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온몸에 튀는 비늘, 은빛으로 반짝이는 생명력
명양호 옆으로 다른 멸치잡이배가 지나간다. 바다는 그들에게 ‘물밭’이다.
남해군 미조항 멸치잡이배 동승기…5월부터 7월까지 새벽·오전 하루 2회 투망
“투망 넣어! 투망 넣어!”
선장 김차윤(62)씨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카메라를 잡은 손이 흔들렸다. 기사 참고용으로 찍은 조타실 내부 사진의 초점이 흔들렸을 게다. 오전 5시40분. 일출 뒤 18분이 지났지만 희부연 빛만으로 셔터 속도를 얻기에 부족하다. 6명의 선원이 유자망을 던진다. 이물 왼편에서 한 선원이 부표를 잡고 다른 한 명이 선수 쪽에 서서 그물 끈을 잡은 뒤 서로 눈신호를 주고 동시에 던진다. 그래야 그물이 꼬이지 않는다. 5시53분 투망이 끝났다.
총톤수 18톤의 멸치잡이배 명양호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 공간이 있다. ‘전장 15m의 배에 어떻게 이런 공간이 있을까’ 싶은 곳에서 선원들이 문을 열고 나온다. 짧은 아래턱이 튀어나오고 눈매가 처져 선해 보이는 선원에게 사진기자가 “이후에 잡는 과정이 어떻게 돼요?”라고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웃으며 “…몰라요”라고 답하고 조리실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 작업과 작업 사이 짬 시간에 선원들은 좁은 방에 드러누워 잠을 청한다. |
|
||||||
|
||||||
‘이런 어촌에 젊은 청년이?’라는 생각에 말을 건넨 청년은 몽골에서 왔다. 올해 스무 살의 더기는 2년 전에 한국에 왔다. “고향이 어디냐” “멀리서 왔다”고 쉬운 단어를 골라 물었지만, 한국어가 서툴러 대화가 안 된다. 국가통계포털(www.kosis.kr)을 보면, 2005년 농림어업 외국인노동자 종사자는 2788명이다. 이중 중국 한족 남성이 731명이고 몽골 남성은 72명이다. 지금 미조면 앞바다에 떠 있는 어선 22척에 한두 명씩 개발도상국 출신이 일한다.
뱃사람들의 말은 짧다. “뭐 하노, 야마지!” 6시50분 고참 선원이 외친다. 야마지란 이물 오른편에 달린 그물을 끌어올리는 도르래다. 영어 단어 ‘윈치’(winch)의 일본식 발음인 것 같다. 네 명이 그물이 꼬이지 않도록 가로로 서서 잡아당긴다. ‘야마지’가 돌자 10㎝는 족히 넘는 멸치가 곳곳에서 파닥거렸다.
그물을 다 감아올린 7시45분부터 두 시간 동안이 가장 고되다. 유자망에 걸려 올라온 멸치는 한 마리씩 떼지 않고 봄볕에 이불을 털듯 그물을 털어 떼어낸다. 3명이 나란히 서서 그물을 들어올렸다가 순간적으로 내려 턴다. 카키색 작업복과 장화를 신은 선원들은 과묵해졌다. 멸치 비늘과 살이 작업복과 얼굴로 튄다. 그들을 찍는 카메라에도 살점이 튀고 ‘7시45분부터 그물 털기’라고 적는 취재수첩과 펜에도 살이 튄다. 몰려든 갈매기들만 신났다. 파닥거리는 멸치 한마리를 쥐었다. 목장갑 사이로 진동이 느껴지지만 1분 만에 그쳤다.
|
||||||
|
||||||
9시38분 린흐아핑이 쌓인 멸치를 삽으로 퍼 25㎏짜리 ‘가구’에 담는 것으로 1차 조업이 끝났다. 선원들은 노란색 납작한 컨테이너를 가구라고 불렀다. 가구 300개를 채우면 만선이다. “어제는 200가구 채우고 600만원 받았습니다.” 끈 달린 바가지로 퍼 올린 바닷물로 얼굴을 씻으며 김칠남씨가 말했다. 하루 ‘매출’이 600만원이라지만 한 사람당 한 달 200만원 가까이 되는 인건비와 선박 유지비, 디젤 엔진 기름값을 빼야 한다.
