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호흡

수련요결_02_心의 장_원리편

醉月 2009. 9. 9. 09:58

1. 호흡과 氣

모든 생물은 숨을 쉬며 산다. 그러므로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숨을 쉬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숨쉰다는 것, 즉 호흡(呼吸)한다는 것은 공기중에 산소를 체내로 유입하여 에너지를 분해하고 다시 이산화탄소를 몸밖으로 배출하는 것이 다는 아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천지간에 존재하나 형체도 없고, 맛도, 냄새도, 소리도 없는 기(氣)라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기에 의해 살아간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기에 호흡이 중요하다. 호흡은 결국 천지 공간에 가득한 기를 흡입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천지만물의 근원이 되는 기(精氣)가 체내에 가득해지면 인체의 나쁘고 안 좋은 사기(邪氣)를 밀어내고, 신체의 음양을 조절하며, 장기(腸器))를 영양하고, 신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이 기라고 하는 것은 호흡과 음식물 섭취를 통해서 몸안으로 들어와서 생명을 유지하고 경영하는 여러 활동을 하게 된다.


사람은 호흡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 실례로 사람이 음식을 굶으면 50일 이상을 견디기 어렵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1주일, 호흡을 하지 않으면 단 몇분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그만큼 호흡은 생명 활동과 관련된 아주 직접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생명이라는 것이 호흡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려 주는 또 하나의 예가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호흡을 통해 삶을 영위해 나가는 양상을 살펴보게 되면, 갓난아기 때는 배꼽 밑 단전에 이르는 깊은 호흡을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전신의 기의 흐름이 하나 둘씩 막혀 점점 얕은 호흡을 하게 된다. 잠든 아기를 유심히 살펴 보라. 그러면 호흡이 단전까지 깊게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갓난아기의 호흡은 기가 막힘 없이 소통하고 있을 때의 상태와 같다.


호흡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현상적인 생명활동뿐만 아니라 생명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역시 호흡이다. 이젠 어떻게 호흡하는 것이 생명을 관리하고 나아가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지 하는 방법상의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시작할까 한다. 건강과 생명력을 튼튼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호흡부터 관리해야 한다. 호흡을 관리한다는 것은 생명의 본질이 되는 기(氣)를 통한 근원적인 건강을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결국 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도, 호흡을 통해 기를 연마하고 생명을 관리하며 더 나아가 정신적인 안정과 깨달음(道)을 추구하기 위한 보다 체계적이고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2. 자연스런 호흡

호흡을 하면 천지간에 가득한 정기(精氣)를 흡입할 수 있다. 이러한 호흡을 잘 쉬게 되면 흡입되는 기의 양도 많아지게 된다. 우리가 평소 무심결에 쉬는 그런 얕은 호흡이 아니라 갓난아기의 호흡처럼 아랫배에 이르는 깊은 호흡은 보다 풍성한 기를 흡입하게 한다. 즉 호흡이 깊고 길어진 만큼 더 많은 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 가슴으로 숨을 쉬던 사람이 곧바로 아랫배에 이르는 깊은 호흡을 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좀 어색하고 낯설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동안 조금씩 올라온 호흡을 다시 되돌리려고 하니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갓난아기 시절 이후의 시간만큼 호흡도 거슬러 내려가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무리하지 말고 서서히 호흡이 깊어지도록 하자. 천지자연이 그러하듯이 호흡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숨이 바로 안 내려간다고 억지로 아랫배까지 끌어내리려 하면 횡경막 주변의 복근과 오장육부가 잔뜩 긴장해서 오히려 기의 흐름이 나빠지게 된다. 이로 인해 내장이 상하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마치 물이 흐르듯이 부드럽고 리듬이 있어 인위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호흡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기를 많이 빨아들일 욕심으로 잔뜩 숨을 들이쉬었다가는 숨을 멈춘 채 아랫배를 내밀 듯이 하는 호흡은 아주 좋지 않다. 이러한 잘못된 호흡을 단전호흡으로 알고 있다면 우선 고정관념부터 버리도록 하자.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가운데 단전에 기가 쌓이고, 기가 쌓이다 보면 점점 호흡이 깊어지고 길어지게 된다. 그리고 깊고 길어진 만큼 더 많이 들어온다. 서두를 것은 전혀 없다. 자연스러움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무리한 호흡은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 상기(上氣, 기가 위로 떠오르는 증상)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특히 심장이 허약한 사람이나 위장질환이 심한 사람의 경우에 무리한 호흡은 더욱 좋지 않다. 때에 따라서는 심장을 압박하고 위장을 경직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스럽고 깊은 호흡은 무엇보다도 좋은 치료처방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호흡수련은 호흡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세심한 지도가 필요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 몇 권을 읽어 얻은 지식을 갖고 무턱대로 시작해서는 생각보다 심각한 부작용을 겪게 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하도록 하자.
호흡수련을 시작하려면, 우선 호흡수련의 정확한 원리와 의의를 잘 알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호흡수련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그 방법과 체계, 그리고 목적이 전혀 다른 수련법들이 태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더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호흡수련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3. 단전이란?

