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호흡

수련요결_03_氣의 장_수련편

醉月 2009. 9. 9. 09:58

수련과정

01단계 : 호흡법 및 단전(石門)자리 잡기, 북선법(北仙法)

02단계 : 축기(蓄氣), 단전이 형성된 후 한다. 도각법(道覺法)
         01. 와식(臥式-누워서 한다) 수련을 먼저 한다. 와식을 터득한 후에 좌식을 한다.
         02. 좌식(左式-앉아서 한다) 수련을 한다.

03단계 : 운기(運氣), 일월법(日月法)
        대맥운기(帶脈運氣)를 하면서 지감수련(止感修練)에 들어간다. 현무(玄舞)오감과 육감 등 모든 감각을 정지시킴으로써 고요한

        입정(入定)상태로 들어가게 되면, 그 상태가 지속되면서 우주 대자연의 현묘지기와 감응할 수 있는 심력(心力)이 생기게 되는데

        이런 심력으로 천지대자연의 무한한 기를 다스려 자신의 수련 상승은 물론 타인과 만물까지도 이롭게 할 수 있는 수련이다.


        지감에는 현무(玄舞)와 현공(玄功), 그리고 현치술(玄治術)등이 있다.
       첫째, 현무는 심력을 부드럽게 사용하여 승유지기(承流之氣)를 부드럽게 타는 것으로, 전신이 현묘지기에 이끌려

               춤사위가 터져 나오므로 현무라 한다.
       둘째, 현공은 심력을 강하게 사용하여 호신강기(護身剛氣)를 강하게 타는 것으로, 전신이 현묘지기에 이끌려 무술이

               발현되므로 현공이라 한다.
       셋째, 현치술이란 심력과 심법을 함께 사용하여 전신이나 타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또한 현치술은 수련의 경지가

               어느 정도 올라 심법을 조금이나마 사용할 수 있을 때 실현이 가능하다. 물론 수련의 경지가 높을수록 운심(運心)의 경지가

               높으므로 현치술의 효과는 극대화 된다.

04단계 : 운기, 화진법(火盡法) 소주천(小周天)을 하면서 지감수련에 들어간다.(玄功)

05단계 : 운기, 세선법(世仙法) 온양을 하면서 지감수련에 들어간다.(玄治術)

06단계 : 운기, 진은법(眞隱法) 대주천(大周天)

07단계 : 일월성법(日月星法)
      일월성법은 해[日], 달[月], 별[星]의 기운과 하나가 되는 수련법이다. 일월성법을 완성하면 완성자 자신의 기와

      해, 달, 별의 기와 동일해진다는 것이다.

08단계 : 귀일법(歸一法), 원하법(原下法)
      귀일에서 귀일의 뜻은  하나로 돌아간다 는 뜻이다. 여기서  하나 라는 것은 천지대자연, 즉 극미한 것에서부터 극대한 것까지를

      총망라한 천지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일법은 천지대자연의 기를 수련자 자신의 몸 전체로 흡수하여,

      극미한 것에서부터 극대한 것까지, 천지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09단계 : 도술(道術) 풍수법(風水法)
      풍수법은 지금까지의 수련과정에서 갖게 된 능력을 가지고, 풍수지리의 모든 것 이상을 알게 되는 법이다. 풍수지리의

     모든 대상의 기와 감정을 알 수 있는 것이 풍수법이므로, 풍수법을 통하여 풍수지리의 길흉화복 등을 정확히 알 수 있다.

10단계 : 도술, 궁을법(弓乙法) 선인법(仙人法)
         풍수법으로 풍수지리의 모든 것을 터득했듯이, 선인법은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선인법을 사용하면 사람의 성격,

         마음상태(과거, 현재, 미래), 길흉화복 등을 알 수 있다.

11단계 : 운기, 도술 전신주천(全身周天), 지음법(知音法) 지음법은 만물의 소리를 듣고 알 수 있는 법이다.

12단계 : 채약(採藥), 세운법(世運法)

13단계 : 기화신(氣化身), 고성법(孤星法)

14단계 : 개안수련(開眼修練), 도안(道眼) 개안수련부터는 그동안 해왔던 행공 동작을 운기하면서 하는 법을 전한다.

15단계 : 양신수련(陽神修練)

16단계 : 양신이후부터는 개별적으로 전한다.


호흡(呼吸)

석문호흡은 첫째, 호흡(呼吸)을 통하여 석문에 단전이 자리잡도록 하고 둘째, 진기(眞氣)를 얻어 전신혈맥(全身血脈)을 운기(運氣)하며, 셋째 심법(心法)을 운용하는 심력(心力)을 키우고, 넷째 여의주를 찾아 양신(陽神)을 이루는 것을 수련의 큰 기초로 삼는다. 여기서는 단전자리를 잡는 것부터 양신까지의 수련을 편의상 구분하여 호흡(呼吸), 운기(運氣), 심법(心法), 도광(道光) 등의 네 범주로 나누었는데,

그 첫 번째가 호흡이다.

 

호흡이란 것은 수련 전반에 걸친 중요한 문제다. 여기서는 와식(臥式) 자리잡기와 좌식(坐式) 축기(蓄氣) 단계만을 따로 호흡편에 묶어 보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한번 호흡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으리라 본다. 첫 번째 단계인 와식수련은 단전을 자리잡게 하기 위해 필요한 수련이다. 단전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석문자리에 대한 인식과 호흡 그리고 의식을 집중하는 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호흡이란 기를 체내에 유입하기 위한 수단이다. 주문이나 명상수련이 아니라 오직 호흡을 통해서만 우주 내외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기, 도광영력의 진기를 흡입할 수 있고, 석문에 단전이 자리잡게 하고, 진기를 얻어 양신을 이룰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일반적인 수련법과 차별하여 도광영력의 진기를 흡입하는 방법을 석문호흡(石門呼吸)이라 한다.


호흡이 기를 흡수하는 방법으로써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선도 수련에 필요한 기, 진기를 생성하여 축기(蓄氣)하는 것이다. 진기를 생성하는 곳이 단전이고 축기하는 곳도 바로 단전이다. 그러므로 단전은 반드시 정확히 자리 잡혀야만 한다. 단전이 자리잡히므로 인해서 인체 내외에 있는 기를 단전에 모아 진기화(眞氣化)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인체내에 유일한 곳이 바로 석문(石門)이다. 석문을 중심으로 단전이 자리잡도록 하고, 단전에 진기를 모으는 것부터 수련은 시작된다.
호흡편은 석문단전에 자리를 잡는 와식수련과 진기를 축기(蓄氣)하는 좌식수련으로 이루어져 있다.

 

01. 와식(臥式), 자리잡기

석문호흡은 와식(臥式)부터 시작한다. 와식은 석문에 단전을 자리잡기 위해 필요한 수련이다. 석문호흡의 각 과정을 단계적으로 밟아 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이 바로 석문에 단전이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다. 단전은 마치 그릇과 같다. 호흡에 의해 빨려 들어온 기(氣)를 물이라 한다면 그것을 받아 고이게 하는 그릇이 곧 단전이다. 물이 끊임없이 들어와도 그릇이 없으면 담을 수 없듯이 단전이 자리잡지 않으면 기(氣)는 모이지 않는다. 이래서는 수련에 진전이 없다. 수련이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려면 기(氣)가 모여야 하는데,

그 기(氣)를 모아두는 그릇인 단전이 없다면 수련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와식수련은 단전이 석문혈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자리잡아 진기수련을 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효과적인 수련을 위해서 몇가지 요령을 소개할까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석문 자리를 정확히 취혈애야 한다. 개인에 따라서 그 위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공부가 앞선 선배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정확하게 취혈한 후에 석문혈 자리에 단전테잎(파스등의 접착성 있는 종이를 동그랗게 오려 놓은 것)을 붙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련자는 석문자리를 인식하고, 석문단전에 정확히 의식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 상태에서 와식자세를 취한다. 와식자세는 편안하게 눕는 것부터 시작된다. 몸과 마음은 최대한 편안하게 한다. 양발은 어깨 넓이로 벌리고, 양손도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여 쥐지도 펴지도 않은 편안한 상태에 둔다. 이때 양팔은 몸에서 45도 정도 벌린다. 이 상태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하늘을 응시하는 듯한 가벼운 기분을 유지한다. 이것이 와식의 기본자세이다.


와식 기본자세를 취한 다음에 어느 쪽 손이건 편안한 손의 손가락 하나로 단전테잎이 붙어 있는 석문혈 자리를 살며시 짚는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손바닥을 가볍게 편 상태에서 배꼽 위의 윗배에 올려 놓는다. 이렇게 하면 윗배에 올려진 손은 호흡수련시 윗배가 나오는 것을 감지하여 호흡이 수월하게 아랫배까지 내려오도록 도와 줄 것이고, 석문혈을 짚고 있는 손가락은 석문단전에 의식 집중하는 것을 보다 용이하게 해 줄 것이다. 자세가 갖추어지면 심호흡을 한두 번 깊게 하여 호흡을 안정시킨 후, 마음속으로  진기(眞氣)를 하단전 석문(石門)에
축기(蓄氣)한다. 는 목적을 강하게 갖는다. 이것이 와식수련의 심법이다. 심법(心法)이란 수련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는 것으로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짧고 강하게 걸어주는 것이 제일 좋다. 이러한 심법을 본격적인 호흡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3회 정도 의념하고 나서 석문단전에 의식을 집중하여 호흡하기 시작한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숨을, 오랫동안 참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부드럽고 일정하게 멈춤 없이 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가늘고 깊고 깊게 쉬되 무리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호흡을 찾아서 쉬는 것이다. 이를 조식(調息)이라고 한다. 항상 호흡은 자연스러운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든지 인위적으로 하는 것은 득(得)보다 실(失)이 크기 때문에 자연의 호흡, 자연스러운 호흡을 추구해야만 한다.


호흡에 있어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랫배 호흡이다. 아랫배 호흡이란 호흡의 첫머리와 끝나는 전환점이 하단전 석문에 이를 깊은 호흡을 말한다. 자연스러운 호흡을 한다고 하여 평상시와 별다를 바 없는 얕은 호흡을 해서는 수련의 진전을 보기 어렵다. 아랫배가 원활하게 올라오는 깊은 호흡을 해줄 때 단전에 쌓이는 진기 또한 많아지게 되고 단전도 빨리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단전까지 내려오는 깊은 호흡을 아랫배 호흡이라 한다.


처음 호흡수련을 시작하는 와식 수련자는 가슴이나 윗배보다 아랫배를 먼저 부풀렸다가 꺼지게 하는 아랫배 호흡의 연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짧은 호흡이라도 자연스런 아랫배 호흡을 하는 것이 좋다. 와식수련을 하면서 반드시 체득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자연스런 아랫배 호흡을 완전히 자신의 호흡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단시간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반복연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되어진다. 즉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수련자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정성스럽게 꾸준히 호흡하며 단전에 의식을 집중하는 노력을 지속해야만 한다. 호흡이 안정되고 의식 집중이 잘되면 될수록 기는 더 잘 모이게 되고, 기가 모이면 모일수록 단전의 형성도 빨라지게
된다. 호흡과 의식의 집중 문제는 매우 중요해서 앞으로의 수련을 가늠하는 관건이 되므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정리하자면 와식수련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다음 다섯 가지다. 우선 석문 단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의식 집중과 안정된 호흡, 구체적인 심법 그리고 몸과 마음의 이완(弛緩) 등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석문단전에 대한 인식은 석문을 취혈하여 단전테잎을 붙일 때부터 시작하여 매 단계마다 기본이 되는 중요한 사항이다. 우리가 호흡을 통해 진기를 얻고 더 나아가 여의주의 빛을 밝혀 양신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석문혈의 현묘(玄妙)한 작용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석문단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으면 수련자체가 불가능해 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초보자는 석문에 단전이 정확히 자리잡도록 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원활한 의식 집중과 심신의 이완 그리고 안정된 호흡을 습득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와식부터 차례차례 수련을 시작해야만 한다.

 

와식요결
와식수련자가 알아두어야 할 것 중 하나가 조식(調息)에 대한 이해이다. 석문호흡을 할 때의 호흡은 자연스런 조식이 되어야 한다. 조식이란 가늘고 길고 깊게 호흡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속에는 수련자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참으로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첫째,  가늘게 가 갖고 있는 의미는 호흡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호흡을 하는데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수련에 있어서 욕심을 버리라는 중요한 뜻이 담겨져 있다. 욕심을 버리라는 것은 빨리 이루려는 마음으로 요령을 부리거나 머리 굴려 계산하지 말라는 뜻이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라는 것은  빨리 하고자 하면 이르지 못한다(慾速不達) 의 의미로 빨리 이루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어두운 길에 들어섬을 경계하는 뜻이 들어 있다.


둘째,  길게 하라는 말속에는  집중하라 는 뜻과 오랜 시간동안  인내 하며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호흡을 길게 할 때 집중이 잘되고, 짧게 할 때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여기에도 참 뜻이 들어 있다.
즉 수련을 꾸준히 오래하라는 뜻이 그것이다. 천하의 도(道)공부가 쉽다면 짧게도 가능하겠지만 구한 만큼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도(道)공부이므로 오래 인내하며 끈기를 가지고 수련하여야 하는 것이다.  길게 에서의 처음과 끝에는 빛이 있고, 그 빛 속에는 자신의 최초의 삶과 사후의 시간이 존재하므로 한 호흡을 하는 중에도 그 귀함을 인식하고 수련을 하면, 수련을 통하여 생사를 넘나드는 큰 힘을 얻게 된다.


셋째,  깊게 의 의미는 의수단전(意守丹田)하여 모든 의식을 단전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의식을 단전에 두려면 의식이 끊기지 않아야 하고, 그리기 위해선 더더욱 호흡을 깊게 하여야 한다.  깊게 의 참뜻은 뜻을 단전에 두어 단전으로 생각하고 단전으로 말하며 단전으로 행동하여 단전이 모든 일에 원동력이 되도록 한다는 의미와, 흔들리지 않는 발도심(發道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처음 먹은 마음(初發心)이 변하지 않는 마음(恒常心)이 되도록 하라 는 뜻이 담겨져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수련자는 호흡을 깊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비록 수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더라도 발도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호흡을 처음 시작하는 와식수련자는 이 말들의 깊은 뜻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02. 좌식(坐式), 축기(蓄氣)

단전그릇이 형성되면 이제 좌식(坐式)수련을 한다. 좌식(坐式)은 앉은 자세에서 축기(蓄氣)하는 수련이다. 석문호흡의 처음과 끝은 바로 축기에 있는데 축기란 단전에 기를 쌓는 것을 말한다. 좌식축기는 앞으로 본격적인 운기수련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기를 단전에 집중적으로 모아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좌식은 와식이나 입식에 비해서 입문 과정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므로 정확한 자세를 배워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결가부좌나 반가부좌 등이 있으나 여기서는 보다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자세를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편안하게 앉는 것부터 시작한다. 한쪽 발을 당겨서 발뒤꿈치가 회음혈 부위에 닿도록 놓고 다른 쪽 발을 그 발 앞에 놓는다. 어느쪽 다리가 앞으로 가든 상관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엉덩이를 살짝 뒤로 빼내어 회음 부분이 바닥에 닿게 하면 허리를 세우기가 한결 용이해진다. 허리를 편 후에는 머리를 쭉 뽑아 올린다. 이때 턱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끌어 당겨 코와 배꼽밑의 단전과 일치시킨다. 가슴은 활짝 펴고 어깨의 긴장은 충분히 풀어 주어야 한다. 다음에는 왼손을 위로, 오른손은 아래로 겹쳐서 두손의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맞닿게 하여 둥근 원을 만든 후, 원이 단전과 일치하도록 단전앞에 가볍게 올려놓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전신주천(全身周天)을 이루어 폐경(肺經)이 진기(眞氣)로 소통된 수련자의 경우, 중부혈과 소상혈로 통하는 기가 양 엄지손가락에서 교차해서 현묘한 작용을 하게 되므로 짧은 시간 안에 깊은 입정에 들 수 있는 까닭이다. 이것이 좌식의 기본자세이다. 호흡수련에 있어서 자세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수련자는 자세를 바르게 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자세가 갖추어지면 호흡수련에 들어간다. 기본적인 심법과 호흡은 와식수련 때와 동일하다.  진기를 하단전 석문에 축기한다. 는 심법을 3회 정도 걸어준 후에, 석문단전에 의식을 집중하고 아랫배를 부드럽게 부풀리면서 자연스러운 조식(調息)을 한다.
좌식축기에 들어가서 또 하나 가볍게 보아 넘겨선 안 될 것이 심신의 이완(弛緩)이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조식을 통하여 잡념 없이 깊은 입정(入靜)에 들기 위해서는 심신의 이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워서 수련하던 와식과 달리 처음 좌식자세를 취하게 되면 필요이상의 긴장을 하게 되고, 몸이 경직되어 수련에 어려움을 호소하게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행공과 체조등을 통해 온몸의 관절과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몸의 이완은 반복되는 수련과정 도중에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쉽게 이룰 수 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이완이다. 선도의 묘리(妙理)는 심신을 쌍수(雙修)하는 데 있으므로 몸과 마음을 둘로 보지 않는다. 마음의 이완은 자발적인 수심(修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선수심후운기(先修心後運氣)란 심훈을 염두에 두고 수련에 정진하는 것이 좋다.

심신의 충분한 이완은 고도의 정신 집중을 가능케 한다.


석문단전에 기가 모여 쌓이면, 수련자 스스로가 평상시와 다른 여러 가지 감각을 느끼게 된다. 수련자에 따라 천차만별의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나지만 일반적인 자각증상은 보통 다음과 같다.
먼저 기감(氣感)이다. 기감은 기를 느끼는 것을 말한다. 진기가 쌓이다 보면 무뎌져 있던 감각이 살아나고 단전이 충실해지면서, 단전부위에 무언가가 자리잡은 듯한 뿌듯한 느낌이나 전기에 감전된 듯한 절절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또한 단전이 뜨거워지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찢어질 듯 아프다거나, 몸이 주변 기운에 대해 압력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단전이 살아나서 저절로 호흡하는 것같은 느낌이 드는 등 사람에 따라 다른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것은 대체로 단전이 자리잡거나 확장되면서 오는 기감들이다.
그 외에 맺혀 있던 기혈(氣血)들이 풀리면서 오는 기감도 있다. 온몸에 땀이 비오듯하여 입고 있던 옷이 흥건히 젖어드는 경우도 있고, 몸 구석구석을 바늘로 찌르는 듯 따끔거리는 경우도 있고, 차가웠던 손발이 따뜻해지면서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 지병으로 앓고 있던 지병이 완치되어 사라지거나 호전되는 경우도 있고, 또 잘못된 수련과 질병으로 인해 몸 안에 오랫동안 뭉쳐져 있던 사기(邪氣)와 냉기(冷氣)가 집중된 진기(眞氣)의 힘에 의해 밀려 몸 밖으로 배출되면서 차가운 한기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고, 온몸이 후끈 달아올라 노곤한 기분이 들면서 수련 후에는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경우도 있어서 수련자 스스로 단전에 기가 모이는 상태를 자각할 수 있게된다.


