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 삼재지도
우주만물의 기본원리인 음양(陰陽)의 흐름을 천도(天道)라 하고, 음양의 형체인 강유(剛柔)를 지도(地道)라 하며, 천도와 지도 사이에 존재하는 생명(人)의 성정(性情)을 인도(人道)라 한다. 이 삼도(三道)의 본질이 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이다. 천지인 삼재는 양을 대표하는 하늘(天), 음을 대표하는 땅(地), 그 사이의 중간적 주재자로서 사람(人)을 지칭한다.
역서 사람(人)이 공간적으로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고, 시간적으로는 하늘과 땅 다음에 생겼음에도 천지와 더불어 대등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도(道)를 이뤄 천지공간과 일월의 시간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인데, 결국 도(道)를 닦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고, 도를 이룬다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근본자리에 도달하는 것으로, 선도(仙道)는 천지인의 이치로 생성된 시간의 흐름을 역으로 돌려 사람이 곧 하늘이며 만물을 화육(和育)하는 주재자로서의 근본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선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기신(精氣神)과 영혼백(靈魂魄), 그리고 삼단전(三丹田)과 삼주(三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므로 이번 기회에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1. 정기신(精氣神)은 알고 선도를 말하자.
선도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 이를 가리켜 삼보(三寶)라 하는데, 삼보는 인체 내에 있는 정(精), 기(氣), 신(神)을 일컫는 말이다. 정기신 삼보는 도를 닦아 선인(仙人)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인간의 몸에는 이러한 정기신 삼보를 근본적으로 다스려 주는 세 개의 여의주가 존재한다. 인간을 가리켜 소우주라 할 때 소우주인 인간의 진리는 대우주와 같아서, 대우주에 삼도계(三道界)가 있듯이 인간의 몸 안에는 삼주(三珠)가 있다. 이는 천상 삼도계에서 파생된 정신 문명인 천지인 삼재와 더불어 삼원(三元)의 진리로 모두 상통한다. 결국 도를 닦는 일차적인 목표가 신인합일(神人合一)에 있다면, 정기신의 의의는 석문호흡을 통하여 정을 기와 신으로 변화시키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道)를 닦고자 하는 수도자는 정·기·신의 참이치를 반드시 알아서 이치에 맞는 길을 가야만 한다.
참으로 많은 초학자와 수련인들이 이러한 언어의 개념이 가지고 있는 참된 이치를 정확히 알지 못함으로써 정신적인 갈등을 겪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기존에 알려진 정기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잘못 전해진 부분에 대해서는 삭제를 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보충을 하여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특히 중점을 두고 그들이 갖는 근본적인 의미를 비교 고찰하여 보다 명확한 개념 정리를 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정(精)은, 인체의 근본 에너지이며 근본이 되는 영양 물질로서 넓은 의미에선 오장(五腸)의 정(精)을 포함한 몸 전체의 정을 가리키고, 좁은 의미로는 생식기능의 정력을 뜻한다. 또 전통적으로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으로 나누어 구분하기도 하는데, 한의학적인 이해를 빌려 설명하자면, 선천적인 정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신장(腎腸)에 의해 영향을 받고, 후천적인 정은 음식에서 섭취한 영양 물질의 소화 흡수에 의한 것으로 비장(脾腸)에 영향을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정의 개념을 선천과 후천으로 나누어 설명하려고 할 때, 선천의 정은 원정(元精)이라 하여 체력의 충실, 성욕의 고조, 활동력 등 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을 말하며, 후천의 정은 남성의 정액(精液)과 여성의 애액(愛液)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는 기가 유형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精)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보다 정확한 이해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만 정기신에 얽혀져 있는 선도의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고,
또 이치에 맞는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기본원리인 음양오액을 빌어 설명하자면, 우주의 정기(精氣)중 정(精)은, 음(陰)에 해당되고, 음은 생명력을 뜻하며, 오행(五行)중 수(水)에 해당한다. 즉 음(陰)은 수(水)요, 수(水)는 정(精)이다. 따라서 하늘의 음수는 곧 정을 낮는 모태가 된다. 대우주인 하늘에 천일음수(天一陰水)가 있듯이, 소우주인 인간에게는 음수인 신수(腎水)가 있다. 사람의 신체에 정이 있는 곳은 수기가 있는 신장(腎腸)이며, 이 모든 것은 하단전 여의주(神珠)에 의해 통제된다. 즉 정은 태초 천지만물의 음인 수기이며, 음인 수기가 인간의 몸으로 들어와 정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정은 인체 내에서 신수(腎水)에 의한 음정(陰精)과 혈액에 의한 양정(陽精)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정을 단련하면 기가 되는데 선도에선 이를 연정화기(練精化氣)라 한다. 우주의 모든 천지 만물은 기(氣)로 되어 있다. 즉 모든 사물에 기가 내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기에 대한 것은 사물의 수 만큼이나 방대하고 복잡하다. 여기서는 선도수련에서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선에서 기를 다루도록 하겠다. 일반적으로 기를 구분할 때 인체 내외를 나눠서 내기(內氣), 외기(外氣)로 구분하기도 하고, 인체 내의 기를 다시 선천과 후천으로 나누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선천의 기란 어머니의 몸 안에서 태어나기 이전 상태의 기를 말하며 흔히 원기(元氣)라 하고, 후천의 기란 태어난 이후의 호흡과 음식물에 의해 얻어지는 기를 말한다. 후천의 기를 구분하여 호흡에 의한 기를 천기(天氣), 음식물에 의해 섭취되는 기를 지기(地氣)라 하고, 한의학적인 관점에서는 호흡과 관련한 기를 종기(宗氣), 음식물에 의한 기는 다시 둘로 나뉘어 영기(營氣)와 위기(衛氣)로 구분한다. 영기는 경락과 혈맥 내에 흐르는 수곡의 정기(精氣)로 장부에 영양을 공급하는 작용을 하고, 위기는 수곡의 한기(恨氣)로 피부와 근육사이를 순행하며 인체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기를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구분할 때, 살아있는 기(生氣)와 생명력이 없는 죽은 기(死氣)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 살아있는 기인 생기가 사람인 생존하는 데 필요한 여러 기능을 도맡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도를 공부하는 본래 목적은 이러한 생기 차원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생기와 구별되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를 진기(眞氣)라 부르는 것이다. 진기를 얻지 못하면 절대 도(道)를 이룰 수 없다.
진기를 가리켜서 선천의 기 혹은 무의식의 기라 할 때, 생기는 후천의 기 혹은 의식의 기라고 한다. 이때의 선천의 기란 모태내(母胎內)에 있을 때 받은 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계를 벗어난 우주의 근원적인 최초의 빛, 도광영력(道光靈力)을 말하는 것으로, 앞서 이야기한 태생전(胎生前)의 기, 원기(元氣)도 그런 의미에서 생기(生氣)에 포함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기를 얻어야 하고, 진기를 얻기 위해서는 석문에 단전이 자리잡아야만 한다.
