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우리농촌에 미래가 있다

醉月 2010. 5. 31. 08:32
수원원예농협의 ‘바채’
'씻지 않고 바로 먹는 채소’에 5년 전 투자
수도권 시장의 최대 큰손 매년 20억 매출 신장
우리에게 농촌은 여전히 희망이자 꿈이다. 삶이 팍팍하고 힘들수록 도시인들은 농촌을 바라보며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설계한다. 급증하는 귀농 인구는 어머니의 품 같은 농촌의 흡인력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 보루’인 농촌의 발전은 우리 사회 구성원의 미래를 담보할 귀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아이들 교육문제·문화생활 단절·노후문제 등 농촌의 그늘은 아직도 짙다. 귀농을 꿈꾸다가도 농촌의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주저앉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의 미래가 걸린 농촌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농협이 발벗고 나섰다. 농촌의 미래를 가꾸는 사람들, 농촌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들과 함께 농촌의 발전을 위한 2010 프로젝트를 펼친다. 주간조선은 농협과 함께 농촌과 농업인들의 도전을 소개한다.

“그래요. 우리 채소는 비쌉니다.”

경기도 수원원예농협 이덕수(63) 조합장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에 위치한 수원원예농협에 도착해 처음으로 들은 소리였다. 이덕수 조합장이 말하는 ‘우리 채소’는 수원원예농협이 만드는 농산물 브랜드 ‘바채(BaChae)’다.

‘바채’는 ‘씻지 않고 바로 먹는 채소’의 줄임말로 수원원예농협이 2005년 3월 시작한 신선편이(Fresh-cut) 농산물 사업이다. 신선편이 농산물이란 산지에서 갓 수확한 농산물을 겉 껍질, 씨앗 등 먹지 않는 부분을 없애고 살균·세척하여 조리하거나 먹기 좋도록 손질한 것이다. 용도에 따라 볶음밥용 채소·국거리용 채소·샐러드용 채소 등으로 포장해 판매한다.

기술적인 용어로는 ‘농산물 전(前) 처리 과정’을 거친 농산품이다. 알맞은 크기로 절단돼 조리 직전 상태로 포장돼 나오기 때문에 씻을 필요도 없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 발생량도 없다. 따라서 주부는 물론이고 맞벌이 부부, 한끼를 해결하는 게 ‘큰일’인 나홀로족에게 인기다.

이덕수 조합장의 말처럼 ‘바채’는 비싸다. 이 조합장의 설명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신선편이 농산물의 원재료는 외국산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국산품이란 점을 내세워 차별화하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인증받은 친환경농산물(유기농·전환기유기농)과 실시간 잔류농약을 검사하는 계약재배 농산물만을 가공하기 때문에 안전하고 품질이 뛰어나다.”
 
재고 제로! 필요한 양만 받아

‘바채’ 작업장인 화성 산지유통센터는 수원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화성시 팔탄면에 있다. 2004년 2월 100억원을 들여 세워진 농산물 산지유통센터에는 과일선별장·전처리장·본관 등이 8840㎡의 부지에 들어서 있다. 이 중 전 처리 사업장 건립 비용 80억원은 수원원예농협이 자체 비용으로 조달했다. 

▲ 화성 산지유통센터 전 처리장에서 신선편이 채소를 가공하고 있다. / photo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바채’ 농산물의 핵심은 가공된 야채의 신선도 유지다. 이 조합장은 “우리 작업장은 서울과 경기에 한 시간 만에 닿을 수 있어 가공된 야채를 운반하기에 최상의 입지 조건”이라고 말했다.

산지유통센터 부지 중 1345㎡를 차지하는 전(前) 처리장은 전전(前前) 처리실·전 처리실·세척실·포장실·저온저장고로 이루어져 있다. 화성 산지유통센터엔 매일 전국 각지에서 온 농산물들이 품질확인을 거쳐 입고된다. 품질 합격을 받으면 바로 전 처리 시설로 옮겨져 △세척과 꼭지 제거 △껍질 벗기기 △채썰기 또는 깍둑썰기 △이물질 제거 △2차 세척 △물빼기 △질소충전포장 △금속검출검사를 거쳐 바로 출고한다.