그물을 당기고 터는 모습을 보니 이제 이해가 간다. 조리실에 앉아 있던 린흐아핑이 내게 간이의자를 양보하려 했을 때 “괜찮다”고 사양하며 만진 그의 등의 활배근(등의 하반부와 위팔뼈 상부를 연결하는 좌우 한 쌍의 넓은 근육)과 담배를 쥔 왼팔의 전완근(팔목과 팔꿈치 사이에 있는 근육)이 왜 그리 발달했는지를 말이다. 타격가인 권투선수는 삼두근과 어깨 근육처럼 미는 근육을 사용하고, 잡고 던지는 유도선수는 활배근과 전완근처럼 당기는 근육을 사용한다. 명양호 선원들은 유도 선수처럼 당기는 근육을 쓴다. 린흐아핑의 몸은 오로지 보여주는 게 목적인 패션모델의 근육과 달리 생활이 만든 몸이다. 선원인 만화 주인공 ‘뽀빠이’도 전완근만 발달했다.
그물을 털고 멸치를 정리하는 동안 배는 9.2노트의 속도로 다른 해역으로 움직였다. 선박의 위치를 보여주는 지피에스 플로터 화면에 ‘34°40.729′N, 128°02.552′E, 09.2KT(SOG)’라는 숫자가 보인다. 숫자는 배가 움직이면서 수시로 바뀐다. 첫 번째 숫자는 위도를, 두 번째 숫자는 경도를 가리킨다. 케이티는 배의 속도 단위인 노트(knot)다. 9.2노트는 시속 17.2㎞에 불과하지만, 아직 쌀쌀한 맞바람 때문에 체감 속도는 훨씬 빠르다.
|
||||||
|
||||||
5월엔 젓갈·횟감 멸치, 다시·볶음용 금멸치는 7월에
10시13분에 두 번째 투망이 시작됐다. 선원들은 더 과묵하다. 아까와 같은 작업을 한 번 더 해야 한다. 두 번째 조업 때는 그물을 미조항에 귀항해 턴다. 새벽 4시30분에 출항해 두 번 조업하고 오후 3시께 귀항해 미조항 위판장에 그날 잡은 멸치를 부리는 것이 선원들의 일상이다. 이런 일상이 1년에 200일 정도 반복된다. 미조(彌助)항은 ‘미륵이 도왔다’는 이름처럼 해안선과 빨간 등대와 오종종한 집이 아름답다. 미조항은 멸치, 갈치 등이 많이 잡히는 남해 수산업의 전진기지다. 여름철에는 송정해수욕장, 설리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 김차윤씨는 남해군 미조면 자율어업공동체 멸치유자망협회 회장이다.
오전 11시 다들 담배를 빼어 물거나 고물에 드러누워 선잠을 잔다. 투망 뒤 짬 시간이다. 고물 끝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누구든 한 번 보면 그 용도(?)를 짐작할 수 있다. 용변을 본 뒤, 담배를 피우던 김칠남씨 옆으로 갔다. 선장의 동생 김채윤(58)씨가 손님을 대접한다며 막 잡은 멸치를 튀겨 내왔다. 김칠남씨에게 멸치튀김을 같이 드시자고 권했지만, “매-ㄴ 날 보는 게 멸친데요”라며 손사래 친다. 문장은 표준어지만 ‘치’에 악센트가 들어간 남해 사투리다. 통영이 고향인 김씨는 7월 초까지 명양호를 타고 그 뒤 부산에서 오징어배를 탈 계획이다. 이 배의 다른 선원도 언제까지 이 배를 탈지 기약이 없다. “철 지나면 다 흩어집니다. 철 지나면 해체돼요.”
