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민삿갓의 팔도기행_변산반도

醉月 2011. 1. 12. 09:06
변산반도-산해절승 '서해의 진주'를 가슴에 담는 가을 여행
| 매창공원&신석정고택 | 변산 마실길 | 채석강&적벽강 | 내소사&단풍산행 | 곰소염전 | 반계유적지 | 개암사 |

한쪽 겨드랑이에 바다를 끼고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달린다. 날카로운 수평선에 눈을 베이기도 하고, 부드러운 갯벌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며, 점으로 떠있는 섬들을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단풍으로 물든 곱상한 산의 손짓엔 정신이 아득해진다. ‘서해의 진주’ 변산반도의 가을 풍광이다.

▲ ‘서해의 진주’라 불리는 변산반도의 대표적 경관인 채석강. 수만 권의 고서적을 첩첩이 쌓아놓은 듯한 해안절벽이 경이롭다.

변산반도는 21세기 벽두에 완공된 서해안고속도로 덕분에 접근이 수월해져 당일로도 여행은 가능하다. 당일 여정으로 정오 전에 부안 땅에 들어섰을 때 채석강 노을을 보고 싶다면 먼저 변산반도 남쪽으로 돌면서 개암사·반계유적지를 보고, 내소사~모항을 구경하면서 채석강으로 간다. 채석강에서 일몰감상 후 변산반도 북쪽 해안으로 나오면서 해창 근처에서 바지락죽을 맛보고 귀가하면 된다.

그렇지만 당일 변산반도 여행은 정말 섭섭하다. 최소 일정을 1박2일로 잡아야 ‘서해의 진주’라는 변산반도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1박2일의 경우 ‘채석강 일몰 감상’과 ‘내소사 아침 산책’에 방점을 찍고 계획을 짜면 된다.

첫날 부안 읍내에서 매창공원과 신석정고택을 들른 다음, 30번 국도를 타고 변산반도 북쪽 해안도로를 달린다. 목적지는 당연히 채석강이다. 가는 도중에 새만금전시관, 적벽강, 수성당 등을 둘러보고 노을 시간에 맞춰 채석강으로 간다. 10월 초엔 오후 6시10분, 10월 말엔 오후 5시40분 무렵에 해가 떨어진다.

첫날 일찍 도착해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변산 마실길’ 일부 구간만이라도 걸어보자. 3코스를 강력 추천한다.

숙박은 채석강 주변서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궁항·모항 등지에도 바다 풍광이 좋은 숙박업소가 여럿 있다. 그렇지만 내소사 앞에서 숙박하면 아침에 차량으로 이동하는 번거로움 없이 내소사 아침산책을 즐길 수 있다.

▲ 모항 근처의 해안 풍광. 채석강보다 찾는 이들이 적어 상대적으로 호젓한 분위기가 난다.

단풍 산행 역시 내소사와 연결해 관음봉~세봉 원점회귀 산행을 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 이 코스는 조망도 좋고 단풍도 아름답다.

내소사를 벗어나면 오후에 곰소염전과 곰소항, 우동리 반계유적지 등을 둘러본다. 이어 호벌치전적비를 지나 개암사·울금바위를 둘러보고 귀갓길에 오르면 1박2일의 알찬 변산반도 가을 여정이 된다.

변산반도는 서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도다. 호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변산지맥’이 서쪽으로 흐르며 바다에 몸을 담그기 전, 문어발처럼 사방으로 뻗으면서 온갖 기암과 비경을 빚어놓은 덕에 변산반도 전체가 절경이다. 바다와 접한 해안 쪽은 외변산, 기암의 산봉우리들이 즐비한 산 쪽은 내변산이라 한다지만, 굳이 안팎 따질 거 없이 모두 빼어나다. 그래서 예로부터 변산반도는 우리나라 최고의 산해절승(山海絶勝)이라 해서 수많은 시인묵객을 불러들였다. 근래엔 ‘서해의 진주’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매창공원&신석정고택

변산반도 여정의 시작에서 만나는 두 시인


변산반도 여행은 부안 읍내서부터 북쪽의 해안도로를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게 일반적이다. 해안 풍광이 궁금하다고 부안 읍내를 서둘러 벗어날 일도 아니다. 변산반도에 들어섰다면 먼저 두 시인을 만나보자. 바로 매창과 석정이다. 두 시인의 유적은 모두 부안 군청 반경 1~2km 안에 있다.

