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한 해가 저물면 새날이 시작됩니다. 떠나보내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다가올 시간을 맞는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때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해넘이와 해돋이 명소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지만, 사실 한 해를 시작하는 여행에서 ‘장소’는 큰 문제가 아닐 듯합니다. 해야 어디서든 지고 또 뜨는 법. 어제의 해가 오늘의 해와 다를 리도 없습니다.그곳이 어디가 됐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의 순간을, 한 해를 다시 시작하는 감격을 누구와 누리느냐는 것이겠지요. 붉은 여명을 뚫고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의 기운을 받을 때보다는 함께 발을 동동 구르며 해돋이를 기다리던 가족들과 뜨거운 밥과 국을 앞에 두고 둥글게 둘러앉았을 때 한 해를 살아갈 희망과 용기가 더 불끈 솟는 게 아닐까요. 신년의 해맞이 여행으로 ‘겨울 여행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강원 양양군을 중심으로 북으로, 혹은 남으로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 눈 쌓인 한계령을 넘어서 동해로 가다 동해 북부 해안으로의 여정이라면 그 여행은 설악과 대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구룡령,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북부 동해안 쪽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눈 덮인 설악과 오대가 버티고 선 험한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겨울이면 잦은 폭설로 자주 두절되곤 했던 험한 고갯길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미시령 아래로 인제에서 속초를 단번에 잇는 미시령동서관통도로(미시령 터널)가 개통되면서 이런 고갯길들은 모두 ‘과거형’이 되고 말았다. 험준한 산자락을 타고 넘는 오래된 고갯길은 예나 지금이나 빼어난 경관을 품고 있지만, 이제 여행자들은 십중팔구 터널의 속도와 편리함을 택한다. 특히 눈길이 미끄러운 겨울철에는 더 그렇다. 이쯤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추억을 더듬어보자. 설악의 한계령은 미시령에 터널이 놓이기 전에 동해안을 찾아가던 여행자들에게는 ‘경계’와 같은 곳이었다. 구룡령은 너무 길었고, 미시령은 툭하면 통제됐으니 한계령 말고는 이렇다 할 대안이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한계령은 여행자들에게 단순한 고갯길의 의미 그 이상이었다.
한계령의 이쪽이 일상의 공간이라면, 그 고개 너머 쪽은 여행의 공간이었다. 한계령 정상에서 ‘이동의 시간’은 비로소 ‘여행의 시간’이 됐다. 한계령은 말하자면 번잡스러운 일상의 ‘속계’와 그 너머 자유의 ‘선계’를 가르는 지점이었던 셈이다. 다들 한계령 정상의 휴게소에 차를 대고 설악의 협곡 사이로 굽이치는 도로를 내려다보면서 여행의 기대와 흥분을 느끼곤 했다. 단언컨대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44번 국도는 겨울에 가장 아름답다. 한계령 고갯길의 인제 쪽 초입의 설경은 가히 황홀하다. 눈 내린 직후나 상고대가 피어나는 이른 아침이면 나뭇가지마다 달라붙은 얼음꽃이 설악의 기암과 어우러져 동화 속 세상을 그려낸다. 차 안에서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길은 흔치 않다. 겨울 한계령을 차로 넘는 건 평상시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눈이 내린 뒤에도 한계령을 넘는 길은 다른 어떤 도로보다 제설작업이 신속하고 깔끔하게 이뤄진다. 하지만 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이런 때다. 먼저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 조금이라도 눈이 쌓여 있다면 단념하는 게 좋다. 잦은 제설작업에도 길에 눈이 남아 있다면 그건 직전에 내린 눈임에 틀림없다. 미처 제설이 시작되기 전이란 얘기다. 눈발이 흩날릴 때도 위험하다. 산 아래쪽에 한두 송이씩 눈이 날린다 해도 고갯마루에는 폭설이 쏟아지고 있는 경우가 적잖다. 가장 주의해야 하는 건 눈이 내리고 나서 제설이 말끔히 됐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 때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바람을 타고 도로 군데군데 쌓이는데, 깨끗하게 제설된 도로를 방심하고 달리다가 이런 구간이 나타나면 미끄러지기 쉽다. 기온이 급강하하는 날에는 예외없이 바람이 거세지니 이런 때는 한계령 넘기를 단념해야 한다. # 연암 박지원, 1만 냥의 월급을 경관으로 받다
