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노래하는 '꽈배기 등대'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1] 완도항에서 신지도를 거쳐 강진읍까지
10월 16일(토)
오늘 아침은 산책 삼아 완도항 부둣가를 거닌다. 완도항은 전체가 하나의 공원이다. 자전거를 타고 그냥 휙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다. 부둣가를 천천히 걸어 다니다 보면, 바닷가 철제 난간에 문어를 널어놓은 광경도 구경할 수 있다.
완도항 앞바다, 해안에서 10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호빵 모양의 작은 섬이 있다. 섬 전체가 작고 둥근 숲이다.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특이하다 싶었는데, 천연기념물 제28호란다. 섬 이름은 주도. 진주 같이 동그랗게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 나무 벌채가 금지되면서,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상록수림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주도라는 이름이 진주처럼 귀한 섬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완도항 왼쪽 끝에는 독특한 모양의 등대가 있다. 꽈배기 모양으로 몸을 비틀고 있는 데다 몸통이 온통 붉은 색이어서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안내문에 한국 최초의 '노래하는 등대'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평소 등대로서 고유 기능을 수행하면서, 등대를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노래도 들려준다. 바다 한가운데 등대 아래에서 듣는 노래가 가슴을 울린다. 장소 때문인지 노래가 한결 감미롭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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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완도항을 출발해 완도와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섬인 신지도까지 들어갈 예정이다. 완도항을 떠난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 신지도로 넘어가는 다리가 눈앞에 나타난다. 신지대교다. 신지대교까지 가는 길에 갓길이 거의 없다. 그래서 신지대교 역시 사람이나 자전거가 다닐 만한 길이 없을 거라 지레짐작했는데, 요행히 반대 차선으로 차 한 대는 충분히 지나가고도 남을 만한 넓이의 인도가 있다.
신지도는 유난히 언덕이 가파르다. 그리고 최근에 공사를 끝낸 도로가 아닌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갓길이 보이지 않는다. 신지대교가 개통이 된 이후로 차량 소통이 많아졌다. 갓길이 없는 도로 위를 덩치 큰 차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한마디로 신지도는 자전거 타기에 만만치 않은 섬이다.
신지도의 허리 부분을 길게 잇고 있는 명사십리해수욕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모래사장만 3km가 넘는 해수욕장이다. 육지에서도 보기 드문 크기와 넓이다. 해수욕장 크기에 맞게 주변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해수욕장을 꽤 공들여 가꾼 흔적이 엿보인다. 완도에는 이렇다 할 해수욕장이 없다. 그 점을 신지도가 훌륭하게 보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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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십리해수욕장을 나오면 바로 독계령이라는 이름의 가파른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이름에서 아주 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나 역시 독한 마음을 먹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산이 낮아서 다행이다.
고개를 넘어가서 한참 평지를 달리다 보면, 섬 끝 동쪽해안에 동고해수욕장이 나온다. 백사장은 별다른 특색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해수욕장 뒤편의 해송 숲을 눈여겨볼 만하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 나무들이 세월을 더하고 더하면, 언젠가는 기념비적인 숲으로 남을 것이다.
신지도는 해안으로 양식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양식 산업을 위해 바닷가를 빙 돌아가며 도로를 만들었다. 도로 밖으로 날선 바위들이 비죽비죽 튀어나와 있다. 그 바위들을 보면, 도로가 들어서기 이전의 바닷가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상상해볼 수 있다. 얼핏 보기에도 꽤 아름다운 바위들이다. 해송 숲을 보존하듯이 바닷가 바위를 보존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동쪽 해안 끝을 돌아서는 다시 독계령을 넘어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땅끝을 지난 이후로 좀처럼 피로가 가시질 않는다. 잠시나마 쉬어가고 싶다. 오후 3시, 오늘은 명사십리해수욕장에서 일찍 여행을 마친다. 오늘 달린 거리는 45km, 총 누적거리는 2252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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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일)
신지도를 나와서 다시 완도 땅으로 들어선다. 신지대교를 넘어 동쪽 해안을 마저 돌아야 완도 일주가 끝난다. 완도의 동쪽 해안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유적지가 '장도'다. 해상왕 장보고가 828년(신라 흥덕왕 3년) 이곳에 청해진을 설치했다. 그리고는 당시 극성을 부리던 해적을 일제히 소탕하면서 장도를 중국, 일본 등을 상대로 한 해상 무역을 장악하는 근거지로 삼았다.
장도는 장좌리에서 약 18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섬이다. 장도는 원래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려야만 건너갈 수 있는 섬이었다. 최근 유적지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완도를 찾는 사람들이 청해진 유적지에 좀 더 쉽고 편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좌리와 장도 사이에 나무 다리를 놓았다.
장도에 가보면 알겠지만, 완도에서 장보고처럼 지배적인 인물도 없다. 완도에 들어서면서 장보고와 관련한 각종 선전물과 이정표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을 알 수 있다. 완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완도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곳 중에 하나가 서쪽 해안에 있는 드라마 <해신> 세트장이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드라마 세트장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한마디로 역사적인 의미가 부족하다.
장보고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인 배경과 그의 업적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동쪽 해안의 장보고 관련 시설과 유적지들을 돌아보는 수밖에 없다. 동쪽 해안에는 청해진을 설치했던 장도를 비롯해 장보고 기념관, 장보고 공원, 장보고 동상 등이 거의 한 군데에 밀집해 있다. 거기에 드라마 <해신>의 신라방 세트장까지 있어,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장도의 청해진 토성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완도의 마을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장도 정상의 누각에 올라서면, 세상을 발아래에 두고 내려다본 장보고의 기상이 느껴진다. 장도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장보고가 꿈꾸었던 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되새겨볼 수 있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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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나온 한 부자를 만났다. 나를 보더니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두 사람이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참 다정해 보인다. 장도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마을에 사는데 이렇게 가끔 장도로 자전거를 타러 온단다.
서로 몇 마디 인사가 오가지 않았는데, 아버지 되는 사람이 내게 바나나를 하나 건넨다. 바나나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비상식이다. 자전거를 타는 도중에 에너지가 필요하다 싶을 때,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음식 중에 하나다. 그걸 나눠 먹는 데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그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서 먹는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바나나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늘 먹던 바나나와 다를 게 없을 텐데, 이전에 먹어본 바나나와 달리 단맛이 진하다. 서울에 돌아가서는 다시 이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장도 청해진유적지를 나와서 그들 부자와 헤어진다.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가는 아버지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완도를 나오면 다시 해남군이다. 해남군에 들어선 지 며칠 짼데 아직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전체 땅 면적은 크게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어도, 해안선만 놓고 보면 다른 나라의 넓은 땅이 부럽지 않은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덕분에 아무리 열심히 돌고 돌아도 여전히 제자리다.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던 기분이 이랬을까?
해남군에 들어서서는 바로 55번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원래는 해안 길로 들어설 생각이었는데, 그만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 내륙의 번잡한 도로를 자동차들과 함께 달리게 됐다. 그 바람에 쇄노재라는 제법 높은 고개를 넘는다. 그런데 그동안 해안 절벽 길을 숱하게 오르내리면서 단련이 된 까닭인지 그 높은 고개를 크게 힘들이지 않고 넘어간다.
내륙으로 북일면 깊숙이 들어갔다가 다시 해안 길을 찾아 내동리 쪽으로 방향으로 꺾는다. 내동리를 지나 사내방조제를 넘으면 거기서부터는 강진군이다. 비로소 해남군을 벗어나게 된다. 다소 홀가분한 기분이다. 홀가분한 마음을 갖게 만든 것은 단지 해남군의 경계를 벗어난 데에만 있지 않다.
사내방조제를 넘어 강진만을 따라 만의 끝까지 올라가는 해안도로는 지금까지의 해안도로와는 완전히 다르다. 만의 끝에 위치한 강진읍까지 곧고 평탄한 길의 연속이다. 게다가 자동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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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안선인데도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게 의아하게 여겨질 정도다. 지금까지 이 길처럼 편안한 길은 없었다. 갓길에 자전거도로 표시가 그려져 있다. 굳이 자전거도로 표시를 하지 않았어도 될 법했다. 강진읍을 코앞에 두고 잠시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여행을 끝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를 짓지 못한 게 아쉽다.
강진만에 안개가 짙게 내려앉아 있다. 안개가 며칠째 계속 시야를 가리고 있다. 바다 위에 뜬 섬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편 칠량면의 높은 산들마저 안개에 가려 윤곽만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햇볕 맑게 쏟아지는 날의 풍경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강진만의 해안도로는 언제고 꼭, 다시 한 번 더 다녀가야 할 길로 남겨둔다. 오늘 달린 거리는 80km, 총 누적거리는 2332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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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닮은 '검탱이', 달큼시큼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2] 강진읍에서 마량항까지
10월 18일(월)
강진읍에서는 바로 23번 국도를 타고 마량 방향으로 향한다. 어제보다는 덜하지만 안개가 채 가시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어제 강진읍을 향해 달려 올라온 해안이 보인다. 마치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느낌이다. 강진만은 강진읍을 정점으로 아주 좁고 긴 깔때기 모양을 하고 있다.
강진만의 이쪽 해안에서 저쪽 해안까지 폭이 최대 7km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 끝에서 저 끝이 빤히 바라다보인다. 그런데 그 사이를 건너뛰기 위해서는 무려 70km 이상을 달려야 한다. 이것이 요즘 내가 매일 낮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일이다.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 딴 생각을 하지 않으려 계속 마음을 다잡고 있다.
