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미래, 세계가 본 한국의 미래
짐데이터이론 틀│하와이주립대 미래학대학원장, 정치학과 교수 dato@hawaii.edu│ 박성원글│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하와이주립대 미래학대학원 박사과정 seongwon@hawaii.edu│ |
미래 예측을 적중시킬 방법은‘방금 신 내린 도사’를 찾는 게 아니라 직접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실제 많은 나라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의 고민과 분석 속엔 한국도 들어 있다. 어느 나라도 세계 변화를 무시한 독자적인 미래 계획을 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
페이스 팝콘(Faith Popcorn)이란 미국인 컨설턴트가 있다. 한국에는 ‘미래생활사전’을 펴낸 미래 예측가로 알려져 있는데, 독특한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미국 경제잡지 ‘포천’은 팝콘을 ‘마케팅의 노스트라다무스’로 치켜세웠고, ‘뉴욕타임스’는 ‘최고의 트렌드 제조기’라고 불렀다. 그는 작명(作名)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고안해낸 단어로는 ‘코쿠닝’(cocooning·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이나 ‘얼고노믹스’(ergonomics· 점점 더 개인적인 취향을 제품에 반영하는 경향)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기존 단어를 현재의 추세에 맞춰 재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팝콘은 1974년 브레인리저브라는 컨설팅업체를 차려 지금도 활동하고 있으며, 10대 소녀부터 대기업 총수까지 5000여 명의 라이프스타일을 기록한 ‘탤런트 뱅크’를 구축하기도 했다. 다소 설명이 장황해졌는데, 팝콘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그가 운영하는 컨설팅업체 홈페이지에 뜨는 문장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If you could know everything about tomorrow, what would you do differently today? (당신이 내일 일어날 일을 모두 알게 된다면 오늘을 어떻게 보내실 건가요?) 그의 질문은 우문(愚問)에 가깝다. 사람은 내일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치 팝콘 자신은 내일 일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이 질문의 ‘상업적’ 의도가 무엇이든, 어리석은 질문도 때로는 좋은 답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팝콘의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내일 어떤 일이 꼭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오늘 무엇을 하겠습니까?’ 사람이 미래를 점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미래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정신없이 변화하는 현재에 적응해 살기에도 힘든데 미래까지 예상하면서 오늘을 산다는 건 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이 좀 더 나은 오늘을 위해 미래에 꼭 나타나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이번 호에 ‘세계의 미래’를 써보려고 한 이유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어떤 미래를 창조하려고 하는지, 이런 노력을 통해 배울 점은 무엇인지 탐색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세계인이 본 한국의 미래’를 덧붙인 이유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예상하는 한국의 미래모습을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자는 것이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5인 숨을 고르는 의미에서 ‘뉴 사이언티스트(www.newscientist.com)’의 최근 기사를 하나 보자. 이 저널은 최신 과학 동향과 미래에 대한 생각거리를 제공해 미래학자들이 많이 참고한다. 신기술이 만들어낼 새로운 사회에 관심이 있다면 북마크를 해둬도 좋을 듯싶다. 2009년 5월6일자 기사엔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해 역사에 남을 다섯 명의 미래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인물은 버너 빈지(Vernor Vinge)다. 컴퓨터 과학자이자 공상과학 소설가인데, 그는 ‘특이점’(Singularity ·조만간 인간과 로봇이 결합돼 새로운 인류가 탄생한다는 주장)이란 단어를 처음 고안해냈다. 빈지는 1960년대 “인간이 생존하려면 인간보다 더 뛰어난 기계를 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어빙 존 굿(Irving John Good)의 영향을 받아, 1993년 ‘기술적 특이점이 온다’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미래학자 레이 커즈웨일이 주장한 것처럼 21세기 중반 인간과 기계를 통합한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신동아’ 2월호 참고) 그의 아이디어가 커즈웨일에게 전해졌고, 커즈웨일은 특이점에 관한 책을 출간하는 것 외에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올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특이점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을 설립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를 통해 커즈웨일은 자신이 구상하는 미래를 준비할 후학들을 양성할 계획이다. 