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대한민국이 100명의 마을이라면

醉月 2009. 5. 28. 09:57
⊙ 서울 21명, 부산 7명, 제주 1명 살고, 수도권에 49명 몰려
⊙ TV 시청 97명, 인터넷 이용 88명, 휴대전화 소유 80명, 신문 구독 40명.   1년간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 40명
⊙ 33가족 사는 마을에 집 34채 있지만 21가족만 집 소유

具貞和 경인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
⊙ 1966년 경남 함안 출생.
⊙ 마산제일여고, 서울대 사회교육학과, 同 대학원 석사 및 박사.
⊙ 現 ‘함께하는 시민행동’ 운영위원.
⊙ 저서: <통계 속의 재미있는 세상이야기> <퍼센트 경제학> 외 다수.
<어린이들이 한반도 모양 지도 위에 서서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이 100명의 마을이라고 가정해 보자. 우선 1년 동안 이 마을 사람 100명 중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40명 정도 된다. 월평균 소득 중에서 책 사는 데 쓴 비용은 0.5%가 채 안된다. 신문을 읽는 사람은 40명 정도, 그러나 TV는 단 3명만 제외하고 모두 본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 사람들은 주말에도 집에서 TV를 보거나, 노래방이나 찜질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실내 위주의 여가를 즐긴다. 여가 시간에 여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높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인지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마을의 여가 시간은 지구촌의 다른 마을에 비해 9시간 정도 적은 편이다. 몇 년 전부터 주 5일제를 도입해 주당 40시간 만 일하면 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주당 45시간을 일해 주 6일제 근무와 다를 게 없다. 야근과 잔업 때문이다.
 
  최근 마을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정시 퇴근하기’ 등 운동을 하는 회사들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촌 다른 마을 사람들은 이곳 주민들을 ‘일벌레’라고 부른다.
 
  요즘 마을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여가는 모두 IT 기술이 적용된 분야다. 다들 바빠서인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기보단 기계를 이용해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80명이 넘는다. 마을 사람 중 일부 아이나 노인을 제외하면 대부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정말 많이 한다. 마을 사람 100명 중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 88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길거리에서 PC방을 쉽게 볼 수 있고,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DMB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화기 모니터로 TV를 본다. 이 마을의 컴퓨터와 인터넷 사랑은 다른 마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선거권자는 72명, 실제 투표자는 40명 내외
 

한국은 현재 고령화에서 고령, 초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한 노인복지센터에서 할아버지들이 컴퓨터 교육을 받는 장면.

  마을 사람 중 아무 보수 없이 마을이나 마을 사람을 위해 자원봉사 하는 사람은 100명 중 14명이다. 여러 사회단체에 소속돼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23명으로, 다른 마을보다 매우 낮다. 특히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는 일은 매우 드물어 다른 마을과 비교조차 힘들고, 死後(사후)에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도 아주 드물다. 몸을 잘 간수하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라는 유교 전통 때문인데, 다행히도 최근 장기 기증을 권유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요즘 들어 주민 대표들이 모여 정치하는 곳에서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마을의 대표로 일할 사람 뽑는 선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대표를 뽑을 자격이 있는 선거권을 가진 사람은 총 72명인데, 실제로 근래 투표한 사람은 40명 내외밖에 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 마을의 가장 큰 문제는 타인에 대한 관심 부족과 깊어지는 개인주의일지도 모른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으나 서로의 조화로운 삶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며, 서로에 대한 소속감은 오로지 이웃 마을과의 스포츠 경기 때만 드러나는 형편이다.
 
  마을 인구 100명 중 19명은 15세 미만의 ‘아이들’이고 81명은 15세 이상의 ‘어른들’이다. 어른들 중 65세 이상 ‘노인’은 10명이다. 아이 수는 매년 줄고 있고, 노인 수는 늘어간다. 마을 인구가 그대로 유지되기 위해선 한 집에서 2.06명을 낳아야 하지만, 마을 출산율은 1.3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아이들 수보다 노인 수가 더 많아진다며 걱정하고 있다. 심지어 ‘2350년경엔 이 마을에 거주하는 인구가 없어져 지구촌에서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자료도 나왔다.
 
