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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or 기회’ 박근혜 심층탐구

醉月 2010. 7. 15. 16:50

박근혜의 성격 입체분석
세잎클로버와 달팽이를 사랑하는 정신적 지도자형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애국, 의리, 인간애의 DNA
● 박근혜의 긍정적 성격 실체 있다
● 평범한 행복 찾는 소탈한 성격이 어필
● MB와 갈등으로 여성성 잃고 있어
● 장점이 약점 되기 쉬워… 박근혜는 박근혜를 극복해야


6·2지방선거는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참패로 끝났다. 인천 충남 대전 충북 강원 경남 광역단체장 자리를 내줬다. 여권 내부의 권력 지형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 문제를 국회에 맡겼다. 4대강 사업도 반대 여론이 드세졌다. 이 대통령은 지방선거 뒤로는 선거도 여의도정치도 잊고 ‘일’만 해보려 한 것 같은데 대통령의 심복이던 정태근 의원 등 수도권 친이계 의원들이 먼저 인적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당장 2012년 4월 총선이 걱정거리로 다가올 법하다. 서울 경기 인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66곳 중 46곳이 민주당에 돌아갔고 한나라당은 15곳을 얻는 데 그쳤다. 서울은 2006년 지방선거에선 25곳을 싹쓸이했으나 이번엔 강남 송파 서초 중랑 등 4곳에서만 당선돼 몰락에 가까웠다.

세종시 수정에 올인 해온 정운찬 국무총리는 충청 광역단체장 선거 전패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자신이 당의 얼굴로 나선 전국단위 선거에 패배한 책임으로 위상에 금이 갔다.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는 의회와 기초단체장이 민주당에 장악된 ‘사면야가(四面野歌)’의 상황부터 헤쳐 나가야 할 처지지만 한명숙, 유시민 후보 등 야권의 거물을 꺾고 재선에 성공한 것만으로 차기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오 시장과 김 지사로선 의회가 한나라당 일색이던 때보다 지금이 정치적 위상을 키워나가기에 더 나을 수 있다.

6·2지방선거 이전 2년여가 신생 이명박 정권의 국정 경연의 장이었다면 6·2지방선거 이후는 시간이 지날수록 여야 차기주자들 간 각축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장이 된다. 자연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선호도 1위를 달려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눈길이 쏠린다.

 

선거 후 박근혜에 쏠리는 눈

2006년 11월30일 중국 칭다오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한 중국여성과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있다.

지방선거 후인 6월7일 ‘미디어리서치’의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박 전 대표(26.8%)는 2위인 오세훈 시장(9.0%)과 3배 정도 격차를 보이는 1위로 나타났다. 이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8.8%), 한명숙 전 국무총리(7.7%), 김문수 경기지사(7.2%) 순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한나라당(36.7%)과 민주당(35.1%)의 정당지지율은 급속히 좁혀졌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박 전 대표의 정치적 득실에 대해선 계산이 엇갈린다. 선거 지원에 나서지 않아 당내에서 비판을 받고 있고 지원 유세한 대구 달성군수 선거의 패배로 입지에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선거 패배 책임은 여권 주류와 당 지도부에 있는 만큼 ‘박근혜 역할론’이 오히려 부각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한국일보 6월3일자 보도) 친박근혜계 김재원 전 의원은 6월9일 “한나라당이 내세울 (친이 측) 카드는 몽땅 소진하고 그 카드는 별로 효용성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박근혜 전 대표의 역할이 당원과 지도자에게 깊이 각인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가장 중요한 관점은 ‘지금의 지지율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대세론’이 추락하는 걸 경험한 바 있다. 대선주자의 지지율 등락에는 소속 정당의 지지율 변화, 경제-남북관계의 여건 변화, 특별한 사건의 발생, 유권자 의식의 변화, 검찰의 수사, 언론의 보도태도 등 여러 외부 요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수많은 국내외 연구 결과(최영재, 김현주, 이준웅, 이강형, Jacobson, Ragsdale 등)에 따르면 대선주자의 지지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대선주자 본인의 ‘성격(personality)’ 및 그것이 외부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이미지(image)’이다.

   

차기 대선의 근원적 주제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은 다른 말로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이 될 만한 성격의 소유자인가’라는 의미가 된다. 한 사람의 유력 정치인의 성격을 ‘두껍게’ 탐구해보는 작업은 흥미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뉴스 스타일로서 정치인 발언의 중계 등 기존 정치 보도와는 차별화될 것이다. 박근혜 성격 탐구는 향후 1~2년간 차기대선구도를 결정짓는 다이내믹한 정국의 근원적 주제와도 관련이 된다고 본다.

박근혜 전 대표의 성격 분석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론으로 박 전 대표를 자주 만나는 측근 다수를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박 전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함께 이와 관련된 숨은 일화들을 이야기했다. 아울러 박 전 대표의 성격과 이미지를 연구한 사회과학논문 및 저서 20여 편을 검토해 일관성 있는 결론이 도출되는지 살펴봤다. 논문은 전문검색사이트에서 키워드를 ‘박근혜’로 입력해 구했다. 그리고 정치인의 성격과 이미지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을 만나 이들이 박 전 대표의 성격을 분석하는 내용도 청취했다. 또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박 전 대표의 공·사석 발언(A4지 300쪽 분량)을 국회속기록, 연설문 등에서 찾아내어 살펴봤다. 박 전 대표의 반대 진영 등 정치권에서 박 전 대표의 성격을 평가하는 내용은 기존 언론 보도에서 참조했다.

그 결과, 박 전 대표의 성격에 대해 각각 5가지의 ‘긍정적 대표이미지’와 ‘부정적 대표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표1 참조) 박 전 대표의 성격에 대한 인상과 평가는 무수히 많을 수 있지만 대체로 이들 대표이미지로 압축, 수렴된다고 할 것이다.

<표1>을 보면 긍정적 대표이미지와 부정적 대표이미지는 서로 적대적 대칭이 되는 구조임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원칙과 신뢰’는 ‘고집과 융통성 부족’과 대칭 관계로서 후자가 전자의 가치를 상쇄시킨다.

흥미 있는 점은, 박 전 대표의 성격에 대한 긍정적 대표이미지는 대체로 사회과학적 조사를 통해 실증되는 반면 부정적 대표이미지는 주로 정치인의 언명(言明)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증된 이미지 vs 말로 만든 이미지

동아시아연구원(EAI) 등이 2007년과 2009년 각각 전국 성인남녀 944명과 800명을 대상으로 유력 정치인의 신뢰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표는 2007년 조사에선 조사대상 정치인 11명 중 2위(1위 이명박)에, 2009년 조사에선 조사대상 정치인 10명 중 1위(2위 김대중, 3위 이명박)에 올랐다. 2009년 박 전 대표에 대한 신뢰도 점수(10점 만점)는 5.01점으로 3~4점대인 다른 정치인들과 격차를 보였다. 박 전 대표의 성격에 대한 제1의 긍정적 이미지인 ‘원칙과 신뢰’는 다수 국민으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는 점이 실증된 것이다.(표2 참조)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가 2006년 정치인 이미지를 회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박 전 대표의 경우 신뢰감, 친근감, 매락감이 득표에 영향을 준다. 박 전 대표의 성격에 대한 긍정적 대표이미지인 ‘원칙과 신뢰’‘대중적 소통’‘여성성(멋스러움)’이 유권자에게 먹히고 있음이 검증된 셈이다. 박 전 대표의 미니 홈피는 국내 정치인 중 최초로 방문객 10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반면 ‘원칙과 신뢰’에 적대적으로 대칭하는 ‘고집과 융통성 부족’ 이미지의 경우 다수 국민이 박 전 대표에 대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점을 실증하는 조사(연구)결과가 거의 제시되지 않았다. ‘고집’ 이미지는 “박근혜는 고집스럽다”라는 정치인의 단정적 주장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됨으로써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친이계인 진수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국회의원)은 2월4일 라디오에 출연해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 원안 고수 입장은 본인이 대표 시절 주도한 안에 대한 소신이자 집착이다. 이러한 소신이나 고집이 국익을 꺾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2월9일 케이블TV에 출연해 세종시 논란과 관련, “이명박 대통령이 빨리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야 한다. 두 사람이 너무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게 문제”라고 했다.