두 번째 인물은 호평과 악평이 교차하는 월트 디즈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뉴 사이언티스트’가 그를 지목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초기 구상한 디즈니랜드는 지금의 놀이공원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대담한 실험실 도시(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를 세워 각종 신기술을 시험하려고 했다. “주민은 2만명으로 제한하고, 도시는 원형으로 만들어 중심엔 거대 실험실을 만든다. 실험실 둘레엔 고층빌딩을 지어 주거시설과 업무시설로 쓰고, 고층빌딩 너머엔 나무와 잔디를 심어 휴식공간을 만든다.”(인천 송도신도시도 초기엔 이런 비전을 담았다.) 그의 이러한 비전이 100%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디즈니랜드는 이런 실험적인 이미지에 세계의 문화를 담아 세계적인 놀이공원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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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엽을 살다간 공상과학 소설가 웰스(H. G. Wells)가 세 번째 인물로 꼽혔다. 그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의 소설이 황당한 미래를 그려낸 것이 아니라 실현가능성이 높은, 때론 현실로 증명된 것들을 담고 있어서다. 1930년대 펴낸 소설에서 그는 1940년대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이며, 이전 전쟁과 달리 거대한 공중전이 벌어져 세계의 도시를 초토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의 소설 중 영화로 제작된 것엔 ‘달나라에 간 첫 번째 사람’이나 ‘투명인간’처럼 1960년대 개봉된 것들도 있고, ‘세계대전(2005년·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처럼 최근 나온 것도 있다. 아직도 그의 상상력이 우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신동아’ 3월호에도 소개한 바 있는 로마클럽이 네 번째 미래학자다. 로마클럽은 미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다. 선정 이유는 ‘신동아’ 3월호에서 밝혀놓은 그대로다. 1970년대에 나온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지구의 미래를 암울하게 예측했다는 이유로 관심도 많이 받고 비난도 많이 들었다. 예측의 정확성 여부를 두고 오랫동안 논란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많은 부분이 현실로 증명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비록 미래를 암울하게 예측하는 주장이라도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인물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앨빈 토플러다. 그에 대해선 이미 많이 다루었기에 생략한다.
가치의 공유, 가치의 확산 예측이 맞고 틀리고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누차 강조했듯 사람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운이 좋아 맞았거나 운이 나빠 틀렸을 뿐이다. 다만 어떤 미래를 그리느냐는 중요하다. 이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의 모습에 어떤 가치와 철학, 규범, 전통을 담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소개한 미래학자들은 뚜렷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미래 예측이 실현되는 과정은 이처럼 가치의 공유에서 시작하고, 가치의 확산에서 끝난다. 따라서 한국은 미래 예측가를 찾는 노력보다 훌륭한 가치를 창조하고 그걸 사람들과 토론하고 공유하는 비전 전문가를 키워내는 데 주력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미래학은 인류의 오만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탄생했지만, 미래학이 하나의 사회과학이나 비판이론으로 성장한 곳은 ‘살기에도 좋은 곳’에서였다. 살기 좋은 동네엔 살기 좋도록 보살피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공동체에 대한 애착, 이웃에 대한 관심, 미래세대를 위한 배려는 미래학의 핵심 가치이며, 이는 살기 좋은 곳에서만 활발하게 토론되는 주제들이다. 국가가 앞장서 미래세대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시민과 함께 바람직한 미래를 그려내는 나라가 있다. 핀란드다. 이 나라는 어느 제과업체의 껌 덕분에, 또 강소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한국인에겐 어느덧 친숙한 나라가 됐다. 세계적인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를 키운 곳,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에서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곳, 교육경쟁력이 세계 최고인 곳…. 한국인이 곁눈질할 만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 산하 미래기획위원회가 생기더니, 이 덕분에 핀란드 국회 산하의 미래위원회가 덩달아 한국에 알려졌다. 미래기획위원회 홈페이지에 가보면 핀란드 미래위원회 웹사이트가 연결돼 있다. 미래에 대한 관심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핀란드가 지금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핀란드 미래연구센터와 미래학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제11회 국제학술대회가 눈에 띈다. 핀란드 지식사회연맹, 경제교육재단, 그리고 터쿠(Turku) 경제학대학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5월28~29일에 열린다. 행사 주제는 ‘소비사회의 미래(Future of the Consumer Society).’ 