  그러나 350년 뒤 사라질 마을 걱정보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시작된 고령화 추세다. 마을 인구 100명 중 7명이 노인인 상태를 ‘고령화 사회’, 14명이 노인인 상태를 ‘고령사회’, 20명이 노인인 상태를 ‘초고령 사회’라고 하는데, 이 마을은 고령화에서 고령, 초고령으로 진행되는 속도가 지구촌 어느 마을보다 빠르다.
 
  마을 사람 100명 중 현재 학교에 다니는 사람은 23명. 예전에 비해 학교 다니는 기간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취업은 더 어려워졌다.
 
 
  세계 평균에 비해 여성 2명 모자라
 
  사교육비로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대체로 가구당 월 370만원 정도를 벌지만,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돈은 3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이 중에서 필요한 것을 사느라 280만원을 쓰는데, 그중 28만원이 교육비 지출이다. 이 마을이 다른 곳에 비해 빨리 번창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가 교육열이었는데, 최근 다른 마을로 일찍 유학 가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학원도 증가해 교육비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 100명 중 50명이 남성, 50명은 여성이다. 지구촌의 다른 마을들은 평균 남성 48명, 여성 52명인데, 평균과 비교하면 이 마을은 여성이 2명 적다. 그래도 마을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산다. 평균 79세까지 사는데, 남성이 75세, 여성이 82세까지 살 수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사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마을에 비해 여성 수가 적은 것은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이 출생 시 ‘남자 아이’를 선호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그런 경향이 많이 줄었지만, 마을에서 태어나는 셋째 아이를 보면 남자 아이가 여전히 더 많다.
 
  마을의 신랑은 전통적으로 신부보다 3~4세 정도 더 많다. 신부의 나이가 어리고, 여자 아이들이 적게 태어나게 되면서 신랑 수에 비해 신부 수는 급격하게 적어졌다. 이에 따라 결혼이 쉽지 않은 남자들이 많아지면서 마을에서 최근 지구촌의 이웃 마을에서 시집 온 신부들이 하나둘 눈에 띄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자기 문화에 대한 자존심이 강해서 자기네를 ‘단일 민족’이라고 우기고 있어 문제가 된다. 실제로는 마을 사람 100명 중 한두 명 정도는 다른 마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결혼 못하는 남자들’과 함께 이혼하는 커플도 많아지고 있다. 점점 더 많아지는 이혼으로 인해 스스로 세계에서 제일 이혼율이 높은 마을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단순히 동거하다 헤어지는 지구촌의 다른 마을들과 비교해서 이혼이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혼율이 높은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결혼 연령이 점점 늦어져서 남자의 경우 평균 31세, 여자의 경우는 평균 28세에 하는 결혼이 가장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연령 또한 계속 올라가고 있어서, 10년 정도 지나면 신부의 평균 나이도 30세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에 21명, 부산에 7명, 대구와 인천에 각각 5명 살아
 
대한민국을 100명의 마을이라 가정하면 97명이 TV를 보고, 88명이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하며 40명이 신문을 본다. 사진은 한 시민이 DMB폰으로 TV를 보는 장면.

  결혼은 자꾸만 늦어지거나 줄어들고, 이혼은 늘어나면서 그만큼 가족 간의 만족도는 떨어져 간다. 외형적으로 보면 가족 간의 폭력도 잦은 편이다. 마을의 부부 5쌍 중 2쌍이 부부 간 폭력을 경험했고, 아이 2명 중 1명꼴로 부모에게 맞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무엇에서거나 경쟁이 심한 이 마을에서 가족 구성원은 학생, 직장인 등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경쟁하다 모두 지쳐서 가정에 돌아온다. 사회에서 경쟁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서 패잔병처럼 가족의 품에 안기지만, 각자 서로 지쳐 있기에 서로의 상처를 소독하고 아물게 해줄 만한 여력이 없다.
 