   

박 전 대표의 부정적 이미지가 반대정파 정치인의 말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실증하는 조사도 있다. ‘신문과 방송’의 양승혜·강혜주 기자가 2006년 3~4월 10개 전국종합일간지의 박근혜 관련 기사 166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친일파의 딸” “절대 권력자의 딸” “아버지의 후광” “가장 보수적인” “수구 3각 편대” 등 박 전 대표에게 ‘독재자의 딸’ 이미지와 ‘수구보수성향’ 이미지를 씌우는 표현은 주로 노무현 정권 정치인들이 발화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논의가 있다. 2005년 3월13일 열린우리당 전남도당 대회에서 한명숙 전 총리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겨냥해 “유신공주와 싸워 이기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인간학 사전’에서 “한명숙은 과거 민주화투쟁과 후덕한 인품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인데도 ‘유신공주’와의 싸움을 외쳤다니 놀랍다”며 오히려 한 전 총리를 나무랐다. 그리고 “박근혜는 유신공주인가? 물론이다. 그러나 박근혜를 유신공주로만 인식하는 좁은 시각이…그들 스스로 판 함정”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는 ‘여성’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때 ‘여성’은 박 전 대표의 과오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성(性) 편견’에 기인한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금희조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의 2006년 논문에 따르면 전통적 성 고정관념은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성 차별적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일수록 박 전 대표를 비호의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영민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등은 2008년 논문에서 박 전 대표는 여성에 대한 성 차별적 보도태도 때문에 남성인 이명박 후보와 경쟁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불이익을 봤다고 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당시 텔레비전 뉴스는 이명박 후보를 박근혜 후보에 비해 먼저 등장시키고 먼저 인용하고 더 많이 인용함으로써 시청자가 여성 후보를 선거의 주류 인물이 아닌 변방 인물로 인식하도록 했다. 여성 후보의 선거전략에 대한 보도는 오히려 여성후보의 경쟁력 부족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냈다. 전반적으로 시청자로 하여금 여성 후보가 경선에서 중요하지 않고 당선가능성이 낮은 후보로 인식하게 할 소지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양문희 숙명리더쉽개발원 연구원의 2003년 연구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텔레비전 뉴스에 등장할수록 그의 도덕성 이미지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박 전 대표의 성격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와 부정적 이미지가 적대적 대칭관계를 이루고 있지만 긍정적 이미지가 ‘주류 이미지’로서 국민에게 더 설득력 있게 수용되고 있다는 점이 설명가능해진다. 이러한 박 전 대표 개인 성격에 대한 높은 평가는, 비록 그가 선거와 정치의 일선에서 물러나 있음에도, 그의 일성(一聲)이 총선결과, 미디어법 개정, 세종시 논란 등 정국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도록 할 뿐 아니라 그를 차기주자 1위로 떠받치는 실질적 근간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라는 인물을 구성하는 상당 부분은 부모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20세기 최고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2), ‘첼리스트’ 정명화(64),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정명훈(57)씨는 196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6개 도시 순회공연을 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 측근에 따르면 정 트리오와 관련해 박 전 대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청와대에 있을 때의 어느 날이에요. 이들이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꿈을 이뤄드리기 위해 음악을 했다’고 했어요. 그것을 보며 나는 ‘어머니는 지금 내게 무엇을 가장 원하실까’라고 생각해 봤어요. 어머니가 내게 ‘외국어를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났어요. 그 이후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를 익혔어요.”

측근들은 박 전 대표의 성격 이미지는 그의 특별한 가족사에서 나온다면서 다음의 사례를 제시했다.

   

“어머니는 무엇을 원하실까”

1973년 2월 제9대 총선당시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근혜양이 투표를 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 때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 머물면서 지원유세를 했다. 박 전 대표는 투표를 마친 뒤 한 친박계 의원과 달성군 화원읍의 전원 길을 산책했다. 주변의 클로버를 보고는 박 전 대표는 “꽃말은 아니고, 네잎클로버의 의미가 뭔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대표님, ‘행운’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그럼 세잎클로버의 의미는 뭔지 아세요?”라고 했다. 의원이 잘 모르겠다고 하자 박 전 대표는 미소를 띠며 “그건 ‘행복’ ‘행복’이라고 하던데요”라면서 “사람은 네잎클로버를 찾으러 다니다 도처에 핀 세잎클로버를 밟는 것처럼 주변의 여러 소중한 행복을 놓아두고 행운을 찾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박 전 대표가 1998년 펴낸 자서전 ‘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 삼아: 박근혜 일기모음집’에는 ‘권력의 행운’보다는 ‘평범한 행복’을 원하는 마음이 녹아 있다. 부모를 총탄에 보낸 뒤 선친의 명예를 지키려 노력해온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산 장녀로서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평범하게 산다 해도 행과 불행은 있게 마련이겠으나 평범한 인생이 부럽기만 하다. TV를 통해서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 마음까지 편해진다. 보람, 성취 다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마음의 평온만 할 수는 없다. 항상 폭풍우, 비바람, 번개 등 바람 잘 날 없이 불안하고 위태위태하여 마음 한 번 푸근하게 가져보기 힘든 것이 내 운명인가 하고도 생각해 본다.”(1989년 11월29일)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결국 평범한 속에 있다고 느껴진다. 비범하셨던 부모님을 모셨던 것부터가 험난한 내 인생길을 예고해주었던 것이다.”(1990년 1월7일)

얼마 전 박 전 대표 일행이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다. 박 전 대표는 건물 옆 나뭇가지에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을 보고는 나뭇잎으로 달팽이를 톡톡 건드려봤다고 한다. 그러더니 달팽이가 약간 움찔하며 반응하자 매우 좋아하며 한참동안 달팽이와 놀았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그 모습이 의외였지만 퍽 자연스럽고 행복해 보였다”고 했다.

 

“말하지 않아도 되요”

박 전 대표는 한번 맺은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고 한다. 의원실 보좌진은 그가 1998년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이 될 때 채용한 직원들 그대로다.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석패한 뒤 여러 참모가 눈물을 보였으나 박 전 대표의 눈시울은 전혀 붉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경선을 함께 겪어온 한 참모의 죽음 앞에서는 달랐다.

다음은 한 측근이 전해준 이야기. LG애드 임원 출신으로 ‘사랑해요LG’ ‘참이슬’ 등의 카피로 명성을 날린 허유근씨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일했다. 그가 지휘해서 만든 홍보 동영상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다음해 허씨는 불의의 중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박 전 대표는 유정복 의원(전 대표 비서실장)과 함께 병문안을 갔다.

박 전 대표가 온다는 사실을 미리 전해들은 허씨는 임종이 임박해 몸을 움직일 기력이 없음에도 입원복을 벗고 단정한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병환으로 초췌해진 얼굴에는 메이크업을 했다. 허씨가 박 전 대표에게 “대표님…”이라고 말문을 열자 박 전 대표는 “말하지 않아도 돼요. 어서 빨리 쾌차하셔야죠”라며 그의 손을 잡았다. 박 전 대표는 의연한 태도를 보이며 그에게 용기를 주려 했다. 그러나 병실을 나선 박 전 대표는 복도의 벽 쪽으로 몸을 돌린 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조용히 스며드는 물과 같다”

강준만 교수가 ‘인간학 사전’에서 전하는, 박근혜 지지자들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이유는 이렇다.

“박근혜는 말에 군더더기가 없다. 누구나 쉽게 알아들으므로 말 바꿈의 여지도 없다. 높낮이가 없어 대중을 휘어잡지 않는다. 다만 가는 방향이 뚜렷하다. 조용히 스며드는 물과 같다. 믿음은 거기서 생긴다.”

   

 2월23일 국회 한나라당 세종시 의원총회에서 친박계 유정복 의원이 정몽준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은 입만 열만 거짓말을 한다고 믿는다. 거기에 반해 말을 무척 아끼는 박근혜의 신중함은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불안감에 젖어 있는 국민에게 위로와 신뢰를 준다.”

“2004년 4·15 총선기간 중 박근혜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어느 찜질방에 모인 주부들 사이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너무 괜찮아. 박근혜 참 괜찮아.’ ‘그게 인간이야.’ 박근혜는 진솔하고 헌신적이고 경망함이 없고 허영이 없다. 인간적인 면이 몸에 배였다.”

김동률 KDI 연구위원(박사·미디어 전공)은 “박근혜 전 대표의 그간의 언행을 MBTI 모델에 적용해보았을 때 박 전 대표의 성격은 16가지의 성격 유형 중 ‘정신적 지도자(INFJ)’ 유형에 해당하리라 추정한다. 박 전 대표가 검사를 하지 않았으므로 실증된 결과라고 말할 수 없지만 언행이 많이 노출된 유명인사에 대해서는 그런 공개된 언행 자료로 성격 유형을 추정해보기도 한다”고 했다. MBTI는 ‘Myers Briggs Type Indicator(마이어스와 브릭스가 만든 유형지표)’의 약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빈번하게 활용하는 성격검사 도구 중 하나다.

조성환 MBTI상담연구소 소장(박사·상담심리 전공)은 저서 ‘MBTI 내 성격은 내가 디자인한다’에서 “박근혜의 성격에 대해 가만히 살펴보면 그의 언동이 INFJ에 가까운 것 같다”고 했다.

“박근혜는 테러를 당한 상황임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전은요?’라고 했는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광우병 사태에 ‘재협상이 필요하다면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간단한 말이 국민의 마음을 파고든다. 조용하면서 품위 있는 말은 INFJ 성격의 사람들이 잘한다. 그래서 MBTI를 만든 마이어스와 브릭스도 INFJ에 대해 ‘나이가 들수록 인격이 돋보이는 성격’이라면서 ‘단지 이 유형의 숫자가 적어 아쉽다’고 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 테레사 수녀, 반기문 UN사무총장도 이 유형이 아닌가 생각한다.”(88~89쪽)

그러나 조성환 소장의 INFJ형 성격 분석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본인의 예리한 판단력에 덧붙여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강력한 실천적 리더십을 갖춘 참모들을 주변에 배치하지 않으면 ‘여성이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할 수 있다.

 

박근혜 이미지의 변화

사람의 성격 이미지는 평생 고정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퍼스트 레이디’ 박근혜, 부모 사후 외부활동을 하지 않아온 박근혜, 초선의원 박근혜, 유력 대선주자 박근혜 등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드라마틱한 변곡점을 안고 있다. 측근들은 박 전 대표는 정치인이 된 후로는 원칙의 이미지에 통합의 이미지를 부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한다.

박 전 대표는 ‘신동아’ 1998년 10월호 인터뷰에서 “아버지 시대의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자식 된 입장에서 그 피해자들께 깊이 사과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2002년 5월 평양에서 박정희의 딸과 김일성의 아들이 만났다. 김정일 위원장은 박 전 대표에게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을 사과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엔 한나라당 의원들을 이끌고 5·18묘역을 참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고향인 신안에 다섯 번 방문한다. 2005년 11월 김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자 김 전 대통령은 “극단적 대립이 아니라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서 고칠 것은 고쳐야 하는데 박 대표가 적임자”라고 했다. 측근들은 박 전 대표의 호남 충청 다가서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한 측근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또 다른 변화를 준비 중이다. 세잎클로버의 평범한 행복을 구현할 ‘복지’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차기대선 준비를해나아갈 것이라고 한다. 박 전 대표는 18대 국회 첫 상임위로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택하면서 그 소회를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남겼다.