주최 측은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로 “인류가 무분별한 과소비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계기로 가능한 미래, 개연성이 높은 미래, 바람직한 미래를 도출하는 데 미래학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래학 강국답게 행사 주최 측은 미래학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미래학은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탐구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활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미래학은 미래의 소비사회를 이해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 유용하다.” 귀담아들을 만하다. 국제학술대회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단순한 학술행사로 끝내지 않고, 정부 관련 인사들에게 바른 정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줄 것을 다짐하고 있다. 물론 모든 학술행사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진행되겠지만, 한국에서 벌어지는 미래 예측 관련 행사를 보면 전시용 행사로 끝나거나 유명인을 초청하는 선에서 머물고 있다. 이는 우리의 미래 비전을 외부에서 수입하려는 소극적인 태도다. 서툴러도 우리 스스로 미래의 그림을 그려보고 난 뒤, 관련 전문가를 초청해 조언을 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유용할 것이다.
핀란드가 본 한국의 미래 핀란드가 소비사회의 미래를 그려보려고 하는 데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소비사회의 명암 파악을 넘어 소비사회의 대안 모색 단계에까지 이르면 그건 국가적인 과제가 된다. 새로운 사회의 탄생은 소수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학자, 정부 관료, 정치인, 시민단체, 때로는 국제사회의 도움까지 받아야 한다. 좋은 본보기가 1970년대 캐나다에서 진행됐던 ‘보존사회(Conserver So-ciety)’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소비사회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보존사회’였다. 캐나다의 각계각층이 모여 10여 년 동안 토론을 벌였다. 이를 통해 나온 보고서만 해도 수만 페이지가 넘는다. 지난해 가을 하와이주립대 미래학연구소가 한국 통신회사 KT의 과제를 받아 ‘한국형 보존사회’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캐나다 사례를 참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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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기업에 납품한 과제라 여기에 주요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이 프로젝트의 결론은 한국이 소비사회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디자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세계에 모범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적인 전통으로도, 그리고 현재 한국이 보유한 기술력으로도 충분히 실현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론이다. 한국은 이제 특정기술 강국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 ‘사회디자인 강국’으로 발돋움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모범을 좇는 나라에서 모범을 제시하는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핀란드가 소비사회의 미래를 그리면서 추구하는 목표는 바로 새로운 사회 모범의 제시일 것이다. 핀란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핀란드 사람들이 그린 한국의 미래도 살펴보자. 핀란드 국회 산하 미래위원회에서 2008년에 낸 보고서 ‘주요 도시, 아시아 그리고 문화(Metropolises, Asia and General Culture)’를 보면 이들이 한국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엿볼 수 있다. 보고서는 한국을 11대 무역대국으로 자동차 조선 전자업계가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이 정보통신(IT)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지향하고 있지만, IT 기업의 최고로 알려진 삼성이 이 분야에서 주춤하고 있다고 평가한다는 점이다. 그 증거로 삼성이 계열사 최고 경영자 60%를 해고했고,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일했던 종업원들을 삼성박물관이나 에버랜드 등으로 전보조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이는 삼성이 주요 동력을 정보기술(IT)에서 나노기술이나 바이오기술로 바꾸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세계적 연구소와 손잡은 서울 이 보고서는 일개 기업 분석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문제(촌지), 인맥 중시 관행의 폐해, 비능률적 관료주의, 공무원 사회의 부패 등을 짚어낸다. 이를 통해 “한국이 과연 스스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조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예전처럼 선진국의 뒤꽁무니만 좇아갈지 지켜볼 일”이라고 적고 있다. 아울러 인구 고령화, 저출산과 사교육비에 수입의 30%를 쏟아 붓는 세태를 지적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핀란드 사람들이 우리의 이러한 문제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진다. 또한 한국 대표기업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한국 경제의 방향을 가늠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보고서는 핀란드 미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 내친김에 한국의 미래에 대한 다른 나라의 전망을 좀 더 살펴보자. 