먼저 서외리 부안문화원 근처의 매창공원으로 가보자. 조선 선조 때 기생인 이매창(李梅窓, 1573~1610년)은 부안 출신이다. 매창은 저 유명한 황진이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의 ‘기녀 시인’이고, 또한 여기에 허난설헌을 보탠다면 ‘조선의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힌다.

매창을 기리기 위해 ‘매창이뜸’이라 불리던 매창묘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매창과 관련된 여러 시와 글을 모아 큼직한 돌에 새겨 세워 놓았다. 한때는 공동묘지였지만 지금은 부안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관광객들의 답사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매창공원에서 매창과 얽힌 시비의 글귀를 감상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화우 흩날릴 때 울며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매
-이매창의 시조 ‘이화우(梨花雨)’ 전문

이 시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매창은 당대의 문장인 유희경, 이귀, 허균 같은 이들과 교류가 깊었다. 특히 유희경(劉希慶, 1545~1636년)은 매창의 첫사랑이요, 죽기 전까지 사모하던 연인이라 멀리 떨어져서도 주고받은 시가 수십 편에 이른다. 매창의 저 유명한 시조도 유희경을 그리워하며 노래한 작품이다. 유희경은 원래 천민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한 공으로 면천이 된 인물로서 광해군 때 폐모론 가담 권유를 거절해 인조반정 후 대부의 품계를 받았다.

이귀(李貴, 1557~1633년)는 인조반정을 주도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병조판서·이조판서를 지냈다. 매창과는 이귀가 부안과 이웃한 김제 군수로 왔을 때 인연을 맺었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과 매창의 인연도 깊다. 허균은 1601년 세금을 거두는 전운판관(轉運判官)으로 전라도 출장왔다가 매창을 처음 만났다. 천하의 바람둥이 허균이건만 매창과는 선을 넘지 않았다. 아마도 매창이 여전히 유희경을 가슴에 품고 있었고, 친구같이 가까운 사이였던 이귀의 정인이었기 때문이리라. 1608년 무렵엔 허균은 한때 아예 부안 우동리로 내려와 살기도 했는데, 허균은 그곳에서 ‘홍길동전’을 지었다.

1610년 매창이 38세라는 젊은 나이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허균은 한 차례 울고 난 후 그녀를 위해 시를 짓는다.

‘절묘한 글귀는 넓게 펼쳐진 비단이요 / 맑은 노래는 흩어지고 머무르는 구름이라 / 복숭아를 훔친 죄로 하계에 귀양 와서 / 선약을 훔쳐 인간세상을 떠나셨네’ <허균의 ‘계랑의 죽음을 슬퍼하다(哀桂娘)’의 일부>

매창공원 시비에도 새겨져 있는 이 시를 보면 당대 문장가 허균도 매창의 예술적 재능을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허균의 또다른 기록을 보면 매창이 얼굴이 예쁘거나 교태가 흐르는 외모는 아니었다. 그녀는 미모보다 시와 글, 노래와 거문고 솜씨, 차분한 성품으로 시인묵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매창이 세상을 떠나자 부안의 아전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그녀의 작품 58수를 모아 책으로 엮어주었다. ‘매창집(梅窓集)’이다.

▲ 위)조선시대 여류시인 이매창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부안 매창공원. 시를 새겨놓은 시비가 많아 매창의 시 세계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아래)신석정 시인이 20년간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고택. 현재 주변을 정리하고 문학관을 건립 중이다.
시인을 키운 아름다운 변산반도 풍광

현대에 와서 부안의 시정(詩情)을 크게 드높인 부안 출신 시인 신석정(辛夕汀, 1907~1974)은 이 시집을 번역해 ‘매창시집’을 엮어내기도 했다. 신석정은 매창·유희경·직소폭포를 일컬어 ‘부안삼절’이라 했다. 매창과 석정으로 대표되는 부안의 시정은 바다를 낀 변산반도의 절경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부안이 변산반도고, 변산반도가 바로 부안이기 때문이다.

신석정 고택은 매창공원에서 2~3km 떨어진 부안읍 선은리에 있다. 청구원(靑丘園)이란 당호에 어울리게 집 주변으론 넉넉한 논과 밭이 펼쳐지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이내 파돗소리 정겨운 바다가 반겨주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비록 지금은 여러 건물이 들어서고 바다도 간척이 되면서 시인이 머물던 당시의 그런 풍경을 찾기 어렵게 됐지만, 1934년부터 1954년까지 20년 동안 살면서 첫시집 ‘촛불’과 두 번째 시집 ‘슬픈 목가’를 펴낸 신석정 문학의 산실이었다.

