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내내 경남 산청군에서 시간을 보냈다. 5월 7일(목) 아침에 예술의 전당 앞에 서있는 관광버스에 오를 때만 해도 비가 올 듯이 우중충한 날씨였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리는 법", 주말날씨는 내내 쾌청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산청(山淸)은 말 그대로 "산이 맑은 공간"이란 뜻이다. 산이 맑으면 물은 따라서 맑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그러한 깨끗한 청정지역에 사는 사람 또한 깔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산청은 흔히 '삼청'이라고도 불린다. 산과 물 그리고 인간이 맑고 깨끗한 곳이란 뜻이다.
산청이란 이름은 지리산 자락에 놓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생긴 말로 판단된다. 1919.77m 높이의 지리산은 산청군에만 걸치는 산이 아니다. 지리산은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산청군 · 하동군 · 함양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등산객에게 있어서 지리산은 구례로 올라가서 중산리로 내려오거나 반대로 중산리로 올라가서 구례로 내려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 지리산은 전남 구례와 경남 산청에 걸쳐있는 산으로 각인되어 있다.
지리산은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며,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리산의 전체적인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고 두루 뭉실하여 또 사방으로 산들이 첩첩이 둘려 있기 때문에 이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 '두루', '두리', '둘러'가 한자로 표기, 정착되는 과정에서 두류가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남명선생의 시에서 묘사되었듯이 중국의 신선들이 산다는 두류산 양단수에서 그 어원이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지리산의 워래 뜻은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리어졌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는 어디일까? 대개들 설악산(1,708m)이나 한라산(1,950m)으로 알기 쉽다. 그런데 정부는 1967년 지리산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했다. 아무래도 남한 내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산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공원으로서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두루 갖춰 민족의 영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고려했을 것이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은 육지에 있지 않고 제주도에 있다. 설악산과 지리산을 두고 어느 것을 먼저 지정할까 고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백두대간의 길게 뻗어 있는 끝부분부터 국립공원을 지정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갈 수 없는 백두산을 통일 이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할 것을 염두에 두고 지리산부터 지정했을 것이다.
친척이 운전하는 자가용 두 대로 가족들과 친척들을 태우고 지리산 입구인 중산리를 향했다. 금요일 오후인데도 아직 등산객들은 많지 않았다. 아마도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등산객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리산 입구로 자가용이 접어들자 지리산 국립공원임을 알리는 큰 돌 표석이 앞을 가로막았다.
무릉도원을 꿈꾸는 자들이 지리산으로 모여들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위의 사진에 나오는 남명선생의 시를 옮겨본다.
頭流山(두류산) 兩端水(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桃花(도화) 뜬 맑은 물에 山影(산경)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武陵(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우리는 지리산에서 맨 먼저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을 떠올린다. '천왕봉'은 중산리에서 빠른 발걸음을 가진 성인등산객이라면 약 3~4시간을 부지런히 올라가면 정상에 도달한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는데,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에서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 개의 하천이 흘러들며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은 산이 깊으니 계곡이 깊고 물이 매우 맑다. 그래서 좋은 사찰도 많이 품고 있다. 대개 화엄사와 쌍계사만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 외의 절들도 있다. 지리산에는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국보·보물 등의 문화재가 많으며, 800여 종의 식물과 400여 종의 동물 등 동식물상 또한 풍부하다. 품고 있는 계곡으로는 화엄사계곡, 피아골계골, 삼홍소계곡, 천 은사계곡, 심원계곡, 중산리, 백무동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몇 년 만에 산청을 찾은 연유는 바로 제3회 <기산국악제>가 열렸기 때문이다. 기산 박헌봉 선생은 일제시기부터 민족음악을 되찾는 민족 문화 운동에 주력하다가 해방을 맞이하면서 대한국악원을 창립하여 원장을 3회 역임하고 문화재 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한민국 예술원 부원장을 역임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국악예술학교와 국악관현악단을 각각 창립한 교육가인 동시에 국악운동가였다.