세계 미래학계의 양대 조직 중 하나인 세계미래협회(World Future Society)에서 발간하는 저널 ‘퓨처리스트(The Futurist)’ 2009년 1·2월호는 서울의 변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 저널은 서울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모델이 되고 있다면서 유럽의 유명 연구소와 함께 서울을 친환경적인 도시로 바꿔나가는 것이 그 증거라고 제시한다. 오세훈 서울시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서울은 성장일변의 도시에서 환경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녹색도시로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유럽 최대 연구소인 프라운호퍼(Fraunhofer)와 손잡고 마구잡이 도시(the sprawling megacity)에서 지속가능 성장도시(a model of urban sustainability)로 변모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도시 빌딩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각종 기술을 통해 도시를 ‘에너지 제로’상태로 만들겠다는 구상 등이 그것이다. ‘퓨처리스트’는 서울이 ‘그린 도시’로 바뀐다면 세계의 다른 도시들에 훌륭한 모범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퓨처리스트’ 기사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서울시가 변화적응기술(adaptronics)을 통해 에너지 제로 도시를 만들겠다고 밝힌 부분이다. 프라운호퍼에서 발간한 보고서엔 이 기술의 핵심을 전자공학기술을 통한 변화적응의 향상(adaptation through electronics)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컨대 건물에 변화적응기술을 적용한 센서를 부착해 건물의 진동을 제어하고 소음을 줄이며 건물의 결점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물질도 사람처럼 자기조절능력(self-regulating)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질 스스로 이런 능력을 갖출 수는 없지만, 인간이 센서 등을 부착해 이런 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이런 변화적응기술이 21세기 산업을 이끌 핵심 기술 중 하나라고 전망한다.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주장을 들으면서 근대사회에서 경제학이 주요 학문으로 등장한 과정도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신영복 교수나 장하준 교수 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은 한 사회에서 경제와 정치가 분리된 것은 자본주의 경제학의 등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시장(market)’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였으나, 자본주의 경제학의 등장으로 시장이 공동체 소속을 버리고 독단적으로 존재하는 쪽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개념이 바로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말한 자기조절능력이며 이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시장을 돌리는 원리는 수요와 공급의 교차점에서 정해지는 가격이며 정부의 개입은 시장의 원리를 왜곡시키는 존재다. 시장 자유화는 경제적 이익을 높이는 방법이며 공공 영역을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학의 주장이다. 인간이 시장을 넘어 물질에까지 자기조절능력을 부여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리스 원어로 ‘검소한 생활’을 의미했던 ‘경제’가 자본주의 경제학의 등장으로 인해 사회의 모든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원리로 발전했듯, 자기조절능력을 갖게 된 물질이 인류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궁금하다. 사실 스스로 조절한다는 ‘자기조절능력’은 우리 정서와 잘 맞지 않는다. 신영복 교수의 주장대로 동양은 관계론적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존재한다거나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환경을 조절한다는 아이디어는 우리에게 낯설다. 그건 미망이고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서울시가 세계적인 연구소와 손잡고 일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외부의 아이디어를 서울에 접목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앞선 기술이라고 해서 어느 곳에서나 들어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시가 비판적이고 창의적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믿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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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생산 주도권, 개발도상국에 거시적인 시각을 접고 이번엔 아주 미시적인 미래를 탐색해보자. 도서관의 미래를 연구하는 유네스코(UNESCO)의 존 반 오데나렌(John Van Oudenaren) 국장은 세계 디지털 도서관 사업을 맡고 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웹사이트(www.wdl.org)가 있다. 백 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훨씬 낫다. ‘세계 디지털 도서관 사업’은 각종 지도, 그림, 문서, 그리고 기타 문화 자료를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오데나렌 국장은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세계 시민이 문화적 장벽을 없애고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라고 밝힌다. 