 慧能系의 馬祖 道一의 高弟 西堂智藏으로부터 선법을 배워서 당시 불교계에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한편 이와같은 禪宗의 대두는 뿌리를 내리고 있던 敎宗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당시 신라 사회에는 이미 열반,계율,법성,화업,법상 등의 경전중심의 교학불교가 있었는데,이들은 신라 귀족사회의 옹호와 후원을 받으면서 지배체제와 밀착되어 있었다.그러나 禪宗은 그들의 이러한 국가불교적 측면과 관념화된 사상,그리고 미신적 성격 및 고대적인 사고방식에 대하여 부정적 태도를 취하면서 기성체제를 인정하려하지 않았고 또 사상적으로 극복하려 하였다.이러한 선종의 등장과 움직임은 당시의 사회문화를 이끄는 사상적인 기반을 마련하였고 교종을 옹호 후원하던 신라 귀족사회가 후삼국시대에 이르러 와해되기 시작하자 귀족지배 체제에 항거하던 지방호족들이 선종과 연결되면서 더욱 그자리를 굳혀 나갔다.이와같이 신라 하대에 대두한 선종은 후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조에 이르러서도 지속되었다.그중에서도 신라말의 대표적인 문장가이자

 

시인인 최치원을 들어보자.
僧乎莫道靑山好 스님이시여 청산이 좋단말 마오
山好何事更出山 산이 좋다면 무슨일로 산을 떠나오
試看他日吾踪蹟 이 다음에 내 자취 한번 보시구려
一入靑山更不還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 나오지 않으리

 

모름지기 禪과 俗이 따로 있겠는가마는 스님이 산이 좋다하여 푸른산으로 들어갔지만,그산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다시 산을 떠나 속세로 내려가고 있다.한번 산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않겠다는 강한의지의 표출은 그가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願望의 空間이자,영원의 공간이다.세상에 聖과 俗이 온통 거짓과 부패 속에 빠졌을 때,사람은 현실에 굽히고 들어가는 것외에 3가지 방법으로 처세할 수밖에 없다.하나는 거짓 세상을 버리고 세상 저 너머에 있는 禪俗의 초월적인 현실 속에 은처하는 것이요,다른 하나는 세상을 진실된 것으로 뜯어 고치도록 현실 속에 행동하는 것이요,나머지 하나는 초월의 관점에서 세상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孤雲은 두번째 방법으로 俗의 세계를 禪의 세계로 고치고자 노력했으나 현실 벽에 그만 두었다.그는 어쩔 수없이 거짓 세상을 버리고 禪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이다.

 

狂噴疊石吼重巒 물은 미친듯이 바위치며 산을 울리고
人語難分咫尺間 지척에서 하는 말 분간하기 어렵네
常恐是非聲到耳 항상 시비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故敎流水盡籠山 흐르는 물과 산을 감싸게 했네

 

윗 시에서는 정적인 山과 동적인 강물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을 대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산과 물이 합쳐지면 몽매한 사람을 깨우쳐 中庸의 도로 나아가게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현실세계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마음,즉 세상에서 시비하며 다투는 소리가,속세의 때묻은 소리가 자연의 소리인 물소리로 인하여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禪境이 아니고 무엇인가?

 

不生亦不滅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不常亦不斷 항상치도 없고 아주 없어지지도 않으며
不一亦不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不來亦不出 오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다.

 

신라 사회 말기에 극심한 혼란상이 초래되자 고개를 들기 시작한 禪宗은 당시의 현실에 냉혹한 비판을 가하며 또다른 세계를 갈구하고 있음이니, 孤雲이 "贈希朗和尙"이라고 제한 여섯 수의 시가 있는데 모두가 中論에 관한 것들이다.위의 偈頌에서 보듯 현상과 자아는 항상 실체도 아니요,그렇다고 해서 전혀 존재하지 않는 허무만도 아니라는 통찰을 논증심화한 것이다.生과 滅,常과 斷,一과 異,來와 出 모두가 극단들이다.결국 극단은 그릇된 생각에서 오는,헛된 모습에서의 집착으로서 이 모두를 탈피해서 양극단을 떠나는 것이 中道이다.고운은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또다른 禪의 세계를 추구했으니 그것이 바로 해인사에의 입산이다.

