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가 드디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41] 순천시 와온마을에서 여수시까지
10월 29일(금)
자전거가 심상치 않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계속해서 사람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은 소음이 나고 있다. 몹시 귀에 거슬리는 소리다. 그 소리가 자동차 소음만큼이나 크다. 두 달도 안 돼 3000km를 달렸으니, 사실 어딘가 고장이 나도 크게 날 때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견뎌온 것도 대단하다.
숙소를 떠나 몇 km를 가지 못해 멈춰 선다. 귀가 아플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아파서 더 이상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자전거에서 나는 소음이 '더 이상 못 달리겠어. 차라리 날 죽여' 악다구니를 치는 소리처럼 들린다.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 사람 목소리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놈이 말은 하지 못하지만 비명은 지를 줄 아는구나, 뭐 그런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나 역시 견디기 힘들다. 결국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혹시 체인에 윤활유가 없어 그런가 싶어 오일을 잔뜩 바른다. 너무 많이 발라서 오일이 땅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이걸로 소음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 같지는 않다. 어쨌든 당장에 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여기까지다.
체인에 오일을 바르고 난 뒤, 한동안은 멀쩡하다. 소음이 말끔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역시 오일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언덕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면서 소음이 되살아난다.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이번엔 디스크 브레이크 때문인가 싶어 디스크와 브레이크 패드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야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한 자전거를 처음 사용한다. 장거리 여행에 손에 익지 않은 기계 장치를 단 게 잘못이다.
자전거가 멱따는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이제는 자전거 수리가 가능한 곳까지 가서 제대로 정비를 받아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려면 여수시까지는 가야 한다. 순천시에서 여수시까지 국도로 20km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해안선을 따라가면 70km 가까이 된다. 그 거리를 소음에 시달릴 일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어쩌랴. 이 역시, 바닷가 여행에서 감내해야 할 일 중에 하나인 걸.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도 몇 안 되지만, 그 사람들마다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어디서 사람 멱따는 소리가 들려 돌아다보니, 요상하게 생긴 자전거 한 대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거다. 조용한 어촌 마을에 난데없이 자전거 괴물이 나타나 소란을 피우는 꼴이다. 그냥 귀를 닫고 싶다.
그 와중에도 눈은 살아서 주변 경치에 자꾸 시선을 빼앗긴다. 이리저리 돌아다보지 않을 수 없다. 여수반도는 남쪽을 향해, 뿌리가 두 갈래로 갈라진 거대한 도라지 모양을 하고 있다. 왼쪽 뿌리 끝이 좀 더 길게 뻗어 작은 섬 백야도로 이어지고, 오른쪽 뿌리는 짧고 뭉툭한 대신 비교적 길고 커다란 섬 돌산도로 이어진다.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해안선은 왼쪽 뿌리의 서쪽에 해당한다. 그 해안선이 감칠맛 나게 아름답다. 평탄한 도로가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돌아간다. 길은 부드럽다고 느껴질 만큼 편안하다. 시야는 바다를 향해 막힌 데 없이 탁 트여 있다. 영광군의 백수해안도로나 강진만의 해안도로와도 또 다른 맛이다. 자전거 소음만 아니라면, 환상적인 자전거길이 됐을 것 같다.
왼쪽 반도의 끝에 다다를 무렵, 두미마을에서 시작되는 고갯길 역시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다. 그 경치를 내려다보는 사이에 긴 고개 하나를 어렵지 않게 넘어간다. 이런 길은 수시로 자전거에서 내려 경치를 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히 쉬어가는 시간이 길다. 그러다 보면 언제 고개를 올랐나 싶게 내려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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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너 참 반갑구나
고개를 내려가면 장등마을이다. 이곳에서 칼국수로 점심식사를 한다. 오래간만이다. 이곳에 와서 다시 칼국수를 먹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전라남도로 들어서면서 언젠가부터 식당 메뉴에서 '칼국수'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대신 횟집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이상했다. 그때 혹시 한국에 '칼국수 남방한계선'이라는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칼국수는 혼자 자전거를 타면서 먹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음식 중에 하나다. 여행 초기에는 칼국수를 너무 많이 먹어 이제 다른 음식을 좀 맛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그 칼국수마저 사라지고 나서는 끼니를 때우기 힘든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런 칼국수를 이곳에 와서 다시 발견하게 되다니, 반가웠다.
이곳은 칼국수 전문점이라 따로 주문을 받지도 않는다. 칼국수가 작은 옹기에 담겨서 나온다. 그런데 칼국수 양이 좀 많다 싶다. 아니나 다를까 '운동하는 분이라 좀 많이 드렸다'고 한다. 이 집에서 '두 사람의 손님한테 나가는 양'이란다.
음식 단지 안에 바지락이 수북이 쌓여 있다. 바지락부터 맛보는데, 여기에 와서 비로소 바지락의 참맛을 맛보는 것 같다. 바지락 본래의 맛이 살아 있다. 처음에는 그 바지락이 그 바지락이겠지 생각했는데, 이곳은 그 맛이 좀 더 신선한 걸 느낄 수 있다. 국물 맛이 진국이다.
그 칼국수를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먹는다. 나중에는 목젖까지 칼국수가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2인분을 먹어치웠으니 그럴 만하다. 그래도 음식을 먹고 나니 온몸이 개운하다. 언덕을 넘어오느라 바닥이 났던 힘이 다시 샘솟는 느낌이다. 에너지도 충분히 보충했겠다, 이제 여수 시내까지 달려가는 것은 일도 아닐 것 같다.
칼국수 먹은 힘으로 백야대교를 건너 백야도 등대가 있는 곳까지 가파른 언덕을 쉬지도 않고 달려 올라간다. 그 길 끝, 바닷가 절벽 위에 새하얀 등대가 우뚝 서 있다. 이 등대는 1928년 12월에 세워진 이래, 지금까지 여수와 거문도 사이를 오가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세워진 연대에 비해 등대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깔끔하다. 새하얗게 빛나고 있다. 수십 년, 세상에 빛을 던지며 살아온 세월이 빛나는 등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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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도에서 여수 시내를 향해 가는 길은 일정 거리 내륙으로 들어와 있어, 풍경이 비교적 단조로운 편이다. 논과 밭이 어우러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계속된다. 게다가 이 길은 곳곳에 길고 높은 언덕이 도사리고 있어 인내심을 가지고 페달을 밟아야 한다.
그런 길이 여수 시내 소호요트경기장 근처에 다다르면서 갑자기 도시 꼴을 갖추기 시작한다. 도로는 반듯하고, 길가에는 세련된 외양을 갖춘 상점들이 즐비하다. 도로를 따라가며 아파트들이 대단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꽤 낯익은 풍경 중에 하나다.
하루 종일 오지나 다름이 없는 해안 마을을 달리다 해가 질 무렵 느닷없이 번화한 도시로 진입하느라 약간 부적응 상태에 빠진다. 순천시만 해도 도시 외곽을 그냥 지나쳐 왔다. 여수시는 해안에서 바로 시내 중심가로 진입한다. 해안에 자전거도로 겸용 산책로가 깔려 있다. 그 길을 천천히 달리다가 나중에는 아예 자전거에서 내려서 걷는다. 아무래도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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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가로 들어서자마자 맨 먼저 자전거 매장을 찾아간다. 오늘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놈의 자전거가 '병원'에 다 와가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 사이에 앓는 소리를 그치고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뗀다. 사람도 아닌 게 사람 흉내를 내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쨌든 자전거를 끌고 병원 안으로 들어선다. 자전거를 수리하는 일 말고도 몇 가지 장비를 보충해야 한다. 어제 저녁 완전히 소진된 펑크 패치를 보충하고, 겨울 추위에 대비해 긴장갑을 구입한다. 매장에 겨울 장갑이 없어 할 수 없이 춘추용 장갑을 샀는데, 얼마나 추위를 막아줄지 모르겠다.
자전거 소음은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브레이크를 다시 조정한 결과 소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브레이크를 손보고 나서는, 자전거 구석구석 틈새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먼지만 털어냈는데도 내 속이 왜 이렇게 시원한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선소(船所)'라는 곳에 들른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배를 건조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건조한 곳으로 보이는 '굴강'이 있다. 바다 쪽에서는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 곳에 둥그렇게 축대를 쌓고, 배 한 척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정도의 입구만 열어 놓은 채 안에 물을 가뒀다.
남해 바닷가에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유적지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유적지를 보게 될지 알 수 없다. 여수의 굴강이 거북선을 제조한 곳이라면, 앞으로 보게 될 삼천포의 '굴항'은 거북선을 은닉했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의 지략과 활동 반경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 여수 시내로 진입하기 직전 안골이라는 마을의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지금까지 달린 거리로, 3000km를 돌파했다. 이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언제 4000km를 돌파할 수 있을지 감도 잡을 수 없었는데, 이제 그 4000km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오늘 달린 거리는 82km, 총 누적거리는 3014km다.
돌산... 우습게 봤다 뒤통수 맞았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42] 여수시에서 돌산도를 돌아 다시 여수시로
10월 30일(토)
오늘은 여수시 국동항에서 돌산대교를 건넌 다음, 돌산도를 한 바퀴 돌아서 나올 예정이다. 돌산도는 이름부터 상당히 거친 이미지를 풍긴다. 이름에 '산'자가 들어가는 섬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돌산도는 특히 '산'으로서 이미지가 더 강한 섬이다.
섬 전역에 산이 꽉 들어차 있다. 평지가 드물다. 오늘 그 섬에 생애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는 내 마음이 착잡하다. 눈앞에 고생문이 열려 있는데, 피해 갈 방법이 없다. 내 손으로 직접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기구한 운명이다.
국동항에서 바라다보는 돌산도의 산세가 자못 웅장하다. 육지에 있는 산들에 비해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 산이다. 하지만 바닷가 해발 0미터에서 올려다보는 산은 육지 속 산들보다 더 높아 보이기 마련이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돌산대교를 넘는다.
그런데 돌산도에서 처음 만나는 도로는 애초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경사가 낮은 편이다. 도로가 해안 절벽 위를 위태롭게 지나가기는 하는데 이전에 지나쳐온 길들과 달리 높낮이가 심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의외로, 갓길도 넓은 편이다. 자전거 타기에 편안하고 안전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돌산대교를 넘어 무술목까지 가는 길가의 바다에 굴 양식장이 끝없이 이어진다. 길가에 늘어선 간판도 대부분 굴과 관계가 있는 것들이다. 굴 양식이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길에서 굴 한 접시 차려 먹지 못하고 지나가는 내 신세도 참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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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목을 지나고 나서도, '돌산'이 무색한 길이 계속된다. 이대로만 가면,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돌산도를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오래간만에 만만한 코스를 만나 여유를 부려본다. 하지만 그런 여유도 신기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허세가 되고 만다.
향일암으로 가는 길에 매우 길고 높은 고개가 나타난다. 죽을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이런 고개를 올라갈 때는 어떻게든 고개 정상까지만 올라가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일단 정상에 올라서면 이번엔 또 내려갈 일이 걱정이다. 내려가는 길이 급경사에 좌우로 심하게 굽어 도는 길이라 맘을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180도 굽은 길을 돌아 내려가다 자칫 절벽 아래로 튕겨져 나갈까, 몸이 잔뜩 움츠러든다. 자연히 브레이크 레버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고개를 내려가는데 팔에 얼마나 힘을 줬던지 어깨가 다 뻐근하다. 그런데 이 고통과 괴로움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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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개를 내려온 뒤에는 다시 향일암으로 올라가는 절벽 길을 올라타야 한다. 그리고 절벽 길을 달려서 임포마을에 도착해서는 다시 향일암까지 급경사 길을 걸어서 오른다. 걸어서 오르는 게 자전거를 타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그 가파른 길에 갓김치를 파는 가게가 층층이 올라서 있다. 가게마다 시식용으로 내놓은 갓김치가 있어 맛을 보지 않고는 지나갈 수가 없다. 힘은 들고 배는 고프고, 밥 생각이 몹시 절실해진다.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이 두 갈래다. 하나는 계단길이고, 하나는 계단이 없는 비탈길이다. 나는 내 다리만 믿고 계단 길을 택한다. 하지만 곧 후회한다. 몇 개인지 숫자를 헤아리다 포기한 수백 개 계단을 걸어서 오르는 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나이 드신 분들은 중간에 멈춰서 숨을 고르기 일쑤다. 고행이 따로 없다.