기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앞서 언급한 정과의 관계를 알아보도록 하자. 정(精)에는 음정(陰精)과 양정(陽精),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늘의 수기(水氣)는 물과 같은 음기(陰氣)로 그 안에는 음양이 하나로 완벽하게 통일되어 들어 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음정과 양정이 분열되어 있어 완벽한 기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결국 이러한 분열된 음양의 정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방법이 석문호흡이다. 다시 말해서 호흡에 의해 신장에 존재하는 음정이 끊어서 발생하는 음기와 심장에 있는 혈액이 온몸을 순환하여 발생하는 열인 양정에 의해 발생한 양기를 조화시켜 완벽한 기를 만들어 주는 호흡법이 바로 석문호흡이다. 즉 인체 내에서 수(水)의 정(精)이 끊어 기로 화(化)하는 것을 음수(陰水)중 음기(陰氣)인 수(水)라 하고, 혈액이 순환하여 생기는 기는 음수(陰水)중 양기(陽氣)인 화(火)라 하는데, 결국 정이 기로 화하는 이치는, 음양이 하나로 통일된 하늘의 수기가 사람의 몸에서는 음정과 양정으로 분열되어 완벽한 기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석문호흡을 통하여 완벽한 기, 진기(眞氣)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라 할 때, 양정인 혈액이 혈맥을 돌아 순환할 때 발생하는 열기(熱氣)인 양기와 석문호흡을 함으로써 음정인 수(水)가 끊을 때 발생하는 수증기인 음기 그리고 이 두 음양의 기를 태극운동의 조화로써 통일된 완성의 기(眞氣)로 만들며 다스리는 또 다른 개체의 기인 무극의 기, 이 세 가지를 가리켜 통칭 우리는 기(氣)라 하는 것이다.
정(精)이 승화되면 기(氣)가 되듯이 기(氣)가 더욱 깊어져 제자리를 찾아 안정되면 신(神)에 이르게 된다. 이를 연기화신(練氣化神)이라 한다. 그렇다면 신(神)이란 무엇인가? 신에 대한 개념도 좀더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신이란 것도 기와 마찬가지로 선천과 후천으로 나누어 보는 견해가 있다. 선천의 신은 무의식의 작용을 말한다. 혹은 옛 사람들이 인체 내에 존재할거라고 상징화시킨 여러 신들 중 으뜸인 원신(元神) 등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후천의 신은 의식을 수반한 정신활동, 식신(識神) 등으로 이야기되어진다. 하지만 선도수련을 하는 본래 목적이 생기차원에 있지 않듯이 신에 대한 개념도 좀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선도는 오랫동안 선천과 후천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 자체가 갖는 사고의 한계로 인해 많은 오해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전통을 내세우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선천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를 가리키고, 태어난 이후에는 후천이라 하여 결국 후천의 수련을 통해 태내에 있을 때와 같은 선천의 상태로 되돌아가 장생불사하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진정한 선도는 단지 개인의 장생(長生)만을 추구하는 양생(養生)을 위한 술(術)이 아니라,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지, 그리고 나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대해 가장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神)이란 것도 이해되어야 한다.
신(神)이란 것은 대우주에서 어느 한 개체가 창조될 때 그 최초의 생명의 빛을 가리킨다. 즉 인간은 수많은 영(靈)과 육(肉)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영육으로 변하기 전의 근원을 신이라 하는 것이다. 이 신(神)은 인간으로 화할 때 우주의 정기(精氣)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 도(道)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근본 자리인 신에 이르는 과정을 일컫는 것이므로 신이 사람이 된 이치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사람이 곧 신이고, 그것이 곧 자신이 왔던 근원자리로 찾아가는 길인 것이다. 따라서 선도의 정기신이 갖는 의미도, 신(神)→기(氣)→정(精)의 순서를 밟으면 사람이 되고, 정(精)→기(氣)→신(神)으로 역순하면 신선이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신인합일(神人合一)이라 일컫는다.
이처럼 인간은 석문호흡을 통해서 자신의 근본자리에 갈 수 있다. 석문호흡은 정을 기로 승화시키고 전신혈맥을 유통시켜 기를 더욱 맑고 밝게 하여 태초의 기운과 합일되게 한다. 이렇게 태초의 기운과 합일하게 되면 영육(靈肉)이 분리되고,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살아온 수많은 영(靈)들의 과정을 순식간에 역으로 거치면서 근본의 자리인 신(神)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도를 닦는다는 것은 수 천 수만년 전에 처음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역과정을 거치는 수련의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정기신의 역과정을 통하여 원래 태어났던 태초의 자리로 가서 본래 근본 마음의 참뜻을 깨닫는 것이 바로 선도 수련의 궁극적인 목표다.
종합하면, 정기신의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그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선도(仙道)라는 것이 단순한 심신수양법(心身修養法)이 될 수도 있고,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위한 술(術)이 될 수도 있으며, 근원적인 도(道)에 이르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만큼 정기신에 대한 바른 이해는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이다.
2. 정기신(精氣神)과 영혼백(靈魂魄)
앞서 이야기한 정(精)·기(氣)·신(神)과 비교되는 개념으로 영(靈)·혼(魂)·백(魄)을 꼽을 수 있다. 하나의 영은 세 개의 혼과 일곱 개의 백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름하여 일령·삼혼·칠백(一靈 三魂 七魄)이 그것이다. 즉 일령·삼혼·칠백은 일신(一神)·삼기(三氣)·칠정(七精)과 대등하게 상응하고 있다.좀더 구체적으로 하나씩 차례차례 살펴보면, 우선 칠백(七魄)이란 인간의 칠정(七精)을 말한다.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 혼백이 출입한다고 해서 칠백이라고 한느데, 이는 정(精)을 다스리는 하단전에 존재한다. 말하자면 백을 다스리는 곳은 하단전이란 의미이다.
그리고 삼혼(三魂)이란 삼기(三氣)를 말하는데, 심기에는 천기(天氣)·인기(人氣)·지기(地氣)가 있다. 혼은 선도의 삼보(三寶)중 기와 같아서 기를 다스리는 중단전에 위치하여 존재한다. 따라서 혼을 다스리는 곳은 바로 중단전이란 의미가 된다.
일령(一靈)은 일신(一神)을 말한다. 영은 신과 같아서 신이 머무르는 상단전에 위치하여 있다. 이를 천지인 삼재를 기준으로 분류해 보면, 상단전·중단전·하단전은 각각 천·인·지가 되고, 또 신·기·정이 되며, 영·혼·백이 된다. 역(易)을 빌어 풀면 태극(太極)·양(陽)·음(陰)이 되고, 한방적으로 해석하면 상초(上焦)·중초(中焦)·하초(下焦)가 된다. 이 모든 연관 관계를 바로 알아야 도(道)에 대한 참된 이치를 이해하게 되고, 이치에 맞는 길을 갈 수 있게 되므로 수도자는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신(神)이 사람으로 올 때는 우주의 정기(精氣)를 받아 오게 되는데, 바로 이 정(精)과 기(氣)가 인체 내의 생명의 원동력을 이루게 된다. 이를 역순으로 살펴 보면, 정(精)이 발전하여 기(氣)가 되고 기(氣)는 승화되어 신(神)에 이르게 된다는 것으로, 즉 신(神)이라는 대전제 속에 기(氣)가 포함되어 있고 기(氣)라는 테두리 안에 정(精)이 들어있다는 이야기다. 영(靈)·혼(魂)·백(魄) 역시 이와 같아서 혼과 백은 영의 존재에 의해서 부수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신(神)이 사람으로 올 때 정기(精氣)를 타고 오듯이 영(靈) 또한 혼백(魂魄)을 타고
온다. 문제는 삶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죽었을 때 이 영·혼·백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삶과 죽음을 벗어난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의문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의문은 선도 수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관건이 된다.
우선 칠백(七魄)에 대해 알아보자. 앞서 칠백은 칠정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 칠정(七情)은 이목구비의 일곱 개의 구멍(七孔)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다가 사람이 죽게 되면 칠백(七魄)은 육신과 함께 음(陰)인 땅 속으로 들어가 지기(地氣)와 합일하여 흩어진다. 그리고 삼혼(三魂)은 삼기(三氣)를 말하는데, 삼기(三氣)는 천기(天氣)·지기(地氣)·인기(人氣)로 각각 살과 뼈 그리고 오장육부에 머무르다가, 사람이 죽게 되면 삼혼(三魂)은 양(陽)인 하늘로 올라가 천기(天氣)와 합일하여 흩어진다. 끝으로 일령(一靈)은 사람이 죽게 되면 일신(一神)의 자리인 천상 도계(天上 道界)로 돌아가 우주의 순리에 귀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혼·백과 기·정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육신의 모든 부분을 천지공간에 흩어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다함으로써 원시반본(原始反本)하여 근원적인 무극(無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3. 삼단전(三丹田)과 세 개의 여의주
지금까지 천지인 삼재지도(天地人 三才之道)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정기신과 영혼백의 상관 관계를 알아보았다.