그러나 기감이란 것은 개인차가 심하기 때문에, 수련자 각자의 체질에 따라 누구는 더 예민하게 느끼고 누구는 좀 덜 느끼고 하는 정도의 차이가 생긴다. 그 날의 기분이나 컨디션, 주변 기운의 청탁, 본인의 수련 정도에 따라 그 차이가 심하여 기감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수련의 본의를 잊게 되기 쉽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감 자체를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곤란하다. 필자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기감을 예민하게 느끼거나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수련의 진척에는 별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기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수련자라 하더라도 결코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어려움을 발전의 기회로 삼아 기감을 키우는 훈련을 병행해
수련하다 보면, 더욱 세련된 기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 수련자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주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액(精液)이 많이 배출되는 일이 생긴다. 이것은 단전에 모인 기운이 완벽하게 기(氣)로 변하지 못하고 정(精)으로 바뀐 상태에서 물질화된 정액(精液)의 상태로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보통 몽정 등의 현상으로 배출되는데 그 양과 횟수는 대단히 많고 잦다. 그러나 이런 경우마저 몽정을 하지 않게 되면 그 정(精)은 썩어서 오히려 몸을 병들게 하므로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고인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 것처럼 축기된 기(氣)를 운기(運氣)시키지 않으면 썩게 되고, 기(氣)가 썩으면 당연히 정(精)도 썩어 병이 생기는 것이다. 앞으로 배우게 될 대맥(帶脈)이나 소주천(小周天)등의 운기(運氣)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호흡수련을 하다보면 하늘의 수기(水氣)가 들어와 정(精)으로 변해 쌓이므로 정력이 강해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이치다. 그렇더라도 수련자는 특히 이를 경계해야만 한다.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면 호흡시간을 늘려 수련의 강도를 높여주거나, 항문을 꽉 조여 수축한 상태에서 호흡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보통 호흡길이를 늘려주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평소 5초 호흡을 했었다면 호흡을 10초 정도까지 늘려서 호흡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가능하면 들이마시는 숨을 내쉬는 숨보다 길게 하는 것이 좋다. 10초 정도 호흡한다고 할 때 6초는 들이쉬고 4초는 내쉬게 되면 나머지 20∼30%의 기가 단전에 더 남게 되므로 공부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이렇게 호흡하다보면 미약한 기(氣)와 정(精)은 단숨에 뜨거운 열기로 화(化)하게 되고, 이 뜨거운 열기는 단전에 있는 여의주의 조화로 인해 완벽한 진기(眞氣)로 변해서 대맥경락(帶脈經絡)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물론 몽정을 했다고 하여 축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석문호흡의 매단계의 완성 여부는,

가능하면 수련이 앞선 선배의 점검을 받아 확인된 후에 다음 단계 수련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무난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좌식 요결
수련에는 세 가지 늪이 있다. 이 세 가지 늪은 바로 수면의 늪, 잡념의 늪, 망각의 늪을 말한다. 늪이란 것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것이지만, 위에서 말한 세 가지 늪이란 것은 석문호흡 수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고 넘어가야 하는 수련의 고비이므로 잘 알아두어야 한다. 이것은 정해진 순서가 아닌 것이 아니라 수련자에 따라서 그 정도나 순서가 틀려질 수 있는데 보통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많이 겪게 되는 것이 수면의 높이다. 수면의 늪은 수련을 하려고 자세를 취하기만 하면 수면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수련하러 왔다가 잠만 자고 간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련자에게 있어서 이 수면의 늪은 참으로 거추장스럽게 짝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수면 자체가 수련을 통해서 의식이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히 안정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수련이 그만큼 잘 되어 가고 있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련할 때마다 잠이 빠져든다면 수련에 진척이 있을 리 없으므로 수련자 스스로가 마음을 굳게 먹고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늪에 빠지면 그 안에서 허우적거릴 것이 아니라 벗어나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잡념의 늪이다. 이 잡념의 늪은 수련을 할 때마다 갖은 번뇌와 망상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라 의식 집중을 방해하는 것으로, 전혀 생각지도 않은 별의 별 잡념들이 떠오르는데 어떤 때는 장마철에 강물 흐르듯이 쏟아져 나올 때도 있다. 이것 역시 마음이 안정되면서 그 동안 먼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의식의 표면 위로 부상하여 지워지면서 일어나는 것으로, 수련이 잘 진척되어 간다는 반증이다. 우리가 방안을 청소하기 위해선 방안의 쓰레기를 눈으로 보고 나서 치워버리듯이 잡념이란 것도 기(氣)가 정신을 정화(淨化)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가라앉아 있던 여러 생각들이 표면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가 바로 망각의 늪이다. 이것은 수련 도중이 아니라 평상시 사회생활을 해 나갈 때도 마치 건망증에 걸린 사람처럼 사소한 일들을 잘 잊어버리게 되는 현상으로, 때에 따라선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늪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기운이 마음을 안정(安靜)시키면서 불필요한 기억을 없애려 하는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어떤 것이든 가리지 않고 잊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것은 그 전보다도 확실히 기억된다. 단지 불필요한 기억들을 망각하게 하여 마음의 변(便)을 배설하게 하는 것뿐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늪은 언젠가는 겪어야 하고 또 극복해야 할 것이므로, 수련자는 이러한 늪에 빠졌을 때 지나치게 고민하거나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즉 수련이 잘 되어 가니까 이러한 늪에도 빠지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보다 수련에 매진하여 늪을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기억하자. 섬에서 육지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다를 건너야 하고, 바다를 건너지 않고서는 섬을 벗어나 육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운기(運氣)

지금까지 우리는 단전그릇을 만드는 것과 단전에 기운을 채우는 축기에 대해 알아보았다. 축기가 호흡을 통해 형성된 단전에 기운을 채워 넣는 것이라면, 운기는 이렇게 모여진 기를 움직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운기(運氣)란 단전에 모인 기를 우리 몸에 있는 경락(經絡:기가 흐르는 통로)으로 흘려 보냄으로써 후천적으로 막혀진 곳을 두루 뚫고 닦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축기는 운기를 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운기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축기가 이루어져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축기는 단전이 자리잡은 연후에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전단계 공부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 단계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은 과정이 중요하고 순서가 중요한데, 3층에 오르기 위해서는 2층을 반드시 지나가야 하듯이 수련도 이와 같아서 각 단계를 체계적으로 밟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과정과 순서를 무시하고선 선도수련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운기편을 시작할까 한다.


운기에도 일정한 순서와 방법이 있다.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은 대맥운기다. 여느 선도서에서 말하는 대로 축기를 한 후 곧바로 소주천수련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진기수련은 불가능하다. 하주대맥이 유통되어서 충분히 단련된 연후에야 비로소 진기는 소주천통로로 흘러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예외 없이 모두 생기수련이므로 높은 공부에 들고자 하는 수련자는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생기수련은 생기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 때문에 언젠가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운기의 시작은 대맥운기부터이다. 그 다음이 소주천(小周天), 온양(溫養), 대주천(大周天), 전신주천(全身周天), 채약(採藥), 기화신(氣化身)의 순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대맥부터 대주천까지는 운기편에, 대주천 이후부터 기화신까지는 심법편에 묶어 보았다. 그렇게 한 이유는 추후 다시 언급하겠지만 대주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마음과 직결된 수련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구체적인 운기 방법과 의의 및 내용을 차례차례 알아보도록 하자.

 

03. 대맥(帶脈)

대맥은 혁대를 맸을 때처럼 배꼽 주의로 해서 허리를 한 바퀴 돌아 둥글게 형성되어 있는 맥을 말한다. 인체내에는 경락(經絡)이라 불리는 기가 흘러가는 길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한의학의 경락론에서 말하는 대맥이라고 하면 이 곳 한 군데를 가리킨다. 하지만 실제로 석문호흡을 통해 대맥을 운기해 보면 경락론에서 이야기하는 허리뿐만 아니라 가슴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과 이마 주위를 한바퀴 도는 것등 두 가지 띠가 더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석문호흡과 관련된 대맥은 선도에서 말하는 삼단전(三丹田)에 각각 하나씩 있으며, 각 단전을 중심으로 우리의 몸 둘레를 띠가 둥글게 고리를 이룬 것처럼 연결하고 있다.


이 세 개의 맥을 우리는 각각 하주대맥(下周帶脈), 중주대맥(中周帶脈), 상주대맥(上周帶脈)이라 부른다. 하주대맥은 하단전 석문혈(石門穴)과 연결된 대맥을 말하고, 중주대맥은 중단전 옥당혈(玉堂穴)과 연결된 대맥을 말하며, 상주대맥은 상단전 인당혈(印堂穴)과 연결된 대맥을 말한다. 이처럼 대맥은 실제로 세 가지가 있으나 수련과정에서 말하는 대맥운기는 하단전과 연결되어 있는 하주대맥만을 의미한다. 중주대맥과 상주대맥은 추후에 언급하겠지만 소주천 수련에 들어가서 수련자 스스로 느끼고, 유통시키게 되므로 별도의 운기수련이 필요하지 않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선도수련에서 운기는 하주대맥부터 시작된다. 하주대맥은 우리 몸을 음과 양으로 나누는 경계선이다. 천지대자연이 음양의 상생상극작용(相生相克作用)에 그 바탕을 두고 분열 발전해 나가듯이, 인간의 몸 또한 대자연에 상응하는 소우주로서 상하좌우의 음양 구성이 서로 다른데 이중 상하의 음양을 연결시키는 띠가 바로 하주대맥인 것이다. 즉 하주대맥은 우리 몸의 상하음양을 연결 조화(調和)시키는 중심이요, 만남의 지점이다.


앞장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리 몸 안의 기에는 진기(眞氣)와 생기(生氣)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혈소통(氣血疏通)이 원활하지 못하여 부분적으로 조금씩 하주대맥이 막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진기의 소통이 점점 어려워져 생기만 통하다가 결국은 진기가 끊어지게 된다. 진기가 끊어짐에 따라 영력(靈力)이 급속히 약해져서 외면적 생명력만 유지한 채 그저 그렇게 살다가 진기가 완전히 막히게 됨으로써 빠른 노쇠현상을 일으켜 한 줌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존귀한 생명의 근본도 알지 못하고, 나자신의 존재 가치도 모른 채, 한 세월 구름처럼 왔다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체 상하의 음양의 기를 원활히 유통시키고
두 기를 화합하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주대맥 운기의 의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운기 수련에 들어가면 심법(心法)을 사용한다. 심법은 무의식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무의식으로 하주대맥을 운기하는 것은 단전에 그릇이 형성되어 있고 기가 충만하게 쌓여 있으면 비교적 간단하다. 단전그릇에 기가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흘러 넘쳐서 저절로 밀려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밀려나오는 진기를 심법으로 유도해서 대맥운기를 하는 것이다. 석문호흡은 단전그릇에 모인 진기가 쌓이고 쌓이다가 자연스레 흘러 넘치게 되었을 때, 이것이 심법에 의해 이끌려 운기되는 것을 수련의 요체(要諦)로 삼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하주대맥을 운기하려면 철저히 무의식을 사용해야 한다. 의식을 사용하면 진기가 생성되어 흘러가려다가도 생기로 변해 버리고 만다. 의념이나 의식, 상상력을 사용하는 수련으론 진기수련은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이 선도수련의 본래 목적이 생기(生氣)의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은 진기(眞氣)의 차원에 있다는 사실이다. 진기란 사람이 원래의 자리, 도계에 있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도광영력(道光靈力)을 말한다. 이 도광영력은 사람이 육신을 타고 와 있는 현재의 순간에도 도계와 연결되어 있다. 근원에서 나온 진기는 사람이 세상에 육신을 갖고 나오면서 생기로 화하게 되는데, 이 생기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오장육부 등의 모든 기관과 조직들에 영양을 분배하고 여러 가지 면역기능과 치유작용 등을 도맡아 하게 된다. 이처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의 생기는 끊임없이 경락을 순환하며 기혈의 흐름을 조절하는데, 결국 수련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기본적인 기는 항상 인체 내에 흐르게 된다. 일반적인 기수련을 통해 단련된 생기가 비록 경락을 타고 강하게 흐르는 것이 느껴지더라도 본질적인 차원의 공부와 전혀 상관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생기수련이 건강 차원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이 사람이 깊은 수련을 통하여 도광영력의 진기를
단전으로 흡수하여 대맥(帶脈)과 임독맥(任督脈), 십이경락(十二經絡)과 기경팔맥(奇經八脈) 등 우리 인체내의 백맥(百脈)을 유통시키고 온몸을 진기로 가득 채우는 수련을 하게 되면, 수련자는 도통(道通)의 길, 사람이 곧 하늘인 천인(天人)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선도의 본래 목적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초보자가 본인의 수련이 진기로 진행되는지 아니면 생기로 진행되는지 구별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단전이 석문혈에 정확히 자리잡지 못한 경우라면 아예 처음부터 진기수련은 불가능하다. 진기와 생기는 모두 빛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도 인체 내에 존재하기 때문에 직접 투시하여 볼 수 있는 도안(道眼)이 없는 한 정확히 감지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진기와 생기는 그 근원이 본시 하나에서 나왔기 때문에 느낌과 감각, 한열감 등이 별반 차이가 없다. 굳이 구별하자면 진기는 처음 진행 속도가 무척 느리고 뭔가 꽉 찬 듯 묵직하다는 것이고, 생기는 그와 반대로 가볍고 빠르다는 것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오랜 세월동안 수련을 하여 소주천(小周天)이나 전신주천(全身周天)을 이루었다는 사람들 중에도 진기로 통한 진통(眞通)이 아닌 생기로 통한 가통(假通)이 많은 것이다. 진기를 얻지 못하면 양신(陽神)은 절대 이룰 수 없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운기방법의 안내에만 전적으로 의지하여 느긋하게 운기한다면 단지 건강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원자리로 통하는 도체(道體)인 양신은 절대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진기와 생기 그 어느 것으로 수련의 첫걸음을 내딛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 혼자 공부하는 수련자가 어려움이 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다. 진기를 얻느냐 못얻느냐도 문제일뿐더러 단전이 제대로 자리잡혀졌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단전이 석문에 자리잡지 못하거나, 천만다행으로 제대로 자리잡더라도 처음 대맥운기에서 진기를 얻지 못하여 생기를 진기로 착각한 채 수련이 진행되면 기연(機緣)이 없는 한 평생 헛공부 하게 되느니 만큼 살피고 살피되 반드시 스승이나 공부가 먼저된 선배의 안내를 받아 수련할 것을 권하고 싶다.


앞서 하주대맥을 진기 유통하기 위해선 무의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무의식을 사용하는 방법인가. 이제부터 차근차근 알아보기로 하자. 무의식을 사용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운기중에 하주대맥을 의식하지 않는 일이다. 오직  하주대맥을 운기한다 는 심법만을 마음속 깊이 세 번 염원한 후에 하단전 석문에 축기만 계속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단전 석문에 의식을 집중하고 축기를 계속하다 보면 수련 전부터 가지고 있던 목적, 즉 하주대맥을 운기한다는 마음이 심법으로 작용해서 그 동안 의식집중을 통해 축적시켰던 단전의 기를 자연스럽게 하주대맥으로 이끌게 된다. 바로 이때, 즉 단전의 기가 심법에 의해 하주대맥으로 나오는 순간,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신묘한 조화 운동으로 인하여 비로소 진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단전 석문에 있는 여의주의 현묘한 조화로 단전내에서는 의식도 무의식으로 작용하여 진기를 생성케 하지만, 단전을 벗어나게 되면 원래대로 의식이 되고 말아 진기가 끊기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심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심법이란 운기를 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방법으로 심법을 건다는 것은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수련자는 앞으로 있을 여러 단계의 운기수련을 통해서 기초적인 심법을 익혀 나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수련하면 축기된 무의식의 기운인 진기는 드디어 대맥을 타고 흘러가게 된다. 그러나 진기가 하주대맥으로 흘러갔다고 하여 일순간에 대맥을 한바퀴 돌아 석문단전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주대맥을 운기하다 보면 몇 군데 막히는 곳들이 있어서 더 이상 진기가 흘러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 막힌 부분을 규(竅)라고 한다. 경락을 대나무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규란 결국 대나무 마디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막과 같다. 여기서 진기와 생기의 차이를 다시 한번 예로 든다면, 생기는 대나무의 겉면을 따라 흐르는 것과 같아서 순식간에 하주대맥을 일주해 버릴 수 있지만, 진기는 대나무의 겉이 아닌 속으로 흘러서 마디와 마디 사이에 있는 막을   고 관통하며 가기 때문에 생기수련에 비해 어렵고 시일도 많이 걸리게 된다.


잘 흘러가던 진기의 흐름이 규에서 막혀 꼼짝 못하게 되면 뚫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의식이 자연스럽게 막힌 부분에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진기는 그만 생기로 변해버리고 말 것이다. 무의식을 사용하는 진기수련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오히려 진기가 규에서 막히더라도 연연해하거나 의식을 빼앗기지 말고 계속 단전에 축기를 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축기된 기가 흘러 넘쳐 하주대맥을 따라 몰려와서 아무리 꽉 막힌 규라 할지라도 마침내는 뚫리게 된다.


문제는 의식을 막힌 부분에 빼앗기지 않는 것에 있다. 절대로 의식을 빼앗기지 말고 그럴 때일수록 축기에만 전념해야 한다. 규가 강하게 막혔을 때는 호흡을 길고 강하게 하는 무식(武息)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무식을 사용하게 되면 기운은 강성(强性)을 띠게 되고 막혀 있는 규를 힘차게 뚫고 흘러가게 될 것이다.


아주 드물게 하주대맥이 일순간 유통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대맥운기 과정에서 어느 정도 규가 막힌 것을 경험하게 된다. 진기의 하주대맥 운기방향은 석문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흘러 다시 단전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하주대맥을 처음 운기할 때 가장 많이 막히는 곳은 좌측 족소양담경상의 대맥혈(帶脈穴)부위다. 그리고 하주대맥과 독맥이 만나는 지점인 명문혈(命門穴) 부근도 잘 막히는 곳이다. 또 우측 대맥혈 부위와 하단전 석문혈 바로 옆에 있는 족양명위경상의 대거혈(大居穴) 부위 역시 잘 막히는 곳에 속한다. 수련자들의 체험에 의하면 왼쪽 대맥혈에서 대부분 많이 막히고, 오른쪽 대거혈 부분에서 막혔을 때 가장   기 힘들었다고들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규가 꽉 막혀서 수련이 진전되지 않고 답답함이 느껴지더라도 철저히 무의식을 사용해야 한다. 물론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당장 막힌 곳에서 강한 기감이 오는데 어떻게 의식을 주지 않고 무의식만으로 일관할 수 있겠는가. 또 의식을 완전히 단전에만 두면 진기가 흘러가는 것은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무의식 수련이 쉽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무의식을 사용하는 수련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꾸준히 반복 노력하면 어렵지 않게 체득할 수 있다. 앞으로 수련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명심할 것은 절대 시행착오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련은 갈수록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고 또 그만큼 어려워진다. 하기야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공부가 되는 것이지만, 수련자는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끈기있게 노력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 수련자 스스로 생기와 진기를 구별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하주대맥 운기 수련 중에 축기된 기가 좌측 대맥혈을 지나 대맥과 독맥이 만나는 명문혈에 이르러 전혀 막히지 않고 오른쪽 대맥혈로 흘러갈 때 이는 진기다. 또 막힌 곳이 있더라도 이를 뚫고 지나갈 때 기가 독맥을 타고 전혀 올라가지 않으면 이 역시 진기다. 그리고 하주대맥 전체가 갑자기 뜨거워져서 마치 둥근 고리처럼 허리에 둘러쳐진 꽉 조이는 느낌이 들 때 이것 또한 진기다. 이와는 반대로 피부를 타고 아주 날카롭고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나 명문혈까지 운기되다가 갑자기 독맥을 타고 올라가는 징후가 조금이라도 나타난다면 그것은 생기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주대맥이 완전히 유통되면 매일매일 시간나는 대로 운기시켜서 진기가 하주대맥을 일주하는 데 2분 내로 될 때까지 수련을 계속한다. 보통 유통된 직후에는 진기가 단련이 덜 된 관계로 대단히 느리지만(보통은 일주하는데 30분 정도 걸린다)이것은 운기를 반복함에 따라 점점 시간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결국 2분내 운기란 다음 단계인 소주천 수련을 할 수 있는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기의 완성도이다.


이제 수련자는 자세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물론 자세를 갖춘 상태에서 하는 수련과는 수련효과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겠지만 길을 걷거나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텔레비젼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면서 하다 못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도 대맥은 심법만으로 운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제 수련을 생활 속에서도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조금 더 열정을 갖고 수련에 임하도록 한다.

 

대맥 요결
대맥은 운기의 시작이므로 여기서는 운기수련을 할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먼저 운기수련은 철저히 무의식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식을 단전에만 집중하라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모두 단전에만 가 있게 되면 기의 흐름을 느낄 수가 없어서 수련자 스스로가 기감을 찾아 공부해 나가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무의식을 사용하라는 말은 의식을 전부 단전에 두고 대맥에 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기감이 느껴지는 곳에 의식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무의식을 사용하면서 기감을 잘 느끼기 위해서는 의식의 적절한 배분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수련을 할 때 의식의 70퍼센트는 단전에, 그리고 나머지 30퍼센트는 기의 흐름에 두는 것이 가장 좋다. 이를 의식의 황금분할이라 칭한다. 이렇게 해야만 진기감을 느끼면서 운기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무의식을 사용하여 진기를 이끌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저수지에 물이 넘쳐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운기한다.
장마철에 쏟아져 내리는 비가 저수지에 고이다 보면 어느 순간 수위를 넘어 수로를 따라 흘러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단전에 축기된 기도 일정량이 넘치면 경락을 따라 흘러나오게 되는데 이 흘러나오는 기를 가지고 운기를 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단전에 축기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운을 끌어 쓰게 되면, 마치 가뭄이 든 저수지 물을 펌프를 사용해서 퍼 올렸을 때 저수지 바닥이 곧 드러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수련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펌프를 사용하는 것은 의식을 사용하여 기를 끌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진기를 끌지 못하고 생기를 끌게 된다. 단전에 축기를 계속하다보면 언젠가는 넘쳐흐를 정도로 기가 가득차게 된다. 물론 단전그릇이 형성된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지만 단전그릇이 형성된 뒤에는 축기를 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 넘친 기운이 심법에 의해 이끌려서 자연스럽게 대맥경락으로 흘러 들어갈 때 비로소 진기가 이끌리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석문호흡의 운기는 단전에 진기가 가득 쌓여 저절로 흘러 넘쳤을 때 그 흘러 넘친 진기를 무의식의 심법으로 유도하여 운기하는 것이다.


