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농부’ 한원식 광주에서 두 시간 거리. 시간으로만 따지자면야 그 길을 어찌 멀다 말하랴. 하지만 비포장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은 그 집을 세상에서 ‘저만치 떨어진 아주 먼’곳으로 느끼게 했다. 순천 승주 같은 행정구역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한원식(56)씨의 주소지는 자연이었다. “이 세상에 와서 사람이 할 일이란 씨 뿌리는 일, 즉 밥 짓고 밥되는 일”이라고 늘 강조하는 그는 이 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고향은 충청도. 전라도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은 걸까. “벼농사를 제대로 지어 볼라고 옮겨왔던가, 좋아하는 감을 실컷 먹을라고 옮겨왔던가, 그게 무어 중요할라구, 허허.” 그러면 ‘올바른 밥모심’을 실천하고 사는 그는 과연 얼마나 건강할까. 어쩌다 사람들 앞에서‘밥모심’에 관한 강의를 할 때면 그는 “제 몸이 아주 잘 빠졌어요”하고 농을 건넨다. 짓궂은(?) 사람이 있어 “한 번 벗어보세요” 하면 정말 웃옷을 벗는다. ‘불필요한 것이 없는 삶’처럼 ‘군더더기 없는’강건한 몸이 드러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의 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옷을 벗는다든지 그 모든 행위가 거칠 것 없이 자연스런 그의 무구함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저 ‘건강’을 좇지만 ‘올바르고 참된 삶’을 살면 ‘건강’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믿는 그는 한 때 관행농으로 성공해 돈도 많이 벌었지만 서른한 살 되던 해부터 유기농을 시작했다. “이것이 사람이 먹는 것인데 농약으로 생명을 해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
기사출력 2003-03-24 12:04:14 |
ⓒ 전라도닷컴 |
연습 없는 축제, 모듬살이 -승주 한원식
차르륵 사스락 억새 스치는 소리만 크게 들린다. 흙 길을 따라 움찔거리며 덜컹거리며 밤길을 더듬어 얼마나 올랐을까. 어둠 끝에 한 사람이 들고 서 있는 작은 등이 보였다. 흙 길 사이로 비스듬한 숲길을 따라 내려가니 흐릿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작은 집이 보였다. 전기도 쓰지 않는 집, 해떨어지면 잠자리에 들고 해뜨면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집, 손님 마중하느라 늦은 밤중까지 촛불을 세 개나 밝혀 놓았다.
자기다워 아름다운 자연을 닮은 집
“이 밤중에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겄네. 출출할 텐데 이것 좀 들어보시우.” 남녘햇살을 가득 담고 있는 단감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침샘이 짜르르 하도록 단물이 입안에 가득했다.
“지금 머무는 이곳이 모두 구만 오천 평이지. 여기에는 큰 것 작은 것으로 가득하게 갖춰져 있어. 자연을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 같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야.” ‘아름다움’은 자기다움이 한 아름인 모습이라 했던가. 남녘 끝자락 조계산이 마주 보이는 전라남도 승주땅, 깊은 산 숲 자락에 둘러 쌓인 이 곳에 깃들어 사는 한원식 님은 필시 자기다워 아름다우리라.
한원식 님은 고향 공주를 떠난지 이십 여 년이 되었다. 경상도 칠곡서도 살았고, 제천에서도 머물렀다. “저절로 흘러 오게됐어. 인연이 있어 이곳에 머물게 된거야.” 삶의 도반인 안혜영 님과 승주에 머문지 벌써 8년이 된다. 늘 빈 손 뿐이었지만 가난하지는 않았다. 좋은 인연들과 초록 생명들이 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유나 무소유의 문제는 아니야. 자족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있어. ‘고맙다’는 것은 ‘고루고루 맞이한다’는 뜻이야. 몸으로 사는 일 자체가 매순간 고마움을 표현하는 거야.” 한원식 님은 모든 순간을 거스르지 않고 맞이하여, 몸을 받들며 공손하게 자연에 깃들어 자연이 되었다.
‘얼’은 어울림을 말하고, ‘글씨’는 씨앗이 되는 글을 뜻하고, ‘말씀’은 쓰임을 받는 말을 의미한다. 사람의 말이 적절한 자리에서 쓰임이 되고, 함께 어울려 숨통 트이게 하고, 잘리지 않은 전체를 이루어 비로소 사람답게 된다. 이렇게 ‘통’을 이루면 어그러짐이 없어 날마다 기쁨 가득한 축체를 경험한다. 그는 지금 축제 중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일이 아니라 놀이야. ‘일 놀이’지. 사는 일에 군더더기가 없어. 쓸데없는 것을 지니면 일은 괴로움이 되는 거야. 어렸을 때 아이들 해지는지 모르고 놀잖아. 아이들은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야.”