강진만의 칠량면 쪽 해안은 경사가 조금 있는 편이다. 건너편 도안면의 해안이 거의 평지에 가까웠던 것과는 다르다. 같은 만을 끼고 있는 땅이라고 해도 엄연히 다른 땅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3번 국도와 해안도로를 번갈아 달린다. 해안도로가 좀 더 길었으면 좋겠는데 해안선이 복잡한 탓인지 중간 중간 끊어지는 부분이 많다. 해안도로로 들어가고 나오는 부분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뭐 그게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서 해결이 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23번 국도 위로 트럭들이 상당히 많이 지나간다. 집중해서 핸들을 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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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면 저두리에서 수령 210년의 푸조나무가 서 있는 정자와 마주친다. 마을마다 이렇게 천연기념물에 가까운 정자나무들이 한 그루씩 서 있는 게 신기하다. 정자나무로 보통 느티나무나 팽나무를 많이 보는데 푸조나무가 서 있는 정자는 처음이다.
그 푸조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는 할아버지 두 분을 만난다. 까치발을 하고 서서는 나무에서 무언가를 따서 연신 입으로 가져가고 있다.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게 분명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무엇을 드시고 있냐고 물었다. '검탱이'란다. 검고 동그랗게 생겨 그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닌가 싶다. 생긴 모양으로는 앵두를 닮았다.
달큼하면서도 시큼한 맛이 난다. 먹을 만하다. 크기가 너무 작아 먹고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 게 흠이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땐 나무 위에까지 올라가 따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가지 끝에 늘어진 걸 겨우 붙잡아 따먹고 있다. 두 분이 가지를 붙잡고 서 있는 게 꼭 어린아이들 같다.
여행을 하면서 참 많은 걸 얻어먹고 다녔다. 그런데, 이렇게 길가에 선 푸조나무 열매까지 따먹을 줄은 몰랐다. 내 평생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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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어촌체험마을 앞에 바다로 들어가는 시멘트길이 반쯤 물에 잠겨 있다. 이런 길은 그냥 무심히 지나치기 어렵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해도, 그 바다 위로 길이 나 있는데 걸어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몇 발자국 들어가지 못해 몸이 기우뚱한다. 시멘트 바닥 위로 얕게 깔린 펄을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다행히 왼쪽 다리로 버티고 서서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고는 겨우 중심을 잡는다. 갯벌에서 그 모습을 본 할머니 한 분이 '조심하라'고 고함을 지른다. 할머니 말이 그곳에서 미끄러져 다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다. 자전거를 타고 그 시멘트 길을 달려 내려가다 자전거 따로 사람 따로 나뒹구는 걸 본 적도 있단다.
충분히 상상이 가는 일이다. 이런 길을 보고 맘껏 내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 여행자가 몇이나 될까? 바다 밑에 잠겼다 드러나는 길은 매우 미끄럽다. 그 길이 갯벌 위에 있을 때는 더욱 더 위험하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길 위에 얕게 펄을 깔아놓기 때문이다.
서중마을 앞 갯바닥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손톱 크기만한 작은 고동을 줍고 있다. 강진만의 갯벌은 자갈과 돌들이 뒤섞여 있다. 그 돌 밑에 고동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그리고 그 돌에 자잘한 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반찬을 할 수 있을 정도로는 넉넉히 잡힌단다. 갯벌 위의 돌 하나, 쓸모없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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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가 조금 넘어 마량항에 도착했다. 미항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항구다. 항구를 미항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게 꾸미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방파제 위에 산만하게 늘어놓은 인공 구조물로는 미항이 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항구 앞 바다 위에 떠 있는 '까막섬'이 눈길을 끈다. 완도항 앞에서 본 주도와 마찬가지로 섬 전체가 검은 숲을 형성하고 있다. 까막섬 역시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상당히 기품이 있어 보이는 섬이다. 물론, 미항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오늘은 일찌감치 마량항에 닻을 내린다. 지금 마음 같아선 이곳에서 단 하루라도 푹 쉬어가고 싶다. 하지만 내일 아침 또 그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오늘 달린 거리는 41km, 총 누적거리는 2373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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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화)
결국 마량항에서 하루를 쉬어 간다. 온몸에 피로가 누적된 데다, 허리 통증이 심상치 않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른쪽 등이 결리던 현상이 사라지더니 그 다음부터는 오른쪽 허리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이후로 이런 통증은 처음이다. 원인이 무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자전거를 타면서 30일 이상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게 문제일 수도 있고, 오른쪽 팔과 허리를 이용해 자전거를 수시로 들었다 놨다 하는 행위에서 근육에 무리가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서중마을에서 몸이 기우뚱하며 넘어질 뻔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허리를 삐끗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여튼 쉬어갈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다 달리고 싶어도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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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꾼 몰골, 식당 아줌마를 움직이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3] 장흥군 마량항에서 회진면까지
10월 20일(수)
하루를 쉬고 일어나서 그런지 통증이 조금 완화된 느낌이다. 오늘은 마량항에서 연륙교로 연결이 되어 있는 고금도(고금면)와, 다시 고금도와 연도교로 연결이 되어 있는 조약도(약산면)에 들어갔다 나올 예정이다. 마량항에서 쳐다보면, 고금대교가 고금도 산 중턱에 걸쳐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상당히 위압적이다. 고금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고금대교를 건넌 도로가 다시 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사가 가팔라 보이지는 않지만, 산 너머에 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가급적이면 경사가 심한 지역은 피해갈 생각이다. 몸이 정상이 아닌 이상,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는 무리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섬 절반이 산, 조약도에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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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는 서쪽에 산이 몰려 있는 지형이다. 마량항에서 봤을 때 섬 전체가 산처럼 보였던 이유다. 고금도에서는 77번 국도를 이용해 섬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관통한 후, 해안선을 따라 바로 조약도로 넘어간다. 대체로 낮고 평탄한 길이다. 이 지역 역시 새로 만들어진 도로 외의 도로에는 갓길이 없는 게 보통이다. 공사용 차량이나 대형 버스도 심심치 않게 지나다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조약도는 약산면으로 불린다. '산'자가 붙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전거 타기에 만만한 지형이 아니다. 섬의 절반이 산이다. 섬 안에 위치한 산으로서는 높이도 낮은 편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쪽 해안을 따라 돌면서 조금 가팔라 보이는 언덕이 나타난다.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기어를 최대한 낮춰 천천히 올라간다. 고개가 꽤 높다.
그 고개를 내려와서는 이어서 다시 산길을 오른다. 좁고 가파른 시멘트길이다. 경사가 심해 중간에 자전거에서 내려 걷는다. 사실 걸어 오르는 것도 쉽지 않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산 위 도로 정상에 도달한다. 산 위로 '약산일주로'라고 적힌 아스팔트길이 놓여 있다. 산 위를 가로지르는 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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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로를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 언덕 아래로 가사동백숲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앞에 두고 먼저 한숨이 나온다. 그 해변에 갔다 오려면, 산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깟 언덕 하나 오르내리는 게 뭐가 힘들다고 이렇게 주저하고 있는 건지, 며칠 새 마음이 약해져도 너무 많이 약해졌다.
산과 산 사이 오목한 곳에 마을이 있고 그 마을을 지나 산 아래로 내려가면 가사동백숲해변이 나온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 키 큰 나무들 아래 윤기가 나는 짙은 녹색 잎을 가진 동백나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숲이 꽤 울창해서 그 사이로는 해변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그 숲이 해변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가사동백숲해변은 매우 작은 해수욕장이다. 산 아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은빛 모래가 좍 깔려 있다. 해변은 작지만, 해변으로 밀려 올라오는 파도 소리는 그 어느 해수욕장보다 크게 들려온다. 파도소리가 동백숲을 넘지 못하고 그 안에서 공명이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맑고 시원한 파도소리도 꽤 오래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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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몰골을 보고 감까지 깎아준 식당 아주머니
다시 산비탈을 걸어 올라서 가사동백숲해변을 빠져나온다. 이후로는 대체로 평탄한 길이다. 약산면 소재지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횟집이라 식사하기가 어려운 줄 알지만, 이 지역을 벗어나면 점심을 굶게 될지도 모른다. 염치불구하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곳에서도 처음에는 밥이 없다고 난색을 보인다. 하지만 내 몰골을 유심히 본 식당 아주머니가 '그래도 자전거까지 타고 온 사람을 그냥 되돌려 보낼 수 없다'며 다 떨어지고 없는 밥을 어디서 구해 와서 한 상 그득히 차려준다.
'혼자서 이러고 다니는 거냐'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던 아주머니, 나중엔 식탁에 마주앉아 감까지 깎아준다. 조약도에 와서 정말 제대로 '손님' 대접을 받는다. 그 정성이 내 몸에 '약'이 됐으면 좋겠다.
고금도에서는 다른 건 다 그만두더라도 이충무공 유적지 하나만은 꼭 보고 가야 한다. 충무사다. 이곳은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의 수군 본영이 진을 치고 있던 곳이기도 하고,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숨을 거둔 뒤 그의 유해를 모셨던 곳이기도 한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낮은 언덕에 이순신 장군이 잠들었던 묘지가 평평한 잔디밭으로 남아 있다. 봉분은 사라졌지만, '역사'는 남아 있다. 이순신 장군의 유해는 전쟁이 끝난 뒤 아산으로 옮겨진다. 장군이 숨을 거둔 지 6개월 뒤다.
충무사 주변을 새롭게 단장하는 공사가 한창 분주하게 벌어지고 있다. 충무사로 들어서는 길 주변의 담장을 모두 돌담으로 교체하고 있다. 마을회관은 충무사와 어울리게 품위가 있어 보이는 한옥으로 짓고 있다. 모두 충무사와 잘 어울리는 풍경들이다. 앞으로 충무사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거듭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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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무척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고금도와 약산도를 돌아 나오는데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고금도를 빠져나와서는 해안으로 이어진 길을 놓쳐 바로 대덕읍으로 이동한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를 찾으려니 매일 저녁 버릇처럼 마음이 급해진다. 그 바람에 판단력까지 흐려지고 있다.