   

“보건복지가족위원회는 먹거리와 연금, 육아, 건강과 의료 등 우리가 실생활에서 피부로 접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곳이고, 또 매번 이와 관련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선택한 이유는 우리의 기초적인 삶에 대한 문제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이야말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꼭 겪는 삶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서이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변화는 항상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으면서.”(2008년 9월15일)

 

“여성성이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박 전 대표에 대해선 ‘아버지의 시대에 더 포용적인 성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아버지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는 데 1980, 90년대를 바쳐온 효(孝)는 이해가 되나 아버지의 시대에 대해 ‘아무리 애써도 해결되지 않는 정당한 비판(강준만)’도 있으며 이런 부분에 대해선 이제 박 전 대표는 1980, 90년대의 약자가 아니라 대통령을 꿈꾸는 차기지도자로 성장한 만큼 역사적 균형감을 더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박 전 대표의 성격 이미지가 향후 부정적인 쪽으로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지지율 1위 대선주자인 만큼 견제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긍정적 대표이미지는 해석 여하에 따라 부정적 이미지로 바뀔 수 있으므로 그의 경쟁자들은 앞으로도 이러한 점을 놓치지 않고 공격할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애국심은 긍정적 성격의 이미지이지만 ‘박근혜는 대한민국과 결혼’이라는 오버한 국가주의(Statism) 메시지는 20, 30대에게 역효과를 내는 것으로 일부 연구에서 나타난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박근혜는 박근혜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심상영 한국심층심리연구소 소장(미국 San Francisco Seminary 박사)은 박 전 대표의 이미지가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이미지는 언행이나 표정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여권의 내분으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자주 대립하면서 박 전 대표의 여성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 소장의 시(詩)적이고 은유적인 설명은 다소 길지만 들을 만했다.

“여성성은 사물을 연관짓고 포용하고 인내하고 지혜롭고 자상하고 돌보고 서로 사랑하고 생명이 되는 속성이다. 남성성은 사물을 분별하고 분석하고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고 목표를 달성하고 결단하는 속성이다. 남성에게도 여성성(anima)이 있고 여성에게도 남성성(animus)이 존재한다. 얼마 전 학계에서 잘 나가는 40대 여성 교수가 내게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녀는 남성이 중심인 세계의 생존경쟁에서 성공하고 있었지만 남성적 가치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성적인 것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여성으로서의 멋스러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이후 그녀의 표정, 언행, 말투, 스타일이 달라지고 있고 그녀와 그녀의 남편 모두 이런 변화에 만족해한다.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엔…”

원래 같은 편끼리 싸우는 게 더 무섭고 극단적이고 보는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나는 세종시 수정도 4대강도 반대지만 누구의 주장이 더 정당한지를 떠나 한 지붕 아래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상대를 공격하고 있는 것 같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 안에 여성성과 남성성이 조화되어야 ‘멋진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주는데 요즘 박 전 대표의 표정이나 언행에서 여성성이 예전만 못하다. 이러한 이미지가 고착화되면 문제다. 괴테의 ‘파우스트’ 마지막 구절은 ‘영원한 여성이 높은 하늘로 우리를 이끌고 올라간다’이다. 여성 대통령에게 지지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원칙과 신뢰를 지키면서도 온화한 미소로 감싸주고 진솔한 말로 위안을 주며 통합을 이끌어내는 정치일 것이다.”

 

노변정담 : 진중권·김민전·이종훈 차기 대선 전망과 박근혜의 경쟁력
“박근혜 행정경험 부족, 차기 행보 발목 잡을 수도”

진행·정리 구자홍│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5년 단임의 대통령 임기 중반에 이르면 정권을 선호하는 측에서는 ‘임기가 아직 반이나 남았다’고 자위하는 반면, 비판적인 측에서는 ‘이제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며 위안을 삼는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은 어떨까.
6·2지방선거 결과는 후자 쪽에 가깝다. 자연 관심사는 ‘포스트 이명박’에 쏠리게 돼 있다.‘신동아’는 지방선거 이후 정치지형의 변화와 차기 대선 전망을 위해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각종 대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된 좌담회에서는 개헌을 포함한 2012년 대선까지의 정치지형 변화, 그리고 대선 구도와 박근혜 대항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참석자들은 한나라당 내 친이(친 이명박)와 친박(친 박근혜) 갈등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면서 정치권에서 군불을 지피고 있는 개헌론에 대해서는 ‘찻잔 속 미풍’에 그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6월10일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대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김민전 경희대 학부대학 교수와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를 진행하는 시사평론가 이종훈 박사, 문화평론가 진중권 전 중앙대 교수가 함께 했다.

▼ 6·2지방선거에 대한 평가

사회 : 6·2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로 얘기를 시작하죠.

이종훈 : 이번 지방선거는 2012년 대선과 맞물려 있습니다. 대선주자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가 전국 각 지역의 풀뿌리 조직을 공고히 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죠.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 행보는 의외였어요. 적극 개입할 줄 알았는데(측근의 개입을) 오히려 말렸다고 해요. 의아했는데, 선거 결과를 놓고 보니 잘한 것 아닌가 싶어요. 물론 자신의 지역구 군수후보가 낙선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친박 전체의 역량을 보존시키는 측면에서, 그리고 차기 주자로서 상황이 더 좋아진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중권 : (박 전 대표가) 최대 수혜자지요. 선거 끝나고 나니까 ‘당대표 해라’ ‘총리 해라’ 하는 얘기가 친이계에서도 나오는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박 전 대표가) 직접 뛴, 전여옥 여사 표현대로 하자면 ‘조용필이 동네 노래방 가서 노래를 했는데 점수를 못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런 결과는 박 전 대표의 득표력에 어느 정도 회의적인 면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거든요. 아무리 정권심판이라 하지만, 자신의 텃밭에서 졌다는 것은 좀…. 그래서 두고 봐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박근혜 존재감 재확인한 지방선거

김민전
●서울대 외교학과
●미국 Univ. of lowa 정치학 박사
●국회 사무처 법제예산실 정책조사관
●YTN ‘생방송 쟁점토론’ 진행
●現 경희대 학부대학 교수
●저서 : ‘노무현 정부의 딜레마와 선택’(공저) ‘한국 정치제도의 진화경로’(공저)

김민전 : 저는 얻은 점, 잃은 점 다 있다고 봐요. 박 전 대표가 보통의 한국 정치인, 특히 남성 정치인과 차별되는 점이 엄청난 자제력이 아닌가 싶어요. 정치인들은 탤런트나 가수처럼 대중 앞에 오래 나서지 않으면 잊힐까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박 전 대표는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선거는 두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한나라당에서 박 전 대표가 없을 때는 완전히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 즉 (박 전 대표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선거가 아니었나 싶어요. 다만 (박 전 대표에게) 큰 도전이라고 한다면 이번 선거 결과가 국민이 이명박 정부를 심판한 의미도 있지만, 결국 보수에 대한 평가이거든요. 이는 박 전 대표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싶어요.

진중권 :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국민적인 반감을 사는 4대강 문제, 둘째는 세종시 문제입니다. 세종시 문제는 국민은 약간 시큰둥한데 충청권에서는 직접적으로 반대하고 이것이 선거결과로 나타났잖아요. 셋째는 젊은층인데 현 정부의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질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진보냐 보수냐의 가치 문제나, 보수 이념의 위기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보수층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위기이고, 그런 부분에서 박 전 대표가 조금 빠져 있지요.

김민전 : 저는 그 부분은 조금 다르게 보는데요,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최근에 와서 빠졌거든요. 왜 빠졌느냐?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고 봐요. 세종시나 4대강 얘기를 할 때는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굉장히 높았어요. 그런데 최근에 와서 낮아졌는데 저는 그것이 천안함 사태와 관계가 있다고 보거든요. 세종시나 4대강은 보수의 어젠다는 아니에요. 사실 이것은 개발이라고 하는 어젠다이지, 순수 보수의 철학적인 의제는 따로 있는데….

진중권 : (세종시나 4대강은) 대통령 개인의 어젠다죠.

김민전 :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어젠다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일정 정도 반대하면서 야당표까지 잠식하는 현상이 나타났거든요. 그런데 천안함 사건이 났을 때, 조금 다른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건 발생 원인과 처리 과정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국민이‘한반도에서 평화관리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느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봐요. 진보진영에서 정권을 쥐고 있을 때에는 ‘북한을 따끔하게 손봐주는 것도 좋겠다’‘손봐주는 것이 시원하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막상 말로라도 손봐주려고 한다니까 경제도 어려워지고,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봤거든요. 그래서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이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박근혜, 한 것도 없이 로또 맞았다”

이종훈 :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표의 예지력이랄까, 직관력이 빛이 났다고 생각하는데요. 처음부터 원칙을 강조하며 원안 사수를 주장해왔기 때문에 충청권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대선에서 충청권을 누가 잡느냐가 언제나 중요한 이슈잖아요. 그런 면에서 박 전 대표가 선점한 측면이 있지요. 그리고 다른 정치공학적인 계산도 들어 있다고 봅니다. 이번에 자유선진당이 약간 위축됐잖아요. 그러면서 보수대연합 얘기가 나오고, 결국 자유선진당을 한나라당이 통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그런 얘기들이 있죠. 대선이 가까워지면 학습효과가 나타날 걸로 봅니다. 진보가 뭉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줬기 때문에, 보수도 합치려는 경향이 다음 선거에는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표는 세종시 문제를 매개로 자유선진당과 연대를 엮어낼 수 있는 중요한 고리가 되죠. 그리고 한반도 평화 관리 문제를 얘기하셨는데 그 점에서도 박 전 대표는 상당히 앞서 있죠. 겉으로 표출되지는 않지만 예전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일도 있고….