밥 짓고 밥 먹는 몸
더듬거리며 까만 밤에 들어오느라 볼 수 없었던 좁다란 앞뜰에는 가을걷이한 곡식들이 널려 있다. 아기 손바닥만한 옥수수, 땅콩, 땅심을 받아 머리에 얹은 붉은 흙색깔 수수, 붉디붉은 가슴을 다 내보인 고추, 단맛이 든 대추알, 녹두와 팥, 메주콩도, 야무진 토종밤도 윤기 나게 모여있다. 참 곱다. 가을 햇살에 빛나는 색색의 곡식들은 신명난 농부의 가슴이며 몸인 듯 싶었다. 집 모퉁이 한쪽에 거위와 토종닭들이, 집 마당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비탈에는 토종벌통에서 꿀벌들이 잉잉거리며 갈꽃을 찾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 한울 삶을 이루면서 느릿하고 한가로이 가을아침을 열어가고 있었다.
“쌀 짓고 밥 먹어야지. 아침은 몸에 쌓아둔 기운을 소비하는 시간인데 밥을 먹으면 되레 무기력해져. 점심 전까지는 일하고 움직여야해.” 한시도 비워두지 않고 배 채우기에 허둥거리는 동안, 밥은 습관에 따라 끼니를 그저 때우는 것이 되고, 결코 제 몸이 될 수 없는 것을 삼키는 셈이다.
신발을 장화로 갈아 신고 밭일에 함께 나섰다. 폭 좁고 길쭉한 밭은 땅콩을 심었던 곳이다. 여기에 우리 밀 씨앗을 뿌린다. 농사의 원칙 중 하나는 ‘땅을 갈아엎지 않는’ 것이다. 모듬살이가 깨지고 죽기 때문이다. 밭에는 땅위 생명과 땅 아래 생명이 함께 어울려 숨을 쉬고 있다. 골을 파서 씨앗을 땅 속에 묻지 않는다. 밭 위에 씨앗을 그냥 슬슬 뿌리고, 퇴비를 만들거나 발효시키지 않은, 여름내 말려둔 풀을 지게 짐으로 날라 그 위에 덮는다. 그것은 마른 풀 밑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지렁이와 미생물들이 밭에서 해야할 몫을 남겨두는 일이다. 발효된 퇴비를 직접 뿌리면 지렁이가 제 몫을 잃는다. 사람이 다 하려고 하는 것도 욕심이고 교만한 일이다. 농사는 지렁이, 미생물과 함께 짓는 것이다.
“이미 땅은 곡식이 자라도록 준비되어있어. 땅은 당겨주고 뿌리는 뻗지. 지난해 죽은 풀뿌리들이 숨구멍을 만들어 놓고, 지렁이와 미생물은 숨통 트이게 하는 거야. 농사는 자연의 순환에 맡기는 일이지. 땅을 갈아엎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야. 풀이 자라면 낫으로 생장점만 잘라주지. 땅 속 모듬살이를 해치지 않도록 뿌리째 뽑거나 땅을 뒤집는 호미 질은 하지 않아.” 너무 잘하려는 의욕 때문에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고, 힘의 논리만 남게 된다. 가난한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갈 수도 없고, 자신의 몸까지 죽이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밭에서 난 곡식들은 값을 매겨 팔지 않는다. 씨 뿌리는 일을 하지만 씨앗의 심부름을 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심부름 잘하면 벼와 곡식들이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이미 만물이 모듬져 가고 있고, 어우러지는 오고감이거든. 그런데 값을 치르는 거래가 되었어. 절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거래가 이루어지니까 물질과 세상에 종속이 되는 거야.” 종속되지 않는 방법은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에 깃들고, 자연에 대한 지배자의 시선을 거두는 일이다.
배추가 깨우쳐준 모듬 삶
한원식 님은 농사를 18살부터 배웠다.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할 정도였어. 가난한 것,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서러움도 있었어. 농사라도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지. 축사, 원예, 논농사도 두루 배웠어.”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수입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갔다. 그런데 34살 무렵부터 유기농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그 길로 관행농을 접었다. “돈벌기 위해서 농사짓는 것을 포기했어. 그러니 결국 그 동안 끌어다 쓴 빚을 갚지 못할 형편이 되었지.”