어렵게 찾아간 대덕읍에 숙소가 없다. 그 흔한 여관 하나 없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할 수 없이 파출소까지 찾아가 어디에 잠잘 만한 곳이 있는지를 묻는다. 경찰관 말이 이 지역엔 그런 게 없고, 잠을 자려면 아무래도 회진면까지 나가야 한단다.
회진면은 이곳에 오기 전 해안선을 그대로 따라갔으면 곧장 갈 수 있었던 지역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다. 대덕읍에서 다시 회진면까지 어두운 밤길을 달린다. 오늘 달린 거리는 91km, 총 누적거리는 2464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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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론 굴 먹을 때마다 '울컥'하겠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4] 장흥군 회진면에서 수문해수욕장까지
10월 21일(목)
회진항을 떠나기 전에 항구 뒤쪽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는 '회령진성'에 오른다. 어제 저녁 해가 진 뒤 항구로 들어서면서 오른쪽 언덕 위에 무언가 높이 올라서 있는 게 보였는데 미처 확인을 하지 못했다. 항구로 진입해 들어오는 길가 언덕 위에, 다 허물어지고 지금은 한쪽 벽면만 남아 있는 성이 하나 버티고 서 있다.
성이라는 흔적만 남아 있는 것과 달리 역사적으로 꽤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안내판에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무기를 모으고 군대를 정비하여 명량대첩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적혀 있다. 백의종군을 하다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돌아온 이순신 장군이 이곳 장흥에서 전열을 가다듬음으로써 정유재란에서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어제 다녀온 충무사도 그렇고, 남해안을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유적지들을 찾아보게 된다. 언제 기회가 닿으면, 이순신 장군 관련 전적지들을 찾아가는 여행을 한 번 기획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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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진성을 내려오면 바로 노력도다. 노력도엔 해안을 빙 돌아가며 아스팔트 도로가 깔려 있다. 올해 초, 섬 안에 장흥노력도항이 건설되면서 항구까지 가는 도로를 개설했다. 아직 일부 구간 공사가 끝나지 않아 섬 일주는 불가능하지만, 현재 만들어진 도로만으로도 섬을 일주하는 기분은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장흥노력도항에서 하루 2차례 제주도까지 가는 배가 뜬다. 소요 시간은 1시간 40분. 항구에 서울까지 오가는 고속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제주도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이용해볼 만하다.
노력도항을 나오면 얼마 안 가 정남진해상낚시공원 이정표가 보인다. 해상낚시공원이라는 표현이 다소 이색적이다. 별다른 제약 없이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공원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얼마간의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고, 관람만 할 경우에도 입장료 1천원을 지불하고 들어가야 한다.
독특한 작업을 하는 주민들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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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낚시공원을 나와 정남진을 향해 가는 길에, 대리 부둣가에서 독특한 작업을 하고 있는 주민들과 마주쳤다. 노력도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때는 단순히 어망을 손질하는 걸로 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무언가 조금 달라 보인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한 사람은 밧줄을 비틀어 틈새를 만들고, 다른 한 사람은 벌어진 틈새에 무언가를 꽂아 넣고 있다. 밧줄은 가래떡 굵기다. 그 밧줄을 손에 쥐고서 비틀면 넣고 비틀면 넣고 하는데, 호흡이 척척 맞는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일하는 모습이 무슨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미역 양식을 하기 위해 밧줄에 미역 종자를 붙이고 있단다. 신기한 일이다. 2cm가 될까 말까한 미역종자를 밧줄 틈새에 끼워 넣는데, 거기서 2m 가까이 되는 미역이 자란다. 이맘때 양식을 시작해, 내년 2, 3월에 수확을 하기 시작한단다. 그리고 4월이면 수확이 끝난다.
한겨울 차가운 바다 밑에서, 누군가의 뱃속을 뜨끈하게 덥혀줄 미역이 자란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뿌듯해진다. 장흥 미역은 일본에까지 수출을 한단다. 부디 미역이 잘 자라서,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장흥 바다처럼 청정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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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든 바다든 이럴 때 새참이 빠질 수 없다. 카메라로 미역 종자 붙이는 장면을 찍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다보니, 마을 주민 두 분이 경운기 곁에서 약주를 들고 있다. 사진은 그만 찍고 술이나 한잔하란다. 이럴 땐 꼭 내가 이곳에 초대를 받아 찾아온 손님 같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나 아닌 누구도 다 같은 대접을 받는다. 마을 주민과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 사이에 격이 없다. 내남이 없다.
술만 받아 마시고 떠나려니 죄송한 마음이다. 하지만 더 오래 머물러 있어봐야 방해만 될 뿐이다. 대리 부둣가를 떠나 다음에 거쳐 갈 이정표로 삼은 곳이 '정남진'이다. 정남진은 정동진의 남쪽 개념이다. 서울 광화문의 동쪽 정방향에 있는 지점이 정동진이라면, 남쪽 정방향에 있는 지점이 바로 정남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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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은 삼산리에 있는 삼산방조제의 중앙 부분에 있다. 길가에 정남진임을 알리는 표식이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대신 방조제 왼편에 삼색의 대형 원판을 3면으로 이어붙인 구조물이 보인다. 정남진임을 알리는 조각이다.
표지판 안내문에 적힌 문구가 지나치게 철학적이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정남진인데, 이곳의 안내문에는 정확히 여기가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정남진이라는 표현이 없다. 장흥에는 정남진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거나 문구가 적혀 있는 곳이 여러 군데다. 그래서 처음 장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어디가 정남진이라는 건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삼산방조제를 지나 한참을 가다 보면, '정남진(지도에는 '남포'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 마을이다)'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아 여기가 바로 그 정남진인가 하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다. 정남진 마을 사람들은 원래는 여기가 정남진인데 어느 날 갑자기 정남진이라는 명칭을 다른 마을에 빼앗겼다고 섭섭해 한다.
음, 이쯤 되면, 뭐가 뭔지 구분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걸 구분하는 게 나그네가 할 일은 아니다. 정남진은 공식적으로 삼산방조제 위에 있는 것이 맞다고 한다. 그러니 표지석에 정남진이라고 쓰인 마을에 가서 여기가 정말 정남진이 맞냐고 묻지 말자. 공연히 마을 사람들 속만 긁고 나올 뿐이다.
삼산방조제를 지나 조금 더 가다 보면 바닷가 높은 언덕 위에 '정남진 전망대'가 들어서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 일대도 조만간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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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새우 모양으로 하고 앉은 할머니들
남포까지 가기 전에 죽청리 바닷가에서 굴을 따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허리를 새우 모양으로 구부리고 앉아 바위에 붙어 있는 굴을 떼내고 있다. 갯벌에서 바위와 하나가 되어 씨름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조금 힘에 부쳐 보인다.
도로 위에서 제방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갯벌이다. 이곳의 갯벌은 바위가 절반이라, 신발을 신은 채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할머니들마다 커다란 대야 하나씩을 꿰차고 다니는 걸로 봐서 단순히 반찬을 얻기 위해 굴을 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 '팔기 위해서'란다.
대야가 검은 펄 투성이 굴로 가득 차 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대야를 가득 채웠다는데 그 양이 적지 않다. 그때까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게 분명하다. '이 일도 나이가 드니 너무 고되다'면서 몸을 일으키는데 상체가 다 펴지지 않는다. 그만 일을 끝내려는지 대야에 담긴 굴을 그물망에 쏟아 담는다. 그 무게가 꽤 묵직하다.
이제 그만 일을 끝내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러면서 또 이제 돌아가서 또 다른 일을 해야 한단다. 구부러진 허리를 펼 새가 없다. 우리나라 갯벌에 와서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들을 참 많이도 만난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니면서도 허리가 아프다고 징징대는 나는 어디 가서 누구한테 하소연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할머니들이 갯벌에서 철수하는 걸 보면서 다시 자리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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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에 와서 득량만 바다에 젖줄을 대고 있는 문인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다. 장흥은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등의 저명한 작가들을 배출한 고장이다. 한국의 문학예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가 여럿이다.
그중에 바닷가 여행을 하면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작가가 한승원이다. 한승원과 제일 먼저 마주친 건 신덕리의 버스정류장 앞에서다. 신덕리가 한승원이라는 작가가 태어난 곳이며, 그가 쓴 여러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라는 안내문이 서 있다. 솔직히 말하면 좀 뜬금이 없어 보이는 안내판이다. 그 안내판이라는 것이 갯가에서 흔히 보는 경고 문구판이나 별 다름이 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고상하게 시작했으면 좋았을 법하다. 하지만 한승원과 관련한 안내판을 한적한 버스 정류장 앞에 세워 놓은 것도 어떻게 보면 평생을 장흥 바다, 장흥 사람들과 함께한 한승원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승원과 만남은 그렇게 시작해서 장재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한승원산책길'이라고 적힌 이정표와 마주친 다음, 마지막에는 여다지해변의 한승원 시비로 이어진다.
