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위에서 솔숲 너머의 바다를 뜨겁게 달구며 수평선으로 넘어가는 황홀한 낙조를 만났습니다. 이글거리는 해가 차가운 서해바다로 ‘치익’하고 잠겨가는 낙조의 짧은 순간.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압니다. 해가 다 넘어가고 나서 붉은 기운이 남아있는 수면 위로 온 하늘이 푸르게 물들 때가 더 뜨겁고 화려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물어가는 마지막 빛이 이리도 아름답습니다. 어느덧 세밑입니다. 2013년도 이제 불과 스무날 남짓. 이맘때의 여행 목적지라면 단연 낙조로 물드는 서해입니다. 충남 태안의 안면도에 태안해안 국립공원사무소가 놓은 도보코스 ‘태안 해변길’이 이제 막 완성됐습니다. 2년 전 태안의 학암포와 만리포를 잇는 2개 코스를 놓고, 그 이듬해 몽산포에서 꽃지해변을 잇는 2개의 코스를 놓은데 이어 최근 꽃지해변에서 안면도 최남단 영목항을 잇는 ‘샛별길’과 ‘바람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로써 한적한 포구와 해변을 따라 줄곧 서쪽의 바다를 따라가는 전장 97㎞짜리 도보코스 ‘태안해변길’은 완성됐습니다. 새로 놓은 샛별길과 바람길에는 외지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너른 해변과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바다, 그리고 어촌마을의 그윽한 정취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꽃지해변에서 병술만을 지나 황포항에 이르는 13㎞의 샛별길 코스, 그리고 황포항에서 다시 시작해 운여해변과 바람아래해변을 지나 영목항을 잇는 16㎞의 바람길 코스를 다 걸었습니다. 너른 백사장을 교대하는 밀물과 썰물, 이른 아침 아무도 딛지 않은 백사장, 오후 햇살에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바다. 불붙듯 뜨겁게 타오르는 황홀한 낙조. 바닷가 마을의 푸른 어둠…. 그 길 위에서 만난 것들이 이랬습니다. 저무는 것들의 아쉬움과 동행하는 이 고즈넉한 해변길을 독자들에게 한해의 마지막 여정으로 권합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 숨겨진 서해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길 충남 태안에 ‘제주 올레길’에 버금가는,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도보코스가 있다. 근래에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조성한 수많은 걷는 길에 묻혀 억울하게도 그 진면목이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다. 길의 이름은 상징도 비유도 없이 간명하다. ‘태안 해변길’. 태안의 북쪽 학암포에서 안면도 최남단 영목항까지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전장 97㎞짜리 도보코스다. 워낙 긴 코스라 전체의 코스는 7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3년 동안 차근차근 조성됐다. 이 길을 놓은 건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 국립공원의 절경을 일터로 삼은 눈밝은 이들이 가장 훌륭한 해안길만 가려 뽑아 이은 것이니 그 정취와 아름다움이 어련할까. 국립공원사무소는 2011년부터 도보코스 조성에 나서 그 해에 학암포에서 만리포해변까지 이어지는 2개 구간을, 이듬해인 작년에 몽산포에서 꽃지해변까지 2개의 구간을 완성했다. 그리고 최근 만리포와 안면도 일대의 나머지 3개 구간을 완성하면서 비로소 전체 코스가 완성됐다. 앞서 놓은 도보코스도 다 제 나름의 정취를 뽐내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놓은 안면도 꽃지해변에서 황포항, 그리고 황포항에서 영목항을 잇는 ‘샛별길’과 ‘바람길’ 구간이야말로 ‘태안해변길의 절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태안 해변길’ 7개 구간에서 이 두 구간을 특히 앞세우는 것은 거기서 숨겨진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왕에 조성된 태안해변길의 구간이 학암포며, 만리포, 몽산포 등 관광객들에게 익히 알려진 명소를 잇는다면, 새로 놓인 샛별길과 바람길은 외지인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안면도 서남쪽의 해변과 포구와 마을을 지난다. 운여해변과 바람아래해변, 옷점항의 포구마을, 가경주마을…. 포구에 묶여 파도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어선들과 갯일을 하는 바닷가 사람들의 삶 사이로 지나가는 길. 길은 줄곧 바다와 백사장의 경계를 따라 이어진다.