아울러 기산선생은 '창악대강'을 편찬하여 우리 음악의 장단과 창법을 최초로 기록으로 남겼으며, 민요와 판소리 등의 악보채록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공적으로 3.1 문화상, 5.16민족상, 한국일보 백상출판대상, 국민훈장 동백장, 제2호 금관문화훈장(제3호를 시인 김소월이 받았으며,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이 2000년도에 수상했음) 등을 수상했다.
사실상 <기산국악제>는 제1회와 2회는 지역 국악예술인들(박추자 기산 박헌봉 국악문화현창 사업회 이사장, 백욱현 대표)을 중심으로 간소하게 치러졌지만, 제3회는 기산선생의 제자들인 박범훈 중앙대 총장, 김덕수 사물놀이의 김덕수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와 최종실(중앙대 교수), 김영재(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 박승률(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최경만(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이옥천 명창(판소리 '흥부가' 인간문화재), 채향순(중앙대 교수), 이종대(부산대 교수), 송선원(지휘자, 남부대 교수), 정회천(사회, 전북대 교수) 등이 대거 참여하여 연주와 지휘 및 사회를 담당하면서 산청문화예술회관을 세종문화회관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특히 국립전통예고(前 국악예술학교) 동문 250여 명이 동문회장인 최종실 중앙대 교수(기산 국악제전위원장)의 총지휘 아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미적인 역량과 예술적 기품을 쏟아내어 국악의 대향연을 연출했기 때문에 서울에서도 보통 보기 힘든 연주회가 산청에서 펼쳐졌다.
제3회 <기산 국악제전>은 첫날인 5월 7일(목)에는 기산선생의 고향인 산청군 남사 예담촌 기산 생가마을 주변에서 청혼제(소리 이옥천 명창), 중앙마당에서 아침 10시부터 펼친 민속놀이 전시체험행사, 아침 11시부터 중앙타악단이 진행한 '길놀이 집돌림 농악', 오후 2시부터 이씨고택에서 열린 <기산학술 심포지움>, 오후 4시30분부터 최씨고택에서 진행된 풍물놀이, 저녁 7시부터 예담마당에서 진행된 '예담촌 북소리', 메인공연인 저녁 8시부터 남사 예단촌 사양정사에서 개최된 <남사 예담촌 국악한마당>, 저녁 9시 30분부터 중앙마당에서 진행된 '군민과 함께하는 어울마당 두레소리' 등이 연이어 펼쳐졌다.
첫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오후 2시부터의 <기산학술 심포지움>과 오후 8시부터의 <남사 예담촌 국악한마당>이었다. 행사 오픈인사로 이재근 군수 외에도 박범훈 중앙대 총장,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이영희 한국 국악협회 이사장 등이 나서서 축사를 하면서 기산에 대한 추억을 되살렸다.
심포지움에서는 홍윤식(동국대 명예교수), 이보형(전 문화재위원), 박승률(국악예술학교 동문회 이사), 박태상(한국방송대 교수), 심형무(전 국악예술학교 교장), 임일남(전 국악예술학교 교장) 등이 발제에 나섰다.
홍윤식(동국대 명예교수)은 기산선생의 융합정신은 국악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정부나 경제계 요로에 국악을 이해시키는데 큰 힘을 발휘하여 국악예술학교와 국악관현악단이 이 땅에 최초로 창립되는 기쁨으로 승화되었다고 회상했다. 기산 밑에서 문화재 위원을 역임했던 이보형은 기산선생이 전국에 산재한 꼭두각시 놀음(1964년 지정), 판소리 춘향가(1964년 지정) 등 우수한 국악종목을 발굴, 이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이를 보유한 명인명창들을 발굴하여 인간문화재 및 기예능보유자로 인정한 점과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선 점을 꼽으면서 그의 불멸의 공적을 회고했다. 박승률(동문회 이사)은 기산의 공로로 학교 운영에 힘쓰는 한편 전국의 예술성 있는 인재 학생들을 스카우트하여 장학생으로 육성한 점을 첫손으로 꼽았다. 그 사례로 제자들로 박범훈 중앙대 총장, 사물놀이 장고의 김덕수 교수, 사물놀이 소고의 최종실 교수 등을 들었으며, 당시의 실기 선생들로 정권진, 박귀희, 한영숙, 신쾌동, 지영희, 성금연, 이영희, 박록주, 김연수, 박초월, 김소희 선생 등이 재직하여 교사진이 한국최강이었음을 회상했다.