이 정도 되면 '한승원'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여다지해변에 세워진 30여 개의 한승원 시비를 보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한승원만큼이나 장흥 앞바다를 사랑한 작가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장흥 앞바다를 사랑하는 장흥 사람들 역시 한승원이라는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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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문리해수욕장 근처에서 여장을 푼다. 그곳에서 오늘 하루 종일 나를 에스코트하다시피 한 마동욱 시민기자를 다시 만나 저녁을 함께 한다. 장흥읍까지 나가 그 이름도 유명한 장흥토요시장의 한 음식점에서 값싸고 맛있기로 소문이 나 있는 한우를 키조개 관자와 함께 불에 구워 먹는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고기를 먹는 게 쉽지 않다. 마 기자가 내게 쇠고기를 먹인 건 그런 점을 배려한 것이다. 오래간만에 영양 보충 한 번 제대로 한다. 오늘 하루 장흥에서 참 분에 넘친 대접을 받는다. 마 기자 덕에 장흥 땅에서 고향에라도 돌아온 듯 유쾌하고 흥겨운 기분을 맛봤다. 자전거 타는 '고통'을 잊을 수 있었던 하루다.
장흥은 삭금마을에서 회진항까지 가는 해안길이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 길을 가지 못했다. 내가 지나간 길 중에는 삼산방조제 끝에서 시작해 남포 가기 전에 끝나는 정남진해안로가 꽤 아름다웠다. 득량만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바닷길이 죽 이어진다.
보고 또 보는 바다지만, 그 바다가 지역에 따라 때에 따라서 매번 다르게 다가온다. 항상 똑같은 바다가 아니다. 내일은 또 어떤 바다가 내 앞에 펼쳐질지 궁금하다. 오늘 달린 거리는 73km, 총 누적거리는 2537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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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쫓겨난 거 아니냐", 그 말에 가슴이 뜨끔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5] 장흥 수문포해수욕장에서 고흥 안남어촌체험마을까지
10월 22(금)
허리 통증이 계속되고 있다. 좀 더 심해졌다. 상체를 일으킬 때마다 허리를 무언가 날카로운 물건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자연히 몸을 일으키고 숙이는 동작이 점점 더 느려진다. 그러면서 덩달아 자전거 타는 속도까지 느려지고 있다.
오늘 아침, 허리 통증을 줄이는 갖가지 방법을 강구했다. 우선 등짐을 벗어 자전거 짐받이 위에 올려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허리에 무리가 갈 수도 있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거나 교정했다. 너무 높거나 긴 언덕을 만나면 자전거에서 내려서 무조건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페달을 밟는 힘 역시 허리에 무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기어비를 평소에 사용하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낮추기로 했다. 왼발에 큰 힘을 줄 때마다 오른쪽 허리가 더 아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왼발에 힘이 들어가는 일체의 동작을 오른발에서 시작하는 걸로 바꿨다. 틈틈이 허리 운동을 하면서 충분히 쉬어가기로 했다.
이렇게 하고도 허리 통증이 나아지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원인도 모르고 제대로 된 처방도 없이, 길 위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여행을 중도에 그만두어야 하는 일만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래저래 여행 기간이 한없이 늘어지고 있다. 11월 중순에 여행을 끝내기로 했던 계획에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고 있다. 장흥 수문포해수욕장에 낙엽이 쌓인다. 낙엽이 내려 쌓이면서 파도소리보다 낙엽이 바람에 쓸려 모래사장 위를 굴러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가을 바다, 높고 푸른 하늘, 찬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낙엽들. 가슴 한구석이 휑한 듯 쓸쓸해지는 풍경이다.
길 위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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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포해수욕장을 나서면 바로 보성군이다. 예전에도 자전거를 타고 이 지역을 한 번 지나간 적이 있다. 그때는 국도를 따라 보성다원으로 가는 길고 높은 언덕을 올라 산을 하나 넘어갔다. 그래서 이번에 해안 길을 달릴 때도 높은 산 한두 개쯤은 반드시 넘어가야 할 걸로 각오했다. 그런데 다행히 언덕은 있어도 높은 산까지 넘어야 할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원산마을까지 바닷가 길이 계속된다. 자전거 타기에 비교적 수월한 길이다. 바람만 불지 않으면, 자전거 타는 재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 몸 상태로는 이 길마저도 벅차다. 시도 때도 없이 걸어간다. 언덕에서도 걷고, 몸이 무겁다 싶으면 평지에서도 걸어간다. 경치 같은 게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온 신경이 허리에 쏠려 있다.
원산마을 앞을 지나 비봉리 공룡알화석지까지 가는 길에 높고 긴 언덕이 가로놓여 있다. 예전 같았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랐을 언덕이다. 그 언덕을, 공룡알화석지에 무언가 볼 것이 많았으면 하는 기대를 안고 넘어간다. 그곳 박물관 소파에 앉아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어느 정도 기운이 되살아날 때까지 충분히 쉬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화석지가 수 킬로미터 해변에 뻗어 있다니, 천천히 걸어서 샅샅이 훑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상이 너무 지나쳤다. 화석지에 도착해 보니, 내가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채 100미터도 되지 않는다. 박물관 같은 건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더더구나 그곳에서 무엇이 공룡알이고, 어디가 공룡알둥지인지를 찾아내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렇게 힘들여 찾아오기에는 무언가 한참 부족한 곳이다. 결국 쉬어가고 싶은 마음만 남겨두고 다시 이곳을 떠난다.
물론 비봉리의 공룡알화석지는 내가 보고 온 게 전부가 아니다. 이곳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대규모 공룡알화석지다. 그 가치는 단지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는 제대로 재단하기 힘들다. 그 사실을 우리 눈으로 확인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룡알화석지에서 언덕을 하나 더 넘어가면, 바닷가를 앞에 두고 그 이름에 걸맞은 거대한 '공룡공원'이 들어서고 있는 공사 현장을 볼 수 있다. 한반도는 한때 공룡들의 낙원이었다. 공룡공원 조성 공사가 끝나고 나면, 그 사실을 좀 더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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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졌다
득량만방조제 위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이곳은 방조제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이 인상적이다. 가을이라서 더 풍성하고 더 넉넉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사방에서 바람이 부는 데다 가만히 서 있기에는 햇살이 너무 따갑기 때문이다. 어디서건 편안히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간절해진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방조제를 건너 안남어촌체험마을(신기 거북이마을)을 향해 가는 길에 도로 위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우리나라 해안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만든 작가들 중에 한 사람이다. 앞에서도 얘기한 바와 같이 이 책에는 바닷가 길을 따라 자전거여행이 가능한 길을 표시한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물론 지도가 전부가 아니어서, 한국 해안의 어촌체험마을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면서 그 외 해안에서 가까운 명승지와 관광지도 두루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누군지, 그리고 이 책을 만든 배경과 과정이 궁금했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놓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만든 사람들 역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만든 책을 가지고 실제 여행에 나선 사람을 처음 보았고, 그것도 혼자서 전국을 일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졌다. 자동차 한 대가 옆으로 다가오더니, 나를 불러 세웠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나한테 길을 묻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있어, 그도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람들 중에 하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운전자가 카메라를 꺼내들더니, 대뜸 사진을 좀 찍을 수 없겠냐고 묻는다.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만남이 이뤄졌다. 사진을 찍기 전에 그가 내 이름을 듣고 먼저 놀랐고, 나도 그가 누군지를 알고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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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안남어촌체험마을에서 한 사람을 더 만났다. 그들은 <우리나라 해안여행>을 제작한 이후에 다시 어촌체험마을 관련 홍보물을 제작하기 위해 이곳에 내려온 참이었다. 마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뻘배타기와 물대포쏘기 체험 등의 행사를 막 끝낸 뒤였다. 그래서 한동안 책과 관련해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몇 가지 궁금증이 해소됐다. 책은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제작됐다. 서해, 남해, 동해로 나누어 각 부분마다 다른 작가들이 참여했고, 그 세 부분이 모여서 하나의 책이 만들어졌다. 책 표지에 지은이가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어촌어항협회로 되어 있지만, 실제 원고를 작성하는 작업에는 여행 작가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제작 기간이 너무 짧았다. 콘텐츠 제작에 겨우 한 달 반 정도가 소요됐다. 이 책이 갖는 의미와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편집상 몇 가지 흠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나 역시 편집을 업으로 해온 사람이어서 그들이 어떤 애로를 겪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개정판을 내는 건데, 지금은 그런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 책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알게 된 거지만,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여러 군데다.
애초 책이 잘못되어서 개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자전거여행자들치고 이 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 그래서 더욱 완벽한 책, 더욱 사용하기 편한 책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을 사용하는 데 유의할 점, 그리고 이 책에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개정하면 좋을지는 나중에 이 여행이 끝난 후에 한 번 더 정리를 해볼 생각이다.
가슴 뜨끔한 질문... "혹시 집에서 쫓겨난 거 아니냐?"
유쾌한 만남이었다. 덕분에 안남어촌체험마을에서 준비한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됐고, 그날 밤을 마을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국 어촌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됐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수없이 많은 어촌체험마을을 지났고 체험객들도 많이 보았지만, 그 마을의 '체험'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마을 주민은 물론이고, 공무원도 있고 학자도 있다. 그들의 노력과 지혜가 모여서 마을마다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행사 주최자와 참가자들 사이, 행정 주체와 객체 사이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고민도 많아 보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만한 갈등과 고민거리로 마을의 미래와 희망을 포기할 리 없다. 그들이 어촌에 품고 있는 깊은 애정이라면 그처럼 소소한 문제들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비록 하루 저녁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많은 걸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다. 꽤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때마침 쉬어가고 싶던 터에 맘 놓고 주저앉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 달린 거리는 45km, 총 누적거리는 2582km다.