향일암에 거의 다 올라섰지만 이번엔 길 아닌 '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바위 사이 틈새를 지나가야 하는데, 몸집이 큰 사람은 이 길을 통과하는 게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 같다. 속세를 벗어나는 일이 이렇게 힘들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향일암을 오르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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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에서 스님 한 분이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너무 조용해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곳에 스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향일암은 절집에 가면 항상 듣기 마련인 목탁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적요한 분위기가 감돈다. 관광객들도 자못 숙연한 모습이다. 아마도 그 사람들 역시 바늘귀를 통과하면서 이미 속세를 떠나온 까닭일 것이다.
향일암은 바다 끝 수평선을 바라다보며 마음을 어지럽히는 갖가지 상념을 떨쳐버리기 좋은 곳이다.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향일암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절경이다. 힘이 들더라도 꼭 한 번 찾아가봐야 할 곳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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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을 내려오고 나서는 다시 절벽 길을 오르내린다. 서쪽 해안 길의 경사도가 비교적 완만했던 것에 반해, 동쪽 해안 길은 경사가 다소 심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갓길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 길에서 비로소 돌산도가 말만 '돌산'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일부러 무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서쪽 해안을 달리면서 돌산이 돌산답지 않다고 했다가 뒤늦게 동쪽 해안에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아주 정신이 바짝 든다.
그 길 중간에 방죽포해수욕장이 나온다. 방죽포해수욕장을 떠나 무술목까지 또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무술목은 양쪽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폭이 매우 좁은 땅이다. 그런데 그 좁은 땅에도 있을 건 다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농사를 짓고 있고, 또 다른 쪽에는 해양수산과학관과 음식점 같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거기에다 해양수산과학관 뒤로는 몽돌 해변까지 있다. 크고 작은 몽돌들이 널찍한 해변을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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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목을 지나서는 곧바로 여수 시내 방향으로 직행한다. 마지막으로 돌산대교를 넘기 전에 바다 건너로 산비탈에 주택과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광경을 올려다본다. 내겐 매우 익숙한 정경이다. 서울을 가든 부산을 가든, 그곳이 북쪽이든 남쪽이든 사람 사는 풍경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
돌산대교를 넘어 산비탈 주택가 아래 여수수산시장이 있는 곳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시장이 가까워지면서 차량의 소음이 점점 더 요란해진다. 마침 주말이어서 차들이 시장을 향해 몰려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차들이 뒤엉켜 좀처럼 앞으로 나가질 못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려니 여기가 어딘지 잘 구분이 가질 않는다.
같은 바닷가 마을이라고 하더라도, 도시는 확실히 더 세속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속세가 어떤 곳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골목 사이사이 불빛이 번쩍인다. 유리알같이 차가운 불빛이다. 겉을 아무리 고상하고 세련되게 치장했다고 하더라도, 마음까지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오늘 달린 거리는 78km, 총 누적거리는 3092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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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에서만 20일,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43] 여수시에서 광양시까지
10월 31일(일)
일요일 아침, 여수시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에 하나인 오동도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여수시 자산공원에서 오동도까지 돌로 축대를 쌓은 제방이 연결되어 있다. 관광객들이 그 제방 위를 걷거나 순환 열차를 타고서 오동도까지 들어간다.
오동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식물원이다. 온실에 갇힌 인공 식물원이 아니라, 태양광 아래 마음껏 가지를 뻗은 나무들이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 자연 상태의 식물원이다. 앞서 지나온 완도항 앞의 주도나 마량항 앞의 까막섬과도 같다. 그때 섬 전체가 까맣게 숲을 형성하고 있는 걸 보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소망을 여기서 풀게 됐다. 자전거를 타고 오동도까지 건너갈 수 있다.
섬 위로 산책로가 미로처럼 복잡하게 퍼져 있다. 머리 위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어 하늘을 올려다보기 힘들 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마치 나뭇가지 아래로 검은 터널을 뚫어 놓은 것 같다. 산책로 여기저기에 갯바위로 내려가는 갈래길이 열려 있다.
갯바위 위에 올라서서 절벽 위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나무들을 올려다보는데, 그 모습이 또 장관이다. 다음 산책로에서는 또 어떤 풍경이 나타날지 궁금증을 억누르기 힘들다. 오동도는 섬을 뒤덮은 나무숲뿐만 아니라 섬 주위를 돌아가는 갯바위 또한 그냥 소홀히 지나치기 어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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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를 나와서 해안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독특한 모양의 터널이 나온다. 마래터널이다. 터널 앞 도로는 2차선인데, 터널 입구는 차 한 대가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비좁다. 그 터널 오른쪽으로 기찻길이 나 있고, 왼쪽 언덕 위로는 지금 한창 또 다른 터널을 뚫고 있다.
달리 돌아갈 길이 없다. 이 길로 어떻게 지나다니라는 건지 의아하다. 유심히 살펴보니, 터널 중간 중간 차들이 한쪽으로 비켜서서 대기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는 모양이다. 터널 안이 꽤 어둡다. 먼저 자전거 전조등과 후미등을 켠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막상 터널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까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길이 640m. 별다른 시설 없이, 터널이 그대로 바위를 뚫고 지나갔다.
이 터널은 80여 년 전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졌다. 그때 당시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것이다. 터널 표면이 울퉁불퉁한 게 바위를 뚫던 당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폭이 좁은 대신, 천장이 요즘 만들어지는 터널 못지않게 높다. 이 터널을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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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다 빠져나와서는 얼마 안 가 또 하나 의외의 현장이 나온다. 도로변 산 밑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검은 비석이 하나 서 있다. 그 앞에 '여순사건 62주기 추모 위령제' 문구를 적은 현수막이 걸려 있고, 옆에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이곳은 여순사건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
여순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이곳에서 '부역 혐의'를 받고 있던 '수백 명'의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됐다. 이 외진 곳까지 끌려와서는 별다른 소명 절차도 없이 죽어, 한꺼번에 매장이 되었다. 그 후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들의 억울함이 그대로 어두운 땅 속에 묻혀 있다.
학살이 자행된 뒤로는 한동안 사람들이 이 앞을 지나다니기를 꺼리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검은 위령비 앞으로 수시로 자동차와 기차가 지나다닌다. 더 이상 그 일의 진상을 땅속에 묻어둘 이유가 없다. 마래터널을 지나가는 길에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관통하는 현대사의 한 면이 잘 드러나 있다. 그놈의 현대사가 여전히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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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무거운 마음을 씻어주려는 듯 만성리해수욕장에 맑은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하얀 백사장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무척 따사롭다. 이 해수욕장은 조금 독특한 구석이 있다. 이곳 만성리해수욕장을 이색적인 해수욕장 중에 하나로 꼽을 만하다.
처음에는 그냥 모래사장이 있는 평범한 해수욕장 중에 하나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해수욕장 중간 지점을 지나면서 어느새 하얀 백사장이 검은 몽돌 해변으로 바뀌어 있다. 해변이 절반은 검은 모래이고 절반은 몽돌인 특이한 해수욕장이다. 해변이 어떻게 해서 이런 모양을 갖추게 된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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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안 길을 따라 두 개의 해수욕장이 더 있다. 가능하면 이들 해수욕장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가는 게 좋다. 왜냐하면 이들 해수욕장 뒤로는 '여수산업단지' 중심부를 지나가는 힘들고 괴로운 고행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갓길도 없는 도로 위로 대형차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닌다. 주변 경치가 좋은 것도 아니고 공기가 좋은 것도 아니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데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 가히 최악의 조건을 갖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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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산업단지를 지나가는 길에 묘도 선착장을 들른다. 묘도는 말만 섬이지, 앞으로 섬 구실을 하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섬이다. 묘도 위로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한창 건설 중이다. 그러니까 이곳의 묘도 선착장 역시 다리가 건설되는 사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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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도는 그나마 섬이라는 겉모습만큼은 그대로 유지하게 됐지만, 이 부근에 있는 다른 섬들은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이미 육지가 됐거나 앞으로 육지가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만큼 사연도 많다. 율촌공단이 들어서면서 이미 육지가 된 섬, 장도는 특이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태종), 이 섬에 한때 코끼리가 살았던 적이 있다.
일본이 조선에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했는데, 이놈이 먹성이 너무 좋은 데다 성질도 그렇게 고운 편이 아니어서 사육하기가 무척 곤란했던 모양이다. 조선 조정에서는 꽤 난처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보낸 귀한 손님을 박대했다는 말이 새나가면 외교적 결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코끼리가 사육사를 밟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결국 이 코끼리를 살인죄로 멀리 유배를 보내는데 그 유배지가 바로 장도였다. 짐작컨대 코끼리 유배 보내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코끼리를 배에 태울 수 없어 양 옆에 배를 대고 헤엄쳐 건너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코끼리가 유배를 온 뒤로 장도에서는 난리가 났다. 끼니마다 엄청난 양의 식사를 대령해야 하고, 까탈을 부리는 그 성질을 받아주느라 섬 주민들의 허리가 휠 수밖에 없었다. 이 코끼리, 결국 섬에서 굶어 죽는다.
단순히 웃고 넘기기에는 역사 속 배경에 숨어 있는 사실들이 상당히 무거운 면이 있다. 코끼리 하나 감당하기 어려웠던 현실이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 같이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장도가 육지화하면서 코끼리와 관련한 섬의 역사 역시, 섬과 함께 산업단지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과정을 밟고 있다.
이외에도 이 일대의 바다에는 비극의 섬, 삼간도가 있다. 산업단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남부럽지 않은 부자 섬으로 떵떵거리고 살았지만, 지금은 사방이 높은 제방으로 가로막혀 숨조차 쉬기 어려운 섬이 되었다. 이미 섬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삼간도는 앞으로 산업단지 부지가 확장되면, 바로 육지가 될 예정이다.
목포에서는 '삼학도'가 섬으로 복원이 되고 있는 마당에, 광양에서는 '삼간도'가 육지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이곳에서, 섬 주민들이 오랜 세월 삶의 터전으로 삼아 왔던 바다와 갯벌이 사라지는 과정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산업단지가 그 모든 걸 깨끗이 집어삼키는 광경을 직접 목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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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무렵 겨우 산업단지를 벗어나 광양시로 진입한다. 그런데 광양시 외곽에서 하루를 머문다는 게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시내로 직행한다. 아마도 자동차 전용도로를 올라탄 게 아닌가 싶다. 일반국도 같으면 중간에 갈림길이 여러 개 나왔을 터인데, 이건 아무리 가도 다른 길이 나오질 않는다.
어둠 속에서 언뜻언뜻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애초 내가 가야 할 길을 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차들이 전속력으로 질주해 지나가는 걸로 봐서는 그건 또 아니다 싶다. '초남대교' 푯말이 서 있는 다리를 지나고 나서도 한참을 더 달리고 나서야 겨우 광양항으로 빠져나온다. 그 사이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는다. 식은땀이다. 그 도로를 다 빠져나오고 나서도,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다. 지극히 혼란스러운 밤이다. 여행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험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89km, 총 누적거리는 3181km다. 여기까지가 전라남도다. 전라남도로 들어선 지 어언 20일, 이제 겨우 전라남도를 벗어나게 됐다. 전라남도는 엄청난 길이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해안선만 놓고 보면, 전라남도처럼 큰 땅도 없다.
내가 사먹은 고구마과자, 이렇게 만들다니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44] 광양시에서 남해군 남해도까지
11월 1일(월)
화창하고 포근한 날씨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바람도 잠잠한 편이다. 요 며칠 바람에 시달린 걸 생각하면 뜻밖이다. 기분 좋게 출발한다. 광양시에서는 해안을 따라 죽 자전거도로를 달린다. 하동군으로 들어서기 전까지, 자전거를 타면서 맛볼 수 있는 쾌적한 기분을 만끽한다.