서울·경기 지역에 납품하는 ‘바채’의 원료 농산물은 하루치 이상 재고를 남기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날 필요한 양만 공급받아 작업하는 ‘저스트 인 타임(JIT)’방식이다.

이렇게 생산된 ‘바채’는 입고에서 납품까지 전 과정이 24시간 안에 이뤄진다. 대관령원예농협·안성맞춤연합사업단·순천농협 등이 신선편이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지만 수도권 사업은 수원원예농협이 꽉 잡고 있다고 했다. 신선도, 안전성, 품질 면에서 최고의 상태로 소비자에게 내놓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가 ‘전 처리장’에 들어가봤다. 작업자가 산지에서 갓 들어온 채소를 큰 철통 속으로 밀어넣었다. 수작업 전에 기계로 채소의 흙먼지를 먼저 씻어내는 작업이다. 수원원예농협은 유통과정에서의 콜드체인(Cold chain·상온보다 낮은 온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유통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도 제품 온도를 낮추기 위해 사용되는 물 온도를 4℃ 이하로 맞춰놓고 있다.

2분 뒤, 기계 속에서 잘 씻겨 나온 것은 감자였다. 감자들은 목욕을 한 것처럼 뽀얀 색감을 자랑했다. 이 감자를 기계가 1차로 껍질을 깎았다. 기계가 깎아놓은 감자가 소쿠리에 담기면 사람이 한번 더 깎는다. 하얀 속살이 나온 감자가 차곡차곡 바구니에 담겼다.

썰기 작업장에서는 감자·청경채·양배추 등의 다듬질이 한창이다. 6~7명이 한 조로 어떤 것은 깍뚝 썰고, 어떤 것은 채썬다. 채소는 납품 업체의 당일 메뉴에 맞춰 다듬는다. 메뉴가 카레인 날은 깍뚝 썰고, 샐러드인 날은 채썰기를 한다. 작업장에서 감자 껍질을 깎고 있던 박승임(55)씨는 “내 자식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그냥 만들 수 없다”며 “껍질이 남은 부분은 없는지, 벌레 문 데는 없는지 보고 또 본다”고 말했다.

다 깎인 감자를 상자에 포장하기 전 직원들이 한 손에 스프레이를 들고 감자에 뿌렸다. 무엇을 저렇게 뿌릴까 궁금했다. 처리장 직원 안동호(56)씨가 “껍질을 깐 감자는 오래되면 색이 변하기 때문에 레몬이나 감귤 성분으로 된 산화 물질을 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덕수 조합장은 “흙감자 1㎏을 껍질을 벗겨 절단하면 먹을 수 있는 감자는 약 600~650g이 나온다. 여기에 인력비도 추가된다. ‘바채’는 인력·쓰레기 처리·물 사용료 등을 절감할 수 있어 높은 부가가치를 가졌다”고 강조했다.

하루 15t… 57%는 단체급식용

화성 작업장에서 전처리과정을 통해 시중에 들어가는 양은 하루 평균 15t, 수원원예농협이 수도권에 공급하는 신선편이 농산물은 전국 최대 분량이다. 그중 약 57%는 학교 및 기업 단체급식 식자재로 쓰인다. 전국 GS 25 편의점의 김밥과 샐러드에 들어가는 식품 원재료도 납품한다.

대표적 고객으로는 단체급식 전문사인 신세계푸드와 삼성에버랜드가 있다. 신세계푸드의 김명보 대리는 “신선편이 농산물은 품질 면에서는 공급사 중 최고”라며 “조합장과 직원들이 진심으로 ‘바채’에 투자하고 있어 믿고 구입한다”고 말했다. 

▲ 수원원예농협 이덕수 조합장 / photo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바채’는 주부들에게도 환영을 받는다. 식탁에 바로 올릴 수 있는 샐러드와 찌개용 야채모듬 덕분이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은아씨는 ‘바채’ 단골이다. 김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롯데마트에서 ‘바채’ 프리미엄 샐러드를 3400원에 구입해 집에서 밥과 고추장만 넣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평소 가게일 때문에 솔직히 끼니를 챙길 겨를이 없는데 간단한 한끼 점심식사가 완성돼 너무 간편했다.”

