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사투리의 미학_05

醉月 2011. 1. 14. 08:49

사투리의 미학 <41> -대이, -래이, -재이 용법


경상도 할머니의 유연한 언어 사용의 모습을 확인해보자. 보통의 서울말 사용자 같으면 끝말을 잇지 못하고 끝날 일이나 경상도 할머니라서 유연하게 끝말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할머니 : 계란
경상도 할머니 : 란닝구[러닝셔츠]
서울 할머니 : ......^^;;
경상도 할머니 : 와예?
서울 할머니 : 외래어는 쓰면 안돼요
경상도 할머니 : 그라믄 다시 합시더
 
서울 할머니 : 타조
경상도 할머니 : 조~오 쪼가리~ [종이]
서울 할머니 : 단어는 한개만 사용해야 돼요
경상도 할머니 : 알았슴더 다시 해보소
서울 할머니 : 장롱
경상도 할머니 : 롱갈라묵끼[나눠먹기)]
서울 할머니 : 사투리도 쓰면 안돼요
경상도 할머니 : 그라머 함마 더해봅시더
서울 할머니 : 노을
경상도 할머니 : 을라![아이]

이런 일화가 있다.
미국으로 이민 간 두 할머니가 있었다. 어느날 전라도 할머니가 갑자기 소변이 급하여 공중변소로 뛰어 들어 갔다. 마침 화장실 안에는 경상도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전라도 할머니는 급한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노크를 했다.

"빨리 좀 나오랑께!"
그러자 화장실에 앉아있던 경상도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후꼬?"
그에 따른 전라도 할머니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으메 죽겄네, 미랑께!"

미국에서의 두 할머니 대화 속에 나타난 '후꼬'는 '후'[WHO=누구]에다가 경상도 말의 물음 어미 '-고'를 붙인 꼴이며, '미랑께'는 '미'[ME=나]에다가 전라도 말의 어미 '-랑께!'를 붙인 표현이다. 여기서 두 할머니가 미국에서 소통이 되는 것도 재미있지만, 다급한 상황에 나타나는 언어 표현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할머니의 말처럼 문장의 구조는 우리말의 형식을 사용하고 필요한 낱말만 영어로 드러내는 방식은 이질적 언어를 수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표현은 트기말[섞인말]인 이두식 표기의 일종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고민해온 표기 방식의 잔재이다. 즉, 우리말과 어순이나 형태가 다른 언어를 표현할 경우, 의미 표현에 관계하는 부분은 어휘로 대신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조사나 어미를 대신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의 가장 단순한 해결법이 바로 위의 할머니 같이 의미를 나타내는 어휘적인 요소인 '후'나 '미'는 해당 어휘로 교체하고 문법적인 요소인 '-고'나 '-랑께'는 우리말을 그대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른 지역 사람들이 전라도 말이나 경상도 말을 흉내낼 경우, 가장 중요하게 신경을 쓰는 것은 해당 지역어의 억양이나 높낮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특이한 조사나 어미에 있다. 전라도 말이라면 '-랑께'와 같은 어미를 사용하고, 경상도 말이라면 '-캉, -꼬, -예'와 같은 조사와 '-래이, -대이, -재이'와 같은 어미를 사용한다.

특히 조사 '-예'의 경우는 문장이나 단어나 할 것 없이 모든 언어 환경에 쓰여서 높임의 뜻을 가지는 것이라 그 용법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대이'와 '-래이' '-재이'는 콧소리를 이용하는 발음과 함께 높임의 등급에도 제약이 있어서 그 발음과 의미 파악에 유의할 점이 있다.

우선 '-대이, -래이, -재이'의 발음은 모음이 비모음으로 발음되는 경우라 'ㅐ'에서 시작된 콧소리의 울림이 'ㅣ'로 계속 울리게 발음하기 때문에 두 모음을 끊어서 발음하면 원래의 정감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비모음화에 의한 발음은 '조오[종이]'의 발음에서도 나타나는데 타지 사람에게는 [종오]나 [조오]처럼 들리나 사실은 [조-오]와 같이 'ㅗ'에서 시작한 비음이 그대로 다음 음절의 'ㅗ'로 이어지는 소리의 울림이 있는 사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 용법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먼저 '-대이'는 "나도 간 대이. 나도 묵넌대이. 나도 감대이. 나도 묵심대이, 나도 갑니대이. 나도 묵심니대이"에서 보듯이 높임의 환경과 낮춤의 환경에서 모두 쓰이고 있는 어미인데, 어원적으로 마침형 '-다'에 확인, 강조의 '-애이'가 결합된 꼴로 '상태의 확인'의 의미를 담고 있는 어미이다.

또 '-래이'는 "니가 가거래이. 거사람은 가니래이, 할매넌 묵니래이"에서 보듯이 높임의 환경에서는 쓰이지 않는데, 이는 '-래이'의 어원이 시킴의 '-라'에 확인, 강조의 '-애이'가 결합한 꼴이라서 높임의 환경이 제약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재이'는 "니도 같이 가재이"에서 보듯이 높임의 상황에는 제약이 있는데, 이는 어원적으로 청유형 '-자'에 확인, 강조의 '-애이'가 붙은 꼴이라서 높임의 제약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애이'는 약속과 다짐의 '-(어)꾸마' 어미에도 결합되어 '-(어)꾸매이'로 쓰이는데, 이때도 "나도
 
가꾸마. 나도 묵어꾸마. 나도 가꾸매이. 나도 묵어꾸매이"에서 보듯이 확인의 의미가 강화된다.

이러한 다짐의 강화는 "-지, 지리, -지거리"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즉 "나도 가지, 나도 묵지. 나도 가지러, 나도 묵지러, 나도 가지거리, 나도 묵지거리"에서 보듯이 '-지리'는 '약속'의 의미가 '-(어)꾸매이'보다 약하다.

이처럼 부산말의 '-대이'와 '-래이' '-재이'는 '-다, -라, -자'의 어미에 '-애이'가 가진 확인 의미가 보태어 진 것으로 서술어미의 환경에 따라 높임의 의미가 제약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투리의 미학 <42> 경상도 사람 숫자 세는 법

 
여행을 하다보면 나라마다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방식은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큰 액수의 돈을 먼저 건넨 뒤 그 다음 작은 액수의 돈을 건네지만 서양 사람들은 작은 액수의 돈을 먼저 건넨 뒤 그 다음에 큰 액수의 잔돈을 건넨다. 즉, 만원을 주고 2500원어치의 물건을 샀을 때, 서양 사람은 500원을 먼저 건네주고 그 다음 7000원을 건네준다. 그것도 거스름돈을 한꺼번에 계산하지 않고 물건 값에 돈을 일일이 더하면서 셈을 하는 방식을 택한다. 만일 7달러짜리 물건을 사고 10달러를 주면 주인이 8, 9, 10 순서로 1달러씩 읊조리면서 3달러를 준다. 암산이 강한 우리 나라 사람이 보기엔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이지만 정확한 셈을 위한 필요한 수단이다.

또 손을 숫자를 표현하는 방식도 나라마다 약간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은 손가락으로 수를 셀 때, 손을 편 후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굽혀가며 세지만, 서양 사람은 주먹을 쥔 후 손가락을 밖으로 하나씩 펴 가며 센다. 손가락을 밖으로 펴는 방법에도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유럽과 남미의 칠레 사람들은 엄지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새끼손가락까지 차례로 펼쳐 나가지만,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사람들은 새끼손가락을 먼저 펴고 마지막에 엄지를 편다. 미국이나 캐나다 사람들은 검지부터 펴기 시작해서 새끼손가락까지 넷을 센 후 다시 엄지를 펴서 다섯을 센다. 중국은 우리와 같은 동양문화에 속하지만 수를 세는 단위가 다른 나라들보다 발달해 있다. 보통의 경우 한 손을 조합해서 나타낼 수 있는 수가 다섯밖에 없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 손에 아홉까지 만들 수 있다. 즉, 우리 나라 사람은 여섯을 만들 때, 한쪽 손의 손가락을 모두 펴고 다른 쪽 손의 손가락 한 개를 펴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 손만 이용해 주먹 쥐고 엄지와 새끼손가락만을 펼친다. 일곱은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만들고, 여덟은 엄지와 검지만을 펼쳐 손바닥이 자신을 향하도록 해서 만들며, 아홉은 검지를 펼쳐 끝을 약간 구부려 만든다. 중국 사람도 열은 두 손을 이용해서 오른손의 검지와 왼손의 검지를 서로 겹쳐 열십(十)자로 만든다.