이제 선도에서 말하는 삼단전(三丹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삼단전은 하단전·중단전·상단전을 일컫는다. 우리가 삼단전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인체의 전면과 후면을 지나는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 필요하다. 우선 임맥은 기경팔맥(奇經八脈)중 하나로 우리 몸 전면의 정 중앙을 지나는 경혈수 24혈의 음경락을 말하고, 독맥은 몸의 후면 중앙의 척추 뼈를 따라 위치하고 있는 경혈수 28혈의 양경락을 말한다. 소주천 편에 들어있는 경락도를 살펴보면 이해가 한결 쉬울 것이다. 단전의 위치를 하나씩 살펴 보면, 하단전은 석문혈(石門穴)에 있고 중단전은 옥당혈(玉堂穴)에 있으며 상단전은 독맥상의 인당혈(印堂穴)에 있다.
우선 하단전은 삼단전 중 가장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경혈로 볼 때는 관원(關元)과 기해(氣海) 사이의 석문(石門)이 바로 그 자리다. 하단전은 삼단전의 뿌리에 해당하며, 근본적으로 정(精)을 생성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삼단전인 상·중·하단전에 하나씩 들어있는 세 개의 여의주(如意珠)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하단전에 있는 구슬, 즉 정주(精珠)를 먼저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상단전의 신주(神珠), 중단전의 기주(氣珠), 하단전의 정주(精珠)를 찾는 문이 바로 하단전 석문(石門)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정주를 찾지 않고서는 절대 기주(氣珠)와
신주(神珠)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단전의 정주(精珠)를 찾아야만 중단전의 기주(氣珠)를 찾을 수 있는 문이 열리고, 중단저의 기주(氣珠)를 찾아야 상단전의 신주(神珠)를 찾을 수 있는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단전의 정주(精珠)를 찾지 못하면 중단전의 문은 결코 열릴 수가 없다. 이처럼 하단전의 정주(精珠)는 참으로 중요한 구슬이다.
그리고 이 하단전의 정주를 찾을 수 있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기혈(氣穴)이 바로 석문(石門)인 것이다.
하단전의 수련에 집중적으로 정진하다 보면 어느덧 자연스럽게 하단전이 도태되고 중단전이 열린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단전은 임맥선 상의 옥당혈(玉堂穴)에 위치하고 있다. 경혈의 위치를 설명하자면, 양 젖꼭지를 횡으로 연결하여 임맥과 만나는 지점이 전중혈(中穴)이고, 이 전중혈 위로 한 치 육 푼이 되는 지점이 바로 중단전 옥당혈이다.
이 중단전이 열린 후 계속 수련 정진하면 자연 중단전도 도태되고 상단전이 열리게 된다. 열린다는 것은 도태된다
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서 새로운 열림은 그 이전 과정의 도태를 의미한다.
경혈학적으로 상단전은 독맥의 인당혈(印堂穴)에 위치한다. 인당혈은 양 눈썹 사이의 정 중앙에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상단전은 중단전의 도태에 의해 열린다. 상단전이 열림으로써 깨달음에 이를수 있는데, 깨닫는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와 우주의 이치를 안다는 것으로 이것은 필연적으로 상단전이 열림으로써 가능하다.
이와 같이 하단전에서 중단전, 중단전에서 상단전으로 차례차례 삼단전이 모두 도태되고 열려서 세 개이 여의주를 찾게 되면 선도에서 말하는 양신(陽神)을 이룰 수 있다. 양신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육신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 즉, 현상계를 뛰어넘어 도계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나의 근원(原神)을 알고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호흡을 통해 굳게 닫혀진 석문(石門)을 열면, 하단전에 있는 정주(精珠)를 찾을 수 있고, 우리 몸 안에 있는 세 개의 여의주를 모두 찾음으로써 양신을 이룰 수 있으며, 자신이 온 근원자리로 되돌아가 삶과 죽음을 벗어난 궁극의 도에 다다를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중에 전생과 수많은 도계(道界)의 인연들을 만날 수 있고, 영들의 본체도 알게 되어, 내가 바로 어디에서 근원적으로 탄생하여 어느 곳을 거처 어떻게 왔으며, 또한 어디로 가야하고 어느 곳으로 가게 되는지를 확연히 알게 된다. 따지고 보면 지금 현재 육신을 갖고 도(道)를 닦는 과정도 크
게 보면 아주 일순간일 뿐이다. 도적인 차원의 눈으로 볼 때 사람은 이미 수천 수만년 전의 시작과 끝이 없는 시공(時空)이 초월된 곳에서부터 이미 도(道)를 닦아 오고 있는 것이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이러한 모든 시간의 과정들을 아주 빠르게 역(逆)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근원적인 마음에 도달하려는데 목표가 있다. 이는 일반적인 명상(瞑想)에서 이야기하는 의식의 개혁과 각성을 뛰어넘은 아주 본질적인 것으로, 천지인 삼재의 이치를 모르면 도문(道門)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라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을 안다고 해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치에 맞는 길을 갈 수 없겠지만, 무엇이 바른 길인지조차 모르는데 있어서는 그 시작부터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련 요결
1. 단전은 기초, 단전의 중심은 석문.
선도(仙道)는 역추공부(逆推功夫)다. 다시 말해서 정기신을 닦되 정에서 기로 기에서 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도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기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정기신을 가리켜 선도에서는 삼보라 한다. 결국 선도수련에서 정기신이 중요한 만큼 그것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어떻게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수련의 깊이와 방향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야 어느 정도 수련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런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상태에서 석문(石門)이 단전이고 진기(眞氣)를 통해서만 도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는 것은, 수학에서 사칙연산을 모르는 사람에게 미적분을 이야기하려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선도는, 생활과 도, 건강과 깨달음, 기와 마음, 양과 음,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등 모든 양분화된 것의 조화를 추구하는 공부이다. 그 중 어느 한쪽만을 추구하는 것이 선도가 아니라 양쪽 모두를 조화시키는 것이 선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굳은 중심(中心)이 필요하고 기초(基礎)가 튼튼해야 한다. 즉, 기초가 있는 공부를 해야만 도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궁극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선도수련에 있어서 기초는 단전(丹田)이다. 단전의 원리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단전을 이해하고 원리를 알아야 그에 합당한 진기수련(眞氣修練)을 할 수 있다. 사람이 부모 없이 태어날 수 없듯이 진기 없이 도가 있을 수 없고, 단전이 없이는 축기가 되지 않으며, 축기 없이 운기가 있을 수 없다. 또 운기 없이 규를 열 수 없고, 규를 열지 않고는 천지의 기를 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을 놓치고 현상만 쫓거나 변화만 추구해서는 잘못된 길을 가기 쉽다. 의식으로 기를 이끌 때 생기차원에서 공부는 끝이 난다. 어쩌면 평생 헛공부할지도 모른다. 수련의 목적 자체가 건강이나 정신적인 안정만을 위한 경우라면 모를까 도를 닦고자 하는 경우라면 이는 보통 억울한 게 아니다. 기(氣)는 단지 기(氣)일 뿐이고, 의식은 단지 의식일 뿐이다. 기를 남보다 민감하게 느낀다거나 의식이 각성되는 경험을 했다
고 해서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것을 도(道)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본질을 놓치고 변화를 쫓는 경우의 대표적인 예 중에 하나가 백회(百會)에 대한 것이다. 백회를 이름해서 하늘과 통하는 문이라고 해서 천문(天門)이라고도 하고, 경혈학에서는 백가지 혈이 모인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혈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선도수련을 하든 아니면 기타 다른 기공공부를 하든 그 어떤 것이든 간에 기를 닦는 사람들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중 소위 백회를 연다 라는 말이 있다. 나중에 수련이 깊어져서 대주천 운기단계에 이르게 되면 의식으로 기를 이끌어 백회를 비롯해서 양손 중앙의 노궁과 양발 중앙의 용천등 오혈(五穴)을 진기(眞氣)로 뚫어주는 수련을 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단계를 제대로 밟았을 경우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처음부터 의식으로 이끌게 되면, 기감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생기차원을 뛰어넘지 못한 채 공부가 끝나고 만다. 진기와 생기는 아주 많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생기와 진기는 백회를 열 때도 명백한 차이를 백회가 열리면서 외부에 있는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진기는 반드시 내부에서 충분히 단련된 기운이 백회를 뚫고 나감으로 해서 열리게 된다.