본격적인 호흡수련을 시작하려면 우선 단전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단전을 풀이해 보면 단(丹:구슬), 전(田:밭)이다. 즉 단이란 구슬을 의미하고, 전이란 그 형상에 의할 것 같으면 미닫이 문, 의역하면 밭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전이란 미닫이문을 열면 그 안에 구슬이 있다 또는 밭 전자를 달리 의역하여 농사 지을 때의 밭은 무엌의 솥(鼎)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솥 안에 구슬이 생긴다로 해석된다. 궁극적으로 따지고 보면 <문을 열면 구슬이 있다
>와 <솥 안에 구슬이 생긴다>는 같은 뜻이다. 중요한 것은 단전 안의 구슬이다. 이 구슬을 여의주라고 한다.

결국 단전은 이 여의주를 담고 있는 무형의 그릇인 셈이다.

 

세상 만물은 저마다의 위치와 자기 자리가 있듯이 단전도 단전의 자리가 있다. 이를 단전자리라 하는데, 단전자리란 호흡을 통해 들어온 기운을 모으는 중심자리, 다시 말하면 호흡으로 체내에 끌어들인 기를 보관하고 모으기 위한 그릇을 말한다. 이 단전자리는 중요한 만큼 이설(異說)도 많다. 그러나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가 일반적이다.

 

첫째는 아랫배 전체를 단전으로 보고 그날그날 기운이 모이는 곳에 집중해서 수련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양혈(陽穴)인 관원(關元)이나 음혈(陰穴)인 기해(氣海)를 잡은 경우,

셋째는 수기(水氣)가 모이는 양신장(兩腎臟)사이로 보는 경우이다.

 

저마다 이론을 들어 보면 그럴듯해서 직접 수련을 해 보기 전에는 도저히 옳고 그름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단전을 각기 다른 곳으로 잡아 수련하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수련에서 공통적인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과 또 공통적인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급기야 단전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렇다면 과연 단전은 불필요한 것인가?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낸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은 것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단지 정확한 단전자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혼란이 있는 것이다. 그릇이 있어야 물을 담을 수 있듯이 단전자리가 있어야 기를 모을 수 있다. 단전자리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운은 모이지 않는다. 명백한 것은 기운이 모이는 것을 느끼는 것과 단전에 실제로 기운이 모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기가 모인다는 느낌은 굳이 단전이 아니더라도 어느 위치에서라도 느낄 수 있다. 실험 삼아서 손바닥에 의식을 집중해 보면 바로 따뜻해지거나 어떤 느낌이 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리켜  이것이 기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 곳이 단전이다 라고 할 수는 없다.

 

단전자리가 잡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 기감(氣感)만을 좇아 호흡수련을 하는 경우에, 초기에는 모두 비슷비슷한 것 같아서 그 차이를 안다는 것이 사실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깊은 호흡에 의한 생리적인 효과와 의식집중이 가져오는 정신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면 끝 단추를 끼우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정확한 단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4. 단전은 석문이다.