각종 도서관 자료를 인터넷에 올리는 이유는 특히 젊은 층에게 타 문화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 있고 재미있으면서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된 자료만 인터넷에 올린다. 여기엔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문화와 문명이 포함된다. 어떤 기준으로 중요도를 판단할까? 유네스코의 세계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엔 자료 선택만 담당하는 위원회가 있다. 유네스코에는 세계의 기억(the Memory of the World)이라고 불리는 등록기가 있는데, 여기엔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자료 목록이 들어있다. 각 국가의 수많은 도서관이 협조하면서 선별된 것들이다. 이번엔 음식의 미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펴낸 ‘앞으로 10년, 음식의 미래’를 살펴보자. 국내 식품회사들에 이런 자료쯤은 기본일 테지만 다양한 미래를 탐색한다는 측면에서 꼽아봤다.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다. 우선 가격 측면. 지난해 농산품 가격은 역대 최고 수준이었으나 앞으로 10년 동안 점차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한다면 농산품 평균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농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날씨의 미래는 어떨까? 2005년과 2006년, 세계는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았고 이 때문에 곡식이 잘 자라지 못했다. 식량 가격은 폭등했다. 그러나 향후 10년 동안에는 극심한 이상기후가 발생할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보고 있다(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내일의 날씨마저 예측을 벗어날 때가 있는 데, 10년의 날씨까지 예측한다니 놀랍다). 석유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목받은 식물성연료(bio-fuels)의 사용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먹기에도 부족한 식량을 기름으로 태워 없앤다는 것이 비윤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조만간 등장할 2세대 식물성연료는 상업성 측면보다는 환경적 측면을 고려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번엔 좀 더 구체적으로 2017년의 농산물 가격 전망을 살펴보자. 대부분 농산물 가격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품목별로 보면 소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은 20% 상승, 설탕은 30% 상승, 밀과 옥수수는 40~60% 상승, 버터와 기름을 낼 수 있는 종자들(oilseeds)은 60% 상승, 식물성 기름은 무려 80%나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할 점은 가격의 변동 폭이 과거보다 심하게 요동칠 수 있다는 것. 농업생산의 주요거점이 선진국그룹(OECD)에서 개발도상국그룹으로 옮겨진다는 예상도 눈에 띈다. 양쪽 그룹 모두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할 것으로 예상되나, 식량 생산의 주도권은 개발도상국그룹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서유럽 등 선진국이 아시아 개발도상국가에 식량을 의존하는 정도가 커진다는 이야기다. 한 가지 우울한 예측은 2017년까지 더 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란 점이다(‘Future Survey 30:11’ 참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국가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위대한 전환 이룬 2084년 이번엔 중국과 인도의 걱정스러운 미래로 관심을 옮겨보자.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히말라야 빙설이 녹아 거대한 물 재앙을 만날 수 있다는 경고 때문이다. 이미 환경보호단체에서 수차례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 최근엔 일부 국내 언론도 심층취재를 하고 있다. 국제기구에서도 초미의 관심을 갖고 대책을 논의 중이다. 히말라야의 거대한 빙설이 온난화의 영향으로 녹아내릴 경우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최근 1년 동안 주요 저널에 등장한 것만 훑어봐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과학전문지 ‘네이처’(2008년 7월24일자)에 따르면 극지방 다음으로 빙설이 많은 히말라야는 현재 빠른 속도로 녹고 있으며, 지난 50년 동안 82%의 빙하가 뒤로 물러났다고 전했다. 녹았기 때문에 뒤로 물러선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긴데, 히말라야에 오른 산악인들이 예전에는 빙설이었으나 지금은 호수가 된 곳이 많다고 증언하고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앞으로 40년 뒤인 2050년엔 히말라야 빙하의 60%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히말라야를 하늘의 지붕으로 삼아 거주하는 네팔 주민의 경우 벌써 수차례나 막대한 홍수 피해를 보았다. 녹아내린 빙설이 마을을 덮친 것이다. 