|
||||||
선잠을 자다 해경의 목소리에 11시17분께 화들짝 깼다. 무면허 조업 신고가 들어와 순찰중이라며 수상한 배를 본 적이 없느냐고 김차윤씨에게 묻는다. 5분 뒤 그들은 고무보트에 올라 모선으로 돌아갔다. 해경이 돌아간 뒤 김씨는 다시 디젤 엔진의 속도를 9노트까지 올린다. 눈이 크고 눈썹이 짙으며 아래 눈두덩이 두툼한 김씨는 미국 배우 알 파치노를 닮았다. 쇳가루가 날리는 듯 금속성의 쉰 목소리도 비슷하다. 조타실 무전기에서 남해 사투리로 어선들끼리 교신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좀 들어가 쉬세요”라는 김씨의 억양이 극심한 표준어는 무전기를 잡는 순간 청취 불가능한 남해 사투리로 바뀐다.
김칠남씨가 오후 1시30분 늦은 점심을 위해 파닥거리는 멸치를 한 소쿠리 떠서 무, 파를 썰어 넣고 고추장을 풀어 만든 멸치찌개는 일품이었다. 가운뎃손가락보다 두툼한 멸치가 듬뿍 들어간 찌개는 꽁치찌개 같았다. 5월20일인 지금 잡는 멸치는 젓갈·멸치회·멸치쌈밥용이다. 다시(국물용) 멸치, 볶음용 멸치로 유명한 남해군 금멸치는 7월부터 잡힌다. 명양호는 7월부터는 그물을 바꿔 병어를 잡는다. 병어 철이 지나면 다시 멸치잡이다.
|
||||||
젓갈용은 머리와 내장이 찢겨도 상관없지만, 국물용 멸치는 몸 상태가 온전해야 제값을 받는다. 그래서 국물용 멸치는 그물로 걸어 올리지 않고 다치지 않도록 둥글게 에워싸 잡는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미리 설치한 대나무 발로 잡는 ‘죽방멸치’가 최고급 명품 취급을 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맛 좋기로 유명한 진도 멸치도 비슷한 방식으로 잡는다.
몸 상태 온전해야 제값 받아
귀항하는 오후 2시30분께 정면에 보이는 미조군 수협 위판장에는 멸치 도매상들이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며 배를 기다린다. 더기와 린흐아핑이 잡은 대멸(큰 멸치)도 이곳에서 액젓용으로, 멸치회용으로 팔려나갈 게다. 바지부터 카메라, 취재수첩까지 청국장 냄새보다 더 심한 멸치 비린내가 뱄다. 삶이 비루한 사람이든 비루하지 않은 사람이든,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비린내 나는 멸치를 먹고 배를 채울 게다.
남해=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ㆍ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특급호텔 요리사들의 멸치 레시피
‘약방에 감초’라는 비유법을 빌리자면,‘밥상에 멸치’다. 주요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고소하고 바삭한 멸치볶음이 없는 밥상은 허전하다. 다시(국물용) 멸치가 없는 밥상은 더 끔찍하다. 한국 음식은 국물의 문화다. 멸치 육수의 담백한 바다 맛은 잔치국수뿐 아니라 곳곳에 쓰인다. 다시 멸치가 없다면 한국 음식은 ‘국물도 없다.’ 이 때문에 요리사들의 멸치 사랑은 보편적이다. 서울 시내 특급호텔 주방장들로부터 멸치 요리 조리법을 추천받았다.
⊙ 롯데호텔 한식당 무궁화 정문환 조리장의 멸치국수
담백한 멸치국수는 가장 대표적인 멸치 요리다. 집에서 간단히 해먹기도 좋다.