사회 : 요약하면 지방선거 결과는 박 전 대표에게 전체적으로 득이 됐다. 세 분 모두 이렇게 보시는 거군요.

이종훈 :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민전 : 지금 당장 득은 많지만, 환경 자체로 본다면 보수에게 상당히 타격을 준 환경이지요.

진중권 : 별로 한 것도 없이, 로또 맞은 기분일 겁니다. (웃음)

 

▼ 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의 진로

사회 : 한나라당은 앞으로 어떤 진로를 걷게 될까요.

김민전 :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 박근혜 대표론이 나왔잖아요. 이런 얘기가 나온 이유는 2012년 총선 때문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18대 국회에서 수도권 의원 대부분이 친이계인데, 이 의원들은 17대 때 ‘길 가다가 지갑을 주웠다’고 하는 386의원들과 운명이 유사해질 가능성이 있어요. 영남이나 호남은 지지율이 출렁이지 않지만 수도권은 심하게 출렁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대표론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표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세(勢)를 불린 효과가 있죠.

 

대선 풍향계 전여옥의 선택은?

진중권 : 지금 한나라당 내 변수는 역시 친이하고 친박이에요. 그 구도에서 박 전 대표가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의 문제였고요. 친이계 의원 가운데에는 강성 인물들이 있어요. 앞장서서 완장 찬 그 사람들이 제가 볼 때는 이번 선거 참패의 주역이거든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야 적당히 봐서 넘어가는데…. 그런 점에서 가장 관심 있게 봐야 할 정치인이 누구냐 하면 전여옥씨예요. 또 저분은 어떻게 갈까.(웃음) 아주 초미의 관심사예요. 그분을 보면 흐름이 보일 것 같아요.

김민전 : 어디로 다시 갈 데가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웃음) 다시 친박으로 갈 수는 없을 거 아니에요.

진중권 : 그건 모르지요. 정치인이라는 게, 신의고 뭐고 이런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논리를 또 만들어내니까요. 아무튼 친이계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가 민주당이 집권하는 것이고, 가장 좋은 것이 한 번 더 잡는 건데, 여의치 않으면 친박하고라도 연대를 해야….

이종훈 : 계파 관점에서 보자면 앞으로 친박이 훨씬 더 생명력이 강할 겁니다. 충성도도 높은 편이고 운명공동체적인 그런 점이 있기 때문에….

   

진중권 : 그렇지요. 이념적인 측면도 그렇고. 정몽준씨가 이번에 아웃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이재오씨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데, 이재오씨는 사실 서울 은평을에서 당선되기도 힘들어요. 왜냐하면 찍혔거든요. 사람들이 심판하려고 하는 MB의 독선적인 그것의 상징이 바로 이재오 같은 인물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친이계는 지금 대안을 못 찾아 황당해하는 겁니다. 또 하나는 이른바 소장파들 또는 개혁파들이 세대교체라면서 치고 나오면 박 전 대표도 저절로 구세대가 되니까 견제되는 측면이 있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김민전 : 다음 국회의원선거는 대선과 같은 해에 있어 향배가 비슷하게 갈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총선 전까지 한나라당이 하나로 가느냐, 쪼개지느냐가 핵심 관전포인트라고 생각해요. 한국 정치는 쳇바퀴 돌 듯 하는 면이 많은데, 결국 열린우리당과 유사하게 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중권 : 옛날에는 ‘박근혜가 짐 싸서 나가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거꾸로인 것 같아요. ‘친박 너희들 좀 (한나라당에) 있어라’ 하고 친이들이 짐 싸지 않을까….(웃음)

사회 : 집권 이후에도 집권당의 당명이 그대로 유지된 것은 한나라당이 유일하지 않습니까.

김민전 : 구조적인 요인이 있어요.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2개월 만에 총선이 있었거든요. 만약에 1년 후에 총선이 있었으면 아마 열린우리당처럼 개혁당, 뭐 개혁 어쩌고 이러면서 또 창당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시기적으로 창당하기가 너무 힘든 구조였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갔다고 봐요.

 

▼ 친이계의 선택은?

사회 : 다음 총선과 대선까지 한나라당이 현재 모습을 유지하면서 불안한 동거를 할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모색할 거냐가 관건이겠군요. 이제 곧 있을 전당대회도 당의 진로를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까요.

2012 총선 직전 엄청난 싸움 날 것

김민전 :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가시화되지 않으나 2012년 총선 바로 직전에, 공천 문제와 더불어서 엄청난 싸움이 날 거라고 봐요. 같이 가거나 따로 갈 텐데, 같이 간다고 해도 친이 쪽에서 순수하게 그냥 항복하면서 가지는 않을 거예요. 만약 같이 간다고 했을 때, 보기 좋게 간다고 하면 민주적인 경선에는 일단 합의하고 친이 쪽에서 후보를 하나 내보내서 박 전 대표와 경선에서 맞붙는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다른 하나는 민주적인 경선의 룰에 합의하지 못하고 싸우다가 찢어지는 방법이 있겠죠.

이종훈 : 저는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 봅니다. 친이계는 일단 박 전 대표에게는 절대로 차기를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친이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박 전 대표의 원칙주의, ‘원칙대로 해라’ 그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박 전 대표가) 집권하고 나서 원칙대로 처리하라고 하면 살아남을 분이 별로 없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절대로 박 전 대표에게 안 줄 것이라고 전제하면, 친이계에서도 맞수를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제3의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에서도 젊은 주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습니까?

진중권 : 그럴 수도 있어요. 세대교체론을 내세우면서….

이종훈 : 세대교체론은 일단 흥행 차원에서 얘기가 되거든요. 나이 많고 정치인으로서 상당히 완숙한 여성 박근혜와 젊고 참하면서 콘텐츠가 풍부한 젊은 남성. 이 구도가 흥행 측면에서 한나라당에도 나쁘지 않기 때문에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친이계가 바라는 그림은 박 전 대표와 맞붙어서 엇비슷하게, 팽팽하게 나가다가 막판에 역전시키고, 여세를 몰아 본선까지 가는 그림일 텐데요.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이냐입니다. 분명히 친이계는 대안을 마련할 거예요. 친이계가 계파 응집력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식구들을 보존하면서 차기에도 살아남으려면 정권 재창출이 가장 좋지만, 서바이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거든요. 이를테면 개헌을 고리로 야당과 연대를 시도한다든지….

   

▼ 2012 대선과 개헌론

진중권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언어철학과(박사과정)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SBS 라디오 ‘SBS 전망대’진행
●저서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1, 2’ ‘미학 강의 1, 2’ ‘미학 오디세이 1, 2, 3’ ‘호모 코레아니쿠스’

사회 : 대선 구도와 정치지형 변화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방금 말씀하신 개헌론을 잠깐 짚어보죠.

김민전 : 정권에서는 추진하려고 계속 애드벌룬을 띄우겠지만 여론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봐요. 개헌논의가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종훈 : 일단 대통령이 이야기하면 안 되잖아요.

김민전 : 그동안 모든 집권세력은 퇴임하기 직전에는 내각제 개헌을 원했거든요. 그런데 우리 국민은 항상 안 된다고 얘기해 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봐요.

진중권 : 저는 원래 4년 중임제 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이 정부를 보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5년도 길어요. 4년 단임제가 낫겠어요. 우리나라 지형에서는.(웃음)

사회 : 정치권은 정치공학적 필요에 의해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겠지만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보시는 거군요.

이종훈 : 국민 여론이 얼마나 떠받쳐주느냐가 핵심 아니겠어요.

사회 : 대선 지형과 관련한 카드로 개헌론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종훈 : 야권에서도 개헌 논의를 바라는 기류가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야권에 뚜렷한 주자가 없거든요. 그리고 유력 주자가 나오기가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봐요. 그렇다고 집권을 포기할 것도 아니고, 그런 점에서 내각제에 대해 호응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김민전 :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진중권 : 내각제 개헌은 일단 국민의 선호에 안 맞고요. 국민은 내각제든 대통령제든 개헌 논의 자체에 흥미가 없어요. ‘여당과 야당이 필요하다더라, 선전물 보니까 이렇게 가는 것이 맞다더라’ 하면서 마지못해 따라갈 수는 있지만 여야가 그 건을 놓고 싸운다고 했을 때 힘을 실어주거나 이러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개헌이 쉽지 않을 겁니다.

김민전 : 진보건 보수건 별 차이 없이 정권마다 매번 낡은 레코드판을 돌리듯 같은 소리를 되풀이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개헌도 그렇고…. 지금 또 중선거구제를 청와대에 제안했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진중권 : 그건 노무현 대통령이 하던 얘기잖아요.

김민전 : 중대선거구제도 국민이 별로 원치 않거든요. 소선거구제를 해야 미운 사람 때려줄 수도 있고…. 중선거구제 하면 미운 후보도 같이 달라붙어서 당선되고 이런 것은 별로 원치 않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중선거구제가 될 가능성도 별로 없다고 봐요.

사회 : 개헌은 국민 호응도가 낮아 대선 지형을 바꿀 동력으로 마땅치 않다는 말씀인 것 같네요. 그러면 현재의 정당체제가 2012년 총선 전까지 유지될 것으로 보시는 건가요.