이러한 여러 방법은 새끼 손가락을 굽히고 펴는데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에겐 어려운 방식으로 불편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의 다름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의 차이로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즉, 거스름돈을 지불하는 방법과 손으로 숫자를 세는 방법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나가는 방법과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가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앞의 것은 완전한 것을 대상으로 해서 자꾸 작아지는 것으로 인식하는 방법으로 내향적 문화, 소극적 문화의 산물이고, 뒤의 것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모아가는 방식으로 외향적 문화, 적극적 문화의 산물이다. 이러한 현상은 언어 전반에도 잘 나타나는 일반적인 인식의 차이일 뿐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말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 등의 완결된 구조를 미리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 낱말을 집어 넣는 방식이라면, 영어는 주어 뒤에 서술어만 놓고 다시 덧보탤 성분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말은 꾸미는 말이 앞 쪽에 놓이지만, 영어는 꾸미는 말을 뒤에 덧보태서 무한히 길어질 수 있다. 주소의 표기, 날짜의 표기 등에서도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말 고유어로 셀 수 있는 가장 큰 숫자는 아흔 아홉이다. 예전에는 백(百)을 뜻하는 '온'과 천(千)을 뜻하는 '즈믄', 만(萬)을 뜻하는 '골', 억(億)을 뜻하는 '잘', 조(兆)를 뜻하는 '올'도 있다고 하지만 '온, 즈믄'은 이미 사라진 말이며, '골, 잘, 올'은 최현배님이 밝힌 것으로 구체적으로 확인이 안 된 것도 있다. 한 자릿수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이고 두 자릿수는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이다. 그런데 영어에는 둘(two)과 스물(twenty)은 의미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은 의미적으로 동일한 어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 둘과 스물, 넷과 마흔, 다섯과 쉰 사이의 형태적 유연성이 없다. 셈말의 경우 모든 사람이 쉽게 인지하고, 기억하기 편리하도록 형태적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경상도말은 기본적인 수를 세는 방법에도 다른 지역보다도 형태적 유연성이 많다.

먼저 '하나, 두나(둘), 시나(셋), 니나(넷), 다앗나(다섯), 여엇나(여섯), 일곱나(일곱), 여덜나(여덟), 아곱·아옵나(아홉), 열나(열), 시물나(스물), 서런나(서른), 마안나(마흔), 쉰나(쉰), 여신나(예순), 이런나(일흔), 여던나(여든), 아언나(아흔)'와 같이 '하나'의 어형의 '-나'가 '두, 시, 니, 다앗, 여엇, 일곱, 여덜, 아옵, 열, 시물, 서런, 마안, 쉰, 여신, 이런, 여던, 아언'에 동일하게 붙어 있어 형태적으로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 여기서 '나'는 '-낱'에서 나온 말로 추정된다.

이러한 형태적 유연성은 '하니, 두리, 서이, 너이, 다아, 여어, 일고비, 여더리, 아고비, 열이' 등에서 나타난다. 이는 '하, 두, 시, 니, 다앗, 여엇, 일곱, 여덜, 아옵, 열'에 '-이'를 붙여 세는 방법인데, 다섯이나 여섯에는 '다이, 여이' 혹은 '다앗이, 여엇이' 등으로 나타나지 않고 '다아, 여어'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이하다. 또 이러한 방법은 열까지만 세는 것에만 나타나고, '스무리, 서른이, 마흐니' 등과 같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또 숫자 세기는 입을 통해 나타나므로 노력절감을 위해 '다섯'을 '다' '여섯'을 '여'라고 하여 '한, 둘, 세, 네'와 같이 한 음절로 발음하는 경향도 나타나며, 발음이 약한 'ㅎ'은 탈락되기도 한다. 즉, '다서, 다아, 다(다섯), 여서, 여어, 여(여섯)' 등에서는 'ㅅ'이 약화되거나 탈락되어 나타나지 않고, '아옵(아홉), 설언(설흔), 마언(마흔), 일언(일흔), 아언(아흔)' 등에서 'ㅎ'이 약화되어 들리지 않는다.

경상도 말의 차례를 나타내는 말은 '첫채, 두채, 시채, 니채, 다아채, 여어채, 일곱채, 여덜채, 아곱채, 열채' '다섯분채, 여덜분채, 아옵분채', '첫채뿐, 니채뿐, 아옵채뿐' 등이다. 여기서는 다른 지방의 '째'가 '채'로도 나타나고 '번째'도 '분채'로도 실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간혹 '분채'가 '채뿐'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다른 지방 '째 번'의 변이형이다.

경상도말에서도 '한둘, 두우(두개 정도), 서너, 너댓, 대앳(다섯 정도), 여나무(열남짓)…' 등과 같은 어림수가 사용된다. 어림수는 추상적 인식의 표현으로 객관적이지 못한 대상을 지칭하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사
 
고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림수는 대상의 개수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거나 상황에 따라 다른 조건이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들을 이를 배려한 언어 책략으로 보인다.

즉, '여나문 개 가 온나'는 열 개를 기준으로 하고 나머지 한 두 개 정도는 듣는 사람이 상황에 따라 더 가지고 올 수도 있고 적게 가지고 올 수 있는 배려가 있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투리의 미학 <43> 경상도의 개이름 부르기

 
중국을 여행하는 기업인은 베이징에 오면 우선 북경 시내에 다니는 개와 고양이의 수를 세고 다닌다고 한다. 물론 먹거리로 생각하고 개와 고양이를 세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중국의 개방 속도와 생활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일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개는 고양이보다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서는 고양이가 많고 부자인 나라에서는 개가 더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거리에 개가 많으면 생활수준이 좀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경제의 지표로 삼을 수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문화 혁명 시대에 개를 부르주아의 상징이라 하여 마구 죽이기도 했다. 사람도 먹을 것이 없는데,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가진 사람들이라 취급되어 수난을 당하기도 하고 북경의 거리에 개가 없어지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개띠'인 '도쿠가와 쓰네요시'가 개를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여 '동물 애련법'을 제정해 개고기를 먹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도쿠가와 쓰네요시'가 '개장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덕분에 일본은 개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고 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개고기를 식용으로 하지 않는 나라로 남았다. 물론 개고기 대신 말고기를 '사쿠라 고기'라 해서 즐겨 먹지만.

개의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경제 발전에 따라 생활이 넉넉해진 탓에 개가 애완용으로 사랑받고 가족의 구성원으로 사람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특히 미국 아이들에게 가족수를 물으면 자신의 식구에 개를 더해 답하기도 한다. 심지어 개가 가족처럼 상속을 받아 거부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 다르게 바뀌고 있다. 개를 집안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는 경우도 많고 보신탕집에 비해 가축병원도 많이 늘고 있다. 개를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해 생일을 챙기고 장례를 치르는 등 가족의 일원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만큼 우리 나라의 경제적 수준이 높아진 탓이다.

요즘 개에 대한 인식과 대접이 다르다고 생각되는 증거로 개를 부르는 이름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금의 개는 '삼순이' '삼식이' '아지' '초롱이' 등 사람에게 붙이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다. 짓궂은 사람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개 이름으로 붙여 화풀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개가 사람의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개가 사람 대접을 받고 있다는 증거 중의 하나이다.