심형무(국예고 전 교장)는 "그 나라 민족의 문화가 없어지면, 나라는 망한다"는 기산의 어록을 회상하면서 제자들이 기산선생의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선생의 업적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잘 연구하고 그 자료를 후손들에게 남겨 뒷날의 국악 후배들이 가슴에 새길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임일남(국예고 전 교장)은 불고가사(不顧家事)하고 멸사봉공하는 기산의 삶을 회고하면서 판소리 창극단으로 전국 순회공연, 대한국악원 창설, 국악예술학교 창립, 각 지방의 민속음악 발굴, 초중고 음악교과서에 국악에 대한 항목 게재 편찬 운동 전개, 전국 초중고 음악교사 승급자격 강습회 개최, 중요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수집 발굴 지정과 전수생 양성, 악사복 제정, 국악관현악단 최초 창설(오늘날의 시립국악관현악단), 창악대강 발간, 국악의 해외교류활동을 통한 국위 선양 등의 수많은 공적을 힘주어 열거하였다.
끝으로 박태상(한국방송대 교수)은 기산을 "열정적 민족주의자의 풍모"를 지닌 사람으로 단정하고, 기산선생의 사상으로 예와 악(樂)의 병행과 "도의 지극함을 즐긴다"는 도락(道樂)과 도심을 강조하여 공자의 유교적 선비정신을 계승한 것과 고완(古翫)을 통해 우리 전통음악에서 현재적 미와 새로운 생명력을 찾으려고 하는 상고주의(尙古主義)로 나아간 것을 예술문화운동의 토대로 삼았다고 역설했다.
둘째 날인 8일(금)에는 오전 11시의 기산에 대한 '추모제례'에 이어 저녁 7시부터 주공연인 <박차여라 나아가세>가 산청문화예술회관에서 관람석 1500여 석을 꽉 메운 가운데 국악대향연으로 펼쳐졌다. 이날 공연은 기산 박헌봉 작사, 박귀희 작곡의 '국악의 노래'를 송선원과 김재영교수의 지휘로 동문관현악단 40명, 합창단 40명의 도합 80명의 관현악단이 연주함으로써 국악제전의 문을 열었으며, 이어서 가야금 병창 새타령(이영신교수), 박범훈작곡의 '배띄어라 논개, 너영나영'(송문선 한양대 교수), 방아타령(김영재교수 해금독주), 대풍류(최경만, 이종대, 이철주, 김무경, 홍옥미, 김지희, 장인수), 시나위와 살풀이(춤 : 채향순 중앙대교수)을 연속하여 연주하여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날의 피날레는 최종실교수의 창작품인, 사물놀이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천지울림(중앙타악단 40명 공연)이었는데, 타악기 소리의 웅장함에 관객 모두가 숨을 죽이며 몰입하였다. 특송으로는 김성녀(중앙대 교수)와 제자들의 '산청아리랑' 공연과 헌정이 있었으며, 이재근 산청군수는 답례로 감사패와 산청 홍보대사 위촉장을 주었다.
무대에 올라 마무리 인사말을 한 이재근 산청군수는 "기산선생의 창조정신과 민족음악에 대한 열정을 본받아 산청을 '국악의 성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으며, 김민환 군의회 의장은 "예산을 확보하여 기산국악제전의 매년 개최와 기산선생의 생가 복원, 기념박물관 그리고 국악전수관 건립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군의회가 뒷받침 하겠다"고 약속하여 군민과 내빈들로부터 박수세례를 받았다.