하지만 하동군으로 들어서서는 지도를 보고도 찾아가기 힘든 길들이 계속 나타난다. 지방도로가 산과 산 사이 고개를 수시로 넘나드는데 이 길이 그 길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이전처럼 지방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올라서서야 비로소 제 길을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럴 땐 지도고 뭐고, 그냥 도로에 서 있는 이정표만 보고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하동군에서 남해대교를 넘어 남해군 남해도로 들어가는 길이 꽤 힘들고 복잡하다.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는 사람의 방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남해대교만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일사천리로 달려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남해대교로 들어서면서부터 잠잠하던 바람이 다시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남해도를 방문하는 첫인상이 꽤 험악해질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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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을 따라 19번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이락사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 유허비'가 있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숨을 거둔 뒤, 사람들이 이곳에 사당을 세우고 장군을 추모했다. 이락사 뒤쪽 동산을 걸어 들어가 첨망대에 올라서면 이순신 장군이 숨을 거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날의 격렬했던 전투는 낡은 안내판에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흔적만 남겨 놓고, 지금 그 바다는 이미 예전의 역사 같은 건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일부가 화학산업단지로 변했고 또 계속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첨망대에 올라 그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선조들이 유허비 세운 뜻을 알겠다. 이곳에 유허비마저 없다면, 역사학자가 아닌 이상 누가 이곳에 관심을 가질까?
나 같은 사람은 그저 노량해전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고 그 해전이 벌어졌던 바다가 어디에 있는 건지는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게 아닌가? 이번 여행에서 보고 듣는 게 참 많다. 책에서 보는 것만 공부가 아니다. 길 위에서도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실 너무 많아서 다 머리에 주워 담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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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도는 유독 산비탈에 일군 밭과 논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돌산도에서 본 것과 비슷한 밭과 논이다. 모두 좁은 땅 안에 산이 너무 많은 탓이다. 내 보기엔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인데, 그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지어야 하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그처럼 힘들고 괴로운 삶도 없었을 것이다. 피땀으로 일군 밭과 논임에 틀림이 없다.
산비탈을 내려가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문양이 예술이다. 일상적인 노동이 예술로 승화하는 데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남해도의 논과 밭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집단 창작물이다. 좀 더 세월이 지나고 나면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게 분명하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그러면서 체감 온도도 급격히 떨어진다. 해가 지기 전에 일찌감치 숙소를 찾아 들어가야 한다. 다행히 남해스포츠파크를 지나서 바닷가에 여러 채의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오늘은 그 바닷가에 내려선다. 숙소로 들어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에 금방 해가 진다. 다시 싸늘한 밤이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71km, 총 누적 거리는 3252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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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화)
바닷가라 해풍이 부는지 밤새 어디선가 문짝이 들썩이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다. 게다가 웃풍이 심한 탓인지 밤새 어깨가 시려서 혼난다. 이름은 '모텔'인데, 방 안 설비는 여관과 다를 게 없고, 방 안의 온도는 합판으로 벽면을 한 민박 수준도 따라가지 못한다. 방 안이라고는 하지만 한데서 자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아침이 돼서 몸을 일으키는데 온몸이 찌뿌듯하다.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햇살이 공기를 충분히 덥힐 때를 기다렸다가 바로 짐을 싸들고 다시 길 위로 올라선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남해도로 들어서면서 고난의 연속이다. 힘이 들더라도 페달을 좀 더 세게 밟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오늘 반짝 추위가 온다더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는 내내 추위에 시달린다. 언덕을 오를 땐 어느 정도 견딜 만하다가, 언덕을 내려갈 때는 그 사이 흐른 땀이 급속히 식으면서 온몸에 한기가 스며든다. 그렇다고 속도를 늦춰 천천히 가고 싶은 기분도 아니다.
남해도 역시 돌산도 못지않게 산이 많다. 해안이 거의 대부분 산비탈이다. 그 언덕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부는 가운데 사촌해수욕장으로 들어선다. 꽤 넓고 쾌적한 조건을 갖춘 해수욕장이다. 하지만 날이 춥고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해수욕장에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휑한 해변을 벗어나 바닷가 한쪽에서 고구마를 썰어 말리고 있는 할머니들을 만난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까지 오면서 길가에 죽 뿌려 놓은 고구마 절편들이 뭐에 쓰려고 그런 건지 궁금했던 차, 잘됐다. 할머니 한 분이 기계를 손으로 돌려가며 고구마를 썰고 다른 두 분은 썰어놓은 고구마들을 일일이 펴서 바닥에 늘어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할머니들 곁에서 고구마를 대신 썰어드리면서 이것저것 묻는다. 처음에는 '놉을 산다'는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엉뚱한 얘기를 했다. 들어보니, 이렇게 고구마를 썰어 말리면 조합에서 거둬들여 과자 공장이나 술 공장으로 보내는 데 '놉'은 이런 일을 하는 일꾼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은 이 추위에 웬 자전거냐며 어디서 왔냐고 되묻는다. 서울에서 왔다니까 다들 놀란다.
며칠이나 걸렸냐고 묻기에 이번에는 솔직히 말씀드리지 않았다. 걱정을 살까 우려해서다. 어촌에서 물고기도 아닌 고구마를 널어 말리는 풍경이 이채롭다. 추위에 거센 바람을 맞아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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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해수욕장을 나오면 다시 언덕이다. 언덕 위에서 사촌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할머니 세 분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 멀찍이 내려다보인다. 그 위로 내 어머니가 일하던 모습이 겹친다. 오늘 저녁엔 꼭 문자메시지 한 통이라도 넣어 드려야겠다. 우리 어머니, 요즘 집 나간 아들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사촌해수욕장을 떠나 또 갈 길을 서두른다. 언덕이고 뭐고 있는 힘껏 페달을 밟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가천마을 입구다. 마을 입구가 절벽 위에 올라서 있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서 모진 맘 먹고 멈춰 선다. 아무리 바쁘고 경황이 없다고 해도, 가천 다랭이마을까지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다랭이마을이야말로 남해도 사람들이 산비탈에 만들어놓은 작품들 중에 최대·최고의 걸작 아닌가?
걸어 다니기도 힘든 산비탈에 집을 짓고, 산 위로 층층이 논과 밭을 쌓아올린 사람들의 힘과 의지가 놀랍다. 다랭이마을 중간 지점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마을 곳곳을 천천히 돌아다닌다. 담 너머로 집안이 들여다보이는 것은 예사고, 마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이 마을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지금은 마을 전체가 관광지로 변했다. 마을에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이 빼곡하다. 그렇다 보니, 마을에 마을 사람들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다랭이마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보는 사람마다 감탄사를 터트린다.
다랭이마을이 계단식 논으로만 유명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어제 저녁 이곳에서 하루를 묵었어야 했다. 친근한 이미지를 주는 민박집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시골 고향집 정경이 그대로 살아 있다. 집집마다 분위기도 다 다르다. 한 마을에 이렇게 다른 특색을 갖춘 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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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을 떠나 이동면으로 향해 가는 길에 월포두곡해수욕장이 나오는데 이 해수욕장이 또 이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여준다. 해변의 절반이 모래사장이고, 절반은 몽돌밭인데, 그게 여수에서 보았던 만성리해수욕장과는 달리 바다 쪽 절반이 모래사장이고, 육지 쪽 절반이 몽돌밭이다. 자연의 조화가 참 다채롭다. 해변이 상당히 긴 편이다. 월포와 두곡, 두 마을에 걸쳐 있어 월포두곡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월포두곡해수욕장을 지나 용소리의 해안에서 우연히 '남해 바래지기' 한 분을 만났다. 남해도로 들어서 '남해 바래길'이라는 글자가 적힌 노란색 깃발이 휘날리는 걸 더러 봤는데, 그 길을 찾고 잇고 하면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든 사람이 바로 본인이라고 소개를 한다. 그곳에서 한동안 그가 길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와 포부를 듣는다.
남해에, 가장 자연에 가까운 길을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희망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남해 바래길은 바닷길과 산길을 넘나들며 갯내와 더덕향이 물씬 풍기는 길, 자연이 살아 숨쉬며 사람의 머리를 맑게 해주는 길이다. 남해에 가서, 노란 깃발이 보이거든 잠시 차를 세워두고 바닷길과 산길을 걸어볼 일이다. 10여 년 넘게 남해 곳곳을 걷고 있다는 사람이 자신 있게 권하는 길이니 후회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앞으로 6년여 동안에 남해 바래길을 완성해 놓을 계획이라는 그와 헤어져, 나는 다시 자전거로 열심히 산길을 오른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이럴 땐 나는 왜 그처럼 걷는 취미에 빠지지 못한 건지 살짝 후회가 된다. 오늘은 도대체 몇 개나 되는 산비탈을 오르내린 건지 모르겠다. 오후 5시 무렵, 남해도 남단에 위치한 상주해수욕장에 발을 내린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45km, 총 누적거리는 3297km다. 하루 종일 달리고 달린 거리가 평소 달리는 거리의 절반 정도다. 남해도도 참 만만치 않은 지역이다. 남해는 크게 남해도와 창선도, 두 개의 섬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창선도 북쪽 끝에 삼천포대교가 있어 섬 전체를 일주하지 않고 바로 사천시로 빠질 생각인데, 그 거리만도 족히 3일이 걸린다. 만약에 삼천포대교가 없었다면, 남해에서만 5일 이상을 머물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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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구냐? 사람 죽는 거 본 적 있어?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45] 남해도 상주은빛모래해변에서 사천시 삼천포항까지
11월 3일(수)
반짝 추위가 온다더니, 밖이 꽤 추운 모양이다. 방 안에 앉아 있는데도 어깨가 시리다. 날은 춥고 갈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간밤에 기사를 작성하다 말고 한쪽에 밀쳐놓은 노트북이며, 어제 저녁 '먹고' '닦고' '갈아입고' 하느라 여기저기 방바닥에 어지럽게 벌여 놓은 짐들을 내려다보는 마음이 몹시 심란하다. 결국 이곳 상주은빛모래해변 근처 민박집에서 발이 묶인다. 아무래도 하루 쉬면서 그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해야 그나마 마음이 좀 가벼울 것 같다.
11월 4일(목)
날이 무척 따뜻하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란다. 며칠을 계속 추위에 시달리다 보니, 가을 날씨란 게 원래 이렇게까지 따뜻했던 건지는 미처 몰랐다. 다행이다. 기왕 예년 기온을 회복한 김에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날이 점점 더 추워지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답할 말도 없다. 날이 갈수록 답변이 군색해진다. 날이 추워도 끝까지 간다는데, 그 말이 허풍처럼 들리는지 좀처럼 곧이들으려 하지 않는다. 날이 추워지니까,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걱정이다. 그분들 걱정을 덜어드리려면 날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해져야 한다.
오늘은 남해도를 벗어나 창선도를 한 바퀴 돌아서는, 삼천포대교를 넘어 삼천포항까지 달려갈 예정이다. 남해도는 돌산도를 여러 개 가져다 놓은 것처럼 힘든 섬이다. 날씨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내 몸으로 견뎌내기 힘들 정도로 언덕이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언덕을 오르면서 숫자를 세는 버릇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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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은빛모래해변을 떠나자마자 바로 언덕이다. 남해도로 들어와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언덕을 오르면서 계속 숫자를 세는 것이다. 천천히 '일'에서 '백'까지 숫자를 센다. 단지 숫자를 세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숫자를 머리로 그린다. 그렇게 하면 언덕을 오르는 고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
얼마 안 가 미조항이 나온다. 가파른 언덕 아래, 미조항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선다. 미조항 위판장이 갈치와 멸치로 가득 차 있다. 갓 잡아 올린 갈치와 멸치가 위판장 바닥을 하얗게 뒤덮고 있다. 죽어서도 몸통은 여전히 눈부신 은빛이다. 그 빛이 단순히 음식 취급을 받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빛이 좋아서 일부러 이 먼 곳, 남해도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항구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빛이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것이다. 갈치와 멸치는 그 빛이 살아 있을 때, 가장 값이 나간다. 그래서 위판장 한가운데에서는 방금 경매에서 낙찰이 된 갈치와 멸치를 밖으로 실어 나르기 바쁘고, 한쪽 구석에선 오늘 하루 횟감으로 사용할 멸치들을 손질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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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항을 떠난 뒤로는 다시 '언덕'에 집중한다. 오늘 이 싸움에서 지면, 다시 하루를 더 남해에서 머물러야 한다. 언덕을 오르는 속도가 전체 속도를 좌우한다. 그래서 오늘은 언덕에서도 쉬어갈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온몸이 땀으로 젖어든다. 아침 추위 때문에 겹겹이 껴입은 옷이 한낮이 되면서 물먹은 솜옷처럼 무거워진다. 축축한 느낌이 젖은 옷을 입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언덕에서조차 쉼 없이 페달을 밟은 덕에 예상했던 것보다 이른 시간에 창선교를 넘는다. 이 다리를 건너면 창선도다. 창선도는 이상하리만치 남해도를 빼닮았다. 생긴 모양이 남해도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것과 같다. 크기는 작지만, 힘들긴 마찬가지다.