신석정이 한국의 독보적인 자연시인이요, 목가시인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변산반도가 산해절승이었기 때문이다. 시인도 자신의 문학 자양분은 고향의 아름다운 산천이라 고백했다. 시인은 18세이던 1924년 계화도에 다녀오다 시를 한 편 짓는다. 이 시는 석정의 문단 데뷔시로서 그해 조선일보에 실렸다. 바로 ‘기우는 해’다.
‘해는 기울고요 / 울던 물새는 잠자고 있습니다. / 탁탁 툭툭 흰 언덕에 가벼이 부딪히는 / 푸른 물결도 잔잔합니다.(중략)’

현재 부안군에서는 신석정 생가 주변을 정비 중이다. 또한 바로 옆에 신석정문학관을 짓고 있으니 지금보다 차분히 석정의 일생과 문학세계를 짚어볼 날이 멀지 않았다. 신석정 묘소는 고택에서 2km 정도 떨어진 행안면 역리의 나지막한 고성산 기슭에 있다.
 
▲ ‘변산 마실길’ 3코스의 적벽강 해안. 지난해 선보인 변산 마실길 중에서 3코스가 가장 하이라이트다.

변산 마실길

변산반도 해안을 따라도는 보물 같은 길

변산반도에 들어서자마자 시인들의 시를 읊조리며 시심을 한껏 돋웠다면 이젠 바다를 만날 차례다. 부안 읍내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얼마쯤 가다 보면 ‘바람모퉁이’라 불리는 해안이 나온다. 변산반도 여행의 입구가 되기도 하는 이곳을 돌면 이내 거센 바닷바람과 함께 바다가 와락 달려들면서 널따란 갯벌이 눈을 붙잡는다.

한때 바닷가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은 새만금간척지 작업으로 매립될 위기에 처했다. 부안과 군산을 잇는 방조제를 건설하는 새만금간척사업은 방조제만 33km로 세계 최장이라고 한다. 이 사업으로 간척 토지 2만8300ha가 생기고, 호소 1만180ha가 조성된다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어찌됐든 새만금방조제 입구의 새만금전시관에 들러 새만금개발사업에 대한 이해를 돕고 가자.

이어 해안의 크고 작은 포구에 둥지를 튼 아담한 어촌들을 지나다 보면 변산반도 서쪽 끄트머리에 걸린 채석강(採石江)이 가까워진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승용차로 채석강까지 달리면 됐다. 그러면서 바다 쪽으로 바싹 붙은 길을 찾아 가다가 풍광 좋은 포구에서 내려 바다를 구경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전국적인 걷기 열풍에 힘입어 2009년 아름다운 변산반도 해안에도 걷는 길이 탄생했다. 바로 ‘변산 마실길’이다. ‘마실 간다’는 ‘이웃집에 놀러간다’는 뜻이다.

그러니 ‘마실길’은 ‘이웃집으로 놀러가듯 편안한 길’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냥 이웃집이 아니다. 바닷가에 터 잡은 바로 그 이웃집이다. 그래서 그 길엔 널따란 백사장, 조개·소라 등 풍성한 갯벌, 아름다운 해안절벽을 끼고 도는 바다 풍광이 동행한다.

▲ 왼쪽)‘변산 마실길’의 고사포해수욕장에서 본 하섬. 매월 음력 1일과 15일을 전후해서 바닷길이 열리면 육지와 섬이 연결된다. 오른쪽)군산과 부안을 잇는 새만금간척 사업을 위해 조성한 방조제. 방조제 길이가 33km로 세계 최장이라고 한다.<새만금사업단 제공>

변산 마실길의 하이라이트는 3코스

현재 마실길은 새만금전시관에서 격포항까지 총 18km의 해안 길을 세 개의 코스로 나누었다. 1코스는 새만금전시관에서 송포마을까지 5km로 1시간~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곤충생태공원, 대항리패총, 팔각정, 변산해수욕장, 송포갑문으로 이어진다. 널따란 백사장과 솔밭, 조개껍질, 해안절벽 등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2코스는 송포마을에서 성천마을까지 5.5km로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사망마을, 노리목, 고사포해수욕장 등을 지난다. 썰물 때가 되면 하섬까지 갯벌이 열린다. 음력 1일과 15일 사리 전후엔 2km 전 구간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바닷길에서는 소라, 조개 등을 줍고 캐는 체험을 즐겨도 좋다. 그렇지만 물때를 잘 계산해서 너무 멀리 나가지 않도록 한다. 실제로 물때를 잘 계산하지 못해 지난해 3명이 이곳에서 희생되기도 했다.

