識 者 是 非
(가려 알-식↓*기록할-지↘) (그 사람-자↗) (이-시↗) (아닐/그릇될-비→)
尖 戈 刺 塵
(뾰족할-첨→) (창-과→) (찌를-자↘*칼로 찌를-척↓) (먼지-진→)
가려 아는 자는 옳고 그름을 따지니 / 뾰족한 창이 먼지를 찌른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으나 결코 옳고 그름으로 도(道)를 이룰 수 없다.
잘잘못을 가려가며 제 몸을 바로잡아 점점 도에 가까워질 수는 있으나 결코 도와 하나가 될 수 없다.
서로 가리고 가리는 것은 말에 바탕을 둔 것이다. 말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지 결코 도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보다 말에 매달리면 오히려 도에서 멀어진다.
사물을 갈라놓음은 도를 이루는 잠깐 동안의 법이라 여겨야지 유일한 법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식(識)은 분명히 도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 즉 識에 파고들되 결코 되었다 하며 그치는 법이 없어야 한다.
시시비비는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따지는 것이다.
자신의 ‘안다’가 변함없거나, 남의 ‘안다’를 그대로 택하면 이미 ‘아는’게 아니다.
세상의 잘못을 보면 끊임없이 스스로 따지어 행(行)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남이 어떤 시비를 보고 옳다하고 그르다 한다고 덩달아 옳다 고르다 한다면, 그가 세상에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그가 어찌 도를 안다 하겠는가? 공자님은 말씀하셨다.
[끝장이다! 능히 잘못된 일을 보고도 속으로 제 스스로 송사(訟 : 옳고 그름을 철저하게 따져 할 일을 정한다.)를 벌이는 사람을,
나는 아직도 보지 못하였다.(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 而內自訟者也)]
謙 聖 任 放
(낮출/겸손할-겸→) (성스러울-성↘) (맡길-임↘) (놓을-방↘)
遙 廣 器 用
(아득히 멀/노닐/거닐-요→) (넓을-광↗) (그릇-기↘) (쓸-용↘)
스스로 낮추는 성인은 맡겨 놓으니 / 아득히 넓은 그릇의 쓰임이다.
도(道)는 사람이 걸어야 하는 길이다. 사람이 서있는 곳이 아니다. 사람이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 성인은 물러남을 기뻐하였다. 물러난 곳은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물러준다.
그래서 변하지 않고도 항상 변하는 것이다. 공자님은 말씀하셨다.
[사양함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어찌 어렵겠는가?(能以禮讓爲國乎 何有)] 큰그릇은 물건을 가려 넣지 않는다.
그릇 안에 없고자 해도 그릇 안에 있는 것이다. 항상 보전하고 지키고 쓰이게 한다. 그렇게 남을 대하고 맡기고 잡지 않는다.
응용한자
식별(識別) 표지(標識) 식자우환(識字憂患) 필자(筆者) 하자(何者) 왕자(王者) 시인(是認) 시일(是日) 여시(如是) 비난(非難) 비범(非凡) 비위(非違) 비행(非行) 첨단(尖端) 첨예(尖銳) 과검(戈劍) 간과(干戈) 자극(刺戟) 자수(刺繡) 풍자(諷刺) 척살(刺殺) 진세(塵世) 진애(塵埃) 풍진(風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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