예전에는 개 이름이 대부분 '점박이, 얼룩이, 누렁이, 바둑이' 등이었다. 주로 부르는 동요에도 '누렁이 바둑이' 등으로 나오는 친근한 이름도 알고 보면 개의 특성과 색깔, 형태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개 이름을 사물을 인식하고 명명하는 방법에 따라 명명한 것은 개가 사람과 다른 물건이라는 구별인식에서 기원한다. 그래서 아무리 사랑스런 개라도 사람이 아니니 요즘과 다르게 개 취급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경상도에서 개 이름을 영어식으로 '도꾸, 메리, 쫑'으로 부른 적이 있다. 간혹 '해피'라고 하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개 이름은 미군 부대에서 기르던 개의 명칭이 그대로 알려지면서 민간에게도 그대로 쓰인 것인데, '도꾸'는 '개(dog)'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메리와 쫑'은 그 어원이 아리송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암컷에 붙이는 '메리(Mary)'는 '미국 여성'을 대표하는 미국식 이름이고, 수컷에 붙이는 '쫑'은 '미국 남성'을 대표하는 '존(John)'의 우리식 발음이다. '해피'는 '행복'이라는 일반적 명칭이다. 여기서 이름으로만 보면 '도꾸'나 '해피'는 보통의 개로 취급할 수 있는 이름이고, '메리'나 '쫑'은 가족처럼 대하는 개라서 조심스럽게 취급해야 할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경상도에서 개를 부를 때 그 이름을 사용하지만 특정한 이름을 모를 경우는 '워리'라고 하기도 한다. 또 개를 쫓을 경우는 '유개'라고 소리친다. 경상도에서 개 이외의 다른 동물은 그 이름이 없이 특정한 의성어를 사용해서 부른다. 예를 들어 소를 부리는 소리는 '어디여, 워더떠, 워띠'라고 부르고, 송아지를 부르는 소리는 '워이미'라고 한다. 염소를 부르는 말은 '담바담바, 얌얌' 등으로 사용한다.

이처럼 사물에 대한 명명은 단순한 지칭어가 아니라 인식의 반영이다. 중요한 것은 개가 사람의 이름을 가지는 것은 경제 발전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사람이 개로 지칭되는 것은 사회가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살벌한 현상이다.

#곤충 이름

버마재비는 범+ 아재비= 사마귀
범털이는 범+털이=장수 잠자리

 

'버마재비'와 '범털이'는 어떤 곤충을 뜻하는가?
'버마재비'는 '사마귀'를 뜻하고 '범털이'는 '장수 잠자리'를 뜻한다. '버마재비'는 원래 '범+아재비' 즉, 범의 삼촌이라는 뜻이다. 사마귀는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 무섭게 생긴 곤충이라서 무엇이든 잡아먹는 무서운 '범'의 친척으로 명명한 것이다.

'장수 잠자리'를 '범털이'라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다른 잠자리보다 큰 잠자리인 '범털이'는 '범+털이'로 구성된 말인데, '털이'는 '처리, 철기' 등으로 부르는 잠자리를 뜻하는 말이다. 참고로 보통 잠자리를 부를 때는 '다이다이'로 하지만, 장수잠자리를 부를 때는 '나리나리'로 하기도 한다.

사투리의 미학 <44> 신세대어와 어원

사투리는 늙은 사람만이 쓰는 옛말의 화석이 아니고 그 지역의 신세대와 구세대가 만들어 가고 있는 살아있는 말이다.

특정한 사투리가 젊은이들의 입말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변이되는 한 사투리의 명맥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 '앵통하다'는 '애통(哀痛)하다'에서 어두 음절에 'ㅇ'을 첨가하여 강화시킨 꼴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원통(寃痛)'이 '앤통'으로 발음되다가 다시 '앵통'으로 음운 변이한 꼴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억울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언성시럽다'는 '몸서리나다, 지긋지긋하다'는 뜻인데, 원래 원망하는 목소리가 날만큼 지긋지긋한 상태를 말하는 '원성(怨聲)스럽다'에서 변이된 꼴로 보인다.

 

 


인터넷에 쓰이던 게임 용어가 일상적인 말로 굳어져 대화에도 많이 쓰이고 있다.

먼저 '즐'이란 말은 '즐기다'는 말의 어근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데, 옆으로 눕혀 'KIN'으로 쓰기도 하는 단어이다. 나이가 많은 세대는 이러한 단어가 어법에 맞지 않는 신조어로서 세대간 사용 언어 차이를 크게 하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세대어는 나름대로의 문법을 가지고 있고, 짧은 입력에 의한 인터넷상 최대의 효과 수단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되는 표현 방식이다.

즉, '즐'로만 단독으로 말하면 '너 혼자 즐겨'란 의미로 '꺼져, 저리가' 등의 의미로 쓰이지만 '즐겜, 즐공, 즐넷'으로 '즐'이 다른 행위와 같이 쓰면 '즐겁게 게임합시다. 즐겁게 공부하시오, 즐거운 인터넷' 등과 같이 긍정적으로도 쓰인다. 우리말이 가진 조어력을 충분히 발휘한 쓰임새이다.

또 어미 '-삼/샴'도 요즘 자주 쓰이는 말인데, '안녕하샴', '공부하삼'으로 나타난다. 이 '-샴'은 높임의 뜻과 낮춤의 뜻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의 말로 상대를 모르는 상태에 말을 건네는 방법으로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이 높임의 어미에 의해 서로의 관계를 결정하기 때문에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샴·삼'의 표현은 관계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효율적인 형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터넷 언어는 주로 입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구어체의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사투리도 빈번하게 나타나 언어의 오용 측면에서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에 통용되는 말은 그 어원을 알기 어려울 뿐 아니라 여러 지역의 사용자가 자신의 말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개인어인지 사투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빡시다(힘들다, 억세다). 종이를 줏어와라(주어 오너라), 뻘쭘하다(어색하다), 깔롱지기다(멋을 부리다), 부끄(부끄럽다)' 등이다. 이 중에 '빡시다, 뻘쭘하다, 깔롱지기다'는 사투리에 관계된 말이고 '줏어와라, 부끄' 등의 말은 입말을 그대로 쓰거나 줄여 쓰는 경우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단어는 경상도 말이 신세대에 유행되어 쓰이는 경상도 신세대어로 보인다.

먼저 '빡시다'는 '힘들다, 억세다, 뻑뻑하다' 뜻의 경상도에서 주로 쓰는 말이다. 주로 '뻑시다'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뻑뻑하다+세다'가 어원으로 물건이 억세고 성겨서 다루기가 힘들 경우에 쓰는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사람이 너무 엄격하거나 융통성이 없는 경우에도 사용되며 어떠한 일을 감당하기 힘든 경우에도 쓰인다. 이 사투리가 주로 군대에서 많이 통용되어 일반 사람들은 군대에서 쓰는 말로 오해하기도 한다.

'뻘쭘하다'는 '계면쩍다, 뻣뻣하다'는 의미인데, 표준어 '버름하다'에 대응하는 단어로 보인다. 그러나 '사이가 벌다'는 뜻의 '버름하다'에서 '뻘쭘하다'로의 변이를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 단어가 다른 어원을 가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뻘쭘'이 '어색하거나 뻣뻣하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아 '툭 튀어나오다'는 의미의 '불룩하다'나 사이가 멀다는 뜻의 '벌어지다'와 관계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참고로 경상도 말에서 '불룩 튀어 나온다'는 뜻으로는 '뻘룸하다'가 쓰인다.