둘째, 의식은 항상 기를 뒤쫓아가면 느껴야 한다.
30퍼센트의 의식으로 기의 흐름을 느끼는 데 있어 절대로 의식이 기를 추월해서는 안 된다. 즉 의식이 기가 흘러간 위치보다 더 앞쪽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0퍼센트의 의식이란 것은 하주대맥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고, 심법으로 유도된 기가 흘러가는 것을 느끼는 정도의 의식만을 말한다. 대개 수련자는 기감이 느껴지면  아! 이제 기가 여기까지 왔구나 라는 희열감과 더 빨리 수련을 진행시키고 싶다는 바램, 막힌 곳을 빨리 뚫어야 한다는 조급함 등이 욕심으로 작용하여 수련자의 의식 또한 어느새 막힌 곳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바로 이 때 의식과 무의식의 신묘한 조화가 깨쳐 버리고 진기는 생기로 화해서 그 순간부터 수련은 생기로 진행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번 진기로 유통된 경로는 다시 쉽게 진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축기를 계속하면 별 어려움 없이 흘러가게 된다. 문제는 무엇이든 빨리 이루려는 마음이다.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말이 있다. 수심(修心)을 하는데 있어서 빠르다고 생각하는 길이 오히려 멀리 돌아가는 길이고, 늦다고 생각되어지는 길이 참으로 빠른 길이란 것을 유념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생기와 진기의 흐름은 생기가 먼저 길을 탐색하고 뒤따라서 진기가 흘러간다. 마치 계란의 노른자를 감싼 흰자위처럼 진기를 생기가 감싸고 있기 때문에 의식은 항상 기감을 뒤따라가야 한다. 의식이 조금이라도 기를 앞서게 되면 생기를 이끌게 되고 진기를 생기화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수련 정도를 점검해보면 진기가 진행한 것보다 턱없이 앞쪽까지 기가 흘러간 것으로 느끼는 수련자가 많다. 이러한 착각의 원인은 바로 의식이 기를 앞서 나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기 수련을 유지하면서 기감까지 정확하게 찾기 위해선 70퍼센트의 의식은 단전에 둔 채 30퍼센트의 의식만으로 기감의 뒤를 쫓아야 한다.


셋째 기감을 일깨우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은 그래도 기감이 조금이라도 있는 수련자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체질적으로 또는 그외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기감을 아예 못 느끼는 수련자들이다. 이는 당사자에게 있어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소주천까지 유통시키고도 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는데, 더 안타까운 것은 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하여 수련을 중단해버리는 수련자들이다. 사실 선도수련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는 공부이기 때문에 기감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 하는 것은 수련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관련된 상당히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물론 기감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건강상의 문제나 심리적 문제에 대한 무엇보다도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받을 수는 있지만, 수련은 항상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수련자들은 수련자 본인이 기감을 느끼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감이 없는 수련자들이 기를 보다 확실히 느끼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운기수련중에 기감을 잡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몸에 감지기를 달아놓는 것이다. 감지기를 단다고 해서 실제로 감지기를 설치하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심법을 통해 무형의 감지기를 대맥혈이나 명문 그 외 자신이 희망하는 곳에 달아 놓으면 된다. 이렇게 감지기를 단다는 심법을 요소 요소에 걸어 놓게 되면 기가 통과하기 전과 통과한 후에 인식되어지는 미세한 감각의 차이로 인해 수련의 진행정도를 본인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 마치 센서를 깔 듯이 수련 시작 전에 대맥경락을 두세 번 의식으로 인식해주는 것이 있다.
이와 더불어 양손사이에서 기를 느끼는 지감수련이나 특정 기운의 흐름을 타면서 춤을 추는 현무(玄舞) 등의 연습도 기감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편이다.


넷째, 2분내 운기! 결국 경락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앞서 경락을 일주하는 운기수련의 경우 2분내 운기가 가능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수 있다고 했다. 도대체 2분내 운기가 뜻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굳이 2분내라는 시간의 한계를 정하는 것일까. 이 2분내 운기라는 것이 단순히 시간적인 개념만을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경락이란 운기를 계속하여 닦아주면 닦아줄수록 빛을 더욱 강하고 맑게 발하게 된다. 이 빛이라는 것은 도안을 통해 투시하면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진기가 강한 황금빛을 띠는 데 비해서 생기는 어둠침침한 빛을 띤다. 또 생기를 사기와 비교해 보면 그 반대로 생기가 밝은 노란빛이 나고 사기는 어둠침침한 빛을 나타내게 된다. 즉 비교 대상에 따라, 그리고 상대적 우위에 따라 인식되는 빛 자체도 틀려지는 것이다.
한 경락이 막 유통되었을 때, 거의 대부분은 뚫린 길 자체가 미약하여 진기의 운기 속도는 물론 그 빛 자체도 황금빛이 아닌 노란색을 띠게 된다. 진기로 잘 닦여진 경락과 비교한다면 10차선 고속도로가 놓여야 할 경락이 사람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 속의 오솔길 정도로 미약하게 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2분내 운기라는 것이 경락의 통로가 넓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2분내 운기가 가능하다고 해서 경락의 굵기 자체가 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통로는 실제로 그리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빛의 차이는 통로의 굵기 여부가 아니라 기의 완성도, 즉 강함과 약함, 맑음과 탁함, 음양의 조화됨 등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반복수련을 통해 계속 운기하게 되면 경락 전체가 고르고 균일하게 닦여 황금빛을 발하게 된다. 이렇게 균일하게 빛이 나는 완성도가 높은 경락을 두고 2분 내 운기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운기수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경락의 완성도이다.
우리가 굳이 생기가 아닌 진기로 수련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생기 자체가 갖고 있는 완성도에 대한 한계. 그것이 결국은 건강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수련자는 기가 경락 어디까지 운기되었나 하는 거리상의 문제보다도 얼마나 충실하게 단련되었는가 하는 종합적인 완성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다섯째, 반복수련이 중요하다.
결국 2분내 운기는 다음 단계 수련에 들어갈 수 있는 한계선인 셈이다. 예를 들어 대맥이 2분내로 운기될 정도로 단련되어야 할 소주천수련에 들어갈 수 있고, 소주천이 2분내 운기가 되었을 때 온양수련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2분 내 운기가 되고서도 계속 반복해서 운기해주게 되면 시간은 점점 더 짧아져서 1분이나 30초, 그이하까지도 줄어들게 된다.
운기는 빠를수록 좋다. 빠르게 운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능력이고 경지이기 때문이다. 운기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그 해당 경락을 계속 반복해서 일주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다.

 반복된 운기수련을 통해서 진기는 단련되고 여의주는 점점 더 그 본연의 빛을 발하게 된다.
2분내 운기가 가능하다고 해서 서둘러서 다음 단계에 들어가려고 하지 말고, 현 단계의 수련을 보다 더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운기는 유통하는 것보다 유통한 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련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 단계 수련을 한다고 해서 전단계 복습을 하지 않게 되면 수련이 깊은 경지에 들어갈 수 없다.

반면에 전단계 수련을 열심히 하게 되면 반드시 다음 단계 수련을 할 때 큰 도움을 받게 되므로 운기수련은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는 데까지 충분히 반복해 주는 것이 좋다.


여섯째, 운기와 축기는 결코 둘이 아니다.
운기와 축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운기(기의 흐름)가 중요하지 축기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차피 우주 안에 가득한 기를 내 몸을 통해 원활하게 흐르도록 한다면 굳이 축기하지 않아도 필요할 때에 기를 끌어들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축기에 비해 운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앞서 말했지만, 생기는 이미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온몸을 유주(流注)하고 있고, 단전에 기가 가득 차면 저절로 경락을 따라 온몸에 고루 분포되어 쌓일 것이기 때문에, 축기만 잘되어 있으면 애써 기를 운기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다분히 생기적 관념이다. 우리가 운기하려는 것은 진기다. 진기는 석문에 쌓인 기운이 심법에 의해 이끌려 나올 때 의식과 무의식의 현묘한 조화운동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단전에 축기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진기를 운기하려고 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어차피 운기라는 것은 단전에 축기된 진기가 넘쳐 흐르게 되었을 때, 그 넘쳐 나온 기가 경락으로 흘러들어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운기와 축기는 결코 둘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진기를 운기하여 일주(一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단전에 기가 충실하게 쌓였다는 것이고,

단전에 기가 많이 쌓였다는 것은 운기능력 또한 커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대맥 수련 체험기 : 진기여 응답하라! -서울시 신림동 김태한

대맥운기를 한다는 것은 행공(일정한 동작을 취하면서 호흡하는 방법)이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그 동안 축기만 해오던 조금은 지루한 수련에서 벗어나 진기를 움직여주는 운기수련에 들어가게 되는 것인 만큼, 나에게는 아주 설레는 일이었다. 드디어 나도 운기를 하게 된 것이다.


석문호흡을 하기 전에 이미 여러 다른 수련법들을 거쳐온 입장에서, 책과 통신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생기와 진기의 차이가 정말 그러한지 궁금해오던 참이었다. 더군다나 선배들에게 들은 운기감에 대한 이야기로 이러한 나의 기대심리는 이미 증폭될 대로 증폭된 상태였기 때문에 생기가 아닌 긴기를 운기해서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는 사실 생각보다 컸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맥경락에서 기감이 나타난 건 대맥수련에 들어와서가 아니었다. 좌식을 시작한지 정확히 보름이 되었을 때였다. 잡념도 없이 묵묵히 석문단전에 집중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부드러운 기운이 석문 좌측으로 흐르더니 마치 비어있는 튜브에 미지근한 물을 채워 나가듯이 대맥을 쭈욱 일주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혹자는 또 한 명의 초보가 천인의 환상에 빠졌으리라 생각하실 지도 모르지만, 이미 많은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었던 터라 더욱 더 석문에 의식을 집중하는데만 주력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석문호흡을 시작하기 전부터 아랫배 우측부위가 좋지 않았는데 그 부분을 시작으로 하여 대맥 전체에 온갖 기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뜨거운 느낌,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 물같은 것이 흐르는 느낌 등등... 나 스스로도 이것은 분명 생기의 장난일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문에 대한 의식집중이 방해 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도 여러 가지 기감을 느끼다 보니, 혹시 그 중에 진기에 의한 영향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누구는 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불평이지만 내 경우엔 너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기감이 느껴질수록 석문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만 더욱 어려웠다.


그렇게 수개월동안 어렵게 석문에 집중하며 좌식을 한 후에 드디어 대맥진급의 점검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진기의 운기를 시작하여야 한다. 단전자리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탓에 생기에 의한 수련으로 보낸 적지 않은 고통과 방황의 시간 후에, 이제 드디어 진기수련의 첫운기를 하게 된 것이다.


진급 후 첫 달의 수련은 여전히 여러 가지 기감들과의 싸움이었다. 수련지침서에는 진기가 운행하면 기운을 앞서지말고 뒤에서 따라가며 석문에 집중하여 석문과 운기점의 의식의 황금분할을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 또한 의식의 황금분할이 힘든 사람들은 수련시작시에 의식으로 대맥을 여러 번 인식한 후에 철저히 석문에 집중하라는 조언도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진기를 뒤에서 따라가기에는 여러 기감 중에서 어떤 것이 진기인지를 아직 모르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생기가 만든 기감에 의해 수련 중에도 항상 대맥경락 쪽으로 의식이 쏠려서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무조건 석문에 집중하고 심법을 특별히 걸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사용한 심법은 거의 사설에 가까운 것이었다. 처음에는 진기 수련을 찾아온 내용을 구구절절히 설명하여 마음을 새롭게 하고, 그 후에 진기만 대맥통로를 따라 흘러주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원래 심법은 간결하고 강하게 걸어야 한다는데, 그때는 생기에 너무 시달려왔던 터라 그만큼 진기에 대한 열망 또한 컸기 때문에 그렇게 심법을 걸었던 것이었다.


대맥에 들어간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진기라고 확신할 만한 기감을 찾지 못한 채 수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석문단전에서 호두알만한 크기의 기(氣)의 구체가 좌대맥쪽으로 툭 튀어 나오는 것이었다. 전과 다른 무언가가 움직인 것이다. 진기가 간 것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너무 짧았다.  남들은 보통 한달이면 좌대맥까지 간다는데 설마 이게 그걸라고...
거리상으로는 거의 손가락 한마디만큼도 안 되는 아주 짧은 것이었지만, 폭이 지금까지 느끼던 기감에 비해 너무 두꺼워서 단전이 축기에 의해 확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대맥수련 후 첫 점검의 날, 아쉬운 대로 서류점검을 받았다. 점검 결과를 갖고서 청죽 사범님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어디까지 느끼느냐고 물어보셨다. 막상 질문을 받으니 없던 욕심까지 생겼던 건지, 혹시 생기라고 생각하던 그 곳이 아닐까 하는 기대 때문인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이  음, 아주 조금 갔어. 거의 안 간거나 마찬가지지. 이만큼.  엄지와 검지를 궁색히 벌리며 친절히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냥 진지한 것이 아니고 진지하고도 측은히 여기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수련시간이 다되어서 대답할 겨를도 없이 수련에 들어갔다. 본수련을 하면서도 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어지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간절했던 것은 진기를 느끼고 싶다는 그것이었다.


기감은 사람마다 다 틀린 것이어서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내가 또한 내가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한다 해도 혹은 거의 기감을 못느껴도 수련은 진행된다. 느낌의 종류나 강도가 저마다 다르니 여기에도 불비타인(不比他人)의 심훈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나치게 기감에 현혹되지 않고, 꾸준히 수련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평소 생각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느끼면서 가고 싶었다. 장대한 스케일과 체계적인 수련법이 있는 도문의 수련을, 그리고 그 진가가 드러나는 양신출신 이후의 공부는 둘째 치더라도 초보자들, 특히 여러 수행법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석문단전과 진기 이 두가지가 타수련과의 차이점인 동시에 추구하는 지향점이요, 확신의 근거가 되느니 만큼
진정 몸으로 느끼면서 가고 싶었다.


자세를 가다듬고 심법을 걸었다. 또 한참을 지금까지 경과와 본 수련에 대한 마음가짐을 하늘에 고(告)하고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진기여 여기 진지한 수행자에게 제발 응답하라!
많은 분들께서 웃으실지 모르지민 그때는 정말 심각했고 지금도 그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 호흡이 안정되고 조금 지나자 석문부터 좌대맥 전까지 어떠한 느낌이 아주 확연하게 나타났다. 석문 바로 왼쪽까지는 두꺼웠다가 급히 얇아져서는 좌측 골반에서 위쪽으로 급히 틀어 좌대맥 전까지 닿아 있었다. 뜨겁거나 차가운 한열감도 없이 묵직한 것이 이것이다라는 느낌이 왔다. 혹여 그 느낌이 사라질까봐(생기로 변할까봐서) 더 이상 그 부분에 의식을 두지 못하고 다시 석문에 집중하였는데 수련이 끝날 때까지 기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진기의 느낌을 잃지 않고 계속 수련할 수 있었다. 유통이 거의 가까워 졌을 때 일월법 행공 1, 2번을 하는 동안에 이미 기운이 돌기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본수련에 들어가면 다시 두껍고 무거운 기운이 거의 10분에서 30분 동안 아주 천천히 석문에서 출발하여 막힌 규까지 흘러갔다.


유통된 이후에 하주대맥 전체가 빡빡하게 차 오른 상태에서 불현 듯 상주 중주 하주 대맥에서 바로 몸밖으로 아주 물질적인 감각의 둥근 고리 형태의 기감을 잠시 느낄 수 있었다. 유통을 점검 받은 직후에도 일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많이 걸리면 30분 이상이거나 아예 본수련 시간동안 유통을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운기시간은 단축되어 갔다. 대맥수련을 할 때는 1분 이하로는 회전하는 느낌은 갖지 못하였고, 대맥전체로 허리띠처럼 조여오는 감각을 느꼈을 뿐인데 그 느낌이 아주 강렬한 어느 날 석문에서 독맥통로를 따라 기운이 하강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혀 의념을 주지 않았지만  천서 에 나온 바와 같이 대맥이 완성되면 자연히 독맥으로 진기가 흘러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주천을 유통한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르다. 대맥도 전보다 더 강해졌고, 기감은 아주 부드럽고 안정적이며 세밀해졌다. 운기를 하면 수 초 이내에 일주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
아직은 초보자라 많은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요즘 와서 느끼는 것이 단지 기감이 아니더라도 석문호흡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 중의 한가지 길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생기와 진기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면서 수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04. 소주천(小周天)

소주천(小周天)이란 몸의 전면에 있는 임맥(任脈)과 몸의 후면에 있는 독맥(督脈)을 서로 통하게 하는 임독유통(任督流通)을 말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단전에 모인 기를 항문쪽으로 내려서 다시 등뒤로 돌려 척추에 있는 독맥을 따라 올린 다음 머릿속 니환(泥丸)에 넣고, 몸의 전면 정중앙선에 있는 임맥을 통해 끌어내려 다시 석문단전으로 돌아가게 하는 수련이다. 즉 몸의 앞뒤로 크게 원을 그리듯이 기를 돌려서 앞면의 임맥과 뒷면의 독맥을 유통시키는 것이 소주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맥운기를 횡적유통이라 한다면 소주천은 종적유통이라 할 수 있다.


소주천을 이룬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성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주천을 이룸으로 인해서 인체는 강한 정화능력과 면역기능의 항진등 극치의 자연치유력을 얻게 된다. 따라서 소주천을 운기하게 되면 신체 좌우음양의 여타 경락들이 모두 자극받게 되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치료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건강을 목적으로 수련을 시작한 경우라도 꾸준히 수련해서 소주천은 이루어야 한다.


소주천을 유통하면, 하단전에서 출발한 기가 모든 규를 뚫고 독맥과 임맥에 각각 떨어져 있는 세 개의 단전, 하단전(石門珠), 중단전(玉堂珠), 상단전(印堂珠)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므로 기력 또한 엄청나게 강해진다. 소주천을 이룬 사람과 이루지 못한 사람의 기력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보이는데, 기력뿐만 아니라 상중하단전에 하나씩 있는 여의주도 소주천을 이루는 순간 한 겹씩 닦여져 빛을 발하게 되므로, 수련자 스스로도 이 구슬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심기쌍수(心氣雙修)하는 본격적인 선도수련에 입문하게 되는 것이다.


소주천 운기방법은 하주대맥의 운기방법과 같다. 즉 하단전 석문에 그 근본을 두고, 의식을 집중하여 축기하는 과정에서 심법으로 기를 이끌어 운기하는 것이다. 마치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 넘치게 되면 넘친 물이 수로를 타고 흘러가듯이, 단전 역시 기가 가득 쌓이면 넘쳐흘러서 경락을 따라 흘러가게 된다. 그러므로 소주천을 하려면 먼저 소주천 통로인 임맥과 독맥을 미리 알아 의념한 상태에서,  임독맥을 운기한다 는 심법을 마음속에 3회 새긴 후에 축기에만 전념하면 된다.