▲ 적벽강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수성당. 어부를 보호하는 개양할미를 모시고 있다.

3코스는 성천마을에서 격포항까지 7.5km. 하섬전망대, 적벽강, 후박나무군락지, 수성당, 격포해수욕장, 채석강 등을 지난다. 지구의 오랜 세월을 알 수 있는 절경의 채석강, 사자 닮은 붉은 바위가 돋보이는 적벽강, 바다를 지키는 개양할미를 모신 수성당 등 변산반도의 백미로서 가장 인기 있고 아름다운 하이라이트 코스다. 2시간30분~3시간 정도 걸린다.

1~3코스를 모두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6~7시간. 걷기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하루에도 답파할 수 있는 거리다. 여행 일정이 빠듯하다면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당연히 3코스를 강력 추천한다.

마실길을 걷기 전엔 물때를 살펴봐야 한다. 밀물이 들어차면 갯벌이나 백사장이 잠겨 바닷길이 끊어지기도 한다. 물때가 맞지 않으면 질척질척한 갯벌을 걸어야 한다. 물이 많이 들어왔으면 육지 쪽으로 난 변형 마실길을 이용하면 된다. 물때는 변산반도국립공원 홈페이지(http://byeonsan.knps.or.kr)나 새만금전시관(063-584-682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숙식 >> 새만금전시관 주변에 백제성(063-583-0836), 변산온천리조텔(063-582-5390), 행운장(063-581-3737), 새만금모텔(063-583-2114)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별미 >> 변산면 대항리 변산온천산장(063-584-4874)과 원조바지락죽(063-583-9763)의 바지락죽이 유명하다. 갖가지 양념으로 맛을 낸 바지락죽은 맛이 아주 부드럽다. 1인분 7,000원.

채석강&적벽강

‘서해의 진주’를 더욱 빛내주는 명품 해안절벽


변산반도 서쪽 끝에 걸린 채석강(採石江)은 ‘서해의 진주’로 불리는 변산반도 해안 경치 중 으뜸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강이 아니라 해안절벽이다. 서해가 호수였던 약 7,000만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층이 파도에 깎이면서 이루어진 해안절벽은 마치 수만 권의 고서적을 쌓아놓은 것처럼 장관을 이룬다.

썰물 때면 채석강의 너른 갯바위를 거닐며 그 절경을 가까이서 감상하고 파도가 뚫어놓은 해식동굴도 들어가 볼 수 있다. 또 바위틈으로 잽싸게 숨어드는 게도 잡아보고, 갯바위 물웅덩이 한쪽에 붙어 있는 말미잘도 희롱하며 바다가 주는 재미를 실컷 즐긴다. 그러나 서해의 밀물은 소리 없이 다가선다. 이따금 물때를 잘못 계산해 바닷물에 갇힌 사람들이 모터보트로 구조되는 일도 생긴다. 산책 후엔 갯바위에 둘러앉아 상인들이 파는 낙지며, 멍게 따위를 안주 삼아 소주도 한 잔 들이켜도 좋다.

▲ 왼쪽) 채석강 해식동굴의 일몰. 채석강은 약 7,000만 년 전에 형성된 퇴적층이 파도에 깎이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부안군청 제공> 오른쪽)궁항에 조성해 놓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지. 바다와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다워 찾는 이들이 많다.

채석강 입구에서 소형 모터보트를 타고 바다를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갯바위가 아닌 바다에서 배를 타고 감상하는 채석강은 맛이 또 다르다. 적벽강의 사자바위 형상을 정확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모토보트에 끌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가격은 코스마다 다르다. 1코스 4만원, 2코스 6만원, 3코스 8만원.

변산반도국립공원(http://byeonsan.knps.or.kr)에선 ‘7,000만 년 역사 속의 채석강’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7,000만 년의 역사가 묻혀 있는 채석강을 주제로 파랑에 의해 형성된 파식대·해식애·해식동굴 등 해안지형과 퇴적암·역암 등 암석의 종류, 횡와습곡·단층·역단층 등 화산활동에 의한 지층의 변화에 대해서 배운다. 1시간30분 소요. 무료. 전화예약 063-583-2064.

채석강을 거느리고 있는 닭이봉(85m) 정상엔 콘크리트로 지은 팔각정자가 있다. 이곳의 조망은 근처에서 가장 빼어나다. 북쪽으론 아담한 격포해수욕장과 그 너머로 적벽강이 가깝다. 남쪽으론 배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격포항 모습이 정겹다. 고개를 서쪽으로 돌리면 저 멀리 널따란 칠산 앞바다가 두 눈에 들어온다. 채석강이나 격포항에서 닭이봉 정상까지는 500~600m, 걸어서는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므로 꼭 올라보자.