히말라야 접경지대인 중국과 인도로선 재앙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2008년 6월8일자)는 중국과 인도가 히말라야 재앙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선 화석연료 사용을 대폭 줄이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과 인도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대안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과 이웃하는 한국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의 변화에 따라 우리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예측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엔 미국 보스턴의 민간연구소 텔러스(www.tellus.org)의 설립자 폴 래스킨(Paul Raskin)의 ‘2084년 지구의 미래(The Great Transition Today)’를 엿볼 차례다. 래스킨은 1976년 텔러스 연구소를 설립한 뒤 수많은 미래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의 연구 주제는 환경보호, 기후변화, 물 보호, 에너지 보존이다. 그의 보고서는 2084년이라는 미래 시점에서 지금의 우리들에게 편지를 보내 미래를 알려주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여기엔 아고리아(Agoria·시민참여), 에코데미아(Ecodemia·경제민주주의), 아카디언(Arcadian·목가적인 생활) 등 세 가지가 키워드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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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스킨에 따르면 아고리아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하며 자원을 보존하는 사회다. 에코데미아는 종업원들이 회사를 소유하는 것을 장려하면서 물질적 욕구와 정신적 욕구를 균형 있게 추구하자는 것이다. 아카디언은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면서 인생의 참뜻을 찾아나서는 사회다. 어떤 것도 새롭게 들리지 않지만, 어떤 사회도 이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말로는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도 몸은 정반대로 움직인 것이 우리가 경험한 사회이고 역사다. 래스킨은 제목에서 강조했듯 위의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하는 인류의 탄생을 염원하면서 ‘위대한 전환(Great Transition)’을 이뤄내자고 설득하고 있다.
변호사와 판사의 차이 위대한 전환을 성취한 2084년의 인류는 다음과 같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은 점차 사라지고, 비영리 조직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굶주림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빈부격차가 상당히 좁혀진다. 자유주의 시장체제는 자취를 감추고, 공동체 신뢰가 바탕인 경제체제가 들어선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모두 자기 회사라는 관점에서 일한다. 사람들은 대도시의 삶보다 한적한 농촌의 삶을 선호한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2084년의 경제발전은 물질과 정신의 필요를 채워주고, 개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며, 문화적 전통과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이성적 판단보다 인간관계 속에서 적절한 것을 찾아내는 미학적 판단을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한다. 정부정책의 과정은 더 투명해지고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한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의사당에 가지 않고도 모든 주민이 인터넷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을 선택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100년 이상 살고 있으며, 의미 있는 삶에 대한 토론 벌이기를 좋아한다. 이런 미래 예측을 두고 독자의 반응은 둘로 갈릴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독자와 동화 같은 이야기라는 독자. 2006년 ‘신동아’ 기자 시절 미래학자들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게재한 적이 있는데 법조인 중에서 특히 변호사들이 미래의 이야기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한가한 탁상공론이라는 것이다. 물론 변호사 나름이겠지만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법정투쟁 속에서 살다보니 증거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선 상당히 비판적이다. 미래의 일은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과거더러 가능성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이미 벌어진 일을 두고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듯,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두고 증거를 대라고 할 수는 없다. 흥미로운 점은 법조인 중에서도 판사들은 상당히 미래지향적이란 사실이다. 하와이주립대의 미래학연구소만 해도 한국의 대법원과는 미래 관련 프로젝트를 함께 한 적이 있지만, 변호사협회 같은 곳과 프로젝트를 한 적이 없다(이런 점에서 보면 박원순 변호사는 예외적인 인물이다. 짐 데이터 교수를 찾아와 의견을 나누기도 했으니 말이다). 판사들이 미래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아마도 사회의 변화에 따라 법을 해석하고 형량을 선고하는 데에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예전에 10년 선고할 죄도 5년으로 낮춰 선고한다는 이야기를 어느 판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5년만 가둬도 과거 10년 가둔 것만큼 죗값을 물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미국은 법관들이 미래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판례에 의존하는 영미법 특성 때문인 것 같다. 