이듬해 유기농 배추를 많이 심어서 빚 갚을 계획을 세웠다. 배추는 정말 잘 자랐고, 값도 한창 오른 때였다. 그런데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져 배추밭은 싹 쓸려갔고, 허망한 마음만 남았다. 그런데 그 난리 통에 한쪽 구석 몇 포기가 살아있는 것이 보였다. 갈아엎는 곳에는 숨통이 없어 배추가 뿌리부터 죽어갔고, 갈아엎지 않은 곳에는 숨통이 살아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급한 마음에 이듬해 땅을 갈아엎지 않고 배추를 두 배로 심었다. 예상대로 배추는 잘 되었는데, 이번엔 값이 떨어졌다. 팔지도 못하고 버려 두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 때 한원식 님은 자신이 못살 이유가 없는데 왜 이러고 있는지 되물었다. “과거로 되돌아 갈 수는 없었어. 자연에는 돈이 필요 없지 않은가. 벼와 곡식은 우리가 먹을 수 있을 뿐이지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어. 돈은 허깨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사람들에게 한원식은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먹는 것을 바탕으로 밀농사, 벼농사, 다양한 곡식들을 지어 자급해서 사는 방식으로 전환했지.” ‘땅을 갈아엎지 않는’ 자연농법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물이 다 쓸어간 밭에서 만난 ‘배추’는 인생을 바꿔 준 스승이었다.
밥 모심, 똥 모심
모든 일은 ‘밥 모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밥이 몸이 되고 생명이 되는 일이니, 생명을 모시는 일이다. 점심 시간, 이집 안주인 안혜영 님이 단감과 찐 옥수수 바구니를 상위에 얹으셨다. 쌀로 지은 것만 밥이 아니고, 계절음식 하나 하나를 다 밥으로 여긴다. 무엇이든 공손히 모시면 그것으로 족하다. 옥수수를 오래 씹으니 고소한 단물이 고였다. 이어서 마늘쫑, 호박무침, 김치, 마른 김, 미역국, 민물조개를 삶아 무친 것, 태어나서 처음 본 호박꽃찜, 그리고 푸성귀가 소쿠리 가득 밥상에 올라왔다. 순무, 무청, 배춧잎, 갓, 민들레, 쇠무릎, 카프리, 꼬들빼기잎… 가장 특별한 음식은 현미에 여러 곡식을 넣어 지은 밥이다. 현미를 기본으로 팥, 옥수수, 메밀, 율무, 통밀, 보리, 밤, 잣, 조, 검정깨, 수수, 콩 등이 들어갔다. 현미와 다른 곡식 비율이 6대 4 정도이다. 이 밥상의 모든 음식은 ‘백 오십 번’ 정도 씹어야 한다. 반찬은 반찬대로, 푸성귀는 푸성귀대로 신선한고 생명 어린 빛깔을 느끼며 그 기운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들여 메통쌀(현미)을 씹고 또 씹어 몸을 이루는 거야. 흰쌀은 오래 씹으면 무력해져. 흰쌀은 깎아 내고 쪼개서 절반을 버리는 거야. 메통쌀에선 싹이나. 아름다운 것은 자라나지.” 현미를 먹으면 절반만 먹어도 된다. 온전하게 먹으니 힘이 넘친다. 흰밥은 보기엔 좋지만 둘이 먹을 수 있는 양을 깎아내 절반을 버린 셈이다. 이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먹을 곡식을 다양하게 하면 각각 소비하는 양도 최소로 줄일 수 있고, 그 만큼 여럿이 나눠먹을 수 있게 된다. 지극한 ‘밥 모심’은 나눔의 실천이고, 생명을 나누는 일이다.
밥 모심은 똥 모심으로 이어진다. 인디언 천막집 닮은 이 집 뒷간에 앉으면 아래쪽 논밭이 보이고 먼 산이 안긴다. 뒷간은 한해 농사를 짓는 기본이 담긴 곳이다. 뒷간에 부려놓은 똥은 거름이 되고, 풍성하고 기름진 논밭이 되어 충만한 곡식을 키워내고, 그것은 다시 밥상에 올라 나와 너의 몸이 되고 마음과 생각이 되고, 삶이 된다. 충만한 순환이 이루어진다. “마음공부가 따로 없어. 똥을 잘 누면 되지.” 똥이 밥이 되고 다시 몸이 되는 과정을 아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똥을 저버리는 삶에는 모듬살이가 깃들 수 없다.