김민전 : 주목해봐야 할 것이 민주화 이후의 정권을 보면 임기 4년차 되면 대통령이 탈당을 했다는 사실이죠. 4대강이나 세종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처리할지 알 수 없지만 만약에 국민의 생각과 상당히 다르게 간다면 정부 여당의 지지율은 계속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고요. 지방선거 이후 언론을 보면 약간의 레임덕 현상도 보여요. 언론 풍토도 약간 변화했고, 그동안에 출연금지를 당했던 사람들도 TV에 출연하기 시작했고….

진중권 : 그렇지 않아도 오늘 출연합니다.(웃음)

김민전 : 저도 출연금지를 당했다가 출연하기 시작했어요.(웃음)

   

진중권 : 오늘 방송 나가서 그 얘기를 해야겠네요. 지방선거 승리 덕분에 출연하게 됐다고.(웃음)

김민전 :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상당한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 같거든요. 역대 정권을 보면 대통령 임기 3년차가 각종 비리가 터져 나오는 시점 아니겠어요. 그리고 4년차가 되면 대통령이 탈당하는 시기이고. 4년차 말쯤 되면 분당(分黨)하는 시기인데, 이번 정권에서도 그런 데자뷰가 있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노선으로 새 경로를 따라갈 것인지, 정치학 하는 입장에서 중요한 관찰 포인트거든요.

 

▼ 박근혜 총리? 박근혜 당대표?

사회 :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친이 진영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가 관전포인트가 되겠군요. 친이 진영에서 먼저 움직였을 때 박 전 대표가 어떻게 호응할지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죠.

 

“정운찬, 너 안에 이명박 있다”

진중권 : 친이가 지금은 ‘총리 좀 해달라, 당대표 해달라’면서 같이 가자고 하는데,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당운(黨運)을 같이 하자는 것이지요. 운명공동체로 만들어서 욕도 같이 먹고 수습도 같이 하자 이런 건데요.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것이 총리를 하든 당대표를 하든 실권이 없거든요. 열린우리당 때는 분권형 총리라고 해서 이해찬씨의 존재감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권에서는 총리의 존재감이 없어요. 왜냐하면 아바타형이잖아요. 정운찬 총리도 세종시 문제로 충청도 DNA를 가진 아바타를 보낸 거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나요? 딱 보고 ‘너 안에 이명박 있다’ 그러거든요. 박 전 대표가 이 점을 잘 안다는 말이에요. 총리는 분명히 안 할 거예요.

그리고 MB는 4대강, 세종시 계속 강공드라이브를 걸 겁니다. 왜냐하면 이걸 놓게 되면 그날로 식물정권이 돼버리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가는 거고. 박근혜씨는 가만히 있다가 보수의 위기가 왔을 때 또다시 ‘朴다르크’로 나서는 것이 보수층을 결집하는 데도 훨씬 좋겠죠. 그때쯤 되면 보수층도 친이냐 친박이냐 헷갈리지 않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유일한 구원을 찾아서 쫙 결집할 것이기 때문에. 아마 이것이 훨씬 더 좋을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친이계들이 대표 하라고 그러는데 그것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느냐, 소위 핫바지 대표? 시켜놓고 자기들이 주무르겠다는 것, 그럴 가능성도 있고 립서비스일 수도 있고.

이종훈 : 당대표도 당장 임태희 노동부 장관을 앉히자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MB 마음은 그쪽이 훨씬 더 강할 겁니다.

진중권 : 항상 자기수족처럼 해야 안심하거든요. 정치 리더십은 소통인데, (MB는) CEO 리더십이라서 ‘너는 시키는 대로 하면 돼’거든요.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그거예요. 생각 잘하거나 말 잘하거나 아이디어 잘 내는 사람이 아니라 시키는 일 잘하는 사람, 이런 스타일이잖아요.

사회 : 그렇다면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시점은 그만큼 더 늦춰질 수밖에 없겠네요.

김민전 : 저는 대통령이 탈당하는 시점이 되면 나서려고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웃음) 박 전 대표 입장에서 본다면 한나라당이 적당하게 망해야지, 완전히 망하지는 않아야 하는 거지요. 본인이 리빌드할 수 있는 토대는 있어야 되니까요.

 

▼ 차기주자 박근혜의 약점

사회 : 주제를 바꿔서 차기 주자로서 박 전 대표의 강점과 약점을 얘기해보죠. 박 전 대표는 2007년 대선 때 ‘무엇을 하겠다는 후보냐’라는 공격을 받았죠.

   

먼저 던지는 메시지가 없다

이종훈 : 2012년 대선에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우선 명확한 비전이 없어요. 박 전 대표에게 ‘수첩공주’라는 표현이 따라다니는 것도 그렇고, 콘텐츠가 달린다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또 국정 참여 경험이 없는 것에 연관 지어 얘기하는 분도 많고요.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은 분명히 있는데 그렇다고 쌍방소통형은 아니에요. 친박계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더라도 그렇고, 밖으로 표출돼서 일반 국민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보더라도 쌍방통행적이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지 세력 역시 늙었다는 점도 약점이에요. 젊은층이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측근집단 내부의 알력이나 갈등 같은 것, 전형적인 권력집단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 벌써부터 보인다는 거예요.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이라든지, 일의 진행과정이 별로 민주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부분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김민전 : ‘박근혜는 참 실수를 안 하는 정치인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요. 그래서 다른 주자들이 실수를 많이 하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볼 가능성은 크다고 봐요.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력으로 이기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 전 대표를 인터뷰해보면 정책적인 입장에서는 알려진 것만큼 보수적이지 않아요. 그런데 2007년에도 이명박 후보보다 박 전 대표가 훨씬 더 보수적이다 이렇게 알고 있었지요. 대부분의 유권자가. 그 원인은 따지고 보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유추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진중권 : 박 전 대표가 실수를 안 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할 말 다 하거든요. 적당하게 하면서 욕먹을 빌미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메시지는 다 전달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할 말 없다는 말도 사실 말이거든요. 이런 식이지요. 그러니까 “안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할 말 없습니다”이런 방식이라는 거지요. 약점이라면 ‘먼저 던지는 메시지가 없다’는 거예요. 예컨대 김대중 대통령 그러면 인생역정 자체가 상징이잖아요. 노무현 대통령 그러면 인터넷이고요. 인터넷 대통령이고 IT 이런 것의 상징이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네티즌 문화라든지 이런 것이 시대정신하고 통하고 그러는데, 박 전 대표에게는 시대정신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거버너(행정) 경험이 없다는 게 좀 불안해요. 하다못해 지자체 단체장이라도 하든지, 아니면 총리나 장관이라도 해서 뭔가 실제로 일을 하는 능력을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겁니다. 그분이 정치권에서 일을 했다는 것이 옛날에 육영수 여사 돌아가셨을 때 퍼스트레이디 역할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미지가 계속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사회 : 추상적인 애국심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이냐, 이것이 과제가 될 수 있겠군요.

이종훈 : MB정부를 거치면서 사람들이 가장 불편해했던 것이 뭘까. 그 관점에서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불편을 해소하는 쪽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본다면 지금 일반인, 직장인들하고 얘기해봐도 가장 불편해하는 것이 뭐냐 하면 ‘말하기가 편하지 않다는 것’이거든요. 쉽게 얘기해서 민주주의의 역행현상이죠.

사회 : 진일보한 민주화?

이종훈 : 그렇지요. 그런데 민주화의 심화라는 관점에서 박 전 대표를 대비시켜 봤을 때 어떠냐는 겁니다.

김민전 : 저는 그 부분에서는 박 전 대표가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지만 박근혜 자체는 그 내부에서의 소통방식 이런 부분을 제외하고, 한나라당을 운영했을 때의 경험을 보면 박 전 대표 아래에서 한나라당이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되었거든요.

   

군부독재 아닌 기업형 독재체제

진중권 : 세종시에 대해 제대로 된, 힘 있는 목소리를 낸 것이 박근혜씨였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정말 박근혜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그랬다고요. 어느 정도 기대감이 있는 거죠.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박근혜가 됐으면 이런 식으로까지는 안 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 이명박씨가 하고 있는 독재체제가, 옛날 군부독재 버전이 아니에요. 기업형 버전이죠. 1980년대(시대정신이) 자주·민주·통일인데 자주하고 통일은 남북경협하고 정상회담하고 어느 정도 됐잖아요. 그 다음에 민주도 어느 정도 됐고요. 그러고 보니까 배가 고프네? 경제를 살린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나왔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살리라는 경제는 요 모양 요 꼴인데 말도 못 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미 실현되었던 욕구를 사람들이 다시 느끼게 한 거, 그게 이번 지방선거라고 봅니다.

이종훈 : 경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경제가 문제라서 MB를 뽑았더니 다분히 과거 스타일의 밀어붙이기식 경제라는 거죠. 그러면 다음번에 어떤 경제를 원할 것이냐는 거지요. 그런 경제를 얘기할 때 박 전 대표하고 매치가 되느냐를 생각해봅니다.

 

▼ 2012년 대선의 시대정신

사회 : 그렇다면 2012년에 국민이 가장 원하는 이슈가 뭘까, 대선주자에게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뭘까를 박 전 대표가 소급해서 지금부터 만들어나가면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겠군요.

김민전 : 현재 수준에서 보면 첫번째는 다시 민주주의를 얘기할 가능성이 있고요. 두 번째는 생명이라는 것. 단순히 ‘생명’ 이러면 정치모토로서는 와 닿지 않는데, 용산에서부터 이름 없는 농부의 자살, 그리고 유명인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왜 자꾸 죽어나가야만 되는가, 우리가 구조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뭔가, 이런 것에 대한 반성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세 번째로 신뢰 회복과 반부패 척결을 들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세 가지를 잘 엮으면 하나의 구호가 되지 않을까요.