5월 8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저녁공연까지 자투리 7시간 동안 산청군에 산재한 문화유적을 탐방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산수가 좋은 산청은 역사적으로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고려시대에 문익점은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원나라 순제의 미움을 받아 귀국하였는데, 붓대통에 목화씨를 가져와 장인 정천익을 통해 재배하여 당시 의복생활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문익점은 1461년 세조 7년에 사액된 도천서원에서 충효의 유적으로 추앙되어 조선조 유생들에 의해 봉향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산청을 예향으로 승화시킨 인물로는 남명 조식(1501~1572)이 있다. 조선조에 누군가가 안동에 퇴계가 있다면, 산청에는 남명이 있다고 말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남명은 1538년 유일(遺逸)로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임명되었지만 관직에 나아가지 않다가, 45세 때 고향 삼가현에 돌아온 후 계복당(鷄伏堂)과 뇌룡정(雷龍亭)을 지어 살면서 제자들 교육에 힘썼다. 1548~1559년 전생서 주부(典牲署主簿) ·단성현감 ·조지서 사지(造紙署司紙) 등 여러 벼슬에 임명되었지만 모두 사퇴하였다.
단성현감 사직 때 올린 상소는 조정의 신하들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함께 국왕 명종과 대비(大妃) 문정왕후(文貞王后)에 대한 직선적인 표현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렇게 모든 벼슬을 거절하고 오로지 처사(處士)로 자처하며 학문에만 전념하자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1551년 오건(吳健)에 이어 정인홍(鄭仁弘) ·하항(河沆) ·김우옹 ·최영경(崔永慶) ·정구(鄭逑) 등 많은 학자들이 찾아와 학문을 배웠다.
남명선생은 1561년 지리산 기슭 진주 덕천동[德山洞:지금의 산청군 시천면]으로 이거하여 산천재(山天齋)를 지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강학(講學)에 힘썼다. 선천재에는 그의 시가 한 수 걸려 있다.
題德山溪亭
請看千石鐘
非大口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천 석 무게 큰 종을 보소서
크게 치지 않으면 울지 않지만,
어찌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두류산에 비하겠는가.
이퇴계가 성리학의 이론적인 학문에 치중했다면, 남명은 실천적인 면에 주력함으로써 경상우도의 토착선비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또 임진왜란 때는 제자들인 곽재우와 정인홍 등이 의병을 일으켜 구국항쟁에 앞장서기도 했다. 조정에서는 남명의 고고한 유덕을 찬양하여 시호를 내리고 영의정에 정직하는 동시에 문인들은 덕천서원을 세우고 조정은 사액을 현판하여 추모향사를 받들었다.
산청이 낳은 큰 인물로는 허준을 가르쳐 명의로 만든 신의 류의태 선생(중종 ~ 선조)이 있다. 선생은 신안면 하정리 상정에서 출생하여 금서면 화계마을을 근거지로 의술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토대로 한 의술을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에게 가르치고, 자신의 몸을 해부용으로 제공하기도 한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였다. 현재 한방제조에 사용했다는 류의태 약수터가 왕산기슭에 있어서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최근의 큰 인물로는 국악계의 태두이며 큰 스승인 기산 박헌봉 선생과 독일에서 세계적인 음악 작곡가로 명성을 떨친 윤이상 선생 그리고 불교계의 성불 퇴옹 성철 큰스님이 있다. 성철은 1912년 단성면 묵곡에서 태어나 20세 때 전주이씨와 혼인하여 맞딸인 불필스님을 두고 사상적으로 방황하던 중 불경에 이끌려 대원사에 입사하고 해인사 백련암에 머물던 동산스님의 수계를 받아 성철이란 법명을 받았다. 1981년 조계종 6대 종정, 1991년 7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취임식에 참석치 않고 참선에 열중하다가 1993년 10월에 열반하여 많은 사리가 쏟아진 것을 미국의 CNN이 생생하게 보도하여 전 세계적으로 동양정신에 대한 신비감을 불러일으켰다. 또 성철 큰스님은 군부정권 때 페퍼포그가 난무하고 대학생들의 데모가 극심할 때 언론사 TV카메라가 다가가서 문제를 풀어갈 혜안을 부탁하자 묵언수행 중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단 한 마디만 남겨, 두고두고 그 말이 회자되었다.