양양은 조선 태종때 도호부가 설치됐을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다. 양양은 단순히 행정적인 기능만 했던 건 아니었다. 설악의 정수리인 대청봉을 등 뒤로 두고, 앞으로는 동해의 푸른 바다를 내다보고 있는 양양은 예로부터 빼어난 경관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양양이 지닌 경관의 아름다움을 말하자면 연암 박지원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양양 부사로 부임했던 연암이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 다른 지역의 전직 부사들을 모아 모임을 가졌다. 지금으로 치자면 전직 도지사와 시장, 군수들의 모임쯤이었다. 전직 관료들은 이야기 끝에 서로 재임시의 월급(녹봉)을 비교했다. 대부분 한 달에 받는 월급이 2000∼3000냥 내외였는데, 연암은 “나는 1만3000냥을 받았다”고 했다. 모두 부러워하자 연암은 “3000냥은 돈으로 받았고, 나머지 1만 냥은 양양 땅의 경관을 돈으로 환산해보면 그렇다는 얘기”라고 했다. 이게 연암의 이른바 ‘경관 녹봉론’이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도 양양 땅을 두고 한마디 안했을 리 없다. 양양의 낙산사, 의상대를 비롯해 동해안의 정자 네 곳을 두루 살피고는 “그 안에 들어간 이는 황홀해지고 하늘로 날아오른 듯한 느낌을 받는다”며 “이 지역을 한 번이라도 거친 이는 저절로 딴사람이 되고 10년이 지나도 얼굴에 산수의 기상이 서려있게 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옛 사람들의 다소 호들갑스럽다 싶을 정도의 찬사의 중심에는 양양의 낙산사가 자리 잡고 있다. # 의상대, 여백의 수묵화에 그려진 간결한 그림
몽골군의 침략과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수차례 파괴와 복원이 되풀이되면서 법맥을 이어오다가 지난 2005년에는 산불로 원통보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다 불타기도 했다. 많은 전각들이 불에 타고 국보였던 동종까지 녹아 내렸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불로 폐허가 되면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 국가적인 복원 불사가 이뤄졌다는 것. 두 차례에 걸쳐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졌고, 조선 정조 때의 김홍도가 그린 18세기 후반의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그 결과, 화재 이전에 강원도 유형문화재였던 낙산사 일원은 2007년에는 명승으로 지정됐고 2009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해 사적으로 대접 받고 있다. 복원된 낙산사는 3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홍예문을 지나서 전면으로 펼쳐지는 원통보전 영역, 바다에 접한 홍련암과 의상대 및 공중사리탑과 해수관음상으로 이어지는 해수관음 영역, 그리고 이 두 영역의 중간에 있는 보타의 영역이다. 낙산사의 전모를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자리는 의상대 앞의 공양간 자리. 여기 서면 관음을 주제로 펼쳐진 낙산사의 3개 영역이 한눈으로 다 조망된다. 낙산사에서 동해의 일출을 극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는 바다를 끼고 있는 해수관음 영역. 의상대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 파랑새를 쫓아 석굴 앞 바위에서 기도하다 붉은 연꽃 위의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웠다는 홍련암은 2005년에 바로 앞의 요사채가 전소됐음에도 다행히 무사했다. 의상대사를 기리기 위해 1925년 바닷가 바위벼랑에 세운 의상대와 의상대 주위에 똬리를 틀고 자란 소나무 서너 그루도 용케 화마를 피했다. 해수관음 영역 중에서도 홍련암 앞의 손바닥만 한 마당이 일출을 감상하는 명소로 꼽힌다. 여기 서면 의상대가 올라선 벼랑을 근경(近景)으로 두고 멀리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만날 수 있다. 해가 수면 위로 막 떠오를 때의 감격도 좋지만, 일출 전 해가 수면 아래에 잠겨있는 여명의 시간 쯤에 먹빛의 의상대 너머로 새파란 여명 속에서 붉은 기운이 차츰 번져가는 모습도 못지않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바다의 색감을 돋보이게 하는 건 우람한 소나무 사이의 정자 의상대다. 의상대는 그 안에 들어 바깥을 보는 풍경도, 물러서서 배경이 돼서 스스로 경관이 되는 모습도 훌륭하다. 여백으로 충만한 수묵화 속에 간결하게 그려진 그림처럼 딱 맞는 제자리에 서있다는 얘기다. # 일출, 가족의 뜨거운 연대를 확인하는 일 북쪽의 속초나 남쪽의 강릉도 그리 다르지 않지만, 양양에는 너른 백사장이 펼쳐지는 해변이 곳곳에 있다. 대충 헤아려도 스무 곳 안팎이다. 낙산 해변에서 강원지역의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남애항 너머까지 100여 리에 이르는 해안 어디서나 일출을 만날 수 있다. 겨울 동해안에서는 해가 수평선을 차고 오른 직후에 백사장으로 연이어 겹쳐지는 겨울 파도가 겹치는 모습 또한 장관이다. 일출에 시선을 뺏겨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서 그렇지, 첩첩이 겹쳐진 산의 능선처럼 밀려드는 겨울 파도가 막 떠오른 햇빛에 붉게 달궈지며 포말로 부서지는 모습의 장쾌함도 놓칠 수 없는 장관이다. 굳이 하조대와 남애항, 죽도정 등 해안 경관으로 이름난 명소가 아닌들 어떨까. 양양 해안에는 와불 형상과 거북 형상의 바위로 유명한 휴휴암이나 암초 위로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조도를 바라보는 38선 휴게소를 위시해 일출 명소에 버금가는 자리가 곳곳에 있으니 말이다. 신년 초마다 해맞이 행락객들로 붐비는 곳보다, 차라리 이름 없는 자그마한 해변이나 이른 새벽부터 고깃배의 출어와 입항으로 분주한 포구에서 일출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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