이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마을 주민 한 분이 날 보고 "실례지만, 혹시 집에서 쫓겨난 게 아니냐?"고 물어서 좀 당황했다. 웃자고 한 말이다. 그런데도 방심중에 그 말이 내 가슴을 예리하게 파고 들었다. 뜨끔했다. 집을 나선 지 벌써 40여 일째다. 아닌 게 아니라 이쯤 되면 내 발로 나왔든 등 떠밀려 나왔든 집에서 쫓겨난 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마을 앞 바닷가에 신기한 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내일 아침 6시 30분에 그 돌을 보러 가기로 했다. 오전 6시 30분에 출발해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다. 그러려면 6시경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얘긴데, 내가 과연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바닷물이 가득 들어온 뒤에는 그 돌을 볼 수 있는 해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늦어도 아침 6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언제 또 다시 그 돌을 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내일 아침, 무슨 일이 있어도 6시에는 눈을 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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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좋다는데, 내 눈에는 영 징그럽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6] 고흥군 안남어촌체험마을에서 고흥군 도양읍까지
10월 23일(토)
정확히 오전 6시에 눈을 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내가 이렇게 무리를 하는 이유는 안남마을에만 있는 신기한 돌을 볼 수 있다고 해서다. 돌이 쪼개져 두 개가 됐다가 다시 붙어 하나가 되었다는데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그 돌을 볼 수 있는 바닷가로 들어갈 수 없어, 늦어도 오전 6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자칫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봐 일찌감치 서둘렀다. 해도 뜨지 않았다. '기적의 돌'을 보는데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기적의 돌은 엇석(단층역)으로 불린다. 돌멩이가 촘촘히 박힌 거대한 암석이 단층이 지면서 살짝 쪼개져 나간다. 그때 암석에 박힌 돌멩이들도 같이 쪼개진다. 그 암석이 땅 속 깊이 침강하면서 지하에서 엄청나게 뜨거운 열을 받는다. 그렇게 수백만 년이 지나는 사이 돌멩이들이 다시 붙는다. 그 암석이 다시 땅 위로 솟아나 사람들 앞에 엇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엇석이 있다는 해안 절벽 아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바닷물이 절벽 밑으로 떨어져 나온 바위들을 더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절벽에 크고 작은 돌들이 수없이 박혀 있다. 절벽이 중간 중간 세로로 단층이 져 있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절벽 아래에 쪼개진 돌들이 수도 없이 많이 널려 있다. 하지만 엇석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이 기적의 돌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때 수석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엇석을 닥치는 대로 채취해 갔다고 한다. 엇석을 보고 신기해하지 않을 사람들이 없다. 그 바람에 크게 엇나간 돌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깨졌다가 다시 붙은 게 확실해 보이는 돌 몇 개는 내 두 눈으로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의 힘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본드로 붙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다. 수백만 년에 걸쳐 기적이 일어났는데, 사람들이 이 기적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몽돌해수욕장에만 가도 사람들이 몽돌을 가지고 나가는 걸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엇석은 몽돌 이상으로 보존 가치가 큰 돌이다. 더 이상 엇석이 사라지는 걸 방치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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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놈들 끓여 먹으면 맛이 좋다고 하는데
안남마을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어제 하루 무리를 하지 않은 까닭인지, 오늘은 몸이 비교적 가볍다. 허리 통증도 크게 완화됐다. 여전히 원인을 알지는 못하지만, 여러 가지로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조심을 했던 게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남마을을 떠난 이후로는 한동안 내륙을 달린다. 해안을 지나가는 도로가 거의 없어, 해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바로 그 길을 되돌아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상남리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도천리까지 직행한다. 어느새 고흥반도다. 고흥반도 역시 어마어마한 해안선 길이를 자랑한다.
고흥반도 해안을 돌아나가는 데 최소 4일은 걸릴 것이다. 반도 끝에는 내나로도와 외나로도 2개 섬이 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다. 산 너머 산이 아니라 섬 너머 섬이다. 이제는 단번에 뭘 끝내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었다. 국도에서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렇게 느긋한 여행을 즐기다 도일리의 한 포구에서 엄청난 수의 짱뚱어와 마주친다. 트럭 위에 욕조만한 고무대야가 세 개나 실려 있고, 그 대야마다 짱뚱어가 그득하다. 그런데 짱뚱어가 겨우 어른 엄지손가락만하다.
너무 크기가 작아 처음에는 짱뚱어 새끼인 줄 알았다. 아니란다. '깨짱뚱어'라고 이게 다 자란 거란다. 짱뚱어는 그물로 잡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어 어떻게 이 많은 걸 다 잡았는지 물었다. 이맘때 물이 밀려들어올 때, 이놈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기 때문에 그물로 잡아 올린단다. 하여튼 징그러울 정도로 많다.
이 짱뚱어로 추어탕을 끓이듯이 탕을 끓여 먹는다. 식당에 넘기면 냉동고에 넣어두었다가 일 년 내내 탕을 끓여 판다고 한다. 맛이 참 좋다는데 내 눈엔 도무지 식욕이 돋지를 않는다. 깨알 같은 두 눈이 하늘을 향해 오똑하게 솟아 있는 놈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지, 형제들 머리 위를 철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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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에 대전해변에 도착한다. 고흥반도를 한참을 달려왔는데 해변에 도착해서 보니까 바다 건너 코앞이 바로 오늘 아침에 출발한 안남마을이다.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대전해변을 떠나 풍류해변까지 가는 길에 길을 헤맨다. 그 바람에 다시 해안으로 다가가는데 산을 하나 넘는다. 조금 마음이 급해진다.
오후에 풍류해변에서 후릿그물 체험행사가 있다. 가능하면 행사가 진행되기 전에 도착해 호흡을 가다듬고 싶다. 하지만 풍류해변을 지나쳐 다시 되돌아가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지체한다. 결국 내가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후릿그물 체험행사가 끝난 뒤다. 아쉬운 마음에 해변 한쪽 갯바닥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는 체험객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어제와 오늘에 이어 두 군데 어촌체험마을을 지나오면서, 요즘 어촌이 내가 평소 알고 있었는 어촌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서해에서는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잦아, 어촌체험마을이 남해처럼 시끌벅적한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안남어촌체험마을과 풍류어촌체험마을에서 실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행사가 진행이 되는 걸 보면서, 어촌이 도시 사람들의 입맛만 만족시키고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마음과 공허한 정신까지 살찌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해, 남해, 동해를 가릴 것 없이 가까운 해안 마을에서 다양한 어촌체험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평소 경험해 보지 못한 색다른 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어촌체험에 바다 생물을 관찰하는 프로그램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외에도 그 마을의 특색에 맞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어촌체험마을(www.seantour.org)'과 '바다여행(www.seantour.com)' 사이트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재미있고 유익한 체험 정보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교육적인 목적의 '체험'을 즐기기 위한 행사라는 것이다. 물고기나 바지락을 잡는 행사가 있다고 해도 그 양이 대부분 체험을 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알고 가는 게 좋겠다. 양에 연연하지 않으면 바닷가에 사는 갖가지 생물을 구경하고 직접 채집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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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 마을에서 세 번째 펑크가 났다
풍류해변을 지나서는 용동해변을 지나 도양읍까지 달려간다.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많은 거리를 달려 왔다. 녹동선착장에 도착해 바다 건너 소록도를 건너다보는데 그 섬이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놀랐다. 수영에 자신만 있다면 충분히 헤엄쳐 건널 수도 있는 거리다. 그 소록도에 평생을 갇혀 산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소록도 안에서는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 이용도 불가능하다. 할 수 없이 소록도 여행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소록대교가 건설된 이후로 정작 소록 주민들의 육지 나들이가 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몸이 불편한 소록도 주민들이 인도가 없는 소록대교를 이용하는 게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목포 앞의 압해도도 그렇지만, 연륙교를 놓으면서 주민들이 오갈 수 있는 인도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삼송마을에서 세 번째 펑크가 났다. 날카롭게 갈린 철사 끝이 타이어를 뚫고 들어왔다. 가지 가지 물건이 펑크를 내고 있다. 펑크를 수리하고 있는 사이, 멀리 농로에서 트럭 한 대가 논으로 처박히는 광경을 목격한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은 모양이다.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는 게 보인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80km, 총 누적거리는 2662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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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에 내 마음도 '뻥'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7] 고흥군 도양읍에서 내나로도까지
10월 24일(일)
남해안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밤새 창 밖에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침이 되어도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비가 내릴지 알 수 없다. 평일도 아닌 주말, 일요일에 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건 생각만 해도 처량하다. 남들이 보기엔 또 얼마나 애처로워 보일까?
오늘은 도양읍에서 머무르고, 내일 아침 다시 출발하기로 한다. 일단 달리기를 포기하고 나니까 마음은 편하다. 편히 쉬면서 그동안 못 다한 일들을 마저 다 해치울 생각이다. 이틀치 원고가 밀려 있다. 가능하면 오늘 작성을 끝내 놓아야 한다. 그동안 찍어 놓은 사진이 거의 포화 상태다. 컴퓨터 용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꼭 필요한 사진이 아니면 모두 삭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사진은 손도 못 대고 밀린 원고를 작성하는 데만 하루가 다 가버린다. 어느새 해가 지더니, 다시 어제 이곳에 도착했던 때와 똑같은 상황을 맞는다. 어떻게 된 게 자전거를 탈 때보다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다. 이런 상태로 편히 쉴 생각을 하다니 꿈도 야무지다. 편히 쉰 건지 빡세게 일한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자전거타기 좋은 날, 자전거 타기 좋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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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월)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분다. 창 밖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강풍이 불고 있는 게 틀림없다.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느냐에 따라 오늘의 운이 결정된다. 긴장 반, 기대 반이다.
다행히 순풍이다. 오늘은 고흥반도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바람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쪽을 향해 불고 있다. 잘 하면 오늘 하루 종일 바람의 힘을 이용해 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다 보니 이런 행운도 다 생긴다.