  가족 문제만이 아니라 급격한 경제 개발로 여러 가지 고민거리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이다. 마을 사람들은 여러 지역에 나뉘어 살고 있는데, 100명 중 서울에 21명, 부산에 7명, 대구와 인천에 각각 5명씩, 그리고 광주와 대전에 3명, 울산에 2명이 살고 있다. 그리고 경기에는 23명, 경남에 6명, 경북에 5명, 충남과 전남에 각각 4명, 강원과 충북, 전북에 각 3명이 살고 있다. 가장 남쪽에 있어 따뜻한 제주에는 1명이 살고 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수도권에 사는 사람은 2명이나 더 늘어났으며, 현재 마을 인구 100명 중 49명이 수도권에 모여 있다.
 
  이렇다 보니 지방을 개발해 균형 발전을 꾀하려는 사람들과, 여전히 경쟁력 있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사람들 간에 대립이 심하다. 특히 수도권 중에서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이 마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총 34채 집에 33가족 살지만 12가족은 무주택
 
  마을 사람들은 부동산 문제로 여전히 속을 앓고 있는데 그 속내를 보면, 만들어 놓은 집이 안 팔린다고 걱정하는가 하면 일부 집값만 오를까 하는 걱정도 있다. 사실 알고 보면 이 마을에 집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마을엔 총 34채의 집이 있다. 100명은 33가족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사실상 집 1채가 남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수도권에는 집이 부족하고, 사람이 적은 지방에는 빈집이 생겨 문제다. 33가족 중 실제로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은 21가족(62명) 정도이고, 12가족(38명)은 집이 없어서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데, 오르는 집값이나 전세 문제로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 많다.
 
  이 마을 사람 100명이 33가족을 이루는 사연은 이렇다. 이 마을 사람은 요즘 평균 3명이 한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으니, 전체 33가족이 살고 있는 셈이다. 이 33가족 중에서 혼자서 사는 가족이 5집, 2명이 사는 가족이 6집, 3명이 사는 가족이 8집, 4명이 사는 가족이 10집, 나머지 5명 이상이 사는 가족은 4집 정도 된다. 실제론 4명이 사는 집이 제일 많다. 예전에 이 마을 사람들은 한 집에 여러 명이 모여 사는 대가족 제도였지만 지금은 한 집에 사는 가족 수가 점점 줄고 있다.
 
  마을의 또 다른 고민은 혼자서 살거나 2명이 사는 가족이 자꾸 늘어난다는 것이다. 독신이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많아진 탓이다. 홀로 또는 2명만 사는 가족이 늘어나면서 예전보다 집은 더 많이 필요해졌다. 아마도 이 마을에서는 가족 수가 점점 더 줄어드니 전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2018년 정도까지는 집이 더 많이 필요할지 모른다.
 
  가족 수가 줄어드니 작은 평수의 집으로 이사해도 되련만, 최근 들어서는 높게 지은 곳의 넓은 평수의 집을 선호해 이 마을의 부동산 문제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얼마 전 아주 친한 ‘이웃 마을’의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자, 부동산 문제보다 실업 문제가 더 큰 고민거리가 됐다. 이 마을에는 전통적으로 한 회사에 취직해 정년퇴직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근래 10년 전부터 ‘명퇴’, ‘사오정’, ‘이태백’ 등 흉흉한 신조어들이 일상화돼 버렸다. 공식 실업률은 여전히 3% 정도로 낮은 편이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실업률은 10%에 달한다.
 
  마을의 젊은 친구들 중엔 아예 취업을 포기한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과 취업 준비생인 젊은 백수가 2명(100만명)이나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졸업 5년 후의 청년 니트족의 경우는 지구촌의 몇몇 마을이 모여 만든 단체인 OECD에서 1위라고 하는 흉흉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마을의 청년들은 이제 정규직에서 직장 잡기가 어렵고 그나마 비정규직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88만원 세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스펙(학점·자격증 등 취업조건)’을 쌓으며 정규직 자리를 잡기 위해, 종종 다른 마을에 가서 영어를 배우고 인턴십도 해보지만, 이미 정규직에서 견고하게 자리 잡은 삼촌이나 고모 세대와 정규직 일자리를 놓고 싸우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전 세대와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이 마을에서 신규직의 월급을 줄여서 일자리를 늘리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런 갈등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세대 갈등이 깊어지는 와중에 전통적으로 문제가 된 계층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이 마을의 전체 33가족 중에서 한 달간 그 가족이 모두 일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월 100만원 이하인 집이 5집이나 되고, 월 100만~200만원인 집이 11집, 월 200만~300만원인 집이 9집, 월 300만~400만원인 집이 4집, 월 400만원 이상인 집은 3집이다.
 