또 수많은 법조인이 입법과 행정에 관여해 새로운 사회의 도래에 법이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하고, 새로운 정책도 제안하기 때문에 미래에 관심이 많다. 실례로 하와이주립대 미래학연구소는 1971년부터 하와이주 사법부와 공동과제를 진행했고, 1987년부터 1997년까지는 미국 대부분의 주 사법부와 법의 미래에 대해 공동 연구한 바 있다. 끝으로 세계의 미래를 전망한 보고서를 한 편 더 읽어보자.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이 최근 펴낸 ‘세계 100년 후(The Next 100 Years)’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미국에 이어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할 나라를 예측하는 대목이 재미있다. 프리드먼은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지리상으로 중국을 보면,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반도가 가로막고 남쪽으로는 고산준령의 히말라야와 정글이 가로막고 있다. 중국인 대부분은 동쪽에 모여살고 있다. 쉽게 영토를 확장할 수 없는 구조다. 둘째, 중국은 여러 세기 동안 해군력을 증강하지 않아 해상 진출도 쉽지 않다. 셋째, 기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중국이 외부에 문호를 개방할 때마다 혜택을 입은 쪽은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뿐이었다. 내륙 사람들은 계속 가난했고, 굶주렸다. 이런 불균형 성장 탓에 중국의 경제적 번영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프리드먼은 중국을 제외하고 일본, 터키, 그리고 폴란드의 부상을 점치고 있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대부분의 자원을 외부에 의존하고 있다. 낮은 출산율 때문에 일본은 필연적으로 해외에서 인적자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또 지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멈출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본은 군사력을 증강하고 해외 영향력도 높일 것이다. 세계 경제력 17위를 기록하는 터키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발칸반도와 아랍 국가들이 늘 불안한 반면 터키는 안정적인 기반 덕택에 중동지역 강대국이다. 불안한 정세 속에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폴란드는 16세기 이후 강대국 대접을 받지 못한 나라지만, 미래는 다르다. 첫째, 독일의 쇠퇴에 따른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아직까진 독일경제가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지난 2세기 동안 역동성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앞으로 50년 동안 독일 인구는 가파르게 감소한다. 폴란드가 독일의 지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러시아의 서진(西進)을 막으려는 미국 덕분에 폴란드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독일은 러시아의 서진을 막을 힘도, 의지도 없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폴란드를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 러시아의 서진을 막는 전초기지로 이용할 것이다. 이를 계기로 폴란드는 다시 한 번 세계 역사에서 주목받는 강대국이 될 수 있다.
미래의 증거를 찾지 마라
파편적이고 피상적이나마 ‘세계의 미래, 세계인이 보는 한국의 미래’를 다루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의 미래는 세계의 미래와 불가불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정치경제학자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 덕분에 1960년대부터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인 해석이다. 가정법적인 질문을 몇 개만 해봐도 한국이 독자적으로 경제개발에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다. 예컨대 1960년대 초반 박정희는 미국으로부터 경제지원 약속을 받아내지 못하고 서독 정부로부터 경제개발의 종자돈을 받을 수 있었다. 만일 당시 서독 정부가 한국의 인적자원(광부와 간호사)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개발계획을 세웠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또한 때론 경쟁하고 때론 미래사회의 단면을 읽는 데 도움이 됐던 선진국 일본이 이웃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전자산업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을까?
한국이 외부에 의존해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발전의 역량이 내부에 있었기 때문에 발전했다는 데는 우리 국민뿐 아니라 외국학자들도 동의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어느 나라도 세계 변화를 무시한 채 독자적으로 미래 계획을 세울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세계 각국의 현재 모습뿐 아니라 미래의 이미지, 미래 계획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핀란드가 한국 등 아시아 사회의 모습을 다양하고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자국의 미래 계획을 세우듯 말이다. 한국이 세계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기업이나 정부가 미래의 증거나 찾는 쓸데없는 노력을 하는 것보다 각국이 그리는 미래의 이미지를 찾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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