창선도로 들어서기 전에, 창선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죽방렴'이 장관이다. 삼각형 모양으로 날개를 펼치고 있는 대형의 고기 덫이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 지족해협 여기저기에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다. 지족해협을 지나가야 하는 물고기들에게는 이보다 더 위험천만한 길이 없다. 덫을 얼마나 많이 놓았는지 물고기들이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확률이 상당히 희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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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도에서 삼천포가 지척이다. 바다 건너 삼천포 화력발전소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하늘 위로 높게 솟은 세쌍둥이 굴뚝이 좀처럼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와 간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다리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간다. 언덕은 왜 또 그렇게 가파른지 걸어서 오르는데도 힘이 들어 쓰러질 지경이다. '공룡발자국 바위'를 찾아가는 길이 특히 숨이 막히게 가파르다.
공룡발자국 바위에는 표면에 코끼리가 밟고 지나간 것 같은 흔적이 여러 개 남아 있다. 공룡알화석에 공룡발자국까지 도대체 한반도에 얼마나 많은 공룡이 살았던 것일까? 안남마을의 엇석도 그렇고, 한반도 바닷가에는 수백만 년 수억 년에 걸쳐 형성이 된 보물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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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발자국 바위를 떠나서는 곧바로 삼천포로 향한다. 창선도에서 삼천포로 넘어가는 데 무려 4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창선도와 삼천포 사이에 있는 3개의 섬을 징검다리 삼아 그 위에 4개의 다리를 걸쳐 놓았다.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 다리가 창선대교다.
창선대교는 창선도와 늑도 사이에 걸쳐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늑도대교, 초양대교, 삼천포대교 순이다. 늑도대교는 늑도와 초양도 사이에, 초양대교는 초양도와 모개섬 사이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천포대교는 모개섬과 삼천포 사이를 잇고 있다.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섬 중에 늑도가 가장 크다. 늑도도 엄연히 섬인데 해안선 여행을 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창선대교를 건너 오른쪽 곁길로 돌아 내려가면 포구가 나온다. 그 포구 위로 횟집 등의 음식점과 숙박업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느 섬과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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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와 같은 놈이냐'
포구를 돌아보고 다시 올라오는 길에 도로 밑을 관통하는 터널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 '차량 출입 금지', '위험' 표지가 붙어 있다. 터널 안으로 작은 오솔길이 보인다. 어디로 가는 길인지, 그 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위험 표지를 무시하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오솔길 옆으로 주택 몇 채가 보이는데 대부분 폐가다. 상당히 으스스한 분위기다. 그 길 끝에 오래전에 문을 닫은 게 분명해 보이는 횟집과 폐교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곳은 일종의 버려진 땅이다. 섬에 육지로 이어지는 다리가 놓이면서, 그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이편과 저편이 완전히 운명을 달리했다. 양쪽 다 살릴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한쪽이 거의 아사 상태다.
버려진 횟집 옆에 텐트 하나가 쳐져 있다. 한 남자가 텐트 앞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한다. 첫인상에서 만만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남자다. 호기심에, 이 추운 날 사람이 지나다니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그는 이곳에서 벌써 4개월째 '휴양 중'이다. 전국 방방곡곡 '휴양'을 가보지 않은 곳이 드물다. 그가 묻는다, '너는 뭐하는 중이냐?'고.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이번엔 '얼마나 됐냐?'고 묻는다. '집을 나선 지 한 50일 되는 것 같다'고 했더니, 라면을 먹다 말고 아예 나를 향해 돌아앉는다.
내가 자신과 같은 '떠돌이'임을 간파한 거다. 그러면서 '무전여행을 하는 거냐?'고 묻는데 그 말이 마치 너도 나와 같은 놈이냐고 묻는 것 같다. 그 말엔 혹시라도 그가 실망할까봐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가 묻지도 않은 말을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그 말이 너무 엄청나서 그대로 옮겨 담을 수 없을 정도다.
그는 베트남 종전 두 달 전에 전선에 투입됐다. 내가 알기로 베트남전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시기다. 동료 군인들이 끔찍하게 죽어나가고, 민간인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하는데 베트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어느 정도로 잔인했냐면, 신대륙 발견 이후 양키가 인디언을 학살한 것과 똑같다.
제대 후엔 세계 여행을 한 모양이다. 외국에 나가 몸짓 발짓으로 대화를 하던 장면을 열심히 설명한다. 젊어서부터 방랑벽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30여 분이 지나 내가 그만 떠날 기미를 보이자, 그가 갑자기 텐트를 뒤지기 시작한다. 커피 한잔하고 가라는 것이다. 그만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한참 텐트를 뒤지더니, 결국 커피를 찾지 못한다. 그 다음엔 콜라라도 한잔하고 가란다. 결국 김이 다 빠진 콜라 한 잔을 얻어 마시고서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때 나를 보내던 그의 쓸쓸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날이 점점 더 추워지는데 언제 돌아갈 거냐'고 했더니 '이까짓 거 바로 걷어서 집으로 보내 버리면 된다'고 했다. 말이 호기롭다. 하지만 그의 말 속에 있는 '집'이 그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인지는 불분명하다. 그가 앓고 있다는 마음의 병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혹여 그 병이 베트남전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말하는 걸로 봐서 그는 결벽증이 느껴질 정도로 도덕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쓰레기 하나 함부로 버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쓰레기 버린 사람을 불러서 반드시 스스로 치우게 만든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 땅도 아니면서 텐트 주변과 바닷가를 청소한다. 그 사이 싸리 빗자루만 대여섯 개가 닳아 없어졌다. 그의 도덕성이 베트남전에서 자행된 부도덕성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삼천포대교까지 2개의 다리를 마저 걸어서 건넌다. 다리가 몹시 무겁다. 하지만 무거운 게 다리만은 아니다. 폐허나 다름이 없는 바닷가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그를 혼자 남겨 두고 가는 마음이 몹시 무겁다. 삼천포대교를 건너자 바로 해가 떨어진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77km, 총 누적거리는 3374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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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가방에 돈 쓸어 담았다는 곳?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46] 사천시 삼천포항에서 통영시까지
11월 5일(금)
여행 50일째를 넘어서면서 점점 더 마음이 급해진다. 여기저기서 언제 여행을 끝낼 건지를 묻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참 이거 뭐라고 답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답하기 곤란한 상황이다. 예측하기가 힘들다. 당장 오늘의 여행 목적지인 통영을 돌아 나오는 데만 해도 이틀이 될지 사흘이 될지 알 수 없고, 제주도 다음으로 크다는 거제도를 돌아 나오는 데는 또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해안선으로만 따지자면 거제도가 제주도에 비할 바 없이 길다.
전화를 하는 사람들마다 왜 그렇게 여행이 길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투다. 설명을 해도 잘 못 알아듣는다. 우리나라 해안선이 길고 복잡하다는 건 모두 인정을 하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긴지는 감이 잘 잡히지 않는 것 같다. 직접 몸으로 겪어보지 않는 이상 잘 모르는 일이다.
하루 종일 달리고 달려서, 아침 일찍 출발한 지점을 바다 너머로 빤히 건너다보아야 하는 사람의 심정은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때로는 그 바다 너머에서 마을 방송을 하는 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정말 다리에 힘이 쫙 빠져 버린다. 그런 날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요즘 가끔 드는 생각이 내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이 여행을 떠나려 했을까 하는 거다. 만약에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여행을 떠날 결심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설사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지금처럼 여행 코스 전체를 해안선을 따라가는 무지막지한 결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갑구나 후배야, 든든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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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맑은데 먼 바다에 안개가 자욱하다. 며칠째 따뜻한 날이 계속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늘은 진주에 사는 후배가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오전 9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5분 전부터 전화가 온다. 벌써 도착한 모양이다. 후배는 자전거로 진주에서 삼천포항까지 약 30㎞를 달려왔다. 아침부터 꽤 먼 거리를 달려왔는데도 지친 기색이 없다. 마음이 든든해진다. 오늘 하루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오늘 먼저 들른 곳은 남일대해수욕장이다. 예전에도 삼천포항에서 남일해해수욕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는 거리가 사뭇 가까운 느낌이다. 동행이 있다는 게 이런 차이가 있다. 같은 거리를 가도 좀 더 가깝게 느껴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도 힘이 조금 덜 드는 것 같은 기분이다. 어제보다는 확실히 속도가 빨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남일대해수욕장은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그렇지만 백사장에서 바라다보는 경관이 무척 아름답고, 물이 깨끗해 한여름에는 피서객들로 넘쳐난다. 게다가 모래알까지 고와 다른 지역의 크고 유명한 해수욕장 부럽지 않다. 모래사장이 길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폭이 넓은 편이다. 남일대해수욕장은 사천시의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남일대해수욕장을 떠나서는 상족암군립공원을 찾아간다. 산을 오르는 길고 높은 도로를 타고 올라가 고성공룡박물관 앞을 지나서는 고개 아래 제전마을로 들어서면, 마을 서쪽에 상족암군립공원으로 들어서는 산책로가 나온다. 상족암군립공원은 해안에 우뚝 선 기묘한 바위 절벽으로 유명하다. 마치 기왓장을 겹겹이 포개 놓은 것 같은 바위가 머리 위로 높이 솟아 있다.
해안으로 돌출한 바위 일부가 코끼리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상족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위 절벽 안쪽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그 안을 통과해서 반대편 해변으로 건너갈 수도 있다. 오랜 해식작용으로 인해 생긴 구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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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족암군립공원은 해변의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 공룡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위 위로 공룡이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걸어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자국 끝 부분에 발톱 자국이 나 있는 것을 관찰할 수도 있다.
수천만 년 전 공룡이 걸어간 흔적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묘하다. 이 발자국에, 흙덩이가 돌로 굳어지는 동안의 오랜 세월이 압축돼 있다. 감히 상상하기 힘든 세월이다. 공룡 발자국은 겉으로 드러난 바위 표면뿐만 아니라, 켜켜이 쌓인 바윗돌 안에도 수없이 많이 남아 있다. 수천만 년 전 한반도에서 살다 간 공룡의 역사가 종이 위에 찍힌 활자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돈을 가방에 쓸어담았을 그 시절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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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앞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36년 동안 이 일을 했다는 할아버지 이마 위를 지나가는 주름살이 공원 절벽 켜켜이 쌓인 기왓장 바위를 닮았다. 그 주름살에는 또 어떤 역사가 숨어 있을까?
36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공원 뒤로 도로가 지나가고 박물관이 들어섰다. 그 전에는 이곳에까지 오려면 산을 넘어오는 오솔길밖에 없어, 관광객들이 대부분 유람선을 타고 왔다고 한다.
할아버지 말이, 그때는 관광객들이 지금보다도 더 많아 그들을 상대로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당시가 할아버지의 황금기였음이 틀림없다. 카메라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모두 옛날 일이 되고 말았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할아버지 얼굴에 황금과도 같은 밝은 기운이 감도는 것을 볼 수 있다.