최근 신선편이 농산물의 시장성을 보고 다른 기업들이 속속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수원원예농협의 고객인 삼성에버랜드와 CJ프레시안, 아워홈 등이 대표적 기업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신선편이 농산물 시장규모는 5900억~6900억원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신선편이 농산물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로 전체 농산물 시장의 10%에 못미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용선 연구위원은 이렇게 분석한다.

“소비자의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이 증가하면서 신선편이 농산물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패스트푸드 체인과 현대적 시설의 유통매장 증가, 가족수의 감소 또는 독신가구의 증가, 맞벌이 증가 등 인구 사회적 요인에 의해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

수원원예농협은 ‘바채’로 지금까지 얼마를 벌었을까? 2008년 60억원, 2009년 80억7000만원의 매출을 각각 기록했다.

화성 산지유통센터 이명환 상무는 “우리 농협이 최초 투자한 80억원을 회수하는 데는 앞으로 2~3년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원예농협은 1962년 1월에 설립해 현재 조합원이 1106명에 이르고 있다. 2009년 예금 1000억원을 돌파한 수원원예농협은 ‘바채’ 출시로 2006년 농산물 품질 경영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9년 고품질 인증기관에 선정됐다. 
 
‘딸기 왕국’ 논산계룡농협
한 집 건너 딸기 농사 전국 수확량 1위 2000여 농가 연매출 1200억원
4월 19일, 아침 9시10분에 서울 용산역에서 출발한 KTX가 1시간16분 만에 계룡역에 닿았다. 충남 계룡시의 계룡역 역사 밖으로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와 새로 지어진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로 논산계룡농협(조합장 유병선)까지 가는 길가엔 비닐하우스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수확철을 맞은 딸기의 단 냄새가 차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딸기 수확철을 맞아 마른 수건을 머리에 감은 농민들이 비닐하우스를 분주하게 오갔다. 밖은 선선한 날씨인데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며 땀을 닦고 있었다. 농민들의 두 손에는 딸기 소쿠리가 들려 있었다.

논산의 비닐하우스에선 일반 채소가 아닌 딸기가 자란다. 논산계룡농협 이상규 팀장은 “논산은 4000여 농가의 50% 이상이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0년 재배 ‘명품딸기’ 명성

논산은 딸기로 연 1200억원의 판매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 일대 2000여 농가가 재배 중인 딸기밭 면적은 총 849㏊로 딸기 생산량 2위 도시인 경남 진주시의 627㏊와 비교해도 월등히 차이가 난다. 전국 딸기 수확량의 평균 26%를 충남(5만t)이 차지하고 있는데 논산은 그중 60%인 3만t을 생산하고 있다.

논산 딸기 농가 조합원이 수확한 딸기는 논산계룡농협의 공동 선별장에서 선별작업을 거쳐 이마트·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 유통업체에 출하된다. 유병선(67) 조합장은 “논산계룡농협을 통해 출하되는 딸기 브랜드 ‘햇살누리’의 연간 매출액은 8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유 조합장은 “논산은 비옥한 토양, 맑은 물, 풍부한 일조량으로 당도 높은 과일을 재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논산이 ‘딸기 고장’이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딸기는 ‘사찌’와 ‘도찌’라고 하는 일본 품종이었다. 이 일본 품종들은 우리 토양에 맞지 않아 딸기가 많이 열리지 않았고 병충해에도 약했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토양에 맞는 ‘육보(레드펄)’ 품종을 일본에서 도입했지만 비싼 로열티를 지불해야 했다. 결국 토종 품종을 제대로 개발해보자는 취지로 1994년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에 논산딸기시험장(시험장장 남윤규)을 세운 게 ‘딸기 고장’ 논산의 출발점이 됐다.

▲ 전체 농가의 50% 이상이 딸기를 재배하는 논산의 한 딸기 하우스. / photo 이구희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오랜 시행착오 끝에 논산에서 우리 농가가 관심을 끌 만한 ‘명품 딸기’가 탄생한 것은 2005년. 논산딸기시험장 김태일 박사가 우리나라 토양에 맞는 ‘설향’ 품종을 개발한 것이다. ‘설향’ 품종은 병충해에 강하고 친환경재배에 유리한 품종임이 입증되면서 농가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설향’은 개당 평균 크기가 20g이 넘고 광센서를 이용한 당도선별기로 측정한 당도가 고당도의 기준인 11브릭스(Brix)를 웃도는 경우가 많아 맛·향기·당도 모든 면에서 ‘특’ 등급에 해당한다.  작년 2월 농협중앙회로부터 우수농산물인증서를 받은 ‘설향’에 대해 남명현(43) 논산딸기시험장 연구원은 “설향 품종은 현재 전국 80~90%의 농가에 보급돼 있다”며 “논산을 기점으로 더 나은 품종개발, 생산비 절감, 병해충방제, 품질 규격화, 딸기 유전자 수집과 보존 연구 등의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논산딸기축제 관광객 수십만 명