여기서 잠시 소주천의 운기방향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앞서 대맥운기도 그렇고 소주천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운기방향이 있다. 대맥의 경우 좌에서 우로 도는 것이 순행이고, 소주천은 임맥을 따라 내려가서 독맥으로 올라오는 것이 순행이다. 이와 반대로 운기해줄 수도 있는데 이를 각각 역대맥, 역소주천이라 부른다. 수련은 항상 순행으로 하고 역으로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역으로 하지 않고 순으로 하게 되면 정신, 즉 마음 위주의 수련이 되지만, 반대로 역으로 하게 되면 마음이 아니라 육체 위주의 수련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역대맥을 운기하게 되면 뇌와 정신을 자극하게 되므로 뇌는 발달하지만 정신력은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역소주천도 마찬가지다. 역으로 소주천을 운기하게 되면 정력은 강해져서 부부간의 성생활에는 도움이 되지만 도를 공부하는 데는 치명적인 방해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이 한쪽으로 치우쳐지면 좋지 않듯이 정(精)이 지나치게 강해져서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 때의 정이란 것은 마땅히 기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인데 오히려 거꾸로 기를 정으로 변화시켰으니 공부에 지장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소주천 운기를 할 때 하단전에서 기가 제일 먼저 흘러가는 곳은 회음(會陰)이다. 회음은 성기와 항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뚫기가 조금 어렵다. 그러나 더욱 어려운 곳은 항문을 지나 뒷부분에 위치한 미려(尾閭)이다. 왜냐하면 단전의 기가 하단전에서 회음까지 흘러가는 도중에 성기에서 거의 방향이 혼란스러워져 절반 이상의 기가 쉽게 노출된 데에다가, 회음을 통과해서 미려까지 가는 도중에 항문이 또다시 기의 방향을 교란시키기 때문에, 미려를 뚫는 것은 회음을 뚫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대맥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규를 뚫으려면 강한 기(强氣)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진기중에 극강한 기를 얻어 막힌 규를 뚫는 것이다. 강기를 얻는 방법으로, 소주천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하운호흡이다. 항문호흡이란 항문을 조여 기의 누출을 막고 호흡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 항문호흡을 하게 되면 기가 누출되지 않고 미려까지 도달하게 된다.


진기의 운행이 규에 막혔을 때 필요한 강기를 얻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앞서 설명한 항문호흡도 그 중 하나라 할 수 있고, 그 외에 호흡의 전환 부위에 숨을 잠시 멈추는 지식(止息) 등의 방법도 꽉 막힌 규를 뚫을 때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조속한 시간 안에 경락을 유통하고자 할 때 쓰는 것이라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필자는 시일은 좀 걸리더라도 무난한 다음 방법들을 권하고 싶다. 이야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이 규를 뚫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축기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호흡 역시 사람에 따라 조금씩은 다 다르기 때문에 항문을 조이면서 호흡한다거나 지식을 사용한다는 것이 오히려 의식집중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수련 스타일에 맞추어 합당한 방법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아무리 꽉 막힌 규라 할지라도 막힌 그곳에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축기에만 전념하면, 단전에서 밀려나오는 진기가 막힌 규까지 흘러가서 마침내는 힘차게 규를 뚫고 흘러가게 되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적인 방법은 전단계를 충분히 복습하면서 행공(行功)도 꾸준히 해주는 것이다. 전단계를 충분히 복습하게 되면, 예를 들어서 소주천 수련을 하면서 전 단계인 대맥을 충분히 복습해주게 되면 축기된 기가 밀려서 독맥과 대맥의 교차혈인 명문까지 아주 쉽게 흘러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공부는 각 단계가 논밭의 수로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갑자기 수련이 급진전된다거나 단계를 뛰어넘거나 할 수 없기 때문에 전단계 복습을 열심히 하면 한만큼 본수련시에도 큰 도움을 받게 되어 있다.


진기 중 강기(强氣)를 얻기 위해서 행공을 하는 것도 좋다. 행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행공의 효능을 몇 가지 나열한다면 첫째, 전신의 근골을 단련시켜 집중력과 의지력을 크게 길러 주고 둘째, 호흡수련만 했을 때보다 훨씬 강한 기운이 형성되어 경락을 튼튼하게 단련시키며 셋째, 혈액을 맑게 해주고 넷째, 행공 동작마다 들어있는 현묘한 기운의 작용이 기를 흡수하여 공부가 깊어질수록 보이지 않는 큰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 등이다.


소주천 규 중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막히는 곳은 대추혈(大椎穴)이다. 대다수의 사람이 이곳에서 막힌다. 대추가 막히게 되면 좀처럼 뚫기가 어렵다. 대추를 뚫으려면 아주 극강한 진기의 힘이 필요하다. 대추혈을 뚫는 진기의 힘이 약하면 여러 가지 곤란한 일들이 생기게 되는데, 예를 들어 물이 흘러가다가 바위가 물길을 가로막고 있으면 양옆으로 갈라져 흐르게 되듯이, 대추혈을 뚫는 진기의 힘이 약하면 대추를 중심으로 진기가 좌우로 갈라져 각각 좌측과 우측 어깨를 지나 팔 쪽으로 흘러가 버린다. 그렇게 되면 영원히 소주천을 이룰 수 없다. 하여간 대추혈을 뚫는 것은 소주천 수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고비이다.


대추혈을 뚫는 과정에서 한가지 더 말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하단전에서 축기를 통해 밀려나온 기가 소주천 통로를 따라 운기되다가 대추혈에서 막히게 되면 오히려 하단전에 반작용이 생겨 압력감을 느끼게 되고, 더 나아가서 그 압력이 하단전을 거쳐 역으로 중단전에 치밀어 오르는 경우가 있다. 굳이 대추혈이 막혔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유난히 꽉 막힌 규를 만났을 때 그런 현상들이 일어난다. 알지 못하는 묘한 기의 압력이 중단전으로 치밀어 오르거든 그것이야말로 공부가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결국은 막힌 규를 뚫기 위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수도자는 수련이 잘 될 때보다 잘 안 될 때 오히려 공부가 더 많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더욱 전심해서 도를 구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추를 뚫고 나면 진기는 단숨에 머리 끝에 있는 니환궁 백회까지 올라온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지만 대추혈을 뚫고 나서도 계속 주의해야 할 점이 의식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즉 올라오는 기의 느낌에 신경을 쓰면 안 된다. 만일 신경을 쓰게 되면 의식이 따라가게 되서 마침내 진기는 끊어지고 생기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올라오는 기의 감각에 신경을 쓰지 말고 마치 자연을 관망하듯이 그저 느끼기만 해야 한다. 진기가 백회에 이르면 진기는 샘물처럼 아주 시원하고 차가운 느낌의 청량한 기운으로 변해서 머리를 적셔 준다. 그러나 아직 온양을 할 때는 되지 않았다. 일부 선도서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이것저것 입맛대로 가져다가 짜깁기하듯 수련해서는 절대 진기수련은 할 수 없다.

 

온양은 소주천이 끝난 다음에 하는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오로지 하단전에 계속적인 축기를 하는 것뿐이다. 축기를 계속하면 진기는 니환에서 열기가 식어서 앞이마로 내려오게 된다. 앞이마로 내려온 진기가 상단전인 인당에 이르며 인당을 중심으로 둥근 기운과 압력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바로 상단전에 있는 여의주인 신주(神珠) 때문이다. 진기가 상단전 인당에서 코를 지나 윗입술까지 내려왔을 때 반드시 혀끝은 입천장에 붙이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기는 순조롭게 혀를 타고 내려와 턱까지 흐르게 된다. 턱에서 중단전 옥당혈까지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목 부분은 기의 움직임을 좀처럼 감지하기 힘들 뿐 아니라 웬만큼 기가 강하지 않고는 뚫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이곳 역시 용맹정진하여 축기에만 전념하고 있으면 진기는 이윽고 중단전까지 내려오게 된다.


임맥은 내려가는 길이므로 중단전부터 하단전까지는 쉽게 흘러가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물론 수련자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다. 지병으로 위장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같으면 중완(中脘)부위에서 걸려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평소 심장이 허약한 사람이라면 임맥을 통과할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거나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기가 지나가면서 안 좋은 곳을 치료하느라고 생기는 명현 현상중의 하나일 뿐이니까.


중단전 여의주인 기주(氣珠)를 지나 하단전까지 기가 내려가면 하단전에 아기 머리만한 둥근 기가 잡히면서 훈훈한 기운을 내뿜게 된다. 여기에 이르면 드디어 하단전과 중단전 그리고 상단전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소주천이 완성된 것이다. 소주천이 이루어지면 상주와 중주에 하나씩 있는 대맥, 즉 상주대맥과 하주대맥도 모두 유통된다. 소주천 수련을 통해 막혀있던 모든 규를 뚫고, 세 개의 여의주를 감싸고 있는 대맥들도 모두 유통시켰으므로 이제부터는 힘들이지 않고 기를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경락을 따라 기를 한 바퀴 돌려주는 것을 일주(一周)라 한다. 소주천도 대맥과 같아서 일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분내로 될 때까지 운기를 계속해야만 한다. 보통 소주천을 처음 이루게 되면 일주하는데 40여분 정도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지만 소주천을 이룬 후의 수련은 훨씬 재미있기 때문에 대체로 보다 열심히 수련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일주시간이 2분이 넘지 않게 되면 온양 수련에 들어간다. 소주천을 일주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분을 넘지 않는 경지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상당히 여러 번 일주를 거듭해야 한다.


유통 후에 수련자의 개인적인 체질에 따라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평소보다 정전기를 심하게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주천 통로를 주위로 하여 두드러기 같은 염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것은 신체가 기적(氣的)으로 민감해져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중의 하나다. 보통 소주천의 극강한 힘이 음양의 모든 경락들을 강하게 자극시킬 때, 몸 안의 사기가 몸 밖으로 신속히 배출되면서 신체 곳곳의 안 좋았던 부위에 명현상을 가져완다. 명현현상이란 것은 과거에 앓았던 병이 뿌리 채 뽑혀나가면서 생기는 일종의 치료과정이므로, 명현이 오는 경우에 수련을 중단하고 치료를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수련시간을 늘려서 더욱 강한 의지로 수련을 지속하는 것이 좋다. 명현이란 것도 결국에는 몸과 마음이 흡입된 도광영력을 미처 다 받아들이지 못하여 일어나는 것이므로 인내하고 견디면 수심(修心)하는 데 있어 큰 이로움이 있다. 물론 수련자는 명현과 병을 잘 구별하여야만 한다.


소주천 운기를 계속 해 주게 되면 기질(氣質)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처음 유통되었을 때 화끈거릴 정도로 뜨겁던 기는 운기를 반복할수록 청량하고 시원한 기로 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수련자 중에 운기할 때의 기감이 서늘하고 차갑다고 해서, 이건 차가운 음기니까 안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행여 있을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 자체가 불안정할 때에는 뜨거운 기감이 오게 되고, 기가 안정되면 될수록 청신한 기감을 느끼게 된다. 즉 이 느낌이란 것의 차이는 기가 얼마나 안정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처럼 기적인 감각은 나름대로 한계가 있으므로 지나치게 맹신하는 것은 자기착각에 빠질 우려가 있다. 수련자는 말이 앞서는 것보다는, 몸과 마음으로 배
우고 닦고 익혀서 자기 나름의 경험으로 체득하려는 실험적인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그런 신중함이 없으면 기에 대한 환상과 신비주위에 휩싸여 오도된 생각을 하게되기 쉽다. 기에 대한 무지(無知)도 문제지만 맹신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기 때문이다.

 

소주천 요결
소주천 단계에 이르러, 본격적인 석문호흡 수련에 들어가려는 수련인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심훈(心訓)이 있다.
심훈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수심(修心)에 귀착되는 것으로, 이 수심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도(道)는 물론 기본적인 수련 자체도 정상적으로 진척되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석문호흡이 정신적인 깨달음을 통한 도적(道的)인 완성에 그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석문호흡 수련자가 유념해야 할 심훈은 적어도 다음 다섯 가지다. 첫째, 선수심후운기(先修心後運氣) 둘째, 남이 알아 주길 바라지 말라. 셋째, 불비타인(不比他人) 넷째, 무고무도 통자무고(無苦無道 通者無苦) 다섯째, 선배려후도법(先配慮後道法). 이 문구 하나하나에는 일반적으로 해석되어지는 것보다 깊은 속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석문호흡 수련인은 반드시 수련과 병행하는 자발적인 성찰을 통하여 오의(奧意)를 심득(心得)해야 한다.


수심은 수련의 지향점인 동시에 필수(必修)해야 하는 근본이다. 그렇다면 수심(修心)이란 무엇이고, 또 어떻게 하란 말인가. 석문호흡에는 분명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그 하나가 육체적인 즉 건강적인 면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즉 도적인 면이다. 수심은 그 중에서 정신적인 면하고 깊이 관련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어느 단계 어떤 수련을 하든 스스로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 시간 운기를 통해서도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다. 즉 기본적으로 수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운기하면, 운기하므로 해서 저절로 닦이는 마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듯이 수련자는 적극적으로 각각 수련 단계마다 담겨 있는 이치를 깨닫고자 하여 도심(道心)을 길러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곧 수심하는 것이고 수심이 곧 마음닦음인 까닭이다.


수심은 말로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학문으로도 안 되고, 오직 수련 중에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심은 이렇게 해야한다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각자의 길이 또 각자의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왜 선수심후운기겠는가. 그냥 수련만 해서는 마음이 적게 닦이므로 수련 중에, 운기하는 과정 중에 수련인으로서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 되돌아보고, 도에 대한 이치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안배 등을 살펴서, 자신의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고 깊이 성찰하며, 끊임없이 궁금증을 가지고 수련하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마음만 닦는다고 닦여지는 것이 마음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운기만 해 준다고 닦이는 마음도 아니다. 둘은 양립해야 한다. 수심과 운기는 어느 것에 비중을 두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공부가 적게 되고 또 많이 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수심하고자 할 때, 단지 운기법대로 막연하게 수련해서는 마음이 적게 닦이고, 반대로 적극적으로 마음을 닦고자 하여 이치를 궁구하고 주위를 되돌아보며 운기할 때, 그로 인해서 마음은 더 많이 닦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수심(先修心)하고 후운기(後運氣)라는 것을 수련인의 첫 번째 심훈으로 삼는다.


둘째,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은 오히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라는 말과 통한다. 진정으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당당할 수 있다면 도심에 가깝다 할 수 있겠지만, 남이 알아 주길 바라지 않는 가운데 남을 알아 줄 수 있는 넉넉함까지 있다면 진정 도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남이 알아 주길 바라지 않는 가운데 남을 알아 줄 수 있는 넉넉함까지 있다면 진정 도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련인이라면 마땅히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셋째, 불비타인(不比他人)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불비타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신감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자신의 수련에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 속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구체적인 긍정에서 오는 자신감이 있다.
거기에 하나 덧붙여서, 하나 허망한 것에 대한 깨달음을 통한 부정의 뜻이 들어 있다. 사람은 어차피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어 있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고 하는 그 이면에는 이미 비교하고 있는 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비타인은 비교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비교한다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는, 곧 깨달음을 통한 부정의 뜻이다. 즉 자신에 대한 구체적인 긍정에서 오는 자신감과 깨달음을 통한 부정, 이것은 불비타인의 핵심 의미이며, 수도자가 유념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넷째, 무고무도 통자무고(無苦無道 通者無苦)는, 고(苦)가 없으면 도(道)는 없고 통(通)하면 고(苦)가 없다란 말이다. 고는 도를 닦는 거름으로 사람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릇이 깨어지는 고통을 겪게 되었을 때, 새로 전보다 더 큰 그릇을 만들게 되는 것이 도를 공부하는 사람의 기본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는 타협할 것이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것이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고는 결국 어리석음에 도(道)사람은 도를 공부하게 된다. 그러한 자기인식이 있은 후에야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므로 고(苦)가 없으며 도(道)도 없고, 통(通)하게 되면 고(苦)를 더 이상 고(苦)라 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째, 선배려 후도법(先配慮 後道法)이란, 도법을 닦기에 앞서 다른 이에 대한 배려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다. 우리가 하는 이 공부 자체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한시간 앉아서 호흡한다는 것이 단지 나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만큼 세상의 기를 정화하고 빛을 보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큰 공부를 하면서 마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의 다름이 아니다. 마음을 조금만 더 크게 갖자. 어차피 더불어 가는 길이다. 다른 이에 대한 배려심이 클수록 도의 바른 이치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도(道)를 이루려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도(道)를 전(傳)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05. 온양(溫陽)

온양(溫陽)이란 축기된 진기를 끌어올려 머리속 끝에 있는 니환궁(尼丸宮) 백회(百會)에 차곡차곡 쌓아줌으로써 수화(水化)가 합일(合一)된 보다 완성된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수련을 말한다. 앞서 수련한 대맥운기와 소주천은 그 자체로도 대단한 성과임에는 틀림없지만 결코 완성의 경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선도수련의 처음과 끝은 결국 조화(調和)를 추구하려는 것인데, 대맥운기와 소주천 수련의 전과정은 호흡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호흡은 그 자체가 양화(陽火), 즉 뜨거운 불기운이다. 지금껏 이러한 진기중의 화(火)의 힘으로 인해 막혀있는 규를 뚫는 것이 가능하였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의 수련은 양화만의 수련이었으므로 이제 온양을 통해서 조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의 만물은 음과 양의 상생상극의 조화를 통해 변화 발전하고 유지되어 간다. 천지에 음양이 있어 우주에 일월이 있고 하루 밤과 낮이 있으며 사람에게 남녀가 있듯이, 음이든 양이든 어느 한쪽으로 편협된 것은 결코 완성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러한 이유로 선도수련에서 온양(溫陽)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맥운기와 소주천은 본질적으로 양화(陽火)로 인한 수련이었으므로, 지금까지 수련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음수(陰水)를 생성시켜 양화(陽火)와 합일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을 우리는 온양이라 한다. 즉 소주천까지는 진기 중에서도 양화가 강한 수련이었다면, 이젠 진기 중에 음수가 강한 온양을 통하여 양화의 진기와 음양조화(陰陽調和)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온양수련을 완전히 끝마치게 되면 이전까지 진기를 생성하는 유일한 곳, 석문에서 벗어나 임독이맥(任督二脈)이 진기의 소생처로 화하게 되므로 수련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 온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무의식으로 일관되어온 운기방법이 온양이 끝난 시점부터는 의식을 사용해도 진기를 이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온양의 의의가 담겨져 있다.


온양수련을 할 때는 자세를 좀 달리해서 한다. 물론 기본적인 자세는 유지한 채 손 모양만 변화를 주는 것이다. 즉 기본적인 좌식자세에서 양손의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붙여 둥글게 원을 만든 후에 양 손등이 무릎에 닿도록 하여 가볍게 올려 놓는다. 이렇게 하면 좀더 효율적으로 음수와 양화의 기운이 합일하도록 할 수 있다. 이것이 온양의 기본자세이다.


온양의 심법은  하단전의 진기를 독맥을 통해 끌어 올려 니환궁 백회에 모은다 이다. 즉 축기를 통해 흘러 넘친 진기를 무의식으로 하단전에서 회음으로 다시 독맥을 통해 머리속 끝에 있는 백회까지 끊임없이 올려 보낸다. 이때 한가지 유의할 점은 진기가 백회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백회를 지나쳐 넘어가게 되면 온양은 되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많은 온양 수련자가 이제껏 해 온 소주천 운기에 익숙해진 탓에, 수련초기에 진기가 백회에 쌓이지 않고 바로 인당까지 흘러가는 것을 경험하는데, 그럴 경우에는 단전에 70퍼센트 백회에 30퍼센트 정도 의식을 배분시켜, 목표를 보다 정확히 의념한 후에 기의 흐름에 주의하면서 수련하면 진기는 백회를 넘지 않고 니환궁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이렇게 쌓인 진화(眞火)의 기는 니환궁에서 진수(眞水)의 기를 만나 아주 차갑고 시원한 냉기로 변한다. 백회에 모여 차갑게 식은 진기는 이윽고 넘쳐흘러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서서히 적셔 내려오게 되는데, 그 느낌이 꼭 찬물이 적셔 내려오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내려오는 느낌에는 신경쓰지 말고 단지 느끼기만 하면서 계속해서 백회에 기를 올려 보내야만 한다. 이때 흘러 내려오는 느낌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되면 이 또한 생기수련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에 반드시 주의해야만 한다.