<기산 국악제전>이 열리는 동안에 동시에 5월 2일부터 10일까지 <제 9회 산청한방축제>도 개최되어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산청군청의 실무자는 산청 한방 약초축제는 "금서면 경호강변의 축제광장과 전통한방휴양 관광지, 생초면 함박꽃단지, 황매산 철쭉 군락지, 남사 예담촌 등 지역의 문화관광지를 연계하여 개최된 행사로서 120만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여 320억여 원의 지역경제 유발 효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한방약초 축제는 류의태 ․ 허준 추모제, 영화 <신기전> 상영, 향토작가 초대전, 건강 기원 방생행사, 한방 약초 그림 그리기 대회, 약초 교실 운영, 도전 허준 골든벨, MBC 라디오 공개방송, 산청 한방 약초 패션쇼, 마당극 <허준>, 산청인의 밤, 단성대동놀이, 뮤지컬 <허준> 공연, 심마니대회, 봉산탈춤 공연, 일본 하나코마 공연, 한국의사학회 학술대회, 한방드라마 주제곡 공연, 지리산 팝스 오케스트라 공연 등이 개최되어 군민들과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한방 약초 축제는 한방을 테마로 한 웰빙 건강축제로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산청만의 독특한 문화 콘텐츠 개발과 한방약초를 소재로 한 웰빙식품과 문화상품 개발을 시도하여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아울러 2013년 허준의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 기념 세계한방 엑스포를 유치해 한방 약초 산업발전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모멘텀으로 삼으려고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산청에 놀러오면 '산청구경(九景)'을 반드시 둘러보아야 한다. 제1경은 지리산 천왕봉이고, 제2경은 대원사계곡이다. 대원사는 지리산 자락 삼장면에 있는 비구니의 참선 도량이다. 제3경은 황매산 철쭉이 선정되었다. 제4경은 구형왕릉이다. 구형왕은 가야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져 있는데 칠단으로 쌓여 피라미드 형태를 한 돌무덤에는 이끼와 풀이 자라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제5경으로 사람들은 경호강 비경을 잡는데 주저함이 없다. 거울처럼 물이 맑아 '경호강'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80여 리의 물길의 강폭이 넓으면서 유속이 빨라 여름철 래프팅의 최적지로 손꼽힌다. 흔히 인제의 내린천 래프팅, 동강의 래프팅과 더불어 경호강 래프팅은 '한국의 3대 래프팅 명소'로 알려져 있다.
제6경으로 대개 단성면 '남사 예담촌'을 손꼽는다. 남사리 마을은 130여 채의 전통 한옥과 고택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담하고 고요한 마을이다. 이 가운데 100여 호의 집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서 아름다운 돌담으로 둘러져 있다고 하여 예담촌이라 명명되었다. 돌담은 이 마을의 지체 높은 양반이 조랑말을 타고 출타할 때 갓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에 맞춰 쌓아졌다고 전해진다.
'예담촌'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옛 담 마을'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예를 중시하는 조상의 마음가짐을 이어받자'는 의미가 표상되어 있다. 제7경으로 앞서 거론한 시천면의 남명 유적이 제시되며, 제8경으로 신동면 정취암 조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정취암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암벽과 어우러진 풍경이 속세의 온갖 번뇌를 잊게 해줄 만큼 아름답다. 제9경은 신의 유의태 유적이 있는 금서면의 한방 휴양지이다. 유의태는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의 스승이다.
봄이 되면 꽃과 나비를 따라 사람들의 마음이 동한다. 욕망이 일어나면 무섭게 차를 몰고 길을 나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을 특히나 좋아한다. 꽃 축제는 우리나라의 도처에서 펼쳐진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 동백꽃을 찾아갈까? 아니면, 구리의 유채꽃 축제현장으로 달려갈까? 이도 저도 아니면 구례나 양평군의 산수유 축제에서 재미를 찾을까? 달성군 비슬산의 참꽃축제를 방문할까? 제3의 길로 강화 고려산의 진달래꽃축제나 청송의 수달래축제를 찾아갈까? 참으로 세상에는 갈 곳도 많고 꽃도 많다.