쉽게 말해서 백회를 여는 방법은 기운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면서 열리는 경우와 안의 기운이 밖으로 뚫고 나가면서 열리는 경우의 두 가지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 두가지 경우를 비교했을 때 전자의 경우는 백회를 연다는 표현이 맞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백회를 연다라는 표현보다는 백회를 뚫는다는 표현이 오히려 적절한데, 진정한 선도를 닦기 위해선 후자의 경우가 타당하다. 소위 백회를 열 때는 반드시 안에서 밖으로 내기(內氣)가 백회를 뚫고 나가므로 해서 열려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유사(類似) 선도는 될지언정 진정 올바른 선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안과 밖에 대한 것은 중심을 잡고 수련이 진행되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선도수련에서 기인하는 일체의 정신적인 부작용, 빙의나 접신같은 것들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수련이 진행된 탓에 있다. 즉 중심이 있는 수련이 진행되었을 때, 선도수련에는 일체의 부작용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중심이 잡혔을 때 안정을 찾게 되듯이 기운도 역시 중심이 잡혔을 때 안정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의식의 각성을 위한 집중적인 상단전 개발을 들 수 있다. 수련은 반드시 하단전부터 진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건물을 지을 때 1층 없이 2층 3층을 지을 수 없듯이 하단전 없이 중단전 상단전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호흡을 통해 하단전의 정주(精珠)를 찾고 중단전의 기주(氣珠)를 찾고 상단전의 신주(神珠)를 찾아야만 양신(陽神)을 이뤄 도계(道界)에 입문(入門)할 수 있다. 하단전이 무시된 수련은 건물로 말하면 조립식 건물과 같다.
조립식 건물은 사람이 들어가 생활하는 데 많은 시간이 요구되지 않고, 겉보기에는 별차이를 느낄 수 없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높은 건물을 지을 수도 없고, 기후의 변화에 민감하며, 천재지변에 안정을 보장받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하단전의 기초가 허술한 수련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수련의 한계(限界)에 부딪히게 되거나 혹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선도라는 것이 단지 기를 활용하거나 의식을 각성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도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정확한 단계와 순서를 밟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하단전에 중심이 잡혀야 한다는 말인데, 단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조차도 무지한 탓에 이설(異說)들만 많아져서 진기가 아니라 생기 수련을 하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더 안 좋은 경우는 단전조차 부정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 경우는 그나마 생기도 아닌 관념의 기, 일명 허기(虛氣)를 운용하며 선도를 표방하기도 한다. 굳이 이야기하면 참된 공부는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기를 처음 운기해 보면 생기보다 속도면에서 차이가 나듯이 허기와 생기를 비교해 봐도 허기가 월등히 빨라서 허기로 닦는 수련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듯 보여진다. 하지만 어떤 공부든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쉽게 이루려는 마음과 빨리 이루려는 그 마음이 결국 잘못된 길을 걷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건강이나 정신의 안정만을 위해 수련을 한다면 모를까 참된 선도를 닦고자 한다면, 그래서 건강과 정신의 안정 그리고 도를 동시에 얻고자 한다면 결국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기초부터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결국 기초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선도에 있어서도 이 기초라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시간이 갈수록 기초가 있는 경우와 무시된 경우는 그 격차가 커지기 마련인데, 특히 선도수련은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부의 차원이 달라지게 되므로 신중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기초가 있다는 것은 중심이 있다는 말과 같다. 세상만물은 모두 중심이 있다. 선도의 기초는 단전이고, 단전의 중심은 석문(石門)이다. 석문에 단전이 자라잡게 되면 몸과 마음의 양면 모두에 중심이 잡히고, 공부가 깊어질수록 기운은 점점 더 안정을 찾게 되어 세상만물의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할 수 있는 큰 심력(心力)을 얻게된다.
2. 음양(陰陽), 제대로 알고 있나?
세상에는 잘못된 음양론으로 기를 이야기하려는 사람이 많다. 기를 음기, 양기로 나누어서 양기는 좋은 것 음기는 나쁜 것이란 이분법적 사고를 갖고 구분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음기, 양기라는 말은 시작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기는 원래 일기(一氣)다. 즉 하나의 통일된 기 속에 음과 양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음양론을 자기 주관대로 해석해서 양(陽)은 태양처럼 밝고 좋은 것이라 하고 음(陰)은 어둡고 부정적인 것으로 보아, 양기는 좋은 기운, 음기는 사악한 기운이라 하는 것은 음양을 구분해서 엉뚱한 법을 만들어 놓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식이라면 차라리 음기와 양기로 기를 구분하는 것보다는 생기(生氣)와 사기(邪氣)로 나누는 것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음양은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양은 사물을 구체적으로 이것이 음이고 저것이 양이다 하고 일컫는 명사가 아니다. 음양은 세상 만물이 갖고 있는 대립적인 특성을 나타낸 표현이기 때문에 대립이 불가능한 특성은 근본적으로 음양으로 구분되어 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도를 공부하면서 기를 음기, 양기로 나누어서 구별하려는 것은 기본도 모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는 그 속에 음양이 모두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음양은 좋고 나쁨으로 나뉘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경우에, 사람 역시 음양의 구분이 필요없는 것인데도 여자를 음으로 치고 남자를 양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이런 이치대로라면 여자는 음이니까 나쁘고 남자는 양이니까 다 좋다는 식으로 말해도 틀리지 않아야 한다. 결국 기든 사람이든 원래 하나인 것을 음양론으로 애써 구분지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론을 만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시중의 그릇된 음양론에서 이야기하는, 음은 나쁘니까 버리고, 양은 좋으니깐 취하려는 마음은 그런 의미에서 이미 욕심이다. 선도수련은 욕심있는 자는 절대 도(道)를 못 이루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도를 이루려는 욕심만 있는 자들은, 각자의 관념의 잣대로 좋은 것만 가려서 뭐든지 좋다고 하는 것만 찾으려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이면의 것은 배척하게 되어서 점점 더 도와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원래 선도라는 것은 불완전한 것을 완전한 것이 되도록 화합시키는 것이다. 완전한 것이 있다면 화합할 필요도 없겠지만,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것이 되기 위해서 화합을 필요로 한다. 결국 미완성되어 있는 것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모든 것이 존재한다. 사람이 존재하는 자체, 모든 만물이 존재하는 자체가 미완성이기 때문에 그 미완성된 것을 조화롭게 해서 존재를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으로서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조화의 과정을 도(道)라 한다. 즉 선도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러한 불완전한 것들을 조화시키는 공부를 하는 것이지 좋은 것만 가리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선도가 아닌 한의학에서 음기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사기(邪氣)로 표현된다. 반면, 선도에서는 음기라고 하면 정신의 기, 양기라고 하면 육체의 기를 말한다. 따라서 선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음양이기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것인데, 이를 표현하면 심기쌍수(心氣雙修)라 한다.