'깔롱지기다'는 '깔롱대다' 혹은 '깔룽대다'의 '멋을 부리다, 재롱을 부리다'는 뜻의 경상도 말이다. 이 말은 지나치게 화장을 하거나, 옷을 화려하게 입은 경우에 쓰이는 것이 보통이고 어린 아이가 재롱을 부리거나 어른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을 할 경우에도 쓴다.

이 말을 '깔롱지기다'로 쓰면 부정적인 의미로 지나치게 눈 밖에 날 경우를 빈정대며 하는 말이다. 이 단어는 '깔롱'이라는 말로 전국적으로 분포하는데, 남과 다르게 멋을 부리고, 재롱을 부리는 행위를 그대로 지칭하고 부정적인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사투리는 늙은 사람만이 쓰는 옛말의 화석이 아니고 그 지역의 신세대와 구세대가 만들어 가고 있는 살아있는 말이다.

특정한 사투리가 젊은이들의 입말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변이되는 한 사투리의 명맥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 '앵통하다'는 '애통(哀痛)하다'에서 어두 음절에 'ㅇ'을 첨가하여 강화시킨 꼴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원통(寃痛)'이 '앤통'으로 발음되다가 다시 '앵통'으로 음운 변이한 꼴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억울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언성시럽다'는 '몸서리나다, 지긋지긋하다'는 뜻인데, 원래 원망하는 목소리가 날만큼 지긋지긋한 상태를 말하는 '원성(怨聲)스럽다'에서 변이된 꼴로 보인다

 

사투리의 미학 <45> 어원과 사투리

 
민요 '아리랑, 쓰리랑'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답은 '아라리'다.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가 낳네(났네)"에서 확인되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와 이미지인 '아리랑, 쓰리랑'의 어원은 알령 고개, 아랑 기생 등의 이별과 관련된 소재로 해석되거나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고운 님'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어원은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아리랑'은 우리말이 어원이 아니라 시베리아 남부에 살고 있는 중국의 소수민족 에벤키족 언어에서 기원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어 흥미롭다. 즉, 에벤키어에서는 '아리랑(alirang)'을 '맞이하다'는 뜻으로 아직 쓰고 있고, '쓰리랑(serereng)'은 '느껴서 알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무엇인가 맞이하고 느껴서 알고 참아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아리랑, 쓰리랑'은 고대 샤머니즘의 장례문화에서 '영혼을 맞이하고 이별의 슬픔을 참는다'고 해석될 수 있음이 제기됐다. 이 사실에서 우리가 뜻을 모르고 민요 후렴구로만 사용해 왔던 '아리랑 쓰리랑'이 시베리아 에벤키어에서 기원한 주술적이고 제의적인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그 동안의 민간 어원적인 좁은 해석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동화 속에 나오는 '신데렐라(cinderella)'는 착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이름이다. 신데렐라는 프랑스 말로 '상드리용(cendrillon)'이라고 하는데, 비음과 유음으로 이루어져 청각영상도 아름답게 들린다. 그런데 이 신데렐라의 이름을 어원으로 해석하면 '재투성이의 소녀'로 별로 아름답지 못한 이름이다. 신데렐라는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부엌의 재를 둘러쓰기 때문에 '재투성이'란 이름으로 불리었다. '재(cinder)+소녀(-ella)'가 신데렐라의 어원이다.

또한 '딴따라'는 연예인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이 '딴따라'가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낸 순수한 우리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말에는 나발을 부는 소리는 '따따따'로 나지 '딴따라'로 나지 않는다. 이 'tantara'는 '나팔이나 뿔 나팔 등의 소리'를 흉내는 말로 영어의 의성어 'tantara'에서 온 말이다. 소리의 어감이 서로 비슷해 생기는 오해이다.

'이쑤시개'를 뜻하는 일본말 '요지'는 '楊枝'(양지, ようじ)로 쓴다. 근데 이 '양지'는 우리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옛날 우리 나라 말에서는 소독의 효과가 있는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청소했는데 이를 '양지'라 하였다. 그 후 '양지'에 행위를 나타내는 '-질'을 붙어 '양지질'로 쓰였다. '양지질'로 쓰던 말이 원래의 버드나무와 관련성이 약해지자 사람들이 이(齒)를 연상해서 '양치질'로 그 어원을 이해해서 지금까지 고정되어 온 것이다. 같은 어원으로 출발한 말이 일본에서는 이를 깨끗이 하는 '양지'로 그대로 남아있지만 우리말에서는 '이를 닦는 행위'로 바뀌어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단어에 숨겨진 어원이 올바르게 인식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원래의 어원과 다르게 해석되거나 이해되는 것을 민간어원이라 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잘못된 어원'이란 뜻이다. 이러한 잘못된 어원은 글자형태의 유사함이나 어감에서 연상되는 경우가 많아서 원래의 어형을 밝혀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 경상도 말에서도 이러한 단어는 많이 보인다.

'김행물, 혹은 기맹물, 기영물'로 나타나는 그릇 씻은 허드렛물은 원래 그 어원이 '기명(器皿)+물'이다. '기명'은 '살림살이에 쓰는 온갖 그릇붙이'를 말하는 한자말인데, 이것을 경상도 사람들이 '기맹'으로 발음하게 되고 나중에 '기영'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김행물'은 '기맹물'을 첫소리를 강하게 발음하는 습관적 현상을 청각영상에 따라 옮긴 것에 불과하다. 표준어로 바꾸면 '개숫물'이나 '설겆잇물'에 해당한다.

'행지포, 행지피'는 '그릇을 훔치거나 씻는데 정하게 쓰는 헝겊'인 '행주'에서 온 말이다. '행지포'는 '행지+포'로 구성된 말로 '행주'의 사투리인 '행지'에다가 수건이나 헝겊을 뜻하는 '포'(布)가 덧보태어 만들어진 말이다. 즉, '행지'의 뜻을 좀더 두드러지게 만들기 위해 '헝겊'의 '포'를 덧보탠 꼴이다. 여기서 '헝겊'은 원래 '헌+것'이 어원인데, 이 '헌것'이 나중에 '헝것'으로 변하게 되고 이것이 다시 '헝겊'으로 받침이 바뀐 것이다. '행지피'는 행지포의 변이형이다.

경상도에서 '개랄 힌 조시'(달걀 흰자위)할 때 '조시'도 '알맹이, 핵심'을 뜻하는 ''에서 나온 말이다. ''는 나중에 '자위'로 바뀌어 눈자위 등에도 쓰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또 경상경상도말에서 '허수아비'를 뜻하는
'허새비'도 원래 '헛(가짜) +애비(아비)'가 어원이다.

이러한 '헛'의 가짜, 거짓의 의미는 '허늉'이라는 말에서도 그대로 쓰여 '시늉'의 다른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경상도 말의 특이한 어형은 특정한 어원이 다른 지역과 차이나는 형태로 발음되고 변이되어 나타난 것일 뿐이다.


# 원문

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이 (글로써) 일러 말하고 싶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나날이 씀에 있어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 전라도
시방 나라말쌈지가 떼놈들 말하고 솔찬히 거시기혀서
글씨로는 이녁들끼리 통헐 수가 없응께로
요로코롬 혀갖고는 느그 거시기들이 씨부리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거시기헐 수 없은께 허벌나게 깝깝허지 않것어?
그렇고롬혀서 나가 새로 스물여덟자를 거시기했응께
느그들은 수월허니 거시기혀부러 갖고 날마동 씀시롱 편하게 살어부러라

 

  사투리의 미학 <46> 비합리성의 합리성-

 
높은 산에 올라가 기우제(물제)를 지내면 비가 올까?