이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조합원들이 딸기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참숯딸기’ ‘한방딸기’ 등의 특화 딸기 재배에 전력했지만 차별화된 맛과 효능을 인증받지 못해 사업을 접은 적도 있다. 적지 않은 투자비용에 비해 도매가격이 낮게 형성돼 있었던 것도 사업을 접게된 이유 중 하나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논산계룡농협은 앞으로 누구라도 인정해줄 수밖에 없는  ‘특화 딸기’ 개발 등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방침이다.

‘딸기 고장’ 논산을 일궈낸 첫 번째 요인이 품질이라면, 둘째는 홍보다. 논산시와 논산계룡농협은 논산 딸기 홍보를 위해 매년 논산딸기축제(www.cyber.nsfestival. co.kr)를 개최한다. 논산딸기축제는 논산딸기축제 추진위원회(추진위원장 강관모)가 해마다 개최하는 논산의 특산품 체험행사로 올해 12회째를 맞았다. 이번 딸기축제는 4월 8일부터 11일까지 4일동안 진행되었으며 전국에서 모두 75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 딸기수확체험, 딸기잼 만들기, 딸기비누 만들기 등의 이벤트가 진행됐다.

유병선 조합장은 “딸기축제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합작해 KTX 관광상품으로도 개발돼 전국 단위의 행사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이제 논산 하면 딸기, 딸기 하면 논산의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논산계룡농협 유길수(50) 경제상무는 “논산 딸기가 유명해질수록 시스템을 구축해 안정화를 시키는 것이 시급하다”며 “우리 농협은 2011년 논산IC 인근에 GAP(농산물우수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대규모 산지유통센터를 개방, 2016년까지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현대인에게 원스톱쇼핑 방식을 제공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딸기 왕’ 형제, 연 생산량 50t

농협에서 나와 유병선 조합장이 소개해준 ‘딸기 형제’를 만나기 위해 밭으로 향했다. 논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딸기 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선구(38)·이성구(37) 형제는 부모가 반평생 일궈온 농지를 물려받아 형인 이선구씨가 27살 때 딸기재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딸기 비닐하우스 1동은 평균 가로 100m 세로 6m로 면적이 약 660㎡이다. 일반적으로 농가 한 곳에서 3~5동의 하우스를 운영하는데 두 형제가 운영하고 있는 하우스는 총 18동으로 하우스 면적만 1만1900㎡에 해당한다.

▲ 18동의 딸기하우스를 운영하는 논산 ‘딸기 왕’ 이선구(왼쪽)·이성구 형제.
이 형제의 딸기 하우스에서는 연평균 50t의 딸기가 생산된다. 이선구씨에게 딸기 하우스 경영 노하우를 묻자 “천적을 이용한 무공해 재배법, 그리고 오로지 딸기에만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보통 딸기 수확철이 지나면 다른 농가는 하우스 안에 다른 작물을 심어 이모작을 하는데 우리는 거름이 될 옥수수를 심고 주기적으로 퇴비를 준다”고 답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5~6명의 일꾼들이 딸기 수확에 한창이었다. 20도를 웃도는 실내엔 한
무리의 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기자가 “위험하지 않냐”고 묻자 이성구씨가 “이 벌들이 없으면 딸기 씨를 교배할 수 없다”며 “사람이 억지로 씨를 수정시키는 것보다 벌이 자연스럽게 옮겨주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실제로 18동의 하우스 안에는 각각 벌집이 한 통씩 달려 있었는데 벌을 양식하는 곳에서 한 통에 8만원씩 주고 수확철 기간 동안 임대한 것이라고 한다. 천적을 이용한 무공해 재배법은 논산 딸기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다.