지난밤 일기예보에 비가 오고 나서는 기온이 많이 떨어져 날씨가 추워질 거라고 했는데, 날씨도 생각했던 것보다 따뜻하다. 행운이 겹친 셈이다. 이럴 땐 바람 방향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떠나야 한다. 세상에 바람처럼 변덕이 심한 게 없다. 못 믿을 게 바람이다. 행운이 언제 불운으로 바뀔지 모른다.
고흥반도에서는 대부분의 해안을 77번 국도가 지나간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국도라 갓길이 없는 구간이 많고, 도로 사정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방향 표시가 분명해 길을 잃을 염려가 없고 오가는 차량이 드물어 꽤 쾌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연륙교로 연결이 되어 있는 지죽도에서부터 외나로도가 있는 구간까지는 모두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어 있어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한 마디로 자전거타기 좋은 날, 자전거 타기 좋은 길을 만난 셈이다.
녹동항을 출발해 바로 국도로 올라선다. 한동안 단조로운 풍경이 이어진다. 해안을 조금만 벗어나도 어디나 똑같은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간척지를 이용해 만든 논이 끝없이 펼쳐진다. 방조제라고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이곳의 논과 방조제는 남다른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오마방조제에 숨은 나환자들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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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방조제 제방 끝에서, 보기 드물게 커다란 안내판을 발견한다. 그 안내판에 초기 이 방조제를 만들 때의 아픈 역사가 기록이 되어 있다. 1962년, 군부가 정권을 잡은 직후다. 방조제를 건설하던 초기, 소록도에 수용 중이던 음성나환자들을 동원했다.
간척지가 만들어지면 그곳에 음성나환자들을 위한 정착촌을 만들어준다는 조건을 달았다. 나환자들에게 섬을 떠나 육지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것이다. 방조제를 쌓는 데 나환자들이 큰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간척지에 나환자들을 정착시킨다는 사실이 지역 주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작업은 중단됐고, 나환자들은 다시 소록도로 돌아갔다. 국가가 주도하는 건설 사업에 음성나환자들을 동원했던 역사도 그렇고, 나환자라는 이유로 평생 섬에 갇혀 살아야 했던 역사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당시엔 그런 폭력이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었다.
오마방조제 위에 서서 간척지를 수놓고 있는 누런 논을 내려다본다. 간척지에 소록도의 한과 눈물이 배어 있다. 이곳의 간척지에서 생산된 쌀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소록도가 뿌린 차가운 눈물이 따뜻한 밥알이 되어 매일 누군가의 밥상 위로 올라갔다. 소록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섬이 아니었다.
하동마을에서 지죽도 가는 길로 들어선다. 이곳에서부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이미 풍남항을 지나면서부터 해안 풍경이 남달라 보였다. 절벽 위 해안도로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절경이다. 그 풍경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접어들고 나서는 지죽도에서 방점을 찍는다.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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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죽대교 위에서 지죽도와 죽도가 한꺼번에 내려다보인다. 그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그러다 지죽도의 끝, 지죽포구에서 건너다보는 죽도 풍경에 그만 마음을 빼앗긴다. 지죽포구 앞에 떠 있는 작은 섬 죽도에 붉은 지붕을 이고 선 집들이 마치 거대한 바위 위에 단단히 흡착한 따개비들 같이 정겹고 예쁘다.
바람은 거칠게 불고 파도는 높아, 죽도 발아래 넘실거리는 바닷물이 금방이라도 붉은 지붕 따개비들을 한꺼번에 휩쓸어버릴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그 따개비들을 한데 모아 감싸 안은 섬은 그런 걱정 말라는 듯 의연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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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대교를 넘어 다시 내나로도로 들어가는 길의 바닷가 풍경 역시 끝없이 감탄사를 늘어놓게 만든다. 내나로도의 바닷가 풍경이 아기자기하고 우아한 멋을 가진 풍경이라면, 내나로도에서 바라다보는 먼 바다의 아스라한 풍경은 웅장하고 시원한 멋이 있다. 거의 모든 풍경이 카메라에 담으려 해도 한 컷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넓고 크다. 그런 장면이 수시로 나타나 갈 길 바쁜 내 발목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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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대교를 넘기 직전에 다시 펑크가 난다. 나로대교를 앞두고는 '전망좋은곳 표지판을 보고 방향을 꺾는데 의외로 가파른 언덕이 나타난다. 바람이 또 어찌나 거세게 불던지, 언덕 위로 낙엽이 우루루 쓸려 올라간다. 그 광경을 보면서 괜히 올라가나 싶었다.
언덕을 거의 다 올라갔을 무렵에 뾰족한 가시들이 나 있는 나뭇가지들이 길바닥에 떨어져 여러 개 나뒹구는 걸 보았다. 다 피해 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던 모양이다. 나무 가시 하나가 타이어를 뚫고 들어왔다. 가시를 뽑아내자 바람 빠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마치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 같다.
곱배기 돈가스 내온 아주머니 말에 코끝이 '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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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난감하다. 해는 지려 하고 기온은 점점 더 떨어지는데 이런 낭패가 없다. 그 자리에서 펑크를 수리해야 하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단 바퀴가 구를 수 있는 데까지 굴러가 보기로 하고 다시 출발한다. 하지만 앞바퀴가 탄력을 잃으면서 핸들 조정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자전거가 흔들리는 걸 느낄 수 있다. 가능하면 빨리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 와중에도 눈앞에 나타나는 멋진 풍경을 놓치지 않는다.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앞바퀴 공기는 계속 빠져나가고 있고 사진은 찍어야겠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숙박업소는 찾지도 못하고, 길가에 주저앉아 펑크를 수리한다. 죽을 맛이다. 흙먼지를 몰아오는 바람에, 자동차 소리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나무 가시를 그냥 뽑아버리는 바람에 튜브에 구멍 난 곳을 찾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예비 튜브로 교체한다. 펑크만 벌써 네 번째다.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가 마지막에 펑크에 발목이 잡혀, 오늘은 결국 내나로도에 주저앉는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74㎞, 총 누적거리는 273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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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내가 묵은 숙박업소의 아주머니께서 '추운데 혼자서 고생이 많다. 하루 종일 허기가 졌을 것 같다'며 돈가스 양을 곱으로 내왔다. 나를 보니,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 생각이 난단다. 그 말을 들으면서 왜 그렇게 코끝이 찡한지 모르겠다.
텔레비전에서 내일은 남해안 일대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게다가 강풍이 불어 체감온도가 뚝 떨어질 거라는 예보다. 평년 기온에서 10도 가량 더 떨어질 거라는데 걱정이다. 겨울이 생각보다도 더 빨리 오고 있다. 겨울옷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밤새 바람이 하늘을 쓸고 지나가는 소리에 뒤척인다. 몸은 피곤한데 잠 속에 깊이 빠져들지 못하고 있다. 내나로도의 잠 못 드는 밤이다.
최첨단 '우주 기지' 옆서 눈물의 '라면밥' 먹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8] 고흥군 내나로도에서 남열해수욕장까지
10월 26일(화)
오늘도 바람소리가 몹시 사납다. 새벽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는 풍경이 몹시 스산하다. 해가 뜨기 직전의 어두운 하늘 아래, 검은 갯벌이 싸늘한 빛을 띠고 있다. 바닷가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와 풀잎이 산발을 한 채 바람에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다. 보기만 해도 뼛속이 시리는 풍경이다.
문 밖으로 나서기가 망설여진다. 기온이 어제보다 10도가량 더 내려갔다고 하는데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어제와 다를 게 없다. 요 며칠 동안 입고 있는 옷 그대로다. 도양읍에서 추위에 대비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하루 사이에 날이 이렇게 추워질 줄은 몰랐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데 먼저 찬바람이 쌩하고 가슴에 들어와 안긴다. 순간 몸이 휘청한다. 얼음같이 차갑고 무거운 바람이다. 자전거가 서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것도 힘들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무시무시하다. 하늘에서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상태로 얼마나 오래 자전거를 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강풍에 추위까지, 감당하기 힘든 하루가 될 게 분명하다.
강풍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춥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햇볕이 나기 망정이다. 하늘마저 흐렸다면, 자전거여행이고 뭐고 모텔 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을 것이다. 여하튼 가다가 못 가는 한이 있더라도 가는 데까지는 가보자는 심산으로 다시 거리로 나선다.
나로2대교를 넘어 외나로도로 들어선다. 나로도항까지 가는 길에 자꾸 브레이크를 잡고 멈춰 서게 된다. 바람 때문에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자전거 바퀴가 자꾸 궤도를 벗어난다. 차들이 많은 곳에서는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고흥반도에 들어선 이후로 고난의 연속이다.
얼어붙은 몸으로 맞바람과 싸워가며 겨우 나로도항에 도착한다. 어딘가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마시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이 큰 항구에 딱히 쉴 곳이 없다. 부둣가에 서 있으려니, 마치 허허벌판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 와중에도 자꾸 주변 풍경에 눈이 간다. 앞바다에 낮게 떠 있는 섬이 방파제 역할을 하는지 바다는 이상하리만치 잔잔하다. 자꾸 등을 떠미는 바람만 아니라면, 항구 주변 풍경을 천천히 감상할 만하다. 하지만 바람이 어찌나 거칠게 부는지 근로사업을 나온 마을 주민들마저 화장실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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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도항에서 나로도우주센터까지 가는 길은 길고 높은 언덕이다. 경사가 급한 편은 아니지만, 맞바람이 부는 까닭에 마치 급경사를 오르는 것처럼 힘들다. 겨드랑이로 식은땀이 흐른다. 언덕을 오를 땐 보통 몸이 뜨거워지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몸에서 솟는 열이 그 열을 빼앗아가는 바람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이 점점 더 차갑게 얼어붙는다. 다리 힘은 바람이 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그런데도 언덕 끝이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이대로 그냥 되돌아 내려갈까, 심한 갈등을 겪는다. 충동을 겨우 억누른다.