할아버지는 이제 기념사진 찍어주는 일로 겨우 담뱃값 정도를 벌고 있다. 그런데도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있다. 이 일이 이제 할아버지의 유일한 '소일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절벽 아래 자신이 찍어온 견본 사진들을 죽 늘어놓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꽤 차분하다. 앞으로도 십여 년 이상은 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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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족암군립공원을 나와서 계속 산길을 넘어간다. 이 지역은 내륙이나 해안을 가리지 않고, 언덕 길 아닌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시간이 흐르면서 뒤따라오는 후배가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침 일찍 진주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온 데다, 계속 산길을 넘어가고 있는데 그걸 견딜 장사가 얼마 없다. 공연히 날 따라온다고 해서 고생이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는 산길이나 해안 절벽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데, 실제는 돌산도나 남해도 못지않게 언덕이 많다. 나야 벌써 수십일 째 이런 길을 가고 있지만, 후배는 이런 길이 꽤 오래간만일 것이다. 선배한테 대놓고 투정은 못하겠고, 뒤에서 헉헉대며 따라오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음에 같이 어디 자전거여행을 가자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후배는 집으로, 집 생각이 간절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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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면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두 사람이 같이 여행을 하니까 밥을 먹는 일도 훨씬 수월하다. 혼자냐고 묻는 사람도 없고, 뭘 먹어야 할지 묻지 않아도 된다. 메뉴를 편하게 골라서 먹는다. 매운탕을 주문하는데 두 말 없이 오케이다. 매운탕 맛이 꿀맛이다.
꿀맛도 잠시, 점심을 먹고 나서는 다시 정신없이 언덕을 오른다. 먹은 게 다시 올라올까봐 걱정이 될 정도로 힘들다. 역시 평탄한 구간을 찾아볼 수가 없는 길이 계속 이어진다. 해안 쪽 도로 역시 평탄한 길보다는 해안 절벽을 오르내리는 경사 길이 더 많다. 편안하게 쉬어갈 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언덕이 계속 나타나면서 후배가 따라오는 속도도 점점 더 늦춰지고 있다.
5시경 고성읍을 지나면서, 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후배에게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괜찮단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얼굴은 꽤 피곤해 보인다. 어쨌든 기왕 달리는 거, 해가 떨어지기 직전까지는 달려볼 참이다. 다행히 통영시 외곽에 도달했을 무렵 해가 똑 떨어진다. 그때쯤 후배의 체력도 거의 바닥이 나고 만다. 다리에 쥐가 나, 더 이상 달리려고 해야 달릴 수가 없다. 오늘 하루 진주시에서 통영시까지 100㎞를 넘게 달렸는데 좀 피곤할까?
저녁을 먹고 나서 바로 후배와 헤어진다. 통영에서 진주까지 고속버스로 1시간 가량 걸린단다. 진주를 떠나온 시간에 비하면, 되돌아가는 시간은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자전거여행은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한 고통과 난관이 뒤따른다. 그런 여행 아닌 '고행'을 끝마치고는 환한 얼굴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후배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조금 착잡하다.
나는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집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해지는 밤이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78㎞, 총 누적거리는 3452㎞다.
낯선 사람과의 저녁식사, 이것도 여행의 묘미?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47] 통영시내에서 미륵도 돌아 다시 통영시내로
11월 6일(토)
결국 슬럼프에 빠졌다. 꼼짝도 하기 싫다. 지난 밤 글 한 줄 적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사실 지난 밤 내가 무엇을 하다 잠이 들었는지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제 저녁 진주에서 응원차 내려온 후배와 맥주 2병을 나눠 마셨을 뿐인데, 마치 폭탄주라도 마신 것처럼 취해서 잠에 곯아떨어졌다. 점점 더 하루하루 피곤을 견디기 힘든 상태가 되고 있다.
아침 6시, 간신히 눈만 뜨고 누워서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할 수만 있다면, 오늘 안으로 통영시를 돌아서 거제도로 넘어가고 싶다. 지금 일어나서 움직이면 충분히 가능한 시간이다. 하지만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질 않는다.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1시간만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나기로 하고 다시 눈을 감는다.
그러다 다시 눈을 뜬 시간이 8시다. 아주 잠깐 눈을 감았던 것 같은데 그새 2시간이나 지났다. 아찔하다. 거제로도 넘어 가려면, 이미 길 위에 서 있어야 할 시간이다. 그렇지만 몸은 6시에 눈을 떴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 의욕이 없다.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 싫다. 보통 때 이 시간이면 기사를 송고하고 나서 서둘러 짐을 싸야겠다는 생각에 쫓기기 마련인데 오늘 아침은 정말이지 아무 짓도 하고 싶지 않다. 숙소 바깥에 대충 묶어둔 자전거를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마저 사라지고 없다.
이 슬럼프가 오늘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여행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기 시작한 건 여행 30일째 되던 날, 해남 땅끝마을에 다다랐을 때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자전거여행이 이렇게까지 길고 고될 줄 몰랐다. 수십 일째 제자리를 돌고 있는 듯한 막막함이 앞을 가로막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로 길이 아닌 길을 가면서, 지금 내가 왜 이런 험한 길을 가야 하는지 회의에 빠졌던 적도 여러 번이다.
그날, 이 여행의 제목을 '우리나라 해안선을 따라가는 1만리 자전거여행'에서 '땅끝마을까지 서쪽 해안을 따라가는 자전거여행'으로 바꿔 달았어야 했다. 그때 그곳에서 여행을 끝냈다면, 적어도 오늘 아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9시가 되어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다. 씻는 둥 마는 둥 대충 짐을 챙겨 숙소를 빠져나온다. 이때쯤 내 머리 속에는 어렵게 시작한 일, 어떻게든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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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에 빠졌다, 그런데 벗어날 방법이 없다
어제 후배와 함께 통영으로 들어서면서 국도를 타는 바람에 통영 시내의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죽림지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계속해서 해안선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면,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다행히 폭이 좁은 땅 위를 가로지르는 길이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사이 잠시 국도를 이용하는데, 그 도로 위를 지나가는 차량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칠다. 그러니 슬럼프에 빠졌다고 해서 긴장까지 풀 수는 없다. 덤프트럭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머리털이 곤두선다. 겨드랑이로 식은땀이 흐른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닌데, 오늘은 이 모든 게 감당하기 힘든 위협으로 다가온다.
평인일주로에서 비로소 차량이 드문 해안 길로 접어든다. 바다에는 여전히 옅은 안개가 덮여 있다. 어제와 다르지 않다. 먼 바다에 첩첩이 겹친 섬과 산들이 안개 속에서 뿌연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며칠째 이런 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 아침 고개를 쳐들고 올려다보는 통영의 하늘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지나치게 밝은 빛 때문에 감히 눈을 뜨고 바라다보기 힘들 정도다. 마음이 어둡고 무거운 탓인지 그 빛이 더욱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해안을 따라 달리면서 바다만큼이나 많은 하늘을 봤다. 얼핏 보면 그 바다가 그 바다 같고 하늘 또한 다 같은 하늘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통영의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다. 아마도 오늘의 날씨가 통영의 하늘을 더욱 더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겠지만, 주변 풍경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언덕을 오르면서도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바다보다 하늘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살면서 오늘처럼 자주 하늘을 올려다 본 날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날 하루,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지금 이 나이에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한탄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는데 이곳 남해는 여전히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날씨는 포근하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따뜻한 남쪽 나라'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하늘이 맑고 푸른 데다, 날씨마저 따뜻해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 아침 내 마음이 견디기 힘들게 우울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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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중인 절벽 해안길,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경
평인일주로는 해안을 따라 절벽길이 꽤 길게 이어진다. 그런데 아뿔싸! 그 절벽 위 도로가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절벽은 그렇다 치고 길바닥이라도 좀 고르고 탄탄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새로 아스팔트를 깔기 위해, 산 중턱의 땅을 온통 시커멓게 파헤쳐 놓았다. 땅바닥이 온통 돌투성이다. 언덕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그 언덕 위를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멩이들을 밟고 지나간다.
그 길이 장장 수 킬로미터다. 이제 저 언덕 하나만 더 올라서면 이제 이 거친 길도 곧 끝나겠지 싶은데, 그 언덕 너머도 또 똑같이 공사 중이다. 엉망진창 파헤쳐진 길이다. 아무래도 오늘 누구 한 사람, 이 길바닥 위에 지쳐 쓰러질 모양이다. 그렇게 흙과 돌멩이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길을 1시간여 가까이 달린다.
이 길을 가는 동안, 내내 어서 빨리 이 길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매달린다. 하지만 이 길은 도로공사만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로 기억할 만하다. 그냥 휙 스치듯 지나갈 길이 아니다.
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어디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돌투성이 언덕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올라가면서도, 수시로 자전거에서 내려 카메라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다. 참 얄궂은 상황이다. 이 여행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도 사진 찍는 일을 계속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의 바다는 어딘가 모르게 안온한 느낌이다. 바다가 섬을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니라, 섬과 육지가 바다를 둘러싸고 있다.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 위를 하얗게 양식장이 뒤덮고 있다. 이곳에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양식장 부표들마저 풍경을 꾸미는 장식의 일부처럼 보인다.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자전거도로, 하지만 너무 비싼 대가를 치렀다
평인일주로를 돌아 나오면 바로 '통영해저터널'이다. 이 터널은 1930년대 초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들을 강제 동원해 건설했다. 이름 앞에 '동양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무려 8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튼튼하게 유지가 되고 있다. 터널을 만들 당시만 해도, 이곳의 수심은 물이 빠지면 개펄이 드러날 정도로 얕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수심이 얕은 곳에 굳이 해저터널을 뚫은 이유는 무얼까?
이 해저터널을 만들게 된 데는 임진왜란에서 대패한 일본인들의 자존심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수많은 왜군이 죽음을 당했다. 그 후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인들이 이곳에 와서 자신들의 조상이 누워 있는 곳을 조선 사람들이 두 발로 걸어서 건너다니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식민지시대엔 이곳에 작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결국 그 몹쓸(?) 광경을 보다 못한 일본인들이 이곳에 해저터널을 만들게 되었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 위로 다시 충무교와 통영대교, 2개의 다리를 건설했다.
해저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미륵도다. 미륵도 역시 만만히 볼 섬이 아니다. 그야말로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섬 중에 하나다. 면적만 여의도의 5배가 넘는다. 남해안의 섬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미륵도 역시 태반이 산악지대고, 해안을 따라 도는 도로가 대부분 절벽 위를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렇지만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미륵도를 일주하는 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는 해안 길이 나타난다. 일명 삼칭이해안로다.
이 길은 그동안 '언덕'과 '자동차'에 지친 자전거여행자들이 크게 반길만하다. 해안에 산책로와 함께 자전거도로가 놓여 있다. 자동차는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공원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무엇보다 이 길 위에서 바라다보는 바다가 보기 드물게 아름답다. 해안가 바위 절벽이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자전거전용도로로 이렇게 아름다운 길은 이전에 보지 못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생각만 하고 있기엔 이 길 위에서 마주치는 '현실'이 다소 처참하다. 이곳에 자전거도로를 내기 위해 너무 큰 대가를 치렀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해안에 시멘트를 부어 다지느라 본래의 자연 경관을 크게 훼손했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지는 분명하다. 자전거가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자연을 보전하는 것에 앞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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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매개로 낯선 사람과의 저녁 식사
삼칭이해안로를 벗어나 다시 통영 시내로 돌아오기까지는 비교적 편안한 길이다. 산지가 아닌 평지를 가는 까닭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이전에 한가한 어촌마을을 벗어나 번화한 여수 시내로 들어설 때와 흡사한 상황을 맞는다. 해저터널에서부터, 통행을 가로막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마주친다. 6시가 가까워오는 시간, 도로는 때맞춰 쏟아져 나온 차들로 심한 정체를 빚고 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오늘 저녁엔 어떻게 해서든 거제도로 넘어갔어야 했다.
통영 시내로 다시 돌아온 오늘 저녁 역시, 여수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건어물시장 근처의 해안공원을 배회한다. 이곳은 통영 시내에서 가장 복잡한 곳 중에 하나다. 그곳에서 오늘 저녁은 또 어디에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건너편 도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 자전거…'라고 하는 소리가 분명하다. 뒤를 돌아다보니, 도로변에 주차해 있는 차 안에서 50대로 보이는 한 여자 분이 손짓으로 나를 부르고 있다. 또 어느 순진한 자동차 운전자가 자전거여행자인 내게 길을 물으려 하나 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건 아니다.