이 형제는 기술집약적인 농사법을 이용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6동의 딸기 하우스를 18동까지 키웠다. 형제는 비닐하우스에 전동식 환기시스템을 설치하고 논산딸기시험장에 토양성분 검사를 의뢰해 땅에 부족한 양분을 찾아 보충했다. 두 형제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딸기사업은 우리의 ‘평생 업’”이라고 말했다. 
 
멜론의 고장 나주 세지면

세지멜론이라면 상자도 안 뜯어보고 사가요!
연 3200t, 110억 매출… 전국 생산량 22% 차지

 

한 겹, 두 겹, 세 겹. 두꺼운 보온용 비닐장막을 걷고 들어간 멜론 시설하우스는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밖은 시원한 봄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우스 안은 딴 세상이다. 너비 16m, 길이 96m로 한 동 크기가 1500㎡나 되는 시설하우스는 달리기 시합을 해도 될 만큼 넓었다. 전남 나주시 세지면에는 이런 멜론 시설하우스가 500동이나 있다. 다 합하면 면적이 54㏊에 이르는 이 시설하우스에서 나주시 세지면이 자랑하는 ‘세론이’가 자라고 있다.

세론이는 나주시 세지면에서 생산되는 멜론의 이름. ‘세지면의 멜론’을 줄여 브랜드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나주시 세지면은 연평균 기온(14~15℃)이 높고 일조량이 풍부해 멜론을 키우기에 최적의 조건.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기까지 100여일이 걸리는 멜론은 1년에 세 번까지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 세지면 ‘멜론왕’ 최대열씨가 수확을 앞둔 멜론을 들고 웃고 있다. / photo 이경민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10일 찾아간 세지면의 멜론 시설하우스 안에서는 농민들이 바쁜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50㎝ 정도 자란 멜론 줄기가 계속 위로 뻗어나갈 수 있게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끈에 줄기를 묶어주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멜론 하우스 안에 들어오면 겨울에도 땀이 난다. 열대과일인 멜론을 경작하려면 시설하우스 실내온도를 항상 20~25℃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우스 내부 온도가 18℃ 이하로 떨어지면 센서가 감지해 자동으로 온풍기를 가동한다. 한겨울엔 온풍기만으로는 온도를 유지할 수 없어 기름보일러까지 가동한다. 정선종 세지농협 과장은 “멜론은 온도에 예민한 과일로 30분만 적정 온도를 유지하지 못하는 공백기간이 있어도 작물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서도 주문 폭주, 공급 달려

세지면은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멜론의 고장이다. 2009년 세지면에서 생산된 멜론은 모두 3271t, 금액으로는 모두 110억4900만원어치에 달한다. 세지면 멜론은 나주 세지농협을 통해 전국적으로 유통되는데 전국 멜론 시장의 22%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동절기에는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해 겨울 멜론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도 상당하다. 세론이는 5월 어버이날을 전후해 서울 가락동 공판장 경매에서 한 상자(5㎏ 기준, 3~5개)가 9만5000원에 팔려 최고가를 경신했다. 나주세지농협 이성호 조합장은 “동절기엔 다른 지역에서 나오는 물량이 없어 우리가 멜론 시장의 100%를 점유할 때도 있다”며 “‘세지 멜론’이라고 하면 상자도 까보지 않고 그냥 가져가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세론이는 일본에서도 환영받는다. 일본에서 멜론은 1개당 가격이 우리 돈 10만원에 달하는 ‘귀족 과일’. 프리미엄급 멜론은 1개당 38만원에 판매되기도 한다. 나주 세지농협은 2000년부터 세론이를 일본에 수출해 왔는데 작년의 경우 295t을 수출, 112억1000달러(약 12억6896원)의 수입을 올렸다. 2003년엔 ‘멜론 수출 100만달러’를 달성해 전남도지사와 농협중앙회로부터 수출 백만불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세지농협 박다연 전무는 “멜론은 단가가 높은 과일이라 선진국에만 수출이 가능한데 일본은 전부터 꾸준히 소비시장이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일본으로부터 주문 물량이 폭주해 오히려 공급이 달리는 형편이라고 한다.