계속 온양을 하다보면 찬물이 적셔 내려오는 것 같은 그 느낌은 이마를 지나 점차 아래로 내려와 입이 있는 곳까지 다다르게 되고, 입안에 단침이 고이면서 코에는 시원하고 독특한 맑은 향기가 생긴다. 이 때 생기는 단침을 삼키고 향기를 들이마시면 절로 임맥을 통하여 위장과 하단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온양 수련시에 전신에서 향내가 풍겨 나온다거나 만성 위장병이 치료되거나 하는 경우도 있고,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신장(腎腸)기능이 허약하여 정수(精水)가 부족한 사람의 경우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단침을 계속 삼키다보면 이제는 찬 기운이 아닌 실제로 찬물이 점점 내려와 목을 지나 중단전의 중주대맥까지 내려오게 된다. 찬물이 내려올 때는 일부분만 적셔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몸 전체를 단면으로 하여 수평으로 적시면서 내려온다. 그렇기 때문에 수련자는 온양수련을 할 때는 반드시 정확한 자세를 취하여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세가 편중되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치우친 쪽으로 기가 흘러버리게 되는데 이래선 온양이 되지 않는다. 이는 물을 담는 그릇이 기울어져 있을 때, 그릇에 물이 가득 차지 않아도 기울어진 쪽으로 흘러 넘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온양도 여느 운기와 마찬가지로 백회에 쌓인 진기가 진수를 만나 완전한 기로 변한 후에, 계속해서 밀려 올라오는 기에 의해 자연스럽게 넘쳐흐르게 되었을 때 비로소 공부가 진행되는 것이다.


자세뿐만 아니라 온양은 수련시간도 중요하다. 온양을 할 때는 일반 운기수련과 달리 가능한 오래 앉아 있어야 한다. 적어도 한번 수련에 들면 45분 이상은 수련을 지속해야만 진화와 진수가 합일되어 차갑게 식게 된다. 이는 수화합일(水化合一)의 진기가 균일하게 몸을 적셔 내려오는 데는 45분이라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머리끝부터 적셔 내려오는 진기의 느낌은 무어라 형용하기 힘들다. 그나마 한겨울에 찬물을 온몸에 끼얹는 것과 유사하여 찬물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체질과 수련 정도에 따라 미지근하게 혹은 시훤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온양은 기감보다는 의미가 더 중요한데, 온양(溫陽)이란 결국 뜨거운 양화의 진기를 차가운 음수의 진기와 합일시켜, 따뜻하고 온화한 조화의 진기가 몸 안에 자연스럽게 자생하도록 하려는 것이다.찬물이 내려오다가 보면 중주대맥과 하주대맥 부위에서 막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무릎이나 발목 등 관절부위에
서도 잘 막힌다. 어디서 막히든 중요한 것은 하단전 축기다. 축기가 원활히 이루어지면 기 자체가 강성을 띠기 때문에 막힌 곳을 쉽게 뚫고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발가락 끝까지 내려가야 한다. 발가락 중에는 엄지발가락이 제일 끝이다. 엄지발가락까지 진기가 내려가면 니환과 인당사이를 이어주는 기운의 통로를 확연히 느끼게 되고, 마침내 엄지발가락 끝을 적시는 순간 머리끝 니환궁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물체, 탁구공보다는 조금 작은 둥근 물체가 통로를 따라 주르륵 흘러서 상단전 인당으로 미끄러지듯이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바로 온양을 통해 합일된 수화(水化)의 결정(結晶)이 상단전에 있는 상주(上珠)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온양이 끝나면 한동안 인당에는 훈훈한 기운이 탁구공만하게 맴도는 느낌이 계속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소주천인 임독이맥(任督二脈)이 진기의 소생처로 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화합일(水火合一)하여 진기의 소생처가 마련되므로 진기는 우리 몸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생하게 된다.


온양을 이루게 되면 진기의 완성도면에서 엄청난 진보를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애써 운기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가운데 소주천이 스스로 하루에 육주(六周)를 하게 되므로 수련에 큰 도움을 받는다. 즉 자동적으로 매시마다 일주(一周)씩 모두 여섯 번 운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 시각은 자축시(子丑時)에 한 번 돌고, 인묘시(寅卯時)에 한 번 돌고, 진사시(辰巳時)에 한 번 돌고, 오미시(午未時)에 한 번 돌고, 신유시(申酉時)에 한 번 돌고, 술해시(戌亥時)에 한 번 돌아서 일주씩 모두 육주(六周)이다.

수련이 여기까지 오게 되면 대주천(大周天)수련에 들어간다.

 

온양 체험기 : 아빠 등 좀 밟아라! 海 仙 김 동 윤

 

10여 년 전쯤, 큰 자동차 사고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경추를 좀 다쳤었는데,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목이 뻐근하고 아파서, 아이들에게  아빠 등 좀 밟아라!  혹은, 하루 종일 집안일로 역시 녹초가 된 집사람에게,  여보, 어깨 좀 주물러 줘!  하곤 했었다. 그후로도 목이 아픈 것은 쉽게 나아지질 않고 통증이 계속되어서, 그냥 이렇게 살다 가야(?)하나 하고, 거의 포기를 하고 지냈었다. 그러던 중에 수련을 하게 되고 단계가 온양에 이르러 세선법 행공을 하게 되었다. 소주천 단계 때 하는 화진법 행공이 다리를 튼튼히 하는 행공이라 한다면, 세선법은 상체를 거의 쥐어짜는 행공이었다. 혹자는 이 세선법을 빨래 짜는 행공이라고 한다. 그러기를 한 달쯤 하였을까?

 

하루는 집사람이  요즘은 어깨 주물러 달라는 소리를 안 하네! 신기하다! 하는 것이었다. 정말 그랬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좋아진 어깨가 참으로 신기하기만 했다. 이렇게 힘든 행공을 했으니 본수련은 좀 쉽겠지. 대맥이나 소주천때 하던 운기수련과 달리 그냥 백회에 축기만 열
심히 하면 되니 별문제도 없겠는걸. 이처럼 시작은 가벼운 마음으로 했다. 온양 심법을 걸고, 폼나게 양손을 무릎에 얹고,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하여 결인을 맺고, 본수련에 들어갔다.


처음엔 백회를 자꾸 넘어 가던 기운이, 며칠 지나지 않아 제대로 니환궁 백회에 멈춰서 정확히 쌓이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백회 근처에 있는 머리카락을 시계 방향으로 살살 돌리는 듯한 느낌과 약간씩 따끔거리는 느낌, 그러다가 어떨 땐 백회 부근에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몇 주가 지나자, 이젠 아예 머리에 투구를 씌워 놓은 듯, 머리 전체가 묵직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왜 머리가 아플까?  그런데 가만히 느껴보니, 머리 아픈 게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보통 전에는 머리가 아프면 무엇인가가 마구 머리를 조여 매는 듯이 아팠었는데, 지금은 마치 머리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뭔가가 팽창하듯이 아픈 것이었다. 그렇게 머리는 아팠지만, 보통 두통이 올 때처럼 기분이 나쁘다거나 짜증이 나거나 하지 않고 그냥 아프기만 했다.


이런 기감이, 한 2∼3주 정도 지속되더니, 어느 날 감자기 머리가 시원해지면서 찬 물방울이 뒤통수, 뺨, 이마 등등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땀이 흘러내리는 줄만 알고 땀을 닦으려고 손으로 빰에 문지르곤 했다. 물론 아무 것도 손에 묻어 나지 않았다. 시원한 물줄기가 주르르 흘러내리는 듯한 기감은 나중에 알고 보니 생기에 의한 것이었다. 그 차갑던 기감이 생기감이었다니! 역시 생기감은 화려했다. 그후에 수련점검에서 확인된 것이 아직 백회에 축기도 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수련의 부족을 느껴야만 했다.


한달이 더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머리 속에서부터 차분하고 시원하게 내려가는 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 생기에 속은 탓도 있고 해서  이 기감에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 관조해야 된다, 라고 스스로 다짐해가며 수련을 계속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역시 온양 수련은 시간이 말을 해주는 것 같다. 1시간을 수련할 때와 2시간, 3시간을 수련할 때는 그 기감이 너무나도 달랐다. 도장에선 마냥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주로 집에서 자시수련을 했는데, 앉아 있고 싶을 때까지 계속 앉아 있어 보았다. 처음엔 의식도 자꾸 떠오르고, 호흡도 고르지 않던 것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너무도 편하고 좋았다. 그대로 그냥 밤을 지새고 싶은 적이 많았을 정도로 뭐라고 글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힘든 그런 기분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앉아 있었나 싶다가 수련을 파해보면, 두세 시간이 쉽게 흘러가 있었다. 그달엔 수련을 즐겁게 한 탓인지, 한달 만에 옥당까지 내려 왔다는 점검을 받을 수 있었다. 갑자기 하근기가 상근기가 된 듯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곧 세상사 새옹지마라 옛말이 그르지 않음을 알았다. 그렇게 잘 되던 온양 수련에 드디어 제동이 걸린 것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만심에 빠진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본수련만 들어가면, 온 몸이 뒤틀리고 답답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수련 중에 잡념이 하나 떠오르더니 꼬리에 꼬릴르 물고 계속되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지금 내가 여기서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는 것인가?
 내가 시간 낭비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럴 시간에 열심히 뛰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치 회사나 집안에 무슨 일이 꼭 벌어진 듯한 느낌이 마구 엄습해 왔다. 수련을 하다 말고, 밖으로 나와 전화를 해 보면, 아무 일도 없다고 한다. 자꾸 수련이 하기 싫어졌다. 스스로 핑계를 만들어 가며 수련을 빼먹을 궁리를 하게 되었는데, 심지어  이거 뭐 평생할 수련인데, 또 수련은 생활의 일부처럼 하라고 했잖아,

 

 밥 한끼 굶는 것처럼 수련 하루이틀 쉬었다고 큰일이 나려고...  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사실 수련 하루이틀 쉬는 게 무슨 큰일이겠는가? 단지 그 하루 이틀이 일주일이 되고, 한 달 두 달이 되면 점점 하기 싫어지고 다시 수련으로 돌아오기가 힘들어지니 그것이 문제지. 이런 위기(?)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집사람이었다. 주로 퇴근 시간에 수련을 하고 집에 들어가곤 했는데, 그 당시에는 수련도 하지 않고 집으로 바로 오다보니까 뭔가 눈치를 챘었던가 보다. 집사람이, 자기는 오전 수련을 갔다 왔음에도 불구하고, 저녁에 한가한 나를 닦달해서 같이 저녁 수련을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비록 하기 싫은 수련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가다시피 몇 주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
선 정말 고마울 뿐이다.


이런 나날이 한달 정도가 계속되었다. 단지 수련밖엔 한 것이 없는데도, 서서히 마음이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그달의 수련 진도는 좀 부진했다. 겨우 옥당에서 거궐 정도, 한치(一寸)쯤 기운이 내려왔다. 그후로 조급함을 조금씩 버리고, 묵묵히 수련만 계속하던 어느 날이었다. 기감이 발목쯤에서 어리는 것 같더니 갑자기 백회에서 인당으로 기운이 몰려가면서, 인당에 묵직한 기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 인당의 묵직한 기감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나타났다.


 음, 드디어 구슬이 떨어진 것인가? 근데 구슬 같은 것은 느끼질 못했는데? 이번 점검이 기대되는군. 혹시 대주천 올라가라 그러시면 어쩌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나 입이 찢어질지도 모르는데. 음, 난 표정 관리도 잘 못하는데. 하지만 입이 찢어지는 경우도 표정 관리를 할 필요도 다행히 없었다. 점검 결과 그것은 구슬이 떨어지기 전 미리 통로가 열리는 기감이었던 것이었다. 마음을 편히 갖고자 했다. 발가락 끝에서 걸려서 석 달 넉 달을 보내는 분들도 많다고 하지 않던가.


마음을 편히 먹으니, 오히려 수련이 잘되는 것 같았다. 수련할 때만큼은 몸도 마음도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불과 몇 달 전엔 그렇게 몸과 마음이 뒤틀리더니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백회가 찢어지는 듯이 아프더니 무엇인가 백회 쪽에 커다란 기운이 모이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내 주먹보다는 조금 작고, 딸내미 주먹보다는 좀 큰 듯한 기운 덩어리가 인당으로 쭉 밀려들어가는 것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온 머리가 인당으로 빨려 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며칠 후 집사람이 내 몸에서 풀냄새가 난다고 했다.
 전엔 담배에 찌들어 이상한 냄새가 나더니 오늘은 풀 냄새가 나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온양 수련 중에는 몸에 향기가 난다고 하던데 향내가 아니고 웬 풀 냄새?  그렇게 계속 수련을 하면서, 두 번 정도 더 백회로부터 인당으로 떨어지는 기감을 느꼈지만, 처음 보다는 기간은 좀 약한 듯했다. 이때부터 온양수련을 하면 전과는 다른 기감이 왔다. 더 이상 뭔가 흘러내리는 듯한 기감은 없어지고, 한참 수련을 하고 나면 마치 몸 안에 무엇인가가 꽉 차 있어서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떨 때 호흡이 이상하리만치 짧아지는 것도 경험을 했다.


돌이켜보건대 지금까지 해 온 수련 단계 중 어느 것 하나 덜 중요하고 덜 힘든 수련은 없었지만, 이 온양 수련은 나에게 있어 의미가 큰 단계였던 것 같다. 평소 많이 아프던 지병도 고쳤고, 마음도 넓어져서 생활이 차분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해나갈 수련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것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더욱 열심히 수련해서 끝을 볼 수 있는 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06. 대주천(大周天)

지금까지는 모든 수련에서 철저한 무의식이 강조되어 왔다. 의식이라면 오로지 단전에 축기하는 데만 두고, 심법을 통해서 무의식으로 운기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유일한 수련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온양을 통하여 진기의 소생처가 마련되었으므로 기를 모으기 위한 의식의 집중은 필요없게 되었다. 즉 대주천부터는 의식을 사용하여 수련한다.


대주천은 하늘의 천기(天氣)와 땅의 지기(地氣)가 천지공간의 기와 통하여 인체 내에 흐르게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양발중앙의 용천과 양손 중앙의 노궁, 그리고 머리 끝에 있는 백회를 체내의 진기로 뚫어서, 백회를 통하여 천기를 받아들이고, 용천을 통하여 지기를 받아들이며, 노궁을 통하여 공간의 기를 받아 서로 통하게 하는 것이다.


대주천 수련이 본격화되면, 하단전은 도태되고 중단전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때문에 수련자 스스로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다스려 얽매이지 않게 되고, 자연과 더불어 초연하게 되며, 사람과 어울려 공생(共生)할 수 있게 된다.
대주천 자세도 좌식자세가 기본이다. 단지 의식의 효율적인 집중과 기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서 양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여 무릎위에 올려 놓는 것이 좋다.


대주천운기는 의식으로 단전의 기를 회음에 모으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의식으로 기를 이끈다고 해서 의식의 100%를 모두 기의 흐름에 두라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의식은 단전에 있는 가운데 흐름을   아 운기해야만 한다.
즉 지금까지는 단전에 70%, 기의 흐름에 30% 의식을 두었다면, 이제부터는 단전에 30%, 기의 흐름에 70%의 의식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기의 흐름을 무시한 채 조급하게 이끌려고 하면 진기는 끌리지 않고 진기를 감싸고 있는 생기를 이끌게 되므로 주의하도록 하자.


회음에 모인 진기가 마치 단전의 그 느낌처럼 충실하게 되면 진기를 다리 정중앙을 통해 왼쪽 발바닥의 용천까지 보낸다. 대주천운기는 왼쪽 발부터 뚫어주어야 한다. 이때 관절부위인 무릎과 발목 등에서 진기가 막혀 잘 흐르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지식을 사용해서 뚫으면 된다. 대주천에서는 지식을 사용할 때도 의식을 앞세운다. 의식을 막힌 부분에 집중적으로 두게 되면 진기가 강성(强性)을 띠게 되어서 쉽게 뚫을 수 있다. 이 점이 소주천과는 다르다. 주의할 점은 용천으로 보낸 진기를 단지 용천에 모으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용천을 뚫고 내보내어 내기(內氣)와 외기(外氣)가 교류하도록 해야한다는 점이다. 의식으로 용천을 뚫고 진기를 밖으로 한 뼘 정도 내보낸 후에 다시 회수해서 회음까지 끌어올린다.

회음에 모인 진기를 이번에는 오른쪽 용천까지 보냈다가 다시 회음으로 끌어올리는데 왼발과 동일한 방법으로 하면 된다.


이렇게 진기가 양쪽 발을 모두 유통시키고 회음으로 되돌아오게 되면, 하단전 석문을 거쳐서 중단전 옥당까지 진기를 끌어올린다. 이때 중단전에 강한 압박감이 느껴지면서 답답해지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중단전 옥당에 기가 강하게 몰리면서 나타나는 기감이므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보통 대주천의 강력한 진기는 하단전에서 중단전으로 운기되면서 뜨거운 열기를 수반하기 때문에 수련자에 따라서는 강렬한 뜨거움이나 다소의 어지러움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진기가 중단전 옥당까지 올라오면 왼팔 중앙을 통하여 손바닥의 노궁을 뚫는다. 팔도 마찬가지로 남녀 모두 왼팔부터 뚫어 준다. 이렇게 노궁을 뚫고 외기와 접한 후에 다시 중단전까지 회수해서 오른팔을 뚫는다. 오른쪽 노궁을 뚫은 후에도 마찬가지로 진기를 옥당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양쪽 노궁을 통하고 중단전에 진기가 회수되면 곧바로 중단전에서 상단전 인당으로 끌어올린다. 진기가 상단전에 이르게 되면 상주대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바퀴 운기시킨 다음 인당에서 백회로 진기를 끌어 올려 백회를 뚫는다.


백회를 뚫을 때는 의식을 집중하여 진기를 보다 강하게 응집시킨 연후에 뚫어 주는 것이 좋다. 백회뿐만 아니라 노궁이나 용천을 뚫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게 되면 막바로 진기를 이끌어 뚫어 주는 것보다 오혈(五穴)이 확실하고 크게 뚫리기 때문에 거의 교류가 더욱 원활해진다. 진기가 백회를 뚫고 30여 센티 정도까지 밖으로 나가게 되면 다시 백회로 회수해서 인당에서 갈무리한다. 이렇게 내기(內氣)가 양발의 용천과 양손의 노궁, 백회 등 오혈(五穴)을 뚫고 외기(外氣)와 접하여 다시 인당까지 다다르게 되면 드디어 대주천을 이룬 것이다.


대주천을 이루면 이전 단계와 마찬가지로 반복해서 운기해 준다. 물론 소주천 때처럼 일주하는 데 2분이 넘지 않을 정도까지 반복 수련을 해야만 한다. 일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분 내로 줄어들면, 이제는 회음에서 양발 용천으로 동시에 운기하고 다시 중단전으로 끌어 올려 양손 노궁으로 동시에 기를 보내 운기해 본다. 다시 말해서 운용의 묘(妙)를 발휘해 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 수련을 하다보면 의식의 분할(分心)이 자유롭게 되면서 운기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운기시의 기감도 꺼끌꺼끌한 느낌이나 열감보다는 청신하고 안정된 은은한 느낌이 들게 된다. 대주천이 일주하는데 2분 안으로 소요되는 경지는 근기(根氣)에 상관없이 누구나 백주(百周)안에 되므로 오직 수련자의 노력(勞力)이 귀하다 하겠다.

 

대주천 요결
대주천은 신체 내외의 여러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다. 여기서는 대주천 수련자가 알아두어야 할 변화들과 심득(心得) 사항 몇가지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우선 신체적인 변화이다. 대주천을 이룬 후에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전보다 피로를 덜 느끼게 되고, 또 피로해지더라도 빨리 회복할 수 있다. 소주천 때보다도 훨씬 컨디션이 좋고 머리가 맑아지며 팔다리가 마치 솜처럼 가벼워져서 등산이나 축구같은 지구력을 요하는 운동을 했을 때, 체력이 전보다 현저히 좋아졌음을 확연히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관악산을 등산한다고 했을 때, 서울대 입구에서 연주암을 지나서 팔봉까지 완주를 하고 나서, 전에는 등산후의 피곤함 때문에 그 날 오후 내내 휴식을 취해야 했다면, 유통 후에는 가볍게 산책한 정도의 노곤함 정도만 느끼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기적인 변화이다. 대주천을 통해 오혈을 뚫고 천지간의 기운과 통하게 되면, 심력과 더불어 기적(氣的)인 활용 능력도 커지게 된다. 즉 천지자연에 있는 모든 기운을 마음대로 끌어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현무(玄舞), 현공(玄功), 그리고 현치술(玄治術) 등으로 발현되는데, 대주천을 이룸으로써 이러한 높은 운심(運心)의 경지를 보다 완벽하게 터득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전 단계에서도 현무나 현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대주천 이후에 보다 깊은 체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수련 단계가 더 높아져서 뭔가를 알게되면, 현무와 현공을 완전히 터득한다는 것이 더 어려워지므로 대주천 단계때 현무와 현공을 완전히 터득한다는 것이 더 어려워지므로 대주천 단계인 현무와 현공을 열심히 연습하여 그 오묘함을 터득하는 것이 좋다. 현무라는 것은 기의 흐름을 부드럽게 타면서 추는 춤을 말하고, 현공이란 것은 심력을 강하게 사용하여 호신강기(護身剛氣)를 타는 것을 말한다. 기를 탄다고 하여 현무와 현공이 단순히 기운을 끌어 춤을 추는 차원의 것은 아니다. 부단한 연습을 통해 현무와 현공의 묘(妙)를 깨닫게 되면, 몸도 마음도 아닌 몸과 마음을 같이 깨달을 수 있게 된다. 현치술은 일종의 치료를 위한 것으로, 대주천을 이루게 되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단지 심법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 능력, 즉 기력과 심력이 생기므로 이전보다 활용 범위가 넓어진다.