이종훈 : 저도 첫 번째는 같습니다. 민주주의의 복원 내지는 정상화, 그에 대한 요구가 기본적으로 깔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경제 문제인데요, 신자유주의하고 인본주의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이냐 하는. 요새 사람 중심의 경제 얘기도 많이 하는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해 대선후보들이 답을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남북관계인데 포스트 김정일 체제 이후의 평화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화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진중권 : ‘잃어버린 5년’이라고 해야 될까요, 저는 그런 얘기가 큰 의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명박 정권이 워낙 이상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 심각한 후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소위 CEO형, 그래서 국민을 마치 무슨 자기네 신입사원 다루듯이 다루는 그런 방식에는 사람들이 충분히 지쳤고 그게 다시 올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민주의 문제하고 평화의 문제, 남북 간 평화의 문제 이런 것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청년실업, 비정규직, 중산층 몰락, 양극화 등 경제적 불안정의 문제 같은 것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답을 내놓아야 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씨가 ‘따뜻한 보수’를 표방해 갈 거예요. 그러니까 ‘보수가 경제적 약자도 보듬어줄 줄 안다’, 이렇게 어필해야 되고, 또 다른 하나는 ‘이명박식이 아니다’라는 것, 커뮤니케이션도 저런 식으로 안 하겠다,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콘셉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불행한 것이 이게 사실은 진보적 의제잖아요. 진보적 의제인데 진보정당은 배제되어 있을 거예요.

김민전 : ‘따뜻한 보수’라는 것이 먹힐까요?

진중권 : 사람들이 요구하는 건데, 그런 개념과 맥락에서 브랜드를 어떻게 붙이느냐가 문제겠죠. 지금 이명박식이라는 것이 경쟁시켜서 낙오하면 사정없이 탈락시키고, 말 안 들으면 내치고 이런 거잖아요. 어떤 용어가 될지는 몰라도 복지에서 보수의 온건주의적 측면을 강조하고, 거기에다 박 전 대표가 갖고 있는 어머니 이미지가 있거든요. 이것을 묶어서 가지 않을까 싶어요.

   

▼ 박근혜 대항마

이종훈
●성균관대 정외과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
●국회도서관 연구관
●現 iGM 컨설팅 대표
●現 명지대 연구교수
●現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진행
●저서 : ‘정치가 즐거워지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 ‘사내정치의 기술’

사회 : 그렇다면 2012년 대선에서 현재 유력 주자인 박 전 대표에 대적할 맞수는 누가 될까요.

이종훈 : 이번 지방선거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지상욱 후보에게 눈길이 갔어요. ‘지상욱류(流)’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민전 : 무슨 뜻이에요?

이종훈 : 경제력도 있고, 잘 배웠고, 또 똑똑하고 아주 곱게 자란….

김민전 : 그래요? 보통 국민은 그런지 전혀 모르던데….

이종훈 : 영국에서 이번에 집권한 사람들이 그런 유형이잖아요. 명문대학 출신에 집안도 어느 정도 되고 본인 실력도 있고, 그런 유형의 정치인이 보수진영에서 신주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홍정욱이라든지, 이른바 지상욱류의 리더십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어요.

김민전 : 장기적으로 보면 그럴 것 같은데요. 저는 이번에는 1번은 김문수, 2번은 오세훈일 것 같아요. 아직 여성 후보를 잘 안 찍기 때문에 남자를 내세우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할 것이고, 박 전 대표가 갖지 못한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진중권 : 김문수가 가장 유력하다고들 얘기하지요?

김민전 : 이번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에서 가장 선전한 후보가 김문수라고 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상당한 자신감을 얻지 않았을까 싶고, 보수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오세훈은 긴가 민가 이런 부분이 일부 있지만 김문수는 시원시원한 면도 있고…. 박 전 대표가 갖지 못한 경험, 그리고 영남표가 어차피 온다고 하면 수도권 표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계산. 그런데 어떻게 보면 경기지사는 참 불행한 정치적 굴레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잘못하다가 손학규 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인 것 같기도 하고….

진중권 : 그런데 사실 여권으로서는 답이 없거든요. 이재오씨가 나와서는 안 되고 MJ(정몽준 전 대표)는 지금 아웃된 상태이고…. 인물이 없어요. 이 두 사람(오세훈, 김문수)을 부르는 수밖에 없는데 과연 이들이 움직일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김문수 지사는 너무 거칠어요. 어차피 보수 세력이야 찍겠지만 중요한 건 중간층이거든요. 대선은 중간층 싸움이잖아요. 중간에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유권자 표를 어느 쪽으로 끌어오느냐가 결국 관건인데, 중간층에 어필하기에는 너무 말이 거칠고 정제되어 있지 않고 과격하거든요.

 

“인테리어 관심 많은 남편 이미지”

김민전 : 그래도 보수 세력에서는 오세훈보다는 김문수를 좋아하지 않을까요?

진중권 : 그럴 것 같아요. 오세훈은 밋밋해서 무슨 웰빙 비슷한 것 같거든요. 서울시장도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데코레이션을 계속하잖아요? 집 안 꾸며주면서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남편 같은 이미지거든요.

사회 : 정치권 전체로 확대한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한명숙 후보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유시민 후보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진중권 : 한명숙씨는 안 돼요. 이번에 서울시장선거 봤잖아요. 이미 다 폭로됐기 때문에 도저히 될 수가 없어요. 제가 볼 때는 손학규, 정동영, 유시민 세 사람이 유력할 것 같아요. 손학규씨는 지금까지 비교적 잘해왔죠. 반성모드로 들어가서 몸을 낮추고….

   

이종훈 : 현재까지 야권에서는 손학규씨가 가장 유리하죠.

진중권 : 유리하지요. 그 다음에 유시민씨가 들어와서 아마 또 한번 이벤트를 멋있게 벌일 겁니다. 단일화니 뭐니 해 가지고.

이종훈 : 유시민 후보도 이번에 데미지를 많이 입은 것 아닙니까?

진중권 : 그래도 꽤 선전했지요.

김민전 : 예. 데미지를 많이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마무리를 잘하더라고요, 지고 나서.(웃음) 마무리를 잘해서 동정표를 얻게 생겼다고 해요.

이종훈 : 그래도 이번 선거에서 입증된 것이 역시 안티가 많구나….

진중권 : 안티는 있는데 재작년부터 모드가 바뀌었어요. 토론회 나가면 말하는 투가 달라졌더라고요. ‘왜 그래요’ 그랬더니 ‘반성하는 중입니다’ 뭐 이러던데요. 반성한다는 것이 이미지 변신을 하고 옛날에 자기가 했던 역할에서 벗어나서 좀 더 큰 꿈을 품겠다는 것이겠지요.

김민전 : 40대 이상은 반성을 다 연기라고 보던데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떨어지고 나서 ‘다 제 탓입니다, 제가 모자라서 그렇습니다’ 이런 얘기에 감동하더라고요.

이종훈 : 유시민보다도 오히려 김두관 당선자가 저력이 있어 보이더라고요.

진중권 :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제 지자체장이 돼서….

김민전 : 김두관은 이번에 나서기에는….

이종훈 : 빠르다고 볼 수 있지요.

진중권 : 차차기지요. 차차기가 재미있을 것 같아요. 송영길부터 차근차근 잠룡들이 크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당분간은 손학규씨하고 정동영씨인데 손학규씨가 외적으로는 여태 처신을 잘해왔고 지방선거 때도 잠깐 도와주고 또 칩거에 들어가는 식으로 잘해온 것 같은데, 당내에서는 역시 또 정동영씨잖아요, 지지 세력이 있으니까.

김민전 : 본선에서는 손학규씨가 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씀대로 예선에서 통과할 수 있을까 의문이죠.

진중권 : 그게 문제지요. 정동영씨는 본선 가능성은 아예 %가 없어요, 정동영 내보내서는 아예 희망이 없어요. 해볼 필요도 없는 것이고….

이종훈 : 다음번에는 역시 본선경쟁력 을 많이 보지 않겠어요?

진중권 : 그런데 정당이라는 게 이권으로 움직이잖아요.

사회 : 그러면 과거 노무현 후보가 급부상했던 것처럼 새로운 신예가 박 전 대표의 유력한 대항마로 설 수 있는 토양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고 보시는 건가요?

진중권 : 가장 비슷한 사람이 유시민이지요. 그런데 짝퉁이지요, 짝퉁 노무현.

김민전 : 유시민 이외에 노무현처럼 부상할 수 있는 내공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사회 : 그러면 2012년 대선이 너무 잔잔하고 조용하게 다가오는 것 아닌가요?

진중권 : 대선이 1년 정도 남으면 그때 튀어나와야 돼요. 차기 주자들은 노출 기간이 길면 길수록 손해예요. 신선한 맛이 다 떨어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그냥 있다가 딱 적당한 때, 너무 늦으면 또 안 되고 너무 빨라도 안 되고 적당한 때에 튀어서….·

   

이종훈 : 제 생각에는 다크호스가 나올 것 같아요.

진중권 : 그럴 수도 있지요.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5년이면 조선왕조 500년하고 맞먹잖아요.(웃음)

사회 : 박 전 대표가 유력 차기주자로 너무 일찍 부상한 것이, 본선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김민전 : 그런 점도 있지만요. 선거라는 것이 상대가 누구냐, 또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예를 들어 손학규씨를 얘기했는데 그러면 박 전 대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으로 보이겠지요. 그런데 유시민씨하고 붙는다면 박 전 대표가 중도로 보일 거예요.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 박근혜의 차기 가능성

사회 : 2012년 대선도 결국 1 대 1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시는군요.