그이는 이제 막 자전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이다. '자전거와 관련해서 이것저것 알고 싶은 게 있는데 좀 물어봐도 관찮겠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최근에 궁금한 게 꽤 많았던 모양이다. 질문이 '자전거를 타면 뭐에 좋은가'에서부터 시작해서, '내가 자전거를 탄 이후로 실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묻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간다.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답변이 미흡했던지 나중에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식사를 같이 할 것을 제안한다. 뜻밖의 제안이지만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해서 통영 시내의 한 한정식 집에서 내 평생 처음으로 자전거 강사 노릇을 한다. 그것도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사주는 저녁을 얻어먹으며, 최소한 내가 먹은 밥값은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평소의 나답지 않게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자전거가 우리 몸과 마음에 얼마나 유익한 물건인지, 그것을 내가 어떻게 내 몸으로 배우고 익힐 수 있었는지, 앞으로 자전거를 타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고 또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지를 한 시간 넘게 떠벌여댄 것 같다. 나중에는 내 말에 내 배가 불러서 한껏 만족해 있는 나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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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글을 쓰고 있는 나, 얼마나 어려 보였으면...
말을 하면서도 내내 얼떨떨한 기분이다. 오늘 아침 나는 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엔 세상 사람들을 모두 자전거 라이더로 만들어 버릴 작정인양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대고 있다. 이것이 정상은 아니다 싶은 게 두 가지 모습 다 내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하다. 지나치게 오랜 시간, '나 홀로' '지나치게 격한 운동을 동반하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게 문제일 수 있다. 여행 기간이 점점 더 길어지면서, 내게 무언가 견디기 힘든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조금 더 극한의 상황으로 다가가 봐야 알 것 같다.
이날 내가 스포츠 고글을 쓰고 있을 때 훨씬 더 젊어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헬멧을 쓰고 있는 데다 시커먼 안경으로 눈을 가리고 있어 나이를 짐작하기가 어렵게 어려 보였던 모양이다. 길에서 내게 반말 비슷하게 말을 걸어오는 내 또래의 중년 남자들이 꽤 여러 명이었다.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날 저녁식사를 함께 한 여자 분은 고글을 벗은 나를 보고 상당히 놀라워했다. 갑자기 생각 외로 '늙은 남자'와 마주앉게 돼 당황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야기 중에 그분 말씀이, '젊은 사람인 줄 알고 대학생 딸을 소개시켜 주려고 했다'고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한참 웃다가 내 나이를 의식하고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에는 그 분에게서 단감 여덟 개와 한 되 가량의 찐쌀을 선물로 받았다. 분에 넘치는 선물이다. 내 조언이 그런 선물을 받을 만큼의 가치가 있었는지는 나중에 다시 확인해볼 참이다. 단감은 이후 여행 중에 틈나는 대로 깎아 먹었고, 찐쌀은 며칠 후 라면에 넣어 함께 끓여 먹었는데 그 맛이 조금 고약했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69㎞, 총 누적거리는 352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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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통행 자제? '뚜껑' 열릴 뻔했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48] 통영 시내에서 거제도 여차몽돌해수욕장까지
11월 7일(일)
지난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까닭에 오늘 아침은 예전보다 더 이른 시간에 눈을 뜬다. 눈이 말똥말똥하다. 눈만 말똥말똥한 게 아니라, 온몸의 근육에도 잔뜩 힘이 들어 가 있다. 어제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겉보기엔 하룻밤 사이 푹 자고 일어나, 몸이 상당히 호전이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내 몸이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사실 다른 이유 때문이다. 지금 나는 약간의 긴장 상태에 빠져 있다.
거제도는 올해 초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 애초 거제도를 일주할 예정이었는데, 이틀째 되는 날 거제도를 절반도 돌지 못한 상태에서 바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해안을 따라 도는 여행이었다. 첫날은 오후 늦게 여행을 시작한 까닭에, 얼마 가지 못해 옥포조선소 근처에서 하루를 묵었다. 첫날은 여행이라고 할 것도 없는 가벼운 여정이었다.
그렇지만 다음 날, 거제도 북쪽의 장목면까지 거북이목처럼 튀어나온 지역을 돌아서 나오는데 몹시 힘들었다. 오르막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바람에,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뻔했다. 해가 질 무렵 간신히 고현의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오래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바로 여행을 끝마쳤다. 그때는 물론 거제도와 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는, '칠천도' 같은 섬들을 거쳐 갈 생각 같은 건 눈꼽만큼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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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 다시 내민 도전장, 그 결과는?
오늘 드디어, 그날 악몽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거제도에 다시 도전장을 내민다. 긴장이 된다. 당연히 몸과 마음이 굳어질 수밖에 없다. 거제도에서는 여행 기간을 아무리 짧게 잡아도 최소 3일은 걸린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최소한 3일은 악몽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통영시내에서 거제대교를 넘기 전까지는 14번 국도를 타고 올라간다. 14번 국도는 거제도를 오가는 도로라서 그런지, 차량이 비교적 많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거제도로 들어선 이후에 나타나는 해안도로는 의외로 한적하다. 그리고 곧고 평탄하다. 자전거 타기에 좋은 길이다. 얼마나 편안하던지 아침부터 잔뜩 겁을 집어먹은 게 무색해질 정도다.
곧이어 오르막길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전에 내가 거쳐온 길들에 비하면 상당히 완만한 편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런 길만 나타난다면, 오늘 밤 길에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할 일 같은 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미처 겪어보지도 않은 일을 앞서서 걱정하고 있었던 꼴이 될 수도 있다. 제발이지, 우려가 그저 단순한 우려로, 그리고 걱정이 쓸데없는 걱정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거제도 해안도로에서 바다 건너편으로, 아침 일찍 지나온 통영시가 빤히 건너다 보인다. 통영에 있을 때는 언제 그곳을 벗어날까 했는데, 막상 그곳을 벗어나고 나니 또 금방이다. 아주 잠깐 머물렀던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가면, 사실 거제도도 아주 잠깐 거쳐가는 곳이 되고 말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위안으로 삼기에는 아직은 갈 길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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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구마을로 들어서기 직전에, 한 자그마한 포구에서 멸치를 실어 나르는 광경을 구경한다. 배로 잡아온 멸치를 트럭으로 옮겨 담고 있다. 부두에 정박해 있는 배 옆에 4.5톤 트럭 한 대가 서서, 배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지는 엄청난 양의 멸치를 받아내고 있다. 멸치가 끝없이 올라오는데, 좀처럼 그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배가 거대한 펌프 역할을 하면서 바다에서 끊임없이 멸치를 퍼올리고 있는 것과도 같은 형국이다. 도로 위에는 또 그만한 크기의 트럭이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몇 대의 트럭이 왔다 갔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이런 풍경이 매우 낯설고 신기한데, 트럭 위로 멸치를 옮겨 담는 일꾼들은 내가 더 낯설어 보이는 모양이다. 힐끗힐끗 나를 내려다보며, '저 놈이 이제는 떠날 때가 됐는데 아직도 저러고 있네'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걸 잘 아는데 좀처럼 몸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멸치를 구경 삼아, 어디 볕 좋은 데 퍼질러 앉아서는 시간 가는 대로 한참 노닥이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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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거제도다운 길이 나타나다
어구마을을 떠나서도 한동안 여유를 부리기 좋은 길이 계속된다. 햇볕도 좋고, 바람도 좋고, 풍경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다. 긴 여행으로 생긴 여독만 아니라면, 참 즐거운 여행길이 되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여유도 쌍근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 역시 거제도는 거제도다. 그냥 한가하게 여유를 부리면서 경치를 구경하는 데 넋을 놓고 있을 곳이 아니다. 쌍근마을에서부터 드디어 거제도다운 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긴 했는데, 설마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좁고 가파른 시멘트 길이 산비탈 위 키를 넘는 잡목 숲 사이로 슬쩍 머리를 감추고 있다. 저 놈의 길이 도대체 어디를 향해 가려고 저 모양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시멘트를 거칠게 발라놓은 가파른 길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부터는 힘 좀 써보시지'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 소리가 심장을 조여 온다. 이 길은 일명, '앙김이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쌍근마을에서 저구마을까지 이어지는 바닷가 절벽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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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입구에 '차량 통행은 자제할 것'을 경고하는 문구가 붙어 있는 걸 봤을 때, 깨달았어야 했다. 그런데 정작 그 문구를 쳐다보고는 차들이 지나다니지 않아 자전거 타기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난 참 순진하다. 길이 바닷가 가파른 산비탈을 가로지른다. 절벽 중간에 바위를 깎아 길을 만들었다. 인가는 물론,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6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계속 산중턱 절벽 길을 오르내리는데 솔직히 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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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서, 여행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방언'을 하기 시작한다. 참 열심히 떠들어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이 길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내 입에서 욕과 한탄이 뒤섞여 나온다. 내 저질 체력을 탓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해안 여행길 책자를 만들면서 이 길이 어떤 길인지를 상세히 설명해주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욕을 해댄 것 같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게다가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되돌아 올라오기까지 하는 고역을 치른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그야말로 '뚜껑'이 열리기 직전까지 가고 만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이 모진 길을 빠져나온다. 덧붙이는데, 이 길에서는 중간에 다른 길이 나온다 해도 절대 그 길로 들어서지 말기를 바란다. 계속 직진해서 2차선 아스팔트 길이 나올 때까지는 다른 길로 올라서지 않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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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의 숨은 절경을 그냥 지나치다니...
이 길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스팔트 길을 만나 내리막길을 죽 달려 내려오면 바로 저구항과 명사해수욕장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는 한동안 매우 낮고 평탄한 길이다. 해수욕장 앞을 지나가는 길이 새로 단장돼 자전거 타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 자연히 긴장이 풀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 길을 지나는 사이에 그만 거제도 최남단의 해안 절벽 길을 벗어날 수 있는 우회로를 놓치고 만다.
이제부터 달리게 되는 길은 다포리 해안길이다. 길이 앞서 달려온 앙김이길과는 많이 다르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이 길은 처음에는 아스팔트 길이었다가 중간에는 시멘트 길로, 그러다 나중에는 비포장 길로 뒤바뀐다. 이 길에서 두 번째 방언이 시작된다. 허공에다 대고 뭐라고 뭐라고 계속 지껄여대는데, 곁에서 듣는 이 없기 망정이지 딱 정신나간 놈 소리 듣기 좋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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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그 길로 간간이 차들이 지나간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길을 자동차를 피해 멈춰 서야 한다. 도망갈 곳이 없다. 그럴 때마다 또 그 자리에서 뽀얀 먼지를 뒤집어써야 하는 수모를 감내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또 이 길을 오나 봐라' 하는 심정으로 이를 악문다. 물론, 말뿐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내 속마음까지 그런 건 아니다.
이 길은 거제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로 꼽힌다. 내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있는 나머지, 그 길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게 너무 아쉬울 뿐이다. 앙김이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거제도의 바다와 섬 풍경이 절경이라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다.
내겐 이런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전거여행자들에게 환상적인 길이 될 수도 있다. 걷기 좋은 길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정신 멀쩡하고 기운 펄펄한 몸으로 이 길을 다시 한 번 더 달려보고 싶다. 가다 못 가면 자전거를 끌고서라도 가고 싶다.
다포리 해안길 정상에 전망대가 있다. 산 아래로 고즈넉한 풍경의 여차몽돌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인다. 해변으로 검은 몽돌밭이 자로 그은 듯 곧은 선을 드러내고 있고, 그 주변을 멋들어진 바위 절벽이 에워싸고 있다. 여차몽돌해수욕장뿐만이 아니다. 사방으로, 그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해안 풍경이 펼쳐진다.
전망대 주변에 여러 대의 차가 주차해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비경이라는 소문을 듣고, 여차몽돌해수욕장에서부터 비포장 산길을 달려 올라온 차들이다. 해가 지려고 하는데도 꽤 여러 대의 차들이 올라온다. 차에서 내려선 관광객들이 전망대에 서기도 전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험한 산길을 올라와서는 뜻밖에 멋진 풍경을 마주하게 돼, 다들 놀라는 표정이다.