그러나 결국 기는 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심적인 그릇이 얼마나 크고 작은가에 있다. 심력을 키우려면 평일한 마음과 대자연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다거나 철학적 이해가 깊은 것만으로는 안 되고, 또 기수련만 가지고도 부족하다. 기수련만 한다면 이는 음양론으로 해석할 때 양적인, 육체적인 수련이다. 음은 정신 수양을 말하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음적인 수련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음이라면 사기, 나쁜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선도나 한의학에서 나오는 말에 편중되어 신봉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데, 음양의 이치를 참으로 알면 음과 양을 소홀히 할 수 없고,
도의 이치를 제대로 알면 선악을 분별하지 않게 된다. 음양은 각각 반반씩 똑같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남녀의 화합으로 생명이 탄생하듯이 음양의 맡은 바 역할이 있어야 창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음양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면, 모든 것은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다. 그래서 절대적인 양이나 절대적인 음이 없다. 원래 음양론은 상대적인 이론이기 때문에 음양은 항상 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되어 화합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내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손을 손바닥이 음이고 손등이 양이라면 손등은 양만 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가 않다. 손등만을 보았을 때 움푹 들어간 곳은 음, 나온 부분은 양이고 손바닥도 마찬가지다. 돌출된 곳이 양이라면 함몰된 부분은 음이 된다. 결국 음양이 크게 같은 힘으로 만났을 때 조화가 일어난다. 어느 하나가 크거나 작아서는 안된다. 두 개가 같아야 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그 속에는 반드시 음양이 존재하게 되는데 석문호흡도 마찬가지다. 처음 석문에 단전을 자리잡게 되는 것부터 음양 조화의 이치가 들어 있다. 즉 음적인 성향의 기혀혈과 양적인 성향의 관원혈, 그 어느 성향에도 치우치지 않은 석문혈에 단전을 자리잡게 함으로써 음과 양, 정신과 육체, 보이지 않는 무한한 기운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소주천의 임독이맥은 각각 독맥은 양, 임맥은 음으로 독맥으로 올리고 임맥으로 내려 음양운행의 조화를 이루게 되고, 온양은 양화의 기에 의해 진행된 이전 수련을 음수와 조화시켜 진기의 소생처를 만들게 된다. 더 나아가서 운기(運氣)와 수심(修心)은 각각 양과 음의 공부로 서로 조화를 이뤄 진행되어야 하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넘나드는 공부 역시 생활을 벗어나지 않는 데 의미를 둠으로써 역시 음양의 조화가 그 바탕이 된다. 선도의 호흡에도 음양이 있는데 문식(文息)과 무식(武息)이다. 문식은 부드러운 호흡 곧 조식을 말하고 무식은 규가 막힌다거나 기력이 필요할 때 쓰는 강하는 호흡을 말한다. 이 두 가지 호흡을 적절하게 쓸 줄 알아야 하는데, 세상 이치가 음만을 추구하거나 양만을 추구하면 살 수 없듯이 선도를 공부하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이처럼 음양론은 한쪽에 치우쳐서 편협된 생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이면을 보고 심력을 키워서 조화의 뜻을 얻어야 한다. 결국 선도도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3. 기감(氣感)은 변한다?
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에 대한 느낌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의 느낌을 기감(氣感)이라고 한다. 운기를 하는 데 있어서도 기감을 느끼고 못느끼고는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기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일반적인 기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수련을 해 나가는 도중에 일어날 수 있는 기감의 변화에 대한 것이다.
수련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기감이 강하다가 시간이 흘러 수련 단계가 높아질수록 기감은 오히려 약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아주 일반적인 경우지만 수련자에 따라서는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가 처음 운기를 하여 규를 뚫게 되면 기가 잘 흐르더라도 처음에는 미약하게 느껴지다가 시간이 좀 흘러서야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주천 이상의 경지에 가게 되면 그 강했던 기의 느낌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미약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때 수련자들은 수련이 퇴보하는 걸로 알고 걱정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수련 경지가 높을수록 기감은 대체로 약해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물론 늘 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약하게 느껴지는 것이 정상이란 말이다.
혹자는 기감이 약해지는데 왜 정상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기감이 약해진 것이지 기가 약해진 것은 아니라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다시 말해서 기감이 약하다고 해서 기가 약해지거나 미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가 강해졌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변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가보지 않은 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갖게 되는 첫느낌이란 것이 아주 좋았다고 하더라도, 다음에 그 곳을 두 번째 갔을 때, 아니 세 번째, 다섯 번째, 열번째 갔을 때와 비교해 보면, 열번째의 느낌이 처음 그 느낌과 똑같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즉 첫 번째 갔을 때의 느
낌보다는 많이 감소하게 된다. 그러나 그 느낌이 감소한 대신 그 곳의 문화와 환경 그리고 세부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좀더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수련에서 오는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처음 느끼던 기감보다는 고수가 되었을 때 느끼는 기감이 약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거기에는 익숙함의 이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 기가 강
해도 느낌은 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감이 약해진 대신에 기를 감지하는 감각은 더 발달하게 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기에 대한 활용의 폭이 그만큼 넓어진다는 말인데, 그래서 예전에 강한 기만 감지되어 느껴지던 것이 미미한 기가 흘러가도 감지해 낼 수가 있게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비유를 더 들면, 뚫리지 않은, 다듬어지지 않은 경락은 비포장도로와 같다. 우리가 몰고 다니는 차가 비포장도로를 달린다고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 차 안에 있는 우리 몸의 움직임은 얼마나 되고 진동의 폭은 얼마나 크겠는지를 생각해 봐라. 그것은 처음 뚫린 경락을 지나는 기운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비포장도로도 차가 자주 다니게 되면서 도로의 거친 면이 다듬어져 점점 더 평탄해지면 차가 부드럽게 달릴 수 있게 되고, 도로가 평탄해진 만큼 차의 진동 폭도 적어지게 될 것이다. 이는 막 뚫린 경락을 지나서 기가 운기될 때, 처음에는 민감하고 강하게 오던 기감이 점점 운기 속도가 빨라지고 경락이 닦여지면서 기 자체가 안정되어 기감이 약해지는 것과 같다. 나중에 길이 포장되고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뚫리게 되면 차는 거의 흔들림 없이 빨리 잘 달리게 될 것이다. 이때는 적은 시간에도 많은 차량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듯이 잘 닦인 경락도 짧은 시간안에 많은 양의 기를 운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곧 기력의 증대이다. 이러한 이치처럼 운기를 많이 하고 그 경지가 높아지게 되면 기의 능력은 커지지만 기감은 오히려 약해지게 되는 것이다. 대신 기의 능력이 커진 만큼 미세한 기도 감지해 낼 수 있는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다. 오히려 문제는 수련단계가 올라갈수록 기감이 더욱 예민해질 때 생긴다. 모든 것이 지나치면 좋지 않듯이 기감도 예외는 아니다. 기감이 아주 예민해져서 스스로도 제어가 안 될 정도로 민감해지면 사회생활 자에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나는 악취와 탁기를 온몸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음식 하나 하나에 얽매이고 있는 모습을, 물론 정도의 차이란 것이 있다. 다만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 안 좋다는 이야기다.