# 한때 육지였으나 섬이 된 땅…안면도 ‘태안해변길’ 코스에 대해 말하기 전에 그 길이 놓인 태안의 안면도 이야기부터. 안면도는 서해에서 가장 크고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큰 섬.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가 놓였지만, 안면도는 지금도 엄연한 섬이다. 연륙교가 놓였으되 거제도나 완도가 여전히 섬인 것처럼 말이다. 헌데 알고 보면 안면도는 섬이 아니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안면도는 육지와 붙어있던 ‘곶’이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육지였던 땅이 지금은 섬이 됐다는 얘기. 육지가 섬이 되고, 섬이 다시 다리로 육지와 이어지게 된 내력은 이렇다. 때는 300여 년 전인 조선 인조 때. 태안의 벼슬아치 방겸장이 충청감영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험난하기로 이름난 안면도 앞바다를 항해하던 배들이 거친 파도와 암초에 자주 좌초되니 육지인 안면곶의 좁은 목을 잘라 수로를 내서 지름길을 만들자는 주장이었다. 이 뱃길은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식을 실은 배가 한양으로 올라가던 항로. 마침 조정에서도 곡식을 산더미처럼 실은 배가 안면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잦아 골치를 썩이던 중이었다. 충청감사 김유는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안면곶의 좁을 목을 잘라서 수로를 냈다. 육지와 연결된 목을 잘라 수로를 냈으니 안면곶은 섬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운하가 놓고 나서 바닷길은 무려 200리가 단축됐으며 배가 좌초되는 일도 없었다. 뱃길은 빨라졌으나 하루아침에 섬이 돼버린 안면도의 주민들은 적잖이 불편했을 게 틀림없겠다. 안면도 주민들은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를 숙원했다. 1966년 주민들은 자력으로 잘려진 운하를 메워 섬을 육지와 잇겠다며 물막이 공사를 시작했다. 안면도와 육지와의 거리는 260m 남짓. 그러나 조류가 거셌다. 주민들은 돌을 지고 나르며 모진 고생을 했지만 연륙은 끝내 실패했고 주민들은 좌절했다. 그러다 안면도 주민들의 연륙교 건설의 숙원은 전혀 엉뚱하게 풀렸다. 1977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안면도 주민들이 들고 나온 풍어제가 대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수상 격려차 이뤄진 충남도지사와의 면담. 주민들은 “소원을 말해보시라”는 도지사의 얘기에 ‘연륙교 건설’을 요구했다. 그 자리에서 도지사의 3000만 원 지원이 결정됐고 결국 1982년 안면도와 육지를 잇는 연륙교가 건설됐다. 안면도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 한 토막. 안면도는 잇단 망언으로 소위 ‘망언제조기’로 불리는 일본 부총리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가가 왕국 건설을 꿈꾸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 1000명 이상의 조선인을 강제로 탄광으로 끌고 갔던 아소 다로의 증조할아버지 아소 다키치(麻生太吉). 그는 1926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안면도의 1800여만 평을 사들였다. 안면도의 소나무를 베어 탄광 내 레일의 침목으로 쓰고, 송진을 채취해 전투기 항공유나 화학제품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해방과 함께 아소 다로 가문이 꿈도 물거품이 됐지만, 안면도의 소나무에는 아직도 송진 채취의 상처가 남아있다.
# 샛별길…꽃지의 낙조와 거친 포말 태안해변길의 새로 놓은 구간인 ‘샛별길’과 ‘바람길’은 안면도 서쪽 해안의 바다와 해안 모래톱 사이의 경계를 줄곧 따라간다. 먼저 ‘샛별길’부터 시작하자. 꽃지에서 황포항까지 13㎞의 구간. 꽃지해변은 안면도에서 가장 이름난 명소. 서해안 일대의 일몰 풍경 중에서 최고로 꼽는 것이 꽃지해변의 할아비 할미 바위 너머로 지는 낙조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빼어난 낙조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꽃지해변은 해 질 무렵 썰물이 되는 날을 겨눠서 찾아가는 게 요령이다. 썰물로 드러난 해변과 바위가 해 질 녘 낙조의 빛을 받아 붉게 물드는 모습이 압권이기 때문이다. 반면 밀물로 바위 아래가 물에 잠긴다면 낙조의 풍경은 밋밋할 뿐이다. 꽃지해변의 일몰을 두고 누구는 ‘황홀했다’고 말하고, 누구는 ‘그저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건 필시 해 질 무렵의 물때를 다른 날에 가서 보았기 때문이리라. 살짝 귀띔하자면 꽃지해변의 낙조는 이달 11일과 27일과 앞뒤 며칠이 최고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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