 
  주민들 4명 중 3명은 소득 분배가 불공평하다고 생각
 
  문제는 이런 소득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마을 사람이 보유한 재산 차이는 더 심각한 격차를 보인다. 마을에서 가장 적게 버는 사람 10명의 재산을 다 합해도 마을 재산의 2%가 채 안 된다. 이에 비해 가장 많이 버는 사람 10명의 재산을 다 합하면 마을 재산의 30%나 된다고 하니, 적게 버는 사람과 많이 버는 사람의 소득 차이가 엄청나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이 마을에서 상대적 빈곤은 어느 수준일까? 상대적 빈곤을 파악할 수 있는 ‘상대빈곤율’은 전체 가구를 그 가구가 가진 가처분소득에 따라 한 줄로 세울 때 중간에 위치한 가구가 가진 가처분소득의 절반에 이르지 못하는 가구의 비율을 말한다. 이 마을의 상대빈곤율을 보면, 1999년에는 33집 중 2~3집 정도였으나 2006년에는 5~6집으로 늘어났다.
 
  이에 비해 절대적 빈곤은 이 마을에서 매년 정하는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을 갖는 상태를 말한다. 이 마을의 절대빈곤율은 2001년에 33집 중에서 1집이 채 안되었으나 2006년에는 2~3집 정도로 높아졌다. 마을에 상대적으로 ‘배 아픈 사람’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배고픈 사람’도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기가 힘들어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소득 분배가 불공평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 마을의 15세 이상 주민들 4명 중 3명은 소득 분배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연령별로는 30대의 비율이 제일 높다.
 
  당신이 사는 이 마을에는 2년에 1명이 죽고 1년마다 1명의 아이가 새로 태어난다. 그러니 2년이 지나면 마을 사람은 101명이 된다. 그러면서 이 마을은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당신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집 문제로 고민할 것이고, 아이를 낳을 것인지, 아이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할 것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로
 
  이러한 일상의 변화 속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던 이 마을은 21세기에 ‘다이내믹 코리아’가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르면서 ‘대한민국’을 흥겹게 부를 수 있었고, 태극기도 패션의 소재로 활용할 정도로 친근해졌다. 그리고 2008년 옆 마을 일본의 강제 점령에서 벗어난 지 63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았다. 분단과 전쟁, 경제적 위기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견뎌 내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그의 책 <문화가 중요하다>에서 1960년대 초반 대한민국은 아프리카의 가나와 비슷한 경제 규모 수준이었으나, 30년이 지난 1990년대 대한민국은 지구촌 여러 마을 중 14번째 경제大國(대국)이 되었고, 이에 비해 가나의 1인당 GNP는 대한민국의 15분의 1 수준으로, 과거의 경제적 열악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교한다.
 
  새뮤얼 헌팅턴의 관찰처럼 이 마을 사람들은 지구촌 다른 마을과 비교하여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성공적인 발전을 했다.
 
  그런데 여러 성장 지표에도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은 불행해 보인다. 왜일까. 어쩌면 이 마을이 지닌 역사와 지리적 특성 때문은 아닐까. 대한민국은 좁은 땅에 부족한 자원을 가진 작은 마을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 전쟁을 지나면서 모든 것을 상실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이 마을 사람들이 유일하게 발굴한 자산은 인간자원일 것이다.
 
  그래서 산업화를 시작하던 즈음 이 마을 사람들은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극기정신’과 같은 정신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인간자원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경쟁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이 과정에서 이 마을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경쟁의 산물인 스트레스와 구성원 간의 불신을 키워 왔다.
 
 
  급한 성격, 일 중독, 부지런함과 야심
 
한국의 공식 실업률은 3% 정도지만, 체감 실업률은 10%에 달한다. 사진은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시위 중인 대학생들.

  지금까지 발전의 열매를 따 먹을 때는 몰랐으나, 이제는 그 스트레스와 불신이 요구하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비싸졌다. 어쩌면 이제 이 마을은 불필요하게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스트레스와 불신을 줄일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 줄 사회적 가치인 ‘새로운 문화’를 만들 시점에 직면한 것 같다.
 