김민전 : 그럴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것이 1992년 선거 이후에 연합하면 이기고 흩어지면 진다는 것을 다들 너무나 뻔히 알고 있어서 뭉치기 위한 막판 시도를 하지 않겠나 싶어요. 결국 1 대 1 구도로 가겠죠.

사회 : 뭉치는 것이 전제가 된다면, 박 전 대표가 안고 있는 문제가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에 계속 갈등해온 친이, 친박으로 나뉜 한나라당을 어떻게 추슬러내느냐, 어떻게 하나로, 깨지지 않고 본인이 후보가 되어서 본선에 나가느냐가 되겠군요.

김민전 : 맞습니다. 그런데 그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한나라당이 적당하게 망하지 않으면 본인한테 기회는 별로 없을 것 같고, 주류 쪽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이기기 위한 프레임을 만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이게 또 너무 많이 망해 놓으면 지난번 열린우리당처럼 될 가능성도 있고. 아마 절묘한 시점을 타려고 노력하겠지요.

사회 : 박 전 대표는 6·2지방선거 최대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고민이 깊은 차기 주자가 되겠군요. 박 전 대표의 2012년 대선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세요.

이종훈 : 저는 49% 정도.

진중권 :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웃음)

김민전 : 지금 판을 보면 1등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런데 우리 선거가 1등을 해온 사람을 끝까지 1등으로 놔두지 않는 풍토였기 때문에…. 2007년 대선이 박 전 대표가 이길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아니었나 싶어요. 한나라당이 이길 수 있는 적기였고, 박 전 대표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한나라당을 살린 것이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바로 그때가 참 좋을 때였는데…. 지금은 세종시 등에 대해 반대는 하지만, 본인 스스로 업적을 내놓지는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구조적으로.

진중권 : 포지션도 그렇고요.

김민전 : 지금의 구조에서 반대만 해서는 참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사회 : 현 정권 초기에는 지방선거 전에 분당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결국 한나라당은 유지됐습니다. 다만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또 한번의 분당 위기가 있을 거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이 대오를 유지하느냐가 2012년 대선을 전망하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되겠군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 전 대표가 어떤 선택과 역할을 할지도 관심사입니다. 긴 시간 감사합니다.

 

박근혜와 언론
특종도 낙종도 없는 특이한 평화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언론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을까. 유력 차기 주자의 정치활동은 언론을 떼어놓고선 생각할 수 없다. 박 전 대표의 언론 대응은 일반적인 정치인과 달리 어떤 언론과도 개별 인터뷰를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언론과 평화를 유지하는 ‘특이함’이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월10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이명박대통령이 제기한 ‘강도론’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정현 의원.

친박근혜계의 대(對)언론 창구는 이정현 의원이다. 대통령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의 대변인을 지낸 인연이 쭉 이어졌다. 지금도 주요 사안이 발생할 때면 박 전 대표의 생각을 들어 기자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평의원 신분인 박 전 대표가 공식 대변인을 둘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직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은 그를 항상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으로 지칭한다. 박 전 대표는 그를 “매우 헌신적인 분”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일각에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 전 대표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선 특별히 거부감을 표시한 적이 없다. 언론창구인 이 의원은 이러한 차이점을 언론에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은 “4대강 사업의 필요성과 부작용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있겠지만 사업 자체에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고 정부의 국책사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 주민들도 대체로 달성군을 통과하는 낙동강 정비 사업이 지역발전에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친박계의 대언론 창구가 단일화 돼 있지는 않다. 다른 친박계 의원들이 박 전 대표의 말을 들어 직·간접적으로 언론에 흘리는 경우도 많다. 또 의원이 개인의견을 피력한 것이 ‘박심(朴心·박 전 대표의 심중)’이거나 친박계 전체의 견해처럼 보도되기도 한다.

이정현 의원은 “일부 의원이 박 전 대표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을 언론에 설명하는 바람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 전 대표가 계파정치 자체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른바 ‘(전체) 친박계의 입장’이란 것은 있을 수 없고, 나도 다만 박 전 대표의 말씀을 언론에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자 배치하고…

박 전 대표의 코멘트만 전하는 데 충실하려는 이 의원은 때로는 상당한 순발력을 발휘한다. 미디어법 대치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19일 이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본회의 표결에 참석한다면 이는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미디어법 표결 처리 방침을 밝히며 “박 전 대표도 표결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한 반박이었다.

이런 일은 박 전 대표 본인이 웬만하면 언론에 나서기를 꺼리는 데서 발생한다. 언론 입장에서 보면 박 전 대표는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여전히 ‘칩거 중’이다. 현재 그의 유일한 출근처가 국회의원회관이지만 아무리 자주 가도 만날 수가 없다. 경선 이후 개별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다른 정치인과 달리 각사 편집국이나 보도국 간부들과의 사적인 자리도 되도록 피한다.

각 언론사에 ‘박근혜 전담 마크’ 기자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도 박 전 대표와 직접 대면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돼 있다. 각사 한나라당 출입기자의 ‘반장’이나 전담 기자들이 바뀌었을 때 그들이 면담을 요구하면 가끔 시간을 내서 티타임이나 식사 자리를 갖기도 하지만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또 대화 내용도 기자들이 먼저 민감한 정치현안을 꺼내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담 기자들이 자리를 마련해놓고 박 전 대표를 초청한다. 가령 박 전 대표의 해외 방문 때 동행 취재했던 기자들이 귀국 후 친목 모임을 갖기도 하는데, 이 자리에 박 전 대표와 당시 수행했던 친박계 의원들이 간혹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때도 정치현안을 두고 질문과 대답이 오가기보다는 방문 당시의 후일담이나 가벼운 정치·사회 문제가 화제로 오른다.

각 언론사는 ‘박근혜 취재’가 쉽지 않자 다양한 접근 방식을 짜냈다. 박 전 대표와 좀 더 수월하게 교감을 나눌 것으로 기대해 여기자를 전담으로 배치하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를 담당했던 기자를 다시 전담기자로 복귀시키기도 했다. 경선 이후 박근혜 캠프 담당 기자 가운데 상당수가 정치부를 떠나거나 야당 담당 등으로 옮겨갔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큰 선거가 끝난 뒤의 통상적인 인사이동이지만 친박계 안에서는 이명박 캠프를 담당했던 기자들이 청와대를 출입하거나 한나라당에 그대로 남았던 것과 비교해 “차별을 받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박 전 대표의 해외 방문 때 언론사들이 큰 기사거리가 없음을 알면서도 적지 않은 출장비를 지출해가며 기자들을 동행취재에 나서게 하는 것도 그만큼 깊숙한 ‘박근혜 기사’에 목말라 있는 까닭이다.

   

“이미 다 말씀드렸다”

2006년 1월3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출입기자들과의 신년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금은 기자들이 박 전 대표의 ‘한마디 정치’에서 간간이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얼굴을 보기조차 어려운 전담 기자들은 국회가 열리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국회활동에 충실한 박 전 대표는 본회의나 상임위가 열리면 되도록 참석한다. 이때 기자들은 회의장 앞에 진을 치고 있다가 각종 현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박 전 대표가 개인적으로 참석하는 외부 행사장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별로 할 말이 없다”거나 “이미 다 말씀드렸다”가 전부다. 기자들이 동선을 쫓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유도 질문을 던지지만 한번 굳게 다문 입은 열리지 않는다. 박 전 대표를 전담하는 한 젊은 기자는 “첫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내용을 다시 물어보면 표정이 굳어지기 때문에 되묻기가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고 취재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다른 기자는 “현장에서 민감한 질문을 던질 때 박 전 대표의 얼굴을 보면 문득 ‘얼음공주’ 이미지가 떠오르곤 한다”며 웃었다. 보통의 정치인은 아무리 난감한 질문이나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이 나와도 성의껏 답변하는 노련함을 보이지만 박 전 대표는 원칙적으로 대한다. 그만큼 전담기자에게조차 박 전 대표는 다가가기 쉽지 않은 취재원이다.

박 전 대표는 간혹 사석에선 기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잘 웃고 가벼운 농담도 곧잘 던진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선 조금 다르다. 말 한마디에도 결코 실언(失言)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는 개인의 삶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20대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몸에 밴 자세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기자들과 만나서도 말을 아끼지만 예외가 있다. 특정한 사안에 대해 작심하고 기자들과 대면할 경우다. 그 때마다 박 전 대표가 툭 던지는 한마디는 정국의 흐름을 일순에 바꿔놓곤 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직전 ‘면도날 테러’를 당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깨어난 뒤 곧바로 “대전은요?”라고 물었고, 이 한마디로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는 대전시장선거에서 역전승했다. 2007년 초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하자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단 세 마디로 자신의 뜻을 분명히했다. 이때까지는 당 대표로 있을 시기다. 대선후보 경선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대폭 줄인 가운데서도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한마디를 날렸다.

2007년 11월 당시 이재오 의원이 친박 진영을 압박하자 “오만의 극치”라는 한마디로 무력화시켜버렸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살아서 돌아오라”는 말로 당 안팎의 친박계를 하나로 결속시키면서 ‘박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유권자에게 각인시켰다. 지난해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이상득 의원이 친박을 표방하던 무소속 정수성 후보에게 이명규 의원을 보내 사퇴압박을 넣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일갈했다. 최근 세종시 논쟁이 벌어졌을 때는 “정치는 신뢰인데,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카피라이터의 작품 같다

그가 직접, 혹은 이정현 의원을 통해서 던지는 한마디는 마치 깊이 고민한 카피라이터의 ‘작품’ 같다.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전후좌우를 모두 살펴보지 않고는 나오기 어려운 용어 선택이다. 미디어법 파동 때 “본회의에 참석한다면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전해져 나중에 어조를 완화했지만 그 일도 ‘한마디’의 위력을 역으로 방증한다.