가까스로 언덕 끝에 도달하지만,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일 역시 만만치 않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땀으로 젖은 몸이 급격히 식어 버린다. 마치 한겨울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과도 같다. 이런 경사에서는 보통 시속 40km 이상을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20km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하고 계속 브레이크를 잡는다.
이런 상태로 내가 오늘 안으로 외나로도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나중에 나로도우주센터를 나오면서 반대편 방향에 있는 염포마을까지 가는 길은 깨끗이 포기한다. 그 길은 또 얼마나 힘들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로도우주센터에 바라보는 바닷가 풍경이 생각 밖으로 아름답다. 사실 나로도에서는 그곳의 바다가 어디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거친 날씨만 아니라면, 언덕이 아니라 산을 넘어서라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고 싶은 풍경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나로도우주센터가 있는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채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간 형상이어서 바람의 세기도 한결 덜한 편이다. 그 덕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던 몸이 따뜻한 햇살에 서서히 녹아내리는 걸 느낄 수 있다. 해변이 몽돌밭이어서 그런지 더 포근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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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센터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서는 먼저 스낵코너로 발을 옮긴다. 나로도에서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게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내는 것보다 더 어렵다. 식당 비슷한 게 눈에 띄면 무조건 머리부터 디밀고 들어가야 한다. 밥을 먹고 나니까 온몸이 나른하다.
전시관 관람은 대충 하고, 전시관 의자 위에서 더 오랜 시간을 머무른다. 보는 눈만 없으면, 햇볕 잘 드는 곳에 벌렁 드러누워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좋겠다. 하지만 때맞춰, 학생 단체 관람객들이 들이치는 바람에 점잖은 어른 흉내를 내고 앉아 있다.
이번 여행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거지만,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참 예의가 바르다.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서 인사를 자주 받는다. 서울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기본이다. 전라도 지역에 들어서서는 '운동 가세요?'라는 말도 여러 차례 들었다.
그것 참 살가운 말이다. 서울에서는 낯익은 동네 어른들에게나 하는 인사가 아닌가? 이런 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오늘 단체 관람을 온 학생들 중에는 한 아이가 '고생하시네요'라며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그 녀석, 참 어른스럽다. 내가 교장이라면 표창장이라고 주고 싶다.
경기도에서는 대문 앞에서 놀던 어린아이가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나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걸 본 적도 있다. 이런 인사법을 어디서들 배웠는지 궁금하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조차 함부로 행동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어른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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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로도를 나와서는 다시 내나로도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어제 내나로도를 지나오면서 미처 가보지 못한 동쪽 해안을 마저 다 돌아야 한다. 이곳에서 마주친 풍경이 또 내 마음을 살살 녹인다. 산 아래로 오목하게 들어온 바닷가에 햇살은 가득한데 바람은 거의 불지 않는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다.
그 바닷가를 따라 해안도로가 겨우 어깨를 드러낸 정도로 낮게 엎드려 있다. 자전거 타기에 충분히 넓고 평탄한 도로다.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해안도로를 달려왔지만, 이 길처럼 아름답고 재미있는 길도 드물다. 이 길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만, 어디에나 끝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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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벗어나면서 내나로도와도 작별이다. 언제고 다시 한 번 더 와보고 싶다는 소망을 남기고 떠난다. 내나로도와 고흥반도를 연결하는 나로1대교로 올라서면서 다시 바람이 내 몸을 덮친다. 바람이 그새 더 날이 서 있다. 도무지 비위를 맞추기 힘든 바람이다.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다. 날이 저물면서 기온도 급격히 떨어진다.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어딘가 편히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남열해수욕장까지는 달리는 데만 전념한다. 남열해수욕장까지 또 얼마나 많은 해안 절벽을 오르내렸는지 모른다. 오늘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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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다. 슈퍼마켓과 민박을 겸하고 집에 짐을 내려놓고 나니, 다시 일어서기가 싫다. 마침 샤워장도 마당 한구석, 어두운 곳에 있다. 해는 이미 저물고 날은 몹시 춥다. 수건을 들고 샤워장까지 왔다 갔다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저녁밥이다. 그래도 해수욕장이라 무언가 먹을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아무것도 없다. 결국 주인집에 얘기해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 눈물 나는 저녁밥이다. 남열해수욕장은 나로호 발사 당시, 발사 장면을 관람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 한때 화제가 됐던 곳이다. 우주로 가는 시대를 열고 있는 나로도에서 라면으로 때우는 저녁이라니, 그 맛 참 씁쓸하다. 오늘 달린 거리는 66km, 총 누적 거리는 2802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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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데 뭐하러 그러고 다녀" 꾸짖는 할머니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9] 고흥군 남열해수욕장에서 벌교읍까지
10월 27일(수)
오늘도 창 밖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다. 계속 강풍이 불고 있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한결 따뜻하다. 아무리 기온이 급강하했다고 해도 가을 날씨가 갑자기 겨울 날씨가 될 수는 없다. 견딜 만한 날씨다. 바람이 좀 강하게 불어서 그렇지, 자전거 타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고 하니까 여기저기서 우려 섞인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뿐만이 아니다.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마저 이 추위에 이 무슨 고생이냐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곤 한다. 추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추위 때문에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지는 않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이 정도 추위는 금방 가신다. 경우에 따라 시원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문제는 추위를 동반한 바람이다. 이놈의 바람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오늘 아침처럼 차가운 맞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할 때는 아무리 인내심을 발휘한다고 해도, 얼마 안 가 지치기 마련이다.
숙소를 나오자마자,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남열해수욕장 뒤로 해발 450여 미터나 되는 우미산이 버티고 서 있다. 도로가 그 산의 중턱을 가로지르며 지나간다. 이럴 땐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지나치게 황당한 경우를 당하게 되면 그 순간 그만 할 말을 잃고 마는 것과 같다. 멍하다. 그런 상태로 묵묵히 페달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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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 절벽 위 도로에서 내려다보는 바다가 눈부시다. 티 없이 맑은 햇살이 수면에 부딪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반짝 튀어 오른다. 눈을 뜨고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다. 하늘이 맑은 날, 남해는 절반이 은빛이다. 해를 등지지 않는 이상, 짙푸른 바다를 보기가 힘들다.
우미산 절벽을 내려가는 길에 적금도 연륙교 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 한가운데 교각이 하늘 높이 서 있다. 바다 위에 다리를 놓고 있는 공사 현장을 보는 게 벌써 몇 번째인가? 반도를 도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인데, 반도와 연결이 되어 있는 섬들까지 죄 돌아서 나와야 하는 내게는 아직 그 다리들이 미완성 상태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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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륙교로 연결이 되어 있는 섬이란 게 대부분 난코스를 포함하고 있다. 대체로 평지보다는 높은 언덕과 산길을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 머리 속에는 섬이 사실은 섬이 아니라 '바다 위에 솟은 산'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게 박혀 있다. 오늘 내가 가야 하는 길에 백일도라는 섬이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 섬이 고흥반도에서 만나는 마지막 난코스가 되는 셈이다.
백일도 가는 길에 신곡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할머니 두 분을 만난다. 두 분 중 한 분이 자전거를 세워두고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던진 첫마디가 '추운데 뭐 하러 그러고 다니냐'는 타박이다. '자전거를 타면 추운 줄 모른다'고 했더니, '그래도 마스크는 하고 다니라'고 한다. 어머니들 잔소리는 왜 이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어딜 가나 '추워서 어떻게 하냐'는 걱정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지 고민이다.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40일 넘게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면, 장하다는 생각보다 안쓰럽다는 생각이 앞서는 게 당연지사다. 그래서 요즘은 누가 '며칠째 여행을 하고 있는 거냐?'는 질문을 하면 '얼마나 됐을 것 같냐?'고 대충 얼버무리거나 날짜를 대폭 줄여서 대답을 하곤 한다.
두 분 어머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한동안 내륙 지역을 달리다가 백일도로 들어가는 길에서 다시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러면서 주변 풍경도 확 바뀐다. 산과 구릉으로 막혔던 시야가 바다를 향해 열리는 것은 물론이고, 마을 풍경 역시 바다가 내비치는 푸른빛만큼이나 깔끔하고 청량한 분위기로 뒤바뀐다.
그곳의 포구가 크지 않아서 좋다. 그 마을에 딱 알맞은 크기다. 포구 너머로 백일도로 넘어가는 짧고 낮은 다리가 보인다. 다리 또한, 그 마을 그 포구와 딱 어울리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그 다리가 사람 머리카락 쭈뼛해질 정도로 높게 치솟은 형세가 아니어서 좋다. 그래도 이름만큼은 다른 연륙교와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는지 '백일대교'라고 써 붙였다.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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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도는 좁고 길다. 굳이 바닷가 길을 가지 않아도 어디서건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 그 바다가 참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눈을 들어 바라다보는 곳마다 그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백일도는 참 조용한 섬이다. 섬이 크지 않고 이렇다 할 산업 시설이 없어 덩치 큰 차들은 거의 오가지 않는다.