채석강 남쪽의 격포항은 해양수산부에서 선정한 우리나라 ‘아름다운 어촌 100개소’에 꼽힌 항구다. 철에 따라 주꾸미·갑오징어·광어·전어·꽃게 등 서해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수산물들이 잔뜩 나온다. 가을이 되면 당연히 전어가 주인공. 항구 맞은편엔 어시장이 있다. 등대 가는 방파제에도 포장마차 횟집이 길게 늘어서 있다. 횟집단지의 대형 횟집보다 저렴하고 바다와도 가깝다는 게 장점.

붉은 해안절벽이 아름다운 적벽강

채석강에서 북쪽의 격포해수욕장을 끼고 1.5km 정도 돌아가면 적벽강(赤壁江)이 나온다. 역시 강이 아니라 해안절벽이다. 바다 위로 솟아오른 20m 정도의 절벽 위엔 수성당(水聖堂)이란 당집이 세워져 있다. 이곳엔 바다의 풍랑에서 어부를 보호하는 여신, 개양할미가 산다.

전설에 따르면 개양할미는 아홉 딸을 낳아 전국 팔도에 나눠준 뒤 막내딸만 데리고 이곳 수성당에 살면서 서해 바다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여덟 명의 딸은 각각 전국 팔도를 지켜주는 신이 되었고. 또 다른 전설은 개양할미는 딸 여덟 명을 위도·영광·고창 등 칠산 앞바다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지키게 하고 자신은 이곳에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변산반도 여행에서 첫날 저녁엔 ‘우리나라 3대 일몰 감상지’라는 채석강 저녁노을 감상이 필수다. 채석강 주변에 아름다운 일몰 포인트가 많지만, 가장 인기 있는 포인트는 역시 채석강 그 자체다. 수십만 년간 켜켜이 쌓인 바위 틈새로 붉은 노을이 비껴오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물때만 맞으면 채석강 해안을 한 바퀴 거닐 때 저녁노을을 만날 수 있다.

▲ 채석강과 쌍벽을 이루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적벽강.

격포항도 항구가 서쪽으로 열려 있어 저녁노을이 아름답다. 해가 서쪽 바다로 기울기 시작하면 고깃배의 이물과 고물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도 물결 따라 그렇게 일렁거린다. 사자바위와 어우러진 적벽강 노을도 인기가 있다.

변산반도 일몰 시간은 첫째 주말인 10월 2일은 오후 6시16분, 셋째 주말인 16일은 오후 5시57분, 마지막 주말인 30일은 오후 5시40분으로 점점 짧아진다.

숙식 >>  채석강 주변에 숙박업소가 아주 많다. 해변파크장(063-583-2850), 해넘이타운(063-582-7500), 썬리치랜드(063-584-8030), 파레스장(063-584-4659), 하나장여관(063-584-8826), 채석강그랜드모텔(063-582-0307), 채석강비치빌모텔(063-583-3400), 서울민박(063-584-7270), 채석산장(063-582-3000) 등이 있다. 2인1실 기준 3만~4만원 선.

궁항의 ‘이순신세트장’ 아래쪽엔 파도소리(063-581-7979), 해넘이축제(063-582-0405), 피아노·첼로( 063-584-5847) 등 조망이 빼어난 펜션이 있다. 변산반도 남부 해안의 왕포리조텔(063-582-3812), 운호장모텔(063-582-5290) 등도 전망이 빼어나다.

별미 >> 격포항 주변엔 횟집이 아주 많다. 이어도 횟집(063-582-4444), 소문난조개구이(063-581-4236), 숯불조개구이집(063-583-5200), 변산반도횟집(063-582-8888), 격포채석강횟집(063-581-8818), 현대횟집(063-581-4300), 방파제에서 가까운 곳엔 해변촌(063-581-5740) 등이 있다.

격포항은 서해안의 최대 전어 집산지로도 꼽힌다. 가을엔 전어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전어회무침 4인 기준 3만~4만원선. 또한 가을이라면 변산반도 어디를 가도 대하를 파는 집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파닥이는 대하 껍데기를 벗겨서 날것으로 먹어도 좋고, 프라이팬에 넣고 굵은 천일염을 뿌려 구워 먹어도 좋다.