길에서 만난 주민이 내민 구원의 손길
어둑어둑해질 무렵 전망대를 떠난다. 전망대에서부터 여차몽돌해수욕장까지는 줄곧 내리막이다. 그곳에서 돌멩이들이 여기저기 나뒹구는 산길을 더듬더듬 내려가다, 개 두 마리를 앞세우고 지나가는 마을 주민과 마주친다. '안녕하시냐'고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갈 생각이었는데, 이분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불러 세운다. 이것저것 묻는다. 아무래도 내 차림이 범상치 않아 보였던 모양이다.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냐'고 물어서 '두 달째, 50일이 넘었다'고 했더니 입을 쩍 벌린다. 한동안 말이 없다.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데 어떻게 50일씩이나 걸릴 수 있는지 의아한 얼굴이다. 그래서 '해안선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말을 덧붙인다. 비로소 조금 이해가 가는 표정이다. '힘들지 않느냐'고 해서, 보통 때 같으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고 얼버무렸을 텐데, 때마침 험한 산길을 두 개나 넘어온 뒤라 '죽을 맛이다'라고 엄살을 부린다. 그 말에 다시 '오늘은 어디서 잘 거냐'고 묻는다.
사실은 어두운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내내 그게 걱정이었다. '어디든 민박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이분 대뜸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한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다. '혹시 민박을 하시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반색을 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내게 자기 집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그러고는 '미리 전화를 해 놓을 테니 먼저 그리로 가 있으라'고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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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보통 민박집인 줄 알았는데, 가서 보니 잘 꾸며진 펜션이다. 다 좋은데 숙박비가 고민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인아주머니가 숙박비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아저씨(남편)가 돈을 받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뒀단다. 그래도 고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돈을 지불하는 것도, 그렇다고 지불하지 않는 것도 쉽지 않다. 서로가 서로의 성의를 무시하는 경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여행을 하면서 올해 관광지마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걸 알게 된 터에 무전숙식까지 할 수는 없다. 결국 적당한 선에서 서로 기분 좋게 성의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해서 이날 밤, 여차몽돌해수욕장에서 내 집에라도 온 것인양 편안한 잠을 잔다. 물론, 오늘 하루 모진 고생을 하고도 악몽 같은 건 꾸지 않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오늘 그 말 한 번 제대로 들어맞는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82㎞, 총 누적거리는 360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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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 까마귀떼, 이놈들아 나 아직 안 죽었어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49] 거제도 여차몽돌해수욕장에서 칠천도 앞까지
11월 8일(월)
간밤에 오늘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그리고 산간지방에는 눈이 온다고도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거제도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그 대신 바람이 심하게 분다. 그것도 맞바람이다. 일단 비가 오는 데다 바람까지 부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대신에 바람이 부는 게, 비가 내리는 것보다 더 낫지는 않다. 몸이 무거운 상태에서는 차라리 바람이 부는 것보다는 비가 내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오늘 아침 일기예보에 내일까지 찬바람이 분다고 했으니 미리 각오를 하는 게 좋겠다.
벌써 며칠째 기사를 쓰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포기를 했다고 봐야 한다. 매일 저녁 여행을 마치고 나면, 피곤이 엄습한다. 몸을 씻는 것조차 귀찮은 마당에, 방바닥에 주저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건 이제 생각조차 하기 싫다. 컴퓨터에 전원을 꽂아 몇 번 글쓰기를 시도해 봤지만, 더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못했다. 그저 전원을 켜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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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날 있었던 일은 가능한 한 그날 저녁에 정리해서 올리겠다는 약속은 더 이상 지키지 못하게 됐다. 사진을 카메라에서 컴퓨터로 옮겨 담는 단순한 일조차 미룰 때가 있으니 두말 해 무엇하랴.
이번 여행에서 주요한 목적 중에 하나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그날의 바닷가 풍경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거였다. 독자들이 내 글과 사진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실제 바닷가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그걸 해내지 못하게 돼서 대단히 미안하고 섭섭하다.
이제 남은 건 애초 목적했던 대로, 이 여행을 끝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물론, 완주가 쉬운 일은 아니다. 앞으로 또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지금은 당장 거제도가 최대의 걸림돌이다. 거제도가 나를 몹시 힘들게 만들고 있다.
어제는 남쪽 해안을 돌면서 거의 녹다운 상태로 여행을 마쳤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거제도의 동쪽과 북쪽 해안을 돌아야 하는데, 이 지역은 내가 이미 한 차례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는 곳이다. 완주는 과연 내가 처음 목적했던 대로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지금은 사실 모든 게 다 불투명하다.
어제 무리를 한 탓인지 오늘 아침엔 다리가 몹시 아프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그땐 정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펜션을 나서자 바로 오르막이다. 무릎 관절에 채 '윤활유'가 돌기도 전이다. 2차선 도로가 산 속을 헤집고 올라간다. 여차재라는 이름의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다. 고개 위로 찬바람이 휘몰아친다.
기가 막힌 건지 숨이 막힌 건지, 이제는 더 이상 내 입에서 아무런 말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 와중에 숲 속 어디에선가 계속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때가 때인 만큼 그놈들이 나무 꼭대기에 앉아 나를 주의 깊게 내려다보고 있는 걸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거제도는 제주도만큼이나 까마귀가 많은 곳이다. 가는 곳마다 머리 위에서 깍깍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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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거제도 전체가 '바람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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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세다. 산 속 도로를 내려와 다대항을 지날 무렵, 바다에서 불어온 회오리바람이 도로를 휩쓸고 지나간다. 몸이 휘청거리는 바람에 자전거 위에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길가 담벼락에 기대서서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다대항을 떠나 다시 '바람의 언덕'까지 천천히 언덕을 오른다. '바람의 언덕'은 거제해금강을 가는 좁은 길목에서 왼쪽으로 바다를 향해 돌진하는 듯이 툭 튀어나온 바위 언덕을 말한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바람'과 '언덕'이라는 단어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고 있다. 적나라하다. '바람'과 '언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람의 언덕은 사실 누렇게 변색한 풀밭 외에 달리 봐줄 것이 없는 황폐한 언덕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 이 먼 곳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아마도 '바람'이 되고 싶었던, 그래서 그 바람처럼 푸른 하늘을 날고 싶었던 소망을 충족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바람'이 바닷가 바위 '언덕' 위로 거세게 불어닥친다. 언덕 위에 서 있으면 내 몸이 광대한 바다 위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바닷가 높은 바위 언덕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왜 이곳을 바람의 언덕이라고 부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바람의 언덕은 동경의 대상이다. 꼭 한 번 찾아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오늘 내게 바람의 언덕은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바람'과 '언덕'이 함께 따라다니게 되면, 최악은 아니더라도 차악은 되는 악조건이 형성된다. 바람의 언덕에서 마주친 '바람'과 '언덕'이 오늘 내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예고하고 있다.
바람이 부는 날, 바람의 언덕을 넘어가는 바람 소리가 마치 내게 '오늘 네가 가야 할 길이 이곳에 있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오늘 내게는 바람과 언덕은 물론이고, 바람의 언덕 또한 '역경'과 '고난'을 이야기하는 단어들일 뿐이다. 바람의 언덕을 떠나면서, 나는 사실은 거제도라는 섬 전체가 바람의 언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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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사체를 쪼아대고 있는 까마귀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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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는 바람만큼이나 몽돌이 많은 곳이다. 바닷가 대부분의 해수욕장들이 몽돌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지나온 여차몽돌해수욕장이 그렇고,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와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해수욕장인 학동몽돌해수욕장 역시 몽돌밭이다. 몽돌밭이 사진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넓다.
바람과 몽돌 역시, 바람과 언덕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고 해도 제 자리를 떠나지 않는 몽돌이 왠지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몽돌밭 위에서는 바람마저도 잔잔한 느낌이다. 해안에 몽돌밭이 어찌나 많은지 거제도를 대표하는 상징물 역시 몽돌이다.
학동몽돌해수욕장을 떠난 뒤로도 계속 언덕이다. 바람 또한 그칠 줄 모르고 불어오고 있다. 바람이 매우 차다. 온몸의 감각이 점차 둔해지고 있다. 이제는 별 생각 없이, 거의 기계적으로 페달을 밟고 있다. 그러다 구조라해수욕장으로 들어서는 길 입구에서 '끔찍할 수도 있었을' 광경을 목격한다.
까마귀들이 도로 위에 피를 흘린 채 널브러져 있는 고양이 사체를 부리로 쪼아대고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을 장면이다. 그런데도 오늘은 별 다른 느낌을 받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자연을 닮아가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자연만큼이나 '잔인'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장승포를 지나면서, 거제도에 들어서 처음으로 자전거도로가 나타난다. 반가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조금 허탈하다. 이 자전거도로는 그냥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인도도 아니고 갓길도 아닌 길을 차도와 분리해서는 그 위에 살짝 자전거도로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장승포를 지나면 바로 옥포조선소다. 옥포조선소 근처에는 조선소로 출퇴근하는 차들과 오토바이들이 발에 거치적거릴 만큼 많다. 그러니까 이곳의 자전거도로들은 그 차들과 오토바이를 피해 자전거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것마저도 조선소를 벗어나면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의 도로들은 그만큼 거칠고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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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히 가라'는 말에 눈물이 나올 뻔하다
흥남해수욕장을 지나는 사이, 어느새 해가 크게 기울기 시작한다. 오늘 저녁은 장목면의 면소재지가 있는 곳까지 가야 한다. 그러려면 앞으로 20~30km 가량을 더 가야 하는데, 내가 과연 해가 지기 전에 그곳에 당도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남은 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하지만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다. 이미 체력이 바닥이 나 있는 상태다. 언덕을 거의 걷는 것과 같은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가거대교 공사장 부근의 한 언덕에서 여러 명의 행인과 마주친다. 노무자들로 보이는 남자들 여러 명이 언덕 위에서 내려오더니, 도로 건너편에서 내게 말을 붙인다. 이럴 땐 말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그 양반들이 그걸 알 까닭이 없다. '어디까지 가냐?' '어디에서 왔냐?' '혼자냐?'고 따발총처럼 쏘아대는데 숨이 컥컥 막힌다. '강원도 고성' '서울'… 하고 최대한 짧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랬더니 그들 중에 서울에서 온 사람이 또 묻는다, '서울 어디냐?'고. '길음동'이라고 했더니, 자기는 '보문동에 산다'며 같은 성북구라고 무척이나 반가워한다. 이때쯤 나는 그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 남자는 수개월 집을 떠나 이 낯선 곳 험한 공사장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얼마나 집이 그리웠으면, 같은 '구'에 산다는 말만 듣고도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을까? 내가 무뚝뚝한 반응을 보여서 꽤 뻘쭘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머리 위로 두 팔을 흔들며 소리친다. '조심히 가라'고. 순간 그 말에 어찌나 가슴이 뭉클해지던지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제길 그게 다 이놈의 언덕 때문이다.
장목면 면소재지에는 근처도 가지 못했는데 해가 지고 있다. 거제도 최북단에 있는 구영해수욕장 근처, 이름도 알 수 없는 작은 포구 앞이다. 계속해서 가다가는 도중에 해가 떨어질 게 분명하다. 할 수 없이 포구 앞에서 민박을 찾는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민박조차 모두 만원이다. 가거대교를 잇는 도로 건설 공사 때문에 주변의 숙박업소들을 모두 공사장 노무자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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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선 '벽'처럼 보인다
낭패다. 바람은 거세게 불고, 해가 기울면서 기온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마당에 잘 곳이 없다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한탄해 봐야 소용이 없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면소재지가 있는 곳까지 달려간다. 가능한 한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정신없이 페달을 밟는다. 하지만 면소재지에 도착해서도 숙소를 찾지 못한다. 이미 거리에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뒤다. 막막하다.