수련 단계가 올라갈수록 기운은 안정적이 되어야만 한다. 안정된 기운은 그 느낌이 비록 약해질지라도 기력은 강해지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기운을 강하게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반면에 수련이 진행될수록 기감만 더 예민해진다면 그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만큼 기가 불안정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마치 히스테릭한 사람의 심리 상태처럼 불안정한 만큼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음식도 지나칠 정도로 조심해야 하고, 주위 환경도 신경써야 하며, 주변 기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수련자 본인도 좋은 기운만을 찾으려 한다. 결국 기초가 없는 잘못된 수련을 한 탓에 기에 얽매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잘못된 수련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수련이 진행되면 될수록 세상을 기피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다가 결국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는데, 세상 속에서는 도를 이룰 수 없고 산 속에 들어가야 도를 이룰 수 있다고 쉽게 말한다. 맑고 좋은 기운을 찾아서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도와는 멀다.
결국 道는 생활 속에서, 法은 사람과 더불어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련 문답
1. 환골탈태(換骨奪胎)란?
사람이 선도수련(仙道修練)을 하면 천지대자연으로부터 빛이 체내에 들어오게 된다. 이 빛은 선도수련을 통하여서만 체내에 들어올 수 있고, 이렇게 들어온 빛은 삼주단전(三珠丹田)에 들어가 정(精)을 튼튼히 하고 기(氣)를 조화(調和)시키며, 신(神)을 명(明)하게 한다. 이것을 선도(仙道)에서는 연정화기(練精化氣), 연기화신(練氣化神)이라고 한다. 채내에 들어온 빛이 연정화기(練精化氣) 연기화신(練氣化神)하는 과정에서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일어난다.
즉, 환골탈태란 수련자가 수련을 통하여 몸과 마음이 새롭게 거듭나는 것을 말한다. 수련을 통하여 들어온 빛이 체내에서 작용을 할 때, 수련자의 수련경지가 미진하여 빛을 모두 흡수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빛을 흡수하기 위하여 몸이 과잉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여기에는 증상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맥없이 축 늘어지는 듯한 느낌, 피곤함, 졸리움, 나른함, 또 과거에 아팠거나, 좋지 못한 부분들이 완벽히 회생(回生)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예전에 아팠던 자리가 다시 아픔을 느끼는 것 등이 있다.
이런 현상들을 타 단체에서는 기 몸살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환골탈태(換骨奪胎)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기몸살은 생기(生氣)를 통해서 나타나지만, 환골탈태는 진기(眞氣)를 통해서만 나타난다.
그러나 진기(眞氣)와 생기(生氣)의 느낌이 그러하듯이 증상만 가지고는 그 구분을 할 수가 없으므로, 의구심이 들 때에는 지도 사범이나 공부가 많이 된 선배 도반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2. 의식집중이 어려운데?
의식을 집중하는 데는 예로부터 내관반청법이란 것이 있다. 여기서 그 허를 버리고 실만을 이야기하면, 한마디로내관(內觀)이란 관법(觀法)을 말하고, 반청(反聽)이란 청법(聽法)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내관은 수행자가 눈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고, 반청은 귀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보통 의수단전 이라 하여 항상 단전에 의식을 두고, 의식이 단전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과는 같은 맥락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집중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의수단전 에 내관반청법 을 넣어서 함께 닦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의식 집중이 훨씬 용이해진다.
내관의 의미는 기의 조절에 있고 반청의 의미는 정신 집중에 있다. 예를 들어, 눈을 위로하면 기도 위로 올라가고, 눈을 옆으로 보면 기도 눈을 따라 옆으로 이동하게 되므로, 눈을 아래로 향하여 단전에 두면 기는 자연스럽게 단전에 머물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귀를 몸 밖에 두면 의식도 몸 밖으로 움직이고, 몸 안에 두면 의식도 몸 안에 머물게 되므로 내관과 반청을 잘 사용하면 정신 집중이 완만해져 완전한 의수단전 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의수단전 과 내관반청 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조절하는 원천적인 힘이므로 오랜 수련을 통해 터득해야 한다.
3. 온양도 복습이 필요한가?
온양을 처음 이루게 되면 임독맥이 진기소생처가 된다. 이후로는 수련자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된다. 그러나 반드시 온양을 해 주는 것이 좋을 때가 있는데, 이 때는 환골탈태가 일어날 때이다. 환골탈태가 일어날 때 온양을 해 주면 환골탈태가 빨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온양은 환골탈태가 일어날 때마다 하는 것이 정법(正法)이다.
4. 대주천 2분 운기수련시, 운기감을 확실히 느끼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30분을 넘는데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수련자가 운기 속도를 확실히 느끼는 데 30분이 걸린다고 하지만 실제 수련자의 몸에 있는 기는 수련의 경지가 충분하여 기의 운기 속도가 2분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수련자는 본인이 원하는 기감을 잡아서 운기하려고 하기 때문에 시간이 30분 이상 걸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정신을 집중하여 미약하고 섬세한 기감이라도 처음에 감지하여 운기조식해 보면 2분이 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자신을 지도해 주는 선배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물며 수도함에 있어 의문점과 함정이 이러할진대, 스승이 있고 없음은 천양지차가 있는 것이다.
5. 초보자의 경우 하루 수련 시간은 어느 정도 잡아야 하나?
초보자는 우선 시간을 무시하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수련 도중에 수련이 지루하거나 짜증이 날 때는 수련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련시간은 일정하지 않게 된다. 수련은 심신이 한량할 때가 가장 좋다. 물론 심신이 피곤하거나 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짜증이 날 때는 수련을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때 수련을 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왜냐하면 심신을 가장 좋은 상태로 회복시켜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수도하기 위해서는 심신이 가장 좋은 상태인 한량한 상태에서 수련한다는 사실과 심신이 피곤하고, 짜증나고, 불쾌, 의욕상실, 원기무력, 질병 등으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이를 회복하여 심신을 수도하기 좋기 한량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수련한다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충분히 수련자가 알아서 스스로 조절하여 수련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6. 때론 명치가 막힌 것도 같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한데 혹시 상기증상 아닌지?
우선 명치가 막혀서 호흡이 잘 내려가지 않는 것은 호흡을 필요 이상으로 잘하려 했을 때, 몸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즉 강한 호흡(武息)을 너무 지나치게 하였을 경우 그렇다. 그외에 허리를 반듯이 세우지 못하고 굽은 상태에서 수련을 할 경우에도 온다. 해결책은 허리를 똑바로 하고 부드러운 조식을 하면 된다.
또한 가슴이 답답하고 목으로 뭔가가 치밀어 올라오는 듯한 것은 체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수련자는 상기증상이 아닌가하고 고민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체기가 아닌 경우에도, 단전에 가득 찬 기운이 형성한 압력의 반작용으로 기가 위로 올라와서 그런 경우도 있다. 이 때도 아랫배에 은은하게 힘을 주면서 부드러운 조식을 하면 좋아진다.
7. 수련을 잘못하여 상기증상이 있는데, 그 해결방법은?
일반적인 상기증상은 단전이 자리잡지 못한 채 진행된, 잘못된 수련에 의해 발생한다. 왜냐하면 상기증이란 것은 거처할 곳이 없는 기가 위로 떠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이러한 상기증상은 치료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단전이 석문에 올바로 자리잡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기초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단전이 자리잡게 되면 치료된다.
여타 잘못된 수련으로 인해 상기증상이 있을 때에는 수련과 더불어 보조적으로 소금요법을 쓰면 좋다.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면, 첫째는 천일염을 탄 물에 발을 담그고 와식수련을 하는 것이고, 둘째는 소금물에 적신 수건을 단전부위에 올려 두고 수련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상기현상의 원인에 따라, 선택되어질 수 있다.