많은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사고가 비는 심리적인 기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믿는 합리성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기우제는 비를 오게 할 개연성이 있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먼저 기우제는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올라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이 산꼭대기에서 피우는 먼지가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 기우제를 지낼 때는 많은 짚을 쌓아 두고 불을 피우는 행위가 꼭 들어가는데, 산 위에서 불을 피우는 행위에서 발생한 많은 연기와 재의 탄소 알갱이가 하늘에 올라 구름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에 비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일상생활을 원망보다는 기대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설령 비가 오지 않을 경우엔 자신들의 정성이 부족하거나 부정을 탄 경우이니 다시 정성으로 기원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이처럼 비합리적인 주술 행위로 보이는 일들이 과학적, 심리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석에도 이러한 비합리적인 행위들이 많다. 먼저 4700만명의 국민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3500만명이 이동을 해서 전국적으로 교통대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고향으로 수십 시간 달려가서 단 몇 시간 동안의 차례를 지내고, 다시 수십 시간 걸려 돌아오는 행위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인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복도 그렇다. 남자 한복을 입을 때 대님(가불때이, 다님)을 매고 바지를 끈으로 매는 행위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여자들도 긴 한복을 가슴부터 입는 것에서 시작해 폭넓고 긴 치마가 부엌에서 일하거나 볼 일을 볼 때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반달 송편도 그렇다. 송편은 달을 보고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작된 음식이라 한다면 송편의 모양이 반달이 되는 것이 이상하다. 중국 사람들이 월병(月餠)이라 하여 둥근 달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는 것처럼 송편은 보름달처럼 둥근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먼저 한복부터 생각하자. 한복에서 불편하게 보이는 요소는 끈으로 맨다는 점과 주머니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주머니는 천의 재활용과 관련해서 이해될 것이고 끈과 대님은 건강과 관련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한의학적으로 끈을 허리에 매고 신장 부위을 자극하거나 끈으로 발목을 자극하면 살이 찌지 않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머리에 끈을 동여매고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우리네 습관을 생각하면 동여매는 일은 피상적인 불편함보다 보이지 않는 건강함에 있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송편은 원래 솔잎을 깔고 찐다고 송편(松)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송편은 '손으로 빚는 떡'이라는 뜻으로 '손편'에서 바뀐 말이다. 우리 경상도에서는 '생편'이나 '생핀'이라고 하는데 이 송편에는 손자국이 드러나게 빚는 기원적 의미의 떡이다. 떡의 흰색과 더불어 반원은 완전함을 바라는 기수 문화의 반영물이다. 기수 문화란 양수인 홀수를 선호하는 문화로 완벽한 완전함을 추구하는 짝수(우수)문화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와 일본 사람들은 축의금이나 부조금을 1, 3, 7, 9 등의 홀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내어 놓지 절대 짝수로 내지 않는다. 더욱이 일본 사람들은 짝수의 선물을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생각한다. 또 우리도 음식물의 가짓수도 3첩상, 5첩상, 7첩상 등으로 홀수로 맞춘다. 그러나 짝수 문화권의 중국에서는 선물을 홀수로 주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며 초대한 손님과 음식의 가짓수도 짝수이어야만 한다. 이런 이유로 중국에서는 완전한 보름달 모양의 월병을 만들고 선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우리 나라에서는 반달의 송편을 만들어 소원을 비는 것이 자연스런 행위가 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엄청난 교통난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가는 행위도 반달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름달 같이 완전하게 되어 가길 소망하는 의식의 일종이다. 이러한 의식은 비합리적인 고통을 다 감쇄할 만큼의 정신적인 위안과 넉넉함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인 행위이다.

경상도 말에도 이러한 합리성이 반영되어 있다.

송편을 부패하지 않게 만드는 소나무 가지를 '솔까지(관솔)'라 하고 마른 소나무 땔감을 '소깝' 혹은 '소깨비'라고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소나무'라고 하지만 유독 경상도 지역에서만 '솔나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엔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솔+나무'를 '소나무'라 발음하는 이유는 '솔라무'라고 소리가 변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ㄴ' 앞에 있는 'ㄹ'을 탈락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소리를 끊어 발음하는 경상도 사람들의 습관에는 '솔나무'는 자연스러운 발음이 된다. 이런 발음은 '솔가치' '솔방울'과 같은 어형과 동일한 형태인 '솔'을 유지하여 기억하기도 편한 장점이 있다. 또 목요일이 '모교일'로 발음되지 않고 '몽요일'로 촌스럽게(?) 나타나는 발음도 이와 같이 첫음절을 끊어 읽는 버릇 때문에 나온 자연스런 형태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부침개'를 '찌짐, 찌지미'라고 하는데, 원래 불에 달군 판에 기름을 바르고 전 따위를 부쳐 익혀 만드는 방법은 '지지다'이지 '부치다'가 아니다. '부치다'는 번철에 기름을 바르고 얇은 빈대떡, 저냐(전유어), 전병(煎餠) 따위의 음식을 익혀서 만드는 것이라서 가자미(까지매기), 두부(조피, 조포) 등 두꺼운 음식을 기름에 익히는 것은 부치는 행위가 아니라 지지는 행위이다. 이러한 지지는 행위는 '찌지다' <
로 첫소리가 강화되어 나타나고 이 '찌지다'를 '-ㅁ'을 붙여 명사로 만든 것이 '찌짐'이다.

경상도 일부 지방에서 젯상에 사용되는 '상어고기'를 '돔배기, 톰배기, 덤비기'라고 하는데, 이것은 '도막(토막)+이'에서 변한 말로 상어의 토막 고기란 뜻이다. 이것도 바다에서 가장 힘센 상어 고기를 토막내어 조상께 바침으로써 자신들의 지극한 정성을 보이고 음덕을 바라는 순순한 기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추석과 관련된 비합리적인 행위와 불편함, 그리고 어색한(?) 사투리는 나름대로의 합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유산이다.

 

사투리의 미학 <47> 응가와 엉가

 
'응가'는 변(똥)의 유아어이다. 유아어는 아이들이 인식하기 쉬운 동작이나 소리, 모습을 언어로 단순화한 말인데, 이 '응가'는 아랫배에 힘을 주는 소리를 흉내 낸 것이다. 참고로 오줌 눌 때 하는 유아어인 '쉬'도 오줌이 나오는 소리를 흉내 낸 말이다. 더러운 것이라고 금지시킬 때 내는 소리인 '지지'도 의미없는 저지의 소리이며, '맘마'도 무엇인가 먹는 소리를 흉내 낸 말이다. 또 '빠빠, 찌찌'도 주로 입술소리만 발음하는 유아들의 특성상 해당 단어인 '밥, 젖'을 쉽게 발음한 반복형이다.

인간은 자신의 몸속에서 나오는 응가를 가장 더러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인간의 응가는 비타민 B가 풍부해서 개들도 좋아하기도 한다. 특히 아이들의 응가는 몸속에서 소화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해 더 많은 영양가가 있다고 한다. 동물 중에는 자신의 '응가'를 먹는 동물도 있는데 바로 귀엽고 예쁘장한 토끼다. 이 토끼가 혼자 있을 때 오물거리며 씹고 있는 것이 자신의 '응가'인데, 이 '응가' 속에는 영양분이 풍부해서 이것을 되새김질하지 않으면 영양실조에 걸린다고 한다. 반대로 똥개들이나 똥돼지들은 사람의 '응가'만 먹으면 영양실조에 걸린다. 놀랍게도 용맹한 호랑이도 자신이 초식동물이 아닌 관계로 자신이 직접 섭취할 수 없는 식물성 섬유질을 섭취하기 위하여 초식동물이 소화시킨 '응가'를 먹는다. 호랑이가 응가를 먹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우습다.

요즘 이 '응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화제의 내용은 모 텔레비전 방송의 지식 프로그램 '스펀지'에서 시작되었다. 이 스펀지에서 나온 사투리에 관한 내용은 두 가지였다. 먼저 방송된 하나는 "밀양의 시내 버스는 □□□이다"는 것인데 이것은 여러 사람들에 많은 관심을 끄는 사투리가 아니라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네모에 들어갈 말은 '마이콜'이었는데, 이 '마이콜'은 밀양 사람들이 시내에 다니는 작은 버스인 '마이크로버스'를 줄여서 '마이콜'이라 부른 것에 불과했다. 물론 시외를 다니는 큰 시내버스는 '버스'라고 한다.