한참을 헤맨 뒤에 거리의 한 상점에서 이곳엔 여관은 물론이고 민박도 없다는 답변을 듣는다. 그리고 어딘가에 여인숙이 한 곳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곳은 차마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여인숙과 관련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날 밤, 다시 밤길을 더듬어 실전리라는 마을까지 달려간다. 그 마을에 모텔이 하나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실전리는 칠천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차라리 잘 됐다 싶다. 내일 아침 일찍이 칠천도를 들어갔다 나오면,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거제도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전리까지 밤길을 달리는데 어디선가 또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러자 그 순간 머리 속으로 구조라해수욕장 근처에서 고양이 사체를 쪼아대고 있던 까마귀떼가 떠오른다. 섬뜩하다. 환청일지도 모르지만, 이놈들이 하루 종일 내 머리 위를 뱅뱅 돌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어두운 밤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에 우려를 나타낸 분들이 계시다. 시골길은 특히 더욱 더 위험하다면서 자전거를 타지 말라는 경고를 여러 차례 받았다. 나도 밤이 무섭다. 특히 까마귀 울고, 자동차 우글대는 밤길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데나 멈춰 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밤길 여행을 감행하는데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을 해야 할 정도로 오늘은 종일 뭔가에 쫓기듯이 다급했던 하루다. 그리고 언덕이 얼마나 힘에 부치던지, 오늘 드디어 길이 길로 보이지 않고, 내 앞에 벌떡 일어서 있는 벽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여행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점점 더 견디기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85km, 총누적거리는 3688km다.
덧붙이는 글 | * 11월 6일 이후로 여행 중에는 기사를 쓰지 못했다. 11월 6일 이 후 11월 30일까지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기사는 11월 6일 이전에 작성해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12월 1일 이후에 게재하고 있는 기사는 11월 23일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서울에서 작성한 것이다.
바람은 칼을 품고...곳곳은 '가시밭'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50] 거제시 칠천도에서 통영시 죽림지구까지
11월 9일(화)
어제보다 날이 한층 더 추워졌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도로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오늘 거제도의 기온은 최저 5.4도에서 최고 13.6도다. 11월 들어 낮 기온이 가장 낮다. 바람이 불어서 체감 온도는 이보다 더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오늘 이후로 날씨가 한층 더 추워진단다. 서울에는 비록 싸락눈이기는 하지만 첫눈이 내리고, 체감온도는 평소보다 3, 4도 더 낮아진다고 한다. 일기예보를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으슬으슬 떨려온다.
아침부터 조짐이 좋지 않다. 뒷바퀴에 공기를 잔뜩 주입하고 출발하려다 앞바퀴가 조금 주저앉은 느낌을 받는다. 혹시나 해서 손가락으로 앞바퀴를 눌러 본다. 탄력이 많이 떨어진다. 뒷바퀴는 물론이고, 앞바퀴마저 바람이 새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앞뒤 바퀴가 다 펑크가 난 게 여간 심상치 않다. 어젯밤 앞바퀴마저 펑크가 난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 놓고 잠에 들었을 텐데,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 거리에서 펑크를 수리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뒷바퀴조차 수리를 못 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마당에 앞바퀴까지 펑크가 나 버려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일단 앞바퀴마저 빵빵하게 공기를 주입한다. 그나마 타이어의 공기가 몸으로 느끼기 힘들 정도로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어 다행이다. 한 번 공기를 주입하면 최소 반나절은 충분히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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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 좋고 아름다운 섬, 칠천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바람이 심하게 부는 편이다. 날이 추워서 그 바람이 칼을 품고 달려드는 것처럼 아리다. 얼마 가지 않아 칠천도로 들어서는 다리가 나타난다. 칠천교다. 다리 위로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갓길로 가지 못하고 중앙선 가까이 붙어서 달린다. 인도로 올라서는 건 엄두도 못 내고, 갓길을 달리는 것도 불안불안하다. 마침 다리 위를 지나가는 차량이 드물어 가능한 일이다.
거제도에는 연도교로 연결이 되어 있는 섬이 두 개다. 칠천도와 가조도가 그 섬들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에 따르면, 연도교로 연결이 되어 있는 섬들은 대체로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일종의 닮은꼴이다. 섬사람들의 생활 환경이 비슷한 것은 물론이고, 섬의 지리적 형태마저 닮아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까 칠천도와 가조도 역시 거제도와 유사한 형태의 섬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칠천도 역시 언덕이 많은 섬이다. 하지만 그 언덕이 애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큰 힘 들이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칠천도는 바닷가를 따라, 해안을 일주할 수 있는 도로가 깔려 있다. 도로가 낮은 산자락을 타고 넘는다. 비록 수시로 언덕이 나타나서 힘이 들기는 하지만, 고통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섬이 작고 산이 낮아, 언덕이 있다고 해도 거제도만큼이나 높고 가파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칠천도의 해안도로 역시 다른 곳의 해안도로 못지않게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 거대한 철선들이 미동도 없이 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날은 춥지만 하늘은 맑아서 해안에서 바라다보는 바다와 섬 풍경이, 눈이 시리게 아름답다. 자동차도 드물다. 그러고 보면, 칠천도만큼이나 자전거 타기 좋은 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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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을 전멸 위기로 몰고 간 '칠천량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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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도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 이 작은 섬을 돌아 나오는 데도 시간이 솔찮게 걸린다. 컨디션이 좋았다면 훨씬 더 편하고 즐거운 여행이 됐을 것 같다. 칠천도를 빠져나오면서, 칠천도로 들어서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탑 하나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다리를 건설하고 난 뒤에 조성한 기념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게 아니다.
정유재란 당시 이곳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 칠천량해전이다.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하고 있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지휘권을 잡고 있을 때다.
왜의 수군과 육군의 협공을 받은 조선 수군은 거의 전멸 상태에 이른다. 조선은 이 전투에서 수군 1만여 명과 거북선 등 전선 150여 척을 잃는다. 이때 남은 전선이 겨우 12척이다. 조선 수군은 이 전투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어렵게 지켜왔던 남해의 해상권을 빼앗긴다.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이 되고 만 것이다.
이 전투 이후 원균은 고성으로 퇴각하다 육지에서 전사하고, 이순신 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돌아온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이순신 장군은 칠천량해전에서 살아남은 12척의 전선을 가지고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 133척의 공격을 물리친다. 이로써 남해 해상권을 회복하고 전세를 뒤집게 된다. 이 두 사건이 모두 1597년 음력 7월과 9월 사이, 단 두 달 사이에 일어난다. 그야말로 극적인 사건의 연속이다.
칠천량해전은 왜군이나 조선군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전투 중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칠천교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그때의 패배와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탑이다.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가 담겼다. 칠천도에서는 앞으로 이 전투에서의 패배를 기억하고 당시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옥계마을에 '칠천량 해전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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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도 이후의 여행은 여행 아닌 '고행'
칠천도를 떠나서는 '연하해안로'를 달린다. 비록 이름은 해안로이지만, 실제는 해안에서 떨어져 있는 구간이 많아 낭만적인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가는 차량도 제법 많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거제도 여행은 딱 여기까지다. 나같이 거제도 해안을 모두 일주해야만 하는 여행 목적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거제도여행은 가급적 칠천도에서 끝내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좀 더 간다고 해도 거제조선소 앞에서 멈추는 게 바람직하다.
이후로는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나 '모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연하해안로만 해도 갓길이 없고, 노면도 상당히 거친 편이다. 거기에다가 현재 도로의 상당 구간이 공사 중이다. 뒤따라오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기 일쑤다. 차들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면, 나 역시 신경질적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바람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날이 건조한 탓에 길 위로 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른다.
당시만 해도 이 도로만 벗어나면, 사정이 나아질 거라고 짐작했다. 여기에서 더 이상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도로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거제도를 빠져나가는 14번 국도에서 마주치게 되는 일은 상상초월이다. 내 자전거여행 역사에 이렇게 험한 도로는 처음이다. 자동차전용도로도 이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았다.
거제조선소 앞을 지나면서 살짝 숨통이 트인다. 조선소 앞으로 자전거가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하해안로를 벗어나 비로소 내가 살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길 역시 옥포조선소 앞을 지나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생색을 내는 데 불과하다. 조선소 앞을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정글'이나 다름이 없는 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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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에 박힌 나무 가시,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거제조선소를 지나 가조도 진입로까지, 14번 국도를 굶주린 사자 무리에게 쫓기는 한 마리 늙은 사슴의 심정으로 달린다. 뒤에서 으르렁거리며 달려오는 차들 때문에 잔뜩 겁을 먹고 자전거 위에서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온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아니면 연하해안로로 들어서기 전에 점심으로 먹은 중국 음식이 잘못된 것인지 장이 제멋대로 부글거린다.
갓길이 분명하지 않은 국도 위에서 차들의 추격전은 계속되지, 배는 살살 아파오지 자전거를 타는 게 보통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당장 무슨 수를 써야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조도로 들어서는 길 입구에 사등면 면사무소 건물이 보인다. 여행을 다니면서, 관공서 건물이 이렇게 반가웠던 적도 없다. 건물은 지은 지 얼마 안 돼 무척 깨끗하다. 시설도 최상이다.
아무래도 오래간만에 너무 기름진 중국 음식을 먹은 게 탈이 난 것 같다. 볼일을 보고 나서는 온몸에 맥이 쭉 빠진다. 이럴 때 자전거만이라도 제 기능을 다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랫배의 고통이 사라지고 나니까, 이번에는 다시 자전거가 걱정이다. 그 사이에 앞바퀴가 또 탄력을 잃고 물렁물렁해졌다. 뒷바퀴보다는 확실히 상태가 더 안 좋다. 이 지경이 되면, 펑크를 수리하지 않고 견딜 재간이 없다. 결국 쉬어가는 김에 면사무소 한쪽 담벼락 밑에 주저앉아 수리를 시작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 타이어에 또 나무 가시가 박혀 있다. 나무 가시 때문에 펑크가 난 게 내 기억에 올해에만 벌써 세 번째다. 예전에는 없던 일이다. 올해 이런 일이 계속 반복이 되고 있는 게 좀 이해하기 힘들다. 펑크를 수리하는 김에 뒷바퀴마저 수리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좀처럼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뒷바퀴를 잘못 다루면, 이전처럼 브레이크에서 또 심각한 소음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앞바퀴만 수리하고 나서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화장실을 급하게 다녀온 뒤라, 가조도 여행에 마음이 가벼울 리 없다. 가조도 역시 만만하게 볼 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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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번 국도에서 자동차들과 사투를 벌이다
가조도를 돌아 나와서는 다시 14번 국도로 올라선다. 왠지 사지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우회로가 있으면, 멀리 돌아서 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그 길로 가고 싶다. 하지만, 이 근처에 다른 도로는 보이지 않는다(도로는 있는데 내가 찾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거제도를 빠져나가려면 오로지 이 길을 달려야 한다.
갓길도 없는 도로를 다시 자동차들과 함께 달리면서 겨드랑이로 식은땀이 흐른다. 이곳에서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운전 솜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거친 건 물론이고,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요란하다. 단순히 자동차 소음만으로는 그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달려가면서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박박' 긁거나 '퍽퍽' 쳐대는 소리다. 드르륵, 덜덜덜, 탕탕탕…. 온갖 요란한 소리들이 자동차 꽁무니를 따라다닌다. 그 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어와 머릿속까지 강타한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사등면 사무소가 있는 곳에서 신거제대교까지, 14번 국도가 지나가는 구간은 약 5㎞에 불과하다. 긴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그 이상이다.
나는 오늘을, 하루 종일 도로 위에서 자동차들과 사투를 벌인 날로 기록한다. 거제도의 14번 국도는 내 생애 최악의 도로다. 세상에 이런 길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국도를 달렸지만, 이곳의 도로처럼 위험한 길은 달려보지 못했다. 자전거로 통행하는 데 지나치게 큰 위험이 따른다. 그런데도 우회할 길이 없다. 이 도로를 이대로 방치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거제대교를 넘어서, 거제도를 빠져나와서는 통영시 죽림지구로 들어선다. 이로써 통영 시내에서만 벌써 삼 일째 밤을 맞는다. 무슨 인연으로 이곳에서 이렇게 긴 날들을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웬만하면 오늘로 통영시를 벗어나 고성군으로 들어서고 싶다. 하지만 거제도를 벗어나서는 더 이상 자전거를 탈 의욕이 나지 않는다.
죽기 살기로 달려와 이젠 더 이상 위험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긴장이 풀리면서 손가락 하나 꿈쩍하기 싫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숙소를 찾아 기어들어간다. 오늘 하루 종일 17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매일 100여 장 이상의 사진을 찍은 것과 극히 비교가 된다. 그만큼 여유가 없었던 하루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82㎞, 총누적거리는 377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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