재료 : 다시마 10㎝ 1장, 국물용 멸치 10마리, 물 3컵(200㎖).
조리법 : ① 내장과 머리는 떼서 바싹 말린다. 멸치가 눅눅하면 비릿해진다. → ② 물을 붓고 다시마, 대파, 양파, 무, 통마늘을 멸치와 함께 넣는다. → ③ 30분 정도 끓인다. 너무 오래 끓이면 누린내가 난다. → ④ 다 끓이면 걸러서 육수에 간을 한다. 먼저, 간장을 조금 넣어 색깔을 맞추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후춧가루를 약간 뿌려도 좋다. 멸치액젓도 1~2방울 떨어뜨린다. 멸치액젓은 진한 맛을 더해준다. 멸치성분 화학조미료를 넣으면 육수가 느끼해지므로 쓰지 않는다. → ⑤ 애호박, 당근, 양파를 채 썰어 볶고 달걀지단을 만든다. → ⑥ 국수를 삶아 육수와 함께 담은 뒤 고명을 올리고 김 가루, 송송 채를 썬 김치를 약간 올린다.
⊙ 세종호텔 한식당 은하수 이광진 주방장의 견과류 멸치볶음
호두는 뇌를 닮았다. 호두를 이용한 멸치볶음은 멸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특히 좋다. 머리 좋아지고 뼈 튼튼해지는 어린이 영양 반찬이다.
재료 : 중멸치 100g, 호두 10개, 식용유 2큰술, 황색 물엿 1큰술, 참깨 1/2큰술, 간장 1/2큰술, 다진 마늘1/2 큰술, 청홍 고추 약간.
조리법 : ① 호두는 오븐에 한번 구워 기름에 한차례 튀긴다. 연한 갈색이 날 정도로 튀긴다. → ② 볶음용 중멸치는 식용유로 튀기듯 볶다 황색 물엿, 다진 마늘을 넣고 청홍 고추, 참깨로 고명을 얹는다. 멸치 자체에서 짠맛이 나기 때문에 간장은 맛을 봐가며 조금만 넣는다. 물엿은 멸치에 윤기가 보기 좋게 날 정도만 넣는다. → ③ 멸치볶음의 핵심은 좋은 멸치를 고르는 것이다. 멸치는 작고 부드러우며 흰색이 도는 것으로 고른다. 누런 멸치는 오래됐거나 잘못 말린 것이므로 피한다.
⊙ 밀레니엄 서울힐튼 중식당 타이판 이휘량 주방장의 중국식 오향멸치볶음
특유의 향과 고추의 매콤한 향이 호박씨의 고소한 맛과 어우러진 중국식 오향 멸치볶음은 가정에서 밑반찬으로 간편하게 즐기기에 좋다.
재료 : 멸치 500g, 호박씨 750g, 홍고추 130g, 청양고추 50g, 정종(청주) 50cc, 물 130cc, 오향분(향신료)25g, 설탕 250g, 기름 15g
조리법 : ① 준비된 멸치와 호박씨를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낸다. → ② 튀긴 멸치와 호박씨를 체에 넣고 기름을 뺀다. → ③ 매콤한 향을 내기 위해서 기름에 홍고추와 청양고추를 넣고 볶는다. → ④ 홍고추, 청양고추를 볶은 것에 정종, 설탕, 물, 오향분을 넣고 끓인다. 오향분은 덩어리가 지지 않도록 계속 저어준다. → ⑤ 위 결과물이 끓기 시작할 때 튀긴 멸치와 호박씨를 섞어 잘 비빈다.
| |
|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경찰의 자존심 황운하 총경 (0) | 2009.06.15 |
---|---|
나로우주센터 (0) | 2009.06.12 |
대한민국이 100명의 마을이라면 (0) | 2009.05.28 |
자연의 농부"한원식" (0) | 2009.05.19 |
이 父子 심장속엔 도라지 피가 흐른다 (0) | 2009.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