현무와 현공을 할 때 있어 가장 주의할 점은 선입관을 갖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보든 나무가 아닌 산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으로 넓은 안목을 가지고 정신과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현무와 현공을 통한 기(氣)의 체득과 얻어지는 힘은 엄청난 것이지만, 이러한 기적인 측면은 연습을 통해 단련되는 것이지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므로 수련자는 노력하여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셋째로 영적인 측면이다. 대주천을 반복해서 운기하게 되면 삼단전에 있는 세 개의 여의주가 깨끗이 닦여져 빛을 발하게 되는데 그 빛에 의해 영이 맑아진다. 영이 맑아지면 영력(靈力) 또한 커지므로 일반인과는 다른 탁월한 직관력을 갖게 된다. 예를 들면 누가 옆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 순간 그 사람 모습이 떠오른다거나, 무엇이든 궁금한 생각이 들면 그에 대한 해답이 영감(靈感)으로 와서 알게 된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 이것은 삼주(三珠)가 조금씩 아주 여러 번 닦여 서서히 빛을 내뿜기 시작한 때문이다. 즉 중단전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상단전 또한 조금 밝아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직 양신(陽神)을 이루지 못한 상태이고 기적인 차원에서 조금 정진된 것뿐이기 때문에 영력에 의해 어떤 현상을 보게 된다거나 해답을 구하는 것이 늘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나름대로 한계를 갖는다. 어느 단계를 수련하든지 간에 수련자는 자신의 수련단계가 가지고 있는 공부의 한계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한계를 안다는 것은 발전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 외 몇 가지 주의할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대주천이 의식을 사용한 수련이라고 하여 일부 수련자 중에는 진기가 아닌 생기로 대주천을 유통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의식이 기운을 앞서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의식을 사용한다고 해도 의식이 진기의 흐름보다 앞서 가게 되면 진기가 아닌 생기를 끌어 운기하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운기시 수련자의 의식은 진기의 바로 뒤를 따라 가면서 조금씩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수련자 중에는 외부의 기(外氣)를 바로 끌어 들여 오혈(五穴)을 뚫고자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올바른 수련이 아니다. 물론 진기유통(眞氣流通)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외부의 기운으로 백회를 열거나 혈을 여는 것은 빙의나 접신 같은 부정적인 현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하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은 중심(中心)이 있어야 한다.
내기(內氣)를 충분히 단련시켜 얻은 힘으로 오혈을 유통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자.

대주천 수련 체험기 : 모든 관점을 하늘에 맞추어 두고...

 

淸 雲 강민섭

대주천이 이전에 해 왔던 수련과 다른 점은 의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의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기(氣)적으로는 온양수련을 마쳐 이미 온몸의 진기화가 이루어진 상태라, 이젠 의식을 사용해도 생기를 끌거나 해서 수련이 헛되게 되는 일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면 도(道)적으론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비록 자신의 몸안에서의 운기이긴 하나 의식을 사용해도 된다는 것은, 이미 하늘로부터 어느 정도의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뜻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일 테다.


  그러나 수련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대주천 수련 역시 의식을 사용함에 있어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의식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기운을 이끌면 역시 가벼운 기운, 즉 생기가 빠르게 이끌려 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기운을 이끌어 대주천 통로를 유통시켰다간 분명 점검에서 다시 하라는 판정이 나올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런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직은 의식을 백프로 사용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의 전환. 아마 의식의 무의식화 혹은 무의식의 의식화라는 말로 표현하는 게 더 옳을지 모른다. 의식을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 즉 아직은 의식사용이 완전하지 않기에 그냥 익히는 단계라는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이전의 온양수련의 지루하고 어려운 과정에 비하면, 대주천 수련은 상대적으로 쉽고 재미있는 단계임에는 틀림이 없다.


대주천 유통을 이룬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와룡산 산행 중이었는데, 오혈(五穴)을 열어 산천의 가득한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심법을 건 후 묵묵히 앞만 보며 발을 내딛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주위의 기운이 답답하게 막혀옴을 느꼈다. 그래서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니 서너 명의 중년의 남녀가 길섶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자연과 인간의 기운이 그렇게 다르리라고는 이전엔 상상도 못했었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주위의 기운과 교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유통을 이룬 후 본격적으로 2분내 운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았다. 우주 속에 있는 오행(五行)의 기운을 끌어서 감별해 보는 것이 그 하나였는데, 그 미묘함의 차리를 구분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처음엔 손가락을 각각 하나씩 오행에 배당시켜 백회로 끌어들인 기운을 감별해 보았다. 기운이 미묘하게 다르긴 한데 정확히 표현해낼 재간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 다음엔 백회로 끌어들인 기운을 중완에 일단 모아 각각의 해당 장부로 기운이 가도록 하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의 기운용 묘용인데 청월단사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었다. 어떻게든지 기운의 감별이 이루어지면 그만큼 심득(心得)이 따라오고, 더불어 수련에 대한 심력(心力)이 강해지는 것이라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일상화된 부분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부분 중 하나가 대주천 수련을 하다보니 직감이 많이 발달한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어떤 사람, 어떤 일에 대한 직감이 순간적으로 발동할 때면 거의 맞아 들어갔다. 예를 들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여지없이 그 사람이 예상하던 말을 하는 식이다. 내가 미리 말을 꺼내면 그 사람이  어? 귀신이네... 하는 식이었다. 한 가지 더 재미있었던 경험을 말하자면 누군가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면 반드시 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오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기력이 강해질수록 염력도 강해진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고 보니 함부로 삿된 생각을 하면 안되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이제는 모르겠다.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아님 다시 무디어진 건지 알 길 없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지나가는 과정이었으리라 생각할 뿐이다.


유통 직후부터 항상 백회로 기운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량한 기운이 들어오는 느낌이 좋아 한참 동안 가만히 기운을 맛보곤 했다. 그만큼 기력도 강해지고 기운 회복도 이전보다 엄청나게 빨라졌다. 자연스레 수면시간도 이전의 4분의 3정도로 급격히 줄어졌다.
대주천 유통후 매일 3∼4시간 정도만 자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일상에 전혀 무리가 느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또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 그건 기치료를 하게 될 때이다. 이전엔 원거리 기치료를 하면 약 5분 정도만 해도 기력이 많이 딸리는 걸 느꼈는데, 이젠 백회로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기보내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력이 줄어드는 속도가 많이 줄었다. 만약 한시간 정도의 기치료를 하고 나면 이전 같아서는 초죽음이라 할 정도로 온몸이 축 쳐지는 피로를 느끼곤 했지만, 이젠 약간 피곤하고 나른함을 느낄 정도로 기력이 발전했다.


오혈이 열러 천지자연의 기와 직접 교통한다는 게 정말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마음이 변화이다. 매일 매일의 수련을 의무감 비슷한 것으로 알고 하던 것으로부터, 스스로 원해서 즐겁게 하는 수련으로 변해 나갔다. 이제는 수련진도의 빠르고 늦음에 대한 집착도 많이 줄어들었다. 대주천을 이룬 수련자에 걸맞는 마음과 기력, 기운용 능력 등등을 갖추어 알차게 수련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를 있게 한 천지자연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그 배려에 부끄럽지 않는 학인(學人)이 되어야 한다는 자각도 밀려들었다.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닌 항상 우주와 함께 숨을 쉬는 하인이 되고 싶다.

 

그러기에 서서히 도(道)에 대한 개념이 정리가 되어 나갔고, 이제야말로 나도 첫걸음을 내딛는구나 하는 대견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이젠 모든 생각, 마음 씀씀이 하나 하나가 내 것이 아닌 우주의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 모든 관점을 하늘에 맞추어 두고 산다고나 할까. 아직은 인간적인 습(濕)과 착(着)들이 많이 남아 있기에 혼란스러운 일들도 많다. 하지만 이제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진정한 공부는 이제부터인 것이다.


이 수련을 통해 나를 바꿔가며, 궁극으로는 하늘의 뜻에 거슬리지 않고, 더 나아가 하늘 일을 하게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수련과 일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할 뿐이다.

 

심법(心法)

심법이란 마음을 쓰는 법을 말한다. 석문호흡의 수련단계 전체를 살펴보았을 때 크게는 진기수련과 양신 이후 공부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진기수련을 보다 세분화하게 되면 운기편과 심법편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기준이 되는 단계가 대주천이다. 즉 대주천을 이루게 되면 기적인 면에서는 이미 충분한 역량이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대주천 이전 단계는 심기쌍수의 측면에서 볼 때 기적인 면이 강했고, 대주천 이후는 심적인 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주천 이전은 선수심후운기중 운기공부가 수심공부를 이끌어 가는 것이 컸다면 이제부터는 수심공부가 운기공부를 이끄는 것이 크다는 이야기다.


대주천을 이룬 이후에는 공부도 상당한 여유를 가지게 된다. 하루 1시간 정도만 앉아서 집중적으로 수련해도 그 날에 필요한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외의 수련시간은 전단계의 복습과 기적인 활용,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데 투자하도록 하자. 공부가 여기에 이르면 자신이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있고, 또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깊이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07. 일월성법(日月星法)

대주천 이후에 하게 되는 네 개의 법(法)단계는 심력(心力)을 크게 키우고, 심법(心法)을 보다 깊이있게 터득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그 첫 단계가 일월성법(日月星法)이다.


대주천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제는 심법에 따라 어떤 기운도 끌어들여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졌다. 이미 오혈(五穴)을 통해서 천기와 지기, 그리고 공간의 기와 교류하고 있으므로 이제는 해, 달, 별의 기운을 집중적으로 받아들여 천지대자연과 보다 완성된 합일을 추구해야 한다. 일월성법은 천지대자연의 해와 달, 그리고 별과 수련자의 기를 하나로 합일시켜 일체화하는 수련이다.


일월성법은 일법(日法)과 월법(月法), 그리고 성법(星法)으로 이루어졌다. 즉 태양의 기운을 끌어들여 태양과 일체를 이루는 것이 일법이요, 달의 기운을 끌어들여 달과 일체를 이루는 것이 월법이며, 법의 기운을 끌어들여 별과 일체를 이루는 것이 성법이다. 이 세 가지를 합쳐서 일월성법이라 한다.


수련시 자세는 일어서서 하는 입식자세(立式姿勢)가 정자세(正姿勢)이다. 수련이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수련자는 자세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도 언제 어느때나 수련을 할 수 있지만,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시간을 수련했을 때 입식이 더 효율적이므로 입식을 취한다. 각각의 수련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일법(日法)
일법은 태양의 기운을 백회로 빨아들인 후 척추 정중앙을 통해 내려서 대맥과 독맥이 교차하는 명문혈에 모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심법을  백회로 태양의 기운을 빨아들여 척추중앙을 지나 명문에 모은다 라고 하고, 백회에 의식을 둔 채 태양의 기운을 빨아들여 천천히 척추 정중앙을 통해 명문까지 끌어내린다. 이것이 능숙하게 잘되어 백회와 명문사이에 길이 열리면 그 다음부터는 백회에 의식을 조금만 두고 대부분의 의식을 명문에 두어 집중적으로 일기(日氣)를 모은다.

 

즉 백회로 기를 받아들여 명문을 제 2의 단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때도 물론 기본적인 의식은 석문에 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태양의 기운이 백회를 통해 들어와 척추를 타고 명문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명문이 마치 풍선이 부풀어오르는 듯한 충만한 느낌을 받게 된다. 수련을 계속하여 몸과 마음이 태양의 기운과 완전히 합일되면 일법은 끝난다. 일법은 하루 중 태양이 가장 강하게 내리쬐는 낮 11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가 수련하기에 가장 좋다. 일법은 수련자의 의지(意志)를 강하게 해 준다.

 

(2) 월법(月法)
월법은 중단전 옥당으로 달의 기운을 끌어들여 임맥을 통해 회음에 축기하는 것이다. 심법도 이와 같이 걸어준다.
일반적으로 달을 바라보며 입식자세에서 수련하는데, 눈을 감고 해도 되지만 바라보면서 하는 것이 더욱 좋다. 이는 단전에 의식이 집중된 정도만큼 축기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달을 바라볼 때의 시각적인 작용이 월기(月氣)를 끌어들이는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뜨겁고 시원한 감이 도는 일법과는 달리 월법은 부드럽고 청량한 감이 강하다. 일법과 마찬가지로 월법 또한 회음에 달의 기운이 충실히 쌓여 달의 기와 완전히 합일될 때까지 계속한다. 월법은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 준다.

 

(3) 성법(星法)
별 기운을 상단전 인당으로 끌어들여 임맥을 통해 하단전 석문에 모으는 것이 성법이다.
방법은 우선 심법을 걸고, 월법과 마찬가지로 별을 바라보며 입식자세로 수련한다. 처음 월법을 수련할 때 달의 기운을 중단전 옥당으로 빨아들이다 보면, 가슴부위에 집중된 기의 압력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지다가 나중에는 편안함으로 바뀌듯이, 성법도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인당에 강한 기운이 몰려 빡빡한 느낌을 받지만, 수련을 계속하다보면 인당에서 석문까지 기운의 통로가 뚫리면서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한 상쾌함이 느껴진다.


성법은 일법이나 월법과는 달리 가시적인 현상을 동반한다. 실제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별기운을 당기다보면, 어느 순간 별빛이 가물거리면서 사라지거나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반대로 축기된 기를 인당을 통해 별로 보내면 가물거리던 별빛이 급격히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수련자 본인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다른 사람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성법을 통해서 그만큼 심력이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축기를 계속하여 별 기운과 완전히 합일되면 성법이 끝난다. 성법은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일월성법 요결
일월성법은 각각 한가지씩 한번에 10분에서 20분 정도 수련하는 것이 적당하다. 왜냐하면 일월성이 갖고 있는 기운 자체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수련하다보면 술에 취한 듯 온몸이 나른해지고 현기증이 일어나거나 심하게 졸음이 쏟아지는 등 무리가 생긴다. 특히 일법의 경우, 뜨거운 뙤약볕에서 장시간 수련하게 되었을 때, 마치 흡수하지 못한 화기가 얼굴로 올라와서 상기된 것처럼 화끈거리고 온몸에 열이 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인체가 짧은 시간동안에 기를 과도하게 흡입하여 일어난 부적응 현상이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수련 시간은 길어도 2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옛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듯이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좋지 않으므로 수련 역시 지나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처음에는 일월성을 각각 약 20분씩 수련한다. 수련이 진척되어 기도(氣道)가 열리고, 기운을 보다 잘 흡수할 수 있게 되면 10∼5분 정도로 점점 수련시간을 줄여나가는 것이 좋다. 수련이 진행됨에 따라 심력이 강해지므로 기운을 끌어당기는 데 결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일월성법은 짧게 자주 해주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일월성법 수련을 할 때, 특히 월법과 성법의 경우 달과 별이 보여야 수련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흐린 날은 아예 수련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흐린 날뿐만 아니라 낮에 월법과 성법을 해도 실질적으로 수련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법도 마찬가지여서 밤에 일법을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수련자의 수련경지가 대주천을 넘어서 일월성법에 이르게 되면 이미 그러한 제약들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강한 심력을 닦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태양이 보이지 않는 잠에도 태양은 떠있는 것처럼 천지의 기운은 이미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월성을 바라보면서 수련하게 되면, 일월성이 발하는 빛 등에 의한 시각적인 효과와 수련의 효율면에서 분명히 이로운 점이 있으므로 수련을 실내에서만 하지 말고 자주 야외에 나가서 직접 별과 달을 보면서 하도록 하자.


일월성법은 긍정적인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수련자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대부분 심적인 여유가 생겨서 매사에 담담해진다고 하는데, 이런 마음의 변화가 결국 생활의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기(日氣)의 영향으로 여린 마음이 강한 의지력을 갖게 된다거나, 월기(月氣)의 영향으로 불안한 마음이 평온을 찾는다거나, 성기(星氣)의 영향으로 우울하게 여겨지던 세상이 즐겁게 느껴지는 것이 그것이다.


한가지 더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일월성법은 확고하게 수련 경지가 올라선 진기 수련자만이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여타 수련자들이 자만심이나 혹은 재미삼아 수련하게되면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일월성법에 진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생기가 아닌 진기로 대주천을 이룬 수련자만이 이 일월성법을 온전히 수련할 수 있으므로 주의하도록 하자.


수련이 네 가지 법단계에 이르면, 본수련에 시간을 적게 투자한다고 해도 공부의 진도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여타 수련에 비해 여유가 많아진다. 여기에 이르러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반복수련과 적극적인 마음닦음(修心)이다. 수련자는 항상 자신의 운기(運氣)와 마음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대맥, 소주천, 대주천 등을 꾸준히 반복해서 운기해 주고, 불비타인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수련일지를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날마다 심적인 변화와 기적인 변화 등에 대한 기록을 남겨 수련의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 좋다.

 

수련에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전보다 나태해지지는 않았는지, 또는 수련경지가 올랐다고 자만하여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있지는 않은 지 항상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심법단계에 이른 수련자는 스스로를 귀히 여기고 공부의 귀함을 알아 귀하게 닦아야 하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의 목적을 잊지 않으며,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이 개인의 수련보다 우선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이 공부가 나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더불어 가는 길이란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08. 귀일법(歸一法)

귀일법(歸一法)은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간다는 뜻이 담긴 수련이다. 다시 말해서 하늘에 있는 해·달·별뿐만 아니라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 청탁(淸濁)과 선악(善惡)의 분별이 없는 극대한 것부터 극미한 것까지 우주 그 자체와 합일하는 수련을 말한다.


일월성법을 마치고 귀일법에 이르면 수련자는 비로소 하늘의 마음(道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하늘의 마음은 분별없는 마음이다. 여기에 선도의 참 의미가 담겨져 있다. 맑고, 좋고, 선한 것만 선별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탁하고, 나쁘고, 악한 것마저도 맑고, 바르고 선하게 승화시키는 것, 그것이 도의 본질인 것이다.


대주천을 통하여 천지의 모든 기운을 운용할 수 있는 역량(力量)이 생기면, 우선 하늘의 세 가지 보배 일월성(日月星)과 합일하는 일월성법을 하고, 더 나아가 우주 그 자체와 내가 합일되는 귀일법 수련에 들어간다.


귀일법의 수련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심법은  극대한 것에서 극미한 것까지 우주의 모든 기운을 온몸으로 흡수하여 석문에 모은다.

마음은 나를 비롯한 전 우주를 포괄하고, 기본적인 의식만 단전에 둔 채 대부분의 의식을 온몸에 골고루 분산시켜 기운을 온몸으로 끌어들인다.


지금까지 수련은 특정 경락이나 혈(穴)자리를 사용했지만, 귀일법은 전신을 통하여 기운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그 느낌 자체도 특이하고 강렬하다. 호흡을 통해 느껴지는 기감과 전신의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 들어와 석문에 응집되는 기의 느낌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묘한 즐거움이 있다. 일반적으로 수련을 하다 보면, 피부가 가렵거나 따끔거리거나 하는 현상이 생긴다. 이는 막혀있던 모공이 열리면서 생기는 기감으로 어느 정도 막혀있었느냐에 따라 가렵거나 따갑거나 하는 감각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그 외에도 아주 미세한 물방울이 피부를 스치며 들어오는 느낌이라든지 온몸에 마치 비가 오는 듯한 쏴한 느낌 등 여러 가지다. 귀일법이 끝나갈 때쯤이면, 온몸을 통해 들어온 기가 단전에 모였다가 급기에 가득 차게 되므로 수련자는 자신의 단전이 점점 커져 우주를 감싸 안은 듯한 현묘함에 들게 된다.