내소사&단풍산행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아름다운 전나무 숲길

채석강에서 다시 오른쪽 옆구리에 바다를 끼고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가면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모항이 반긴다. 항구 끄트머리에는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억새가 지천이다. 채석강이 너무 유명해 번잡하다면 이곳 모항은 상대적으로 아주 한적하면서도 경관도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변산반도를 잘 아는 여행가들에겐 제법 사랑받던 항구였다. 그렇지만 모항도 개발의 모진 손길을 피하진 못했다.

모항에서 곰소만을 끼고 가는 길도 멋진 드라이브코스다. 이런 해안 풍광을 감상하다 석포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변산 쪽으로 발길을 들여놓는다. 그 깊숙한 안쪽에 천년고찰 내소사(來蘇寺)가 있다.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아름드리 전나무 500여 그루와 키 큰 단풍나무들이 어우러진 600m의 산책길은 내소사만이 간직하고 있는 매력이다. 단풍으로 물들 무렵이거나 낙엽이 휘날리는 계절에 이 길을 거닐면 경내에 들어서기 전에도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정갈해진다. 특히 나무의 향내가 아직 뿌리 근처에서 눈 비비고 있을 아침이라면 감동은 곱절이 된다.

천왕문 지나 나지막한 돌담이 정겨운 경내에 들어서면 950세쯤 된 ‘할아버지 당나무’가 반긴다. 이 ‘할아버지 당나무’는 일주문 앞의 ‘할머니 당나무’와 짝을 이룬다. 나지막한 돌담과 삼층석탑도 정겹다. 화려하면서도 소탈한 멋으로 잘 알려진 대웅보전(보물 제291호)의 연꽃, 국화꽃 새겨진 꽃문양 창살도 가을에 핀 꽃송이가 된다. 이런 꽃구경에 하릴없이 마냥 거닐어도 더 없이 좋은 절집, 내소사다.

내소사는 변산의 관음봉과 세봉의 우람한 암봉에 안겨 있으면서도 그 품은 한없이 부드럽다. 예전 내소사는 선계사, 실상사, 청림사와 함께 ‘변산 4대 사찰’로 꼽혀 왔는데, 지금은 오직 내소사만 천년을 이어오고 있으니 가히 명당임을 알 수 있다.

▲ 오른쪽) 내소사 가는 길. 전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길은 가을에 걸으면 더욱 운치 있다. 왼쪽) 내소가 가을 풍경. 경내의 ‘할아버지 당나무’도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단풍 좋고 전망 좋은 내소사 원점회귀 산길

우리나라 최고의 산해절승(山海絶勝)으로서 ‘서해의 진주’라고도 불리는 변산반도를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변산을 올라야 한다. 그러나 최고봉인 의상봉(509m)은 군시설물 보호를 위해 접근이 금지돼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사자동매표소~직소폭포 코스(왕복 2시간 소요). 이 코스는 산행이라기보다는 일반 여행객들이 짧은 시간에 내변산을 둘러보기에 적당한 탐승로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내변산의 3대 명소인 내소사, 월명암 낙조대, 직소폭포를 모두 볼 수 있는 남여치~내소사 코스(5시간 소요)를 추천한다. 바다와 호수, 그리고 내변산과 외변산의 절경을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코스는 원점회귀 산행이 어려워 승용차를 이용하는 등산객의 경우 내소사 앞에서 택시를 이용해 다시 남여치로 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내소사 구경과 함께 단풍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원점회귀 산행은 내소사~관음봉 삼거리~관음봉~세봉~세봉 남릉~일주문으로 이어지는 코스(4시간 소요)다. 내소사를 천년 넘게 든든하게 감싸 안고 있는 관음봉과 세봉을 거치는 이 코스는 풍치가 빼어나고 조망도 좋기 때문이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세봉 안부에서 청련암을 거쳐 내소사로 내려와도 된다. 이 경우 산행 시간은 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체력이 되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당연히 세봉 남릉을 걷는 게 좋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기암이 어우러진 풍치가 아주 좋은 능선길이다. 변산 일대의 단풍은 보통 10월 25~30일 사이에 절정을 이룬다.

내소사 문화재관람료 어른 2,0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500원. 주차료는 최초 1시간 1,000원, 이후 10분당 200원씩 추가. 변산반도국립공원 전화 063-582-7808, 내소사 전화 063-581-3082.

숙식 >> 내소사 입구에 정든민박(063-582-7574), 마당바위민박(063-582-7582) 등 10여 집이 민박을 친다. 근처에 모텔여정(063-583-5767)도 있다. 숙박료는 3만~4만원 내외. 내소사 입구에 초원식당(063-581-1077), 전주식당(063-584-9090) 등 음식점이 여럿 있다. 아침 식사도 가능하다. 순두부찌개, 청국장 각 6,000원.