일반적으로 단전이라 하면 기해, 석문, 관원 이 세 혈을 중요하게 여긴다. 석문호흡은 음혈인 기해와 양혈인 관원의 사이에 존재하는 태극혈 석문(石門)을 단전의 중심으로 잡아 수련한다. 즉, 기해는 음(陰)이므로 기해를 단전으로 잡게 되면 수련이 지나치게 부드럽고 약하며 정신적인 성향을 띠게 되고, 반면 관원은 양(兩)이므로 관원을 단전으로 잡고 수련하게 되면 힘 위주의 강하고 육체적인 성향을 띠게 되므로 석문을 단전으로 잡아 정신과 육체, 음과 양의 모든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음양의 두 기운을 조화시켜 완성된 기로 만드는 자리가 바로 석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문을 단전으로 잡는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석문 안에 있는 구슬 때문이다. 단전은 이 구슬이 있는 곳에서만 자리잡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석문이 아니고서는 단전이 자리잡지 못한다. 수련인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단전은 기를 모으는 그릇과 같다. 그릇이 없는 상태에서 기만 모은다고 모여질 리가 없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 거리를 떠돌아 다니는 것처럼 단전이 없는 상태에서 집중된 기는 약간의 충격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온몸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모든 것에는 중심이 있다. 인체의 중심은 단전이다. 단전에도 중심이 있어서, 단전의 중심이 바로 석문이다. 즉, 단전그릇은 석문을 중심으로 생기는 것이다.
결국 단전을 이용한 호흡이 단전호흡이라면, 석문혈을 단전으로 잡지 않고 하게 되는 호흡수련은 단전호흡이 아니고 단지 복식호흡에 지나지 않는다. 단전은 석문을 중심으로 잡아 호흡해야   자리잡게 된다.

그런 이유로 단전이 있는 호흡을 여타 다른 호흡법과 차별화하여 석문호흡이라 한다.

 

5. 축기와 운기

단전이 자리잡으면 그 다음에 해야할 것은 축기와 운기다. 축기(蓄氣)란 기운을 쌓는 것이고, 운기(運氣)란 기운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 앞서 단전이란 기운을 모으는 그릇과 같다고 했다. 결국 단전이 자리잡아야 축기가 되고, 축기가 된 후에야 운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석문에 단전자리가 형성되지 않은 많은 수련인들이 나름대로는 기운을 모으고 운기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진정한 단전은 석문이 아니면 자리잡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된 사실인가? 물론 단전이 자리잡지 못한 상태에서도 기운이 모이는 것이 느껴지고, 기운을 돌릴 수도 있다. 단지 이 때 돌아가는 기는 진기가 아닌 허기(虛氣)다. 허기란 의념의 기 또는 상념의 기라고 한다.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의념이나 생각만으로 기운을 돌려주게 되면 허기가 따라 돌게 된다.

 

즉 선도수련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깨달음(道)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참다운 기, 진기(眞氣)가 아닌 관념의 기를 돌리게 되는 것이다. 상념의 기에는 염파가 있다. 텔레파시나 최면술 등을 할 때 사용하는 것도 이 상념의 기에서 나오는 염파를 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기운은 때론 아주 민감한 기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단지 기가 모이거나 흐르는 것을 느끼고, 돌린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단전에서 생선된 실질적인 기, 조화의 진기하고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상념의 기로 대주천을 넘어 피부호흡에 이르렀다는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면, 단지 뭔가가 지나간 듯한 흔적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전에서 생기는 실질적인 기, 진기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생기(生氣)라는 것이 있다. 생기란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기운이다. 그렇다면 진기와 생기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이제부터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자.

 

6. 진기와 생기

석문호흡이 여타 수련과 다른 것은 바로 생기(生氣)가 아닌 진기(眞氣)수련이라는 데 있다. 진기는 단전이 석문에 자리잡지 못하면 절대 생성되지 않는다. 석문에 단전이 자리잡아야만 진기수련을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의 몸안에는 진기와 생기가 존재하고 있다. 진기는 무의식에 의해 생겨서 무의식으로 운기되는 무의식의 기이고, 생기는 의식에 의해 생기고, 의식으로 운기하는 의식의 기이다. 일반적으로 생명활동을 관장하는 기가 바로 이 생기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근원적이고 높은 차원의 기를 가리켜 진기라 한다. 즉 진기는 현상계를 벗어나 또 다른 차원과 연결된 도광영력(道光靈力)을 말한다. 인간이 생명을 잃는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이 진기가 완전히 고갈되었을 때 일어나는 생리현상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생기에 비해서 진기는 아주 근원적인 기이다.

실제로 진기 한 웅큼이 생기로 화하면 넓은 방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그 위력 자체도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반 수련자가 진기와 생기를 구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행여 수련자의 경지가 어느 정도 높아져서 진기와 생기를 모두 다 운기해 보고 그 둘을 비교해 본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생기수련만 해온 경우나 단전자리조차 잡히지 않은 초보단계에서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 진기와 생기다. 대개의 경우 수련자가 먼저 생기를 느끼게 되면 진기를 도저히 알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생기가 전부 진기인 줄 알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기를 진기로 착각하여 스스로 속은 상태에서 공부가 진행되면, 평생 헛공부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아주 주의해야 한다. 기감은 아무리 예민하더라도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가지는 한계가 있으므로 너무 자신해서는 안 된다.