8. 평상시 관절이 안 좋아 무리하면 통증이 심한데, 무시하며 행공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관절뿐만 아니라 몸이 안 좋은 모든 사람들은 행공을 할 때에 스스로 무리하지 않는 한도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여 약해진 몸의 한계를 조금씩 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행공을 무리하지 않는 선의 한계에 관해서는 지도 사범과 의논하는 것이 좋다.
9. 좌식에 들어가서 호흡이 와식 때처럼 되지가 않는다. 꼭 앉아서 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좌식 때보다는 와식 때가 호흡하기 쉽다. 이유는 와식보다는 좌식때 윗배의 압력이 아랫배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앉아서 수련해야만 하는 이유는 누워서 수련하면 호흡은 잘 되지만 등을 바닥에 대고 수련하기 때문에 기감이 등 전체로 퍼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 기감이 등 전체에 퍼지게 되면 정신이 분산되어 집중력도 떨어지게 되는데, 좌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신의 집중력 때문이다.
10. 명상과 호흡은 어떻게 다른지?
명상도 호흡이 고른 조식이 되어야 잘 된다. 즉 호흡이 기초다. 불가의 선이나 종교의 기도, 무술의 내외공 등 모든 것을 포함한 생명의 기본이 호흡이다. 그러므로 호흡을 빠뜨리거나 호흡법을 제대로 모른다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의 진수를 알기 어렵다. 혹 안다고 해도 지식적인 차원에서 알게 되고, 그 수준에서 활용하는 단계에 머물 뿐이다. 결국 모든 공부는 호흡이 기본이 되어야 그 바탕 위에서 다른 것을 할 수 있다. 흔히들 도는 무소부재요,
하나가 전체고 전체가 하나라는 것은, 결국 하나의 기본을 터득해야 전체적인 도를 알 수 있다는 말인데, 그 하나가 바로 빛이고 그 빛을 유일하게 조화시키는 법이 석문호흡법이다. 결론적으로 수련의 경지가 높아져서 적어도 소주천 이상 정도에 이르면 길가는 것도 명상이요, 친구와 담소 나누는 것도 명상인 일상 생활 자체가 명상이 된다.결국 수련이 높아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열심히 호흡법을 익혀 축기하고 운기하여 그 경지가 심오한 데 이르도록 해야 한다.
11. 기치료를 하여 기를 소모하면 보통 어느 정도 수련을 해야 소모된 기가 회복되는지?
이는 수련의 경지에 따라 다르다. 보통 45분 이상 축기하면 회복되지만 수련의 높고 낮음의 경지에 따라 다르다.
참고로 알려드리면, 대주천을 이룬 사람은 소모된 기를 회복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5분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수련의 경지에 따라 기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때에 따라서 적절하게 선택하기도 하는데, 그 방법들 중에 하나를 밝힌다면 밤하늘에 떠 있는 별 중에 가장 밝은 별을 선택하여, 그 별의 정기를 상단전인 인당으로 끌어 당겨 하단전인 석문에 축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대주천 경지 이상의 수련을 이루어야만 가능하다.
12. 부부생활이 수련에 어느 정도 지장을 주는지?
모든 일이 그렇지만 지나치지 않으면 된다. 부부생활도 마찬가지다. 지나치지 않으면 수련에 지장은 없다. 실례로 기가 단전에 100정도 있다고 하면 부부관계를 갖고 난 후에는 30정도의 기를 소모하게 된다. 하지만 소주천을 이룬 사람의 경우, 한시간 정도 수련이면 거의 100% 보퉁이 가능하다.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그렇지만 수련을 하는 데 있어 지나친 금욕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모두 수련의 기초가 부실한 탓이고, 참된 도를 모르는 탓이다. 기초(석문단전)부터 착실히 닦아 수련의 경지가 깊어지면 생활속의 도를 얻게 된다.
13. 명현과 병증을 스스로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명현과 병증은 한쪽은 치료, 한쪽은 발병이란 면에서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것이지만, 그 증상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때문에 수련자에게 있어서 그 판단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수련자 본인이 명현과 병증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예전에 앓았던 부위가 갑자기 다시 아프게 되면, 그것은 명현이다. 또 아파도 그 아픈 감각이 그 이전의 아픔과는 다른 형태로 느껴질 때, 그 또한 명현반응이다. 예를 들어, 수련초기에 몸의 사기가 빠져 나오면서 설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복통으로 인한 설사는 뒷끝이 개운치 않지만, 명현으로 인한 설사는 오히려 시원하고 개운한 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명심할 것은 수련중에 발생하는 어떤 현상이 무조건 명현일 수 없듯이 명현반응을 병으로 오인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둘은 명백히 다른 것이므로 정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 판단하기 힘들 경우엔 지도 사범과 상담하는 것이 가장 좋다.
14. 양신은 눈에 보이나?
자신의 수련보다 높은 경지의 것은 알기 어렵듯이 양신도 마찬가지다. 수련자 자신의 양신을 보지 못한 자가 자기보다 단계가 높은 이의 양신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중에 번역된 선도서를 살펴보면 양신은 물질화한 것이라 하여 잔뜩 신비화시켜 놓았는데, 여기에는 오류가 많다. 참고로 한웅시대 이후로는 도맥이 끊겨 진정한 양신출신자는 한 명도 없다. 일부 선도서나 선인의 말을 편협되게 신봉하는 것은 오늘날의 수련자가 취할 바는 아니다.
15. 절단환자, 즉 신체 어느 부위가 손상된 사람의 경우, 수련에 지장은 없는지?
도와 건강을 위해 수련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물론 약간의 어려움은 있지만 그것은 무시해도 될 정도이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련을 통해 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다소 신체상 불편함이 있다고 하여 수련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약간의 지장이 있다고 해서 수련을 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수련을 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훨씬 좋기 때문이다.
16. 임신 중에도 수련을 할 수 있는지?
물론 수련할 수 있다. 단지 태아가 형성되기 이전인 3개월까지는 강한 호흡을 피하고, 복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차분한 조식호흡을 하면 된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다음에도 지식호흡과 같은 강한 호흡은 피해야 한다. 임신중의 수련은 태교와 출산에 큰 도움을 준다.
17. 기가 소모되듯이 수련을 장시간 쉬게 되면 단전 자체도 없어지는 것인지?
수련의 길을 제대로 걸어 석문단전을 바르게 찾아 이루었다면, 한번 이루었던 것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게 된다. 단전뿐만 아니라 운기 역시 그렇다. 한번 뚫어 놓은 터널이 막히지 않는 것처럼 경락 또한 한번 유통시키면 막히지 않는다. 단지 오랜 시간 수련을 쉬게 되면 뚫어 놓은 경락에 기가 많이 가느냐 안 가느냐의 차이가 생길 뿐이다. 도와 세상의 이치는 같다. 아무리 쉬어도 간 곳까지는 쉽게 간다. 그러나 가는데 시간이 걸리게 되므로 수련은 쉬지 않고 꾸준히 해야만 한다. 이런 이유로 오랜 시간 수련을 쉬게 되면 와식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는 늘 단련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로 하늘의 공평무사함의 원리와 통한다.
18. 호흡을 하면 진기만 들어오게 되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기가 있어서 호흡을 통해 여러 종류의 기운들이 유입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단전이다. 호흡은 기를 체내에 유입하기 위한 수단이고, 단전은 선도를 닦는 데 필요한 기, 진기를 생성하는 곳이다. 단전이 정확히 자리잡아야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기운을 진기로 생성시킬 수 있다.
그러나 단계가 높아져 심력이 강해지면 진기를 선별하여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19. 여자는 남자와 수련법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예를 들어 하단전이 아니라 중단전에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지?
남자와 여자의 수련은 똑같다. 둘 모두 수련은 반드시 하단전부터 시작해야 한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도를 전하는 데 있다. 도를 전할 때 아직은 사회적인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보다 조금 더 어려울 뿐이다.