'마이콜'이 만화 '둘리'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과 같아서 신기해했지만 웃음을 자아낼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에 나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 내용은 "진주에서 언니를 □□라 부른다"이었는데 네모 안에 들어갈 말이 '응가'였다. 방송의 내용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응가'와 언니의 '응가'와 높낮이를 비교해서 언니의 '응가'는 앞이 높은 성조이고 그냥 '응가'는 앞이 낮고 뒤가 높은 성조임을 구분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방청객들이 '응가' 소리가 나올 때 마구 웃어댔고 프로그램에 참가한 연예인들도 무척 재미있어 했다.
그 뒤 진주의 시청자들은 지방 사람이 쓰는 사투리를 희화해서 진주의 이미지를 비하시켰다고 분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진주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예전에는 이 말을 썼을지 몰라도 지금은 안 쓰는 말이라는 점, 설령 '응가'라는 말을 쓴다하더라도 일부 사람만 쓰는 데 전체 진주 사람이 다 쓰는 것으로 일반화한 점, 인터뷰를 한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상황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연출해서 웃기게 만든 점, 원래 발음인 '은가'를 굳이 '응가'와 구분하여 발음시킨 점 등이었다. 이렇게 문제가 된 것은 예전에 비해 지역 사람들의 사투리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면서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내용까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음을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간과한 탓이다.

먼저 이 '응가'는 원래 '언가'나 '엉가'의 잘못된 형이다. 경상도 지방은 'ㅡ'와 'ㅓ'가 변별을 이루지 못하고 중간발음으로 굳어지는데, 이것을 굳이 '응가'로 고정한 것은 잘못이다. '언니'를 '엉가'로 부르는 지역은 진주를 비롯하여 의령 함안 사천 등지이다. 또 진주, 사천 등지에서는 형도 '언가, 엉가'로 부르는 곳도 있다.

경상도 밀양 김해 거제 사천 산청 하동 진주 통영 의창 함양 등지에서는 형과 언니를 둘 다 '헹아, 헹님, 헹이, 세이, 성아' 등으로 통칭하여 부르는데, 이는 자기 가족 중에 나이가 많은 형제, 자매를 구분없이 친밀하게 부르는 명칭으로 긴밀한 가족 인식에 기인한다.

'엉가'는 원래 '형'에서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형'은 첫소리인 'ㅎ'이 원래 약한 소리가 되므로 첫음절을 높고 강하게 발음하는 경상도 발음의 속성에 따라 좀더 합리적인 음절로 구개음화시킨 '성'으로 나타난다. 이는 '향불'도 '상불'이 되고 '힘줄'이 '심줄'이 되고 '흉년'이 '숭년'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성'이라는 말에 '-아'가 붙어 '성아'로 나타나고, '-이'가 붙어 '성이'로 나타나는데 이 '성이'가 '세이'로도 나타난다. 그런데 앞의 '성아'는 'ㅅ'이 탈락되어 '엉아'가 되고, 이 '엉아'가 부르는 말로 강화된 것이 '엉가'이다.

또 '형'은 '헹'으로 발음되는데, 이는 경상도 음절 구조에 맞게 단모음화 시킨 꼴이다. 이 '헹'은 일부 지역에서 부름말을 붙여 '헹아', '헹이'로 나타난다.

'엉가'가 '언니'에서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언니'가 'ㄴ'이 약화되어 '어니'로도 나타나고, 더 나아가 '어이'로도 나타나기도 하는데, '어니'에서 '어니+아'가 다시 '언가'로 바뀐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경우 합리적인 설명이 어렵기 때문에 '엉가'는 '엉아'에서 온 말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참고로 '형'은 경상도에서 '헹'(거창 합천 창녕 밀양), '헹님'(울주 의창 김해 양산 남해 통영 거제), '헹임'(고성), '헹아'(산청 의령 함안), '성아'(하동 진양), '엉가'(진주 사천) 등으로 부르고, '언니'는 '언니'(울주 의창), '어니'(거창 합천 창녕 밀양 산청 의령 김해 고성 남해 통영), '어이'(의령), '헹아'(밀양), '헹이'(김해), '헹님'(거제 사천), '엉가'(진주 사천 의령 함안), '성아'(산청 하동 진주 통영), '성이'(의창), '세이'(함양) 등으로 부른다.

영화 '월컴투 동막골'에서 강원도 사투리가 재인식되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한 것처럼 영화나 방송의 사투리는 영향력이 강하다.
여러 방송에서 흥행을 위한 목적으로만 다룬다면 사투리는 또 다른 편견을 조장할 뿐이다.

사투리의 미학 <48> 미인과 사투리

 
 
툭진 사람(뚱보)이 완벽한 미인?

아프리카 투어레그족의 여인들은 120㎏만 넘으면 완벽한 미인으로 대접받아 평생 일을 안 하고 남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또 아프리카 모리타니 여성은 100㎏ 이상이 되어야 미인이 되기 때문에 결혼 적령기의 여인들은 많이 먹어 살을 찌운다. 또 태평양의 피지, 파푸아뉴기니, 미크로네시아의 추크 군도에서도 모계사회의 전통에 따라 여자들이 집안일을 안 하고 살만 찌우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며, 멕시코의 타라후마라 지역에서는 '아름다운 허벅지'를 가진 여인을 미인으로 치는데 여기서 아름다운 허벅지는 굵고 두꺼운 허벅지로 뚱뚱한 여성을 말한다. 비만이 풍요의 상징이고 사회적 지위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농경사회나 유목사회의 관습이다. 건강한 여성이 마른 여성에 비해 노동력이 강할 뿐 아니라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결혼 시에 최고의 신부감으로 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다리가 예쁜 사람을 미인으로 치고 일본에서는 가슴이 예쁜 사람이 미인이며 우리 나라는 얼굴이 예쁜 사람이 된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다리가 굵은 여자는 아무리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더라도 미인의 축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아이를 기를 때 다리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 아이를 안아 기르거나 등에 업을 때도 다리를 일자로 해서 업고, 다리를 헝겊으로 동여매 재우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예쁜 사람보다 귀여운 사람이 미인의 기준이 된다. 또 가슴이 예쁜 여자가 미인이라고 해서 가슴 성형 수술을 하거나 가슴 크게 하는 '뽕브라'가 유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한다. 한국 여자는 얼굴을 돋보이기 위해 화장을 짙게 하며 쌍꺼풀 수술과 코 높이는 수술이 성행하며 안면 윤곽 교정술까지 성행하는 것도 얼굴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 한다. 서양 사람은 여행지에서 우리나라 여자와 일본 여자를 짙은 화장 여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화장을 짙게 할수록 한국 여자란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굴이 중요한 미의 척도이다.

이러한 차이는 전통의상에서도 나타나는데, 중국옷인 치파오는 옆이 트여 허벅지가 노출되어 당연히 각선미가 부각되고, 일본의 기모노는 굵은 허리띠를 매기 때문에 가슴이 두드러지게 보이고, 우리의 한복은 가슴부터 엉덩이까지 모든 신체를 가리므로 얼굴만 중시되게 된다. 이처럼 미인에 대한 기준이 사회적으로 다른 이유는 문화 환경, 교육, 학습 등을 통해 미의 의식이 문화권별로 다르게 학습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사투리도 동일한 행위나 사물이 지방의 문화적 습성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거나 변이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옥수수'와 '강냉이'의 경우 원래 '밭에 있거나 통째로 찐 것'은 '옥수수'이고 그 낱알은 '강냉이'이지만 경상도 사람들은 '강넹이'로 통합해 사용한다. 그 대신 이것을 튀긴 것(경상도에서는 튀방이라고 한다)은 '박상'이라고 하여 분화시켜 사용한다. 이 '박상'은 '박산'(薄 )이라는 한자어에서 온 말이다. 경상도 지역은 옥수수의 산지가 아니라 구태여 옥수수를 분화시킬 필요가 없고 그 대신 낱알과 그것을 튀긴 것이 더 많이 유통되기에 더 자세히 분화시킨 것이다.