 

 
그가 希朗和尙에게 지어준 세번째 것을 들어보자.
磨 提城光遍照 마갈제성 광명이 두루 비추었고
遮拘盤國法增輝 차구반국에 법이 더욱 빛났네
今朝慧日出扶桑 오늘 아침 지혜의 해가 부상에 떴으니
引得文殊降東廟 문수께서 동묘에 강림했음을 알리라.

 

佛道가 신라에 전파되었음을 알리는 것으로 문수보살이 동방에 강림하여 교화한다는 것으로 희랑화상을 칭찬하고 있으며 더 깊게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인간의 소망,기획,행위,성취는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니다.절대적 有와 절대적 無의 사이에서 자신을 내던지는 성숙의 정신이 영원한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확보시켜주고 있다.또하나 <花開洞>의 시 중에서 세번째의 시를 살펴 보자.

 

雨餘多竹色 비온 뒤 대는 더욱 푸르러
移坐白雲間 흰구름 사이에 자리옮겨
寂寂因忘我 조용히 나를 잊었는데
松風枕上來 솔바람이 베개위에 스치네

 

댓잎이 파란 곳에서 흰구름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 고운은 욕심이 없는 無心과 無我의 경지에서 생태계를 초월한 不生不滅의 법을 체득하고 있다.번뇌를 초극한 정신의 평화상태이다.法空이요 禪空의 상태인 것이다.문자에 매달리면서 그속에서 禪境을 찾고자 하는 심지는 고운의 또다른 의지이면서 講唱의 매달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따라서 신라의 선시들은 그들대로의 특성은 가지고 있지만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교리를 담은 글인 경전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高麗時代의 禪과 詩
佛敎詩歌史的인 면에서 관찰해 보면 불교가 전래한 이래로 신라가요나 균여의 작품같은 대중적인 가요와 원효나 혜초,의천같은 고승들의 佛敎漢詩 등 양면으로 줄기차게 계승되어 한국 禪의 극치라 할 수 있는 知訥의 시기에 이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문헌에 의한 것은 소멸되어 상세한 것을 알 수 없고 전하는 작품도 그리 많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선시에 관한한 知訥이나 慧諶이전에는 禪宗 그 자체가 사상적 통일이나 체계적인 발전을 할 수 없었으므로 이에 따라 고려시대의 普照國師나 眞覺國師에 의해서 본격적인 禪文學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禪詩의 발생이 문학적인 바탕위에서 이우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불교적인,그리고 禪的인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감안한다면,그 배경으로서 禪思想의 定立과 체계화라는 사상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羅末에 전래된 선이 지눌에 이르러 새로운 사상으로 종합 통일되고 이로인하여 중세적 지성이 확립되며,여기서 다시 인간존재의 본질과 근원을 캐는 실존의 문제가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제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지눌은 禪哲學의 보편화를 위한 실천과 수행에 있어 언어와 문자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더욱 禪詩의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貪求文字'를 삼가라느니,'尋文狂慧'니 하는 말을 잊지 않고 있다.그러나 言敎의 필요성이나 文章의 존재를 완전히 부인하지 않고 있다.言敎는 말을 가르침이니 문자와도 통한다.

 

禪門의 뜻은 內照하는데 있는 것이다.붓으로 기록할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비록 말로 나타내 기 어려우나 오히려 억지로 말할 수 있지만 붓으로 미치지 못함은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지금 할 수없이 쓰는 것이니 부디 마음에 비추어 보고 그 글에 구애되지 말기를 바란다.