곰소염전&곰소항

뒷맛이 달짝지근한 1등급 천일염 생산

내소사에서 정기를 듬뿍 받은 뒤 다시 바닷가로 나와 해안도로를 달리면 일찍부터 염전으로 유명했던 곰소마을이 나온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해질 무렵 햇살이 염전에 비치면 한겨울에 함박눈이라도 내린 듯 온통 새하얗게 반짝였던 마을이다.

염전은 큰길가에 있어 구경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바둑판처럼 정갈한 널따란 염전에선 따가운 초가을 햇살을 받으며 소금이 앉고 있다. 염전 옆 누더기 같은 소금창고의 모습에선 고단한 노동과 세월의 더께가 동시에 느껴진다.

▲ 왼쪽)소금을 거둬들이고 있는 곰소염전의 염부. 염전에 소금꽃이 피면 염부의 손길이 바빠진다.<부안군청 제공> 오른쪽) 널따란 곰소염전.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뒷맛이 달짝지근한 1등급 천일염이다.

지붕 낮은 건물은 바닷물을 끓여 들여 졸이고 졸인 간수를 저장해 두는 곳이다. 타일을 깔아 만든 염전 바닥에 졸인 간수를 넣어 햇볕과 바람으로 말리면 하얗게 소금꽃이 피면서 소금이 앉는다. 운이 좋으면 소금꽃이 피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바닷물이 소금으로 바뀌는 데는 보통 보름쯤 걸린다.

곰소 천일염은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요즘 웬만한 해안은 공장과 생활 오폐수로 바닷물이 오염되었지만 곰소만 주변엔 오염원이 없어 바닷물이 깨끗하다. 그 덕에 곰소 앞바다 바닷물은 다른 곳에 비해 미네랄이 10배 정도 많다고 한다. 또한 소금 결정을 한 번 빼낸 간수는 절대로 재활용하지 않는다. 간수엔 염화마그네슘이 포함되어 있어 쓴 맛을 내기 때문이다. 곰소 소금의 뒷맛이 달짝지근한 까닭은 간수를 한 번만 쓰기 때문이다.

곰소염전 천일염과 부안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해산물과의 절묘한 만남. 바로 젓갈이다. 2년 정도 숙성 발효한 곰소 젓갈은 원액 100% 그대로를 포장해 오래두고 먹어도 변하지 않는다.

곰소염전과 곰소항 주변엔 까나리액젓, 멸치액젓, 갈치속젓액 등 젓갈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김장철이 되면 젓갈을 구입하러 오는 주부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김장 준비를 위해 질 좋은 소금과 젓갈을 준비하는 것도 가을 변산이 선사하는 선물이다. 매년 10월 중순엔 곰소젓갈축제가 열린다.

숙식 >> 곰소항 주변에 곰소모텔(063-584-8852), 스페셜모텔(063-581-6037)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곰소젓갈단지 옆에 위치한 곰소궁횟집(063-584-1588)은 젓갈정식 전문식당. 젓갈정식엔 가리비젓·오징어젓·어리굴젓·순태·꼴뚜기젓·주꾸미젓·낙지젓 등 10여 가지의 젓갈이 올라온다. 1인분 1만원.

반계유적지

실학의 비조 유형원이 ‘반계수록’ 저술한 곳

곰소항에서 4km 정도 거리에 있는 보안면 우동리. 이곳은 반계 유형원(柳馨遠, 1622∼1673년)의 자취가 남아 있는 마을이다. 반계는 1653년 이곳으로 내려와 머물면서 ‘반계수록(磻溪隧錄)’을 완성해 실학을 창시했다.

반계는 토지개혁을 중심으로 총체적 제도개혁을 주창하고 실증과 현실 문제를 중시하
는 학풍, 즉 실학의 선구자다. 조선 후기 여러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반계는 두 살 때 아버지가 당쟁에 휘말려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가 그를 키웠다. 한양에서 자란 반계는 32세가 되자 할아버지가 살던 부안으로 이사해 평생 야인으로 지내며 학문과 저술에 몰두한다. 유형원의 호인 반계는 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냇물 이름에서 따왔다.

은거한 반계는 음풍농월을 한 게 아니다. 그의 집안에 있던 1만 권의 책을 옆에 두고 독서에 몰두했다. 한편 농촌에 살면서 농민들의 생활을 직접 보고 들으며 당시 조선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데 노력했다. 반계가 부안으로 이사 오기 전인 1652년에 집필을 시작해 1670년에 완성한 ‘반계수록’은 모두 28권인데 토지제도·과거제도·노비제도 등 조선 후기 각 분야에 걸친 개혁안이 실려 있다.