진기와 생기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기와 생기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서 도안(道眼)을 얻으면 된다. 누구든 석문호흡을 통해 수련이 깊어지게 되면 도안을 얻어서 직접 수련자의 몸을 투시하여 진기와 생기를 볼 수 있다. 도안으로 투시하지 않으면 참으로 구별하기 힘든 것이 이 진기와 생기이기 때문에 생기를 진기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아니 보다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진기를 닦을 수 있는 수련법 자체를 몰랐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진기수련은 생기로 닦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건강도 진기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생기에 의한 그것보다 더 크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진기가 아니면 도적인 차원의 깊이 있는 수련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생기로는 절대 도를 이룰 수 없다. 단지 양생(養生)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결국 많은 단전호흡이 한계에 부딪히는 결정적인 이유중 하나가 진기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기를 얻고자 하면 석문호흡을 해야만 한다.
다시 한번 말하면, 석문호흡의 첫걸음과 진기수련의 시작은 바로 단전자리를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단전이 석문에 정확히 자리잡아야 진기수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7. 단(丹)은 구슬이다.

단(丹)은 구슬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구슬이란, 이미 본질적으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며 원천적인 조화의 힘을 가지고 있는 여의주(如意珠)를 말한다. 흔히 선도수련을 하다가 생겨나게 되는 기적인 차원의 물질화된 고체, 즉 채약(採藥)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과 이 여의주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둘은 명백히 다른 것이다. 우리 인간의 몸에는 단전이 세 개가 있고 그 안에 세 개의 구슬, 즉 세 개의 여의주가 자리잡고 있다. 이 세 개의 여의주를 삼주(三珠)라 하고, 세 개의 단전을 삼단전(三丹田)이라 하여 각각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이라 한다.


그 중에서 하단전은 삼단전의 뿌리로, 삼단전 중 가장 아래인 석문혈에 위치한다. 석문을 통해서만 하단전의 여의주, 정주(精珠)를 찾을 수 있다. 세 개의 여의주 중에 하단전의 정주를 찾아야 중단전의 기주(氣珠)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중단전의 기주를 찾아야   상단전이 신주(神珠)를 찾을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된다. 이렇게 세 가지의 여의주를 찾아야 선도에서 이야기하는 양신(陽神)을 이룰 수 있고, 대우주와 소우주인 인간이 하나인 우아일체(宇我一體)가 되며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하단전의 정주는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참으로 중요한 구슬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정주가 하단전의 조화혈 자리인 석문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단전을 보물창고라 한다면, 호흡은 열쇠가 되고, 석문은 열쇠구멍, 여의주는 보물인 셈이다. 단전과 여의주는 누구나 사람인 이상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호흡이라는 열쇠도 있고, 열쇠구멍의 위치도 알았다. 이제 보물을 찾고 못찾고는 각자의 노력과 의지에 달린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삼단전을 모두 열어 세 개의 여의주를 찾으면 선도에서 말하는 양신이 생긴다. 양신(陽神)은 현상계와 도계를 넘나드는 도체(道體)로 진기수련의 최종적인 목적이다. 양신을 이루게 되면 석문호흡의 기초단계 수련을 끝마친 것이 된다.

 

8. 석문호흡의 두 가지 측면

석문호흡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신체의 건강을 위한 육체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측면, 즉 정신의 안정과 그 이상의 것, 도를 이루어 자기 자신의 본체를 찾아가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육체와 정신은 전혀 상반된 개념이라기보다는 늘 함께 상존하는 동전의 앞뒤와 같이 표리관계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육체의 건강 없이는 정신의 안정이란 기대하기 어렵고, 정신의 안정이 없는 육체의 건강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데서 올바른 정신적 깨달음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이야기다.