똥 장군에 똥 담아 지게에 지고
한 걸음 두 걸음 걸을 때마다 흔들흔들 흔들 춤 저절로 나고
한바가지 두 바가지 뿌릴 때마다 너울너울 춤추며 멀리퍼지네
멀리 퍼진 통 냄새 땅에 잠길 때 벌거숭이 지렁이 잠을 깨우네
옆에 자던 새싹들 같이 잠깨어 지렁이 새싹들 한 마음 되어
하늘양식 내렸다 소리치면서 흔들 춤 너울 춤 같이 춤추네
건너편 바람이 바람 춤추네 (한원식, 똥 풀이)
온갖 풀과 열매와 곡식에 아무런 차별이 없고, 내 것 네 것이 없다. 사는 일은 어우러지는 것이다. 만나는 모든 것을 모시고 받들며 사는 일이다. 밥 모심, 똥 모심, 일 모심, 잠 모심… 모심이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몸에 생긴 병도 모신다. 병은 우리말로 ‘앓이’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는 말이다. 앓이를 모신 몸은 스스로 몸의 균형을 이루어 탈난 것을 풀어준다. 그러면 앓이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앓이’를 몰라보면 대적하고 물리치기 위해 싸우려고만 한다. 밥이 바르면 ‘앓이’를 대적하는 의학으로부터 해방된다. “우리 몸에 병이란 것은 없어. 통증은 몸이 알아차리는 과정이고 그런 신호야. ‘앓이’는 몸의 독을 풀고 피를 맑게 해주지. 더 이상 ‘앓이’가 할 일이 없으면 슬며시 나가는 거야.”
값을 매기지 않는 모듬살이
“장사하지 말고 되돌려 주어야해. 밥과 땅은 사고 팔 수 없는 거야. 현재 상업농은 살길이 아니야. 나무를 베면 당장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견뎌낼 수 없어. 댓가에 의해 신명이 좌우되면 안 돼. 곡식이 잘 팔리면 신명이 난다하고, 아니면 생명같은 곡식도 갈아엎어 버리는 거야. 이거, 농심이 다 어디로 간거야.” 댓가를 바라고 내 땅, 네 땅으로 나누고, 갈라놓는 동안 모든 것이 깨져버린 것이다. 경쟁하듯 땅을 가혹하게 지배하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 농업은 유기농의 역사였는데, 이것이 모두 깨진 것이 3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극한 상황까지 가면 다시 새로운 조류가 생기게 마련이고, 지금 그러한 질문 앞에 서 있는 것이라 했다.
“삶은 축제인데 축제가 없어진 거야. 대동과 두레의 순환이 없는 거야. 올바로 작아야지, 작다고 무조건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 커도 올바로 커야하고.” 희망은 경제가치에 매이지 않는 나눔의 원리에 달려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일상에서 나누는 축제의 경험이다. “맛과 멋과 흥이 있는데, 혀에서 맛을 보고, 멋은 눈으로 보고, 맛은 만남이고, 멋은 머무름이고, 흥은 일어남이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것이 일상의 축제야. 각자가 축제를 한 짐 짊어지고 모여서 대동축제가 이뤄져야 해. 여기에서 되돌림이 되는 거야. 쌀 농사 중심으로 지은 사람이 쌀을 나누고, 감자를 잘 지은 사람이 감자를 나누는 거지. 이게 사랑방 문화야. 다시 되돌림이 되어 와서 자신의 자리에서 두레가 이뤄지는 거지. 이것이 대동과 두레의 순환이야. 대동은 가끔, 두레는 날마다 이루어지는 것이야.” 땅을 뒤덮지 않고 나누지 않고 더불어 축제 같은 모듬살이를 짓는 일에 살길이 있다.
“모든 것이 끊어짐이 없는 거야. 나 자신은 끊어지지만, 다른 사람을 살리면 그 삶까지 포함해서 내가 사는 거야. 그런 삶으로 하루를 영원의 삶으로 살아가는 거야.” 사람의 수명은 ‘숫자’로 말할 수 없다. 나와 너의 경계가 없으면, 내 삶이 다른 사람의 생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이뤄진다. 다른 사람이 이 삶을 받아들여 80살을 산다면, 나는 160살을 사는 것이고, 그 이상도 살아가는 것이다. 작은 풀 포기도 한해살이가 아니다. 그 안에 몇 억 년의 시간이 담겨 있는 것이다. 수십 광년을 거쳐온 빛이 풀에 닿아 순간으로 담긴다. 빛은 끊어짐이 없이 오고 또 와서 생명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영원한 충만함 속에서 사는 거야. 잘랐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야 다른 생명 되어 살아가는 거야. 최소가 최대가 되고 다시 최소가 되는 순환을 살아가는 거야.”
한원식 님은 숨통 열린 땅에서 숨통이 트인 모듬살이를 하고 있다. “삶은 연습이 없어. 그냥 사는 거지. 자연에 순응하면서 얼씨구나 절씨구나, 사는 거지.” 흔들 춤 너울 춤 함께 추며 축제 같은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
[출처] ‘자연의 농부’ 한원식 (귀농 -우리는 지금 농촌으로 간다-) |작성자 고마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빛으로 반짝이는 생명력 (0) | 2009.05.31 |
---|---|
대한민국이 100명의 마을이라면 (0) | 2009.05.28 |
이 父子 심장속엔 도라지 피가 흐른다 (0) | 2009.05.17 |
기산국악제전과 한방약초 축제 (0) | 2009.05.16 |
장군총의 비밀 (0) | 2009.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