그간 박 전 대표가 던지는 한마디의 대부분은 “…는 안 된다” 식의 일종의 ‘안티성’이었다. 이 때문에 친이계에서 “박 전 대표가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줬다. 또 일부 국민이 한마디 정치에 피로감을 갖는 이유가 됐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안티성이 통했지만 앞으로 국정운영을 준비하는 입장이라면 긍정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 전 대표의 이런 스타일을 과거 그를 폄훼할 때 이용됐던 ‘수첩공주’ 이미지와 결부시키는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다. 처음 정치의 전면에 나설 때 그가 공식회의 때도 수첩에 적어온 내용만 읽는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이것은 곧 ‘콘텐츠 부족’이란 말로 이어졌고, 당내 반대파나 당시 여당이 그를 공격할 때 쓰는 단골메뉴였다. 하지만 대선후보 경선을 거치는 동안 후보자 TV토론 등을 통해 그런 비판론은 상당 부분 불식됐다. ‘한마디 정치’를 ‘수첩공주’에 대입할 수 없게 만든 셈이다.

기자 출신으로 민주당에서 오랫동안 대언론 공보를 담당했던 한 정치인은 “박 전 대표는 자기의 메시지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고, 국민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현재 정치인 중에서 그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은 없다”고 단언했다.

   

한 언론학자도 “박 전 대표는 언론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정치인”이라며 “그의 한마디 정치는 과거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JP는 현역 정치인 시절 복잡하게 얽힌 사안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절묘하면서도 해석하기에따라선 심오한 의미가 있는 한자성어나 경구를 들려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해 기자들의 탄성을 자아내곤 했다.

그렇지만 차기 대권의 유력 주자이자 대중정치인인 박 전 대표는 한마디 정치 외에는 여전히 언론과의 접촉면을 되도록 좁히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정현 의원은 “언론 접촉을 꺼린다는 말부터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분명히 주목받는 공인이지만 특정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은 현재 위치에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것이 이명박 정부를 돕는 길이란 인식의 연장선상이다. 다만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에 대해선 분명히 입장을 밝혀오지 않았느냐. 그동안 4가지 중대 사안, 즉 미국산 쇠고기 사태, 보복 공천, 미디어법, 세종시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언론사 여론조사로 피해”

다른 친박계 의원은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박 전 대표가 특히 보수 언론으로부터 상당한 불이익을 당했다. 굉장히 심했다. 그런 점도 언론을 불신하는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권 출범 후 상당수 언론사가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느라고 박 전 대표를 깎아내리더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박 전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부터 유력 언론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귀띔도 나온다.

당시 전당대회에서 치른 대선후보 경선투표 결과, 이명박 후보는 선거인단 13만898명(유효투표수 기준)과 여론조사 대상자 5049명의 득표수를 합산해 계산한 결과 총 8만1084표를 얻어 7만8632표를 얻은 박근혜 후보를 2452표 차이로 누르고 대선 후보가 됐다. 이 과정에서 당초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개표 집계결과 박근혜 후보가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이명박 후보에게 432표 앞섰으나 일반국민 상대 여론조사에서 8.5%포인트(표로 환산 시 2900여 표)가량 뒤져 패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8월20일 투표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후보가 높은 대중성을 바탕으로 이명박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선거인단 투표에서 얼마나 따라잡느냐가 관건인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나온 일부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가 큰 격차로 앞서 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는 곧 ‘이명박 대세론’에 힘을 실어줬다.

당시 박근혜 캠프의 김무성 조직총괄본부장(현 원내대표)은 “투표 열흘 전 모 방송사 보도와 같은 날 모 신문 보도를 보면 대의원 대상 조사는 4.3%포인트, 당원 대상 조사는 5.8%포인트, 국민선거인단은 무려 8.6 %포인트가 차이난다”면서 “같은 날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언론사 여론조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라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을 두고 “박 전 대표가 언론의 최대 수혜자이자 피해자”라는 말이 나왔다. 사실 정치에 입문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서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하고 유력한 대권주자가 될 정도의 높은 대중성을 갖추는 데는 언론의 도움이 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표가 한마디만 하면 대부분의 언론은 크게 다룬다. 말을 하지 않으면 ‘왜 침묵하는지’가 또 기사가 된다. 전담 기자들은 매일 박 전 대표의 홈페이지를 검색하면서 홈피에 올린 의례적인 인사글에서도 의미를 찾아 기사화한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입장에선 2007년 결정적인 순간에 언론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일이 발생한 셈이다.

다른 측면에서 박 전 대표의 언론대응 기조를 설명하는 의견도 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박 전 대표는 비교적 언론을 이용하지 않는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친(親)정권’과 ‘반(反)정권’으로 양극화한 현재 우리나라 언론프레임에서 자신이 어느 쪽에도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보수 언론의 경우 박 전 대표를 ‘뜨거운 감자’로 생각하는 데다, 그가 언론에 고분고분하지도 않기 때문에 서로가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진보언론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그를 애초부터 탐탁잖게 여기는 만큼 양쪽 모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다고 봤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지금은 언론노출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거리를 두되, 중요한 순간에 ‘한마디 정치’로 언론을 활용한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보수와 진보 모두 거리두기?

2005년 11월6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동아일보 패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다만 최 교수 역시 2007년의 상황 등을 들어 “박 전 대표가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을 것”이라고 동의했다.

박 전 대표는 언론접촉뿐만이 아니라 외부로 나가는 메시지 전달에도 매우 신중하게 대처한다. 보통 중진 정치인은 각종 행사에 초청을 받아 연사로 나가거나 직접 참석하지 않을 때는 축하 메시지라도 보내길 좋아한다. 각종 단체로부터 그런 요구도 끊임없이 들어온다. 그러나 박 전 대표를 행사에 초청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닐 뿐만 아니라 영상이나 서면 메시지도 잘 보내지 않는다. 간혹 나가는 메시지는 국회의원회관에 근무하는 정호성 보좌관이 초안을 만들어 재가를 받는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정국현안에 대해 던지는 ‘한마디’는 정 보좌관의 도움을 받거나 다른 별도 메시지팀을 두지 않고 홀로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박 전 대표가 여론의 동향에 둔감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신문과 방송 보도 내용을 세심하게 챙긴다고 한다. 참모들이 그날그날 여론을 전하고 주요 보도 내용을 보고하지만 그 자신이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작은 뉴스까지 직접 챙길 정도라는 것. 한 측근은 “(인터넷 등을 통해) 워낙 꼼꼼하게 여론동향을 파악하시기 때문에 비판적인 기사라도 보고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박 전 대표는 여론의 중요성을 알지만 아직 언론의 전면에 나설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듯하다. 그의 측근은 “‘박근혜 역할론’에 대한 입장과 언론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배경은 같다”고 했다. 지금은 평의원으로서 여권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역할을 친이 주류 쪽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고, 그런 기조가 곧 MB 정부의 성공을 돕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에 언론에도 나서지 않는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박 전 대표는 1998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언론과의 접촉을 그다지 마다하지 않았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총재의 전횡을 비판하며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가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수시로 기자들과 만나 의견을 수렴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당 대표 시절과 경선후보 때도 사석에서 자주 언론사 간부나 일선기자들을 만났다. 그러다 대선후보 경선 패배 이후 ‘책임 있는 자리’에서 물러난 뒤 언론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했다.

하지만 이번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이후 ‘박근혜 역할론’이 다시 부상하면서 최근 친박계 일부 의원이 언론과의 접촉면도 넓혀야 한다는 건의를 했다고 한다.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지방선거 직후 박 전 대표를 만나 “지금은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새로운 지도부를 뽑는 7월 전당대회를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되며 직접 출마하든지, 친박계에서 누구라도 내세워야 한다. 언론에 대해서도 보다 폭넓게 접촉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수선거를 지원하기 위해 공식선거운동 기간 내내 현지에 머물렀지만 한나라당 후보가 무소속 후보에 밀려 크게 벌어졌던 격차를 많이 줄이는 데 성공했을 뿐, 결국 당선시키지 못한 상황의 심각성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무슨 말씀인지 잘 안다. 맞는 말이다. 좀 더 기다려달라”고 대답한 것으로 전한다.

대부분의 친박계 의원도 박 전 대표가 지금쯤은 서서히 언론관계를 점검하고 적극적으로 나설 시점이라고 본다. 이정현 의원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당분간은 지금의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일정한 시점이 되면 대언론 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박 전 대표가 언론을 찾는 것은 당장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역할을 맡거나 본격적인 대선 시즌이 다가올 때라야 할것 같다.

보통의 정치인은 자신에 관한 기사가 언론에 한 줄이라도 더 나오게 하려고 애쓴다.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부고기사만 아니라면 어떤 기사라도 이름이 나오는 게 좋다”는 말도 있다. 특히 큰 꿈을 꾸는 대권주자들은 두말할 나위 없다. 과거 3김 시절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전담하는 기자 가운데는 각각 ‘상도동계 기자’‘동교동계 기자’라고 불릴 정도로 밀착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나중에 대권경쟁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굳이 대권주자가 아니더라도 중진급 의원들은 특정 기자 집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훈수를 구했다.

 

대선 여론전에서 밀린 기억

지금은 언론사의 내부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그런 식으로 개별 기자의 호·불호가 지면에 그대로 반영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대권주자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꾸준히 ‘상품’을 알리고 선택받도록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특히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박 전 대표의 패인 중 하나가 ‘여론전’에서 밀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당시 박근혜 캠프는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지만 수집한 정보나 팩트가 제대로 언론에 보도됐다고는 볼 수 없다. 지금이라도 박 전 대표 입장에선 언론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친밀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친박계 내부에서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