걸어 다니기에 딱 좋은 섬이다. 걸어 다니면서 섬 구석구석 숨은 풍경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할 것 같다. 백일도는 바다를 앞에 두고 낮은 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집들이 무척이나 정겨운 섬이다. 바닷가에 살게 되면, 이런 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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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도를 나와서는 월정리를 향해 달려간다. 월정리는 특이하게 수백 년 된 사철나무 등이 400여 미터 해안가 방풍림으로 서 있는 마을이다. 해안에 소나무 방풍림이 서 있는 광경은 수도 없이 보아왔다. 방풍림으론 해송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곳엔 사철나무를 비롯해 이팝나무와 팽나무가 주종이다.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질 게 분명하다.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월정리까지 가는 길에 너무 허기가 져서 애를 먹는다. 중간에 콧구멍만한 매점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마침 비상식으로 먹으려고 사두었던 간식거리도 다 떨어진 상태다. 월정리에 도착해서야 겨우 마을구판장이라고 써 붙인 매점이 하나 보인다. 그곳에서 초코파이 한 상자와 1.5리터 용량의 오렌지 주스 한 병을 사서는 허겁지겁 먹고 마신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초코파이 세 개째를 먹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우편배달부가 감 두 개를 들고 서 있는 게 보인다. 나를 보고, '이거 드실래요?' 한다. 그 감 두 개를 얼떨결에 받아든다. 우편배달부가 보기에도 길가에 서서 초코파이를 먹고 있는 내가 무척이나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월정리에서 비로소 나무에 단풍이 드는 걸 감상한다. 북쪽은 단풍이 절정이라는데 아직도 남해는 녹색이 더 짙다. 단풍이라고 할 만한 기운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월정리 바닷가에 와서 단풍이 들고 있는 걸 확인하다니 별일이다. 바닷가에 서 있는 수백 년 아름드리 나무들이 색색으로 물들고 있는 광경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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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리를 마지막으로 고흥반도와도 작별이다. 고흥반도에 들어선 지 5일째다. 참 길고도 험한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고흥반도는 그 고생을 하고도 결코 후회 같은 걸 할 일이 없게 아름다운 땅이었다. 지금까지 해안선 여행을 하면서 이처럼 다채로운 풍경을 보여준 곳은 없었다.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깊은 감동을 준 풍경이 여러 군데다.
고흥반도를 벗어나서는 벌교읍까지 죽 방조제 길을 따라간다. 방조제 위에서 내려다보는 갈대숲이 장관이다. 순천만 갈대숲에 버금가는 풍경이다. 벌교읍에서는 요즘 주먹 자랑이 아니라, 조정래 '자랑'이 한창이다. 소설 <태백산맥> 속 배경이 된 곳마다 안내판이 서 있다.
오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길에는 '소화다리'와 '중도방죽'이 있다. 두 곳 다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벌교에 가거든 꼬막만 찾지 말고, '작가 조정래'와도 꼭 인사를 나누고 오시기 바란다. 오늘 달린 거리는 85km, 총 누적거리는 2887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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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이 90도 각도로 뚫고 들어왔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40] 벌교읍에서 순천시 와온마을까지
10월 28일(목)
하늘은 맑지만 바람이 부는 날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하늘이 울부짖는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센 바람은 아니다. 그래도 아침과 저녁으로 기온이 무척 낮은 데다 바람이 부는 만큼,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지난밤에 벌교 시내에서 바람막이 점퍼를 하나 구입했다.
벌교에서 다시 중도방죽으로 올라선다. 방죽 위로 흙길을 시멘트만큼이나 단단하게 다져 놓았다. 방죽 아래 갯벌엔 갈대가 꽉 들어차 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갈대가 바람에 서걱대는 소리가 들린다. 시원하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기에 좋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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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생태마을로 들어섰다가 길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 나온다. 풀이 우거진 길이 하나 보이기는 하는데, 사람이나 차가 지나다닌 흔적이 거의 없다. 벌교 읍내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침부터 풀숲을 헤치고 들어갈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며칠 전만 해도 이런 길을 가다가 추수를 끝낸 논바닥으로 걸어 들어간 적이 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은 2번 국도를 타고 일부 구간을 우회한 뒤, 다시 쟁동 바닷가마을로 들어선다. 예전에도 한두 번 경험한 일이지만, 도시 근처의 국도는 차량이 꽤 많은 편이다. 특히 산업 시설이 가까운 구간에는 거대한 크기의 산업용 차량들이 많이 지나다녀 꽤 위협적이다. 따라서 이런 구간에서는 가급적 차량이 드문 옛 국도나 지방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기차가 설 것 같은 멀쩡한 역사
진석마을을 지난 뒤로는 꽤 오랫동안 2차선 지방도로를 탄다. 길도 다시 바닷가에서 멀어져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논과 밭뿐이다. 이 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곳에 2번 국도가 길고 곧게 뻗어 있는 것이 보인다. 마음 같아선 국도를 이용하고 싶다. 하지만 그곳엔 속도만 있고, 정취라는 게 없다.
내가 지금 달려가고 있는 이 길엔 차들이 거의 오가지 않는다. 정취를 포기하고 속도를 택한 차들이 대부분 국도로 올라가고 없기 때문이다. 길이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것 말고 아쉬울 게 아무것도 없다. 내 뒤를 쫓는 차들이 없어서 그런지 마음도 훨씬 더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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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낡은 역사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겉모습이 멀쩡해서 지금도 운영 중인 역인 줄 알았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갈까 생각했다. 때맞춰 기차가 들어오는 장면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철길은 이미 폐선이 되고 역사에는 근대문화유산 딱지가 붙어 있다.
1934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겉보기엔 대충 지은 건물 같은데 그새 80년 가까이 된 건물이다. 건물 앞에 '전라도 일대의 주요 자원인 쌀, 목재, 광물 등을 일본으로 수탈하는 통로 역할을 했던 송정리-여수 간 철도에 만들어진 역 건물 중의 하나'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당시 우리 땅에 지어진 역들이 대부분 그런 용도로 이용됐다.
기차역뿐만이 아니다. 바닷가의 항구들 역시 대부분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군산에서는 아직도 길가에 늘어선 건물의 상당수가 일본색을 띠고 있다. 당시에 만들어진 주요 시설과 건물들이 이제는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보존이 되고 있다. 과거를 잊지 말자는 취지의 보존이겠지만, 식민 통치의 도구로 사용됐던 것들이 수십 년 같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마음이 조금은 씁쓸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별량면 면소재지가 있는 곳까지 달려간다. 이게 아니다 싶어 지도를 뚫어지게 들여다봤더니 조금 지나쳤다. 차라리 잘됐다 싶다. 때마침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면소재지답게 길가에 식당이 늘어섰다. 메뉴를 내 맘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여러 곳이다.
이런 식당을 발견했을 땐 횡재한 기분이다. 바닷가에선 내가 메뉴를 선택한다기보다는 식당에서 정해준 메뉴를 먹는 경우가 많다. 그마저도 감지덕지다. 게다가 혼자라서 미안해 할 이유도 없다. 어느새 밥 먹는 일 역시 주요한 일과 중에 하나가 됐다.
배를 채우고 나니까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이제 해가 질 때까진 아무 걱정이 없다. 면소재지를 떠나서는 다시 바닷가 길로 들어선다. 한적한 어촌 풍경이 이어진다. 조금 단조로운 풍경이다. 마침 햇빛마저 정면으로 비추고 있어 눈을 들기 힘들다.
그러다 봉화산을 바닷가 쪽으로 돌아가는 절벽 길 위로 올라서면서 풍경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빛의 각도가 바뀌기도 했지만, 그곳부터 서서히 순천만의 갈대밭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봉화산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순천만의 갈대밭들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고 낮은 섬들처럼 보인다. 갈대밭은 노란 섬이고, 칠면초는 붉은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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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갈대밭에 관광객이 북적댈 줄 알았을까
봉화산을 내려가면 그때부터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모두 갈대다. 어른 키보다 높은 갈대들이 펄 밭에 곧추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대하양식장을 지나 오른쪽 샛길로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제방 위로 난 길을 따라갈 수 있다. 계단 말고는 제방으로 올라가는 길이 따로 없다. 제방 경사면으로 그냥 자전거를 밀고 올라간다.
제방 왼쪽은 비포장도로이고, 오른쪽은 끝이 어딘지 가늠하기 힘든 갈대밭이다. 이 길이 대대포구까지 이어진다. 대대포구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 한적하다. 하지만 이 길도 대대포구에 가까워지면서부터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안 가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이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제방 위를 걷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리고 포구에 도착해서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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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포구는 순천만 갈대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이다. 대대포구를 지나야 순천만 갈대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용산전망대까지 걸어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순천만에 갈대밭이 형성되기 시작한 지 30여 년, 최근 10년 사이에 갈대밭이 급속도로 확산됐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지금과 같은 유명관광지가 되기까지 채 5년이 걸리지 않았다.
대대포구에 갈대밭을 돌아보는 유람선이 드나들고, 제방 위로 갈대밭을 순회하는 무궤도 열차가 지나다닌다. 격세지변이 따로 없다. 갈대밭이 유명세를 타고 있는 추세로 보면, 앞으로 5년 뒤엔 더 큰 변화가 있을 게 틀림없다.
대대포구를 지나 계속 제방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갈대밭을 가로질러 반대편 제방 길로 건너가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 건너 제방 길은 사람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다. 인적이 드문 까닭인지 갈대가 제방 위까지 올라와 제 몸을 흔들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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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이 끝나는 곳부터는 갈대밭과도 작별이다. 이후로 와온마을까지는 내륙으로 갓길이 없는 좁은 도로를 달려야 한다. 이 길에서 이제는 몇 번째인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펑크가 난다. 뒷바퀴에 3cm 가까이 되는 못이 박혀 있다.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힌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긴 못이 타이어를 뚫고 들어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놈의 못이 사선도 아니고, 벌떡 일어선 90도 각도로 뚫고 들어왔다. 덕분에 튜브의 아랫면과 윗면을 모두 때워야 하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펑크를 때우고 있는 사이에 해가 기운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라는 신의 계시일 게다. 오늘 달린 거리는 45km, 총 누적거리는 2932km다. 어느새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가 3000km에 육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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