귀일법을 이루면 수련자의 오라가 대기권을 뚫고 뻗어나갈 정도로 수련의 깊이 또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심적으로도 우주의 모든 기운과 합일되어 느껴지는 전과 다른 의식의 큰 전환을 겪는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열등감, 자격지심 등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갖고 있는,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해소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 이외에 다른 사물들이 새롭게 다가오고, 나 자신 또한 참으로 소중한 존재라는 깨달음이 있었다. 세상에는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나름대로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 없듯이, 전에는 시기하고 부러워했던 사람도, 무시하고 우습게 보던 사람도, 그렇게 보고 있던 나 자신까지도 모두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장 심훈의 불비타인(不比他人)이란 말처럼, 수련자 스스로가 중심을 잡아 흔들리지 않는 큰 심력을 귀일법 수련을 통해 체득할 수 있다. 이러한 귀일법의 수련은 반드시 일월성법을 이룬 후에야 가능하다. 일월성법을 체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귀일법 수련을 하게 되면 기적인 도움은 조금 있을지 모르나 그 이상의 본질적인 귀일(歸一)은 불가능하므로 귀일법의 참된 의미는 절대로 터득할 수 없게 된다.

 

09. 풍수법(風水法)

풍수법은 중단전으로 끌어들인 기운을 통해 땅의 마음을 아는 법이다.
앞서 인간의 몸에는 세 개의 단전이 있고 그 안에는 세 개의 구슬 즉, 여의주가 있다고 했다. 이 세 개의 단전중 중단전 옥당에 있는 여의주의 조화를 통해, 땅이나 강 바다 등 자연물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심력(心力)을 터득하는 수련이 바로 풍수법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뜻하는 것처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이해를 갖는다는 것은 그 보다 큰 마음을 가지거나 적어도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사실 어려운 것이다. 풍수법은 수련자가 자연의 마음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 마음을 감싸안을 수 있는 큰 심력을 얻게 한다. 또한 풍수법을 완전히 터득하게 되면 풍수지리(風水地理)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어도 산세와 혈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


이러한 풍수법의 수련 방법은 간단하다. 목표한 대상물의 기운을 끌어 감정을 알아본다는 심법을 걸고, 중단전으로 강하게 기운을 끌어들인다. 기운을 끌어들이다 보면 기운을 끌기 전과는 다른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을 편견이나 선입견, 습관적인 관념 등의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느끼면 되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산의 기운을 끌어서 읽어 보는 것이 좋다. 백두산도 좋고, 한라산도 좋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집터나 마을, 도시, 나라를 읽어보고, 그후엔 강이나 바다 등의 감정을 차례차례 읽어보도록 하자.


수련을 해보면 알겠지만 이러한 감정들을 처음부터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타 수련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행 착오를 경험해야 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감정을 느끼려고 시도하는 것보다는 좋은 쪽과 나쁜 쪽으로 기준을 단순화시켜 기운의 좋고 나쁨을 알아보는 것부터 연습한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그 다음에는 좋으면 왜 좋고 나쁘면 왜 나쁜지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읽어 들어가는 것이 좋다. 이렇게 수련을 계속하다보면 처음에는 아프고 답답하고 가렵고 뜨겁고 시원하고 하는 등의 단순한 기감에서 벗어나 점점 나 자신이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느끼는 것처럼 명확하고도 구제적인 감정이 옥당(玉堂)을 통해 느껴지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 지리산이 격할 정도로 서글퍼하고 있다면 실제로 수련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펑펑 쏟아질 정도로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또 단순히 감정만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영감과 직감으로 어떤 현상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대상에 대한 아주 섬세한 것까지 알 수 있게 된다.


처음 수련을 할 때는 보통 30∼40분 정도 기운을 끌어야 어느 정도 명확한 감정을 읽을 수가 있다. 하지만 집중력이 좋은 사람의 경우에는 10∼20분 정도면 충분하다. 감성이 풍부하고, 선입견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으면 짧은 시간 안에 아주 깊은 속마음까지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 또한 연습할수록 시간이 단축되므로 기운을 끄는 즉시 대상물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가 될 때까지 수련을 반복한다.

 

10. 선인법(仙人法)

선인법이란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심력을 터득하는 방법이다. 선인법의 수련 방법은 풍수법과 같다. 단지 그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에서 다를 뿐이다.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므로 일종의 타심통(他心通)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대상이 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수련자는 선인법 등의 도술을 하더라도 술(術)의 의미를 벗어나 도(道)의 깊이를 깨달아야 한다.


일월성법에서부터 시작된 귀일법, 풍수법 그리고 선인법은 수련자가 하늘과 땅과 사람의 마음을 알고 품에 안을 수 있는 큰 심력(心力)을 키우는데 그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즉, 일월성법과 귀일법은 하늘의 마음(道心)을, 풍수법은 땅의 마음(地心)을, 선인법은 사람의 마음(人心)을 이해할 수 있는 심력을 길러주고, 더 나아가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닦는 것(修心)이다.


선인법의 수련방법은 풍수법과 동일하다고 했다. 즉 대상으로 삼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심법을 걸고, 감정의 기운을 끌어들여 중단전 옥당에 집중적으로 모으면 된다. 선인법은 비록 요령은 풍수법과 같지만 사람의 감정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보다 섬세한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보고 직접 물어서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풍수법보다는 아무래도 수련하기가 수월하다.


선인법을 할 때 알아둘 것이 하나 있다. 수련을 하다보면 어떤 종류의 감정이 느껴지다가 갑자기 그 감정이 사라지면서 전혀 다른 감정이 읽혀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럴 때 처음 선인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헷갈리기 시작하는데, 대상인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태반이다. 그럴 경우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또 다른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흔히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의 감정도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쌓여 있어서 자신도 모르는 속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법을 걸 때도 보다 명확한 조건을 걸어두는 것이 좋다. 현재의 마음상태, 본 마음,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그 사람 고유의 본성, 타인에 대하여 갖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 등등 알고자 하는 감정을 심법을 통해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명확한 심법을 걸고 계속 수련해 나가다 보면, 사람의 감정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의 영적인 교감까지도 가질 수 있다. 심지어는 나 자신의 기운과 비교하여 나와 맞는 사람인지 안 맞는 사람인지, 선인인지 악인인지, 또는 기운의 청탁으로 미루어 그 사람의 수련정도까지도 알아낼 수 있고, 더 나아가 시간을 대상으로 하여 과거 특정 일의 감정이나 미래의 변화된 감정을 통해 대상자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정확히 읽어낼 수 있으며,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죽은 사람의 감정까지도 알 수 있는 심오함이 있다.


그러므로 선인법을 사용할 때에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이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사로이 사용하게 되면, 자신을 포함한 주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각별히 유의해야만 한다. 이는 선인법 등의 도술이 단순히 현실적인 기공(氣功)이 아니라 우주의 근원적인 도광영력(道光靈力)이 개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선인법 역시 기운을 끄는 즉시 감정이 읽혀질 때까지 계속한다.

 

11. 전신주천(全身周天)

선인법이 끝나면 이제 전신주천(全身周天)에 들어간다. 우리의 몸에는 좌우 열두개의 경락과 기이한 여덟 개의 맥이 존재하고 있는데 각각 십이경락(十二經絡)과 기경팔맥(奇經八脈)이라 일컫는다. 전신주천은 이 십이경락과 기경팔맥을 진기로 소통시켜 온몸 구석구석 막힘없이 진기가 통하도록 하는 수련을 말한다. 먼저 십이경락을 유통시키는 경락주천(經絡周天)을 하고 난 후에 팔맥주천(八脈周天)에 들어간다. 팔맥주천이 끝나게 되면 전신주천은 완성된다.

 

(1) 경락주천(經絡周天)

전 단계의 반복된 수련과 네 단계의 법수련을 완전히 마쳤기 때문에 이제는 의식에 의한 진기의 운용이 능수능란해졌으리라 본다. 꼭 단전이 아니더라도 신체의 어느 곳이든 진기를 끌어들여 집중시키면 집중된 그 곳이 곧 단전이 되는 것도 그렇고, 굳이 수련을 하지 않더라도 천지와 천지간에 존재하는 모든 진기가 몸의 오혈(五穴)과 더 나아가서 팔만사천 모공을 통해 항상 교류하게 되는 것 또한 그렇다. 그러나 우리 몸 구석구석 전 부분을 세밀하게 진기로 유통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경락주천과 팔맥주천을 이루어야만 한다.


경락주천 또한 의식을 사용한 수련이기 때문에 먼저 각 경락의 위치와 흘러가는 방향 등을 반드시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각 경락의 위치와 경혈들은 다음 그림과 같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각 경락마다 그 경락이 시작하는 혈과 끝나는 혈이 있다는 사실이다. 시작하는 경혈을 기혈(起穴), 끝나는 경혈을 종혈(終穴)이라고 하는데, 전신주천은 각 경락의 기혈에 먼저 진기를 모아서 그 진기를 종혈까지 의식을 사용해서 운기하는 방식으로 수련한다.


각 경락의 순서와 기혈 및 종혈은 다음과 같다. 처음 수련을 할 때는 십이경락을 한꺼번에 다 운기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다음의 순서대로 하나씩 차례로 운기하여 한 경락을 완전히 단련시킨 후에 다음 경락으로 넘어간다. 십이경락은 좌우로 동일한 경락이 하나씩 쌍을 이루고 있으므로 운기하는 데도 순서가 있다. 남녀의 구별없이 먼저 좌측에서부터 시작하여, 좌측이 완성되면 우측으로 들어가고, 우측이 끝나면 다음 경락으로 넘어가는 순으로 진행해야 한다.

 

1.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중부(中付)--소상(小商)
2.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상양(商陽)--영향(迎香)
3.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승읍(承泣)--여태( 兌)
4.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은백(隱白)--대포(大包)
5. 수소음심경(手小陰心經):극천(極泉)--소충(小衝)
6.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서택(小澤)--청궁(聽宮)
7.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정명(睛明)--지음(至陰)
8.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용천(湧泉)--유부(兪府)
9.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천지(天地)--중충(中衝)
10.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관충(關衝)--사죽공(絲竹空)
11.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동자료(瞳子 )--규음(竅陰)
12.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태돈(太敦)--기문(期門)


(2) 팔맥주천(八脈周天)
경락주천이 끝나면 기경팔맥(奇經八脈)을 운기해 주는 팔맥주천에 들어간다. 기경팔맥은 여덟 개의 기이한 경락을 뜻하는데, 대맥(帶脈), 임맥(任脈), 독맥(督脈), 양교맥(陽交脈), 음교맥(陰交脈), 양유맥(陽維脈), 음유맥(陰維脈), 충맥(衝脈)이 그것이다. 이 기경팔맥을 운기시켜주는 팔맥주천은 이미 대맥과 임맥, 독맥을 유통시켰으므로 양교맥부터 시작하는 나머지 다섯 맥만 유통시키면 된다. 운기법은 경락주천과 같으며, 그림을 참고하여 순서대로 운기해준다. 기경에도 좌우가 쌍을 이루고 있으므로 좌측부터 시작한다.

 

1. 양교맥:신맥(申脈, 방광경)--풍부(風府, 독맥)
2. 음교맥:조해(照海, 신경)--정명(睛明, 방광경)
3. 양유맥:금문(金門, 방광경)--아문(啞門, 독맥)
3. 음유맥:축빈(築賓, 신경)--염천(廉泉, 임맥)
5. 충맥:공손(公孫, 비경)--공손(公孫, 비경)

이렇게 십이경락과 기경팔맥을 포함한 전신주천을 모두 마치게 되면, 이제는 전신의 어느 곳이든지 마음가는 대로 진기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신주천은 십이경락이 끝나는대로 십이경락 모두를 2분내 운기할 수 있을 때까지 단련하고 나서 팔맥주천에 들어간다. 팔맥주천이 끝나면 마찬가지로 기경팔맥이 2분내 운기되도록 수련한다. 그런 후에 십이경락과 기경팔맥 모두를 2분내 운기가 되도록 단련시켜준다. 전신주천이 완성되면 채약(採藥)수련에 들어간다.

 

전신주천 요결
전신주천을 하다 보면 예상과는 다른 의외의 반응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우선 경락도에 대한 것이다. 경락도라는 것은 기운이 흘러가는 길을 그려놓은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전신주천을 운기하다보면 경락도에 그려진 방향과 위치대로 기운이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틀린 생각은 아니다. 진기는 경락도에 그려진 경락을 따라 흘러간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고속도로를 표시한 대형지도이지 자세한 세부지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사람마다 경락의 위치와 방향은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서 기존 경락도에 그려진 경락의 유주대로 운기해 주다가 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혹시 내가 수련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지맥(支脈)에 대한 것이다. 경락은 크게 본맥과 지맥이 있다. 지맥은 가지가 되는 맥으로 존재유무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본맥을 연결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경락학설에 대한 다소의 이해가 있는 분들은 이 지맥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인정하여 전신주천을 할 때 경락과 경락 사이에 연결하여 운기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맥은 무시해도 본수련에는 하등의 지장이 없다. 다시 말해서 지맥을 굳이 운기할 필요는 없고 본맥만 운기하면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각 경락마다 운기되는 느낌과 속도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련자 자신의 신체적 상황과 주변요인, 성격상의 문제 등과 경락 자체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장이 안 좋았던 사람의 경우, 심경(心經)을 운기할 때 다른 경락보다 진척이 늦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경락과 비교하여 의구심을 갖거나 답답해한다면 그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시 이야기해서 경락을 운기하다 보면 예전에 안 좋았던 부위에 대해서 치유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치유과정 중에는 수련이 더뎌지므로 그럴수록 보다 여유있는 마음으로 수련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12. 채약(採藥)

채약이란 우리 몸 속에 가득히 흐르는 진기를 도계(道界)에 있는 천냉수(天冷水)로 냉각하여 고체화시킨 작고 딱딱한 구슬을 말한다. 우리 몸 속의 진기를 움직이지 않게 한 곳에 고정시켜 놓고, 도계에 존재하는 천냉수를 받아 고정되어진 진기로 보내면 진기는 이 천냉수와 합일되어 차갑게 식어 고체화되는데, 이 고체가 바로 채약이다. 다시 말해서, 고체화된 진기가 바로 채약인 것이다.


기타 선도서에서는 소약과 대약으로 분류하여 이 채약을 아주 비중있게 다루고 있지만, 본질적인 의미에서 채약은 그다지 중요한 단계는 아니다. 채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의주인데, 석문호흡 수련에 있어 가장 비중있는 초점도 바로 이 여의주의 빛을 밝히는 것에 두어야 한다. 나중에 좀더 공부가 진전되어 여의주의 조화를 알게 되면, 채약이란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수련의 경지가 깊어짐에 따라 여의주가 닦여 빛을 발하게 되고, 빛을 발함에 따라 여의주의 조화가 작용하게 되면 이 여의주의 조화로 채약을 없앨 수도 또는 다시 생겨나게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채약이 생겨나는 것도 이 여의주의 조화의 일환일뿐이란 이야기이다.


채약은 기화신의 전단계이다. 이 채약이 본질적인 의미에서 보면 비중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채약을 이루지 못하면 결코 다음 단계인 기화신(氣化神)수련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수련자가 꼭 거쳐야 하는 의미있는 단계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채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의식을 하단전에 두어야 한다. 하단전이 아니면 채약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식을 하단전에 둔 상태에서  천냉수를 받아 채약을 한다 는 심법을 걸고, 진기가 흩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의식을 한 곳에 강하게 고정시킨다. 이렇게 하면 엄청난 양의 진기가 하단전 한 곳에 집중되기 때문에 서늘한 한기(寒氣)마저 느껴지게 된다. 이렇게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호흡을 통해 하늘의 천냉수를 본격적으로 끌어들여 하단전에 고정시켜둔 진기로 보내야 한다. 천냉수와 진기가 합일될때까지 계속하여 천냉수를 보내면, 하단전은 더욱 차갑게 변하여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채약은 완성되지 않았다. 채약이 완성되기도 전에 고정시켜둔 진기가 저절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욱 의식을 집중하여 계속 단전에 잡아두고 운기시켜서는 절대 안된다.


채약이 처음 굳어질 때는 그 크기가 크지만 갈수록 작아지게 된다. 아울러 작아질수록 차고 딱딱한 느낌은 비례하여 더욱 커지게 되므로 서두르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수련을 지속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서 고체화되면 채약은 완성된 것이다. 이 채걍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순간은 수련자 스스로가 느낄 수 있다.


처음 채약이 만들어졌을 때는 그 결정이 아주 작지만, 계속 수련을 반복하다 보면 마치 양파 껍질이 한겹한겹 씌워지듯이 이 채약의 크기는 점점 커지게 된다. 채약이 충분히 커지면 운기를 해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진기로 해주었던 운기를 이제부터는 채약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이 채약을 운기해보면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채약 자체가 결정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군데군데 모가 난 탓도 있다. 이것을 대맥과 소주천, 대주천, 전신주천 등의 통로를 통해 운기해서 단련시켜 주게 되면, 이번엔 채약이 더욱 응집되어 작아지게 된다. 즉 전단계의 운기수련과 마찬가지로 채약도 운기를 통해 단련되는 것이다. 어느 경락이든지 일주하는 데 2분 내가 될 때까지 수련을 계속하여야 한다.


채약은 진기가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채약을 얻게 되면 전신주천을 이룬 경지보다 훨씬 강한 기력(氣力)을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를 응용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재주를 익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스스로의 몸에 병이 생겼을 때 채약을 치료하고자 하는 곳으로 보내 병을 치료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치료할 때도 환부나 특정 경혈에 장심이나 손가락을 통해 채약을 보내 치료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한 간단한 연습법이 있다. 먼저 양손의 아무 손가락이나 하나를 편 채 서로 마주 붙인 상태에서, 채약을 한쪽 손가락 끝에서 반대쪽 손가락으로 이동시켜 본다. 이것이 잘되면 이제는 손가락을 조금씩 떼어 거리를 멀리하면서 채약을 이쪽 손가락에서 다른 손가락으로 이동시켜 본다. 점점 거리를 멀리하더라도 쉽고 정확하게 움직이게 되면 이제는 마치 공놀이를 하듯이 포물선을 그리게 채약을 이동시켜 본다. 이러한 연습이 능숙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타인의 몸에 채약을 넣어 치료하는 것이나 기타 다른 응용이 수월해지는 것이다.


채약을 볕에다 쏘아 볼 수도 있다. 이 때 채약은 화살이 활에서 쏘아져 나가듯이 강하고 빠르게 튀어나가야 하는데 역시 단련이 필요하다. 이것도 반드시 연습해 보아야 한다. 주의할 점은 수련도중에 정신이 흩어지면 채약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채약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이미 한번 채약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다시 만드는 데는 한 시간 정도 수련이면 충분하다. 채약을 만드는 시간도 수련을 반복할수록 짧아지게 된다.

 

채약 요결
사람의 몸은 빛으로 되어 있다. 채약에도 빛이 있음은 당연하다. 수련자가 대근기자(大根氣者)냐 소근기자(小根氣者)냐 와는 전혀 상관없이 육체나 영(靈)의 기가 특히 맑은 사람의 경우에 채약의 빛을 눈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일반 사람이 눈에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눈을 영안(靈眼)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소주천이나 대주천 때부터 여러 가지 빛을 보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하고 채약과정보다 훨씬 뒤에 영얀이 열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수련이 좀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 때에는 이 빛을 봤는지 못 봤는지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다 분명히 알게 되겠지만, 영안이란 것이 수련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수련자를 현혹시켜 잘못된 길로 가게 하는 경우가 크기 때문에 주의해야만 한다.


영안도 결국 상단전 여의주가 밝아지므로 해서 가능한 것이다. 원래 상단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사실 이 영안이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성은 적고 위험성은 크기 때문에 수련자에게는 일종의 마(魔)와 같이 작용한다. 이 일차원적인 눈에 현혹되어 도계입문을 하지 못하고 생을 마친 사람도 예상외로 많다. 수련 정도가 낮고 수심이 덜된 사람이 상단전이 열려 영안이 개발되게 되면,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은데, 이러한 현상에 현혹되어 교만함이 생기고 아집이 굳어져 결국 도공부를 끝까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영안이라는 것은 도안(道眼)과는 다른 것이다. 도안이란 것도 일반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을 일컫는 것이지만, 대주천이나 소주천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개안(開眼)이 된 것을 도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즉 영안으로 보는 것과 양신을 이룬 뒤 도안으로 보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영안으로 보는 것은 당사자의 선입관이나 전생의 기억, 귀신의 장난 등으로 왜곡되기 나름이다. 그것을 순진하게도 곧이곧대로 믿으므로 해서 오해가 생기고 자만에 빠져 잘못된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사물 등 모든 법칙을 보는 것은 육체의 눈이 아니고 심안(心眼)으로 보는 것인데, 이 심안의 창이 상단전이다. 이것이 완전히 열리면 양신(陽神)이 심안을 갖고 나오게 되고, 이를 도안(道眼)이라고 한다. 이 점을 감안해서 양신을 이루어 출신(出神)하기 전에 보는 것을 영안이라고 하고, 양신출신 이후에 보는 것을 도안이라고 하는 것이다.