  지난해 11월 <동아일보>가 포털 ‘구글’에 의뢰해 OECD 31개 회원국에 대한 이미지 조사를 시행한 결과 이 마을 사람들의 대표적 이미지로 ‘급한 성격’ ‘일 중독’ ‘부지런함과 야심’ 등이 중요 키워드로 꼽혔다.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다시 이 조사가 이루어졌을 때, 이 마을의 대표적 이미지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새로운 이미지는 분명히 근대화 과정에 강조했던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극기정신’에 기초한 경쟁을 위한 가치는 아닐 것 같다. 아마도 기존의 경쟁을 위한 가치를 재해석하면서 ‘다양성의 인정, 돌봄, 배려, 관용, 인권’과 같은 공존을 위한 가치가 부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2008년 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 딴 선수만 격려하지 않고 실수한 선수에게도 애정과 배려를 보내는 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새로운 가치는 싹트고 있는지 모르겠다.
 
  4900만명이 모여 사는 이 나라를 단 하나의 표현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한국을 100명이 사는 마을로 압축해 보니 조금은 수월해진 느낌이다.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는 100명 중 1명의 삶으로 환산할 수 있는 일상의 수많은 결정과 행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각자의 선택과 행위는 100명 중 1명의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 인구가 4900만명 정도 되니, 나 개인은 ‘4900만 분의 1’의 위치를 갖는다. ‘대한민국’이라는 마을에 사는 우리 각자는 0.00000002%의 영향력이 있을 뿐이다. 국가 앞에서 미미한 이 존재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답은 지금까지 살펴본 100명의 삶 속에 있다. 인구 100명인 마을의 삶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매년 조금씩 변화해 간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수도권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수는 더 늘어났고, 대통령을 뽑기 위해 참여한 사람 수는 줄었다. 안정된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늘어났고, 자녀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교육비는 더 많아졌다.
 
 
  대한민국 0.00000002%들의 행동과 결정들
 
  이렇게 늘어나고 줄어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0.00000002%의 ‘사소한’ 영향력을 미칠 뿐이지만 이 작은 비율들이 모여 1%의 증가를 가져오기도 하고, 5%의 감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0.00000002%는 사소하지만, 이 사소한 숫자가 없으면 100%의 대한민국은 영원히 완성되지 못한다.
 
  최근 사회구조와 집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행위의 중요성을 종종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구조와 집단을 만들고 변화시키는 작은 움직임은 우리 한 사람의 선택과 결정에서 나온다. 우리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살펴보면, 내가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60년이 지난 지금, 이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가치와 삶의 문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지난 60년 동안 마을 사람들은 ‘대한민국에는 이제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패배주의적 사고를 자주 접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이 가진 성공을 배우려는 지구촌의 여러 시선을 생각한다면, 한 갑자를 돌아 새로운 출발선에 다시 선 대한민국은, 배려와 관용으로 서로를 포용하면서 지구촌에서의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정신적 가치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 경험과 국토를 파괴하는 민족 간의 전쟁 후에도, 희망을 가지고 대한민국 땅 위에서 길을 찾아 걸어나갔던 60여 년 전의 선배 세대들처럼, 지금 우리도 대한민국의 땅 위에서 ‘행복한 삶’이라는 새로운 희망의 길을 찾아서 걸어야 한다.
 
  행복은 길의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희망과 신뢰 속에 있다. 사회적 불신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시민사회의 위기에도 대한민국 이 땅에서 희망을 가지고 계속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내가 0.00000002%의 행동과 결정으로도 대한민국 100%를 만들고 변화시켜 온, 바로 그런 인간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서 있는 이 땅에 희망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불행한’ 마을 사람들에게 중국의 사상가 루쉰(魯迅)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로우주센터  (0) 2009.06.12
은빛으로 반짝이는 생명력  (0) 2009.05.31
자연의 농부"한원식"  (0) 2009.05.19
이 父子 심장속엔 도라지 피가 흐른다  (0) 2009.05.17
기산국악제전과 한방약초 축제  (0) 2009.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