또 우리말에 '결혼한다'는 말은 원래 서로 혼인할 것을 결정하는 것이고, '혼인한다'는 말은 '혼(婚)'과 '인(姻)' 즉 '신부집'과 '신랑집'을 가는 행위로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함경도 지방에서는 남자들은 '서방 가다, 서방 보내다'로 말하고 여자들은 '시집 가다, 시집 보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 지역의 민며느리나 데릴사위제도의 잔재로 보인다. 다른 지방에서는 보통의 경우엔 '장가가다, 시집가다'는 말을 쓰면서도 유독 딸에 대해서는 '딸 팔다'라고 하거나 '딸 치우다'는 말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딸 팔다'는 제주도 지역에서 쓰는 말이고 '딸 치우다'는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쓰는 말인데, 이 말 속에는 가부장적 사회의 남아 선호 사상에 따라 딸을 빨리 '치워 없애거나 팔아 내는' 대상으로 인식한 관념의 표현이다. 그래서 이 지역이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하다.

또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자, 감저'라 하는 것이 이상한 사람은 제주도에 '지실'이라는 감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다. 제주도의 '지실(地實)'은 '지슬'로도 불리는 데, 이는 '땅 속에서 나는 열매'로 고구마가 전래되기 전부터 있던 말이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말인 고구마에 '감자'를 붙인 것은 당연한 분별력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쌍거풀 없고 찢어진 눈을 가진 사람을 아름답다고 하거나 팔자가 사나워 기피하는 광대뼈가 나온 여자를 아름답게 생각하는 외국인이 많다. 입체적인 서양 사람은 평면적인 얼굴인 쌍꺼풀이 없고 눈, 코, 입을 피자판에 눌러 놓은 듯한 얼굴을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사투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천박스럽게 느끼는 단어나 표현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아름다운 표현이 될 수 있다. 조금만 멀리 보고 전체적으로 보며 다르게 생각하면 말이다.

사투리의 미학 <49> 두가지 통계와 경상도 사람

 
첫 번째 통계.

우리 나라 여성 중 자신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유니레버에서 한국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말레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10개국 여성 2100명을 대상으로 '아름다움에 관한 의식 조사'를 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아름답다고 생각한 아시아 여성은 3% 미만이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한국여성은 200명 중 2명, 즉 1% 정도만 자신을 아름답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외모를 향상시키기 위해 성형수술을 고려해 본적이 있다는 질문에 한국이 53%, 대만 40%, 일본 39% 등으로 대답해 한국여성이 성형 수술에 가장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한국여성 43%가 너무 뚱뚱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스스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 남편 또는 파트너의 의견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비율이 42%인 반면 본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이 28%에 불과했다고 한다. 한국여성은 전체적으로 가족, 친척관계, 우정, 애정관계 만족도는 높았지만, 외모나 아름다움에 관한 만족도는 낮았다고 한다.

두 번째 통계.

명절 선물 수요가 가장 많은 지역은 경상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신세계 이마트가 국내 75개의 점포를 대상으로 평상시와 추석 행사 기간의 매출을 비교해 지역별 매출 순위를 매긴 결과, 경상도 지역 점포들이 추석행사 기간에 평소보다 평균 5등 이상 순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서부산점의 경우 평소엔 매출 규모가 57위였으나 추석행사 기간 명절 선물 매출이 35위로 무려 22계단이나 뛰어 올랐고, 대구 만촌점도 평소 9위나 10위를 하는 곳인데 추석행사 기간에는 전국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경상도 지역 점포의 매출 규모가 비슷한 서울권 점포를 비교한 결과, 경상도 지역 점포의 선물세트 매출이 서울권 점포보다 18%정도 더 많았다고 한다.

다른 지역의 경우, 강원도에서는 원주지역만 제외하고 강릉, 속초, 동해에서는 평소보다 평균 10등 정도 떨어졌으며, 제주도와 전라도 지역도 추석 선물 수요가 가장 적은 지역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통계들은 별 의미없어 보이지만 재미있는 통계이다. 이러한 통계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분석될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통계는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에 관한 자의식의 부족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가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 아름다움의 기준을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하기보다 주위의 남편이나 파트너의 입장에서 판단한다는 점은 아름다움에 대한 상대적인 가치를 반영한다. 특히 성형 수술이라도 해서 아름다움에 대한 만족을 가지려는 것도 미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될 수 있다. 두 번째 통계는 한국 사람의 관계 의식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중 경상도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상도 사람들이 격식을 중시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은 아직도 다른 지역에 비해 결속력이 높거나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집단적인 믿음에서 출발한다.

다른 입장에서 보면 서로 약한 관계를 강하게 집단의 질서 속으로 밀어 넣으려는 의식에서 선물을 많이 할 수도 있다. 특히 부산지역이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도 피란생활 이후의 고향이 다른, 다양한 구성인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부산지역에서 자주 쓰는 '우리가 남이가'는 말도 서로를 친밀한 가족의식으로 묶는 표현이며, 친족어 '아재, 아지매'가 일상적인 대화에서 다른 지역보다 빈번하게 사용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동류 의식의 발로이다.

이와 같이 특별한 집단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행위는 그 집단의 가치와 인식에 기반하여 실현된다. 또 그 집단의 가치와 인식은 그대로 특정한 행위로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개별적이고 이상해 보이는 요소들도 알고 보면 그 언어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규칙에 따른 것일 수 있다.

경상도 사투리를 지배하는 특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 높낮이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높낮이가 없는 말은 낱소리를 가로로 늘어놓기 때문에 낱낱의 소리가 제대로 발음이 나고 길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경상도 사람의 높낮이는 여러 가지 낱소리를 세로로 올려서 한 마디에 발음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중간에 낱소리가 길어지지 않고 짧게 끊기는 경향이 있으며, 소리의 축약과 생략이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언어 사용에 있어서 축약과 생략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암시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이 더 발달하게 되며 언어 사용의 효율성이 더 강화된다. 이러한 언어의 효율성은 근본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간의 상호 전제된 공통의 요소를 전제로 할 때 더욱 극대화된다.

요즘 경상도 사람들의 높낮이가 다소 약화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경상도 말을 지배하는 커다란 특성이 약화되어 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원래의 높낮이 특성에 따른 다른 언어적 특성들이 약화되고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 따라 언어의 특성으로 유지되어 온 인식들이 약화되어 갈 수 밖에 없다.

부산의 사투리는 집단성을 전제로 한 효율적이고 친밀한 관계 언어로 아직도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언어적 가치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때 부산 사람들의 살갑고 정겨운 인정이 유지될 수 있다. 부경대 객원교수

# 욕같은 '지기미' 경상도말로 비듬
# 주름살은 '쭈굴사리' 뺨은 '뽈'로

'지기미'의 뜻은?

욕처럼 들리는 '지기미'는 경상도에서는 머리의 '비듬'을 뜻하는 말이다. 이 비듬은 지역에 따라 '지그미, 지기미, 찌기미, 지금, 지급'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와 관련하여 얼굴에 나는 '기미'는 '지미, 지메, 찌미'로 부르고 '여드름'은 '어드름, 이드름, 이디름'으로 나타난다.

경상도 사투리에서 얼굴의 주름살은 '쭈굴사리, 쭈그름살, 잔사리'라고 하지만 이마 주름살은 '이망살, 주금살'이라고 하여 구분해 지칭한다.