20. 도계의 빛은 빛보다 빠른지?
빛에도 여러 차원이 있다. 과학이나 사람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인식되어지는 빛이 있는가 하면, 도계에 입문한 도인만이 인식할 수 있는 빛이 있다. 도인에 따라서도 수련 경지에 따라 볼 수 있는 빛과 볼 수 없는 빛이 있는데, 이를 통틀어서 도계의 빛, 도광영력이라 한다. 이 도광영력을 세세히 설명하기란 대화자의 수련경지에 따라 이해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양신의 빛 수준정도에서 답할까 한다. 양신의 빛은 과학으로 인식할 수 없는 빛이다. 그래서 양신은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 항상 높은 차원의 빛은 낮은 차원의 빛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아두자. 참고로 양신까지는 못가더라도 수련경지가 일월성법에 이르면 이미 일반적인 빛의 개념을 초월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월성법을 터득한 본 도문의 수련자들이 밤하늘 별빛을 끌어당기면 별빛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일월성법을 터득한 것만으로도 이미 일반적으로 알고 있고 인식되어지는 빛을 초월하여 차원을 달리한 도계의 빛, 도광영력 중의 하나의 빛을 터득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21. 근래 들어 유난히 수련이 안 되는데?
우리가 차를 타고 시내운전을 할 때, 고속도로에서 운전할 때와 달리 그 속도가 느린 탓에 주변 경관도 자세히 볼 여유가 있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차안에서는 제대로 사물을 본다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수련이 아주 빠르게 진척되어 그 변화가 가시권을 벗어나게 되면 오히려 잡념이 많아지고 수련이 힘들고 안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경우에는 수련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짧은 시간이라도 짬짬이 자주 해주는 것이 좋다. 수련이 안 될 때 억지로 오랜 시간 앉아 있게 되면 수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어 좋지 않지만, 반대로 수련이 아주 잘될 때는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서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좋다. 이것이 지혜인데 비오는 날 땅을 파면 아주 쉽게 파지는 것처럼 잘 될 때 몰아서 집중적으로 해주는 것이 좋고 안될 때는 짬짬이 자주 해주는 것이 좋다.
22. 수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는데?
수련자가 필히 참조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수련자체가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인체의 균형을 깨는 아주 나쁜 원인이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하는데, 도의 경지가 아주 높아 버리면 받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한 수련자는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특히 수련 자체가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는 초심자나 중급자보다 오히려 고급자로 올라갈수록 확률적으로 높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바로 너무 잘하려는 것 과 빨리 이루려고 하는 조급함 마음 이 대표적이다. 너무 잘하려고 하다 보니 쉽게 만족하지 못하게 되고, 빨리 이루려고 하다보니 정도가 지나친 것이다.
옛말에 中道 , 中正의 道 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으며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수련도 이와 같아야 한다. 수련을 지나치게 잘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수련시간이나 열정이 부족하지도 않아야 한다. 급하면 스스로의 성취도를 모르고 느리면 귀함을 모른다.
모름지기 수련은 즐겨야 한다. 즐기는 것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하고, 자연을 관조하듯, 연인과 시간을 보내듯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이 항상 함께 해야 한다. 수련자가 수련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미 수련자가 아니라 욕망에 물든 자가 때를 벗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선도가 욕망의 때를 벗으려고 하는 것이지만 경지에 맞게 행해야 한다. 이미 석문호흡에 발을 들여 놓았다면 한 차원 더 높여서 수련으로 스트레스를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진기무예(眞氣武藝) 일월문(日月문門)
석문호흡을 바탕으로 진기(眞氣)를 모으고, 심법(心法)으로 기(氣)를 다스리며, 형(形)으로써 기(氣)를 펼쳐낸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키며, 무(武)를 통해 도(道)를 구하고 이를 예(藝)로써 승화 시킨다.
무예(武)란 본시 자기자신을 극복하고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넘어 심신(心身)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것. 하늘에 양(陽)인 해(日)와 음(陰)인 달(月)이 존재하듯,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으로써 음양(陰陽)이 존재한다.
음(陰)과 양(陽)은 본래 둘이 아닌 하나요, 음(陰)과 양(陽)의 조화속에 태극(太極)이 이루어 지나니 이를 인간의 몸으로써 펼쳐냄이 일월문(日月문門)이다.
몸은 양(陽)으로써 존재하며 마음은 음(陰)으로써 존재하나 몸과 마음을 하나로 조화시켜주는 것이 진기(眞氣)이다.
진기(眞氣)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마음이며, 그 마음을 다스리는 힘은 심법(心法)에 있다.
무예(武藝)의 형(形)이란 심법(心法)으로써 진기(眞氣)를 펼치는 것. 우리는 그 형(形)을 펼침으로써 몸과 마음을 조화 시켜 참 나를 깨닫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수련자들을 위해 진기(眞氣)의 무예(武藝)인 일월문(日月문門)을 전수하고자 한다.
일법(日法)이 만법(萬法)이니 음양(陰陽)이 조화하고, 음양(陰陽)이 합쳐지면 태극(太極)을 이루나니 이를 시연함이 일월문(日月문門)이라.
일월문 전수생 자격 요건
- 말이나 글이 아닌 진법체득(眞法體得)으로써 도(道)를 구하고자 하는 자.
- 몸과 마음의 한계를 극복하여 천지간에 우뚝 서고자 하는 자.
-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와 본질을 찾고자 하는 자.
일월문 수련과정
- 춘권, 하권, 추권, 동권(이상 대맥단)
- 소주천단, 온양단, 대주천단
- 일월성법단, 귀일법단, 풍수법단, 선인법단
- 전신주천단, 채약단
- 기화신단
양신이후의 수련 및 도계 수련 과정은 개별적으로 전한다.
도화제선학수련원전국지원
서울·경기
서울본원 (02)413-5140∼1
강서지원 (02)659-3490∼1
서울은평지원 (02) 355-7242
서울상계지원 (02)938-6675
대방지원 (02)831-3900
일산마두지원 (0344)907-8637
분당야탑지원 (0342)781-3446
분당정든지원 (0342)718-9585
인천지원 (032)437-7027
충청도
천안지원 (0417)573-1568
대전유성지원 (042)822-7773
대전중리지원 (042)623-5010
청주지원 (0431)255-0456
전라도
전주지원 (0652)246-4691
익산지원 (0653)857-7197
김제지원 (0658)545-2363
전남담양지원 (0684)383-6587
전남화승지원 (0612)375-2363
광양지원 (0667)792-9922
광양읍지원 (0337)761-1651
순천지원 (0661)742-1651
여수여천지원 (0662)682-2365
여수여문지원 (0662)651-5066
광주계림지원 (062)225-8770
광주용봉지원 (062)528-1060
광주상무지원 (062)382-2554
광주봉선지원 (062)651-9011
경상도
대구범어지원 (053)755-1191
대구송현지원 (053)656-4678
대구복현지원 (053)942-0888
경산지원 (053)816-5648
청도지원 (0542)371-3711
안동지원 (0571)821-5680
포항지원 (0562)231-1747
경주지원 (0561)774-3861
부산동래지원 (051)557-1606
부산문현지원 (051)632-4353
울산신정지원 (052)258-5955
창원지원 (0551)96-1652
마산지원 (0551)47-0331
진해지원 (0553)42-1632
진주지원 (0591)762-4562
삼천포지원 (0593)835-8946
강원도
춘천효자지원 (0361)257-4446
해외지원
미주본원/LA 213-427-0423
미주 라미라다지원/CA 562-921-2428
(FAX) 921-2258
성직자수련원
양재지원 (02)3461-0998
도화제 무예원 일월문 상담 전화
서울본원 (02)525-4717∼9
충주지원 (0441)854-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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