 

말이나 글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 禪의 뜻이지만,결국 말이나 글로 나타낼 수밖에 없으니 이에 구애되지 말라는 말은 역시 문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禪的인 表現이다.결국 이와같은 말들은 언어문자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禪의 수행에 따르는 선의 이론이 문학적인 방법과 이론으로 추이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이러한 언어문자 필요의 토대 위에서 인생과 자연 및 우주에 대한 깊이 있는 禪詩의 탄생을 가져왔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知訥은 禪詩가 전하지 않는다.다만 그의 제자인 慧諶이 많은 禪詩를 남긴 것으로 미루어 보아 지눌도 그에 대한 업적은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慧諶은 <禪門拈松集>序에서
禪門의 뜻이 不立文字인데,이러한 문자도 된 拈頌集을 내서 무엇하겠느냐 하겠지만 그러나 흐름을 따르 다 근원을 얻을 수도 있고,끝을 가지고 근본을 알 수도 있는 것이다.본원만 얻을 수 있다면 만갈래로 이야 기해도 적중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이러한 尋流得源도 못하는 이는 말을 따라 고수하여도 처음부터 의혹 된 것이다.

 

하였으니 역시 頓悟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러한 漸修의 방법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이러한 것은 普照가 말한 "지혜의 본체는 원융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수련하면 자비로운 지혜가 점차 원융해진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라 이해된다.

 

欲知解脫通 해탈의 길을 알려면은
根境不相到 근원과 대상이 서로 이르지 말아야 해
眼耳絶見聞 눈과 귀는 보고 들음을 끊어야 하고
聲色鬧浩浩 소리와 빛은 시끄럽기 끝없어
<眞覺國師語錄>

"示覺雲上人"이라 題한 윗 시에서 우리는 사실을 듣지도 보지도 말라고 했다.그것은 듣고 보되 그 보이고 들리는 피상적인 외형이 아니라,보여지고 들려져야 하는 그 실상의 내면을 보고 들으라는 것이다.보는 것과 물체,듣는 것과 소리,여기에 구애됨이 없어야 이것이 不思議의 큰 解脫境界라는 것이다.

 

日用事無別 날마다 하는 일 별것이 없으니
唯吾自偶諧 오직 스스로 어울려야 한다
頭頭非取捨 어느 일이나 취하거나 버릴 것 아니고
處處勿張乖 어느 곳에서도 어긋나서 안된다.
朱紫誰爲號 붉은 색이니 자색이니 누가 말함인가
丘山絶點埃 언덕과 산은 한 점 티끌도 절단한다
神通兼妙用 신통이란 묘용을 겸한 것이니
運水及搬柴 물긷고 나무 나르는데도 있는 것을.
<진각국사어록>

 

우리는 진리를 먼데서 찾는 것이 대부분이다.일상생활의 지극히 가까운 일에 있는데도 살피지 못할 뿐이다.잘못된 나의 판단으로 취사선택 하기에 더욱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붉은 색인데, 주황색이니 자색이니 하여 비슷한 빛으로 혼동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신통한 일은 멀고 아득함이 아니라,나무하는 곳에도 그 나름의 신통이 있는 것이다.그 일에만 종사한 사람은 남이 알지 못하는 妙用이 있는 것이다.

 

空手抱鋤頭 빈손인데 호미자루 잡았고
步行騎水牛 걸어가면서 무소를 탔다
人從橋上過 사람이 다리위를 지나가니
橋流水不流 다리가 흐르고 물이 흐르지 않네
<진각국사어록>

 

위의 詩에서 다리와 흐르는 물은 동일한 공간 안에서 상하수직이라는 가까운 공간상황에 있게 된다.사람도 수직으로 서있다는 같은 조건이기에 조금은 이해가 간다.다만 우리는 다리는 부동이고,물은 움직인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다리가 흐른다는 생각은 못하는 것이다.물이 주체가 되어 양쪽의 강언덕을 보면 언덕이 움직여 뒤로 가고 있는 것이다.내가 탄 차가 뒷걸음하고 다리가 흐른다는 것을 우리는 착각이라 하겠지만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 고정관념에 집착되어 있는 것이 착각인 것이다.

