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양조기법의 우수성
우리 조상들은 다른 나라와는 차별되게 주식이 되는 쌀로 양조를 하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양조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또한 같은 재료라도 그 가공방법을 달리 함으로써 맛과 향기, 색상, 도수를 달리하는 기술을 개발, 전승시켜왔다는 점에서 과학적으로도 양조기법의 우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소곡주(小麯酒)’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주의 하나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소곡주는 ‘누룩을 적게 넣는다’는 뜻에서 유래한 술이름으로 한산지방이 명산지가 되었다. 소곡주의 전통적인 양조기법은 누룩을 준비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 과정을 보면 아래와 같다.
먼저 통밀을 갈아 거친 밀가루를 만들고, 20% 정도의 물과 섞어 치댄 반죽을 누룩틀에 담고 발로 밟아 디디는데, 볏짚에 묻어 30일정도 띄운 전통 누룩을 사용한다. 누룩이 마련되면 이어 본격적인 술을 빚는데, 먼저 ‘쌀을 백 번 씻어(백세)’ 하룻밤 물에 담가 불린 후, 이를 가루로 빻아 백설기를 찌거나 죽을 만들고, 식으면 누룩과 물을 적정 비율로 섞어 술밑을 빚는다. 술밑은 독에 담아 3~7일 정도 발효시키면 밑술(주모)이 된다. 그리고 다시 찹쌀을 백세하여 고두밥을 쪄서 식힌 뒤, 밑술과 합하여 술밑을 빚는데, 두 번째 술밑 역시 독에 담아 60일~70일 가량 발효, 숙성시킨 다음, 용수를 박아 청주를 뜨거나 체에 걸러 탁주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탁주를 거를 때 물을 섞게 되면 도수가 낮은 막걸리 소곡주가 된다.
위의 소곡주 제조 방법에서 전통적인 양주법에 있어 중요한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쌀의 가공에 따른 전처리 과정에 있어 백 번 씻는다는 것이다. 백세의 의미는 ‘가능한 많이 씻는다’는 것으로 그만큼 힘과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인데, 백세를 통해 발효에 지장을 주는 여러 가지 영양소나 냄새, 부유물, 이물질을 제거하여 순수한 전분만을 취할 수 있다. 이 백세 과정을 현대 양조의 개념에선 도정을 많이 하여 쌀의 영양소 등 불필요한 쌀 성분을 제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렇게 씻은 쌀은 다시 물에 불리게 되는데, 이는 세척 과정에서 제거하지 못한 쌀의 영양성분을 침지 과정을 통해서 일정량을 제거함으로써 완전한 발효를 도모하는 과정이다. 쌀에 함유된 여러 가지 성분들은 탄수화물을 제외하고는 물에 용출되는 수용성이어서 불리는 과정을 통해서 해소된다. 이렇게 불린 쌀은 당화과정을 거쳐야 안전하게 발효시킬 수 있으므로, 분쇄하는 공정과 삶거나 끓이거나 찌는 방법 등 호화과정을 통해 당화작용을 돕고 촉진시키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또한 호화도를 높일수록 당화가 용이해져 발효가 원활해진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어, 1차 익힌 쌀을 다시 치거나 찌는 등 여러 단계의 가공공정을 거치는 방법을 추구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에도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맑고 향기로운 술을 얻기 위하여 주모에 해당되는 밑술을 빚어두었다가 덧술을 해 넣는 중양주법은 현대양조와 별반 차이가 없다. 또한 1차 발효에 이어 2차발효와 숙성기간을 거치는 장기발효공정을 도입함으로써, 누룩을 적게 사용하더라도 발효가 원활해지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향기를 발현하게 된다는 사실을 오랜 양조경험을 통해 체득해 왔던 것이다(소곡주를 비롯한 조선시대 전통 명주들의 공통점은 60~70일 또는 90~100일이라는 장기 발효와 숙성을 통해 술의 거친 맛을 줄이고, 술의 특성을 반영하는 향기를 살리려고 한 점이다).
조상들의 지혜와 정성을 본받아 명주의 맥 이어야
보다 쉽고 편하게 하고자 과학화된 첨단 설비를 도입하고 발빠르게 선진화된 외국 기술을 익히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술을 빚는 장인들의 정신자세이다. 술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빚고자 하는 술에 장인의 철학이 녹아 들어야만 한다. 주지하다시피 세계화된 명주들이 갖는 공통점은 한결같이 “처음 탄생한 순간의 마음가짐을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브랜드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념이며, 경제적으로 타협하고 싶은 사업적 유혹을 뛰어넘어 다소 무모한 열정을 가진 경영자만이 어렵게 이뤄낼 수 있는 궁극의 결과”라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은 모든 시도를 존중해주는 사람과 문화 없이는 명품은 만들어질 수 없다.”고는 하지만, 결국 명품주의 기준은 오랜 시간을 인내하는 역사, 타협 없는 장인정신, 브랜드를 지켜낼 수 있는 열정적 경영자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장인에 대한 존중이 배어있는 문화를 가꾸어나가야 하는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이미 삼국시대에 ‘신라주’가 중국(당나라) 지식인들 사이에서 찬사의 대상이 되었고, 고려시대엔 중국 현지에 양조장을 세워 고려술의 우수성을 자랑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신라주나 고려술의 맛은 물론 향기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짐작케 한다. 또한 소곡주가 그러하듯, 한 가지 술을 가지고 청주와 탁주, 심지어 막걸리에 이르기까지 용도나 목적, 대상에 맞춰 쓸 수 있도록 변용이 가능한 술도 세계적으로 드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은, 이와 같은 전통주의 제조가 양조기술자나 전문가가 아닌, 이 땅의 평범한 가정주부면 누구나 체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증거로, 과거 반가와 여염집의 규수들이 출가를 하려면 부모의 반주를 비롯하여 27가지의 사계절에 맞는 술을 빚을 줄 알았고, 거기에 계절감각과 풍류를 끌어들이는 지혜와 정서가 있었다.
결국 전통주 제조에 있어 중요한 것은 주재료의 배합비율이 아닌, 쌀의 가공을 목적과 용도에 따라 달리함으로써 각각의 향기와 맛, 도수가 달라진다는 것이고, 누룩의 양이 적어질수록 양조는 어려우나 향기가 좋아진다는 사실의 경험적 지혜에서 명주를 탄생시켰는데, 이러한 양조기술과 문화는 세계화된 명주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라는 사실이다.
여하튼 전통주를 빚는 방법이나 재료, 맛과 향에 대한 개선과 변화는 시대적 상황이나 환경 변화에 따른 요구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꼭 최선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시대의 조류와 기호의 변화에 순응한다는 것이 순수성과 국민 건강의 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술이 기호음료라고는 하지만, 마시는 술이 달라지면 술에 따르는 음식은 물론 식문화까지도 바뀌게 되어, 결국에는 사람의 성품까지도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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