또 뺨에 생기는 보조개는 '볼새미' '우물'이라고 한다. '뺨'은 얼굴의 관자놀이에서 턱까지의 옆부분을 말하고 '볼'은 '뺨'의 일부분으로 살이 있는 곳을 말하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잘 구분해서 쓰지 않고 '뽈'로 나타난다. 그러나 일부지역에서는 '볼'은 '볼태기, 뽈때기'로 쓰지만 함양에서는 '보래기'로 쓴다. 또 '뺨'도 '빰, 빠마때기' 등으로 구분하여 쓰기도 한다. '눈두덩'은 '눈떠불, 눈떠부리, 눈까죽, 눈어덕, 눈두덕'으로 쓰고, '눈썹'은 '논섶, 눈서불'로 부르고 '속눈썹'은 '쏙눈썹, 가문 눈썹, 눈꼬시, 아랫눈썹'으로 부른다.

 

사투리의 미학 <50>국맛과 말맛

 
요리할 때 설탕과 소금 중 무엇을 먼저 넣어야 하나?

설탕 소금 식초 간장 된장 등 기본 조미료들은 재료를 넣고 끓이면 모두 한데 섞이니 순서는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 것이나 순서 없이 많이만 넣는다고 맛이 나는 것이 아니다.

요리에는 수학공식처럼 꼭 지켜야 할 순서의 원칙이 있다고 한다. 즉, 설탕은 설탕분자로 구성되어 있고 소금은 나트륨이온과 염소이온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온으로 된 소금이 알갱이가 작아서 음식에 빨리 스며든다고 한다.

또 고기를 재울 때, 청주와 맛술을 같이 쓰는데, 청주는 잡내를 없애기 위해 먼저 써야 하고 양념을 한 후에 나중에 다시 맛술을 넣어 고기에 들어간 양념들이 달아나지 않도록 한다.

참기름은 먼저 넣으면 다른 양념이 고기에 스미는 것을 방해하므로 가장 나중에 넣어야 고소한 제 맛을 낼 수 있다. 휘발성 있는 식초는 조리과정의 끝에 넣어야 고유의 풍미가 나온다.

특히 소금에 있는 나트륨 이온은 재료를 꽉 조여주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소금을 먼저 넣으면 다른 맛이 스며들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소금과 설탕을 넣을 때는 분자량이 큰 설탕부터 먼저 넣고 마지막에 소금을 넣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한다. 멸치를 볶을 때도 단맛이 나는 설탕을 먼저 넣고 간장을 나중에 넣어야 달콤하면서도 적당히 간이 된 멸치볶음을 만들 수 있다.

국에 맛을 낼 때에도 모든 재료를 넣어 끓인 후 나중에 간장을 넣어야 한다. 향과 맛이 중요한 간장과 된장은 지나치게 가열하면 고유의 맛이 사라지기 때문에 간장을 넣은 후에는 오래 끓이지 않는 것이 맛있는 국맛을 낼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한다.

경상도 말에 국맛을 표현할 경우 "개미가 난다. 우째 개미가 없노?" 등의 말을 한다. 경상도 말을 모르는 젊은이들은 "국에서 무슨 개미가 나오냐?"고 오해하며 궁금해 한다.

'개미'는 원래 한자어인 '갱미'(羹味)에서 나온 말이다. '갱미'는 '국 갱', '맛 미'로 국맛의 뜻이다. 이 '갱미'가 나중에 첫소리 받침 'ㅇ'이 탈락하여 '개미'가 된 것이다. 이 '개미'는 경상도 지역에서 '음식에서 우러나오는 감칠맛, 맛깔'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인데 국이나 음식이 오래 끓어서 제 맛이 나올 때 "개미가 난다"고 한다.

참고로 경상도에서 곤충의 '개미'는 '개미', '깨미', '개애미'로 나타난다. '개미'는 '합천(묘산) 거창 밀양 하동 울주(언양) 함안 김해' 등지에서 쓰는데 이 때는 국맛의 '개미'와 높낮이가 다르다. '깨미'는 '창원 진양 통영 거제 합천 산청 함양 창녕 고성 의령 사천'에서 쓰고 '개애미'는 '양산'지역에서 주로 쓴다. 부산에서는 '흰떡'을 '개미떡'이라고 하기도 한다.

경상도에서는 고기에서 우러나온 맑은 국물을 '전국' 혹은 '정국'이라고 하는데, 이는 '진국'의 변이형이다. 그리고 맑은 장국을 끓여 차게 식히거나 찬물에 간장과 초를 쳐서 만든 국물을 '찬국'이라 하지 않고 '멧국'이라고 한다.

이는 다른 국과는 달리 그냥 맹물이나 국물을 식힌 것이므로 '보통국'이라는 뜻으로 붙인 것이다.

또 간장은 '간장, 자앙, 지렁, 지렁장'으로 말하는데 '자앙'은 '남해, 하동' 등에서 주로 쓰고, '지렁'은 '울주 언양 양산 창원' 등에서 쓴다. '거창 함양 합천 함안 밀양 창원 산청 창녕 사천 김해 의령'에서는 '지렁장'이라고도 한다.

'소금'은 일반적으로 '소금'이라고 하지만 창원 울주(언양) 창녕 김해 고성 사천에서는 '소굼'으로 변이되고 거창 양산 함양 산청 합천 함안 통영 거제 진양 의령 등지에서는 '소곰'으로 변이되어 나타난다.

경상도에서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짜다'는 '짭다'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합천의 묘산 지역에서는 '잡다'로 쓰기도 한다.

경상도에서 '짜다'가 '짭다'로 나타나는 이유는 '씹다, 맵다, 싱겁다' 등과 같은 동일한 어형의 패턴을 유지하여 기억의 효율을 추구하기 위하여 'ㅂ'을 첨가한 형태이다.

신맛을 표현하는 '시다'도 창녕 김해 창원 등지에서는 '씨다'로 쓰고 그 외 양산, 울주 지역에서는 '시구럽다, 세거랍다'와 같이 '시다+-그럽다'의 형태로 나타난다.

경상도에서는 연기가 매울 때 표현하는 '냅다'가 '내다' 혹은 '내그럽다'로 나타나는데, '내그럽다'의 '-그럽다'도 '시그럽다'와 같은 감각어의 동일한 패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고소한 맛을 나타날 때는 '꼬시다'로 쓰는데 이 '꼬시다'는 '꾀다'의 뜻으로 쓰는 '꼬시다'와는 높낮이가 다르다.

또한 단맛을 표현할 때 '달달하다'로 쓰고 '달콤하다'와 같은 말은 쓰지 않는다.

'참기름'은 다른 지역에서는 '챙기름'으로 주로 나타나지만 경상도에서는 '참지름'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방언이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여러 규칙을 순서를 달리해서 적용해서 생긴다.

즉, '챙기름'은 '기름'의 'ㅣ' 모음 때문에 앞에 있는 모음이 앞 쪽으로 옮겨가는 현상인 '움라우트'가 먼저 적용해서 'ㅏ'가 'ㅐ'로 바뀌어 나타난 것이고, '참지름'은 구개음 'ㅣ' 모음의 영향으로 'ㄱ'이 구개음 'ㅈ'으로 바뀐 것이다.

결국 '챙기름'은 움라우트를 먼저 적용한 규칙이고 '참지름'은 '움라우트'보다 '구개음화'를 먼저 적용한 꼴이다.

이렇듯 방언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음식의 맛이 다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음식의 맛의 차이도 모두 동일한 재료에다가 같은 양념을 어느 순서로 적용하느냐에 전혀 다른 음식 맛이 나듯이 방언도 동일한 말에 일정한 규칙을 어느 것을 먼저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차이가 있다면 음식은 맛의 질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방언에서는 그 말맛의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