 

석문호흡은 천지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기를 운용하므로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단련시켜 밝고 맑으며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석문호흡은 단전에 기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한다. 결국 단전에 축기가 되면, 체내에 기가 충실해지고 전신경락에 원활히 흐르게 되어 면역력이 강해지고 질병의 자연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고질병들, 난치병들이 치료되거나 호전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부분의 현대병이 스트레스에서 온다는 말이 있듯이, 수련을 통해 정신의 안정을 얻게 되면 육체적인 건강도 호전되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신경성 위장병이나, 불면증, 두통같은 것은 호흡수련을 통해 아주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선도수련이 건강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하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공부가 선도수련(仙道修練)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련의 목적을 건강에만 두어서는 안된다. 건강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살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도수련을 통해 건강과 정신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선도수련 자체가 우선적으로 건강의 완성을 목표로 하고 그 바탕에서 정신적인 깨달음에 몰입해 들어가는 순서를 밟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선도는 성명쌍수법(姓名雙修法)이어서 성(性, 정신)과 명(命, 육체)을 모두 중요시한다. 즉 선도를 이루기 위해선 몸과 마음을 함께 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석문호흡은 행공과 본수련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수련은 정신적인 수양을 행공은 육체적인 단련을 위주로 한다. 즉 본수련은 기가 부드럽게 작용하여 정신을 맑게 하고, 행공은 강하게 기가 작용하여 육체를 단련시켜 준다. 우리가 석문호흡을 통해서 성명을 함께 닦을 수 있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근간에는 거의 현묘한 작용이 있기 때문인데, 기라는 것이 작용하여 일반적인 운동이나 정신 수양에서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생리적 효과와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선도수련의 본질은 기와 마음이므로, 이러한 기와 마음을 닦는 석문호흡을 심기쌍수법(心氣雙修法)이라 한다.
석문호흡의 두 가지 측면인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은 모두 중요하다. 호흡을 통해 기를 운용하게 되면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안정을 가져올 수 있고, 수련이 깊어지면 수련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 정신적인 깨달음(道)를 얻게 된다. 그리고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깨달음은 마음(心)과 기(氣)를 같이 닦고, 육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시킬 때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9. 道는 생활 속에, 法은 사람과 더불어

  앞서도 말했듯이 석문호흡은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인 안정, 그리고 그 이상의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는 수련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도(道)를 이루기 위한 수련법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석문호흡법을 통하여 도를 이룰 수 있다. 왜냐하면 석문호흡은 처음만 있고 끝이 없는 수련이 아니라 처음과 끝, 그리고 처음과 끝을 포함하는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이 있는 수련법이기 때문이다. 선도수련의 처음은 호흡이고 끝은 신인합일에 있다. 그리고 그 과정으로 진기수련(眞氣修練)과 양신출신(陽神出神)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모두는 그 중 어느 것 하나가 빠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도(道)를 이룰 수 없는 저마다의 당위성과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난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구도자들이 평생을 수련해도 도를 이루지 못한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호흡(呼吸)을 몰라 단(丹)을 이루지 못했고,

둘째로 호흡을 알았더라도 정확한 단전을 몰랐기 때문에 진기(眞氣)를 얻을 수 없었고,
셋째로 도맥(道脈)이 끊겨 양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서 끝에 이르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수련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호흡도 과정의 하나이며 진기도 그렇고 양신도 그렇다. 모두 도의 길을 가는데 있어 필요한 하나의 과정이며 그러한 모든 과정이 곧 도(道)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수련(修練)은 생활 속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일상 생활을 벗어나 신비하고 유별난 것만 찾으려 하는 것은 이미 도의 본의(本意)를 저버린 것이므로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21세기에 들어 시대가 변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과거에 선도를 닦는다 하면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떠올리거나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렇게 사회를 등지지 않으면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너무 요원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시대는 그와 같은 소수의 종교가나 명상가만이 증명할 수 있는 수련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제는 처음과 끝이 있고 체계적인 수련과정이 있어서 누구나 생활 속에서 닦아 나갈 수 있는 그런 수련법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도(道)와 법(法)은 생활인이면 누구다 다 노력하는 이상, 자신의 내면적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있고 또 증명할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체계적인 수련법이 있어서, 추상적이고 모호한 그러므로 해서 낭만적이기까지 한 그런 도(道)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면 누구나 쉽게 도(道)의 근원에 다가갈 수 있는 참도니 수련(眞法)의 보편화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도(道)를 신비화시키고 도인(道人)을 우상화 시켜 사람들을 현혹하는 현재의 잘못된 풍토는 자연히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수련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우리 모두가 생활과 수련이 둘이 아닌 참 생활인의 길을 가게 되리라 본다.
결국 도와 생활은 나누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상 생활속에서 도를 닦지 못하면 도를 이룬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뿐더러 도공부 역시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는 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와 생활은 어느 한쪽만 취해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현실생활에만 얽매어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어리석음일 수 있고, 수도생활에만 전념하여 사회를 등지고 자기 안에 안주하려는 것은 도의 본의(本意)를 잊은 옛사람의 어리석음일 수도 있다. 결국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생활과 수련 모두를 이끌어 주도할 수 있는 중심(中心)과 역량(力量)을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곧, 생활속에서 도를 닦는 길이며 참 선도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진정한 선도를 닦고자 하는 수련인은, 도(道)는 생활 속에서 닦아야 하고, 법(法)은 사람과 더불어 나눌 줄 알아서, 생활과 수련, 그리고 보이는 세계(現象界)와 보이지 않는 세계(道界)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이 모두의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는 데에서 선도를 닦는 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10. 수련인이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