 

慧諶은 "내 偈頌을 들어라"하면서 다음과 같은 偈頌을 읊었다.
若要入此門 만일 이 법문에 들려고 하면
切莫存知解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절대 말라
知解屬於情 지식의 이해는 私情에 속해서
所以自 殺 스스로 부질없는 殺傷이 된다
如海湧千波 바다가 천가닥 파도 일어도
波波全是海 그많은 파도가 끝내는 바다이고
如一點鏡燈 한 점 거울을 밝히면
十方相集會 시방의 사물이 모두 보인다
芥子納須彌 芥子씨 안에 須彌山이 受納하고
毛端含刹海 터럭끝에도 무변찰해가 담긴다
蝦 上梵天 두꺼비가 도솔천에 오르고
螂螂呑魚蟹 매미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駝尾釣冬瓜 낙타꼬리에 冬瓜가 열리고
林脚種生菜 나무뿌리에 채소를 심다.
<眞覺國師語錄>

 

여기에서 주장하는 바는 知解를 버려야만 이해된다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山是水 水是山 山是山 水是水'의 이해과정이다.이제 禪과 文學 곧,禪과 詩의 관계를 말하여 결론에 도달하고자 한다.詩에서 생명이라 한다면 이 상상이야말로 일상적 논리로는 연결될 수없는 두 사실을 연결하는 마술적인 힘인 것이다.우리는 위의 禪詩에서 禪定的인 詩情을 느끼고 智慧的 詩想을,그리고 實踐的인 修禪樣相의 多樣性을 발견할 수 있었다.이것이 慧諶의 無衣子다운 詩禪의 空間인 것이다.

 

 

4. 朝鮮時代의 禪과 詩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으로 다소 주춤한 상태였으나 다행이도 청허당 서산대사의 근기를 알수 있는 <淸虛堂集>에 禪詩가 전한다.특히 이 때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禪敎를 아우르는 새로운 사상을 말하고자 했다는 것에서 또다른 면이 있다고 하겠다.

 

서산대사는 이전의 선배인 普雨 등의 흐름인 '禪是佛心 敎是佛語',곧 禪은 부처님의 뜻이고,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라 하여 선종우위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그는 敎는 입문이고 禪은 근본이다라고 했으며 그렇다고 敎를 전혀 무시한 것은 아니다.禪이 도달하는 주객의 자리는 언어작용이 끊어져서 정적에 이르는 무언이다라고 했다.그리하여 그는 敎는 말이 있는 곳으로부터 말이 없는 곳에 이르느 것이요,禪은 말이 없음으로부터 말이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다라고 했다.따라서 말이 있는 곳,말이 없는 곳,배워서 알고,생각해서 얻는 것 모두를 여의면 眞如의 門에 든다는 것이다.

 

愛國憂宗社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고 근심하는
山僧亦一臣 산승도 신하로소이다
長安何處是 장안이 어디쯤 입니까?
回望淚沾巾 돌아볼 제 눈물이 수건을 젖시나이다.

 

윗시를 보면 마치 禪僧이 감상에 젖는 것처럼 되어 있어 누구나가 혹시 서산이 소승무리가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른다.一卽一切,一切一卽이라 했었다.이 일거수 일투족이 사실은 속된 것 같으면서도 그 전체의 하모니 속에서 영원한 가치와 생명을 발휘하는 無俗無碍의 禪詩인 것이다.

 

海通天地外 바다는 천지밖으로 트였으니
誰與問前津 누구에게 앞나루터 물어볼꼬
紅雲碧浪上 붉은 구름 푸른 구름 물결 위에
笑語十洲人 신선들 웃으며 말하네
月落夜猶白 달은 졌건만 밤은 밝고
舟中有釋迦 배안에 석가가 있구려
廓然天不盡 아득히 트인 하늘 다함이 없고
靑海動星詞 푸른바다에 은하수 흐르네
月出琉璃國 달은 유리국에 솟았는데
人稀白玉京 백옥경에 사람은 드물고
天顔應只尺 천안은 응당 지척인 양
回首五雲生 돌아보니 오색의 구름이누나
海躍銀山裂 바다뛰노니 파도가 부서지고
風停碧玉流 바람 멈추어 푸른물결 흐른다.
船如天上屋 배는 천상의 집인 양
星月坐中收 별과 달을 거두었네.