조선의 개혁을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이른바 실학사상에 의하여 이루어야 한다고 믿었던 실학자들. 그 중에서도 유형원은 실학의 선구자요 비조였다. 그의 실학사상은 성호 이익(星湖 李瀷)을 거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동마을엔 반계가 공부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반계서당이 복원돼 있다. 이 유적지는 서당 건물 하나만 외로이 산 중턱에 있는데, 경사가 심한 비탈에 지어진 집이라 돌축대와 돌담이 제법 웅장하게 보인다. 반계서당에서 보면 산 아래 우동마을이 훤히 한눈에 들어온다.

▲ 왼쪽) 실학의 비조인 반계 유형원이 ‘반계수록’을 저술한 우동리의 반계서당. 오른쪽)대웅전 뒤로 수호신처럼 솟아 있는 울금바위가 돋보이는 개암사.

개암사

백제 최후의 저항군이 항전 벌이던 울금산성

내소사와 함께 변산의 이름난 절집인 변산반도 동쪽에 있는 개암사(開巖寺). 처마가 날아갈 듯 경쾌한 대웅보전(보물 제292호) 뒤로는 수호신처럼 지켜주는 울금바위가 상징처럼 솟아 있다. 이 광경을 보면 “아, 이래서 개암사로구나”하는 넋두리가 절로 나온다. 고풍스런 대웅전 현판 위에 있는 두 개의 험상궂은 귀면(鬼面) 조각은 울금바위처럼 의젓하게 대웅전으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아준다.

개암사는 매창과 인연이 있다. ‘매창집’ 목판본을 이곳서 제작했는데, 이는 아마도 매창이 생전에 부안 동헌에서 30리 정도 떨어진 이곳 개암사를 자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매창집’을 찾는 이들이 많아 절의 재정이 파탄 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들이 목판을 불태워 버렸다는 것이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매창집’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개암사는 오래된 절집이다. 변한의 왕이 진한과 마한의 공격을 피해 이곳으로 들어와 울금바위 아래 왕궁을 지었는데, 동쪽을 묘암, 서쪽을 개암이라 했다. 세월이 흘러 634년 묘련 스님이 개암 터에 절집을 세웠고, 676년 원효가 중창했다.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뻗은 울금산성은 백제유민들이 나당 연합군을 맞이해 최후의 항전을 벌인 곳이다. 그때 백제 항전군 지휘부가 최후를 맞은 곳이 바로 울금바위에 있는 동굴이라 한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자 복신과 도침은 일본에 있던 의자왕의 넷째아들 풍(豊)을 받들어 주류산성에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했다. 나당연합군은 663년 주류성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미리 백강의 어귀에 도착해 있던 일본의 지원군은 이 싸움에서 신라 수군의 화공에 말려 대패했다. 그 결과 이곳 주류산성도 함락됐다. 비로소 백제의 숨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그 한맺힌 역사 때문일까. 울금바위의 발음이 ‘울분’이나 ‘울음’으로
도 들리는 까닭은.

물론 백강과 주류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당시 백강은 금강, 그리고 동진강이라는 설이 서로 다투고 있다. 다산 정약용도 주류성을 찾았지만 정확한 장소를 밝히지는 못했다. 안정복은 충남 청양의 정산, 김정호는 충남 홍주(홍성)를 주류성으로 봤다. 이 외에도 이병도의 충남 한산 건지산성, 신채호의 충남 연기설 등 학설이 다양하다.

개암사 오른쪽 길을 따라 20~30분 정도 올라가면 울금바위가 나온다. 주류성 정상부이기도 한 울금바위엔 복신굴, 부사의방, 원효방 이렇게 세 개의 굴이 있다.

3개의 굴 중 가장 큰 복신굴은 백제부흥운동 당시 복신이 머물던 굴이라 한다. 이곳서 당시 군사들을 입히기 위해 베를 짰다 해서 베틀굴이라고도 한다. 또 하나는 ‘부사의방(不思義房)’이라 불리는 굴이다. 개암사는 높은 열에 아홉 번을 구워 얻는 죽염이 처음 태어난 곳. 진표율사가 이곳 울금바위 ‘부사의방’에서 죽염 제조법을 개암사 스님에게 전수한 것이 지금껏 전해 오는 것이라 한다. 입장료, 주차료 없다. 개암사 종무소 전화 063-583-38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