석문호흡의 구체적인 수련과정과 방법에 대한 이해를 하기에 앞서,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한 수련을 위해서 다음 몇가지 사항들에 대해 알아두도록 하자.

 

먼저, 수련을 시작할 마음을 먹었다면, 일정한 기간 동안 꾸준히 할 생각을 해야 한다. 하루 이틀에 뭔가 특별한 효과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게 해서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실례로 단전자리를 잡는 데만 하루 2시간씩 대략 3개월 정도 걸리는 시간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수련은 일정한 기간동안 꾸준히 할 마음으로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장소에서 규칙적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둘째, 수련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집과 도장(道場)이다. 수련자가 수련을 하여 형성된 기운은 수련을 한 그 곳에남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련은 도장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고 집에서 하는 것이 그 다음으로 좋다. 도장은 많은 분들이 수련하는 곳이므로 언제나 맑은 기운으로 형성되어 있어 좋고, 집안의 기는 수련자의 수련경지와 같으므로 안정감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 보통 산이나 계곡 같은 곳이 공기가 맑아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기운이 불안정하고 안 좋은 경우가 많으므로 수련경지가 낮아 외기(外氣)의 영향을 크게 받는 소주천 이하 수련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


셋째, 수련에 가장 좋은 시간은 자시(子時)이다. 자시란, 묵은 기운이 새 기운으로 교차되는 시간을 말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하늘문이 열리는 시간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자시라 하면 밤 11시를 말하지만, 기운이 교차되는 시간은 정확히 11시 20분이다. 일반적인 자시의 시간적인 개념과 달리 실질적으로 기운이 바뀌는 시간을 기준으로 10분 여유를 두고 밤 11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를 자시(子時)라 한다.


넷째, 가급적 육류를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기운의 성질 자체에 풍사(風邪)가 많아서 애써 모은 기운을 흩어지게 하므로 좋지 않다. 단백질 보충은 생선이나 계란, 콩류로 하고, 채식위주의 식단을 짜보는 것도 좋다. 그렇다고 육식을 하면 수련 자체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수련 진도가 조금 늦어지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 4개월 정도 수련으로 단전이 자리잡게 된다면, 육식을 하는 사람의 경우는 6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기간의 차이가 있다. 그 외에 술과 담배, 커피 등 인스턴트 식품도 수련에 지장을 주므로 자제해야 한다. 특히 담배는 그 기운 자체가 탁한 데다가 기도와 폐에 직접적으로 자극을
즈므로 호흡수련에 큰 걸림돌이 된다.


그 밖에 처음 와식수련을 시작하는 수련자가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와식(臥式)은 단전이 석문에 정확히 자리잡도록 하기 위한 수련이므로 반드시 누워서만 해야 한다. 처음 수련에 들어가면 수련에 대한 왕성한 의욕 때문에 일상 중에도 수련을 하려고 하는 지나친 열의를 갖게 되기 쉽다. 하지만 그런 것이 오히려 수련에 치명적인 방해로 작용해서 와식수련 기간만 늘어나게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와식수련 단계에서는 앉은 자세, 선 자세, 이동 중에 수련을 반드시 금(禁)한다.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상의 것들은 반드시 지켜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효과적이고 원활한 수련을 위한 보조적인 것들이다. 주변 사항들에 너무 얽매어 본질을 놓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모든 것은 지나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수련자 본인이 얼마나 중심(中心)을 잡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련에 좀더 정성을 들이고, 생활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자연스러운 수련인(修練人)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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