 

채약 수련 체험기:시작의 기쁨, 처음의 기쁨_雲 光 김기용

 

채약 수련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의 모든 수련은 축기, 운기 술법(術法)과 같이 기를 모으거나 운기하거나 끌어당겨서 느껴보고 일체화시키는 등 주로 기의 움직임과 방향성에 관계된 것이 많았다. 즉 기가 다니는 경로를 원활하게 통하도록 개척하는 수련, 또는 어떤 대상의 기적인 정보를 탐색하거나 나 자신의 몸과 마음에 동화시키는 수련들이었다. 이렇게 여러 단계의 수련법이 가지고 있는 낱낱의 특색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음미한 결과, 나는 채약수련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채약 수련은 무엇을 제조하는 수련이고, 생산하는 수련이고, 창조하는 수련이다. 도화제 수련을 수련 단계별로 분류하면 일차적인 최종 달성 목표는 양신(陽神)이라 할 수 있으나, 무엇을 만드는 수련은 채약이 그 시작이다. 이와 같이 채약수련은 무엇을 만들고, 생산하는 법을 배우며, 또한 그로 인해 얻어지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흡족함을 배우는 수련이다. 지금까지 갈고 닦아 왔던 수련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본다는 사실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 면에서 아직 남아있는 수련과정이 많고, 감동할 일도 많겠지만, 채약의 완성이 주는 감동은 가히 백미(白眉)이다. 여기에는 시작의 기쁨과 처음의 기쁨이 있다.


채약은 단전에 모든 의식을 집중하여 수련한다. 온양이 끝난 이후에 대주천부터 전신주천까지, 주로 의식을 분산하는 수련만 해 오다가 채약에 들어가서 다시 하단전에만 의식을 집중하려하니 잠시 집중이 흐트러지는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온양까지 기초를 잘 닦아 놓은 수련자라면, 그 동안의 하단전 의식 집중 수련 효과로 인하여 집중력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의식을 집중하고 분산하는 요령이 생소한 수련자를 위하여 이 기회를 빌어 설명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주천 이전의 수련은 기본적으로 의식을 단전 축기에 두고 나머지는 심법만 가지고 무의식으로 수련했다. 즉 하단전에만 의식을 계속 집중하는 수련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무의식 70%, 의식 30%의 황금비율로 의식을 분산했다(실제로 100% 무의식은 살아있는 생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주천 운기부터는 몸 안에 흐르는 진기가 온양을 거쳐 음양의 조화를 이루므로, 임독맥에 진기의 소생처가 마련되고, 수련자 자신도 진기와 생기의 구별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의식을 사용해도 진기를 운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즉 대주천 이후에는 하단전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운기는, 진기를 앞세우고 의식을 뒤따르게 하는 방법과 운기 방향이나 다른 방향으로 의식을 분산하는 방법 등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주천 이후의 수련과정을 단계별로 짚어보면, 먼저 일월성법 수련에서 일법은 백회와 명문, 월법은 옥당과 회음, 성법은 인당과 석문에 의식을 분산할 수밖에 없고, 더군다나 일월성법 수련은 공통적으로 직접 대상까지 보면서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연 의식을 여러 곳에 분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귀일법은 몸 전체로 기운을 받아들여야 하고, 풍수법과 선인법은 중단전으로 의식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대주천 이후의 수련은 하단전의 의식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수련법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채약 수련은 하단전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 전적으로 필요하고, 또 집중이 될 수밖에 없는 수련이다.
채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진기의 고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단전에 진기를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키기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의식집중이 요구된다. 이렇게 의식을 강하게 집중하여 수련하면 진기는 움직이지 못하고 한 곳에 고정되는데, 이러한 상태에서 호흡을 통하여 천냉수를 보내게 되면, 채약수련은 비교적 잘 진척된다.


이렇게 채약 수련을 하다 보니 채약이 만들어지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단전에서 조그마하게 써늘한 한 점이 느껴지다가 수련이 점점 진행되고 시일이 지나갈수록 써늘한 기감은 더욱 넓어지고 강해졌다. 이러한 기감이 한동안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날 하단전의 일정한 점부위에서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까칠까칠하고 쓰라리는 듯한 아픔이 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채약이 아니겠는가! 확연한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채약이 완성된 것이었다.


채약이 완성되면 더욱 수련에 정진하여 채약 기감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두는 것이 좋다. 여기서 채약을 쉽게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이야기해 보겠다. 우선 채약을 슬며시 굴린다고 생각하면서 채약 기감에 집중하여 느껴보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 수련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평상시에도 의식을 채약으로 보내자마자 그러한 확실한 기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채약을 느끼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채약을 이동시켜 어느 특정한 경혈이나 임의의 몸 부위에 놓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주위가 채약의 기운으로 인하여 싸늘해지거나 심하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낄 수 있는데, 마치 어름을 손바닥 위에 놓았을 때 처음에는 얼음이 피부에 닿아 차갑다가 그 부분이 점차 통증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차가움이 극에 달하면 아프다는 간단한 사실을 채약을 통해 실감하게 될 것이다.


채약을 완성한 후에는 채약의 이동, 운기, 별처럼 먼 곳에 보냈다가 회수하는 법, 경혈에 채약을 두고 몸과 마음의 반응 느끼기 등 채약을 이용한 여러 가지 수련법들을 익혀야 한다.

 

13. 기화신(氣化神)

기화신(氣化神)이란 온몸을 진기로 화하게 하는 수련을 말한다. 즉 수련자의 몸 자체가 진기가 되는 것으로,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기운을 온몸으로 흡수하여 몸이 곧 진기인 신즉기(身卽氣)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림에서 보여주는 자세는 고성법(孤星法)의 유일한 행공 자세로 이른바 기화신공(氣化神功)이라 한다. 양손바닥의
노궁과 양발바닥의 용천을 각각 마주 대고, 허리를 쭉 펴고 앉아서 의식을 하단전에 둔다. 이것이 기화신의 기본자세이다. 기화신의 행공 동작은 이것 한가지밖에 없다. 그래서 이름조차 기화신공이다.


기화신은 채약을 이룬 다음에 수련한다. 앞서의 모든 수련이 그러했지만 전단계의 수련이 완성되지 못하면 다음 단계의 수련은 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채약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기화신공을 아무리 열심히 수련한다 해도 기화신은 절대 이룰 수 없다. 단지 기적인 차원이나 건강적인 차원에서 어느 정도 변화를 체험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 도적인 차원의 진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수련단계를 밟아 온 수련자의 경우, 다시 말해서 채약을 완전히 끝마친 사람이 이 기화신공을 수련하게 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기화신을 이루게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기화신공은 오직 기화신을 이루는 데만 필요한 행공법이며, 기화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자세를 취해야 하는 기화신의 유일무일한 행공 동작이다.


수련에 들어가면 먼저 그림과 같은 기화신공 자세를 취한 후에 심법으로 삼라만상의 진기와 생기 등 모든 기운을 온몸으로 흡수한다. 이렇게 여러 날 수련하면 기화신이 된다. 기화신은 정기신(精氣神)의 원리에 의해 정(精)이 기(氣)가 되고 기가 신(神)이 되어 기즉신(氣卽神), 신즉기(神卽氣)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결국 신이 밝아지게 되는데, 이를 신명(神明)이라 한다. 신이 밝아지면 몸 안에 있는 세 개의 여의주가 완전히 자리를 잡고 본연의 빛을 발하게 되므로 수련에 무궁무진한 진전이 있다.


기화신을 수련하다 보면, 어느 날은 하단전을 중심으로 흰빛의 무리가 넓고 둥글게 형성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기화신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바로 전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기화신의 경지가 바로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징후이다. 이때 한 층 더 수련에 박차를 가하면 그 둥근 흰빛의 기운 속에서 여의주를 발견하게 된다. 수련자가 이 여의주를 보게 되는 순간, 마침내 기화신을 이룬 것이다.

 

기화신 요결
기화신은 진기수련의 마지막 단계이다. 기화신을 끝마쳤다는 것은 수련자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진리의 문(道門)에 확실히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화신을 정점으로 공부는 본격적으로 빛수련에 들어간다. 즉, 도계에 입문하기 위한 절대적인 준비과정인 양신수련(陽神修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도광(道光)

우리는 지금까지 석문호흡의 수련 과정을 한 차원씩 높여가면서 착실히 단계를 밟아 공부해 왔다. 그 수련의 마지막 단계가 양신(陽神)이다. 결국 지금까지의 모든 수련은 궁극적으로 이 양신을 이루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것이다. 양신이란 수도자가 신인합일의 완전한 경지에 들어가 종국에 자신의 진면목, 스스로의 절대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열쇠로 석문호흡의 핵심이다. 따라서 본 장은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기화신 이후의 양신수련부터 도계입문까지를 따로 도광편으로 묶어 다루기로 한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인 도광영력(道光靈力)이 관련된 빛 공부에 들어가게 되므로 수련 자체도 차원을 달리하여 변하게 된다.

 

14. 양신(陽神)

도계(道界)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양신(陽神)을 이루어야 한다. 양신은 천지간을 날아다니며 도계를 넘나들 수 있는 도체(道體)이며 수련자의 분신(分身)으로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유체(幽體)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다. 양신은 말 그대로 빛의 몸으로 유체가 아닌 도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양신을 하는 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정신집중의 중요성이다. 양신수련을 하려면 반드시 정신을 한 곳에 집중시켜 흩어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의식은 심법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고, 눈에 보이는 빛이라든가 여의주의 변화 등에는 절대로 정신과 의식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운기수련이 기감에 의식을 빼앗기지 않고 단지 느끼기만 하면서 진행되어 왔던 것처럼, 양신수련 때에도 눈에 보이는 현상, 다시 말해서 빛이나 여의주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자연 경관을 바라보듯이 무심하게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그 각각의 현상에 집착하거나 의식을 빼앗기게 되면 도심(道心)이 흩어져 빛과 여의주가 보이지 않게 된다. 결국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고, 보려 하지 않는 가운데 보이게 되는 이치와 같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헤매이다가 길을 잃어버리게 되면, 오히려 더 집착하게 되고 그럴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어 아예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조급함이 만든 집착에 빠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면 조금 전에 봤던 기억만이 남게 되어  처음에는 보였는데 지금은 왜 보이지 않는가? 수련이 오히려 퇴보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빨리 이루고자 하는 욕심에 더욱더 심리적인 허상에 집착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집착하면 할수록 자신도 모르는 아집과 오기가 생겨 오히려 잠재의식 속에 있는 과거의 기억, 즉 빛과 여의주를 봤던 기억들이 표출되거나 엉뚱한 환상을 좇게 되어 수련은 점점 더 마(魔)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곁에서 올바른 조언을 해 주어도 스스로 만들어낸 관념의 환상에 빠져, 환상이 실제로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양신수련부터는 스승이나 공부가 먼저 된 선배를 찾아 지도를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다.
만일 무리하게 혼자 수련을 하다가 자신이 만들어낸 관념의 마(魔)에 빠지게 되면 이루표현하기 힘든 혼란스러움을 겪게 되므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수련자가 기화신을 이루어 여의주의 빛을 본 이후부터는 양신수련에 들어간다. 양신수련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의식을 사용하여 도계의 빛을 받는다. 빛을 받는 곳은 백회(百會)이다. 이렇게 백회로 빛을 받아서 하단전에 보이는 여의주로 보낸다. 다시 말하면, 양신수련은 의식을 사용하여 도계의 빛을 백회로 받아 하단전 여의주로 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도계의 빛이 여의주에 닿게 되면 여의주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때 앞에서도 누누이 강조했듯이 여의주의 변화에 의식을 빼앗겨서는 절대 안 된다. 그저 관망만 해야 한다. 이것은 유념하고 유념해야만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수련자들이 여의주의 변화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면 줄곧 의식을 빼앗기곤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의식을 빼앗기게 되면 도계의 빛에 두었던 의식이 여의주의 변화로 옮겨지게 되므로 백회를 통해 들어오던 도계의 빛이 끊어져 공부의 진전을 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던 여의주의 변화도 점점 가리워져 보이지 않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나약해서,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으면 더욱 집착하게 되고 집착할수록 더욱 보이지 않게 되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관념에 의한 환상, 마경(魔境)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수련자는 이 점을 반드시 유념해야만 한다. 즉, 수련중에 의식이 도계의 빛에서 다른 곳으로 옮아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하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여의주의 변화는 그저 관망만 해야 한다.
이렇게 관망만 하면서 도계의 빛을 백회로 받아서 여의주로 계속 보내면, 여의주는 빛을 발하며 닦여져 수련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이 여의주의 빛은 다섯 가지이 오묘한 색깔로 순서 있게 변하여 나중에는 다섯 색깔 모두가 어우러진 빛을 발하게 된다. 이 다섯 가지 색깔도 그 나름대로 순서와 서열이 존재하는데, 제일 높은 색은 황금색(黃色)이다. 그 다음이 붉은색(赤色), 푸른색(靑色), 흰색(白色)의 순이며 마지막으로 제일 초보적인 빛의 색은 검은색(黑色)이다. 여의주가 닦임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의 빛을 발하게 되는데, 그 순서는 도계의 오색(五色) 서열에서 낮은 것부터 높은 것으로 변화한다. 즉, 여의주가 발하는 오색의 순서는 검은색에서 흰색, 흰색에서 푸른 색, 푸른색에서 붉은색, 붉은색에서 황금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도계에는 이 마지막 서열인 황금색보다 더 높은 서열의 빛이 있는데, 이 빛의 모양과 색깔은 뭐라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여의주의 빛이 황금색을 발하는 것을 본 이후에도 계속해서 수련정진하면, 이 황금색 여의주의 빛을 뚫고 여의주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수련자가 각고의 노력으로 여의주의 속을 들여다본 이후로 계속 수련에 정진하다 보면, 어느 날 순간적으로 사람의 형태를 한 이상한 무언가를 여의주 속의 희뿌연 가운데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사람의 형태는 갈수록 또렷해져 나중에는 그 형태가 수련자 자신의 모습으로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즉 여의주 속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자신의 모습이 바로 양신이며 빛으로 만들어진 도체이다. 이 때의 모습은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고 몸은 간난아이의 것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양신이 탄생은 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숙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양신이 탄생하면 의식을 양신과 합일시킨다.


이렇게 양신이 탄생하여 합일한 후에는 도계의 빛을 백회에서 받아 곱다로 양신으로 보내도록 한다. 그러면 양신은 도계의 빛을 받아 성장하여 빛의 힘으로 하단전 여의주(下珠)를 뚫고 중단전 여의주(中珠)로 올라오게 된다. 이때 하주에서 중주로 올라오는 모습이 마치 연꽃 속에서 솟아오르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주에서 양신을 중주로 밀어 올릴 때, 빛이 양신의 가부좌한 다리에 부딪혀 흩어지면서 마치 연꽃의 잎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양신이 하주에서 중주로 올라올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앞서 운기수련에서 의식이 진기를 앞서면 진기가 생기로 화해버리고 말 듯이 욕심이 앞서 양신을 미리 끌어올려서는 안 된다. 수련자의 의식과 양신이 합일되면서 자연스럽게 서서히 올라오게 되는 것이므로 무리하게 양신을 끌어올리지 않도록 하자.


양신이 중단전의 중주로 올라오게 되면 이제는 백회로 받은 도계의 빛을 중주에 있는 양신으로 보내야 한다. 그러면 양신은 다시 힘을 얻어 상단전의 상주로 오르게 된다. 이렇게 양신이 성장하여 상단전까지 오르면, 이제는 양신이 두정(頭丁)을 열고 몸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두정을 여는 데는 앞서보다 훨씬 더 많은 빛의 힘이 필요하다. 양신이 상주에 자리잡게 되면 백회에서 받은 도계의 빛을 바로 상주의 양신에 보내야 한다. 그러면 양신은 그 빛의 힘으로 두정을 열게 되고, 드디어 빛을 타고 머리 위로 나오게 되는데, 이를 출신(出神)이라고 한다.
양신이 두정을 열고 출신할 때는 빛이 먼저 두정을 열고 나오며, 뒤따라서 그 빛을 타고 양신이 나온다. 두정을 뚫고 나올 때의 빛의 형상은 두정을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활짝 펼쳐지게 되는데, 그 빛을 타고 나온 양신의 크기는 수련자 자신의 주먹 크기만 하다.


처음 양신을 출신하면 머리 위에서 약 20센티미터 정도 떨어져서 떠있게 된다. 이때 의식을 양신에 두면 수련자 자신의 몸이 밑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의식을 육체로 옮기면 이번에는 머리 위에 있는 양신이 20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떠있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이때 보는 것은 육안(肉眼)이 아니라 심안(心眼)으로 보는 것이다.


이제 수련자의 의식은 자유자재로 육체와 양신 사이를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수련을 할 때 의식은 육신에 두어야 한다.
양신이 두정을 열고 나와 출신한 뒤로는 도계의 빛을 백회에서 받을 필요가 없다. 의식만 육신에 두고 도계의 빛은 바로 머리 위의 양신으로 보낸다. 그러면 주먹만한 크기였던 양신이 빛의 힘으로 점점 성장하여 마침내 수련자 자신의 몸과 똑같은 크기로 자라게 된다. 이때도 양신과 육신과의 거리는 20센티미터 정도이다.


이처럼 양신과 육신의 크기가 같아지면 비로소 의식을 양신에 옮겨 조금씩 움직이는 수련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몸 주위를 돌아다니는 데에도 상당한 힘이 필요하지만, 수련이 보다 깊어지면 방안을 돌아다니게 되고, 더욱 깊어지면 집 주위를 다닐 수 있으며 나중에는 천지간 어느 곳이든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즉 우주 공간 저 너머에서부터 이글거리는 태양 속이나 깊은 바다와 지각 속까지 걸림 없이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양신 요결
양신이 천지간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이제 양신이 완전히 성장하여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 때부터는 도계에 입문할 준비를 해야 한다. 결국 양신이 성장하여 곧바로 찾아가야 할 곳은 도계인 것이다.


만일 도계에 입문하지 않고 천지를 돌아 다니는데 재미를 붙여 줄곧 여행만 하게 되면 천지간에 수없이 존재하는 잡신과 잡기에 물들게 되고, 그러다가 자칫 잘못하면 지금껏 어렵게 수련하여 얻은 양신이 음신(陰神)으로 변해버리게 된다.
음신이 되면 양신의 밝은 황금빛이 점차 어둡게 되어 검게 변하고, 나중에는 완전히 검어져서 양신자체가 소멸되고 만다. 이렇게 한번 양신이 소멸되면 다시 양신을 하주에서 형성하여 탄생시켜야 하는데, 이렇게 다시 형성시키는 데에는 처음 형성시킬 때보다 정확히 세배가 더 힘들게 되므로 아주 주의해야 한다.

 

15. 도계입문(道界入門)

도계입문은 양신이 완전히 성장하여 움직이게 되었을 때, 다시 육신의 머리 위로 돌아와 육신과 양신 사이의 거리를 20센티미터 정도로 유지한 채 움직이지 말고 도계의 빛을 받아 양신에 강하게 모으면서 하늘을 보면 된다. 이때는 육신이 아니라 양신이 하늘을 보는 것이다. 도계입문 수련시에는 의식이 양신에 있어야 하며, 그 이후로도 항상 의식을 양신에 두어야 한다. 이렇게 양신을 통하여 하늘을 계속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하늘에서 희고 커다란 둥근 빛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 망설이거나 주저할 필요없이 바로 양신을 타고 그 빛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빛 속에는 수련자의 전생영(前生靈)들이 무리 지어 존재하는 2천도계(二天道界)가 있다. 즉, 이 흰빛이 바로 2천도계로 가는 통로다. 양신을 타고 빛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빛의 근원지가 나오는데 이 곳이 바로 2천도계인 것이다. 이 2천도계에 들어가면 드디어 수련자는 도계에 입문한 것이다. 도계는 현상계 이상의 세계를 말하는데, 모두 열한 개의 차원이 다른 하늘이 있다. 도계입문 이후의 수련과 도계의 구조 등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선도초학자를 위한 이 책의 특성상 아쉽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 일은 시기가 도래하면 자연히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 많은 석문호흡 수련자들이 이미 그 길을 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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