농협서 당도·수확 날짜까지 관리

세지면에서 재배하는 멜론은 ‘네트(net) 멜론’(과실 표면에 그물 무늬가 형성되는 멜론)에 속하는 ‘머스크’와 ‘얼스’ 품종이 주를 이룬다. 멜론은 꽃이 핀 후 약 55일이 되면 씨가 있는 안쪽에서부터 껍질 부분으로 당도가 올라오는데 이때가 재배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당도가 가장 올랐을 때를 찾아 수확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주세지농협 한문식 과장은 “우리 농협은 수확이 임박한 농가에 기술자를 파견해 디지털측정계로 당도를 측정한 후 농민에게 가장 적합한 수확 일자를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수확된 멜론은 세지면 내정리에 있는 농협 멜론공동선별장을 거쳐 세론이의 이름으로 출하된다. 농민들이 멜론을 담아온 수확상자에는 농민 이름 대신 식별 번호만 표기하는 게 원칙인데, 선별작업 때 농민 개개인과의 친소 관계로 인해 객관적인 품평이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멜론은 선별장에서 특상품·상품·보통으로 나누어 각각 하늘색, 노란색, 흰색 상자에 담겨진다. 멜론선별장에서 14년간 선별작업을 해온 민인식씨에게 좋은 멜론 고르는 법을 묻자 “당도가 13브릭스(brix) 이상이고, 껍질에 얽혀있는 네트가 두껍고 여러 겹이 얽혀있는 것”이라며 “네트는 멜론의 당도가 껍질 부분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네트가 많이 올라와 있을수록 당도가 찼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멜론은 바나나와 같은 후숙성(後熟成) 과일이기 때문에 갓 수확했을 때는 당도가 13브릭스 정도지만 수확 후 5일 정도가 지나면 당도가 15브릭스로 높아진다고 한다.

연중 세 번 수확… 예민하고 손 많이 가

세론이가 유명세를 타면서 타지 농민들이 도용한 세론이 상자에 다른 멜론을 넣어 판매하는 일도 생겼다고 한다. 멜론 선별장 관리를 담당하는 세지농협 정선종 과장은 “멜론 상자 원가가 500원인데 시중에서 3000원에 몰래 거래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자 관리를 철저히 하고 멜론에 세론이 스티커를 붙여 소비자가 식별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세지면 멜론왕은 15년의 멜론 재배 경력을 자랑하는 최대열(55)씨. 멜론은 예민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목이라 농부 한 명이 최대 4~5동의 시설하우스를 운영하는 것도 벅차다고 한다. 하지만 최씨는 멜론 시설하우스를 무려 10동이나 운영해 세지면 일대에서 최대의 수확량을 자랑한다. 최씨의 시설하우스 1동에서 생산되는 멜론의 양은 평균 4.5t. 연중 세 번 수확한다고 보면 시설하우스 10동에서 연간 최대 135t의 멜론을 혼자서 수확하는 셈이다. 올봄의 경우도 다른 농가들은 냉해 피해를 입어 멜론 수확량이 현저하게 줄었지만 최씨의 농가엔 수확을 앞둔 멜론이 꽉 차 있었다. 세지농협이 일본 바이어들에게 견학시켜주는 대표적 모범 시설하우스도 최씨의 것이라고 한다.

최씨는 나주시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농사 짓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농삿일에 익숙했다. 하지만 직접 멜론 재배에 뛰어든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20년 전 멜론 재배를 시작한 우리보다 훨씬 앞선 1920년대부터 멜론을 재배한 일본 농부들이 멜론 재배 기술에서는 명성을 자랑하지만 토양 등 우리와는 조건이 달라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15년간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몸으로 터득한 재배 기술이 지금은 그의 전 재산이 됐다. 최씨는 “멜론은 주변 환경에 민감한 작물이어서 기온 차가 크게 나거나 병충해라도 입으면 과실이 전혀 열리지 않는다”며 “생각만큼 멜론이 자라주지 않아 수확철에 부실한 열매가 달린 멜론 줄기를 뽑아 버릴 때는 허망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세지농협 이성호 조합장은 세지멜론의 남다른 경쟁력에 대해 “재배 기술을 보유한 농가가 모여살면서 서로 노하우를 공유하고 기술력을 갖춘 농민들이 품앗이를 해주며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해 주는 것이 주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세지농협은 2005년 10월에 열린 농산물 경영혁신박람회에서 멜론 분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