 

그저 자연의 경지를 즐기는 한 시인으로 그려져 있다.붉고 푸른 이 자연 속에서 여유있게 노닐고 있는 것이다.푸른바다,오색의 구름,달,은하수 등은 자연 속의 집이다.파도치는 바다 위의 배안에서 별과 달을 거두는 듯 하지만 서산대사는 '배안에 석가가 있고,별과 달을 거두었네'에서 보는 것처럼 더 많은 여유와 넉넉함을 가진 시인이다.禪과 俗이 따로 없는 것이다.바로 마음에 있는 것이다.그래서 그는 자기가 죽을 때 제자 유정과 처영에게 詩 한 수를 적어주었는데

 

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八十年後我是渠 팔십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하고 앉아서 입멸했다고 한다.스님의 삶은 80년전의 俗이 지금의 禪이고,지금의 禪이 80년 후의 俗과 같다는 것으로 禪俗無碍의 세계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任日月兮西復東 해와 달을 동과 서에 맡기니
一杯悠悠萬萬古 한 잔의 물은 유유한 만만고로다
無盡英雄如過風 수없는 영웅 바람지난 듯한데
寥寥獨立誰與伴 쓸쓸히 홀로 섰으니 누구와 짝할꼬
貫古今兮無極翁 고금을 통한 무극옹이다.

 

해와 달,東과 西, 모두는 자연물인 바,인간도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다만 우주가 생성되기 이전의 시원에 자리한 사람,즉 無極翁이길 바라는 심중에는 모든게 無心에 달려 있다는 세계관을 보이고 있으며 질서있는 것이 만물인 바,인간인 나 또한 그 질서 속에 있는 한 부분일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결국 깨달음 속에서 자기자신의 悟道的 境地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千思萬思量 천생각 만가지 헤아림이
紅爐一點雪 붉은 화로에 한 점 눈이로다
泥牛水上行 진흙으로 만든 소가 물위를 가다니
大地虛空裂 대지는 허공을 찢누나

 

위의 시는 절대의 세계를 상대적 언어로 나타내려는데서 오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禪이기에 이러한 역설이 불가피하고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굳어져버린 일상적 사고를 근복적으로 부정하는데서 모순된 표현이 불가피한 것이다.여기에서 진흙으로 만든 소는 상대적 관념에 얽매여 있는 人間無明의 집착으로서 그것이 虛像임을 나타내는 말로 볼 수 있다.그러므로 없어질 운명에 놓이는 것이다.그 허상은 물 속으로 들어가 용해되어 버리고 만다.空을 깨닫는 순간이다.여기서 이별은 없는 것이다.無始無終의 영원한 시간만이 있는 것이다.이것이 서산대사의 悟道的 禪理가 역설적 표현을 통해 나타난 詩이다.

 


III. 끝맺는 말
지금까지 간략하게 禪詩에 대해서 시대적으로 살펴 보았다.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중국의 禪詩에서는 불교경전 속의 내용을 답습한 偈頌 등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또하나 唐代에 漢詩가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禪理나 押韻이나 격조 등이 선승들의 시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新羅의 禪詩에서는 대개,禪宗이 신라말에 유입된 관계로 그다지 빛을 발하진 않았지만 최치원으로 대표되는 문장가의 詩에서 조금은 발견할 수 있는데 그의 시속에는 현실과 자연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는 면을 禪境을 찾고자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있으며 이것 또한 경전의 교리를 벗어나지 않는 테두리 속에서 공간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 엿보인다.

 

셋째,高麗時代의 禪詩는 비교적 우리 詩歌史에서 눈여겨 볼 禪思想의 定立과 禪詩의 발전이라는 면에서 중요한 시기이다.그중에 知訥과 慧諶을 들 수 있는 바,지눌은 사상적인 면의 정립을,혜심은 禪의 실천적인 면에서 禪詩를 발전시켰다는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네 번째,朝鮮時代 禪詩는 崇儒抑佛政策下에서도 고려시대보다는 못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부르짖는 禪僧이 있었으니 그가 서산대사이다.그는 촘촘이 선시를 <淸虛堂集>에 남겼으니 그의 시에서는 禪俗無碍,無始無終의 공간,悟道的 禪理가 돋보이는 禪詩를 남기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결국 禪詩는 시대적인 종교정책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로 인하여 각 시대마다 형식과 내용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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