그러나 한 곳에서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일거삼득이 아니겠는가? 그곳이 바로 산청군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3색 유혹의 축제이다. 대통이 뚫리기 전만해도 지리산 자락 산청은 '구중심처'라고 불려졌다. 그것은 오래된 옛말이다. 이제 대통 고속도로가 새로운 신비로운 세계와 비경을 우리 앞에 던져준다.
산청군 금서면 경호강변 일대에는 작약농장에서 작약이 새색시 볼처럼 진홍빛의 부끄러움을 드러낸다. 매년 5월 2일과 3일에는 산청군과 함양군 두 곳에 걸쳐 수 십 만평의 고원에 선홍빛의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다. 그 유명한 황매산 군락지의 철쭉꽃 축제가 순수한 사람들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하는 것이다.
황매산은 높이가 해발 1103.5m이고 바위산의 모양이 매화가 피어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5월이면 수 십 만평의 고원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선홍의 색깔을 연출하는 철쭉 군락지는 전국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그 황매산에 자리 잡은 황매산 <영화주제공원>은 은행나무침대 Ⅱ인 영화 <단적비연수>를 촬영 했던 주 촬영장으로 산 속에 작은 원시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영화 <단적비연수>, 드라마 <주몽>, <바람의 나라>의 촬영이 진행된 억새집, 통나무집, 30여 채의 원시부족가옥, 10여 개의 풍차와 은행나무 등 영화주제공원이 손님들을 맞는다.
황매산은 고려시대 때 무학대사가 수도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황매봉 동쪽으로 기암절벽이 아름다워 금강산으로도 불려진다. 3색 유혹의 마지막은 산청군 생초면 평촌리 고읍들 일원 7만 1732㎡ 부지에 조성된 생초 함박꽃단지가 장식한다. 5월 2일부터 17일까지 펼쳐지는 함박꽃축제는 다른 지역의 꽃 축제와 다른 묘한 분위기가 파생된다. 함박꽃은 꽃잎이 유난히 커서 선머슴 같은 벌쭉함이 야릇한 묘미를 준다. 특히 사진작가들과 누드모델이 많이 찾아와서 인간의 몸매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함박꽃이 서로 미의 경쟁을 펼친다. 함박꽃은 굵고 탐스러운 꽃으로 관상용으로 재배되며, 그 뿌리는 작약이라 하여 예로부터 진통 ․ 복통 ․ 부인병 ․ 해열 ․ 지열 ․ 각혈 ․ 빈혈 ․ 타박상의 약재로도 널리 쓰인다.
마지막으로 산청여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최치원이 노닐다 갔다는 '배 바위'이다. 이 바위는 말 그대로 배 모양을 하고 계곡에 서있다. 뱃머리의 모양은 매끈하고 잘록한 것이 하늘로 치솟을 듯한 기상을 보여준다. 최치원의 호를 딴 '고운동'은 산청군 시천면 반천마을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시천'은 물살이 화살처럼 빠르다고 해서 '살천' 또는 화살 시를 써서 '시천(示川)'이다. 반천마을은 물이 거꾸로 흐른다는 뜻이다. 지금 이곳 고운동에 댐을 막고 물을 거꾸로 끌어올려 70만 ㎾의 수력발전을 하고 있으니 마을이름에 잘 어울린다.
실로 다채롭기만한 산청의 비경을 놓칠 수 있겠는가? 5월이 가기 전에 대-통고속도로를 달려 무주 - 장수를 지나 함양으로 접어든 후 생초 I. C, 산청 I. C, 단성 I. C 세 곳 중 한 곳으로 진입하기를 추천한다. 남명선생처럼 현대판 소부-허유가 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박태상 기자는 한국방송대 교수이자 문화평론가입니다.
인간의 삶은 애초부터 떠돌이입니다. 태어날 때 어느 별을 떠돌다 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이 가기 전에 길을 나서기를 권합니다. 떠돌이의 본성에 충실한다는 것은 인간의 창조의 몸짓을 시작한다는 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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